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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 나의 일기장에서 발췌

2025년 01월 01일 수요일 맑음 늦은 저녁은 약간의 비 깊은 간밤의 잠에서 깨어 일어 났다. 뒷뜰의 텃밭 돌아 보고 새해의 첫날 한국의 형님누님의 문안 글이 떠 올랐다. 그리고 강화의 처제와 동서에도 글 보냈다. 새해 2025년을 맞아 형님 누님께 문안 글 드립니다. 간지로 을사년이 되어 과거의 역사로 보면 암울했던 조국의 앞날이 시작되었으니 새해도 걱정이 앞서는군요. 막내의 모습과 기력도 예전과 다름을 느끼게하여 형님누님께는 얼마나 변화에 곤란을 겪고 계실까 걱정의 그림을 그려 봅니다. 이곳에 사는 교민들 교제로 그들의 형제자매 피붙이 면면을 알 수 있는데 저와 같이 형님누님의 도움과 사랑을 받은자는 드물어 저는 언제나 자랑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형님 누님! 그간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너무나 ..

061 모처럼의 음악 감상 그리고 062 지금의 나의 심정이 이렇다

내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이 3,923개 있다.일부는 제목의 구별을 하느라 중복된 곡도 포함되었다. 아무튼 처음에는 4000 여 곡이 넘었는데세월이 흐르면서 내 컴퓨터가 바뀌고 또 인터넷의 Upgrade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음악은 더 이상 그 음악을 재생시키지 못하여 파기 처분하여 지금의 3,923개로 줄었다. 이 만큼이라도 나에게 행운으로 원하면 수시로 감상하기에 자랑으로 지내왔다. 요즘은 음악 강상의 기회가 많지 않아 오늘의 분위기에 그 음악을 찾아 보았다. 의례 찾는 곡의 시작은 Song for the liberty from NabuccoIvan Rebroff Va Pensiero - Claude Ciari - Nabucco's Guitar 나오고 그 음악이 뜨는 약간의 시간이 걸려 컴퓨터에 문제..

060 나의 이야기 학창시절의 사진 & 카메라

지난 주에 감기로 약속을 하지 못한 한방 치료 오늘은 잘 받았다.기온이 약간 추워 위 옷을 벋어 치료를 받는 일이 잘 될까 염려는 되었지만 잘 견디며 안마 침술 부황치료 모두를 잘 끝냈다. 그리고 지압을 늘러 안마하는 곳곳에 맺힌 근육의 통증이 잘 빠지며 시원하다할까 몸이 개운하였다. 아무튼 이런 한 시간 가량을 맞기에 그 시간 엎드려 별의 별 생각이 나래를 폈다. 오늘은 아침부터였는지 대학 때의 과 친구들 모습이 떠 올랐고, 또 교양학부에 함께 수업을 들었던 농학과, 임학과, 그리고 가정학과, 간호학과, 그리고 도예학과와 1년의 강의를 들었다. 이 중에 가정학과, 간호학과는 여성들로 당시에 꽤 선망의 여학생이라 다른 학과는 우리를 멈청 부러워 했었다. 대학학부 중 농과대학은 가장 선호가 되지 않던 대..

059 나의 1972년 군 입대 직전

새 아침을 맞으니오늘의 날자를 익혔고, 또 날씨도 알아 보았다. 문득 내가 군 입대하여 막 신병 훈련하던 때가 떠 올라 그 6주 동안의 힘든 과정을 글로 써 볼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 My Story 글이 대부분 완성되어 내가 써야 할 것이 없다고 본 지금에 위에 적은 시절은 자세히 글로 적은 것이 없어 이참에 적는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1972년 2월 나에게는 군 징집영장이 발부 되었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 없지만 대략 1972년 5월 22일 경이다.양력 1972년 5월 22일(월) 양력 1972년 5월 22일은음력 1972년 4월 10일입니다.평달이고 임자(壬子)년입니다. 이 날로 잡은 것은 월요일이라 나의 6주 군 기본 훈련의 시작이 되지않았을까싶었다. 아무튼 대학 졸업 후 이 날 입..

058b 나를 다시 찾았다 외 058c 나의 삶속에 세월 흐름 변화

058b 나를 다시 찾았다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들었나? “내가 너무 교만하였다” 그 교만함으로 인하여 나에게 돌아 오는 비참함을 보건데내가 나를 옳게 판단하지 못한 그간의 내 삶에 통렬히 반성해야 했다. 그 낮은 자세를 이제야 알았구나. 겸손과 겸양순종과 감사내가 장로라는 것 보다 기독교인임을 내 자신이 마음으로 받았어야 했는데. 어느 시간 순간부터 너무 교만함으로 나를 바뀌어 놓았으니그것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나 였던가? 친구들에, 교민들에, 교인들에특별히 매주 주일에 만나는 교회의 교인들에는 예전의 남창균이 아닌 막나가는 남창균 장로로 둔갑된 허울이 된 나를 이제서야 알았다. 거만함과 교만이 가득한 남창균이었다. 내 딴에는 정의의 남창균으로 보였음싶어 가면으로 행하여 온 그간을 내가 깨달았다...

058a 우리 삶에 신문 혹은 방송의 역활에 대하여

058a 우리 삶에 신문 혹은 방송의 역활에 대하여 우리의 삶에 신문은 그야말로 세상을 보여주는 연결체 역활로 아주 귀한 대접을 받으며, 서민 부자 가리지 않고 매 일상에 찾아 왔었다. 내가 자란 어린 시절에도 그런 느낌은 벗어나지 않았으니, 나에게 신문은 당시의 변소(화장실)의 큰 용변 치루고 밑 닦기에 쓰려 작은 조각을 화장실 귀퉁이에 껴 놓아 사용하였고, 시간이 길어지면 그 지면의 글을 읽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한자까지 병용으로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만화로 나오는 “고바우 영감”은 동아일보의 인기로 삽화 그림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김성환 화백이었던가? 1960년 4월 28일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의 가족 집단 총기 발사로 그 가족은 모두 죽음으로 끝난..

세월이 나에게 남긴 말들

세월이 나에게 남긴 말들 나는 글쟁이가 아니다.다만 매일의 생활을 놓치지 않으려 일기를 써 왔을 뿐인데,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새 세월이 되었다. 어린 시절 방학 숙제 가운데 늘 빠지지 않던 것이 일기 쓰기였다.숙제를 마친다는 핑계로 방학 때만 몇 차례 적어 냈던 기억이 난다.서울에서 학창 시절 대학 1학년에 들어 선 기념 삼아 일기장을 샀고,그 일기는 3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군 생활을 하면서, 또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하고결혼을 하고, 뉴질랜드로 취업 이민을 오기까지일기를 꾸준히 쓰는 일은 없었다.그러나 작은 기록들은 늘 내 곁에 남아 있었다. 내 성격이 비교적 꼼꼼한 편이라사소한 것이라도 적어 두고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메모장 같은 곳에 짧은 글들이 남았고,사업으로 바쁜 나날 속에서는세무 정리를..

055b 사람의 삶에 인생무상 외 2편 추가

055b 사람의 삶에 인생무상근래에 들은 이야기이다(2024년 1월 26일). 예전 일식의 ‘송죽’ L사장이 Birkenhead지역의 주유소에서 임시 판매원에 있던 것을 알게 되었다.그는 일찍이 나의 사업체 한국상사 식품점 옆에 일식의 초밥집을 오픈하여 영업이 좋아 Mission Bay지역에 분점까지 열었던 교민이다. 나는 1997년 IMF 사태로 모든 사업을 접고 지금의 거주지로 이사 와 그의 이후 소식을 몰랐는데 근래에 이런 만남에서 유학생 영어 학원까지 사업체를 넓히다가 그로 사업부도를 맞고 지금에 이르뤘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의 ‘K신문’운영자 Y은 Lee와의 명예훼손 관계로 법정 최종 패소에 신문사 폐쇄 이후 이렇다할 어떤 사업 번창 없이 무소식이던 그가 2주 전에 잠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055a 故 이정남 회장에 부치며

이제 고인이 되신 이정남 회장님! 오늘 저녁에야 카톡을 통하여 교민 이정남 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향년 87세로 삶을 마감하며 남은 유가족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와의 인연은 40여년의 긴 세월이 연결되어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닐터 그도 나도 각자의 삶 중에 뉴질랜드의 생활이 생애의 반을 넘어 이곳은 제2의 고향일뿐 아니라 평생의 즐거움과 고뇌를 옆에서 지켜 보는 각고의 흔적이 있었으니 그 소회가 남다르다 하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홀로 외롭게 지내던 1983년 어느 날 남섬 드네딘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의 태권도 지도 차 모 체육관에서 그 휘하의 단원들과 함께 만나게 되어 단상 중앙에 걸려 있던 태극기에 단원들의 한국어 구령은 남다른 애국심이 발휘되던 시간이..

054b 남창균 장로를 아동 추행범으로 경찰에 고소 DRAKE, GREG 전 과정 서신

교회 안에서 겪은 어려움 나는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던 교인 드레이크(Drake)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여덟 살 아들에게 내가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고발할 수도 있으니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드레이크와 그의 아들은 늘 한국인 사역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이들이었다. 뉴질랜드인으로서 한국 문화에 이해가 깊어 교제도 원만했고, 예배 후 함께 식사하며 대화 나눌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갖곤 했다. 그러던 중 교회가 목사 청빙 문제로 의견이 갈라지며 갈등이 커졌다. 그 과정에서 일부 소수 의견을 가진 교인들이 드레이크를 이용해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 한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단순했다. 예배당에서 그의 아들이 기특해 보여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려 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