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거부한 부대 [ 6 ] ~ [ 11 ] 운명을 거부한 부대 [ 6 ] 두 번째 포위 1950년 6월부터 그 이듬해 6월까지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던 전쟁이었습니다. 낙동강에서의 피 말리던 두 달간의 공방전을 제외한다면 자고나면 전선이 바뀔 정도로 반복되는 진격과 후퇴가 일상이었습니다. 미 2사단도 해체의 위기를 딛고 ..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1 ]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1 ] 명문 부대의 조건 현재 대한민국 육군에는 수많은 전술 단위 부대가 있는데, 그 중 야전 전력의 핵심인 사단만 하더라도 수 십 여개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외 없이 모든 장병들은 자신이 속한 부대에 대한 자긍심이 높습니다. 그런데 평시에 부대 관리가 ..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2 ]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2 ] 전쟁 전의 전쟁 단대호 1에서 알 수 있듯이 제1사단은 국군의 모든 사단 중에서 제일 먼저 창설된 사단입니다. 사단의 모체는 1947년 12월 1일 태릉의 제1연대(현 수도사단 예하), 청주의 제7연대(현 6사단 예하) 및 춘천의 제8연대(현 7사단 예하)를 기간으로 ..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3 ]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3 ] 현실적인 방어계획 여단에서 사단으로 승격되고 난지 불과 4일 후에 개성 북쪽 38선일대의 송악산, 292고지, 유엔고지, 비둘기고지 등에서 벌어진 일련의 충돌은 한국전쟁의 일부로 포함하여도 이의가 없을 만큼 격렬하였습니다. 그 절정이 1949년 5월 4일, ..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4 ]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4 ] 전쟁에 대비하다 1950년 6월 현재 1사단의 총 병력은 10,000명 내외였고 보유한 장비는 편제상으로 105밀리미터 곡사포 15문, 57밀리미터 대전차포 18문, 81밀리미터 박격포 36문, 60밀리미터 박격포 54문, 2.36인치 로켓포와 각종 기관총 43정을 보유하고 있었습니..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5 ]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5 ] 육탄으로 막아낸 전선 1950년 6월 25일 04시, 북괴군의 대대적인 사전 포격이 개시되었습니다. 수차례의 국지전을 통해 북괴군과 총을 섞었던 1사단 장병들도 이번 공격은 이전과 차원이 다름을 즉각 깨달았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서서히 포연이 걷히..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6 ] **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6 ] 우리는 결코 패하지 않는다 장병들의 선전이 이어지자 백선엽은 현 전선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더불어 미군이 참전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6월 28일 08시를 기해 반격을 개시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과는 별개로 ..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7 ]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7 ] 역사를 바꾼 피의 전장 1950년 7월말이 되었을 때 미 8군사령관 워커는 최후의 보루인 부산을 반드시 지켜내려면 북괴군의 우회 돌파가 허용되지 않도록 방어선을 단단히 구축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북괴군의 진격을 멈추기 위해 전략적으로 ..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8 ]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8 ] 반격의 선봉장이 되다 1사단의 분투 결과 8월 21일을 기점으로 다부동의 상황은 눈에 띄게 호전되어 갔습니다. 초조해진 북괴군은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마지막 남은 전차와 자주포를 앞세워 그날 밤 대규모 야간 역습을 감행했지만 배속된 미 27연대 전..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9 ]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9 ] 감격, 좌절 그리고 후퇴 바로 이때 북괴군은 대동강 인도교와 철교를 완벽하게 폭파시켜 도하 지체가 불가피해 보였고 미군은 부교를 가설하려 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어릴 적에 물놀이를 하였던 사단장 백선엽에게는 눈감고도 훤한 곳이었습니.. 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2013.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