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5 ]

淸山에 2013. 7. 14. 13:01

 

 

 

 

 

후퇴는 있어도 패배는 없다 [ 5 ]

 

 

육탄으로 막아낸 전선

 

1950년 6월 25일 04시, 북괴군의 대대적인 사전 포격이 개시되었습니다.  수차례의 국지전을 통해 북괴군과 총을 섞었던 1사단 장병들도 이번 공격은 이전과 차원이 다름을 즉각 깨달았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서서히 포연이 걷히자 적들은 물밀듯이 남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완벽한 기습이었고 38선 일대를 지키고 있던 1사단 12연대13연대 전초가 순식간 돌파 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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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대적인 포격을 시작으로 북괴의 남침이 시작되었습니다 ]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인 전선 좌측을 담당하던 12연대의 상황은 급속도로 어려워져서 아침 09시 30분경에 북괴군 6사단에게 개성이 완전히 함락당하면서 배후가 차단되는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손실을 입은 12연대는 예하 대대들이 분리되어 장단-문산 방향으로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영정포에서 한강하구를 건너 김포반도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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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습으로 12연대가 많은 피해를 입고 분산 철수하였습니다 ]

 

초전에 많은 피해를 입은 13연대도 계획대로 임진강을 건너 후퇴하여 파평산 일대 동쪽 진지를 점령하였고 동시에 후방의 수색에 주둔하였던 11연대가 앞으로 달려 나와 서측방 주저항선을 점령하였습니다.  비록 초전에 38선이 뚫렸지만 아직까지 1사단은 당황하지 않았고 계획대로 작전을 펼쳐나갔습니다.  이날 오후 늦게 대대규모의 북괴군이 방어진지 앞으로 출몰하였다가 전멸되었는데, 이것은 1사단이 전쟁에서 거둔 최초의 의미 있는 승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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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병산 전투에서 적 1개 대대를 섬멸하며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그리고 그날 저녁, 후방에서 달려 온 5사단 예하 15연대 3대대와 20연대 3대대 그리고 태릉교도대가 증원되었습니다.  이로써 1사단은 적의 공격 초일, 비록 12연대가 많은 손실을 입고 분산 철수하기는 하였지만 임진강에 연한 방어진지를 완벽하게 확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적의 진격을 저지하여야 할 임진강 철교의 폭파에 실패함으로써 차후 방어 작전에 많은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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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전 당시 폭파에 실패한 임진강 철교(1946년의 모습) ]

 

전쟁 2일째 상황은 더욱 나빴습니다.  방어선 전면에 5대의 북괴군 전차가 나타났는데, 국군이 당시에 보유한 장비로 적의 T-34를 요격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전진부대 용사들이 선택한 방법은 육탄공격이었습니다.  13연대 1대대에서 선발된 18명의 특공대가 박격포탄 등으로 급조한 폭탄을 안고 적 전차 밑으로 뛰어 들어가 캐터필러를 끊는 방법으로 필사적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해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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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진하는 북괴군 전차 부대 ]

 

아군의 극렬한 육탄 공격에 선두의 전차가 격파 당하자 후속한 전차들이 겁을 먹고 진출을 일시 포기하였습니다.  이처럼 13연대는 치열한 근접전투를 펼치면서 방어진지를 필사적으로 고수하였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부터 불거져 나왔습니다.  우측인 경원축선을 담당하던 7사단이 거의 붕괴직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칫하면 1사단 우측이 완전히 노출되어 고립될 위험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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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사단이 붕괴 직전에 몰리면서 우측방에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

 

결국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가여울-적성으로 진출한 북괴군 1사단이 전차를 앞세우고 전진부대의 주저항선 동측으로 파고들어 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변하자 백선엽은 봉일천 북쪽에 구축한 최후 저지선으로 부대를 철수하여 서울 방어를 위한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였습니다.  당시에 법원리까지 진출하였던 북괴군은 아침 10시, 6대의 전차를 선두로 하여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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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탄 공격으로 적 전차 요격에 나섰습니다 ]

 

후방에서 올라와 1사단에 배속되어 이곳 방어 투입 된 15연대 3대대가 57밀리미터 무반동총과 2.36인치 대전차 화기로 적 전차 파괴에 실패하자 육탄으로 적 전차와 맞섰습니다.  15중대 2소대장 박종순(朴鍾淳) 소위가 전차 안에 수류탄을 집어넣어 선두 전차를 폭파시켰으나 이선도(李善道) 중대장을 비롯한 수많은 용사들이 적의 공격으로 절명하였습니다.  이처럼 전진부대는 피로써 적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