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장,
나회장과 홍수희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승미의 놀라는 얼굴을 본다.
승미는 인규가 한창그룹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 놀람과 충격은 컸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죄송합니다.
인규씨가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의 인규씨만을 생각하느라 어떤 집안인가 하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창그룹 기획실장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로구만!
좋다, 너희들끼리 따로 나가서 사는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것 또한 허락을 한다.
단, 내 집으로 들어오게 될 때까지다.“
나회장은 흔쾌하게 수락을 한다.
“여보!”
홍수희는 놀라서 남편을 바라보지만 이미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은 뒤였다.
홍수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만다.
양가부모님의 상견례 날짜가 잡히고 분주해진다.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상견례를 한다.
양가 모두 부모님만을 초대를 한다.
나회장과 홍수희 그리고 승재와 인규와 승미만 참석을 하도록 한다.
차승재는 이미 매스컴을 통해서 나회장의 사진을 보아서 알고 있지만 보도된 인품보다는 실물이 훨씬 인간미가 느껴지는 따스함이 깃들어진 모습에 안심을 한다.
허나 홍수희는 차고 이지적인 모습이다.
서로의 수인사들이 끝나고 남자들은 술잔을 든다.
“부족한 자식을 받아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허허..........
그것이야 어디 우리의 마음대로입니까?
두 아이 천생배필이 되어 만났으니 부모로서 당연히 축하를 해 주어야 하는 일이지요.“
”제대로 가르친 것이 없어 많이 가르쳐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워낙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 제대로 사람구실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사돈!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잘 배운 아이라 하더라도 결혼을 하면 그 집안의 풍습을 익히느라 한동안은 조금 힘들겠지만 그 집사람이 되고 나면 모두가 옛 얘기가 되겠지요.
안 그렇겠습니까?“
나회장은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승재와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엄마가 없는 신부 측보다는 엄마가 있는 신랑 측에서 결혼날짜를 잡기로 한다.
홍수희는 신랑과 신부의 사주를 적어 결혼날짜를 잡으러 간다.
상류층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두 사람의 사주를 넣고 결혼날짜를 잡으려는 홍수희의 마음은 두 사람의 궁합도 보자는 속셈이다.
“두 사람이 천생연분입니다.
여자의 사주가 아주 온화하고 남자를 뒷받침을 해주는 사주가 되어 남편이 내조를 해서 크게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부터의 인연이었던 것 같은데 결혼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렇게 궁합이 좋은 것인가요?”
홍수희는 무언가 찜찜하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사주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참으로 막힘없이 아주 좋은 궁합입니다.
결혼날짜는 제일 빠른 것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이 언제인가요?”
“신랑과 신부의 사주로 보면 딱히 날짜를 잡지 않더라고 아무날짜나 다 막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날짜는 삼 개월 뒤의 팔월 둘째 주면 더 이상 나무랄 것이 없지요.“
“덥지 않을까요?”
“두 사람의 마음속은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딴 살림을 내 놓아도 좋겠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따로 내 놓으십시오.
그리고 살림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며느리를 불편하게 하지 마시오.
아마 아들이 불같이 화를 내고 잘못하다가는 아들과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저 바라보고만 계시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입니다.“
”시어미로 참견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요?“
”시어미 티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 누가 시어미 시집살이를 하며 산다고 합니까?
더구나 이렇게 신랑이 애지중지 하는 며느리를 잘못 다스렸다가는 아들의 화를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홍수희는 큰 한숨을 내 쉰다.
하나뿐인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로서 위상을 떨치지도 못하게 생긴 것이다.
홍수희는 결혼날짜를 잡아 집으로 가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다.
아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들의 말에 따라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인규는 어머니가 받아온 결혼날짜를 보고 기뻐한다.
“어머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인규야!
모든 것을 네 뜻대로 따르고 있지만 예단을 어찌 하려는지 알고 싶다.
아무리 신부 측이 형편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예단이 없는 결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예단은 어느 정도인지 말씀을 해 주세요.”
“오냐!
모든 것을 생략한다고 하더라도 백부님과 숙부님 내외분 그리고 고모내외 네 누님들 부부 옷 한 벌과 아버지와 내 옷과 그리고 침구세트는 있어야 할 것이다.“
”어머니!
보통사람들의 수준도 아니고 어머니의 수준으로 그 모든 것을 해야만 하지 않습니까?“
“그야 당연한 것이 아니겠니?”
“그 정도의 수준에 맞추려면 웬만한 집 한 채 값은 있어야 하겠습니다.
서민들이 무슨 돈으로 그것을 맞추겠습니까?
더구나 승미씨는 그동안 월급을 한 푼도 축내지 않고 집을 마련했습니다.
또 다시 그 집에 모든 혼수를 마련해서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재력이 있어 그 많은 예단을 마련합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예단이 없이 어떻게 결혼을 하겠니?“
“그럼 어머니가 그 아파트의 모든 세간을 채워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저희들 예물도 간소하게 커플링 하나씩만 할 것입니다.“
“뭐야?
그런 결혼도 있다더냐?“
홍수희는 펄쩍 뛴다.
“어머니!
아들의 결혼이 장사를 하신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저희는 저희들 수준으로 결혼식을 하겠습니다.
예단이나 혼수를 가지고 승미씨를 아프게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너 벌써부터 안식구 역성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더냐?“
“어머니!
제 결혼은 제가 행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허욕을 채워드리려고 하는 결혼이 아닙니다.
예단은 일체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상은 제가 구입해 드리고 침구세트 또한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
홍수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성격대로 한다면 이 결혼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들의 말을 잘라버렸을 것이다.
만일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아들은 영원히 자신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들과의 생이별을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홍수희는 잠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그리고 문갑을 열고 봉투를 꺼낸다.
“자, 이것을 받거라!
그리고 그 아이에게 주어라!
결혼비용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어머니!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의 이목이 그리도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백부님이나 숙부님 또한 누님들 의상이 필요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저는 그런 자금을 저희들 신혼생활을 시작하는데 쓰고 싶습니다.“
“인규야!
너도 생각을 해 보거라!
우리 집안이 어디 보통 집안이더냐?
아버지와 엄마의 체면도 있고 집안의 체면도 있는 것이다.
단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에 아무 예단도 없이 그대로 가족들을 보내드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역시 네 사촌들 결혼식에 그런 예단들을 받아왔다.“
“네!
알고 있습니다.
누구네 며느리는 예단을 잘 해왔네 못해왔네 하는 말씀들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잘해왔다는 말씀보다는 흉보고 깎아내리려는 마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서민층에서 데리고 오는 사람입니다.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서민이라고 하지 않겠지요?
어머니가 아무리 그렇게 하셔도 전 저희들 수준으로 결혼을 하겠습니다.“
인규는 완강하게 어머니의 말을 잘라 버린다.
어머니가 주시는 돈을 받아서 해 온다면 두고두고 그것을 생색내려고 하실 것이다.
그로 인해 승미가 어머니께 무엇이든 순종을 해야만 할 것이다.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들을 위한 자금으로 썼다면 어머니도 더 이상 하실 말씀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
저는 제 월급만으로 생활을 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월급을 받아오면서도 돈을 한 푼도 저축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쓰는 것만 배우고 저축을 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제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 자신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저희들 능력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너 무엇을 믿고 그렇게 자신 만만하더냐?
네 월급이 몇 푼이나 된다고 그런 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어머니!
제 월급을 가지고도 아이들 공부를 시키면서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입니다.
우리 회사의 대부분 직원들이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살 수 있을지 한 번 살아보고 나서 말을 하자.“
홍수희는 아들이 머지않아 도움을 청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월급에 대해서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고 또 그것은 아들의 용돈으로도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아들의 용돈을 가끔 주곤 하던 홍수희였다.
그런 아들이 이제는 자신의 월급만을 가지고 가족을 거느리고 생활을 해 나가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다.
홍수희는 더 이상 예단을 가지고 아들과 입씨름을 한다는 것이 무모한 일임을 느낀다.
홍수희의 그런 걱정과는 달리 승재는 그런 집으로 딸을 시집보내면서 예단이 얼마나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본다.
짐작으로는 자신들의 생각보다 상당할 것임을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듣는 말로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이다.
승재는 많은 생각을 한다.
수준에 맞추려면 저쪽 부모님을 무시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사위 될 사람의 말대로 예단을 무시하자니 더욱 마음이 편치가 않다.
승재는 형수님들과 상의를 한다.
자신이 혼자서 결정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형수님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큰 형님댁을 방문한다.
큰 형수인 오화영이 반갑게 맞이한다.
“서방님!
참으로 축하를 해야 할 일입니다.
승미가 그렇게 대단한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리라고는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오화영은 마치 자신의 딸이 그런 집으로 시집을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뻐한다.
“형수님!
축하는 나중에 받기로 하고 우선은 그런 집에 예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들리는 말대로 그렇게 대단하게 보내야 하는 것인지요?“
”서방님!
그 집안에서 이쪽의 사정을 알고 계신 것이 아닌가요?“
”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사위의 말로는 예단을 생략하시겠다고 하셨다고는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인지요?“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이십니다.
그런 분들이 우리처럼 서민층의 아가씨를 며느리로 맞이하신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일이기도 하지만 예단까지 생략하시겠다니 정말 서방님께서 혼자서 고생하시며 세 딸들을 키우신 보람이 이제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정말 이대로 예단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요?”
“그럼 어쩌시겠습니까?
그쪽을 맞추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건 아니지 싶습니다.“
“서방님!
서방님 형편대로 하시는 것도 좋으실 것입니다.
예단 값이라고 성의를 다해서 보내드리세요.
그러면 사부인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그러니 그 수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해야 할지요?“
”얼마라고 정해진 것이 있나요?
일반 가정집보다는 더 생각을 하셔야 하고 조금은 신경을 쓰셔야겠지요.“
“이래서 아마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혼사라는 생각이 되네요.“
“서방님!
승미가 가서 행복하고 잘 사는 모습을 생각하시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지금 조금 힘들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저희도 조금은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오화영은 일천만원을 선뜻 내어 놓는다.
“이렇게 많이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승재는 기겁을 하며 봉투를 밀어 놓는다.
글: 일향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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