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장,
유자경은 승재의 완고함을 본다.
그러나 자식을 위해서는 그대로 돌아설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승인이 아버님!
무엇을 걱정하시는 것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하시지 않아도 되시도록 제가 잘 보살펴주겠습니다.
두 아이를 모두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지요.
우리 승인이는 사랑이라는 것도 결혼이라는 것도 알지 못하는 자식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섯 살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어리광을 부리고 투정부리고 떼를 쓰는 일이 전부입니다.
몸은 어른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입니다.
여자구실도 며느리 역할도 한 집안의 주부노릇도 하지 못하는 장애자입니다.
그런 아이를 데려다 무엇을 하시렵니까?“
승재는 유자경의 생각이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꼭두각시 인형이라면 차라리 예쁘기라도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승인이는 그렇지도 못합니다.
용훈이라면 비장애인이라도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정신이 정상인 사람입니다.
지금은 아프더라도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없어 그만 일어나봐야 하겠습니다.“
승재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가게를 더 이상 비워둘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자경은 그런 승재를 더 이상 잡을 수가 없다.
그저 승재가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 쉰다.
어쩌면 승재가 하는 말이 옳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며느리로 들인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견디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를 느끼며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정상적인 아들이라고 해도 아직은 결혼하기엔 이른 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아직 아무것도 수입이 될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아이들도 아니다.
언제까지 자신이 모든 것을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결코 결혼이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는다.
유자경은 한참을 깊은 생각 속에 잠겨 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서야 몸을 일으킨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용훈이가 아픔을 이겨내고 스스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유자경은 힘없는 모습으로 집으로 향한다.
승재는 가게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남의 귀한 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말을 듣고서도 그렇게 냉정하게 뿌리치고 돌아온 자신의 냉정함에 스스로 자책을 하지만 더 이상의 길은 없다.
그 어떤 길도 절대로 승인이를 결혼시키는 일보다는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가게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머리가 혼란스럽다.
과연 아버지로서 딸에게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비장애인이거나 차라리 지체장애를 가진 딸이라면 그렇게 완강하게 반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육체보다는 정신이 올바른 장애를 가졌다면 어떻게 하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발달장애를 가진 딸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 세상이다.
승재는 승인이에 대한 앞날을 다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무작정 자신의 곁에 두고 나면 자신의 사후에 승인이가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된다.
그렇다고 언니들에게 승인이를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승미나 승리 또한 자신들의 길을 가고 행복 된 삶을 살아야 할 딸들이다.
장애를 가진 동생을 맡아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승재는 승인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킨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전문적으로 배우는 미술교육기관으로 옮긴다.
세상에 내 놓을 수는 없다고 해도 잠재된 능력을 마음껏 개발해주기 위함이다.
승인이를 위해 더 많은 돈이 투자 된다고 해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승재는 승인이를 위해서 작은 소형승용차를 새로 구입을 한다.
매일 승인이를 트럭으로 태우고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남들의 눈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운 숙녀의 모습이다.
그런 승인이를 트럭에 태우고 다니면 남들의 눈에도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승재는 작지만 승용차를 구입해서 데리고 다니려는 생각이다.
승용차와 승인이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자신의 경솔함을 나무란다.
언제까지 어린아이로만 생각을 하고 남들의 눈에 비쳐지는 승인이의 모습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이 짧고 경솔했다는 것을 느낀다.
통학버스가 있지만 그것을 태우지 않는다.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도 얼마든지 다시 남자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거나 또 다시 승인이로 인해 마음 앓이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승재의 삶은 모든 것이 승인이에게 맞추어져 있다.
두 딸은 더 이상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없다.
자신들의 길을 잘 해 나가고 있는 승미와 승리다.
걱정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제 갈 길들을 가고 있다.
승재는 승인이를 위해 매달 많은 돈을 저축해 나가고 있다.
장사는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일 들어오는 수익이 예상보다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
아무리 피곤하고 고되다고 해도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피곤함이 깨끗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힘든 것이 장사라고 하지만 역시 남는 것도 장사라는 생각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것 역시 장사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승재는 수입 중에 많은 부분을 승인이를 위한 저축을 해 나간다.
또한 매일 팔고 남은 야채들과 과일들을 매일 점심 무료봉사를 하는 부부에게 준다.
그들 부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노숙자들을 위해 매일 점심을 해서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들을 식사를 마련해서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가지고 나간다.
그 한 끼의 식사를 먹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밥과 김치와 국뿐이지만 그네들은 그 한 끼를 기다리는 시간들이 몹시도 길다는 표정이다.
삶에 지치고 찌든 모습들의 초라한 그네들의 모습에 승재는 가슴이 아파온다.
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누구는 호화롭고 풍족하게 삶을 살아가고 또 누구는 저렇게 힘들고 지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마음 먹은 대로 되지 못하고 집을 나와 거리로 떠돌며 노숙을 하는 사람들!
인간의 삶이 참으로 비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본다.
만일 자신의 사후에 승인이에게 저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승인이는 저렇게 얻어먹지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승인이를 위해서 뭔가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절실한 생각만이 가슴을 꽉 채워온다.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쯤이면 손수래를 끌고 두 부부가 온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가 상냥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선다.
“어서 오십시오.
안 그래도 오늘은 다른 날보다 남은 것이 많습니다.“
”일부러 저희를 주시려고 많은 물건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차사장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시니 얼마나 짐이 가벼운지 모릅니다.“
”제가 도움이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두 분께서 늘 이렇게 고생하시고 수고를 하시는 것에 비하면 제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영숙은 늘 고마운 마음에 물건을 받아간다.
처음에는 정말 팔고 남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차츰 물건이 많은 것을 알고 일부러 자신들에게 남겨주려고 많은 물건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장님!
늘 이렇게 신세를 집니다.
과일도 삼일에 한 번씩 때론 반쪽, 때로는 한 개씩 나누어 줄 수도 있어 정말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장영숙의 남편 우성철이 고마움을 표시한다.
“두 분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습니다.
매일 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게 만들고 많은 밥을 하고 참으로 힘든 일을 하십니다.
또한 그 많은 비용들을 감당하시는 것이 대단하십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가진 것 중에서 나눔을 하다보면 이렇게 사장님처럼 도움의 손길이 하나씩 열려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주는 생활비를 아끼고 모아서 하다 보니 여러 군데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으니 저희들이야 말로 보람을 느끼는 일입니다.“
그들은 전셋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러 명의 자식들이 있어 매달 주는 생활비와 우성철이 밤을 새워 주은 파지와 공병들의 수익을 합치고 주변의 도움을 얻어서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처음에 심하게 반대를 하던 자식들이 부모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제는 서로 돕고 나서고 있다.
부모님의 하시는 숭고한 정신을 이해하고 닮아가려 노력을 하고 있는 자식들이다.
또한 여기저기에서 소문을 듣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
처음에 초라하던 급식이 이제는 일주일에 두어 번 과일도 나누어 주고 때로는 고기 국도 끓여 줄 수 있고 나물이라도 한 가지를 더 해주게 된다.
그들은 마음을 다해서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간다.
욕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그런 일을 하고 나서 자식들이 하나씩 모두 잘 되어 나가고 있다.
직장에서의 승진은 물론이고 사업을 하는 자식들의 사업이 잘 풀려나가고 손자와 손녀들이 무탈하고 아무런 말썽 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더욱 열심히 봉사를 해 나가고 있는 그들 부부다.
“잠시 앉으셔서 차라도 한 잔하시고 조금이라도 쉬십시오.”
과일 박스를 모아 두었던 것을 내 주고 나서 차를 준비한다.
승재는 그들 부부에게 주려고 박스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고 곱게 접어서 모아둔다.
“여기에서 나오는 파지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차사장님이 아니셨더라면 이 모든 것을 어디서 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성철과 장영숙은 승재가 주는 쌍화차를 마신다.
승재는 그들 부부에게 가끔씩 이렇게 차를 대접하곤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잠시 동안의 이야기도 나누곤 한다.
승재의 가게는 묵은 물건들이 없고 모두 싱싱하다는 것이 소문이 난다.
한 사람 건너 두 사람 그렇게 그들 부부에게 그날 팔고 남은 것을 모두 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물건이 모두 싱싱하다는 입소문이 나는 것이다.
또한 그런 봉사를 하고 있다는 가게를 일부러 찾아와 팔아주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승재의 가게는 조금씩 명물로 자리를 잡아간다.
승재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된다.
승인이를 자신에게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승인이의 눈빛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참으로 해맑고 순수한 승인이의 눈동자다.
어느 곳 하나 거짓이 없이 순수한 승인이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승인이는 순수 그 자체였다.
“승인아!
아빠는 우리 승인이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
“아빠!
승인이도 아빠를 사랑해!“
승인이는 어린아이의 행동으로 아빠의 품안으로 안겨들지만 자신이 이미 커버린 육체가 오히려 아빠를 안아주고 있는 모습이 되어간다.
“승인이는 정말 아빠가 좋아?”
“응!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그동안 승인이의 생각 속에서는 용훈이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없다.
“승인이 이제 용훈이 보고 싶지 않아?”
“안 보고 싶어!
아빠가 제일 좋아!“
“그래!
우리 이렇게 아빠하고 평생을 함께 사는 거다.
아빠도 우리 승인이 없으면 못산다.“
“응, 아빠!
승인이도 아빠가 없으면 못살아!“
승재는 그런 승인이를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
결혼이란 당치도 않다는 생각을 하며 절대로 승인이를 결혼을 시킬 수 없다는 다짐을 한다.
결혼을 해서 행복한 것보다는 무수히 많은 장애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딸이 아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비참하고 참혹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무런 고통도 모르고 태어난 그대로 살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또 한다.
바쁜 생활을 연속이다.
이제 용훈이의 일도 까맣게 잊고 바쁜 생활에 최선을 다 하며 나날을 보낸다.
그런 승재 앞에 다시 유자경이 찾아 온 것은 서너 달이 지난 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승재의 가게로 찾아온 유자경이다.
승재는 유자경을 근처의 찻집으로 데리고 간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승인이 아버님!
부탁을 드립니다.
꼭 한번만 승인이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왜 그래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 아들을 위해서 둘을 한 번만 만나게 허락을 해 주십시오.
꼭 한 번만 보고 싶다고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
승재는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냉정하게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로 자식을 위해서 자존심도 내려놓고 사정하는 엄마의 마음도 자신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용훈이를 위해서 승인이를 데리러 집으로 간다.
승인이는 이미 용훈이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을 시켜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글: 일향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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