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소설&드라마

[연재소설] 아빠의 바다 (21회-30회)

淸山에 2013. 4. 2. 18:32

 

 

 

 

제 21장,

나인규는 거의 매일을 승미를 기다린다.

승미의 수업이 끝나고 승미를 태우고 집까지 데려다 주는 시간을 만들면서 승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어보려 노력을 한다.

나인규는 차승미에 대해서 가족관계를 알아본다.

동생 둘에 아버지만 계시고 아버지가 하시는 가게도 알아본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딸 셋을 키우면서 홀로 살아가시고 계신 것을 알고 더 이상 승미를 귀찮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고 그저 매일 집으로 데려다 준다.

승미 또한 그런 나인규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낀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도 마지막 강의가 끝날 시간이 되면 늘 그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승미는 강의실을 나서면서 나인규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즐거워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애써 태연한 척 하려고 하지만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실린다.

“승미야!

잠시 밥을 먹고 가면 안 될까?“

”아직 점심 안 먹었어요?“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지금 배가 무지 고프거든!“

“그래요.

지금까지 점심을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인규는 근처의 한식집으로 들어간다.

“뭐 먹을래?”

“난 점심 먹었어요.”

“그래도 먹어!

혼자서 무슨 맛으로 밥을 먹어?“

나인규는 갈비를 주문한다.

갈비를 구워 승미 앞으로 밀어준다.

“난 먹었으니까 어서 드세요.”

“싫어!

혼자서는 안 먹어!“

인규는 퉁명스러운 말로 대꾸를 한다.

“알았어요.”

승미는 갈비를 집어 입에 넣는다.

참으로 부드럽고 향긋한 맛이 입맛을 당기게 하고 있다.

“맛이 어때?”

“맛있어요.”

“많이 먹어!”

나인규는 점심을 먹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승미에게 갈비를 사 주고 싶은 마음에서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승미는 갈비를 맛있게 먹는다.

승미가 먹는 모습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인규다.

승미는 맛있게 먹고 있다.

나인규는 일인분을 더 주문한다.

승미는 시간이 얼마나 지나간 줄도 모르고 먹는 일에 열중한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식성이지만 가끔 이렇게 육류를 많이 먹는 승미다.

“정말 잘 먹었어요.”

“잘 먹는 것을 보니 정말 좋다.

가끔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고 함께 차를 마시자.“

”다음엔 내가 살게요.“

”사는 것이야 누가 사던 뭐가 그리 중요한가?

둘이서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즐기는 것이 좋지.“

나인규는 승미의 마음이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승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던 나인규다.

다른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은 나인규는 여자들을 별로 사귀지 않는 성품이다.

이 여자 저 여자는 만나고 다니는 친구들을 경멸하곤 하는 성품이다.

지금까지 사귄 여자는 없었다.

복학을 하고 나서 딱 눈에 뜨인 사람이 바로 차승미였다.

승미의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든 나인규다.

쉽게 넘어오는 여자들은 헤프게 보이고 가벼워 보이는 것이 믿음이 가질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인규에게 승미는 더욱 마음을 끌리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열어간다.

승미는 가끔 나인규와 시간을 보내느라 늦게 오게 되자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된다.

“아빠!

요즘 제가 늦게 돌아와 정말 죄송합니다.“

“승미야!

아빠는 네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이 좋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딸에게 관심을 두는 남자가 없다는 것이 슬픈 일이지.

좋은 사람이라도 생긴 것이냐?“

”아빠!

아직은 말씀을 드릴 단계가 아닙니다.

허지만 만나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래?

정말 반가운 일이다.

아빠는 기다릴 수 있어!

네 마음이 결정이 되면 아빠에게 데리고 와도 좋다.“

”네!“

승미는 대답을 하면서 아빠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되어간다.

그러나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승미다.

사귄다고 모두 결혼을 하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결혼을 전제로 해서 만나고 있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승미다.

아직은 사랑한다는 생각도 없다.

그저 좋은 느낌을 주고 있는 사람이다.

만나면 즐겁고 편안하다.

그와는 그 어떤 이야기도 편안하게 나눌 수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사이라는 생각만 할 뿐이다.

그러나 나인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의 집안에서는 나인규의 결혼을 서두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곧 바로 결혼을 시키리라 생각을 하고 있다.

사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나인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시키고 둘이 함께 외국유학을 보낼 계획을 하고 있는 부모님이다.

딸이 둘이고 아들이 단 하나뿐이다.

이미 딸들은 모두 출가를 하고 막내로 낳은 아들 인규만 있다.

대학을 입학하기 전에 외국유학을 보내려 했으나 본인인 인규가 가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억지로 떠밀려 보낼 수 없어 대학을 졸업하고 보내려고 계획을 바꾼 것이다.

적어도 박사학위를 받아야 한다는 그 부모님의 생각이다.

며느리와 함께 박사학위를 받도록 결혼을 하고 함께 내 보낼 계획을 가지고 여기저기에 중매쟁이를 넣어 알아보고 있으나 선을 보는 족족 아들이 거절을 한다.

나인규는 그런 정략적인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결혼은 자신이 선택한 여자라야 한다는 생각을 변함없이 해 오는 인규다.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이다.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은 무덤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규로서는 자신의 평생 반려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의 끈질긴 설득에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는 인규다.

나인규는 박사학위도 그다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생각과는 다른 나인규의 성품이다.

위로 두 누나들 모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과 결혼을 했지만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다

는 것을 느끼고 있다.

누나들의 결혼 역시 사랑보다는 정략적인 것이 포함이 된 결혼이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누나들이지만 불만이 많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가정적으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누나들을 보면서 인규 자신은 절대로 그런 결혼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고 있다.

“인규야!

이번 주말에는 다른 약속을 잡지 마라.“

아침을 먹는 식탁에서 어머니 송수희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다.

“엄마!

또 약속을 잡으신 것입니까?

그런 자리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어미가 자식을 나쁜 일을 하라고 시키겠니?

이번에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집안이다.

상대 아가씨는 이미 외국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번에 잠시 나왔는데 마침 연결이 되어 힘들게 잡은 약속이다.

그러니 다른 소리를 하지 말고 나가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저는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 결혼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인규는 완강하게 거절을 한다.

“안 돼!

이번에는 네가 나가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사업을 위해서라도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이야!“

인규는 큰 한숨을 내 쉰다.

“엄마!

저는 이미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뭐라고 했니?

사귀는 아가씨가 있다는 말이냐?“

”네!“

”어떤 집안의 아가씨냐?“

”.....................“

”너 혹시 함부로 아무나 사귀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 집안을 위해서라도 아무나 사귀고 다니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결혼은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여 마음 아픈 일일랑 만들 생각을 하지 마라!“

송수희는 단호하게 잘라서 말을 한다.

인규는 그런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 쉰다.

결코 쉽지 않을 자신의 결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어머니나 아버지의 그런 생각들을 버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말의 약속을 대답한다.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잠시의 시간을 할애하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상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잠시 얼굴을 내 밀고 거절을 하는 수밖에는 없다.

어머니의 성품을 인규로서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엄마!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은 절대로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그래, 나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깝고 분에 넘치는 자리다.

최선을 다해서 그 아가씨의 환심을 사야만 한다.

그리고 졸업을 하기 전에 너도 유학을 떠날 생각을 해라!“

“........................”

인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수저를 놓고 식탁에서 몸을 일으킨다.

더 이상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누나들 역시 하기 싫어하는 결혼을 강압적으로 시킨 어머니다.

이제 인규는 더 이상 어머니의 그런 횡포에 시달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하든 자신의 의지대로 결혼을 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힌다.

인규는 약속장소에 나가 여자를 만난다.

그러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별 관심이 없다는 뜻을 나타낸다.

송수희는 아들의 그런 태도를 보였다는 것에 몹시 화가 난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

정말 사귀는 여자가 있어서 그런 것이냐?“

”엄마!

저는 그런 정략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누누이 드렸습니다.“

”그래도 결혼은 절대로 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집안과 학벌 그 무엇하나도 빠지는 상대를 데리고 올 생각을 하지 말아라!“

“저는 그런 것은 별 관심 없습니다.

오직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됩니다.“

“결혼은 너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집안과 집안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떻게 그런 것을 보지 않을 수가 있겠니?“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아무리 집안이 좋고 학벌이 우수하다고 해도 함께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누나들이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세요?“

”살아가면 모두 정이 들게 마련이다.

조금 힘들겠지만 나중에는 모두 이 어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날이 있다.

더구나 네 결혼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니?“

“엄마!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결혼입니다.

제가 불행하고 힘들다면 그 결혼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행복할 수 있다.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어!

엄마가 너를 불행하라고 하는 일이겠니?“

홍수희는 조금도 양보를 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규는 그런 어머니께 승미를 소개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엄마도 없이 홀아버지 손에서 자란 승미다.

더구나 승미 아버지는 장사를 하는 장사꾼이다.

부모님은 허락은 커녕 승미조차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인규는 그럴수록 더욱 마음을 굳혀 나간다.

어떤 일이 있어도 승미와 결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부모님을 설득할 생각을 하고 서두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승미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인규를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규에게로 향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승미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만나면서 사랑을 확인한다.

인규는 이제 승미를 만나지 않고서는 마음이 불안하다.

승미의 모든 것이 인규의 눈에는 모두 사랑스럽다는 마음 뿐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2장,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을수록 인규는 더욱 승미에게 모든 정성을 쏟는다.

홍수희는 아들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며 사람을 시켜 아들이 만나고 있는 여자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지시를 한다.

절대로 아무나에게 인규를 짝 지워줄 수는 없는 아들이다.

하나뿐인 아들이고 사업을 물려받아야 할 귀중한 아들이다.

사돈댁의 집안이 허술해서도 안 되고 자신들보다 나은 집안이라야 한다는 것은 홍수희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두 딸을 시집보내면서 바리바리 싸주었던 것을 생각해서라도 자신도 하나뿐인 며느리에게 온갖 값진 예단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두 딸들을 위해 아파트와 사위의 승용차 그리고 시댁 어른들의 값진 혼수품을 해 보내면서 자신도 며느리를 보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했던 홍수희였다.

그 모든 것을 충족시켜줄 집안이라야 한다.

또한 둘을 유학을 보내면서 유학자금을 대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귀하고 소중한 아들과 짝을 맺으려면 그 정도의 능력은 필수라는 생각인 것이다.

홍수희가 지시를 내리고 일을 시킨 사람이 삼일 만에 홍수의 앞에 나타난다.

“뭐를 알아냈나?”

“사모님!

알아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차승미라고 아드님과 같은 학교 간호학과에 재학 중에 있는 아가씨입니다.“

”집안은?“

”집안이라고 말씀을 드릴 것도 없이 소시민입니다.

현제 살고 있는 아파트도 전세를 얻어 살아가고 있고 점포를 얻어서 과일과 야채들을 판매하고 있는 장사꾼의 딸입니다.“

”뭐라고?

그 정도의 아가씨라는 말인가?“

”네!

그 모친은 아이들이 어려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혼자 재혼도 하지 않고 세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막내딸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 중 둘째 딸이 미국 유학중에 있더군요.“

”이런, 이런!

겨우 그 정도의 아가씨에게 내 아들이 빠졌다니?“

홍수희는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 혀를 끌끌 찬다.

“됐소.

그만 가보시오.“

“네!”

사람을 보내고 나서 홍수희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도저히 말도 되지 않는 아가씨였다.

어느 정도 깊은 사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며느리로서는 절대로 들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인규는 어머니가 승미의 뒤를 모두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승미와 뜨거운 사랑을 속삭이며 승미의 마음을 확고하게 얻었다는 것에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인규는 언제나 승미를 일찍 집으로 보낸다.

승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인규로서는 아버지의 장사를 돕고 동생을 돌봐줘야 하는 승미의 처지를 이해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다.

강의가 끝나고 나면 함께 교정에서 걷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한 끼 먹으면 곧 바로 집으로 데려다 주곤 한다.

인규의 귀가는 늘 저녁식사시간 이전이다.

홍수희는 그런 아들을 보면서 잠시 의아한 생각을 한다.

사귀는 아가씨가 있으면서 일찍 집으로 들어오는 아들의 행동이 이상한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인규를 따라 홍수희는 아들의 방으로 들어간다.

“왜요?”

"너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요.“

“그건 잠시 뒤로 미루고 엄마하고 얘기 좀 하자.”

홍수희는 아들의 방에 있는 미니 소파에 앉는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지요?”

“너 사귀는 아가씨 있지?”

“.........................”

인규는 잠시 어머니를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를 말씀을 드리면 승미를 찾아갈 것이 너무나 뻔한 일이다.

“사귄다기 보다는 그냥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만나다고 했니?”

“네!

아직은 이렇다 할 말씀을 드릴 것도 없습니다.“

”그래!

내가 네 말을 믿겠다.

어머니도 없이 장사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배운 것이 뭐가 있겠니?“

”네?

엄마가 어떻게 그런 것을 아셨어요?

그 사람 뒤를 조사해 보신 것입니까?“

”그러면 안 되는 것이냐?

내 아들이 어떤 여자를 만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

”...........................“

순간 화가 폭발을 하려는 것을 인규는 입을 악물고 참아낸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어머니를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규다.

“공연히 시간과 돈을 낭비하셨습니다.

별로 심각한 사이가 아닙니다.

그냥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 엄마는 네 말을 믿겠다.

설마 내 아들이 엄마의 마음을 모르고 그런 여자를 사귀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니?“

“...........................”

인규는 할 말을 잊는다.

절대로 정면 승부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엄마!

그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마세요.

머리가 똑똑해서 실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입니다.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요.

그 대가로 밥을 한 끼 사주고 집에 데려다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홍수희는 아들의 말을 믿는다.

보고에 의하던 것과 같은 대답을 하는 아들이다.

“이젠 샤워를 해도 되겠지요?”

“오냐!”

홍수희는 만족스러운 마음을 아들의 방을 나선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가고 나자 인규는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린다.

어머니가 벌써 차승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조사할 줄을 모르고 있었던 자신이 너무 안이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어머니에게 화가 난다.

자신이 차승미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그 어떤 심한 상처를 안겨주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인규는 자신이 좀 더 냉정해지자고 스스로 타이른다.

어머니와의 싸움에서는 절대로 흥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 만만하고 호락호락하신 분이 절대로 아니다.

더구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절대적인 어머니 지지자였다.

인규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는다.

여자들처럼 오랜 시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절대로 승미에게 조그만 상처를 남겨서는 안 된다.

또한 승미 이외의 그 어떤 여자도 자신의 결혼상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뜨거운 욕조 안에 깊이 들어앉는다.

어머니의 극성으로 아버지 사업체가 이렇게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인규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이 있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이득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잠도 주무시지 않는다.

누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고 반드시 해 내고야 마는 냉혹한 성품이다.

어머니의 냉혹한 성품으로 인해 두 누나들은 평생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 될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정략결혼을 한 누나들이다.

이제 또 다시 어머닌 그 수법을 다시 사용하실 것이다.

누나들처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냉정해져야 하고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인규는 부모님의 말에 모든 것을 순종한다.

겉으로는 더 없이 믿을 수 있는 아들이다.

그러나 번번이 선을 보는 것마다 깨진다.

어머니가 정하는 곳에 맞선을 보러 나가는 인규다.

허나 차갑고 냉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맞선 장소에 나가는 인규를 그 어떤 여자가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워낙에 그렇게 냉혹한 표정을 풀지 않으시는 것인가요?”

“풀지 않는다는 것보다 원래 그렇지요.”

“말씀도 거의 하지 않으시는데 말수가 없으신 것인가요?”

여자들은 모두 당황해 하면서 인규가 어렵다는 말을 하며 정중하게 거절을 해 온다.

“아니, 내 아들이 뭐가 어때서 그 야단들이야?”

홍수희는 가슴이 까맣게 타 들어간다.

이제 졸업이 얼마 남지 않는 아들이다.

어떻게 하든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시키고 함께 유학을 떠나보내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 울화가 터진다.

“인규야!

이번에는 좀 신경을 써라!

차갑고 냉정한 표정을 짓지 마라!“

“엄마!

원래 엄마를 닮아서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찌 합니까?

아무리 온화한 표정을 지으려고 해도 상대방에서 그렇게 보는 것을 낸들 어쩝니까?“

인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한다.

“지금 네 표정은 참으로 따뜻해 보인다.”

“저는 항상 같은 표정입니다.

달리 짓는 표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다스럽게 많은 말을 늘어놓는다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뭐가 그리도 잘난 년들인지 참으로 내 속이 뒤집어진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잘난 년들은 저도 싫습니다.“

인규는 더욱 냉혹한 표정으로 맞선을 보러 나간다.

그리고 더욱 침묵을 지킨다.

모든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인규에게 질색을 한다.

홍수희는 점점 더 지쳐간다.

인규가 그러는 사이 승미는 학교에서 추천을 해 주는 대학병원에 실습을 나간다.

간호사로서 현장 실습이다.

실습이 끝나고 졸업을 하면 거의 대부분 취업이 된다.

승미는 실습을 나가느라 인규를 만날 수 없게 된다.

인규는 승미를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면서 당분간 그렇게 어머니의 뜻에 따라 맞선자리에 나가곤 하지만 마음은 모두 승미에게로 향하고 있다.

인규는 승미가 어느 병원으로 나가고 있는지 알고 승미의 근무시간도 상세하게 파악을 하면서 늘 모든 신경이 승미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감시로 인해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아직 자신을 믿지 않고 있는 어머니의 레이다 망에 포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착실한 아들임을 믿게 해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졸업이 가까워지자 홍수희는 더 이상 아들을 감시하지 않는다.

연말이 되어 바쁘기도 하지만 아들의 행동에 더 이상 수상쩍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인규는 연말이 되어오자 처음으로 승미에게 줄 선물을 고른다.

승미가 입고 다니는 외투가 조금은 낡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고급스러운 외투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즐겁고 행복해진다.

승미의 사이즈를 알고 있는 인규다.

세련되고 멋진 고급스러운 털이 달린 외투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이틀 앞두고 승미의 퇴근은 오후 세시라는 것을 체크하고 선물을 사서 병원으로 간다.

차를 주차해 놓고 승미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제 시간이 되자 승미가 현관입구에 나오는 것을 보며 승미 앞으로 간다.

“어머?

인규씨!“

승미는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모른다.

“어떻게 내가 퇴근하는 시간을 알았어요?”

“내가 승미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을 것 같아?

늘 승미를 생각하고 있는 내 마음 모르겠어?“

“정말?

정말 늘 내 생각을 했어요?“

“그런 승미는 내 생각을 했어?”

“그럼요!

보고 싶었는걸요.“

”와!

이건 정말 대단한 크리스마스선물인걸?

승미가 나를 보고 싶었다고 말을 해 주니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

자, 추운데 어서 차로 가자.“

인규는 서슴없이 승미의 손을 잡고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간다.

“내일은 휴무이지?”

“어떻게 알아요?”

“승미에 대해서 뭐든 다 알고 있어!”

인규는 차의 문을 열고 안에서 쇼핑백을 꺼낸다.

“자, 이것을 입어!”

“뭔데요?”

“크리스마스선물!”

승미는 쇼핑백을 열고 안의 들어있는 옷을 꺼낸다.

“이건?

와 이건 정말 비싼 코트인데요?“

”승미에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

어서 입어봐!“

인규는 승미의 낡은 코트를 벗겨내고 새 코트를 입혀준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3장,

승미는 잠시 어안이 없다.

상당히 값비싼 코드라는 생각을 한다.

“인규씨!

이 코트 상당한 고가품이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보다 고가품이 아니니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

“그래도 어떻게 이런 것을 받을 수 있겠어요?

아빠에겐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지.........“

“승미!

이젠 당신 아버님께 나를 소개시켜주지 않을래?

그냥 친구라고 말씀을 드리면 안 될까?“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이대로 당신 아버님을 만나러 갈까?”

“........................”

승미는 잠시 망설인다.

아빠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데리고 간다면 아빠는 얼마나 당황하실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인규는 한쪽 부모님의 허락이라도 받고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다.

“왜?

어렵겠니?“

”사전에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않았는데..........“

”나하고 사귄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어?“

”물론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만 이렇게 갑자기 불쑥 함께 가는 것은 아빠가 당황하지 않으실지.....“

”승미!

그냥 가벼운 친구사이라고 하자.“

승미는 그런 인규를 바라본다.

정말 가벼운 친구사이로 자신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인규씨!

우리 정말 가벼운 친구사일까?“

”물론 아니지.

허지만 아직 우린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잖니?

내 생각에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거든!

왜냐하면 당신을 그렇게 빨리 구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사회생활도 해 보고 당신이 원하는 간호사가 되어 아름답고 어여쁜 당신의 모습도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지.“

“........................”

“그렇다고 내가 당신하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냐!

내 결혼상대는 오직 당신뿐이야!

내 말을 믿을 수 있지?“

승미는 인규의 말을 믿는다.

그러나 인규 말대로 결혼을 일찍 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다.

일찍 결혼을 해서 아빠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자신이 결혼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아빠와 동생들을 보살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오래도록 아빠와 동생들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인규씨!

정말 결혼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요?“

”그래!

우리 결혼을 서두르지 말고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아름답게 보내면서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나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자.“

“정말 마음 변하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지요?”

“얼마든지 당신이 결혼을 결심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좋아요!

그럼 아빠에게 가요.“

승미는 흔쾌하게 대답을 한다.

가벼운 마음이다.

승미는 곧 바로 가게로 간다.

가게가 조금은 한가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승미다.

“어?

네가 왜 가게로 먼저 왔어?

그리고 그 옷은 뭐냐?“

승재는 승미가 입고 있는 옷이 고급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아빠!

잠시만 시간을 내 주실래요?“

”응?

무슨 시간?“

”잠시 요 앞의 커피숖으로 가요.“

“왜?

네가 비싼 옷을 사 입었다고 아빠가 화를 낼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냐?“

”아니에요.

소개시켜 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헌데, 아빠 차림이 이래서 되겠니?“

”네!

있는 그대로의 아빠 모습이면 됩니다.“

승재는 승미를 따라 나선다.

승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인규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분명 함께 들어오시는 분이 승미의 아버님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아빠!

친구에요.“

“안녕하십니까?

처음뵙겠습니다.“

나인규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를 한다.

“이런데서 이렇게 인사를 받아서 되겠니?”

승재는 인규를 바라보며 악수를 청한다.

“이렇게 보게 되어서 반갑네!”

두 남자는 악수로서 인사를 나눈다.

자리에 앉고 차를 주문한다.

“아버님!

제가 결례를 저질렀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우선은 이렇게라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졸랐습니다.“

”집으로 와도 좋은데 이런데서 만나게 되니 좀 그렇지?“

”우선은 이렇게라도 뵙고 싶었습니다.“

”그래, 우리 승미와는 어떤 사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그냥 친구사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친구?

사랑하는 연인사이는 아니고?“

”아버님!

우선은 그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이라?

그 말을 그대로 믿어도 되겠나?

내가 알기로는 우리 승미가 그렇게 가볍게 사람을 사귀는 성격이 아닌데 친구사이라?“

”아빠!

아직은 그냥 친구로서 지내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뭐지?“

”네!

제가 선물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선물을 주었습니다.

허락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고맙네!

자네의 그 말뜻을 조금은 알겠네!

이제 두 사람 사이를 인정받고 싶다는 말이겠지?“

”네!

허락을 해 주신다면 결코 걱정 끼치는 일은 저지르지 않습니다.

승미씨를 지켜가며 좋은 시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승재는 나인규의 첫인상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반듯하고 거짓 없는 순수한 모습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일간 집으로 놀러 오게!

다음 휴일이면 우리 가게도 쉬는 날이니 집으로 오게!“

“고맙습니다.

초대를 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어떤가?

나하고 술이라도 한 잔 할 수 있겠지?“

”네!“

인규는 마음이 즐거워진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마실 수 있다.

“그래!

그럼 나는 가게가 바빠서 먼저 일어서겠네!

집에서 보세!“

“네!

감사드립니다.“

인규는 일어나 배웅을 해 드린다.

승재가 돌아가고 나자 인규는 승미의 손을 꼭 잡는다.

“참으로 아버님 인상이 너무 좋으시다.

아주 포근하시고 따뜻한 느낌을 주시는 것이 마음이 참 편안해!“

“고마워요!

우리 아빠도 인규씨가 마음에 드신 모양이에요.

아주 흐뭇해하시는 표정이셨어요.“

”다음 휴일 날 꼭 찾아뵙는다. 알았지?“

“그날 내가 근무라면 어떻게 해요?”

“승미씨하고는 상관없이 찾아 뵐 거야!”

“그래도 상관없지만 내가 없으면 서운하지 않겠어요?”

“승미씨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건데?

승미!

나를 믿고 있지?“

“네!”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내가 하는 대로 보기만 해요.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서 하나씩 좋은 결과를 보면서 반드시 우리의 결혼을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올릴 것이오.“

”너무 성급하게 서둘지 마세요.

나는 언제 결혼을 하게 될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은 취업을 해서 직장생활에 충실하고 싶어요.“

”그래요!

승미가 원하는 대로 살도록 해 줄 작정이오.

모든 것은 성급하게 서둘면 좋지 않은 결과도 있을 수 있을 것이오.“

인규는 자신의 계획대로 일을 처리하리라 결심을 굳힌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시간을 두고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머니가 지치고 그 누가 되었던 반대할 의사가 없어질 때까지 세월을 보내리라 생각한다.

승미 역시 빠른 결혼을 원하고 있지 않기에 느긋하게 시간을 벌 것이라는 생각이다.

승미 아버님의 확실한 허락만 얻어 낸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나인규는 휴일 아침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말이라 부모님은 이른 아침에 모두 나가시고 안 계신 텅 빈 집이다.

승미네 집 방문은 오후쯤에 할 것이다.

승미는 근무를 하고 저녁에나 퇴근을 한다.

바쁠 것이 없는 인규는 오늘 쇼핑할 것을 생각한다.

우선 양주를 한 병 살 것이고 안주거리로 무엇이 좋을까 고심을 한다.

싱싱한 연어 회를 사리라 결정을 하고 갈비를 한 짝 구입하리라 생각한다.

과일이야 아버지가 장사를 하시니 살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동생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선다.

나인규는 제일 크다는 백화점엘 간다.

연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식품코너로 내려간 인규는 한 바퀴 휘 돌아본다.

예쁘게 하나씩 포장이 된 떡이 눈에 들어온다.

시식코너에서 맛을 본다.

참으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다.

막내 동생이 나이를 먹었어도 정신연령이 다섯 살 아이 같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골고루 주문한다.

승미는 그런 동생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해맑은 모습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 동생을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가슴에 와 닿는다.

모든 것을 구입하고 천천히 승미네 집으로 향한다.

늦은 오후의 시간이다.

이미 저녁 무렵에 찾아뵙겠다는 전화를 드렸던 것이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차의 속도를 높이지 않고 서서히 운전을 해 나간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도착을 한다.

승재는 반갑게 인규를 맞이한다.

“어서 오시게!

그런데 이것은 다 뭔가?“

”아버님과 술 한 잔을 하려고 준비를 해 보았습니다.“

“이 사람아!

그런 것은 내가 해야지 왜 자네가 준비를 해 왔나?

이런 사람하고는.

어서 들어오시게!“

승재는 물건들을 받아드린다.

인규의 방문을 위해 미리 도우미 아주머니께 손님접대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이르고 그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시간이다.

“제가 너무 일찍 온 것은 아닌지요?”

“아닐세!

그보다도 승미가 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인데.“

”네!

알고 있습니다.

승미씨의 시간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허허허........그런가?”

승재는 인규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한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4장,

두 사람은 술상을 마주 하고 앉는다.

인규는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두 손으로 술잔에 잔을 채운다.

“자네도 한 잔 받게!”

“네!”

승재는 인규의 잔에 술을 채운다.

“자,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지 싶다.

이 인연이 곱고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네!“

”아버님!

감사합니다.

늘 아버님과 이렇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승재는 인규의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든다.

술잔을 들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는 것이 어른 앞에서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

어느 곳 하나 나무랄 곳이 없는 청년이다.

“졸업을 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네!

부친의 회사에서 일을 배워야 합니다.“

”부친께서 사업을 하시는 모양이로군!“

“네!

아직은 대기업이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중소기업은 벗어난 기업입니다.

한창그룹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들어보다 뿐인가?

한창그룹이 부친이 경영하시는 기업이란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이런?

그러고 보니 대단한 집안의 자제분이 아니신가?“

”대단하고까지 할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뭔가?

아마도 집안에서 우리 승미를 반대를 하시겠지.“

“승미씨라서 반대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 부모님 두 분께서는 지금까지 없는 사람들의 심정을 모르고 살아오신 분들이십니다.

두 분 모두 사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신 분들이시고 더구나 제 모친께서는 고생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

승재는 인규의 말을 듣기만 한다.

“또한 제 위로 누님이 두 분이 계신데 역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정략적인 결혼을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불행하고 누님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부모님께서는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런 부모님께 아직 승미씨를 소개해 드릴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마음 잘 알고 있네!

그런 집안에서 우리 같은 서민들의 집안의 여식을 며느리로 받아드릴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네!“

“아버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옛말도 있듯이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재산이 그 사람의 인품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버님!

저를 믿어주시고 힘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승미씨와 평생을 함께 하고자 결심을 했습니다.“

”아마 부모님의 반대가 굉장히 거셀 것일세!“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금도 서둘지 않고 한 단계씩 밟아 오르려고 합니다.

무조건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려 들다가는 서로 상처만 입고 맙니다.“

“무슨 묘안이라도 있는 것인가?”

“네!

승미씨 역시 일찍 결혼을 할 마음이 아닙니다.

저 또한 그런 승미씨를 믿고 조금도 서둘지 않고 부모님의 마음을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지금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순종을 하겠습니다.

물론 마음까지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아버님의 회사로 들어가 일을 배우면서 맞선을 보겠습니다.“

승재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으로 인규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무리 백번이고 천 번이고 맞선을 본다고 해도 절대로 성사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 마음이 가지 않는 상대와 평생을 함께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어머니가 지치실 때까지 순종하는 척을 해야겠지요.“

“그렇게 부모님을 기만해도 되는 것인가?”

“아버님!

부모님을 기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행합니다.

제 인생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허허........그것 참!

우리 승미도 집안에서 반대를 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나?“

”아닙니다.

승미씨는 지금까지 제가 어떤 집안의 사람인줄 알지 못합니다.

절대로 승미씨에게 그런 고통과 상처를 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승미씨가 알지 못하게 모든 것을 해결할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저를 도와주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저를 믿어주시고 승미씨가 하는 대로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아마 승미씨를 자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제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의 영원한 반려자는 차승미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맹세 할 수 있습니다.“

인규의 표정을 진솔하고 거짓이 없어 보인다.

승재는 속을 깊은 한숨을 내 쉰다.

큰 딸이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예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던 아버지의 심정은 무엇이라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대단한 집안의 아들을 원한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면서 소박한 집안이더라도 따뜻하고 정겨운 사람들이 사는 집안으로 결혼을 하고 예쁜 모습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었던 승재는 긴 한숨이 되어 나온다.

감히 자신들의 처지로서는 바라볼 수도 없는 상대다.

승미가 더욱 깊은 정이 들기 전에 서로 단념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네의 그 마음은 이해를 하겠네!

그렇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일세!

내가 자네 부모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결코 우리 같은 처지의 며느리를 보지 않을 것일세!

자네 부모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를 하겠네!

그러니 공연히 서로 깊은 정이 들기 전에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아버님!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뿐입니다.

절대로 승미씨를 힘들게 하거나 고통을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 역시 자네의 마음이 아니겠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모두 내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닐세!

지금은 서로 조금은 힘들고 괴롭겠지만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서로가 조금씩은 잊어질 것이 아닌가?“

“아버님!

절대로 그렇게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 인생에 여자는 오직 차승미 한 사람뿐입니다.

제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차승미라는 여인과 제 인생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말을 하는 인규의 표정은 절실하고 진솔해 보인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길을 가야겠구나!

나로서는 달리 도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힘들어 하게 될 내 딸의 모습이 벌써부터 가슴 아파오고 안타까운 생각뿐일세!“

“절대로 승미씨를 힘들어 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제가 처리를 하고 제 부모님께서도 승미씨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시게 만들어 놓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아버님!

저를 믿어 주시고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는 없는 일이 아닌가?

자네 말대로 자네를 믿고 지켜 볼 수밖에..........“

“고맙습니다.

결코 실망시켜드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두 남자의 긴 대화는 끝이 난다.

잠시 서로 말없이 술잔이 오고 간다.

“식사를 준비 할까요?”

도우미 아주머니의 말에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보며 씩 웃는다.

“그럽시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꽤 되었네!“

승재는 인규를 데리고 주방 식탁에 앉는다.

음식은 몇 가지되지 않지만 아주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네!

시장할 터이니 마음 놓고 많이 먹게!“

“네!

아주 잘 먹겠습니다.“

인규는 식성이 좋은 사람처럼 맛있게 밥을 먹는다.

식성이 별로 까다롭지 않은 인규의 입맛이다.

승재는 그런 인규의 모습을 보면서 귀한 집안의 귀하게 자란 사람 같지 않게 참으로 소탈하고 서민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식사가 끝나고 나서 거실에서 차 한 잔씩을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승미가 집에 도착한다.

“어머?

인규씨!

아직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승미의 표정은 반가움에 환해진다.

“승미씨 집에 와서 승미씨를 보지 않고 어떻게 가겠소?”

“빨리 오느라고 서둘러 왔어요.

아빠랑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승미야!

아빠는 보이지 않니?“

승재는 인규를 보며 조잘거리는 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아빠!

죄송합니다.“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그러나 승재는 마음 한 편이 아련하게 아파온다.

과연 딸의 이 사랑이 곱고 아름답게 결실을 맺을 수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딸의 모습이 가엽기만 하다.

잠시 인규와 승미는 시간을 즐긴다.

그러나 인규는 시간이 깊어진 것을 보고 몸을 일으킨다.

“가 보겠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폐를 끼쳤습니다.“

“폐랄 것이 뭐가 있겠나?

그러나 부모님이 기다리실 것이니 가보는 것이 좋을 것일세!“

인규는 그렇게 승미의 집을 떠난다.

자신의 집에 도착한 것은 밤이 상당히 이슥해서였다.

홍수희는 잠을 자지 않고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당히 늦었구나?”

“네!

모처럼 친구들과 술을 한 잔 했습니다.“

“그랬구나?

연말이 되니 자연히 모임이 많겠지.

그러나 너무 술을 많이 마시고 다니지 않았으면 한다.“

”네, 엄마!

피곤해서 올라가 쉬겠습니다.“

“그래!

나도 오늘 피곤하구나!“

홍수희는 아들이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된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들이다.

그러나 연말이면 분위기에 취해서 마시지 못하는 술을 많이 마실까 걱정스러운 엄마의 마음으로 아들을 기다렸던 홍수희다.

이제 졸업을 하고 나서 혼자서라도 외국유학을 보내려고 하고 있는 홍수희다.

외국유학을 하고 나면 혼처자리도 그만큼 쉽게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들의 공부를 위해서라기보다 좋은 상대를 만나기 위해 유학을 보내려고 하는 그들이다.

절대로 아무집안하고 사돈을 맺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홍수희다.

두 사람 모두 졸업을 하고 승미는 계획대로 병원에 취업이 된다.

그러나 인규는 유학을 떠나라고 하는 부모님과 대치중이다.

“인규야!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오면 그만큼 결혼을 하는데 많은 이득이 된다.“

”엄마!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제가 무슨 학구파도 아니고 공부를 더 해야 할 욕심도 없습니다.

그 시간동안 아버지 회사에서 실무를 배우고 싶습니다.

아버지 회사에 출근을 하도록 해 주십시오.“

“정말 유학을 포기할 생각이냐?”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제가 유학을 계획했던 것도 아니니 포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회사를 위해서도 지금부터 실무를 배우는 것이 더 큰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홍수희는 아무리 해도 반대를 하는 아들을 이길 수가 없다.

결국 아들의 말대로 회사에 들어가도록 허락을 하는 길 밖에 없다.

인규는 자신의 계획대로 아버지의 회사에 자리를 얻어 낸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5장,

인규는 성실하게 일을 해 나간다.

회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내 세우지 않고 말단에서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워나가고 있다.

홍수희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직급을 올리려 하지만 낙하산 인사라는 말을 듣기 싫은 인규는 말단 사원으로 착실하게 일을 배워나가고 있다.

그 누구도 인규가 회장님의 아들임을 알지 못한다.

맨 윗선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하는 일이다.

인규는 어머니가 정해 놓은 맞선 자리에 아무런 불평 없이 나간다.

그러나 상대방은 인규가 일개 말단 사원이라는 것을 알고 질색을 하며 퇴자를 놓는다.

홍수희가 아무리 설득을 해도 일개 말단이라는 것이 늘 걸림돌이 된다.

“여보!

이러다 우리 인규 결혼을 시키지도 못하겠어요.

이제라도 직급을 올려 일을 하고 맞선을 주선해야만 합니다.“

“허허허............

아무리 회장 아들이라고 해도 일개 말단을 하루아침에 어떻게 직급을 올릴 수 있소?

또한 본인 역시 지금 그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왜 내 회사에서 아들 하나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말인가요?

그 회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내 아들이 말단으로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당신 말대로 유학을 해서 박사학위라도 받아왔다면 모르지만 일개 말단으로 입사를 한 인규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직급을 올린다는 말이오?

제 능력대로 한 단계씩 올라와야 할 것이오.“

홍수희는 분통이 터진다.

처음부터 제 자리를 만들지 않고 회사에 입사를 시킨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규는 자신의 계획대로 말단에서 착실하게 일을 배워가고 있다.

기업의 말단 사원에게 대단한 집안의 규수가 어찌 결혼을 하자고 할 것인가를 생각한 인규의 계획이다.

아무리 아버지가 회장직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 아들이 그 정도의 인물밖에 안된다면 그 어떤 집안에서 사위를 삼자고 할 것인가?

아무리 아버지가 회장이라고 하더라도 아버지 독단적으로 인사이동을 감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낙하산 발령을 했으면 몰라도 이제 회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말단으로 입사를 한 이상 어느 날 갑자기 중요한 직급을 올려 인사이동을 감행하신다는 것은 아버지로서 내키지 않으시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규다.

나인규는 자신의 실력으로 차근차근 올라갈 자신이 있고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평가 받고 싶다는 마음이다.

아무런 능력도 자질도 없이 중요한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회사에 누를 끼치고 회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될 수가 없다.

그런 인규의 생각대로 맞선은 매번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린다.

상대를 만나기도 전에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는 식으로 차디찬 냉대를 받곤 하는 홍수희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규는 그런 어머니의 심정을 잘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른 척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주고 있다.

승미의 출근시간표를 꼬박 알아내어 승리가 시간이 허락 할 때만 잠시 만나곤 한다.

그들이 만남을 가진 것이 근 한 달만이다.

퇴근시간이 되어 부지런히 약속장소로 나간다.

인규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조금 늦겠다는 연락을 한다.

홍수희는 그런 아들이 대견하고 든든하다.

약속장소엔 이미 승미가 나와 있었다.

“내가 많이 늦었지?”

“아니에요.

지금 정확한 시간이에요.“

”우리 참 오랜만이다.“

”그래요.

한 달이 다 되어가지요?“

“그동안 내 생각 얼마나 했어?

난 줄곧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피!

그러면서 이제야 시간을 내요?“

“승미!

나를 믿고 기다려줄 수 있지?

그리고 내가 한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도 믿고 기다려줄 수 있지?“

“그럼요!

일을 배우려면 시간이 없을 거 아닌가요?

회사 일은 힘들지 않아요?“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하나하나 일을 배워나가는 것이 즐겁기도 해!

조금씩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 계단씩 올라가는 기쁨도 맛보게 되고 참으로 좋은 경험을 쌓아가고 있어!

그런 자기는 힘들지 않아?

특히 밤교대 근무 때 힘들겠다.“

“나도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환자들이 긴 고통을 벗어나 차츰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때로는 보람과 희열을 느껴요.

그러나 때로는 돌보던 환자가 숨을 거둘 때는 많이 슬퍼서 울기도 하지만요.“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승미!

내 청을 하나 들어주겠소?“

”청이라고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인규씨가 나한테 부탁을 할 일이 뭔데요?“

”내가 돈을 모으고 싶은데 내 수중에 있으면 자꾸만 쓰게 되거든!

아무리 쓰지 않으려고 해도 돈이 있으면 쓰게 된단 말이오.

그래서 승미 통장으로 돈을 넣고 싶은데 허락을 해 주겠소?“

”매달 월급을 다 써버리면 안 되지요.

고생을 해서 번 돈인데 그렇게 써버리면 어떻게 해요.

좋아요.

내 통장으로 넣어두세요.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줄게요.“

”고맙소!

역시 내가 여자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거든!

자, 우선 지금 몇 달 모아놓은 것이니까 잘 넣어두어요.“

인규는 봉투를 내준다.

“그럴게요.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잘 보관해 줄게요.“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라도 해서 돈을 모아야 할 것이 아니겠어?”

인규는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인규로서는 월급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쓰고자 한다면 하루 저녁에라도 다 써버릴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나중에 결혼을 위해서 그렇게라도 승미의 통장에 돈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리 어머니가 허락을 하는 결혼이라고 해도 어머니의 기대치는 어느 정도 맞추어 주어야만 승미가 힘들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인규는 매달 자신의 월급을 승미의 통장으로 넣어준다.

승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렇게라도 돈을 모으겠다는 인규의 생각을 찬성하고 있다.

그들은 자주 만나지 않고 전화로 서로의 음성을 확인하고 사랑을 속삭인다.

그것이 서로에게 더욱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간다.

승재는 딸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을 한다.

행여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늘 불안한 마음이 된다.

그러나 승미의 표정은 늘 밝고 환하다.

“승미야!

근무하는데 힘들지 않니?“

”아빠!

그것이 힘들다면 어떻게 근무를 하겠어요?

저는 아마 체질적으로 간호사가 맞는 모양이에요.

보람도 느끼고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정말 다행이구나!

허지만 밤 근무를 하려면 피곤하지 않니?“

“아빠!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제가 잠을 자지 않고 아픈 환자들을 돌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그런 정도의 건강을 가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불편해 보이는 환자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보람된 일입니다.“

“우리 큰 딸이 정말 대견스럽다.

그나저나 인규하고는 자주 못 만나지?“

“네!

허지만 매일 서로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인규씨도 열심히 실력을 인정받아서 승진을 하려면 더욱 부지런히 일을 배우고 익숙해지면서 자신의 능력도 발휘할 수가 있겠지요.

초조하거나 서둘 것 없다는 생각입니다.“

”승미야!

만일 인규 부모의 반대에 부딪치면 어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니?“

”네?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 벌써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구나!

그렇지만 그런 것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글쎄요?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저희들의 사랑을 곱게 간직하고 키워가고 싶습니다.“

”만일 아빠가 반대를 한다면 어떻게 하겠니?“

”아빠!

그런 말씀을 왜 하시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아빠가 반대를 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만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빠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아빠의 사랑이 더 소중하고 반대를 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실 것이기 때문이지요.“

”너희들의 사랑이 깊어도 아빠 말을 따를 수 있니?“

”네!

아무리 사랑이 깊고 제 가슴이 아프다고 해도 아빠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결코 아빠를 아프게 해 드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맙구나!

그렇지만 아빠는 너희들이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무런 장애도 없이 곱고 아름답게 그렇게 우리 딸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고 싶단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가 계셨기에 저희들 세 자매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아빠 사랑만큼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승미는 진심을 다해서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

어떤 일도 아빠의 반대를 물리치고 해 낼 자신이 없다.

그런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승미다.

승재는 조용히 기다리기로 마음을 다진다.

승미의 편안한 모습에서 인규를 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승미를 사랑하는 인규의 열정이 식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다.

승미가 취업을 하고 나서는 승재는 승인이에 대해 더욱 신경을 써야만 한다.

늘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승인이는 보채지도 않고 잘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승미가 야간 근무를 하고 들어오는 날은 가게에서 일찍 집으로 들어온다.

도우미 아주머니도 퇴근을 하고 나면 집엔 승인이 뿐이다.

이제 스무 살이 된 승인이는 아직도 어린아이 그대로다.

몸은 이미 성숙한 성인의 육체이기는 하나 정신연령은 그대로 다섯 살의 어린아이로 있는 승인이의 모습이 남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쳐지는 것도 사실이다.

승인이는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곤 하지만 먹고 사는 것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승재로서는 승인이를 끼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승미가 졸업을 하고 나니 조금은 수월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승리에게 보내야 하는 매달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하려면 장사를 조금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는 기숙사에서 나와 마음에 맞는 친구와 작은 아파트를 얻어 자취를 하고 있는 승리다.

행여 아르바이트를 할까 싶어 되도록 넉넉하게 돈을 보낸다고는 하지만 그것으로 얼마나 충족한 생활을 하며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늘 괜찮다고 하는 승리의 말이다.

유학을 보내 놓고도 한 번도 찾아가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승재다.

자주 전화를 한다고 해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있으니 늘 불안한 마음이다.

허나 승재는 딸들을 믿고 있다.

아빠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제 승인이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

승인이를 특수학교에 보내고 나서 가끔 시간을 내어 학교로 찾아가는 승재다.

여전히 그림 속에 빠져 드는 승인이의 모습을 본다.

“아버님!

승인이가 그린 그림을 전시회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측의 의견이다.

“그럴만한 그림이 되는 것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도 전공이 미술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눈에 그렇게 보이셨던가요?“

승재는 대답할 말이 없다.

자신의 눈에도 승인이의 그림은 발달장애아가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강한 색체를 사용하는 전문가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승재는 승인이를 남들 앞에 내 세우기가 싫다는 생각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우리 승인이를 세상에 내 놓고 싶지 않습니다.

평생을 조용하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게 해 주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묶혀 두기엔 승인이의 그림이 너무 아깝습니다.

누가 저 그림들을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이 그렸다고 하면 믿겠습니까?

그리고 승인이를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내 놓아도 좋지 않을까요?“

”우리 승인이는 영원한 다섯 살 어린 아이입니다.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6장,

승재는 단호하게 말을 한다.

“승인 아버님!

승인이의 아까운 재주를 그대로 묵혀버린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우리 승인이를 아껴주시는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승인이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그 재주를 알려 세상에 내 보내도록 하지요.

그러나 우리 승인이는 발달장애입니다.

세상에 내 놓고 싶어도 내 놓을 수 없는 어린아이입니다.

다섯 살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과 마주하며 살아가겠습니까?

절대로 세상에 나서서 살아 갈 수 없는 아이지요.

그저 조용하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 놓고 그리며 살아가도록 해 주는 것이 아버지인 제가 할 일입니다.“

승재는 더욱 단호하게 거절을 한다.

학교 측에서는 더 이상 승재를 설득할 말이 없다.

승재는 절대로 승인이를 세상에 내 놓지 않을 생각이다.

아무리 세상에 내 놓고 싶어도 세상에 내 놓을 수 없는 딸이다.

다섯 살 어린아이가 세상을 향해서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너무나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딸이다.

너무나 고운 영혼을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딸이다.

세상의 죄악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딸이다.

욕심이 뭔지 욕망과 질투와 미움도 모르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딸이 세상에 나서면 무슨 험한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승인아!

아빠하고 함께 사는 거다.“

“응!

난 아빠가 제일 좋아!“

“그래, 아빠도 우리 승인이가 제일 좋다.”

“아빠!

나 결혼할래!“

“뭐?

지금 우리 승인이가 결혼이라고 말을 했어?“

”응!

용훈이가 결혼해야 한 대!“

“전동휠체어 타고 다니는 애?”

“응,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래!”

“승인이가 용훈이를 사랑하고 있니?”

“아빠!

사랑이 뭐야?“

”그래, 우리 승인이는 아직 사랑이 뭔지도 모르잖니?

그런데 어떻게 결혼을 하지?“

”근데 용훈이가 승인이를 사랑한대.

그래서 결혼을 하는 거래!“

“우리 승인이는 결혼을 할 수 없는 애기라서 안 돼!

그건 이다음 우리 승인이가 더 크고 어른이 되었을 때 하는 거란다.“

”아빠!

나 이렇게 큰데?

근데 내가 왜 애기야?“

”우리 승인이는 아빠의 영원한 아기야!

그래서 아빠는 승인이를 더욱 사랑하고 있는 거지.“

승재는 승인이가 김용훈이라는 하반신 마비의 중증 장애인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이성으로 발전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승인이는 이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딸이다.

허지만 스물이 넘은 김용훈은 이미 이성을 알고 있을 나이다.

그런 김용훈의 말에 승인이는 무조건 따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승재는 더욱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승인이의 모든 것을 지켜본다.

이제 승재가 직접 승인이를 데리고 학교에 데려 간다.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빠!

나 용훈이랑 놀면 안 돼?“

승인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학교를 나서면서 조르고 있다.

“승인아!

아빠가 빨리 가서 장사를 해야지?

아빠가 장사를 해야만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을 우리 승인이도 알지?“

”응!“

”그럼 빨리 가야하지?“

승인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조르지 않는다.

승재는 잠시도 김용훈이 승인이의 곁에 오지 못하도록 감시를 한다.

아무리 승인이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학교는 끝까지 보내고 있는 승재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이라도 배우게 해 주려는 마음이다.

장애자들만 다니는 장애인 특수학교다.

그러다 보니 온갖 장애인들만 모여서 함께 배우고 조금씩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승인이는 배우는 것에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겨우 한글을 깨우치고 자신의 이름을 쓸 뿐이다.

그래도 승재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승인이를 학교에 보내고 있다.

정상인이라면 대학생이 되었을 승인이다.

허지만 겨우 한글을 깨우치고 자신의 이름을 쓸 뿐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다른 화가들 못지않게 월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승재도 알고 있다.

무엇을 대상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고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영혼을 담아 그려내고 있는 상상속의 그림이다.

학교 교육 때문인지 깊이가 상당히 깊고 내면 깊숙이 그려지고 있는 화필이다.

차라리 신체장애가 있는 딸이라면 얼마든지 안심하고 세상에 내 놓고 화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승인이는 세상에 내 놓을 수 없는 딸이다.

이 세상이 승인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을 주게 될지 너무나 빤히 눈에 보인다.

승재는 그런 모든 것들이 두렵다.

상처를 받고 피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딸의 모습을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일이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그런 모든 것에서 지켜주고 편안하게 살아가게 해야 한다.

승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직접 승인이를 데리고 통학을 해 나간다.

승재는 더욱 바빠진다.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 가지도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가고 있는 승재의 모습은 피곤해 보일 정도로 자꾸만 힘들어진다.

그러나 딸들의 일이라면 잠을 자지 않고서도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최선을 다 하곤 한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승인이를 막 차에 태우고 돌아서는데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다.

몇 번을 먼발치에서만 보던 김용훈의 어머니다.

“승인이 아버님!

잠시 뵙고 싶습니다.“

여인은 화사한 차림이다.

“네!

제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잠시 아이들 문제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이라면 어떤 아이들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승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묻는다.

“물론 제 아들 용훈이와 승인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아이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요?”

더욱 시치미를 뚝 떼고 묻는다.

“승인이 아버님!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인가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몹시 바쁜 일이 있어 다음에 뵈었으면 합니다.“

승재는 정중하게 거절을 하고 차에 오른다.

김용훈의 어머니인 유자경은 멀거니 사라져 가는 차를 바라본다.

자신과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 않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다.

유자경은 자존심이 심하게 상한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먼저 말을 청한 것이 심하게 부끄럽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려온다.

아들인 용훈이는 거의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

승인이를 향한 용훈이의 마음을 아무리 돌려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오로지 승인이를 향한 아들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태어나면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이다.

수없이 포기하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기르면서 수없이 포기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후회를 하곤 하던 아들이다.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지 않았다면 다른 아들처럼 늘씬하고 잘 생긴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을 아들이다.

그러나 지체장애라는 하반신 마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아들이 늘 가슴이 아프고 애처로워 아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곤 한다.

남들처럼 보통의 휠체어가 아니라 전동휠체어를 맞춤 제작해서 특수하게 아들의 몸에 잘 맞도록 주문한 것이다.

그 휠체어만 있으면 용훈은 보통의 정상인처럼 못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용훈이의 그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용훈이는 스물 두 살인 청년이다.

세상을 향해서 나가기 위해 자격증을 서너 개를 따 놓았으나 아무도 그것을 원하는 기업도 사람도 없다.

김용훈은 다시 다른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나오고 있는 학교였다.

그런 용훈에게 승인이는 천사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너무나 고운 차승인의 모습이다.

언제나 해맑게 웃는 승인이의 모습은 용훈이의 심장을 떨리게 한다.

아무런 거짓과 꾸밈도 없는 어린천사 같은 승인의 모습은 용훈이의 모든 마음을 사로잡으며 늘 심장을 떨리게 하고 있다.

그런 용훈이 승인이를 만나지 못하자 그대로 병이 나고 만다.

유자경은 그런 용훈이를 좋은 말로 타일러 보기도 하고 설득을 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말겠거니 하고 무관심한 척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용훈은 나날이 병이 깊어진다.

유자경은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자식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승재 앞에 나타나지만 승재는 유자경과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허락하지를 않는다.

자존심이 심하게 상한 유자경은 더 이상 매달려보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용훈이의 상태는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심한 탈수증으로 인해 실신상태로까지 간 용훈이다.

유자경은 다시 승재를 만나보기로 한다.

자식을 위해서는 자존심도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아침에 학교로 간다.

승재가 승인이를 내려주는 것을 보고 나서 승재 앞으로 다가간다.

“승인이 아버님!

다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승재 또한 더 이상 거절할 수 있는 일이 되지 못함을 알고 허락을 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들어보겠습니다.”

그들은 근처의 찻집으로 간다.

차가 나오기까지 아무런 말도 없다.

차가 나오자 유자경은 차를 권한다.

“식기 전에 드세요.”

“그보다도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지 말씀을 하십시오.”

“승인이 아버님!

제 아들 용훈이가 승인이 때문에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여식으로 인해 아드님이 병이 나다니요?“

”말하자면 상사병이라는 것이겠지요.

승인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허허........그거야 참!

우리 승인이는 이성의 사랑을 받을만한 아이가 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맞을 것입니다.“

”네!

저도 승인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제 자식 역시 정상인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

승재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승인이 아버님!

두 아이를 결혼을 시켰으면 어떻겠습니까?“

”결혼이라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 승인이는 결혼을 해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곁에 두실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요?“

”제 목숨이 살아 있는 한 절대로 결혼을 시킬 수 없습니다.“

”두 아이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데 왜 외면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용훈어머님!

우리 승인이는 사랑이 뭔지를 모르는 어린아이의 수준입니다.

그런 아이를 결혼을 시키다니요?“

”그건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도 계시지 않은 승인이를 언제까지 아버님께서 돌보며 살아가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시는지요?“

”네!

제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곁에 두고 살게 하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아드님의 병이나 고치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승재의 마음은 완강하다.

“제가 이렇게 애원을 합니다.

딸처럼 보살피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안 됩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자식이라고 해도 때때로 힘들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하물며 명색이 며느리입니다.

늘 다섯 살의 어린아이의 상태로 머물러 있는 며느리의 모든 것을 받아주신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고 그런 제 자식을 남에게 떠맡기고 단 하루라도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승재는 절대로 결혼을 승낙할 수 없다.

아무리 남의 자식이 소중하다고 해도 승인이를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는 승재의 완고한 생각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7장,

유자경은 승재의 완고함을 본다.

그러나 자식을 위해서는 그대로 돌아설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승인이 아버님!

무엇을 걱정하시는 것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하시지 않아도 되시도록 제가 잘 보살펴주겠습니다.

두 아이를 모두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지요.

우리 승인이는 사랑이라는 것도 결혼이라는 것도 알지 못하는 자식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섯 살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어리광을 부리고 투정부리고 떼를 쓰는 일이 전부입니다.

몸은 어른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입니다.

여자구실도 며느리 역할도 한 집안의 주부노릇도 하지 못하는 장애자입니다.

그런 아이를 데려다 무엇을 하시렵니까?“

승재는 유자경의 생각이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꼭두각시 인형이라면 차라리 예쁘기라도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승인이는 그렇지도 못합니다.

용훈이라면 비장애인이라도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정신이 정상인 사람입니다.

지금은 아프더라도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없어 그만 일어나봐야 하겠습니다.“

승재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가게를 더 이상 비워둘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자경은 그런 승재를 더 이상 잡을 수가 없다.

그저 승재가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 쉰다.

어쩌면 승재가 하는 말이 옳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며느리로 들인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견디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를 느끼며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정상적인 아들이라고 해도 아직은 결혼하기엔 이른 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아직 아무것도 수입이 될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아이들도 아니다.

언제까지 자신이 모든 것을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결코 결혼이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는다.

유자경은 한참을 깊은 생각 속에 잠겨 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서야 몸을 일으킨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용훈이가 아픔을 이겨내고 스스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유자경은 힘없는 모습으로 집으로 향한다.

승재는 가게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남의 귀한 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말을 듣고서도 그렇게 냉정하게 뿌리치고 돌아온 자신의 냉정함에 스스로 자책을 하지만 더 이상의 길은 없다.

그 어떤 길도 절대로 승인이를 결혼시키는 일보다는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가게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머리가 혼란스럽다.

과연 아버지로서 딸에게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비장애인이거나 차라리 지체장애를 가진 딸이라면 그렇게 완강하게 반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육체보다는 정신이 올바른 장애를 가졌다면 어떻게 하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발달장애를 가진 딸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 세상이다.

승재는 승인이에 대한 앞날을 다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무작정 자신의 곁에 두고 나면 자신의 사후에 승인이가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된다.

그렇다고 언니들에게 승인이를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승미나 승리 또한 자신들의 길을 가고 행복 된 삶을 살아야 할 딸들이다.

장애를 가진 동생을 맡아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승재는 승인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킨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전문적으로 배우는 미술교육기관으로 옮긴다.

세상에 내 놓을 수는 없다고 해도 잠재된 능력을 마음껏 개발해주기 위함이다.

승인이를 위해 더 많은 돈이 투자 된다고 해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승재는 승인이를 위해서 작은 소형승용차를 새로 구입을 한다.

매일 승인이를 트럭으로 태우고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남들의 눈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운 숙녀의 모습이다.

그런 승인이를 트럭에 태우고 다니면 남들의 눈에도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승재는 작지만 승용차를 구입해서 데리고 다니려는 생각이다.

승용차와 승인이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자신의 경솔함을 나무란다.

언제까지 어린아이로만 생각을 하고 남들의 눈에 비쳐지는 승인이의 모습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이 짧고 경솔했다는 것을 느낀다.

통학버스가 있지만 그것을 태우지 않는다.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도 얼마든지 다시 남자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거나 또 다시 승인이로 인해 마음 앓이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승재의 삶은 모든 것이 승인이에게 맞추어져 있다.

두 딸은 더 이상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없다.

자신들의 길을 잘 해 나가고 있는 승미와 승리다.

걱정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제 갈 길들을 가고 있다.

승재는 승인이를 위해 매달 많은 돈을 저축해 나가고 있다.

장사는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일 들어오는 수익이 예상보다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

아무리 피곤하고 고되다고 해도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피곤함이 깨끗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힘든 것이 장사라고 하지만 역시 남는 것도 장사라는 생각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것 역시 장사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승재는 수입 중에 많은 부분을 승인이를 위한 저축을 해 나간다.

또한 매일 팔고 남은 야채들과 과일들을 매일 점심 무료봉사를 하는 부부에게 준다.

그들 부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노숙자들을 위해 매일 점심을 해서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들을 식사를 마련해서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가지고 나간다.

그 한 끼의 식사를 먹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밥과 김치와 국뿐이지만 그네들은 그 한 끼를 기다리는 시간들이 몹시도 길다는 표정이다.

삶에 지치고 찌든 모습들의 초라한 그네들의 모습에 승재는 가슴이 아파온다.

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누구는 호화롭고 풍족하게 삶을 살아가고 또 누구는 저렇게 힘들고 지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마음 먹은 대로 되지 못하고 집을 나와 거리로 떠돌며 노숙을 하는 사람들!

인간의 삶이 참으로 비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본다.

만일 자신의 사후에 승인이에게 저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승인이는 저렇게 얻어먹지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승인이를 위해서 뭔가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절실한 생각만이 가슴을 꽉 채워온다.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쯤이면 손수래를 끌고 두 부부가 온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가 상냥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선다.

“어서 오십시오.

안 그래도 오늘은 다른 날보다 남은 것이 많습니다.“

”일부러 저희를 주시려고 많은 물건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차사장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시니 얼마나 짐이 가벼운지 모릅니다.“

”제가 도움이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두 분께서 늘 이렇게 고생하시고 수고를 하시는 것에 비하면 제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영숙은 늘 고마운 마음에 물건을 받아간다.

처음에는 정말 팔고 남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차츰 물건이 많은 것을 알고 일부러 자신들에게 남겨주려고 많은 물건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장님!

늘 이렇게 신세를 집니다.

과일도 삼일에 한 번씩 때론 반쪽, 때로는 한 개씩 나누어 줄 수도 있어 정말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장영숙의 남편 우성철이 고마움을 표시한다.

“두 분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습니다.

매일 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게 만들고 많은 밥을 하고 참으로 힘든 일을 하십니다.

또한 그 많은 비용들을 감당하시는 것이 대단하십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가진 것 중에서 나눔을 하다보면 이렇게 사장님처럼 도움의 손길이 하나씩 열려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주는 생활비를 아끼고 모아서 하다 보니 여러 군데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으니 저희들이야 말로 보람을 느끼는 일입니다.“

그들은 전셋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러 명의 자식들이 있어 매달 주는 생활비와 우성철이 밤을 새워 주은 파지와 공병들의 수익을 합치고 주변의 도움을 얻어서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처음에 심하게 반대를 하던 자식들이 부모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제는 서로 돕고 나서고 있다.

부모님의 하시는 숭고한 정신을 이해하고 닮아가려 노력을 하고 있는 자식들이다.

또한 여기저기에서 소문을 듣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

처음에 초라하던 급식이 이제는 일주일에 두어 번 과일도 나누어 주고 때로는 고기 국도 끓여 줄 수 있고 나물이라도 한 가지를 더 해주게 된다.

그들은 마음을 다해서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간다.

욕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그런 일을 하고 나서 자식들이 하나씩 모두 잘 되어 나가고 있다.

직장에서의 승진은 물론이고 사업을 하는 자식들의 사업이 잘 풀려나가고 손자와 손녀들이 무탈하고 아무런 말썽 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더욱 열심히 봉사를 해 나가고 있는 그들 부부다.

“잠시 앉으셔서 차라도 한 잔하시고 조금이라도 쉬십시오.”

과일 박스를 모아 두었던 것을 내 주고 나서 차를 준비한다.

승재는 그들 부부에게 주려고 박스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고 곱게 접어서 모아둔다.

“여기에서 나오는 파지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차사장님이 아니셨더라면 이 모든 것을 어디서 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성철과 장영숙은 승재가 주는 쌍화차를 마신다.

승재는 그들 부부에게 가끔씩 이렇게 차를 대접하곤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잠시 동안의 이야기도 나누곤 한다.

승재의 가게는 묵은 물건들이 없고 모두 싱싱하다는 것이 소문이 난다.

한 사람 건너 두 사람 그렇게 그들 부부에게 그날 팔고 남은 것을 모두 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물건이 모두 싱싱하다는 입소문이 나는 것이다.

또한 그런 봉사를 하고 있다는 가게를 일부러 찾아와 팔아주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승재의 가게는 조금씩 명물로 자리를 잡아간다.

승재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된다.

승인이를 자신에게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승인이의 눈빛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참으로 해맑고 순수한 승인이의 눈동자다.

어느 곳 하나 거짓이 없이 순수한 승인이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승인이는 순수 그 자체였다.

“승인아!

아빠는 우리 승인이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

“아빠!

승인이도 아빠를 사랑해!“

승인이는 어린아이의 행동으로 아빠의 품안으로 안겨들지만 자신이 이미 커버린 육체가 오히려 아빠를 안아주고 있는 모습이 되어간다.

“승인이는 정말 아빠가 좋아?”

“응!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그동안 승인이의 생각 속에서는 용훈이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없다.

“승인이 이제 용훈이 보고 싶지 않아?”

“안 보고 싶어!

아빠가 제일 좋아!“

“그래!

우리 이렇게 아빠하고 평생을 함께 사는 거다.

아빠도 우리 승인이 없으면 못산다.“

“응, 아빠!

승인이도 아빠가 없으면 못살아!“

승재는 그런 승인이를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

결혼이란 당치도 않다는 생각을 하며 절대로 승인이를 결혼을 시킬 수 없다는 다짐을 한다.

결혼을 해서 행복한 것보다는 무수히 많은 장애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딸이 아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비참하고 참혹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무런 고통도 모르고 태어난 그대로 살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또 한다.

바쁜 생활을 연속이다.

이제 용훈이의 일도 까맣게 잊고 바쁜 생활에 최선을 다 하며 나날을 보낸다.

그런 승재 앞에 다시 유자경이 찾아 온 것은 서너 달이 지난 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승재의 가게로 찾아온 유자경이다.

승재는 유자경을 근처의 찻집으로 데리고 간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승인이 아버님!

부탁을 드립니다.

꼭 한번만 승인이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왜 그래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 아들을 위해서 둘을 한 번만 만나게 허락을 해 주십시오.

꼭 한 번만 보고 싶다고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

승재는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냉정하게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로 자식을 위해서 자존심도 내려놓고 사정하는 엄마의 마음도 자신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용훈이를 위해서 승인이를 데리러 집으로 간다.

승인이는 이미 용훈이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을 시켜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8장,

승재는 승인이와 함께 제과점으로 간다.

제과점의 문을 밀고 들어서니 눈 빠지게 승인이를 기다리고 있던 용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승인이가 들어오는 것을 바라본다.

“승인아!

저기 용훈이가 왔네!“

승재는 손가락으로 용훈이를 가르치며 말을 한다.

“용훈이?”

승인이는 아빠의 손을 따라 용훈이를 본다.

그러나 심드렁한 표정이다.

“반갑지 않아?

용훈이가 승인이를 보러 왔는데 어서 가봐!“

그러나 승인이는 아빠의 등 뒤로 숨는다.

“왜 그래?

어서 용훈이에게 가서 잘 왔다고 인사를 해야지?“

”아빠!

나 안 가!“

“그러면 용훈이가 미안하잖니?

어서 가서 인사해야지?“

”아빠, 같이 가!“

승재는 용훈이가 있는 곳까지 승인이를 데리고 간다.

“승인아!”

용훈이는 반가움에 덥썩 승인이의 손을 잡는다.

승인이는 기겁을 하며 그런 용훈이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아빠 등 뒤로 숨어 버린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는 유자경은 그저 말이 없다.

“자, 여기 앉자.”

어색함을 털어버리기 위해 승재는 승인이를 자리에 앉히고 그 옆에 앉는다.

“아빠, 나 빵 줘!”

“빵 먹을래?”

“응!”

“먼저 용훈이와 인사를 해야지?

그러고 나서 빵을 먹어야겠지?”

“용훈아, 안녕!”

그제야 승인이는 용훈이를 바라보며 인사를 한다.

“승인아!

나를 잊어버린 것이니?“

”아니!“

“그럼 왜 아는 척을 하지 않니?”

“....................”

승인은 대답을 하는 대신에 빵으로 눈길이 간다.

“승인아!

나하고 우리 집에 가서 살자. 응?“

“왜?

그럼 우리 아빠도 가?“

”아니, 너만 우리 집에 가서 나하고 살자.“

”싫어!

난 아빠하고 살 거야!“

“승인아!

내가 널 사랑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니?“

”난 우리 아빠 사랑해!

그리고 아빠하고 살 거야!“

승인이는 아빠의 손을 잡는다.

“승인아!

우리 결혼하자고 약속을 했지?“

”응!“

“그럼 우리 결혼을 하자.”

“결혼이 뭐야?

아빠, 결혼이 뭐야?“

승재는 아무런 말도 없이 두 아이를 바라본다.

승인이는 더 이상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빵을 집어 먹기 시작한다.

“용훈군!

어떤가?

지금 우리 승인이의 모습을 평생을 곁에 두고 살아갈 수가 있겠나?“

”.........................“

“내가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용훈군에게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승인이가 용훈군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세!

우리 승인이는 몸은 다 큰 성인이지만 정신연령은 평생을 다섯 살 어린아이로 머물고 있네!

이런 승인이가 용훈군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

용훈은 승재의 말을 들으면서 눈은 승인이를 향하고 있다.

“결혼은 현실일세!

자네처럼 우리 승인이가 육체적인 장애를 가졌다면 얼마든지 축복을 하면서 결혼을 시키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일세!

그러나 우리 승인이는 여자로서도 며느리로서도 그리고 한 가정의 주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될 수가 없네!

결혼은 꿈과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자네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네!“

용훈은 머리를 끄덕인다.

“자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주변을 보게!

이상한 눈으로 승인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가?

무슨 이상한 동물이라도 보는 듯한 사람들의 경멸스러운 눈초리를 이겨낼 수가 있겠는가?

자네를 바라보는 것하고는 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어찌 감당하려는가?

난 세상에 승인이를 내 놓지 않을 결심이네!

내 이런 마음을 이해를 할 수가 있겠는가?“

”네!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승인이의 곱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 나도 이해를 할 것 같네!

허나 현실은 이상과 꿈이 아니라 전쟁일세!

자네는 얼마든지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네.

육체의 불구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일이지만 멀쩡한 육체에 정신적인 불구는 영원히 고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자네는 자네의 꿈대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가 있지만 우리 승인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일세!“

승재는 용훈이를 위해 설득을 해 나간다.

승인이로 인해 마음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아버님!

말씀을 잘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제 힘으로 승인이를 보호하고 돌봐 줄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성공을 해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승재는 용훈이의 단호한 결심을 본다.

“그 말만이라도 정말 고맙네!

그러나 난 자네가 우리 승인이를 잊고 자네의 길을 갔으면 하는 마음일세!

세상 부모 마음 다 같은 것일세!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승인이를 마음에 담지 않았으면 하네!“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와 지금의 제 심정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승인이와 아버님이 건강하시리라 믿습니다.“

”고마우이!

그럼 바빠서 오래 시간을 낼 수 없음을 이해하리라 믿고 먼저 일어나겠네!“

“네!

다시 뵙는 날까지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승재는 유자경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승인아!

그만 가야지?

인사를 하고 가자.“

”아줌마!

안녕히 계세요.“

“오냐!

승인이도 잘 있거라!

그리고 늘 건강해야만 한다.“

유자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면서 배웅을 한다.

“승인아!

잘 지내야 해!“

“응!

용훈아 잘 있어!“

승재가 승인이를 데리고 돌아가고 나자 유자경은 용훈이의 휠체어를 밀어준다.

“용훈아!

이제는 마음을 정리 할 수 있지?“

”엄마!

어떻게 하든 꼭 성공을 할 것입니다.

반드시 승인이를 보호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성공을 해야 합니다.“

”그래!

네 말대로 그렇게 하려면 성공을 해야만 한다.

그러니 더욱 부지런히 공부도 하고 기술도 익혀야하겠지?“

김용훈은 그렇게 승인이를 보고 나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길로 가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를 계속한다.

이젠 나약한 마음 같은 것은 갖지 않을 것이라는 굳센 결심을 한다.

승재 또한 용훈의 굳은 결심을 한 얼굴을 떠 올려본다.

참으로 준수한 용모를 가진 용훈의 모습이다.

하반신만 불구가 되지 않았다면 어디를 내 놓아도 빠지지 않을 모습이다.

훗날 다시 찾아오겠다는 용훈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고 기다릴 승재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용훈이 마음을 잡고 잘 살아가 주기를 바라고 있는 승재다.

승인이를 그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을 결심을 하는 승재다.

이제 또 한 고비 넘겼다는 생각을 하면서 세상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장사에 몰두를 한다.

모든 것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매달 승리에게 보내야 하는 돈이 만만치 않다.

아직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유학의 길이다.

승리는 한 번도 집에 오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으나 머나먼 타국에서 나름대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을지 안쓰럽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가 볼 수도 없는 현실이다.

승리에게 돈을 보내면서도 더 많은 돈을 보내주지 못해 안쓰럽다.

그러나 승리는 매번 더 적게 보내도 된다는 말로 아빠의 마음을 위로하곤 한다.

아빠에겐 말을 하지 않지만 승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빠에게 보내오는 돈을 저축한다.

승리는 아빠가 얼마나 고생을 하시면서 자신의 뒤를 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다시 재혼을 하지 않으시고 오직 딸 셋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시는 아빠가 너무 불쌍하고 아빠에 대한 죄스러움이 커지고 있다.

자신들만 없으면 아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실 분이시다.

저렇게 막노동 같은 장사를 하지 않고서도 남들에게 존경과 대우를 받으시면서 강단에서 강의 하시고 화가로서 명성을 얻으실 아빠라고 생각하니 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죄스러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승리는 조금도 한 눈을 팔지 않고 공부에 온 신경을 다 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 밤잠을 줄이면서 공부를 한다.

승리의 성적은 늘 상위권에 속한다.

언제나 출석률도 좋고 절대로 결석을 하는 일도 없다.

아무리 피곤하고 몸살이 나서 몸이 아파도 결석조차 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이고 있다.

그런 승리를 교수님들께서는 대단히 성실하고 월등한 실력을 가진 학생으로 꼽고 있다.

이제 승리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다시 박사코스를 밟을 계획을 세운다.

경제학 박사로서 세계무대에 우뚝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대단한 야망을 가진 승리는 조금도 한 눈을 팔거나 게을리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수없이 들어오는 데이트 신청에도 응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길로 정진을 하고 있는 승리의 모습은 차라리 숭고하기까지 하다.

승리는 사치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검소하고 늘 절약하면서 생활을 한다.

언제나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 끼라고는 찾아 볼 없는 생얼로 학교에 다닌다.

자신이 크게 성공을 해서 아빠의 희생이 된 청춘에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보답을 해야 한다는 야무진 각오를 다진다.

승리는 때때로 아빠와 언니 그리고 동생 승인이 그리워 밤을 지새운다.

너무나 가고 싶은 집이다.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은 가족이다.

그러나 자신을 이기고 다시 독하게 공부에 매달리곤 한다.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승리다.

눈물을 나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아빠에게도 말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 모든 일들을 해결한다.

또 다시 생활비가 보내오는 날짜가 다 되어간다.

승리는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아빠!”

“승리야!

몸은 아픈 곳이 없니?“

”네!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아빠, 이번 달에는 생활비를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말이냐?

생활비를 보내지 않으면 네가 어떻게 견디려고 그래?“

”아빠!

그동안 아빠가 보내주신 돈을 조금씩 저축해 놓은 것도 있고 지난 주말에 친구네 농장에 가서 일을 좀 도와드렸더니 생각보다 많은 돈을 주셨어요.“

“왜 그런 일을 했어?

그런 시간이면 공부를 더 하지 않고.“

”아빠!

친구네 부모님이 하시는 농장을 견학삼아서 갔던 것입니다.

대접도 잘 받았는데 학비에 보태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돈을 보내지 마세요.“

승리는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진 돈이지만 아빠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함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9장,

나인규는 착실하게 근무를 하면서 어머니의 뜻에 따라 맞선을 보러 다닌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다.

조금 상대가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를 보이면 나인규가 노골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송수희의 끈질긴 성화로 나인규는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회장은 아내의 말에 따라 주주들을 설득을 시키고 허락을 받아낸 것이다.

또한 나인규의 실력이면 충분히 기획실장으로 발령을 내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들의 일치를 모아서 발령을 낸 인사 조치였다.

이미 나인규가 회장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알게 모르게 모든 직원들 사이에 퍼져나가 모르는 직원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다.

인규로서는 탐탁지 않은 이사발령이지만 거절하거나 반발을 할 수 없는 결정이다.

이제 자신이 평직원으로 근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받아드린다.

송수희는 아들이 기획실장이 되자 더욱 부지런히 맞선자리를 만들곤 한다.

인규는 그런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드린다.

그러나 본인이 마음에 없는 맞선은 아무리 좋은 자리라고 해도 성사 될 리가 없다.

여자 쪽에서 조금만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가 보이면 인규는 냉정하리만큼 차갑게 대한다.

두 번을 다시 만난 여자가 없다.

인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여자가 아무도 없을 정도다.

그날도 건성으로 맞선 장소에 나간 인규의 눈에 여자의 모습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형식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인규의 태도였다.

“사랑하는 여자의 집안이 부모님의 기대치에 벗어난 모양입니다.”

여자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을 한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인규는 알아듣지 못하는 척 묻는다.

“억지로 앉아 계실 것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이미 그쪽은 결혼할 마음이 없이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

인규는 비로서 여자를 똑바로 바라본다.

차갑고 이지적인 얼굴이지만 무언가 통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인상이다.

“그렇게 보였으면 죄송합니다.

실은 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자리를 통해서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시겠지요.

허지만 맞선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 아닌가요?

사랑보다는 조건에 맞추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네!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사랑은 그렇다 치고 정도 들지 않은 남녀가 어떻게 한 이불을 덮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사랑하지 않더라도 집안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이야 살아가면서 정이 들고 사랑도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인가요?“

”여자들이야 따라가면 되는 것이니 가능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가요?

그럼 들어봅시다.

그쪽은 어떤 조건을 원하고 나온 것인지...........“

“호 호호호..........

그룹의 후계자라면 그 어떤 조건을 붙인다고 해도 마다할 여자가 있을까요?“

”대 재벌의 그룹도 아닙니다.“

”그 정도면 조금만 노력한다면 대재벌에 속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마음속에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내 사람을 만들 수도 있지요.“

“자신이 만만하십니다.”

“사랑이 없는 부부라 할지라도 미운 정 고운정은 들 것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사이에 자식이 생기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조건만 맞는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 조건에 충족이 된다는 말인가요?“

”글쎄요?

마음속에 사랑하는 여인만 없으면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거든요.“

여자는 무척이나 대범하고 막힌 곳이 없는 성품인 것 같다.

“그런 사람도 없지만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그쪽도 제 취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조건만 가지고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좋은 느낌과 호기심도 없이 무작정 조건만을 내 세워하는 결혼이라면 평생을 행복할 것 같지 않네요.“

”행복이란 것이 별 것이 줄 아십니까?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하고 불행하고 그런 것이 아닌가요?

지금 이 시간도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 한없이 행복할 수 있고 지겹다고 생각하고 이미 마음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면 불행한 것이겠지요.“

”네!

바로 그렇군요.

저는 바로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만 일어나고 싶은데 이해를 해 주시겠지요?“

여인은 인규가 일어나는 것을 말리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나인규는 다시 한 번 눈으로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이제 맞선을 보는 것도 인규에게는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 일처럼 익숙해진다.

그러나 홍수희는 세월이 지나갈수록 낙담이 되고 깊은 한숨만이 절로 나온다.

어디를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를 하고 있는 아들이다.

그러나 이젠 이쪽의 조건을 내 세울 수가 없을 정도로 나이가 지나가 버린 아들이다.

벌써 서른이 넘은 아들을 어디에서도 바라보지 않는다.

홍수희가 꿈꾸고 내 세웠던 조건들이 하나씩 없어져나가면서 더욱 힘들어지는 아들의 혼사가 홍수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홍수희는 서른을 넘은 인규를 결혼을 시키지 못해 애가 닿는다.

이제 중매를 내 새우기에는 나이가 많고 조건을 붙일 수가 없다.

더구나 외국유학을 다녀온 아들도 아니고 박사학위를 받은 아들도 아니다.

자신의 뜻에 따라 며느리를 보기는 물 건너 간 것을 생각하면 자꾸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아들의 팔자가 그런 것인지 선을 보는 대로 모두가 허사가 되고 만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홍수희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기 시작한다.

어디를 가서 물어보아도 아들의 짝은 있다고들 말을 하지만 선을 보는 것은 모두 허사라고 아예 선 자리를 만들지도 말라는 무당들의 말이다.

"짝이 있다고 하는데 보는 족족 맞선이 깨지고 있으니 언제 만날 수 있겠어요?“

홍수희는 애간장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쯧쯧쯧!

엄마의 욕심이 끝 간 데가 없으니 신부 감이 나타날 리가 없지.

시어머니 되는 사람의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누구라서 그 욕심을 다 채울 수 있을까 싶어 아무도 결혼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

“그럼 그 모든 것이 다 내 욕심 때문이라는 말인가요?”

“말하면 뭐해?

아들을 장가보내어 행복하게 하려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드니 누가 이 집안에 와서 시어머니 욕심을 다 채워주고 살 수 있겠어?

모두들 어머 뜨거라, 하고 도망들을 가고 있어!“

“그런 것이 어디 있어요?

아예 두 번도 만나기 전에 다 깨지는데 그건 말이 되지 않지요.“

”두 번을 왜 만나?

성사되지 않을 것을 두 번을 왜 만나냐고?

당신 그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하나뿐인 아들은 영원히 대를 잇지 못해!

지금도 대를 이으려면 많이 늦었어!

벌써 세상에 태어나야 할 아들의 대가 늦었어!“

“뭐라고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요?

결혼도 하지 않은 아들이 대를?“

”당신의 그 욕심만 아니라면 벌써 배필이 나타나고 결혼을 했지.

아니, 지금도 기다리고 있구먼!

기회가 닿지를 않아서 그렇지 지금도 기다리고 있어!“

“..........................”

홍수희는 할 말을 잊는다.

아들의 배필이 자신 때문에 늦어진다는 말을 들으니 자신의 욕심이 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뿐인 며느리에게 요구할 것이 많은 홍수희다.

남들처럼 내 놓고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을 혼수로 요구를 할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그런가?

나 때문이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며느리를 보는데 혼수를 받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남들처럼 번듯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래도 남의 수준에는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겠소?“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아들은 평생을 총각으로 늙을 수밖에 없지.

어머니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절대로 아들은 장가를 갈 생각이 없는데.“

“뭐라고요?

아들이 마음이 그렇다는 겁니까?“

”그렇지!

아주 강렬해!

어머니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결혼을 해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총각으로 살겠다는 게야!“

“.........................”

홍수희는 무당집을 나오면서 어깨가 축 늘어진다.

그 말이 모두 맞을 리는 없겠지만 아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이다.

홍수희는 시간을 본다.

아들이 퇴근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것을 보고 전화를 한다.

“어머니가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어디 약속한 곳이 있니?”

“없습니다.

헌데, 어디세요?“

”나 지금 회사 근처에 거의 다 와간다.

엄마하고 데이트를 할 시간 있지?“

”네!“

인규는 마침 아무런 약속도 없는 날이다.

승미가 이번 주는 야근을 하는 날이라 새벽에 승미를 마중 나가는 일정이 있다.

새벽에 승미를 만나 아침을 함께 먹고 나서 집으로 데려다 주고 출근을 해도 충분한 시간이 되기 때문에 아침 운동을 핑계로 집을 나서는 인규다.

오후근무시간이 되면 집에서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기다리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서서 승미를 만나 집에 데려다 주곤 한다.

그들의 데이트는 그렇게 승미를 집에 데려다 주는 짧은 시간에 한다.

그 시간이면 그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하고 귀한 시간들이다.

승미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통장으로 꼬박 월급을 그대로 넣어주는 인규가 더 없이 믿음직스럽고 깊은 신뢰가 간다.

게다가 기획실장으로 승진 된 것에 대한 기쁨은 누구보다 큰 것이다.

그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앞길이 탄탄대로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자신도 더욱 열심히 근무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진다.

승미는 수간호사로 근무를 하지만 아직도 오르려면 멀고도 먼 길이다.

승미는 근무를 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 날 그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먼 앞길을 생각하면서 승진공부를 한다.

그 때문에 누구보다 빨리 수간호사가 될 수 있었던 승미다.

인규 역시 그렇게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승미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어머니도 자신의 결혼에 많이 지치고 많이 양보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 어머니의 출현은 어쩜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을 나선다.

이미 어머닌 현관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일찍 도착 하셨네요.”

“그래, 생각보다 차가 밀리지 않아서 일찍 왔구나!

아버진 오늘 스케줄이 아직 끝나지 않으셨다니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자.“

“네!

어머니와 정겨운 데이트를 하겠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인규는 환하고 행복한 표정과 제스처를 잊지 않는다.

홍수희는 아들의 그런 행동이 일부러 제스처가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넌 데이트를 할 여자도 없니?

엄마가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불쑥 찾아와도 그저 좋다는 제스처는 뭐냐?“

"엄마가 오셨는데 좋지 않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어차피 퇴근을 하면 곧 바로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엄마하고 데이트를 하면 좋지요.“

”정말 사귀는 여자도 없는 것이냐?“

”공연히 아무하고 사귀었다가 어머니 눈에 들지 않으면 어쩌려고요?

그래서 아무나 사귈 수 없지요.

일단 어머니 눈에 들어야 하고 모든 것이 어머니의 마음에 만족을 주어야 하는 여자가 아니면 안 될 것 아닙니까?“

”그럼 이 엄마 때문에 아직도 네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냐?“

”제가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 눈과 마음에 드는 며느리 감이 없던 것이지요.

저야 뭐 누구라도 해도 어머니 마음에 흡족하시다면 상관있겠습니까?“

”그건 무슨 말이냐?

결혼을 하는 네가 좋아야 하는 것이지 어디 내가 데리고 살 것이냐?“

”그래도 어머니의 모든 것에 충족할 만한 여자가 어디 있겠지요.

지금까지 기다리고 찾았는데 좀 더 찾아보면 그런 여자가 있지 않겠습니까?“

홍수희는 지금 아들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음을 안다.

비로소 홍수희는 아들이 자신의 생각과 뜻에 따르고 있지 않음을 간파한다.

“솔직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엄마도 알았으면 한다.“

”없습니다.

엄마가 정해주시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홍수희는 아들이 마음을 쉽사리 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아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맞선을 보러 다녔던 아들이다.

이젠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아들의 생각 같은 것은 알려고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식들은 그저 부모가 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던 홍수희는 이제 아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글: 일향 이봉우

 

 

 

 

 

제 30장,

그러나 인규는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는다.

“안규야!

이제는 엄마도 지쳤다.

넌 뭐가 부족해서 연애도 하지 못하고 있어?“

”연애는 그저 연애로서 끝나는 것이지요.

연애를 한다고 결혼과 결부시키지 않고 있으니 모든 여자들이 다 떠나고 말지요.“

”연애를 해 보기나 했었니?“

”글쎄요?

그것조차 잊었습니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회사 일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결혼을 해야 하는데 정말 큰일이다.

맞선을 보는 대로 한 번도 성사가 되지 않고 이제는 어디다 내 놓을 곳도 없다.“

”어머니!

아직도 며느리에게 받을 예단이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서로 자존심인데.........

그러나 이제는 예단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기왕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신부 감이 좋지 않겠니?“

“어머니!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예단비용이 얼마나 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세요?“

“예단이야 어디 정해진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집안의 성의가 문제겠지.

웬만큼 사는 사람들이야 남의 축에 빠지지 않게 보내고 있으니 얼마라고 말을 할 것도 없이 부모의 성의가 얼마나 하는지 달려있는 것이지.“

“어머니!

서로가 모든 정성을 다해서 자식을 키웠는데 왜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서 시댁에 대한 예단을 해야 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곱게 키운 딸자식을 보내는 부모님은 뭐가 되는 것인가요?

딸도 빼앗기고 많은 혼수와 예단까지 해 보내려면 허리가 휘청거릴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 어쩌겠니?

네 누나들도 모두 그렇게 해서 결혼을 시킨 것이 아니니?

우리는 둘을 그렇게 해서 보냈으니 네가 아무리 잘 해오는 며느리를 본다고 해도 억울하고 밑지는 것이다.“

”자식 혼사에 그렇게 이득을 따져서야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닌 누님들을 그렇게 해 주실만하니 해 주신 것이고요 그렇다고 며느리를 보시면서 그것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시면 어느 누가 무서워서 우리 집에 시집을 오겠습니까?“

”그래서 네가 결혼을 마다하는 것이니?

맞선을 보는 대로 네가 거절을 한 것이 아니니?“

”모두 다는 아니지요.

제가 퇴짜를 맞은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너 역시 억지로 맞선을 보러 나간 것이 더 많지 않니?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이번에는 이 번 에는 하면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다.

그러나 이젠 네 생각을 알고 싶다.

결혼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이냐?“

”네!

그렇지만 맞선을 통해서가 아닌 진정으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습니다.“

“집안도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직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이냐?”

“어머니!

집안도 재산도 왜 봐야하는 것입니까?

저와 결혼을 해서 저희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이 아닌가요?

어머니 생각대로 많은 혼수 바리바리 싣고 와서 서로 불행해진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체면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수준에 맞추는 기준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야!

그것을 무시하고 어떻게 결혼을 할 수가 있겠니?“

“제가 좋다면 알몸으로 싸서 데리고 오는 수도 있지요.

왜 그렇게 못합니까?“”너 설마 그런 여자를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니지?“

”어머니 무서워서 사귀라고 해도 사귈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총각귀신이 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 허락을 받을 수 없겠지요?“

”..........................“

홍수희는 아들의 말에 뼈가 들어 있음을 느낀다.

“그래, 네가 총각귀신이 된다고 해도 아무나하고 허락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집안과 학벌 그리고 재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삼박자가 맞는 여자가 어디 제 차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전 체질상 그런 여자를 사랑할 수 없으니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인규는 농담처럼 자신의 마음을 확고히 밝혀둔다.

“어머니와 조금도 생각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것 같아 조금은 서운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도 어머니가 처음보다는 완강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은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입니다.“

인규는 얼굴에 웃음 끼를 띠우며 장난스럽게 말을 한다.

어떤 말이든 정색을 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없이 늘 얼굴에 웃음 끼를 지우지 않는다.

홍수희 역시 생각보다 아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낼 수가 없다.

홍수희는 아들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체질상 맞지 않는다고 한 말이 자꾸만 목에 가시처럼 걸리곤 한다.

인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다.

이제 홍수희는 더욱 초조한 마음이 들고 아들의 그런 여유까지도 불안하다.

정말 자신 때문에 결혼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들의 모든 행동이 불안하기만 한 홍수희다.

“인규야!

정말 결혼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

”아무 때라도 상대가 있으면 해야지요.

어디 어머니 마음에 들고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여자 없나 알아봐야겠습니다.“

인규는 역시 느긋한 표정이다.

그러나 인규의 속마음은 부글부글 속이 새카맣게 타 들어간다.

이젠 승미도 결혼을 하자는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며 인규는 절망을 느낀다.

아마 평생을 어머니가 변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가 변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승미의 말을 꺼낼 수는 없다.

어머니의 성품에 승미에게 모진 고통을 안겨주고도 남을 것이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인규는 더욱 답답해진다.

승미 또한 자신의 어머니가 반대를 한다는 것을 알면 결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아프고 힘들더라도 결코 이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승미가 지니고 있는 자존심이다.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결혼을 할 수 있는 승미의 성격이 아님을 안다.

이제 승미도 삼십이 된 나이다.

더 이상 결혼을 미룰 수도 없고 더 이상 기다리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이제 인규는 어머니와 마지막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말을 꺼낼 수가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코 자신의 사랑에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

오랜 세월 지켜온 자신들의 사랑에 방해받고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대로 침묵을 지키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편안하게 말을 해 봐라!“

“어머니!

정말 제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인규야!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니?

헌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어머니!

저도 이제는 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습니다.“

“그거야 이 애미도 바라고 원하는 일이 아니더냐?”

“어머니의 욕심을 버려주십시오.

어머니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신다면 저는 이대로 결혼을 포기하겠습니다.“

”뭐라고?

내가 무슨 욕심을 낸다는 것이냐?“

”더 이상 아가씨의 집안도 재물도 보지 마시고 오직 당사자 한 사람만을 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야?

어떻게 집안을 보지 말라는 것이냐?

부모도 없는 고아라도 되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생각하지 마시고 당사자만 보셨으면 합니다.”

홍수희는 아들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본다.

“그러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소개를 시켜라!

집으로 초대를 해도 좋다.“

”어머니가 반대를 하실 것 같아서 결혼을 포기하겠습니다.

딱히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한 사이도 아니고 그냥 어떨까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집안을 들추고 재력을 말씀하신다면 포기를 하겠습니다.“

”일단 사람을 보자.

그러고 난 다음에 내가 반대를 하든지 말든지 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도 보지 않고 무작정 내가 반대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결혼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네가 지금 이 엄마를 겁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어머니!

자식이 어떻게 부모를 겁을 줍니까?

공연히 모든 조건이 맞지 않는 사람인데 초대를 해 놓고서 반대를 하신다면 그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고 온 사람한테 상처를 줄까 겁납니다.“

”내가 반대를 할 정도의 집안이란 말이더냐?“

”그냥 평범한 서민층의 아가씨입니다.“

“부모는 다 계시고?”

“네!

자매들만 셋인데 그중에서 맏딸입니다.“

”........................“

홍수희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을 입을 다문다.

서민층의 맏딸이라면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예단 없이 시집을 올 것이다.

또한 자신들과 수준을 맞추려 해도 조건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홍수희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결혼이 급한 아들을 생각하면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승낙을 하고 싶다.

그러나 남의 눈도 있고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사돈댁이 자신들과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면 모든 것이 불편하고 아들이 그로인해 많은 고통을 받을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인규는 어머니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시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어머니 나름대로 생각하실 시간적 여유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규다.

인규는 또 다시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여유로운 모습을 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홍수희는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들의 마음을 좀처럼 간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반대를 한다면 결혼을 포기하려는 모습이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서 더욱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홍수희는 며칠을 시간을 갖고 생각한다.

이대로 아들의 결혼이 더 늦어도 좋은 것인가 하는 고심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결혼을 늦춘다면 아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손자가 너무 늦어지게 된다면 어쩔 것인가?

홍수희는 삼일 만에 자신의 마음을 결정한다.

“인규야!

고아만 아니라면 집안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

허지만 한 가지만 알고 싶은 것이 있다.“

“네, 무엇인가요?”

“너희들이 만난 것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만난 것이 알고 싶으신 것인가요?

아니면 저희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싶으신 것인가요?”

“사랑해서 만난 것이 아니었니?”

“어머니!

처음엔 사랑해서 만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서로 대학 때 만난 인연이지요.“

“그랬니?

그렇다면 서로 동창생이냐?“

”졸업을 같이 했으니 동창이기는 하지만 제가 이년을 먼저 입학을 했지요.

복학을 하고 나서 만난 것이고요.

졸업을 하고 서로 각자의 길을 가다 우연히 몇 년 전에 다시 보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이 되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일단 집으로 초대를 해라!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가씨만 보겠다.“

”정말 그래주신다면 더 이상 고맙고 감사한 것이 없습니다.

어머니!

저를 믿어 주십시오.

결코 어머니께서 실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

무엇보다 너희들만 행복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

인규는 비로소 어머니의 진심을 본다.

이제는 자식을 위해서 당신의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신 어머니의 모습이다.

얼마나 힘이 드셨을지 잘 알고 있는 인규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께 승미는 잘 해드릴 것임을 믿고 있는 인규다.

비로소 인규는 승미에게 청혼을 한다.

멋지고 근사한 선물은 아니더라도 남들이 모두 한다는 알이 작은 다이아가 박힌 반지를 주문해서 승미에게 주면서 청혼을 한다.

“승미!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시오.“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사람?

인규씨가 이제 제게 청혼을 하는 것인가요?“

”그렇소!

멋지고 근사한 청혼을 하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고 어떤 근사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소.

이런 내 청혼을 받아주겠소?“

”인규씨!

받아드리고 말고요.“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