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소설&드라마

[연재소설] 아빠의 바다 (01회-10회)

淸山에 2013. 4. 2. 18:15

 

 

 

 

 

[연재소설] 아빠의 바다ㅡ1회|

 

 

출처 : 비공개 카페입니다.

 

 

아빠의 바다

제 1장,

차승재는 부지런히 병원에서 집으로 출발을 한다.

오늘이 집의 잔금을 받고 이사를 하는 날이다.

벌써 이년이 넘도록 아내와 함께 병원생활을 해 오고 있는 차승재다.

이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내는 벌써 다섯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아내 문유미의 모든 간병을 맡아서 해 나가고 있는 차승재는 직장도 그만두고 수입원이 없이 오직 아내를 살리기 위한 생각뿐이다.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빌린 돈과 병원비를 생각해서 그나마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연립주택 조그만 평수의 집을 전세로 얻어 놓았다.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받은 은행융자를 빼고 빌린 돈과 병원비를 제외하고 나서 얻을 수 있는 집이 평수가 작은 연립주택이다.

모든 짐들은 이미 옮겨 놓았다.

짐이라고 해야 불필요한 것들을 처분하고 간단하게 이사를 한 차승재다.

아내가 임신 중독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이 벌써 이년이 넘는 세월이다.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임신 중독증상을 보여 왔지만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병원에 다니는 것을 소홀해 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다.

임신중독으로 인해 온 몸이 붓고 힘들어 했지만 병원에 입원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둘 다 모두 미술학원의 유명한 부부강사다.

같은 대학을 나온 부부는 서양화와 동양화를 전공한 사람들이다.

대학에서부터 사랑을 나누던 커플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문유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밑으로 남동생과 여동생을 둔 문유미는 어머니가 홀로 자식을 키우면서 숱한 고생을 하시는 것을 보아오면서 대학 생활을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학비를 조달하곤 했다.

차승원 역시 그리 넉넉한 집안의 아들이 아니고 간신히 남에게 빌리러 가지 않을 정도의 형편을 유지해 오고 있는 집안의 막내다.

미술에 소질을 보이고 있는 막내아들의 뒷바라지를 감당하기에 힘에 겹다.

위로 두 형들이 있어 큰 형의 도움을 받아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차승재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둘은 사랑이 깊어갈수록 서로 장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직장을 가지고 난 후의 일이었다.

다행히 차승재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원에 취업이 된다.

차승재보다 일 년 후에 졸업한 문유미 또한 차승재가 다니는 학원에 강사로 취업된다.

그들은 부부강사로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아서다.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그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서 학생들이 수업을 맡는다.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면서 그들의 실력은 눈에 뜨이게 나타난다.

결혼을 하고 삼년 만에 아기를 갖는다.

그동안 단칸방에서 방 두 개짜리 전세를 얻고 나서야 아기를 가진 것이다.

첫아기의 출산을 순조롭게 하고 나서 문유미는 아기를 친정엄마에게 부탁을 하고 다시 출근을 하며 특강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한다.

아기를 보시기 위해 매일 딸네 집으로 출근을 하시는 장모님이시다.

하루 종일 아기와 함께 계시다 딸이나 사위가 오면 집으로 돌아가시곤 한다.

그렇게 편안하게 아기를 키울 수 있어서 그랬는지 다시 둘째를 임신한다.

배가 부르고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출근을 고집하면서 이겨낸 문유미는 둘째 역시 별 어려움 없이 순산을 한다.

둘 다 모두 딸들이다.

장모님이 계시기에 그들은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한다.

말이 없이 유미를 도와주시곤 하는 장모님이시다.

그들은 계획대로 아파트를 분양받는다.

이십 팔 평짜리의 아파트다.

은행 융자금을 받고 구입했지만 다시 철저한 계획을 세우면서 매달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면서 부부는 꿈을 키워간다.

이제 학원가에서는 부부 미술 강사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차승재와 문유미는 더욱 부지런히 일을 한다.

방학기간에도 그들 부부는 특강을 맡는다.

다른 시간의 강의보다 수입이 많은 특강이다.

학원에서는 그들 부부에게 특강을 맡기곤 한다.

그렇게 그들은 한눈 한 번도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예정에 없던 셋째 아이의 임신이다.

임신초기부터 임신중독 증상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병원에 다닐 시간이 없다.

약을 복용하면서 부종이 가라앉기만 기다린다.

허나 늘 서 있는 강의 때문인지 부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특별히 별 다른 이상이 없는 문유미는 출산을 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니 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워낙에 꽉 짜인 스케줄이다.

두 아이를 별로 힘들지 않게 순산을 한 문유미는 특별하게 신경을 쓸 것도 없다는 듯 매일 강의로 바쁜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나 달이 지나갈수록 부종은 더 심해지 두통과 현기증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문유미는 방학 특강이 끝나고 나서야 병원을 찾는다.

이미 팔 개월의 무거운 몸이다.

더 이상 자신을 지탱 할 수 없다.

지속적인 갈증이 생기고 소변 량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의사는 급하게 입원을 권유한다.

이미 혈압이 올라가고 단백녀가 생긴 상태였다.

문유미는 곧 바로 입원을 하지 않고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과 상의를 해야 하고 학원의 결강을 막기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를 해야 하기에 의사의 권유를 가볍게 듣고 집으로 돌아간다.

의사는 여러 번을 입원할 것과 아기를 조기 출산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이미 문유미의 상태는 위험한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문유미는 입원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날 밤을 보내지 못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혼수상태로 빠져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이 된다.

병원에서는 급하게 아기를 꺼낸다.

다행이 미숙아지만 아기를 살려낸 것이다.

그러나 산모가 뇌출혈이 생겨 큰 수술을 해야만 한다.

혈압이 급격하게 높아서 뇌에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또한 이미 시신경의 손상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고 문유미는 여러 번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기에 차승재는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갑작스러운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은행 융자금을 갚고 알뜰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두 아이의 양육비가 만만치 않다.

많은 저축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은 친정어머니께 매달 얼마간의 돈을 드리고 나면 저축한다는 것은 그저 마음뿐이다.

차승재는 여기저기에서 돈을 구한다.

어떻게 하든 아내를 살려야만 하는 것이다.

아내가 없다면 자신의 인생 또한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뿐이다.

문유미는 생명은 살아 있다고 해도 무엇 하나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또한 시신경의 손상으로 이미 시력을 잃은 문유미는 무엇 하나도 볼 수가 없다.

차승재는 학원을 그만 두고 아내 곁에서 모든 것을 해내고 있다.

아내의 대소변은 물론이고 아내의 손과 발이 되고 눈이 되어준다.

말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도 없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다.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들 부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셋째 역시 딸이다.

많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딸을 퇴원을 시켜 장모님께 맡긴다.

이제 세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딸이 생사를 넘나드는 것을 보시는 장모님의 모습 또한 하루하루 수척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아이들만을 열심히 키우신다.

문유미는 간신히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지만 더 이상의 호전은 보이지 않고 있어 차승재로서는 마음만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

더 이상 밀린 병원비도 사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친다.

차승재는 집을 처분하기로 마음을 먹고 장모님과 의논을 해서 결정한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당신의 모습이 미안하고 죄스럽다는 말씀 뿐 눈물만 흘리신다.

또한 형님들께도 더 이상의 부담을 드릴 수도 없는 것이다.

힘겹게 살아가시는 형님들이 그동안 도움을 준 것이 여러 번이지만 모든 것이 그저 푼돈이 될 뿐이었다.

집은 내 놓기가 무섭게 계약이 되었다.

집값은 구입당시보다 조금 비싸게 팔렸지만 은행 융자금을 제하고 빌려온 돈을 갚고 밀린 병원비를 갚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작은 평수의 연립이라도 전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 쉰다.

차승재는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급하게 병원으로 간다.

아내를 오랜 시간 혼자 둘 수 없다.

불안한 마음으로 승재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먹는 것조차 거부를 한다.

병원을 비울 때는 늘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오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기다려 가끔 아이들을 보러 가기도 하고 돈을 구하러 다니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내는 승재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주어도 입을 꽉 다문 채 열지 않는다.

승재가 급하게 병실로 들어서자 호스피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승재를 맞이한다.

“오늘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까?”

“그럼요!

약도 거부하고 일체 입을 열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승재는 미안함을 나타내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유미야!

나를 기다렸어?“

유미는 그제야 어두웠던 표정이 풀리고 손을 더듬어 남편의 손을 찾는다.

“내가 늦게 와서 미안해!”

승재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아준다.

유미는 무언가를 말을 하지만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승재는 유미의 입모양을 보면서 대충 알아듣고 아내의 마음을 알아낸다.

아이들을 묻는 것이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우리 아이들을 만나보지 못하고 왔어!

다음에 다시 시간을 내서 만나고 올게!

자, 이제 이것을 먹고 약도 먹어야지?“

승재가 떠 넣어주는 음식을 받아먹는다.

차승재는 한 수저 한 수저를 정성껏 떠먹인다.

대화라도 마음 놓고 나눌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지만 그저 입안에서만 웅얼거리는 소리뿐이다.

얼마나 답답하고 자신이 초라해 보이겠는가 싶은 마음에 마냥 불쌍해진다.

“여보!

많이 먹자.

그래야 힘이 나서 이 모든 병을 이겨낼 수가 있지.

어서 많이 먹어!“

그러나 유미는 반도 먹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조금만 더 먹자.”

유미는 고개를 흔든다.

유미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뿐이다.

무엇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볼 수도 없다.

“유미야!

당신이 많이 먹어야 내가 기분이 좋지.

나를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먹어!“

그러나 유미는 고개를 돌리고 그만 먹는다는 표시를 강하게 한다.

“그래, 알았어!”

차승재는 먹이는 것을 중단한다.

더 이상 무리하게 먹이면 소화도 되지 않고 다시 토하기 일쑤다.

아내를 앉혀놓기 위해 앞뒤로 고여 놓았던 방석들을 치우고 다시 눕혀준다.

한곳으로만 누워있으면 욕창이 생길까 싶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을 자세를 바꾸어 주지만 어느새 등에 욕창이 생겨 고생을 하고 있다.

매일 소독을 하고 치료를 하지만 한 번 생긴 욕창은 쉽사리 낫지를 않고 있다.

온 몸은 살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뼈에 가죽을 씌워놓은 것처럼 만져지는 곳마다 뼈마디가 앙상하게 손에 잡힌다.

“유미야!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지?“

웅얼거리며 알고 있다고 대답을 한다.

“우리 이다음에 한 날 한시에 함께 이 세상을 떠나기로 약속한 것 기억나?”

유미는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은 반드시 일어날 수 있어!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얼마든지 마음껏 그릴 수 있어!“

그러나 유미는 고개를 흔든다.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틀림없이 눈도 다시 보게 될 것이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어!

그러니까 희망을 놓으면 안 돼!

내가 당신을 이렇게 지키고 있으니까 나를 믿지?“

유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차승재가 가장 사랑하는 유민의 눈이다.

크고 깊숙한 눈은 사슴을 닮았다고 늘 생각하던 아름다운 눈이다.

지금 그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절대로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차승재는 아내의 눈물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온다.

유미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한다.

“미안할 것 없어!

내가 아파도 당신이 이렇게 나를 보살펴 줄 것이잖아?

당신 몸이 내 몸이고 내 몸이 당신 몸이니 당신이 아파하면 나도 같이 아파!

그러니까 눈물을 흘리지 마!“

또 다시 웅얼거리는 소리가 입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그래, 참아내야 해!

우리는 반드시 해 낼 수 있어!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공주님들을 위해 이겨 낼 수 있는 거야!“

그들의 그런 모습들은 모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아내를 위해 잠시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승재의 모습은 환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고 보호자들에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

병원 내에서는 이미 칭송이 자자한 차승재의 모습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출도 하지 않고 꼬박 아내 곁을 지키는 차승재의 모습이다.

글: 일향 이봉우

 

 

 

 

 

[연재소설] 아빠의 바다ㅡ2회|

 

 

제 2장,

아침부터 유미의 기분은 영 좋지 않다.

승재는 아내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그러나 유미는 조금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고 무슨 말이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디 더 아파서 그래?”

그러나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초점이 없는 눈을 먼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표정이다.

뭔가를 그리워하는 듯 멍한 표정이다.

“여보!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어?“

유미는 조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구나?

당신이 아이들을 많이 그리운 모양이구나?

내가 의사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장모님께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라고 할까?“

그러나 유미는 고개를 흔든다.

데리고 온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예쁜지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는 엄마다.

이제 아이들은 큰 딸 승미, 남편의 이름 한자와 자신의 이름 한자를 따서 지은 큰 딸의 이름이다.

둘째 승리 그리고 셋째는 얼굴도 보지 못한 딸 승인이다.

아직도 유미의 기억 속에는 다섯 살짜리 승미와 세 살짜리 승리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다.

그나마 막내 승인이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조차 없다.

얼굴도 보지 못했고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고 단 한 번도 만져본 일도 없다.

이제 딸들은 승미가 여덟 살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승리가 여섯 살 안아보지도 울음소리조차 들어 본 일도 없는 막내 딸 승인이 네 살, 자신이 벌써 햇수로 삼년을 병원에서 이렇게 꼼짝도 하지 못하는 식물인간으로 목숨만을 지탱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목숨만 간신이 연명한다고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차라리 자신의 삶이 끝난다면 남편은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도 새 엄마가 생겨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젠 모든 사람들의 짐이 된 자신의 모습이다.

“여보!

우리 밖에 나가 산책할까?“

그러나 유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 휠체어를 태워서 데리고 나가면 얼굴이 환해져 오는 아내다.

그러나 아무리 달래고 어르고 해 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차승재는 가슴이 타 들어간다.

기분이 좋은 날이면 먹는 것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만 이렇게 우울해져 있는 날은 먹는 것조차 거부를 한다.

승재는 휠체어를 가져다 아내를 들어 안아 옮겨 태운다.

그냥 휠체어에 태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

쓰러지지 않도록 고여야 하고 고정을 단단하게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 모든 작업 하나하나가 힘든 것이지만 승재는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자, 우리 마님 나가십니다.”

승재는 일부러 밝고 큰 목소리로 병실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

“잘 다녀오세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세요.”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시고 기분전화도 하세요.”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저마다 유미를 위해 한 마디씩 해 준다.

승재는 조심스럽게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어때?

공기가 병실하고는 다르지?“

”......................“

승재는 병원 밖의 휴게실을 한 바퀴 빙 돌고 나서 그늘이 지고 벤치가 있는 곳으로 간다.

“여보!

왜 그런지 말을 해 줄래?

당신이 그렇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난 너무 슬퍼진다.“

비로소 유미의 입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승재는 그런 유미의 말을 알아듣는다.

“뭐라고 했어?

당신을 죽게 내버려달라는 말이야?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당신이 없으면 나와 우리 딸들은 어떻게 살아가지?

당신 혼자만 떠나면 남아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을 해봐!“

또 다시 유미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새 삶을 찾아라?

내가 당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당신은 나 아닌 다른 남자의 아내로 살아갈 수 있어?

그리고 우리 아이들 당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엄마로 부르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유미!

세상이 변한다 해도 그리고 지구가 멸망을 한다고 해도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유미는 다시 웅얼거린다.

자신을 포기해 달라고 이제 자신은 가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난 자신이 있어!

반드시 당신을 건강하게 일으켜 세울 수 있어!

설사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반드시 다시 건강해질 것이고 여전히 내 아내로 우리 아이들의 엄마로 내 곁에서 살아가고 있을 거야!“

유미는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자신이 없다.

“여보!

우리 절대로 좌절하지 말자.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절망을 하지 말자.

우리 사랑스러운 세 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절망을 하면 안 돼!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승재는 유미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고 약속이라는 말을 한다.

“약속하는 거야!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지?“

유미는 또 다시 아무런 표정이 없다.

“유미!

우리들의 지난날들을 생각해 봐!

우리 얼마나 뜨겁고 행복한 날들이 많았니?

우리는 아직 젊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우리는 그런 뜨거운 사랑을 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많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

그러나 유미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을 유미는 우울한 상태가 지속된다.

유미의 상태는 갑자기 심각해진다.

의사들이 바삐 오가고 급한 처치가 내려지지만 결국 유미는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차승재는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

이대로 영원히 아내와 이별할 것만 같은 깊은 나락 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중환자실의 면회는 하루에 서너 차례뿐이다.

그것도 긴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단 십분 뿐인 시간이다.

승재는 혼수상태 속에 있는 유미를 바라보며 참아왔던 눈물을 흘린다.

“여보!

이대로 떠나서는 안 돼!

절대로 우리는 이렇게 헤어지면 안 되는 것 알지?

어서 기운을 내!

우리에겐 우리의 생명을 불어넣고 우리의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세 딸이 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딸들을 생각해서라도 당신이 어서 기운을 내!“

그러나 그 말이 유미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유미야!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잖니?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일들은 다 어떻게 하니?

당신과 나란히 작품 전시회를 하자고 한 약속들을 어떻게 하니?

우리 딸들을 아름답게 키우자고 한 약속들을 어떻게 하니?“

유미가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승재는 그런 말들을 한다.

승재는 아내가 반드시 일어 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승재의 바람과는 달리 유미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 하느님 부처님 신령님!

목숨만은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이렇게라도 제 곁에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 이렇게 헤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시죠?“

승재는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자신이 아는 모든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매달린다.

중환자실 곁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는 승재의 모습은 처절하다.

열흘 정도가 지나고 나서 급하게 보호자를 찾는다.

승재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의사를 만난다.

“선생님!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애원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한다.

“일어나십시오.

살고 죽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최선을 다해왔지만 이제는 방법이 없습니다.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으니 가족들을 부르십시오.“

“아, 안 됩니다.

선생님, 단 며칠만이라도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게 해 주십시오.“

”네!

저희도 그러고 싶은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가족들을 부르시어 임종을 지켜보시도록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승재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는다.

모든 사람들이 연락을 받고 달려온다.

유미의 친정엄마의 얼굴은 그대로 핏기가 사라진 사람이다.

세 딸들까지 그리고 자신의 형님들과 형수님 어머니가 오신다.

친정의 모든 가족들도 시댁의 모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미는 편안한 모습으로 그렇게 이 세상과 하직을 한다.

“엄마!

죽지 마!“

승미의 처절한 울부짖음이다.

초등학생인 승미는 이미 죽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승리는 언니가 우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직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승리다.

그러나 막내인 승인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멍한 눈이 된다.

“여보!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당신이 먼저 떠나지 않기로 나하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 이러는 법이 어디 있니?

어서 눈을 떠!

그리고 우리 딸들을 봐!

나하고 우리 딸들을 보라고.“

승재의 통곡은 차라리 심장을 파 놓는 것처럼 처절한 몸부림이다.

승재의 형들은 그런 동생을 다독인다.

“이제 모든 것은 다 끝났다.

떠나는 사람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니?

네가 그러면 제수씨가 어떻게 마음 편안히 떠날 수 있겠니?“

“안 돼!

이러는 것이 아니잖아?

우리들의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하라고?

엉 엉 엉!“

차라리 승재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내어 울부짖는다.

시신은 바로 영안실로 옮겨진다.

승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대인데도 영안실을 떠나지 않는다.

“아빠!

이제 우리 어떻게 해?“

승미는 아빠 곁을 떠나지 않는다.

막내인 승인은 유미의 올케가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있다.

승미와 승리만 아빠 곁을 지키고 있다.

승재는 두 딸을 꼭 끌어안는다.

“유미야!

이젠 아프지 않지?

그러나 난 어떻게 하니?

그리고 우리 사랑스러운 딸들은 어떻게 해야만 하니?“

또 다시 승재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영안실을 찾은 모든 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승재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승재의 비통함을 본다.

문상객들을 끊이지 않는다.

살아생전에 문유미에 대한 생각을 하며 참으로 아까운 인재가 사라졌다는 말들을 한다.

틀림없이 화가로서 대성을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낸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나고 남편과의 정 또한 유별나게 돈독한 유미였다.

무엇하나 버릴 곳이 없는 사람이라는 칭송이 자자했지만 이렇게 빨리 떠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문유미는 화장을 하기로 결정을 한다.

선산이 없는 차승재의 집안이다.

공동묘지를 쓰느니 화장을 해서 훨훨 날려버리면 가고 싶은 곳 아무 곳이나 시원하게 돌아다니게 되리라는 생각인 것이다.

상여가 나가는 순간 승재는 잠시 혼절을 한다.

승재의 혼절로 발인이 잠시 지체가 된다.

허나 승재는 곧 바로 정신을 차린다.

화장터에서의 종교예식은 승재의 집안에 따라 스님의 불경소리가 이어진다.

관이 화구로 들어가자 또 다시 승재는 잠시 혼절을 한다.

승재의 형 승원은 동생의 모습에 더욱 마음이 아파온다.

두 사람이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었는지 너무나 잘 아는 승원이다.

죽어서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고도 깊은 사랑을 나누고 살던 동생이다.

“승재야!

이제는 딸들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승재는 다시 정신이 돌아온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 쉬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글: 일향 이봉우

 

 

 

 

 

[연재소설] 아빠의 바다ㅡ3회|

 

제 3장,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나서 승원은 승재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

이대로 아무도 없는 빈집에 홀로 들여보낸다는 것은 동생을 죽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는 승원이다.

삼우제가 지나고 나자 승재는 몸져눕는다.

심한 몸살이 승재의 발목을 잡는다.

심한 고열과 함께 헛소리로 아내를 부르는 모습은 승재의 어머니 가슴을 새카맣게 타 들어가게 하고 있다.

“승재야!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자.“

몇 년 동안 그리 고생을 하더니 피골이 상접한 아들의 모습을 보기가 너무나 안쓰럽다.

어머니 이씨는 모든 정성을 다해서 막내아들을 돌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찬 물수건을 갈아대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못한다.

사는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한 승원의 집은 시부모를 모시고 세 아이들과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비좁다.

그러나 없는 살림 가운데 알뜰하고 매서운 살림을 해 나가는 며느리가 있기에 그나마 숨통을 트일수가 있다.

막내며느리가 오랜 세월 병원에 있었어도 단 한 번도 손녀들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이씨의 마음은 늘 가시방석이다.

이제 그나마 며느리를 떠나보내고 나서 앞일이 캄캄해진다.

이 좁은 집에 손녀들은 데려다 키울 수가 없다.

세 아이들이 있을 공간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며느리도 직장을 나가고 있다.

이여인이 모든 살림을 한다고 하지만 경제권은 며느리의 손에 있다.

한 달 먹을 양식과 찬거리를 사오고 공과금은 자동납부로 되어 있기에 집에서 돈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한 달이면 아이들 간식과 시부모님의 용돈을 이십 만원을 주면 그만이다.

평생을 막노동을 하면서 살아온 남편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일손을 놓고 새벽과 한밤중에 리어커를 끌고 나가 파지를 주워 모아서 파는 일이 수입의 전부다.

다행이 손바닥만한 집일망정 남의 집이 아니라는 것에 늘 감사한 생각을 한다.

세 칸의 방이 아들부부와 당신들 부부가 손자와 함께 쓰고 손녀 둘이서 작은 골방을 쓰고 있기에 막내아들의 딸들을 데리고 올 공간이 없다.

사부인에게 늘 고마운 마음과 함께 죄스러움이 있는 이여인이다.

가끔 아이들의 먹을 것을 사들고 들여다보고 오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이제 막내며느리를 보내고 보니 언제까지 손녀딸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

참으로 똑똑하고 어느 곳 하나 나무랄 곳이 없는 며느리였다.

그 흔한 승용차도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늘 적지만 시부모님의 용돈을 보내고 시댁의 애경사에 그냥 보내는 법이 없이 정성을 다하던 며느리다.

성품이 싹싹하고 부지런하다.

알뜰하기도 하지만 인정이 많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던 며느리다.

또한 둘이서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예쁘고 사랑스러워 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하던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이었다.

이제 한쪽을 잃고 기진해서 쓰러진 막내아들의 모습이 이여인의 가슴을 칼로 난도질을 하는 것처럼 아프고 심한 통증이 온다.

승재는 모든 것을 잊으려는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며 고열에 시달리는 나날을 보낸다.

이여인은 모든 정성을 기울여 아들의 병구완은 해 낸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승원은 제일 먼저 승재를 들여다본다.

“어머니!

오늘도 별 차도가 없습니까?“

”그래, 열이 조금 떨어진 것 외에는 늘 그 상태다.“

”아마 긴장이 다 풀리고 나니 버티고 있던 힘이 모두 사라졌나 봅니다.

병원에서도 별 이상은 없을 것이라고 하니 그대로 두고 보지요.“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이러다 우리 승재까지 탈이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구나!“

“별 일 없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경과를 두고 봅시다.“

”그래!“

“그리고 어머니!

아이들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대책이 있을 리가 있겠니?

그저 답답하고 캄캄할 뿐이다.

그 댁도 넉넉지 못한 살림에 그다지 넓지 않은 집이니 오죽이나 힘이 들겠니?“

”어머니!

막내 승인이를 기관에 보내면 어떨까 싶네요.“

”기관이라니?

어떤 기관을 말하는 것이냐?“

”막내 승인이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승재가 재혼을 하려고 하면 딸이 셋이 있는데 그 중에 발달장애를 가진 딸이 있다고 하면 세상의 어느 여자가 들어오겠습니까?“

”그래, 그래서 앞이 캄캄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받아줄 기관이 있다는 말이냐?“

”네!

제가 알아본 바로는 가정사정과 한 부모 자식이기에 맡길 만한 곳이 있습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우리 승재에게 큰 힘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인지 승인이를 보내자.“

”어머니!

우선은 승재의 결심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동의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지요.

승재가 몸을 털고 일어나면 설득을 해 보겠습니다.“

”오냐!

그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겠니?“

이여인은 조그만 희망을 한 가닥 바라보는 것만 같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승인이는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을 만큼 아무것도 가리지 못하고 이제 막 돌을 지낸 아기 같다.

네 살이 되어서도 우유병을 물려야 하고 소 대변을 가리지 못하고 기저귀를 채워야만 한다.

아직 말도 제대로 된 단어를 한 가지도 모르고 있다.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안 되는 아기다.

그저 천진스럽고 순진무구한 표정이다.

그런 승인이를 맡아줄 기관이 있다는 것에 이여인은 숨통이 조금은 트이는 것만 같다.

승미와 승리는 제 앞가림을 할 줄 아는 나이니 힘들어도 키워야 하지만 그것들을 데리고 홀로 살아가야 하는 막내아들의 모습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온다.

어떤 여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죽은 아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승재는 열흘이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얼굴에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맥이 빠진 모습이다.

“이제 정신이 드니?”

승원이 묻는다.

“제가 너무 오랫동안 누워있었지요?”

“쉴 만큼은 쉬어야 한다.

그동안 몇 년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마음고생과 몸 고생이 심했으니 그 정도의 병이 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

이젠 정신을 차리고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니?“

”네!

그렇게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우선 당분간 이곳에 더 머물면서 건강을 회복해라.

그리고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승재는 대답 대신에 형을 바라본다.

“승인이 얘긴데 네가 어떻게 받아드릴지 모르겠구나!

어차피 아이들을 데리고 남자인 네가 혼자서 살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재혼을 해야 하는데 승인이는 장애자들이 있는 기관에 맡기는 것이 어떻겠니?“

”우리 승인이가 장애자?“

승재는 그제야 승인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 낸다.

“네가 승인이를 키우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정상적인 아이 같으면 이런 말을 하지 않겠다.

허나 네 앞길을 위해서라도 그렇고 다른 자식을 위해서라도 그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인데 네 생각은 어떤지 알고 싶다.“

“.......................”

승재는 무엇이라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승인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신경을 써 본 일이 없다.

그런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거라!“

“천천히는 뭐가 천천히냐?

지금 당장 보내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다.“

이여인이 부러지게 결정 낸다.

그러나 승재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머니 말씀에 따라도 되겠니?”

“글쎄요?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대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어떤 여자가 장애아가 있는 남자에게 오겠니?

그렇다고 남자가 여자 아이 셋 그것도 하나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키울 수가 있을 것이냐?

여러 가지 너를 위해서 그렇게 결정을 하는 것이 좋을성싶다.“

승재는 무엇이라 결정을 낼 수가 없다.

“승재야!

이젠 모든 것을 다 잊자.

그리고 새 마음으로 다시 출발을 해라!

승인이를 보내고 두 아이와 함께 재혼을 해서 새롭게 가정을 꾸리며 살다 보면 죽은 사람을 자연이 잊어지게 된다.“

이여인이 아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승재는 아무런 말이 없다.

승원과 이여인은 말없는 것을 승낙의 표시로 생각을 한다.

승재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다.

유미가 없는 세상 의욕조차 사라지고 없다.

승인이에 대해서 승재는 잊고 만다.

“아, 여보!”

승재는 그리움에 몸부림을 친다.

보고 싶다.

너무나 그리워 가슴이 아파온다.

어디를 간 것일까?

유미가 간 곳을 왜 따라 갈 수 없는 것인가?

“아직도 난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내 이 가슴은 어쩌란 말이오?

내가 여기 있는데 당신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이오?“

아무리 불러 봐도 들려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승재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료한 시간을 죽인다.

온통 유미의 생각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면 그곳에 유미가 있을 것만 같다.

자신을 기다리며 화가 나 있을 것만 같다.

승재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죽은 아내 유미에 대한 그리움과 허전함을 달랠 수가 없다.

아내가 없다는 것이 승재의 모든 것을 허물어버린다.

승재는 그렇게 모든 것에 대한 의욕을 상실당하고 삶에 의미마저 퇴색해 버린다.

이여인은 그런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새카맣게 타 들어간다.

바싹 마른 아들의 모습에 무엇이라도 먹이려 노력을 해 보지만 먹는 것조차 거부해 버리고 그대로 잠 속으로 빠져버린다.

“승재야!

잠을 자도 밥을 먹고 자야지.

그렇게 먹지 않았다가는 어쩌려고 그래?

너 마저 잘못되는 날이면 네 딸들은 어떻게 하려고 그런 것이냐?“

”.......................“

그러나 승재는 눈도 뜨지 않는다.

승재의 그런 모습을 보는 승원도 긴 한숨을 내 쉰다.

아무리 좋은 말로 말을 해도 승재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우선 승인이를 보내고 나서 달리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승인이를 언제 보내려고?”

“승재가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으니 내일이라도 어머니가 가셔서 승인이만 데리고 오시면 바로 연락을 해서 사람을 오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승미와 승리도 볼 겸 승인이를 데리고 오마!

에효, 그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여인의 눈에서는 또 눈물이 흘러내린다.

막내아들과 손녀딸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샘이 터진 듯 눈물 흘러내린다.

승원은 모든 서류절차를 끝내고 동생 승재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실행하기로 한다.

동생을 위하는 길이다.

남자 혼자의 힘으로 세 아이들 그것도 그 중에 하나가 장애아인 승인이를 그대로 끌어 안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을 한다.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다음날 이여인은 사부인을 만나러 간다.

미리 전화를 했지만 찾아가는 길이 참으로 조심스럽고 죄인의 심정이 된다.

몸이 많이 좋지 않다는 사부인의 음성이 더욱 조심스럽다.

딸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큰 병을 나신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며 남은 아이들도 어서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당도를 한다.

“사장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며느리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안내를 한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머님께서 몸이 좋지 않으셔서 조금 지체가 되시는 모양입니다.“

그런 말을 하고 나서 시어머님의 방으로 간다.

글: 일향 이봉우

 

 

 

 

 

연재소설] 아빠의 바다ㅡ4회|

제 4장,

승미는 학교에 갔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승리와 승인이 보이지 않자 이여인은 불안한 마음이 되어 간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려니 유미의 어머니 송여인이 힘겨운 모습으로 거실에 나온다.

“사부인!

많이 편찮으신 모양입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두 어머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서로가 아픈 가슴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잠간 숨을 고른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네요.”

차를 가져다 놓는 며느리에게 하는 말이다.

“네!

승미는 학교에 갔고 승리는 당분간 어린이 집에 보내고 있습니다.

승인이는 잠이 들어 있어 깨우지 않았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응당 저희가 데리고 가야 할 아이들인데 아직도 이렇게 하고 있어 죄송스럽습니다.“

”사부인!

경황이 없으신데 천천히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애들 아빠 차서방의 상태는 어떤가요?“

송여인이 힘겹게 묻는다.

“그 모습을 무엇이라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 처만 찾고 있으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두 아이들 사이가 어디 보통 사이었나요?

서로가 죽고 못 살며 서로 아끼며 예쁘고 성실하게 살아가던 사이었으니 어디 쉽사리 잊어지겠습니까?

그동안 우리 차서방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지요.“

”사부인!

실은 그래서 결정을 내린 것이지만.........사실 승인이를 남자 혼자 손으로 키우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네!

그렇겠지요.

지금 우리가 키워도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아이이니............

저희가 사정이 웬만하면 그 아이라도 키워보려 했지만 어디 형편이 그리 되어야지요.“

“왜 안 그러시겠습니까?

그 동안도 너무 고생이 많으셨는데............

그래서 승인이를 기관에 맡겨보려고 합니다.“

이여인은 큰 아들에게서 들은 말을 자세히 해 나간다.

아무런 말도 없이 듣는 송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가여운 것!

제 애미 품에라도 한 번이라도 안겨보았더라면 덜 불쌍할 것을..........“

“사부인!

남은 가족들을 위해 그곳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지 애미라도 살아 있다면 아무리 힘이 든다고 해도 그런 결정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승미와 승리를 위해서라도 그래야겠지요.

그리고 차서방이 재혼을 하는데 있어서도 장애아를 둔 사람에게 누가 오겠습니까?

그런 곳이 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송여인은 몹시 힘들어하고 있다.

그때 마침 승인이를 안고 나온다.

“승인아!”

이여인은 승인이를 받아서 안는다.

그러나 승인이는 그저 멀거니 할머니를 바라볼 뿐이다.

“에미야!

승인이 옷과 승인이 것을 모두 챙겨라!“

“네!”

“사부인!

조만간 승미와 승리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승미는 기왕이면 방학을 이용해서 전학을 시켰으면 합니다.

이제 한창 학교에 재미가 붙은 아이를 전학을 시킨다는 것이 안 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모두 그 아이들이 타고난 운명이니 받아드려야겠지요.“

“네!

그래야겠지요.

이렇게 몸이 편찮으신데 너무 결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승인의 물건이 나오자 이여인은 승인이를 안고 일어선다.

“살펴 가십시오.

몸이 힘들어서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승인아!

할머니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해야지?“

그러나 승인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여인은 승인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승인은 잠시 주위를 둘러 볼 뿐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아무도 없어도 혼자만의 세계에서 잘 놀고 있는 모습이다.

“아범아!

승인이가 왔다.“

승재는 잠시 눈을 뜨고 어머니를 바라보다 그대로 다시 눈을 감는다.

“얘!

그래도 아빠가 되어서 아는 척이라도 해주어야 하지 않니?

내일이면 시설로 들어가는 아이인데 아무것도 모른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안아주고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승재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무심한 눈으로 잠시 아빠를 보지만 아무런 표정이 없다.

승재 역시 무심한 눈으로 승인을 한 번 바라볼 뿐 다시 자리에 눕는다.

“참으로 큰일이구나!

너 정말 그렇게 하다가 언제 네 자식들을 데리고 올 생각이냐?

지금 아이들 외할머니께서도 많이 편찮으신데 언제까지 그곳에 아이들을 맡겨둔다는 말이냐?

제발 이젠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니겠니?“

”........................“

“승재야!

너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아무런 죄도 없는 자식들이다.

엄마를 잃고 아빠마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 아이들이 뭐가 될 것이냐?

그렇다고 너 대신에 누가 그 아이들을 맡아서 길러 줄 사람이 있던?

이젠 제발 정신을 차려라!“

이여인은 아들의 모든 것이 답답하고 앞이 캄캄해진다.

승재는 어머니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생각나는 것은 아내 유미의 모습이다.

이대로 눈을 뜨지 않고 아내의 뒤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 세상 모두가 텅 빈 것 같고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승인은 먹을 것을 주면 정신없이 먹는다.

그러나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 아이다.

소 대변을 그대로 가리지 못하기에 자주 봐 주어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 채워야 한다.

갓난아기도 아니고 일일이 신경을 쓴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다.

“승인아!

쉬 마려우면 쉬라고 해야지?

지금 네가 네 살이나 되어서 기저귀를 차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니?“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여인은 그런 말을 반복한다.

정상적인 아이라면 지금 한창 말썽도 피우고 예쁜 짓도 하면서 한창 시끄러울 나이다.

그러나 참으로 조용하다.

입을 열어 말하는 것도 없고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도 없다.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는 것도 없다.

발달장애아라고 하더라도 타고난 성품이 조용한 것이리라.

다음 날 정오 무렵이 되어서 승인이를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도착한다.

“이 아이인가요?”

“네!”

이여인은 사람들이 도착을 하는 것을 보는 순간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버지는 지금 집에 계신가요?”

승원이 방으로 들어가 승재를 부른다.

“승재야!

나가 보거라!

지금 승인이를 데려갈 사람들이 너를 찾고 있다.

네 의향을 더 다짐받고자 하는 것 같다.“

승재는 몸을 일으켜 거실로 간다.

“아, 승인이 아버지신가요?”

“네!”

“다시금 묻겠습니다.

따님을 포기하시려는 마음에 변함이 없으신가요?“

”............................“

승재는 멀거니 상대를 바라본다.

그러다 갑자기 승재는 승인이를 끌어안는다.

“아뇨!

절대로 보내지 않습니다.

내 아이들 절대 그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습니다.“

승재는 순간 아내의 음성을 들었다.

‘안 돼’ 라고 외치는 아내의 음성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온다.

사람들은 승재의 행동에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아닙니다.

뭔가 잘못 아시고 오셨습니다.

내 아이를 어디를 보내겠습니까?

절대로 그 어떤 아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보내지 않습니다.“

승재는 승인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승원이 뒤를 따라 들어간다.

“승재야!

이제 와서 왜 그래?

승인이를 네가 어떻게 키우겠다는 말이냐?“

”형님!

제가 키웁니다.

제 딸들 우리 승인이가 이보다 더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내지 않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키웁니다.“

”정말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가 있겠니?“

”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자식들 아무도 그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 아내와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승원은 좋은 말로 승재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을 한다.

그러나 승재는 승인이를 품 안에서 내려놓지 않는다.

사람들은 포기를 하고 그대로 돌아간다.

비로소 승재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어머니!

아이들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는 소리냐?“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더 이상은 장모님께도 어머니께도 아이들을 맡기지 않겠습니다.

제 자식들 제 손으로 키우겠습니다.“

승재는 승인이를 안고 문 앞으로 나선다.

“잠시 기다려라!

내가 데려다 주겠다.“

승용차가 없는 승재였다.

승원이는 동생과 조카들을 데려다 주려고 나선다.

“형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승재는 형님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세 아이를 데리고 집에까지 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이들의 짐도 있을 것이다.

승원이는 승재를 태우고 길을 나선다.

“승재야!

정말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이냐?“

”형님!

그동안 제가 아이들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 슬픔에만 빠져 있느라고 엄마를 잃고 슬퍼하고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보다도 더 슬프고 고통스러운 내 자식들 생각을 하지 못한 못난 아빠였습니다.

이제는 제 삶의 모든 것을 제 자식들에게 걸겠습니다.“

”참으로 장한 생각이다.

허나, 힘든 일이 있으면 형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네!

그러겠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도움을 받겠습니다.“

승재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들어서자 송여인과 그집 며느리가 놀라는 눈으로 바라본다.

“장모님!

그동안 너무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제 아이들을 데려 가겠습니다.“

”자네, 정말 그래도 되겠는가?“

”네!

제 자식들 제 손으로 열심히 키우겠습니다.

너무 오래 떨어져 부모의 정이 그리운 아이들입니다.

온 생애를 바쳐 사랑을 주고 최선을 다해서 키우겠습니다.“

송여인은 승재의 손을 잡는다.

“미안하네!

내가 도움을 줄 수가 없어서 정말 미안하네!

이제 유미는 잊고 아이들을 데리고 새 출발을 하시게!

좋은 여자 만나 아이들에게도 좋은 엄마를 만들어주고.........“

“아닙니다.

유미는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글: 일향 이봉우

 

 

 

 

 

[연재소설] 아빠의 바다ㅡ5회|

 

제 5장,

송여인은 멍하니 사위의 얼굴을 바라본다.

저 소리가 무슨 말인가 하는 의아스러운 얼굴이다.

“장모님!

비록 유미의 몸은 떠나갔지만 유미는 영원히 제 가슴에 살아 있습니다.

평생을 제 곁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유미는 저와 제 아이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제야 송여인은 승재의 말뜻을 알아듣는다.

“고맙네!

자네가 그렇게 우리 유미를 생각하고 사랑해준다니 우리 유미는 죽어서도 참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 편안하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주고 아이들에게 좋은 새엄마를 만들어 주게!

자네 또한 행복하고 좋은 세월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는 지금 이대로 만족스럽습니다.

유미가 남기고 간 우리 딸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승인이는 유미의 생명과 바꾼 자식입니다.

절대로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제 손으로 훌륭하게 키우겠습니다.“

“차서방!

고맙네!“

송여인은 눈물을 보인다.

승재의 마음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마침 승미가 학교에서 돌아와 아빠를 본다.

“아빠!”

“우리 승미 학교 다녀오는구나!”

승미는 아빠의 품안에 안긴다.

“승미야!

이제는 승리하고 아빠와 집으로 가야지?“

“정말?

정말 우리 집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

동생들하고 아빠하고 살아가는 거다.“

”네!

근데 학교는요?“

”학교는 전학을 해야지.

집에서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으니 그곳으로 전학을 가야 하는데 괜찮겠니?“

“네!

아빠하고 살면 저는 괜찮아요.“

“고맙구나!

이제 아빠는 우리 승미만 믿고 산다.

동생들도 잘 돌봐줄 수 있지?“

“네!”

송여인은 아이들의 책과 옷 그리고 소지품들을 챙긴다.

“장모님!

자리가 잡히고 나면 모시러 오겠습니다.“

”아닐세!

내가 몸이 괜찮아지면 찾아가겠네!

이렇게 자네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니.........“

또 다시 송여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둘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세월이었다.

송여인은 아이들을 보내면서 한없는 눈물을 흘린다.

가슴이 아프고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다.

“승미야!

승리야!

아빠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흐느끼며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있는 송여인이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방학을 하면 할머니 보러 올게요.“

”그래, 내 새끼들!

불쌍한 내 새끼들!“

두 아이를 당신 가슴에 품어 안는다.

한참을 오열을 터트리는 송여인이다.

“고모부님!

이것을 가지고 가세요.

당장 저녁부터 반찬을 하셔야 할 터인데 준비된 것이 없으실 것입니다.

있는 대로 챙겨 보았습니다.“

며느리는 냉장고에 있는 김치와 반찬들을 챙겨서 준다.

“고맙습니다.

그동안의 신세도 있는데 이렇게 생각을 해 주시니 더욱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네!

힘내시고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살아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들의 헤어짐은 눈물바다를 이룬다.

승원이는 그런 동생의 처갓집을 보면서 참으로 정이 많은 사람들임을 실감한다.

그렇게 승재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온 것은 저녁이 조금 못되는 시간이다.

집을 이사시켜 놓고 반년이나 비어있던 집이다.

모든 것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승재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 보니 그런대로 집안이 꽉 차는 느낌이다.

“유미야!

이 모습 보이지?

지금은 이렇게 초라한 것 같지만 더욱 열심히 노력을 해서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울게!

항상 우리 곁에서 지켜주면서 나를 도와 줄 거지?“

마치 아내가 곁에 있는 것처럼 말을 한다.

승원은 잠시 정리를 도와주고 돌아간다.

승재는 저녁을 준비한다.

그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집안일을 아내와 둘이서 함께 해 왔던 승재였다.

밥이고 반찬이고 청소며 빨래를 서로서로 손이 나는 사람이 하면서 그렇게 둘이서 무엇이든 함께 해 왔던 세월들이었다.

승재는 집안일이 서툴지 않다.

아이들을 위해 밥을 하면서 처남댁이 싸준 반찬들을 꺼낸다.

김치하고 물김치 그리고 여러 가지 밑반찬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들이 있다.

찌개나 국이 없어도 충분하게 상을 차릴 수 있는 반찬들이다.

집이 좁아 식탁을 놓지 못하고 상을 내려서 차린다.

“아빠!

제가 도와드릴게요.“

승미가 팔을 걷어붙이고 돕겠다고 나선다.

“승미야!

이런 것은 아빠도 잘 할 수 있다.

우리 승미는 동생들을 돌봐주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한다.“

“네!

아빠!

저도 설거지는 할 수 있어요.“

“아직은 안 돼!

우리 승미가 조금 더 크면 그때는 아빠가 부탁을 할게!

지금은 밝고 명랑하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승미의 모습이 보고 싶다.

우리 엄마가 없어도 우울해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자.“

“네!

아빠가 있고 동생들이 있어서 우울하지 않아요.

이렇게 우리 집이 있는데 그리고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잖아요.“

“그래!

우리 승미가 그런 것도 아는 것을 보니 아빠도 마음이 놓인다.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우리 사랑하는 딸들을 열심히 키워줄게!“

그렇게 저녁을 준비하면서 큰 딸인 승미와 그런 말들을 주고받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들이 피곤했던지 일찍 잠이 든다.

방이 두 개지만 안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불을 깔고 아이들을 눕힌다.

아직은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그동안 떨어져 있던 오랜 세월동안 보살펴주지 못했던 딸들과 함께 한 방에서 지낼 생각이다.

아이들의 잠자리 습관도 알고 식성도 알아볼 생각인 것이다.

아이들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 승재는 거실 겸 주방인 곳으로 나간다.

“여보!

지금 우리 딸들이 모두 잠이 들었소.

얼마나 아름답고 예쁜 모습인지 모르겠소.

이런 모습 당신이 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아미 지금 당신이 모두 보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여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 딸들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그런데 자꾸만 당신 모습이 그립고 보고 싶소.“

승재는 자신의 마음을 노트에 적어 내려간다.

다음날 이여인이 온다.

반찬과 시장을 봐 가지고 온 것이다.

“어머니!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니?

그리고 오늘 승미의 학교 문제로 나가봐야 할 것이 아니냐?“

”네!

우선 급한 것이 승미 학교 전학문제입니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볼 일을 다 보고 오너라!"

승재는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승미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이여인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집안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간다.

여자의 손길이 필요한 집안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그런대로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이다.

작은 방을 아이들의 방으로 정리하고 안방 역시 아들이 쓰기 좋게 정리를 한다.

또한 유미의 옷과 물건들을 한 곳으로 모아 둔다.

이제는 모든 흔적을 없애야 할 것이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끌어안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산 사람들을 살아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할머니!

여기가 우리 방이에요?“

승리는 작은 방을 보며 말을 한다.

“그래, 이제 이 방에서 언니하고 함께 잘 수 있지?”

“네!

근데요 아빠가 모두 같이 잔다고 했어요.“

”그랬어?

그것도 괜찮겠다.

그럼 언니가 공부할 때 이방에서 하면 되겠다. 그치?“

“네!

할머니 근데 저는 어린이집 안가요?“

”왜?

어린이 집에 가고 싶어?“

”네!“

“우리 아빠가 오면 물어볼까?”

“네!

근데 승인이가 응가 했나봐요.

냄새 나요.“

“그래?”

이여인은 방으로 들어가 본다.

아이의 변 냄새가 난다.

“우리 승인이 응가 했어?

어디 보자.

할머니가 볼까?“

승인이는 눕혀 놓으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다.

변을 싸 놓고도 말을 하지 않는다.

“승인아!

응가 했으면 말을 해야지?

우리 승인이 이젠 아기 아니잖니?“

이여인은 승인이를 안고 욕실로 간다.

아이를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힌다.

네 살짜리의 키와 몸무게를 가지고 이제 한 살짜리 어린아이의 행동과 사고력이다.

이여인은 우선 승인이의 대소변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돌전에 모든 것을 가리는 아이들도 많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 인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들에게 알려주고 계속되는 훈련을 통해서 인지를 시켜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목욕을 하고 난 승인이는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웃음을 짓는다.

“승인아!

개운하지?“

아기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천진스럽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지금의 네 모습이 마치 천사처럼 아름답기만 하구나!“

이여인은 승인이의 모습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승리야!

우리 승리도 할머니가 목욕을 시켜줄게!“

”네!“

승리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온다.

두 아이를 목욕을 시키고 빨래를 모두 해서 넌다.

그러고 나서 두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준다.

목욕을 하고 배가 부른 승리와 승인이는 잠이 든다.

두 아이가 잠이 들고 나서야 이여인은 주방을 모두 정돈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하나하나 며느리의 손때가 묻고 정성이 가득 배여 있는 것들이다.

모든 것에서 며느리의 모습이 묻어나는 것만 같다.

“휴!

불쌍한 것!

백년을 살 것처럼 이렇게 모든 것을 준비하더니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

당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여인은 잠시 아픈 가슴을 진정시키려 일손을 멈춘다.

글: 일향 이봉우

 

 

 

 

 

 제 6장,

승재는 일주일째 승미를 학교 앞에까지 데려다 준다.

아직은 낯설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고 학교다.

“아빠!

이젠 저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정말 그럴 수 있겠니?“

”네!

이제는 동네도 많이 익숙해졌고 학교도 혼자서 올 수 있어요.

학교 끝나고 나면 저 혼자서 학교에 와 보기도 했어요.“

”그랬구나!

우리 승미가 이제는 다 컸네!

그럼 내일부터 승미가 혼자서 학교에 오는 거다.“

”네!“

승재는 그런 승미가 대견스럽다.

집안도 모두 정리가 되어 불편함이 없다.

이제는 무엇보다 돈을 벌어야 한다.

다행이 부조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왔는지 형님이 챙겨서 통장으로 넣어주신 돈이 아직은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다.

승재는 학원을 생각해 보지만 아이들을 맡겨둘 곳도 없고 늦게까지 강의를 해야 하는 날들이 많아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학원에서는 언제든지 나와 달라는 요청이 자주 온다.

낮의 한 두 강의만 가지고는 생활이 되지 않는다.

또한 아내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열정이 사라진 느낌이 든다.

승재는 많은 고심을 한다.

승리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승인이를 데리고 해 나갈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지만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승인이에게 대 소변을 가리는 연습을 꾸준히 시키고 있다.

시간을 보면서 승인이를 변기에 앉히고 변을 보게 하는 훈련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직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변기에 앉혀 놓으면 쉬야를 한다.

승재는 승인이를 위해서 자신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우선 무엇보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승리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나서 승인이를 데리고 시장을 돌아본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함이다.

자유 시간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사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어떤 장사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도 않고 있다.

장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승재로서는 어떤 느낌조차 오질 않는다.

승재는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시장과 동네를 돌아본다.

취업을 한다는 것은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사로 생각을 굳히기는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승원이 역시 동생이 어떤 장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고심을 한다.

동생이 아이들 데리고 살아가려면 무엇인가는 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의 형편이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어머니를 가계시게 하면 마음을 놓고 다시 학원 강사로 나갈 수 있지만 자신의 집에도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하고 승재의 집이 비좁기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에 한숨을 내 쉰다.

“형님!

아무거나 시작을 해 볼까 합니다.“

”아무거라 하더라도 점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차가 있어 돌아다닐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어떻게 시작을 하겠다는 말이냐?“

”우선 조그만 용달을 구입할까 합니다.

다행히 면허가 일종이니 트럭을 운전해도 되니까 조그만 트럭을 구입해서 어떤 물건이든지 받아서 팔아볼까 하는 생각입니다.“

”승인이를 태우고 다닐 생각인 것이구나?“

”네!

아무래도 승인이를 두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지 말고 네가 장사를 하는 동안 어머니께 맡기렴!“

“형님!

이제 제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어머님의 연세도 있으신데 승인이를 언제까지 돌보시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있는 그대로 부딪치면서 살아보겠습니다.“

승재는 2.5톤의 트럭을 할부로 구입을 한다.

그동안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요령과 판매하는 모든 것을 알아본 승재다.

아이들이 잠이 들어 있는 새벽에 차를 몰고 도매시장으로 가서 채소를 받아온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승미와 승리에게 아침을 먹이고 보내고 나서 도시락을 준비한다.

매일 밥을 사 먹을 수도 없지만 승인이를 데리고 식당으로 갈 수도 없다.

며칠을 그렇게 돌아다녀보지만 남는 것이 없다.

늘 물건이 남아 있기에 이득이 없다.

채소들은 다음날이면 팔수가 없다.

남은 채소들을 형님 댁에 드리고 온다.

어머니의 손을 거쳐 반찬이 되어 상에 오르기는 하지만 수입이 별로 없다.

멀리까지 차를 끌고 나갈 수 없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빨리 상해버리는 야채들을 가지고 장사를 한다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승재는 다시 며칠을 고심을 한다.

이 상태라면 차의 할부금조차 갚아나갈 수가 없다.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라 그런지 사과와 귤이 나오기 시작한다.

승재는 다시 과일로 물건을 구입한다.

제 철에 맞는 과일들을 구입하고 나서 멀리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동네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장사를 한다.

승미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를 찾아서 나와 본다.

“아빠!”

“오늘 공부 잘 했어?”

“네!”

“시간을 보고 승리를 데리러 가는 것 잊지 말고.”

“네, 아빠!”

“승리를 데리고 깨끗하게 씻고 공부하고 있어!”

승재는 과일을 봉투에 담아서 승미의 손에 쥐어준다.

승미는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간다.

과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과일을 들려 보내도 좋은 것을 골라서 보낸다.

한 개를 먹이더라도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다.

팔고 난 찌꺼기를 먹이며 사랑하는 딸들을 키우고 싶지 않다.

이득이 덜 된다고 해도 우선 내 딸들에게 제일 좋은 것을 먹이며 장사를 한다.

처음에는 별로 신통치 않던 장사는 날짜가 지나가면서 조금씩 매상이 오른다.

또한 꾸준한 훈련 덕인지 승인이는 변을 가리게 된다.

하루 종일 차안에 갇혀 있는 승인이를 위해 연필과 노트를 준다.

승인이는 그 노트를 가지고 무언가를 그리며 심심하지 않게 혼자서 놀고 있다.

가끔 차안을 들여다보면 혼자만의 시간에 열중해 있는 승인이의 모습이다.

하루 종일 보채는 법도 없다.

과일을 깎아서 주면 알아서 먹곤 한다.

승재는 오전 시간이면 승인이를 위해 장애자를 위한 교육을 받으러 간다.

차 안에 먹을 것과 함께 두고 한 시간의 교육을 받고 나온다.

이제 저녁이면 승미는 밥을 챙겨서 승리와 함께 찾아 먹곤 한다.

늦은 밤 시간이 장사가 되는 시간이라 늦게까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하루 두 끼의 밥을 싸 가지고 나오기에 승인이를 먹이고 배가 고프면 아무렇게나 한 술 떠먹곤 하는 승재의 삶이다.

이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사과와 배는 며칠은 둔다고 해도 팔 수 있고 귤 역시 제철이기에 잘 팔려나간다.

그러나 하루 종일 차 안에 있어야 하는 승인이가 걱정스럽다.

아무리 옷을 많이 입히고 담요로 둘러씌운다고 해도 차의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지 않으면 차안은 그대로 냉동고가 된다.

가끔씩 차의 시동을 걸고 추위를 녹여주곤 한다.

“아빠!

다음 주에는 방학을 하니까 승인이를 데리고 나가지 않으셔도 되요.“

승미의 어른스러운 말이다.

“정말 승미가 승인이를 봐 줄 수 있겠어?”

“네!

이제 승인이가 기저귀를 차지 않아도 되니까 봐 줄 수 있어요.

먹을 것도 제때에 챙겨줄게요.“

“고맙다.

아빠가 우리 승미가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을까?“

“아빠!

승미가 어서 더 컸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빠가 매일 승인이를 데리고 다니시지 않아도 되는데요.“

“그래!

이제 조금만 크면 승인이도 혼자서 있을 수 있을 거다.

그때까지 우리 서로 노력하면서 살아가자.“

승재는 아빠를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승미가 사랑스럽고 대견하다.

아내인 유미를 그대로 닮은 모습의 승미였다.

겨울을 보내면서 승재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간다.

곱고 매끄럽던 승재의 손마디는 거칠어지고 투박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여인은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진다.

미대를 나온 아들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가끔씩 아들의 집을 둘러보며 먹을 것을 해 놓고 집안을 말끔히 청소해주는 정도의 보살핌을 주고 있지만 승재는 그런 것까지도 마다한다.

“어머니!

이런 추운 날씨에 오시지 마십시오.

이제는 제 힘으로 충분히 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시다 넘어지시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아무리 그런다고 어떻게 오지 않을 수가 있니?

내 새끼들을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단 말이냐?“

”어머니!

어머니가 건강하시게 지켜봐 주셔야 저희가 힘이 납니다.

만일 어머니가 다치시거나 병이라도 드시면 무슨 힘으로 용기를 내겠습니까?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럽습니다.

겨울 동안이라도 오지 말아주세요.“

이여인 또한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

“오냐!

승미가 곧잘 너를 도와주고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거라!“

”네!

형님하고 자주 연락을 하고 있으니 곧 바로 아실 것입니다.

저는 이제 다른 생각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제 자식들 남부럽지 않게 올바로 키우는 것에 제 삶을 모두 걸었습니다.

누구보다 더 반듯하고 올바른 사람으로 키울 생각입니다.“

이여인은 아들의 고생이 늘 마음이 아파온다.

장사를 그만두고 마땅한 사람과 만나 아이들을 맡기고 학원으로 돌아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결코 재혼을 하지 않겠다며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이 추위에 밖에서 떨면서 고생을 하며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천 만 갈래 찢어지는 통증이 일어난다.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고생스러울지 애가 타들어가는 이여인이다.

없는 살림이지만 막내가 되어 더욱 애지중지 곱게 키운 아들이다.

재산이라도 있다면 점포라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 있는 재산도 없고 보니 그저 가슴만 새카맣게 타 들어간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과는 달리 승재는 장사에 요령이 조금씩 터득하고 단골손님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는 재미에 추위도 견디며 장사를 한다.

과일이 얼지 않도록 보온덮개를 단단히 씌우고 나서야 장사를 마무리 한다.

일기예보에 내일부터 당분간 강추위가 있을 것이라는 예보다.

그런 강추위 속에서는 과일을 내 놓을 수가 없다.

얼기만 하면 그대로 모두 버려야 하는 것이다.

밤이 깊은 시간이다.

아이들은 모두 잠이 들어 있다.

하나하나 얼굴을 보면서 이불을 다독여준다.

“유미야!

너무 춥다.

이 추위가 가실 때까지 며칠은 쉬어야겠다.

우리 딸들과 무엇을 하고 며칠을 보낼까?

만일 당신이 있었다면 무엇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우리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지?

늘 시간에 쫓기고 바쁘게 살아온 우리였지.

그래서 가족들끼리 어디 여행도 가본 적도 없었지?“

승재는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떠올려본다.

방학이면 특강으로 더욱 바쁘게 살아왔던 지난날들이다.

남들이 휴가를 떠나 피서를 가는 계절이면 더욱 바쁘고 숨 가쁘게 살아왔던 지난날들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모두들 겨울 여행을 떠나지만 그런 것은 자신들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들이었다.

“우리가 참으로 바보처럼 살았었니?

우리는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온다고 자부하고 있었지?

그렇게 당신이 일찍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인 줄 알았다면 결코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야!

좀 더 아름답고 멋지게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모든 것은 후회를 한들 이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승재는 한자 한자 정성을 다해서 써 내려 간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매일 자신의 마음을 써 내려가는 승재였다.

그 시간은 오직 유미와의 단 둘만의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는 승재다.

하루의 일과를 보고하고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순간들이다.

“여보!

정말 보고 싶다.

그리움이 내 온 몸을 떨리게 한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지난날들이 너무나 그립다.

여보!

사랑해.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내 마음 알고 있지?“

승재는 때때로 그리움에 몸부림을 치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어 몸속의 피가 마르는 것만 같다.

글: 일향 이봉우

 

 

 

 

 제 7장,

 

겨울 동안 장사하는 날보다 집에 있는 날이 더 많다.

영하 십도 이상 내려가면 과일을 내 놓을 수가 없다.

길거리에서 과일을 내 놓으면 금방 얼어버린다.

승재는 장사를 나가지 않으면 승인이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무수히 반복적인 말과 행동을 시키면서 아이의 변화를 본다.

승인이는 조금씩 변화를 보이지만 그것은 아주 미미한 것이다.

이제 아빠를 보면 눈을 빛내고 아빠를 부른다.

먹는 것도 자신의 손으로 먹곤 한다.

아무리 밥을 흘려도 도와주지 않고 내 버려둔다.

이제 대소변은 확실하게 가릴 줄 알게 된다.

화장실을 가서 변기에 앉곤 한다.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게 아이들의 변기를 놓아 주었기에 혼자서도 충분하게 일을 볼 수가 있기에 모른 척 하지만 때로는 미처 옷을 내리기도 전에 볼일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승재는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차분한 음성으로 수없이 반복을 하며 이렇게 급하기 전에 와야 한다는 것을 인지시킨다.

승인이는 종이와 연필만 주면 하루 종일이라도 종이위에 무엇인가를 그린다.

처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던 승재도 조금씩 승인이가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하고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림을 그려나가는 모양이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보여주면서 읽어주던 그림동화책에서 보던 것들과 비슷한 모양이다.

승재는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책을 읽어주곤 한다.

장사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승인이의 교육 또한 더욱 중요한 일이다.

승미나 승리는 알아서 잘 해나간다.

그 해 겨울을 넘기면서 승인이는 조금씩 달라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림을 그리는 것 역시 무엇을 그렸는지 조금씩 알아볼 수가 있다.

“승인아!

네가 하고 싶은 것 아빠가 무엇이든지 뒷받침을 해 주마!

어떤 것을 하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아빠가 더 노력을 하마!“

승인은 아빠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그림 그리는 것에 열중한다.

승재는 이제 스케치 북과 색연필을 사 준다.

색상 표현 역시 승인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둔다.

아직은 어려서 학교를 보내지 못하지만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특수학교를 보낼 생각이다.

승재는 자신이 받은 교육대로 승인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나간다.

무작정인 교육보다 자신이 받은 교육방식으로 해 나가다 보니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지

만 승인이 조금씩 눈에 보이게 변하고 있다.

하루 종일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승인은 아빠와 언니소리를 곧잘 한다.

“승인아!

언니 어디 있어?“

승재는 따뜻한 음성으로 묻는다.

승인은 이제 아빠가 묻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손가락을 펴서 승미와 승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렇구나!

우리 승인이가 이젠 아주 잘 하네!“

승인은 아빠의 칭찬하는 말을 듣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운다.

구정이 다가오자 장사는 활기를 띠운다.

그동안 장사를 하지 못했던 만큼 승재는 더욱 부지런히 장사를 한다.

“승미야!

아빠가 늦어도 동생들 데리고 잘 할 수 있지?“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저도 잘 할 수 있어요.“

”고맙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아빠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것 잊지 말고.“

“네!

아빠, 힘내세요.“

승미는 나이보다 어른스럽다.

그렇게 키우지 않으려 했는데 승미는 참으로 어른스럽게 아빠를 생각하고 동생들을 챙겨주며 집안의 기둥노릇을 해 오고 있다.

승재는 자신이 승미를 얼마나 믿고 기대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승미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아직 철부지처럼 부모에게 의지하고 떼를 쓰고 말썽을 부릴 나이다.

그런 승미가 어른처럼 동생들을 돌봐주면서 아빠에게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애처롭다.

이제 승재는 오로지 아이들에게만 모든 신경을 쓴다.

외롭고 허전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사치일 뿐이다.

아이들이 있는 이상 자신은 살아야하는 의무가 있고 삶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야 한다.

고통도 번민도 없애주고 기쁨과 환의와 행복을 주어야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면서 승재는 최선을 다해서 장사를 해 나간다.

다행히 이제 장사는 그런대로 자리가 잡혀 오가는 길목에 늘 과일장사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을 하게 된다.

좋은 물건을 남들보다 이익을 조금 덜 남기고 팔고 있다.

늘 웃는 모습으로 상냥하고 친절하게 손님들에게 다가간다.

승재는 물건을 받아오면 제일 먼저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아이들의 몫으로 남긴다.

자신의 삶의 목표이고 희망인 자식들이다.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빠의 그런 마음을 안다는 듯 아이들은 과일을 무척이나 잘 먹는다.

자식들의 입에 좋은 과일이 들어가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승재는 온 몸에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아빠!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입안에 과일을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승리가 하는 말이다.

“우리 승리 맛있니?”

“네!

아빠가 주시는 것은 다 맛있어!“

“정말?

정말 그렇게 맛있어?“

”네!

반찬도 맛있고 간식도 맛있어!“

”아빠가 무지 행복하다.

우리 승리와 승미가 그렇게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아빠는 제일 행복하다.“

”아빠, 근데 우리 엄마 언제와?“

”응?

엄마는.........“

“승리야!

엄마는 안와!“

승미가 대답을 한다.

“왜 안와?

언니가 엄마는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그랬잖아?

그럼 언제 집에 와?“

”하늘나라에 간 사람은 집에 못 와!“

“왜?

아빠 정말야?

정말 엄마는 집에 못 와?“

“그래, 승리야!

엄마는 이제 집에 안 온다.

그리고 이다음에 우리는 엄마를 만나러 갈 거야!“

“우리가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승리는 하늘나라의 뜻 또한 알 수가 없다.

“그래!

아주 먼 훗날 승리도 언니도 아빠도 그리고 우리 모두 하늘나라 갈 거야!

엄마는 우리보다 아주 일찍 먼저 가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가면 안 돼?

엄마 보고 싶으면 우리가 가서 만나면 안 돼?“

”우리 승리가 엄마가 많이 보고 싶구나?“

”아빠!

어린이 집에서 친구들이 엄마가 없다고 놀려!“

“그랬구나?

그렇지만 우리 승리는 절대로 싸우거나 기가 죽으면 안 되는 것 알지?“

”응, 우리 엄마 하늘나라에 갔다고 말하면 돼?“

”그래, 그러면 되겠다.“

승재는 둘째 딸을 꼭 끌어안아준다.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 천사다.

더 이상의 아픔도 상처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더욱 부지런히 살아야한다는 결심을 하는 승재의 마음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승재에게는 소중하고 귀한 날들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세 딸들이 모습이다.

이제 아이들은 나날이 커질 것이다.

그런 모든 과정을 사랑하는 아내는 볼 수가 없다.

“유미야!

당신 대신 내가 모두 보아두었다가 이다음 우리 다시 만났을 때 소상하게 말해 줄게!

우리 딸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모두 말해줄게!“

또 다시 아내의 모습을 생각한다.

승재는 이제 이웃에 있는 점포들의 점주나 종업원들과도 친숙해진다.

손님이 뜸한 시간이면 그들에게 부탁을 하고 잠시 집으로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거나 집안을 청소하며 아이들의 간식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아내가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승재를 도와 과일을 팔아주기도 하며 손님을 상대로 장사를 해 주기도 한다.

가끔씩 그들에게 과일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 승재다.

특히 바로 앞 가게의 분식점 여주인은 더욱 승재를 챙겨준다.

추운 겨울 따끈한 오뎅 국물에 국수를 말아다 주기도 하며 아이들에게 튀김을 싸 주기도 하면서 승재가 잠시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면 신경을 써서 장사도 곧잘 해 준다.

“차씨!

혼자서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이젠 그만 죽은 사람을 잊고 재혼을 해서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차씨를 위해서나 아이들을 위해서 더 좋은 일이 아닌가 싶네요.“

황여인은 늘 그런 말을 하곤 한다.

황여인은 승재 또래의 혼자서 사는 딸이 있다.

이혼을 당하고 자식들도 빼앗긴 딸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그동안 곁에서 보아온 승재가 참으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생각을 하며 딸을 염두에 두고 같은 말을 반복을 한다.

그러나 승재는 그저 웃음으로 받아 넘기곤 한다.

승재는 꿈에도 재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내는 유미 하나뿐이다.

아이들의 엄마이고 영원한 아내 유미만이 있을 뿐이다.

“차씨!

언제까지 그렇게 혼자 살거유?“

”제 형편에 누가 오겠습니까?

딸아이 셋에다 장애자 딸을 가진 남자를 누가 거들떠보기라도 하겠습니까?“

”그런 소리 말아요.

세상에는 마음씨 착하고 희생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장애자 자식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거두어 줄 수 있는 여자들이 있지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을 맡길 수는 없지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을 제가 편하자고 고생을 시키겠습니까?

그냥 이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제일 마음이 편합니다.“

”아유!

사람을 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지 말아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혼자서 하는 고생보다 둘이서 마음 맞추어 나가면 훨씬 수월하고 힘든 줄을 모르며 살아갈 수가 있다우.“

”신경을 써 주시는 마음은 고맙습니다.

허나 재혼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젊고 아직 아이들이 다 어리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이제 나이 먹고 애들이 다 성장을 해서 각기 짝들을 찾아 떠나고 나면 그때는 어쩔거유?

그때는 이미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고 허전하고 쓸쓸해서 남은 생애를 어떻게 하겠수?“

”그때는 그때대로 또 다른 방법이 있겠지요.

지금은 이대로가 더욱 마음이 편안합니다.“

승재는 그러는 황여인이 부담스럽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한다.

황여인의 딸이 다녀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던 승재다.

그러나 승재에게는 조금도 눈여겨 볼 상대가 아니다.

승재는 황여인의 말이 신경을 쓰이기는 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는다.

황여인은 그런 승재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온갖 애를 쓰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자 포기를 하는지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재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말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귀찮게 한다는 것을 알고 단념을 한다.

봄이 되자 그런대로 장사하기가 수월해진다.

또 다시 승인이는 차 안에서 하루 종일 그림 그리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승인이를 데리고 나온다.

승인이는 아빠의 차를 타고 나오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아빠와 같이 있는 시간들이 승인이에게는 제일 편안하고 안심이 된다는 눈치다.

아빠 옆에서는 하루 종일이라도 그림 그리는 것에 실증을 느끼지 않는다.

“승인아!

이것을 먹고 하자.“

따뜻한 오뎅을 사서 차안으로 들어간다.

“춥지?”

승인이는 안춥다는 듯 머리를 젓는다.

그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것도 상당한 교육의 효과였다.

꾸준한 승재의 체계적인 교육으로 인해 이제 승인이는 가끔씩 묻는 말에 간단한 자신의 표현을 하게 된 것이다.

“아빠가 언제까지 우리 승인이를 지켜줄게!

누가 뭐라고 하던 승인이를 사랑하는 아빠 마음 알지?“

승인이는 그런 아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듯 먹는 것에 열중한다.

승인이의 모습은 천사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승재는 그런 승인이가 더욱 사랑스럽다.

비록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지만 승재에게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딸이다.

승인이의 먹는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승재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장애자라고 해도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는 아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8장,

조금 손님들이 뜸한 시간이다.

승재는 잠시 집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킨다.

막 승인이를 내리려고 하는데 누군가 승재의 등을 친다.

“차선생!”

승재는 뒤를 돌아본다.

승재가 나가던 학원의 원장이었다.

“아, 원장님!”

“내가 아쉬워서 이렇게 찾아 왔소이다.”

학원장은 그동안 수없이 전화로 승재를 불러내려 애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승재는 더 이상 학원 강사를 하지 않겠노라는 대답뿐이었다.

“원장님!

대접해 드릴 것도 앉으실 곳도 없습니다.

잠시 저의 집에 가시지요.“

”그럽시다.

이런 곳에서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겠소이다.“

승재는 승인이를 내리고 나서 황여인에게 부탁을 하고 함께 집으로 간다.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는 집이다.

“사는 곳이라고 누추합니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다 비슷한 것이 아니겠소?”

승재는 인스탄트 커피를 내 놓는다.

“원장님!

공연한 시간을 낭비하셨습니다.

지금 보시다 시피 제가 학원엘 나갈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자주 집을 들여다봐야 하고 아이들 곁을 지켜야 합니다.“

”눈으로 와서 직접 보니 떼를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겠소.

허나, 차선생!

언제까지 이런 생활도 차선생의 아까운 능력을 묻혀 둘 것이오?“

”원장님!

이제 그림에는 더 이상의 미련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활인으로 자식들을 키우는데 온 정열을 쏟을 생각입니다.

제가 화가로서 성공하는 것보다 자식들의 앞날이 더 소중하니까요.“

”허허허...........

이거야 원!“

원장은 씁쓰름한 입맛을 다신다.

남자 혼자의 손으로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다.

“차선생!

그러지 말고 재혼을 하시오.

재혼을 해서 새롭게 가정을 꾸리고 나면 아이들을 안심하고 부인에게 맡기고 차선생은 다시 강사로 일을 할 수가 있지 않겠소?“

”원장님!

우리 아이들을 다른 여자의 손에 맡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해 준다고 해도 전처의 자식을 셋씩이나 맡아서 키워줄 사람도 없겠지만 그중에서 한명은 보시다시피 장애아입니다.

제 처지에 어떻게 제게 와서 평생을 희생을 하며 살아달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무엇보다도 죽은 아내에게 배신을 할 수 없습니다.“

”차선생!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오.

이미 문선생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오.

차선생이 재혼을 한다고 해도 문선생에게 배신을 하는 일은 아니오.“

”아닙니다.

그 사람은 비록 몸은 없다고 해도 우리는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 어떤 여인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밀어내고 들어올 자리는 없습니다.

제 가슴에도 우리 가정에도 그 어떤 여자에게 내어줄 자리는 없습니다.“

원장은 승재의 확고한 말에 더 이상의 할 말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참으로 아까운 사람이다.

놓칠 수 없는 부부였다.

지금 학원에서는 모든 수강생들이 차승재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 다시 차승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느냐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하고 한 가지 약조를 해 줄 수 있겠소?”

“뭔가요?”

“행여 사정이 변하든지 마음의 변화가 생겨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을 때 절대로 다른 학원이 아닌 우리 학원으로 돌아와 준다고 약속을 해 줄 수가 있겠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다시 강단에 서는 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하고 약조를 해 주시오.

차선생의 그 어떤 요구도 모두 수용을 해 주겠소.“

”약조를 해 드릴 수는 있지만 아마 기대를 하지 않으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원장은 두세 번 단단히 약조를 받아내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승재는 부지런히 집안 청소를 하며 세탁기를 돌린다.

낮에 잠시 집으로 들어와 집안일을 해 가고 있는 승재다.

새벽에 물건을 떼러 가고 부지런히 밥을 해서 아이들 먹이고 도시락을 싸서 가지고 나가기에 시간이 빠듯하다.

손님이 없을 시간대에 이렇게 잠시 집으로 들어와 집안일을 한다.

집안은 매우 청결하고 깨끗하다.

어머니 이여인은 집안을 둘러보고 혀를 찬다.

“쯧 쯧 쯧!

사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렇게 모두 치우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플까?

내가 행여 손을 댈까 싶어 잠도 자지 않고 이렇게 치우며 살아가겠지.“

이여인은 아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억장이 무너진다.

아무리 좋은 말로 알아듣도록 권유를 해도 재혼을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더욱 답답하고 가슴이 무너지듯 아파온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이렇게 살 것인가?

당신이 와서도 손을 댈 곳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해 놓고 살아간다.

웬만한 여자들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되어 있는 집안이다.

반찬도 가끔 김치만 해서 가져다 줄 뿐이다.

다른 반찬들을 가지고 올 필요도 없다는 듯 여러 가지 반찬들을 해서 아이들을 먹이며 살아가고 있는 아들이다.

모든 것은 아이들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양복에 와이셔츠 넥타이는 이제 모두 소용이 없다.

늘 막바지와 잠바 타입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다.

언제나 말끔한 양복차림으로 살아왔던 아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동네에서 흔히 보는 장사꾼의 차림이다.

다행이 아이들은 아무런 말썽도 없이 아픈 곳도 없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 되곤 한다.

승인이도 처음보다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어 조금 안도의 숨을 내 쉰다.

늘 걱정스럽고 아픈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 아들의 삶이지만 이젠 당신이 간여할 곳이 없을 정도로 생각보다 잘 해 놓고 살아가는 아들의 삶이다.

“어머니!

힘드신데 그만 오세요.

제가 시간이 나는 대로 들리겠습니다.“

승재는 어머니께 과일 봉지를 들려준다.

“싫다.

네가 고생을 하며 장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찌 가져다 먹을 수가 있니?

어서 하나라도 더 팔아서 돈을 만들어!“

“어머니!

자식으로 부모에게 이 정도도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들고 가세요.“

”아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다.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받아갈 수가 없다.“

이여인은 한사코 봉지를 받지 않는다.

“어머니!

형님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장사도 형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형님이 자주 이곳에 오셔서 돈을 내고 사 가십니다.

그러니 이것을 받아 가셔도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

네 형이 들고 오는 것도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고 네 말대로 이젠 자주 오지 않겠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화로라도 말을 하거라!“

이여인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선다.

아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그 과일을 들고 가서 어찌 마음 편안하게 먹을 수가 있을 것인가?

승재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이 승인이라도 돌봐 줄 수 있는 형편이 된다면 어머니는 승인이를 데리고 가셨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승재다.

자신을 보는 어머니의 눈빛은 언제나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에 촉촉하게 젖어 있다.

승재는 늘 그런 어머니께 죄스러운 마음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부지런한 삶이다.

고달픈 것이 무엇인지 외롭고 쓸쓸한 것이 무엇인지 느낄 사이도 없이 시간이 간다.

여름 장사로 수박이 한창이다.

더운 날일수록 잘 팔리는 수박이다.

아이들에게도 제일 좋은 것을 골라 먹기 좋게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땀을 많이 흘리는 더운 여름에는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수박을 먹이고 있다.

한창 장사를 하고 있는 시간 휴대폰이 울린다.

번호를 보니 처갓집이다.

“응?

무슨 일이지?“

웬만한 일에는 전화를 해 올 사람들이 아님을 알고 받는다.

“매제!”

처남의 음성이다.

“아, 형님!”

“어머님께서 운명을 하셨네!”

“네?

장모님께서 운명이라니요?“

승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편찮으시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이렇게 돌아가시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조금 전 운명을 하셨네!”

“알겠습니다.

제가 장사를 접고 가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네!

장사 끝나고 나서 잠시 들려주어도 된다네!“

“형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저도 어머님의 자식입니다.

부모의 상을 당해서 먹고 살자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미안하네!“

승재는 전화를 끊고 손님이 가고 나자 장사를 접는다.

“아니?

이 시간에 왜 장사를 거두는 겁니까?“

황여인이 의외라는 듯 묻는다.

“장모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부모의 상을 당했는데 장사를 할 수는 없지요.“

“아, 그런 일이 있구만!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

승재는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위해 밥을 하고 반찬을 해 놓는다.

승미와 승리를 위해서 준비를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승미는 아빠가 집에 있는 것을 보며 놀란다.

“아빠!

왜 이 시간에 집에 계세요?“

"승미야!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지금 아빠는 가 봐야 하니까 네가 승리하고 둘이서 있을 수 있지?

밥도 챙겨 먹일 수 있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

아빠가 반찬도 해 놓았으니 승리하고 둘이서 있을 수 있지?“

”네!“

승미는 눈물을 흘린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는 승미다.

몇 년을 길러주셨던 외할머니다.

“아빠!

어떻게 해요?“

”울지 마라!

그리고 너희들은 학교를 가야 하니까 집에 있어야 한다.

내일 새벽에 아빠가 와서 학교를 보낼 줄 것이니까 승리를 데리고 자야 한다.

아빠 말을 알겠지?“

“네!”

승재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서 승인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승인이까지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승재는 어디를 가든 승인이를 데리고 다닌다.

어디에서도 말썽은커녕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승인이다.

영안실에는 이미 조문객들이 와 있다.

“형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때까지 연락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미안하네!

나도 어머님께서 이렇게 가실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네!

갑자기 어머님 상태가 위급해서 경황이 없었네!“

“그래도 운명을 하시기 전이라도 연락을 주셨으면 어머님 모습이라도 뵈었을 것을요.”

승재는 고인의 영정 앞에 깊은 절을 한다.

갑작스러운 장모님의 죽음 앞에 할 말을 잊는다.

두어 번 잠시 다녀왔을 뿐이다.

더욱 수척해지신 장모님의 모습이 늘 마음에 걸리곤 했었다.

글: 일향 이봉우

 

 

 

 

 

제 9장,

아내가 죽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셨던 장모님이시다.

늘 딸을 생각하며 아픈 가슴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계셨던 것이다.

“장모님!

어찌 이리도 빨리 저희들 곁을 떠나시는 것입니까?

우리 승미와 승리 그리고 승인이가 자라는 것을 보시지도 않으시고 무엇이 그리도 급했던 것입니까?

지금 유미를 만나고 계신 것인가요?“

승재는 한참을 엎드려 통곡을 한다.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는가?

자신의 아이들 셋을 모두 키워주신 장모님이시다.

유미가 그렇게 쓰러지고 나서 얼마나 가슴아파하시며 눈물로 보낸 세월이셨던가?

승재는 자식의 도리를 해 나간다.

문상객들을 받고 장례절차를 준비해 나간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잠시 집에 들려 승미와 승리를 깨우고 아침을 먹이고 나서 학교와 유치원으로 보내고 나서 다시 영안실로 간다.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는 왜 죽음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하는가?

죽음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갈라놓게 만들고 있다.

승재는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낀다.

산다는 것과 죽음에 대해서 깊은 절망감을 느끼며 장례절차를 따라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승인이는 앉혀 놓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또 다시 그림에 열중한다.

주변이 시끄럽든 말든 곡소리가 나든 말든 승인이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빠져 나오지 않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승인이의 모습이다.

발인이 있는 날 승재는 몸을 뺄 수가 없다.

이른 아침 전화를 해서 승미를 깨운다.

“승미야!”

“아빠?”

“그래, 잘 잤니?”

“네!”

“아빠가 오늘은 아침에 집에 갈 수가 없다.

지금 일어나서 승리를 깨워서 세수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밥을 먹일래?“

”네!

그렇게 할게요.“

”조금 이른 시간이더라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학교에 가도 되겠지?

아빠가 유치원에 전화를 했으니까 일찍 데려다 주어도 된다.“

“아빠!

그렇게 할게요.“

”고맙구나!

아빠가 이따가 집에 갈게!“

“아빠!

우리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승리하고 잘 하고 있을 것이니까요.“

”우리 큰 딸 최고다.“

승재는 승미가 너무 고맙고 미더워진다.

맏딸이라서 그런지 아빠의 마음을 너무나 잘 헤아리고 있다.

승재는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발인 준비를 서두른다.

승재의 걱정과는 달리 이여인이 이른 아침에 아이들만 있는 집으로 온다.

“할머니!”

“오, 벌써들 일어났구나!”

“네!

아빠가 전화를 해서 깨워주셨어요.

지금 승리를 씻기고 밥을 차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랬구나!

할머니는 걱정이 되어 일찍 왔는데 우리 승미가 다 했구나!“

이여인은 집안을 살펴본다.

설거지가 밀린 것이 없다.

“승미가 설거지도 다 했구나?”

“네!

이제는 설거지는 잘해요.“

”참으로 기특하고 장한 일이다.

이제 할머니가 왔으니 넌 걱정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서 학교에 갈 준비를 해라!“

“네!”

그렇게 승미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승리의 유치원 차가 오는 곳까지 데려다 준다.

밀려 있는 빨래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나서야 잠시 숨을 돌린다.

어제 사부인의 영안실을 다녀온 이여인이다.

아들이 그곳에 있으니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이른 아침에 온 이여인은 사부인의 죽음에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딸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나서 결국 큰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병을 얻은 사부인이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온다.

딸이 얼마나 그립고 보고팠으면 그렇게 딸을 따라서 딸자식이 있는 곳으로 떠났을까?

혼자 몸으로 애지중지 온갖 고생을 하며 키워온 자식들이다.

남들보다 더한 아픔이었으리라.

살아 있는 자식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마음이 찢기는 듯 심한 통증이 일어나는데 죽은 자식을 생각하면 그 심정인들 어찌 말로서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여인은 벽에 걸려 있는 유미의 사진을 본다.

참으로 아깝고도 아까운 며느리다.

“애미야!

네 어머니를 왜 그리도 빨리 모시고 갔니?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사시다 가시게 도와 줄 수는 없었니?

우리 모두 너를 그리워하고 잠시도 너를 잊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니?“

이여인은 손으로 유미의 모습을 쓰다듬어 본다.

무슨 이야기를 한들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

어떤 말을 하든 공허한 울림이 될 뿐이다.

“애미야!

애비가 너를 떠나보내고 나서 아이들과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너의 빈자리까지 아이들에게 채워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니?

아이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주렴!“

이여인은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본다.

승미가 돌아오고 나서 간식을 챙겨주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승미야!

이제 할머니는 가도 되겠지?“

“네!

할머니가 계시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랬어?

우리 승미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모양이구나?“

“아니에요.

아빠도 오늘 오신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이제 조금 있으면 올 것이다.

할머니가 더 있으면 좋겠지만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니 가 봐야 할 것 같다.“

“네!

할머니 고맙습니다.“

승미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를 한다.

승재는 장모님의 삼우제까지 장사를 하지 않는다.

삼우제가 지나고 나서야 다시 장사를 시작하지만 마음이 무겁다.

“이제 나오셨네요.

아저씨가 그만 두신 줄 알고 다른 곳에서 사다 먹기는 했지만 자꾸만 아저씨 생각이 나더라고요.“

손님들의 대부분이 그런 말을 한다.

승재는 그런 손님들이 반갑고 고마웠다.

그래도 자신을 잊지 않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즐거운 마음이 된다.

또 다시 장사와 아이들에게 매달린 승재는 이제 슬픔을 느낄 사이가 없다.

해가 바뀌어 승리도 학교에 입학을 하고 여섯 살이 된 승인이를 특수교육시설에 보낸다.

승인이를 위해서 차안에서 하루를 보내게 할 수가 없다.

아침에 데려다 주고 저녁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집으로 데리고 온다.

승미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의 시간이다.

장애아들이 다니는 시설이다.

승인이는 시설에 데려다 주면 무척이나 좋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있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승재는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매일 승인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오곤 한다.

그것은 승인이를 위해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승미는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면 동생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아빠를 위하는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승미다.

동생들을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나서 동생들이 잠이 든 후에야 숙제를 하면서 아빠를 기다리는 승미다.

나이보다 너무 조죽하고 어른스러운 승미의 모습이 든든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은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준다.

이제 한 방에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자기엔 아이들이 커져버린다.

승미와 승리를 작을 방으로 보내고 승인이를 데리고 함께 방을 쓴다.

승인이는 집에 와서 계속 스케치 북에 그림을 그린다.

승재는 그런 승인이를 위해 각종검사를 받아본다.

발달장애를 가진 승인이가 과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인가?

그냥 낙서를 하는 것으로 치부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승인이는 검사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그저 무덤덤한 표정이다.

싫다거나 겁을 내는 표정도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한다.

“선생님!

발달장애아동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검사 결과 그쪽으로는 아주 탁월한 반응을 보입니다.

비록 발달장애를 가졌다 하더라도 한 쪽으로 대단히 우수한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승인이의 경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매우 집중이 잘 되고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켜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의 소견을 듣고 승재는 매우 놀란다.

그리고 기쁜 마음이 든다.

그래도 뭔가는 하나 해 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특하고 반가운 것이다.

승재는 승인이를 위해 다시 특수 교육기관을 찾는다.

다행이 그런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있다.

승재는 비로소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아이들을 몸만 키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 하나 하 나 타고난 특기와 재능이 다를 것이다.

생김새가 다르듯 아이들 저마다의 특기와 재능을 발견해서 개발해 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저 먹이고 입히며 몸만 키워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발달장애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승인이도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승재는 비로서 세 딸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한다.

무엇이건 아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동생들을 잘 거두어 주며 집안의 모든 일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맏딸인 승미는 여자로서 참한 성품이다.

그러나 그런 승미조차도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지 어떤 특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승재는 비로소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어 잘 먹이고 입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승재는 딸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로 가서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을 만나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것과 학교에서의 딸들의 성품을 알아본다.

승미는 생각하던 것과 같이 조용하고 노력하며 남을 많이 돕고 있는 성품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승리는 집에서와는 달리 무척이나 활달하고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들을 리드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는 선생님의 평가였다.

“승미야!

아빠 말을 잘 들어라!

이제부터 승미가 하고 싶은 것이 뭔가 말을 해 줄래?“

”아빠!

승미가 하고 싶은 것은 동생들 보살피고 아빠가 아프지 않으시게 해 드리는 것이에요.“

“그런 것 말고 이다음 우리 승미가 뭐가 되고 싶은지 아빠가 알면 안 될까?”

“간호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러나 지금은 동생들을 보살펴주는 일이고요.“

“그렇구나!

우리 승미 간호사가 되면 정말 아름다운 백의천사 된 것 같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겠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승리야!

우리 승리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지?“

”아빠!

저는요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그래서 아빠가 길거리에 차를 세워두지 않고 멋진 가게에서 장사를 하게 해 드리고 싶어요.“

승리의 야무진 대답이다.

“아빠가 길거리에서 차를 세워두고 장사를 하는 것이 부끄럽구나?”

“아빠!

그런 아빠가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아빠가 고생을 하시는 것이 마음이 아파요.“

”그런 것이로구나!

그러고 보니 우리 둘째 딸 승리가 많이 자랐네!

아빠는 아직도 우리 승리가 어린아기인줄만 알았더니 아니었네!“

“아빠!

저도 이젠 삼학년이에요.

아빠가 엄마도 없이 혼자서 고생을 하시면서 저희들을 키워주시는 것도 알아요.“

승재는 두 딸을 꼭 끌어안는다.

항상 아기라고만 생각하던 딸들이다.

이제는 아빠의 마음도 알아주는 딸들로 자라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유미야!

이런 우리 딸들을 지금 당신도 보고 있지?

다른 것은 바라지 않을게!

우리 딸들 건강하고 밝고 곱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 줄 거지?“

승재는 잠이 든 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아내와 이야기를 한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0장,

승재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딸들에게 세심한 신경을 쓴다.

그러나 아무리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고 해도 장사를 나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늘 아쉽고 부족한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승미가 초등학교 육학년에 올라가고 승리는 사학년에 올라간다.

더 이상은 길바닥에서 차를 대 놓고 장사를 하기에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조그만 가게 터를 얻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형인 승원과 상의를 한다.

“형님!

이제는 가게를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지고 있는 자금으로 작은 것이라도 얻어야겠습니다.“

“그래!

그동안 오랜 세월 길바닥 장사를 해 왔다.

안 그래도 어머니가 늘 너희들 걱정을 하셔서 보기에도 딱하고 안쓰럽다.

자금이 부족하면 내가 회사에서 대출을 받아서 줄게!“

“그러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큰 병 치례를 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어서 돈이 모인 것도 있고 기왕에 가게를 얻으려면 방이 딸린 것을 얻어서 아이들과 늘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방이 딸린 가게는 생각보다 비쌀 것이다.

모자라는 것은 내가 그렇게 해주마!“

“네!

일단 알아보고 나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승재는 가게를 보러 다닌다.

가게만 얻으려면 가지고 있는 돈으로도 충분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할 수 있는 가게를 원하기에 그런 곳이 잘 나타나지를 않는다.

승미가 중학교에 입학을 하기 전에 옮겨볼 생각이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

승재는 장사를 하는 틈틈이 점포를 보러 다닌다.

아이들 학교 문제로 멀리 이사를 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보니 더욱 어렵다.

승인이는 이 근처에 학교차가 운행을 하고 있어 참으로 편리하기에 더욱 먼 곳으로는 갈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가게를 보러 다니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형인 승원이 찾아온다.

“어?

형님이 이 시간에 이곳은 웬일이세요?“

”아직 구하지 못했지?“

”네?

아, 아직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지금 나하고 가 볼 곳이 있다.

다행이 이 근처에 아는 사람이 건물을 짓고 있다고 하는구나.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지만 한 달이면 완공을 본다고 하니 가서 보자.“

승원은 승재를 재촉해서 데리고 간다.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신축되고 있는 건물이다.

오층으로 된 건물이 신축 중에 있다.

미리 약속을 한 것인지 주인이 나와 있다.

“나와 계셨네요.

시간에 늦지 않으려 바삐 서둘렀는데 제가 조금 늦었나요?“

”아닙니다.

안 그래도 나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제 동생입니다.

인사를 드려라.

학교 동문의 형님이시다.“

”안녕하세요?

차승재입니다.“

“아,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형님께서 어찌나 걱정을 하고 계시던지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자, 둘러보시지요.“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이곳에 점포를 주신다면 저로서는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에 있는 가운데 칸의 점포면 좋겠습니다.“

”네!

마음에 드신다면 드리지 못할 것도 없겠지요.

그 점포에는 큰 방과 주방 그리고 작은 목욕탕도 넣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듭니다.”

승재는 점포의 크기가 조금은 크다는 생각을 하지만 안의 구조가 마음에 쏙 들어온다.

아이들과 살아가기에 큰 불편은 없을 것 같다.

자신은 가게에 작은 침상을 마련해서 잠을 자면 될 것이다.

다행이 방이 적지 않고 큰 방으로 되어 있고 주방이 현대식으로 되어 있는데다 욕실도 딸려 있어 딸들이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가 있을 것이다.

임대료가 조금은 비싸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지 않고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도 그다지 멀지 않고 특히 승인이의 특수학교 차량이 지나는 길이다.

“임대료는 다른 사람들보다 저렴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동생의 동문이신 형님을 보더라도 남들과 같은 임대료를 받을 수는 없겠지요.

이곳에서 사시는 동안 부자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계약을 하고 난 후의 사장님의 말씀이다.

처음 말했던 것보다 임대료를 낮추어 준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이 점포에서 성공을 해서 나가겠습니다.“

승재는 기분이 날 것만 같다.

형님의 신세를 톡톡하게 진 것이다.

“형님!

형님이 아니셨다면 이렇게 좋은 곳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임대료를 낮게 해 주시는 혜택을 받았으니 정말 마음이 좋습니다.“

“그래!

나도 임대료를 낮추어 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더욱 열심히 살아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네!

더욱 노력을 하겠습니다.“

건물이 완공되는 한 달 후에 입주를 하기로 한다.

승재는 바빠진다.

넓은 가게 안을 채우기 위해 큰 대형냉장고도 주문을 한다.

요즘에는 냉장고가 없이 과일 장사도 힘들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익힌 것이다.

여름이면 사과와 배를 저장해야 하고 수박 역시 시원한 것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져서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바로 먹을 수 있는 시원한 수박을 찾는다.

모든 과일들이 온도만 적당하게 맞추어주면 보관을 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

그만큼 손실이 적은 것이다.

과일의 종류 또한 골고루 갖추어 놓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다.

승재는 자신의 잠자리를 위해 가게 안쪽으로 침상을 준비한다.

이제 딸들이 다 성장을 해서 한 방을 쓰기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방안에 짐을 놓고도 세 딸들이 쓰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장사를 접고 가게를 꾸미기에 바쁜 나날을 보낸다.

승인이의 학교에 찾아가서 이사 가는 곳을 말하고 바로 가게 앞에서 승인이를 태우고 내려주기로 약속을 받는다.

가게는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기에 일부러 승인이를 데리고 나갈 필요가 없다.

다만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조금 멀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아침에 아이들을 차로 데려다 주고 나면 학원으로 가는 딸들은 학원으로 직접 가기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아빠!

학원에서 끝나면 그리 멀지 않아요.

충분히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니까 우리들끼리 다니면 됩니다.“

승미의 어른스러운 말이다.

“그래!

승리하고 꼭 함께 다니면 아빠도 안심이 되겠다.“

“네!

학원이 같으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같은 건물에 있는 학원이다.

그렇게 이사 가는 준비로 승재는 더욱 바빠진다.

이제 이사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휴일이면 이사를 가는 날이다.

휴일 아침 승재는 아이들과 함께 아침상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사를 가면 방이 하나뿐인데 괜찮겠지?”

“그럼요!

아빠하고 함께 살면 더 좋지요.“

”그래, 그런데 아빠는 가게에 아빠가 잘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제 너희들도 거의 다 컸으니 아빠하고 한 방에서 잠을 자기가 힘들지 않겠어?“

”아빠!

저희들 아직 다 크지 않았어요.

지금도 아빠 품안이 따뜻하고 포근해요.“

승미가 하는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너희들끼리 방을 써야한다.

아빠가 부지런히 노력을 해서 우리 승미가 대학을 들어가기 전에 각자 방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줄게!“

“아빠!

저희들 지금도 만족하고 행복해요.

방보다도 저희들은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거든요.“

“고맙다.

아빠는 우리 공주님들이 있어 행복하단다.

이제 다음 휴일 날에는 이사를 간다는 것 알고 있지?“

”네!“

“네!

아빠, 오늘은 나가도 되지요?“

승리가 기회가 왔다는 듯 말을 한다.

“승리가 어디 갈 곳이 있는 모양이구나?”

“네!

오늘 친구 생일인데 초대를 받았거든요.“

“그래?

참 좋겠구나!

다녀오렴!“

“헌데, 친구아빠가 저희들을 놀이공원으로 데리고 간다고 했어요.

가서 놀다가 와도 되지요?“

“와!

우리 승리가 아주 좋겠구나!

그런데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너무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아빠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승재는 허락을 하면서도 놀이공원에 간다는 것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생일 선물 살 돈이 있니?”

“아빠!

이미 준비를 했어요.

아빠가 주시는 용돈을 모아 놓은 것이 있거든요.“

“그랬어?

아빠가 용돈을 많이 주지 못했는데 그것을 모아놨어?“

“그럼요!

언니도 저도 용돈을 쓰지 않고 모아오고 있거든요.“

“참으로 우리 공주님들 장하고 기특하구나!

아빠는 그런 우리 공주님들이 있어 더욱 기운이 나고 행복하단다.“

승재는 아이들의 깊은 마음씀씀이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승리는 그렇게 아침을 먹고 잠시 공부를 하다 시간을 보면서 집을 나선다.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너라!

너무 늦지 않게 와야 한다.“

“네!”

승재는 둘째를 대문 밖까지 나가 배웅을 해 준다.

“승미는 어디 놀러갈 곳이 없니?”

“없어요.

저는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좋아요.“

”승미야!

너무 그렇게 집에 집착을 하지 마라!

아빠가 우리 승미를 마음 놓고 놀게 하지 못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아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좋아요.

중학교에 들어가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하고 또 아빠 대신 승인이도 봐 줘야 하니까요.“

“고맙다.

아빠가 오늘도 바빠서 잠시 나가봐야 하는데 괜찮지?“

”네!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승인이 먹을 것을 좀 챙겨주고 점심을 거르지 말고 먹어라!“

“네!”

승재는 이사할 곳에 가서 마지막 점검을 해야 하고 장사를 하기 위해 가게를 꾸미기에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한다.

몇 년을 과일을 취급해서 이제는 과일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

저장부터 과일 진열을 하는 것에 조금도 소홀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승재는 새삼스럽게 과일에 대한 것을 공부한다.

과일의 성분과 당도 수확시기와 저장법에 대해서 책을 사서 독학으로 공부하며 가게를 꾸미기에 온 신경을 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 늦은 저녁이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살펴보는 것이 승재의 오랜 습관이다.

“승리는 아직 오지 않았니?”

“네!

아무런 연락도 없고 아직 집에 오지 않았어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그 집에 있을 턱이 없지 않니?“

”글쎄요?

다른 곳은 가지 않을 것인데요.“

“그 집이 어딘지 알고 있니?”

승재가 승리가 간 친구 집을 물어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차승리네 집인가요?”

남자의 음성이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