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소설&드라마

[연재소설] 아빠의 바다 (11회-20회)

淸山에 2013. 4. 2. 18:23

 

 

 

 

제 11장,

승재는 갑자기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다.

“여보세요.”

상대방은 다시 확인을 한다.

“아, 네!

우리 승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요?“

승재는 입안에 침이 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가까스로 묻는다.

“승리양하고는 가족이신가요?”

“네!

아빠가 됩니다.“

”아, 그러시군요.

여긴 승리 친구 아빠 됩니다.

지금 교통사고가 나서 아이들이 병원에 와 있습니다.“

”뭐라고요?

우리 승리가 교통사고라니요?

어디를.......괜찮으.........“

승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린다.

“아빠!”

승미가 달려와 아빠의 손에 들려진 전화기를 받아 귀에 댄다.

“여보세요!

교통사고라니요?

제 동생 괜찮은 것인가요?“

“네, 일단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E대 병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승미야!

아빠가..........아빠가 잘못 들은 것이지?“

”아빠!

승리가 병원에 있대요.

E대 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해요.“

“아!”

승재는 심한 현기증을 느낀다.

그러나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몸을 일으킨다.

“아빠!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넌 승인이 데리고 집에 있어라!

아빠가 혼자 다녀오마!“

승재는 급하게 집을 나선다.

승미는 아빠가 걱정스러워 큰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큰아빠!”

“승미야!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승원은 승미의 다급하고 당황하는 음성에 불안감이 밀려온다.

“큰아빠!

승리가 교통사고를 당했대요.“

”뭐라고 했어?

승리가 어쩌다가?

어느 병원이냐?“

”아빠 혼자 가셨는데 아빠가 많이 놀라서 걱정이 되요.

E대 병원이라고 했어요.“

“알았다.

큰아빠가 지금 출발을 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승인이와 잘 지내고 있어라.“

“네!”

승원은 급하게 출발을 한다.

승재는 병원 응급실에 도착을 해서 승리는 찾는다.

“내 딸, 차승리 어디 있소?”

그때 한 남자가 승재의 곁으로 다가온다.

“죄송합니다.

제가 데리고 나가 이런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정화아빠 되시나요?

우리 승리 어디 있소?“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뭐라고요?

수술이라니?

어디를 어떻게 다쳤다는 말이오?“

“다리가 두어군데 부러져서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소?

어른이 함께 동행을 했으면서 어찌 그런 일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일찍 왔어야 했는데 그만..........“

김창호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미안함을 나타낸다.

그는 딸아이 하나뿐이다.

열 번째의 딸아이의 생일을 맞아 축하를 해 준다고 딸아이의 친구 세 명과 딸아이와 같이 놀이공원으로 데리고 나간 것이 잘못이었다.

일찍 돌아온다는 것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아이들의 뜻을 맞추어 주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다.

세 명 모두 길 건너편에 집이 있었다.

집 앞까지 데려다 주지 못한 것이 더욱 죄스럽다.

조심해서 건너가라는 말을 하고 아이들을 내려 준 것이 큰 사고가 난 것이다.

그때 승원이 도착을 한다.

“승재야!”

“아, 형님!

우리 승리가 수술실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 승리 어떻게 해요?“

승재는 형을 보자 그만 온 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가만히 진정을 하고 있어라!

사고 경위가 어떻게 된 것이고 어느 정도 다친 것인지 내가 알아보마!“

승원은 동생의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안정을 취하게 한다.

남자 혼자 몸으로 어떻게 키우는 자식들인가?

승원은 우선 승리의 상태를 알아본다.

다행히 다른 곳은 별 이상은 없고 양 다리에 뼈가 여러 곳을 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급하게 수술중이라는 것이다.

생명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승원은 긴 한숨을 내 쉰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 사고 경위를 알아본다.

하루 종일 놀이공원에서 잘 놀고 돌아오는 도중 집에 다 와서 아이들이 들뜬 마음으로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다 달려오는 승용차에 받혀 세 아이가 다쳤다.

그 중에서 승리가 가장 심한 부상을 입은 것이다.

아이들이 들뜬 마음에 재잘거리며 차가 오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길을 건넌 것이 원인이고 차 또한 그런 아이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것이다.

자가용 승용차의 운전자는 사고 경위를 조사받기 위해 경찰서에 출두했다는 것이다.

건널목에서의 사고였다.

아이들의 부주의도 있었지만 운전자의 부주의도 컸던 만큼 사고가 크게 난 것이다.

승리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승재는 그대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불안함에 떨고 있다.

“아, 여보!

우리 승리는 보살펴주오.

승리가 장애가 남지 않도록 당신이 보살펴 줄 거지?“

승재는 눈을 감고 간절하게 죽은 아내 유미를 부르며 애원을 한다.

또 다른 자식이 불구가 남는다면 어찌 될 것인가?

다리를 쓰지 못하거나 다리가 절단이 된다면 이 세상을 어찌 살아 갈 것인가?

“승재야, 우리 희망을 갖자.”

“형!

설마 우리 승리 괜찮겠지?“

“암!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안정을 취하고 마음을 굳게 가지고 기다리자.“

”아, 무서워요!

이것이 정녕 꿈이라면 좋겠어요.

우리 승리에게 일이 생긴다면 제가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어요?

아, 승리야!“

기어이 승재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괜찮다고 믿자.

아무 일 없이 무사할 수 있다고 우리 굳건히 믿자.“

그러나 승재는 한 번 터진 눈물이 멈출 줄을 모른다.

서너 시간을 그렇게 기다리던 수술실의 문이 열리고 의사들이 나온다.

승재는 의사들 앞으로 달려가 매달린다.

“승리 어떤가요?”

“아,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조각이 난 뼈 조각들을 모두 맞추느라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만 수술은 일단 잘 끝났습니다.“

”그러면 장애는 남지 않는 것인가요?“

”글쎄요?

일단 두고 봅시다.“

승리는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승재와 승원은 중환자실로 들어가 승리의 모습을 본다.

승리의 모습을 보던 승재는 그만 몸을 휘청거린다.

“아!”

승원은 승재를 부축하며 승리 곁으로 데리고 간다.

“승리야!

아빠다.

아빠 알아볼 수 있겠니?“

그러나 승리는 통증을 호소하느라 몸부림을 친다.

“차승리!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간호사가 승리를 부르며 말을 시켜본다.

승리는 간신히 눈을 떠서 주위를 둘러보는 듯 하다 이내 다시 통증을 호소한다.

“승리야!

아빠가 왔어!

아빠가 이렇게 와 있다.“

“아빠!”

승리는 아빠의 음성을 듣고 아빠를 부른다.

“그래, 우리 승리 얼마나 아프니?”

“아파!

아빠, 너무 아파!“

승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간호사가 다시 주사를 놓는다.

승리의 온 몸은 링거 병을 세 개나 달려있고 산소호흡기가 부착이 되어 있다.

“이제 보호자분은 그만 나가 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승원은 동생을 데리고 나온다.

“아, 우리 승리 어떻게 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내가 무슨 잘못을 많이 저질러 이런 일까지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승재는 통곡을 한다.

딸의 모습이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찢기는 듯 견딜 수가 없다.

아내가 없어도 엄마 노릇까지 하느라 하지만 엄마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커 나가고 있는 자식들이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터질 듯이 아픈 자식들이다.

승재는 중환자실 앞을 떠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보호자를 찾을 것만 같고 승리가 아빠를 찾으면 바로 들어가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환자실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지켜있다.

그렇게 밤새 중환자실 앞을 떠나지 않고 지키며 뜬 눈으로 날을 새운다.

아침이 되자 승재의 부모님이 온다.

이여인은 아들의 모습을 보자 그만 말문이 막힌다.

하룻밤 사이에 아들의 모습은 반으로 줄어 든 것만 같고 얼굴은 창백한 모습이다.

“아범아!

이러다 너마저 쓰러진다.

이곳은 내가 지킬 것이니 넌 들어가 조금이라도 쉬었다 나오거라!“

“어머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승리가 아빠를 찾으면 바로 가 봐야 합니다.“

“어쩌다 그런 사고를 당했다는 말이더냐?

이러다 집안에 줄초상이 날까 가슴이 새카맣게 타 들어간다.“

이여인은 집에서 준비를 해 가지고 온 식사를 내 놓고 먹으라고 하지만 승재는 입에도 대지 않고 물만 두어 모금 마실 뿐이다.

“승리를 생각해서라도 어서 먹어라!

그러다 네가 쓰러지면 승리는 누가 보살펴 주겠니?“

”어머니!

전 결코 쓰러질 수 없습니다.

불쌍한 내 딸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래!

그러려면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

어서 먹고 정신을 차리고 기운도 차려야 한다.“

그러나 승재는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아직 어린 딸이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들 것인가?

승재는 자꾸만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온다.

딸을 대신해서 아파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온 머릿속을 휘감아 돈다.

그때 여인이 와서 승재 앞에 멈추어 선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고 운전자의 언니입니다.

동생은 지금 밤새 조사를 받고 있어 대신 제가 찾아뵈었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한다.

승재 역시 멍하니 여인을 바라볼 뿐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2장,

그런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승재는 무엇이라 할 말이 없다.

더구나 당사자도 아니고 운전자의 언니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할 것인가?

여인은 고개를 들어 승재를 바라본다.

“아니?

차선생님!“

여인의 말에 승재는 여인을 다시 주시한다.

“선생님!

저 여미영입니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아!“

그제야 승재는 여미영을 알아본다.

학원에서 가르치던 제자였던 여인이다.

“여미영?”

“네!

헌데, 차승리라는 학생이 선생님의 딸?“

”그렇소!

동생이 운전을 했소?“

”네!

지금까지 무사고로 참으로 침착하게 운전을 하는 아이었는데 어쩌다 이런 사고를 냈는지 저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경찰서에 다녀오는 길입니다만 아직까지 사고경위를 조사받고 있는 중이라서 저라도 우선 대신 찾아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와 본 것입니다.

상태는 어떤지요?“

”아직은 무엇이라 말을 할 수가 없소.

일단 수술은 끝났다고 하지만 아직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애가 탈 뿐이오.“

”죄송합니다.

아직은 어떤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라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아무런 일도 없이 무사히 완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미영은 미안하면서도 참담한 심정이 되어간다.

미술에 취미가 있는 여미영은 학교를 다니면서 미술학원에 다니며 대입준비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차승재의 강의가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도 실기 교육에서도 세심하고 자상하게 가르쳐주며 지도를 해 주던 차승재를 늘 흠모하고 있던 여미영이다.

그들 부부는 학원가에서도 유명한 부부강사로서 두 사람은 수 많은 학생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여미영은 그렇게 삼년 가까이 학원을 다니며 수강을 해서 그런지 미술대학에 합격을 하고 미대를 다녔던 여미영이다.

지금 여미영은 동네에서 조그만 미술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미혼의 여인이다.

집이 지방에 있는 여미영은 동생과 둘이서 살아가고 있다.

두 자매가 그녀들 집안의 전부인 자식들이다.

여미영의 동생 여미주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언니랑 함께 살아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승용차를 구입해 가지고 다닌다.

성품이 침착하고 얌전한 미주는 지금까지 벌금도 별로 내지 않고 안전운행을 하고 있던 아가씨다.

그런 미주가 사고를 내고 그것도 초등학생 세 명을 다치게 한 사고를 냈다는 것이 언니인 미영으로서는 기겁을 할 일이다.

보험은 들어놓고 있어 보험회사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겠지만 성인도 아닌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 세 명이 다쳤다는 말에 미영은 혼비백산을 하고 경찰서에 있는 동생을 찾아본다.

미주 또한 혼이 빠져 있다.

더구나 횡단보도에서의 사고였다.

신호등이야 어찌 되었든 횡단보도에서는 더욱 세심하게 주변을 살피며 운행을 해야 하는 것이 운전자의 수칙이다.

미주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신호등만 보면서 주행을 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건너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주행을 하면서 제일 먼저 승리를 들이 받아 다리가 차 밑으로 깔리는 상태가 되었고 나머지 두 명은 충격에 의해 넘어지는 바람에 가벼운 부상만을 입었을 뿐이다.

경찰 조사결과로 보행자 잘못과 운전자의 안전부주의 잘못으로 쌍방이 모두 잘못한 것으로 나와 일단 운전자를 귀가조치를 하고 보호자의 합의서를 요구한다.

미영은 감히 합의서를 말을 할 수가 없다.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 있는 딸자식을 애타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고통을 받고 있는 승재에게 합의서를 해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미영은 매일 병원으로 찾아온다.

승리의 상태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차승재 선생님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다행이 승리는 삼일 만에 일반병실로 옮겨진다.

“선생님!

우리 아이 설마 장애가 남는 것은 아니겠죠?“

승재는 떨리는 심정으로 묻는다.

“네!

그러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학생이니 장애를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성인들보다 완쾌도 빨리 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승재는 의사에게 눈물을 흘리며 수없이 고개를 숙인다.

장애가 남지 않는다는 말에 흘리는 반가움의 눈물이다.

“승리야!

많이 아프지?“

”아빠!

미안해요.“

“미안하긴 뭐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잘 먹고 얼른 나아야지.“

승재는 모든 정성을 다해서 승리의 병간호를 한다.

양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있는 승리를 위해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여주며 몸을 이리저리 옮겨 눕힌다.

여미영은 비로소 차승재 선생님이 상처를 하고 딸 셋을 홀로 키우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미영은 매일 음식을 해서 가지고 온다.

승리가 아무런 장애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지자 차승재는 합의서를 작성해준다.

서로가 잘못인데 운전자를 관대하게 해 달라는 것과 모든 치료비와 후유증을 생각해서 작성한 보상금이다.

승재는 보상금보다는 딸아이가 완쾌가 된다는 것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제 승재는 이사할 날을 생각하면서 걱정이 된다.

장사야 승리가 퇴원할 때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사 날짜는 미룰 수가 없다.

승재는 또 다시 형인 승원이와 의논을 한다.

승원이는 승재를 대신해서 이사를 시켜줄 것을 약속한다.

“선생님!

승리는 제가 봐주면 안 될까요?

선생님만큼이야 하지 못하겠지만 모든 정성을 다해서 돌보겠습니다.“

”미영씨!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시오.

그리고 이젠 이곳을 오지 않아도 되지 않겠소?“

”그래도 어디 마음이 편안한가요?

이사를 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하루 이틀 승리를 돌봐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승리는 아빠가 없으면 불안해합니다.”

“그럼 승리가 허락을 하면 그렇게 해 주세요.

제가 무엇인가를 보탬이 되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승재는 미영이 그렇게만 해 준다면 잠시 승리는 맡기고 집을 우선 이사를 시키고 싶은 마음이지만 자신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승리야!

아빠가 하루 쯤 없어도 될까?“

“왜?”

“집을 이사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승리도 알지?”

“네!

아빠!

저는 괜찮으니까 집을 이사하는데 아빠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 그래서 아빠는 미영이 언니에게 잠시 승리는 부탁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네!

미영이 언니라면 좋아요.“

”그럼 참고 기다릴 수 있겠지?“

승재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여미영에게 승리를 맡기고 이사를 시키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동안 어머니가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계신다.

아이들의 학교 때문에 데리고 갈 수 없어 어머니가 와 계신 것이다.

형님이 이사를 시켜준다고 해도 승재는 형님에게만 맡긴다는 것이 안심이 되질 않는다.

형님은 지금까지 집안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아 온 사람이다.

어머니와 형수님이 계신 형님이 집안일을 알 필요도 없고 그럴 수 있는 기회도 없다.

승재가 집으로 가자 승미와 승인이는 기뻐하며 아빠 품안에 안겨든다.

승인이가 그렇게 표현을 한다는 것이 승재로서는 매우 기쁨을 안겨준다.

“아빠!”

“승인아!

아빠 보고 싶었니?“

”네!

아빠 많이 보고 싶었어!“

“그랬구나?

우리 승인이 그동안 많이 배웠니?“

승인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

승리는 어떻게 하고요?“

”미영이 언니가 돌봐주신다고 해서 잠시 부탁을 했다.“

”승리가 아빠가 없어도 된다고 했어요?“

승미는 승리가 걱정이 된다는 표정이다.

“그래!

미영이 언니라면 좋다고 하더라!

내일 이사를 가고 나서 아빠는 또 병원으로 가야해!“

“네!

승인이와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계셔서 아무런 걱정도 없어요.“

”고맙다.

승리가 퇴원을 할 때까지 네가 승인이를 잘 돌봐주고 할머니를 도와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럼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제 승미는 애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너무 빠르게 집안 사정을 살피고 아빠의 마음을 살펴주고 있는 것이 승재로서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런 승미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가 없다.

다음날 승원이 와서 도와주고 이사를 한다.

이사라고 해야 짐이 얼마 없는 살림이다 보니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여인은 모든 것을 손수 정리를 한다.

방이 한 칸인 것이 못내 아쉽고 아들이 가게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아이들과 늘 함께 있으면서 장사를 할 수 있으니 아들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위로를 받는다.

이렇게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그러나 재혼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이여인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까지 죽은 안식구를 생각해서 재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엄마로서 근심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재혼을 권유해 보았지만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는 아들이다.

그래도 방은 상당히 큰 편이다.

주방 또한 설비가 잘 꾸며져 있어 편리하게 사용을 할 수 있다.

살림을 하면서도 가게 손님이 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불편할 것이 없겠다 싶은 생각을 하면서 살림을 정리하고 있는 이여인이다.

“오늘 저녁으로 병원으로 가니?”

“아닙니다.

내일 아침 승인이를 태우러 오는 차가 이 앞에서 정차하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과 저녁에 바로 가게 앞에서 승인이를 태우고 내려야 하는 것을 봐야하고 승인이도 그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겠구나?

그럼 저녁은 네 형이랑 술이라도 한 잔하련?“

“네, 그러지요.

오늘 고생을 많이 하신 형님에게 술이라도 대접을 해 드려야지요.“

이여인은 부지런히 준비를 한다.

대로변이라 그런지 필요한 모든 것을 바로 나가면 구입을 할 수 있는 것이 살림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것이다.

“어머니!

모처럼 고기를 구워먹을까요?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안심이라도 사 올게요.“

”내 걱정을 하지 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사와도 충분하다.

요즘 아이들이 제대로 먹은 것이 없구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미 가게 물건은 모두 들여놓았기에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짐을 모두 정리한다.

승재는 병원으로 전화를 해서 승리와 통화를 한다.

승리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승재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밥상을 마주한다.

“이젠 아이들만 놔두고 장사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동안 아이들만 두고 장사를 해도 마음은 모두 집에 있으니 불편하고 편안하지 않아 일찍 장사를 걷고 들어가곤 했지요.“

”왜 안 그렇겠니?

내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어머니!

저희들 힘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더 편안하고요.“

”너 참으로 대단하다.

남자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난 너를 보면서 내 식구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너처럼 모든 가족들을 세심하게 보살펴주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3장,

승원은 동생의 삶이 힘들지만 참으로 숭고한 사랑의 삶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자식들만을 위한 희생적인 삶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다시 자신의 길을 가면서 재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승원은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더욱 세 딸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서 진정으로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나 동생 승재의 삶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진솔한 삶이고 자식들을 위한 숭고한 사랑의 삶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과연 자신은 가족들에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형님!

형님께서도 모든 가족을 사랑하시고 참으로 진솔하고 가식 없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제 곁에 형님이 없었으면 제가 얼마나 힘들고 의지할 곳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지요.

큰 형님께서는 저희들의 기둥이고 버팀목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난 내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네가 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식들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삶은 제 딸들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제 목표이고 꿈입니다.

꿈을 포기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도 그렇게 좋아하고 재질이 있는 미술을 포기한 것이 아니더냐?“

”형님!

꿈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제게 장사수완이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아닙니까?

제 자신조차도 장사라는 낱말조차 저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면 살아왔지만 막상 꿈이 변하고 나니 제게 숨어 있던 또 다른 능력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이제 이 가게에서 제 딸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저 자신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래, 넌 충분히 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승재야!

혼자보다는 곁에서 함께 짐을 나누어 질 수 있고 서로 힘들 때 다독이며 서로의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함께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승원은 승재의 재혼을 말하고 있다.

“아닙니다.

저는 지금의 이 상태가 더 없이 좋고 편안합니다.

누군가 지금의 제 가족 사이에 끼어든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저 지금처럼 제 아이들과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두 형제는 술상을 놓고 자신들의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어 간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이여인은 막내아들의 마음이 안쓰럽다.

어떻게 딸들만을 키우며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마음이 아파온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강제로 마음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승재는 다음날 아침 승미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와서 승인이의 학교 차량을 기다린다.

“승인아!

저기 학교차가 오는 것이 보이지?“

승인이는 아빠가 가르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학교차가 오는 것을 본다.

“아빠!

저거 우리 차!“

승인이는 다섯 살 정도의 정신연령이다.

“그래!

저차를 타면 어디를 가지?“

“학교.”

그때 차는 승재와 승인이를 보고 멈춘다.

“고맙습니다.

오늘부터 이곳이 차승인의 집 앞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함께 나온 선생님과 인사를 한다.

“아버님!

하교를 할 때도 이곳에 내려주면 되겠지요?“

”네!

바로 저 가게가 집입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인사를 하고 승인이가 차에 타는 것을 돕는다.

승재는 차가 출발하여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다.

이제 다시 승리가 있는 병원으로 가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오후에 시간을 보셔서 바로 앞에서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그래, 알았다.

어서 아침을 먹자.“

이여인은 아들을 위해 아침상을 차린다.

아이들을 먼저 먹여 보내느라 늦은 아침을 먹는 모자였다.

“막내야!

엄마가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해 주면 좋겠다만 네 아버지도 계시고 나 또한 이젠 나이가 들어 그런지 힘에 부치는구나!“

“엄마!

그런 생각을 하지 마세요.

제가 편안하게 모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늘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젠 아이들도 많이 자라서 잔손가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지켜만 봐주세요.“

”재혼을 해서 살아간다면 엄마도 마음이 편할 것인데.........“

“재혼은 하지 않습니다.

이대로 아이들과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죽은 네 처를 잊지 못해서 그런 것이냐?“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의 제 가족 이외에 그 어떤 사람도 용납을 할 수 없을 것만 같고 제 자신도 지금 이 생활이 더욱 마음 편안하고 좋습니다.“

”에효, 무슨 팔자를 타고 났기에.........“

이여인은 긴 한숨을 내 쉰다.

위로 두 아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막내아들만 혼자서 세 딸들을 데리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여인으로서는 자나 깨나 걱정이고 마음이 아프다.

세 딸들이 모두 건강해도 걱정이 떠나지 않을 것인데 그 중에 막내가 발달장애아다.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지만 그 속인들 오죽하겠는가?

“장사는 언제 시작을 할지 모르지?”

“네!

우선은 승인이가 퇴원을 해야겠지요.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우선이고 먼저니까요.“

“그러다 빚을 지지 않겠니?”

“엄마!

빚을 진다면 벌어서 갚으면 되지만 아이들 문제는 자칫하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먼저 아이들이 제일 소중합니다.

그리고 한두 달 뒤에 다시 장사를 한다고 해도 빚을 질 정도는 아닙니다.

시설을 해 놓은 것이야 그대로 두면 되는 것이고요.“

”그래!

엄마가 뭐를 알겠냐마는 걱정스럽다.

모든 것을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행여 힘든 일이 있거든 늘 네 형과 의논을 하거라!“

“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형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집을 얻은 것도 그렇고 승인이 사고 나던 날도 형님이 곁에 계셔주셔서 얼마나 든든하고 의지가 되었던지 모릅니다.

늘 형님께 신세를 지고 있지요.“

“그래서 형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니?

네 형들은 언제나 네 걱정뿐이다.“

”살다 보면 그런 형님들께 모든 것을 갚아드릴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우리 아이들 곱게 자라서 잘 살아가는 것을 보여드리는 날도 오겠고요.“

”그래야지.

네가 어떻게 키우는 딸들이냐?

네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애지중지 키우는 자식들인데 잘 되어야지.“

모자는 식사를 하면서 그런 대화들을 나눈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승재는 모든 것을 어머니께 맡기고 다시 병원으로 간다.

“아빠!”

승리는 아빠를 보자 반가움에 눈물을 보인다.

“아빠를 기다렸어?”

“응!

아빠, 이사는 했어?“

”그래!

이사는 아주 잘 했다.

미영씨!

참으로 고마웠소.“

여미영은 두 부녀 사이에서 오가는 정을 느낀다.

“선생님!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요.

승리가 아파하지 않고 잠도 잘 자고 잘 먹고 있었지요.“

“이 모든 것이 미영씨가 돌봐준 덕이오.

이제는 바쁜 시간을 내서 오지 않아도 되오.“

승재는 매일 찾아오는 여미영이 부담스러워진다.

먹을 것을 해서 들고 오는 여미영이다.

“그래도 식사를 하셔야 하는데 어떻게 오지 않겠어요?

승리가 퇴원할 때까지는 선생님이 드실 것을 책임지고 해 오겠습니다.“

”그러지 마시오.

먹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소?

그리고 이 근처에 식당들이 많으니 나가서 사 먹으면 되오.“

”어떻게 사 드시는 것을 알고 그대로 있겠어요?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마세요.

선생님 핑계를 대로 저와 동생도 잘 먹고 지낸답니다.“

여미영은 웃음 띠운 얼굴로 가볍게 말을 한다.

아무리 승재가 말려도 여미영은 매일 승재의 식사를 준비해서 나르고 있다.

승재가 딸을 간호하는 것은 병원에 소문이 날 정도로 지극한 정성이 들어있다.

다리는 쓰지 못하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손수 다 해내고 하루에 두어 번씩 휠체어를 태우고 밖에 나가서 바람을 쏘여주곤 한다.

씻기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딸아이의 비위를 맞춰주고 기분을 돋우어 주면서 자상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것을 주변사람들이 혀를 내 두를 정도였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딸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승재다.

승리는 매일 호전을 보인다.

아직 어린아이라 그런지 빠른 경과를 보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상처는 잘 아물어 간다.

“차승미!

이젠 아프지 않지?“

의사선생님의 말이다.

“네!

하나도 안 아파요.“

“그럼 됐다.

내일 집으로 가도 되겠다.“

“정말요?

붕대를 아직 풀지 않았는데 정말 집에 가도 되는 거예요?“

승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는다.

“그래!

이제 병원에서 할 치료는 모두 끝났다.

집에 나가서 뼈가 아물 때까지 기브스를 풀지 말고 기다리면 낫는다.“

“선생님!

정말 퇴원을 해도 되는 것인가요?“

승재 또한 믿기지 않는다.

“네!

이젠 아물기만 하면 됩니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은 치료를 할 것이 없습니다.

퇴원을 하시고 집에서 잘 돌봐주시면 한 달 뒤에 기브스를 풀면 됩니다.

내일 퇴원을 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승재는 의사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나서 퇴원수속을 밟는다.

한 달만의 퇴원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는 퇴원이다.

다음날 승리의 퇴원을 위해 승원이 승용차를 가지고 온다.

퇴원이라고 해도 아직은 걸을 수 없는 승리를 위해 퇴원을 돕고자 하는 것이다.

“승리야!

고생 많이 했지?“

”큰아빠!

미안해요.

다시는 신호등 안 보고 길을 건너지 않을게요.“

“그래!

우리 승리가 큰 공부를 했다.

모든 것은 그렇게 지키라고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자, 이젠 어서 집으로 가자.“

승원은 승리는 들어 안고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간다.

집으로 돌아온 승리는 이사를 온 집이 낯설어 둘러본다.

“아빠!

여기가 정말 우리 집이야?“

”그래, 이제 우리는 이곳에서 사는 거다.

저 가게에서 아빠는 과일을 팔고 너희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착하고 바르게 자라주면 되는 것이야!“

“네!”

승미는 학교에서 돌아오자 승리를 보고 끌어안는다.

처음으로 떨어져 지냈던 한 달간이다.

승인이 역시 언니를 보며 반갑다는 표현으로 언니를 부르며 씩 웃는다.

그렇게 세 딸들의 모습을 보는 승재 역시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4장,

승재는 가게를 개업하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한다.

과일의 종류도 모두 갖추어 놓고 이웃상인들에게 떡을 돌리고 술과 막걸리를 준비해서 고사도 지낸다.

모든 것을 이여인이 준비를 해 준다.

가게는 제법 모양새를 갖추어 놓고 등도 과일을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세심한 신경을 쓰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여미영은 축하의 화환을 준비해서 보낸다.

“아빠!

우리 가게가 정말 근사해요.“학교에서 돌아온 승미는 자랑스럽다는 듯 가게 안을 둘러본다.

“우리 승미가 좋은 모양이구나?”

“그럼요!

이제 아빠가 추운 겨울에 밖에서 웅크리고 떨지 않으셔도 되잖아요.“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우리 맏딸이 그동안 아빠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었구나?“

“네!

추운 날에 장사를 하시러 나가시는 아빠를 보면 얼마나 추우실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는 집안에 있으면서도 춥다고 하는데 하루 종일 추운 밖에서 떨고 장사를 하셔야 하잖아요.“

”그래!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좋은 가게를 마련 할 수가 있었다.

무엇이든 고생을 하지 않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네, 잘 알고 있어요.

이제는 겨울이 와도 하나도 걱정할 것이 없어요.“

”어서 들어가 동생들과 과일을 나누어 먹어라!“

승미는 방안으로 들어간다.

아직 기브스를 풀지 못하고 있는 승리는 학교엘 나가지 못하고 있다.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이따금씩 찾아와 주고 배운 것을 알려주곤 하지만 승리는 답답함을 이겨보려고 공부를 하고 책을 손에서 놓지를 않는다.

“언니!”

승리가 반가움에 큰 소리로 언니를 반긴다.

“하루 종일 답답했지?”

“그래도 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하니까 덜 답답했어!

나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기브스를 풀 것이니까 학교에 가도 되겠지?“

”그렇게 될 거야!

그렇지만 당분간 매우 조심해야 하겠지?“

”알았어!

또 다시 사고를 내면 아빠가 더 힘들어지니까 조심 할 거야!“

승미는 안에 들여다 놓은 과일을 본다.

아빠는 늘 제일 좋은 과일들을 먹으라고 주시는 것을 알고 있는 승미다.

“아빠!

이렇게 좋은 과일은 파는 것이 좋잖아요?“

”승미야!

아빠는 무엇보다도 우리 딸들에게 제일 좋은 것을 먹이고 싶다.

아빠가 과일을 팔지 않아도 우리 딸들에게 좋은 것을 사서 먹일 것인데 있는 것을 왜 못먹이겠어?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어서들 맛있게 먹어!“

“아빠!

고맙습니다.

아빠의 사랑에 늘 감사드려요.“

“그래!

아빠는 세상에서 우리 딸들을 제일 사랑하고 있다.

우리 딸들이 있어 아빠가 살아가는데 힘이 되고 기운도 난다.“

승재는 무엇이든 아빠를 생각해 주는 승미가 참으로 든든하다.

장사는 그런대로 심심치 않게 된다.

근처에 과일을 파는 곳이 없고 지나다니는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라 장사도 제법 잘 되고 있는 편이다.

승재는 새로운 힘을 얻는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나면 집안일을 하면서도 장사를 할 수 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늘 아이들을 볼 수 있고 저녁을 해서 제 시간에 먹일 수가 있어 무엇보다도 안심이 되고 마음이 든든해진다.

어떤 것이든 멀리 나가지 않아도 구입을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해서 먹일 수도 있다.

한 낮에는 손님이 뜸한 시간이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아이들의 간식도 만들고 반찬도 준비를 한다.

김치는 늘 어머니가 해서 가져다주시기 때문에 당장 먹을 것만 준비를 하면 된다.

아이들은 식성이 까다롭지 않아서 해 주는 대로 잘 먹는다.

이제 승리도 학교에 간다.

아직은 자유롭지 못한 다리지만 언제까지 학교를 쉴 수는 없다.

학원은 당분간 다니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학교는 더 이상 가지 않으면 학년을 올라갈 수가 없어 학교를 보내기는 하지만 승재는 걱정스럽다.

장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고 승리를 데리러 간다.

절뚝이며 걷는 승리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래도 승리는 매우 쾌활하고 얼굴 가득 기쁨이 넘치는 모습이다.

승리를 데리고 와서 간식을 주고 다시 가게로 나간다.

아직은 그다지 손님이 없을 시간이기에 조금은 한가하다.

새벽이면 청과물 도매시장으로 가서 그날 팔아야 할 과일들을 받아온다.

아이들이 잠이 깨기 전에 다녀오는 것이다.

부지런히 아침을 해서 세 딸들을 보내고 나면 집안일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

가게고 집안이고 어느 곳 하나 소홀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승재는 집안일을 하다 문득 세 딸들의 옷을 사 준 것이 언제였는지 생각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세 딸들과 쇼핑을 한 것이 오래전인 것임을 깨닫는다.

승미의 옷을 살펴본다.

그러다 문득 승미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서 아차, 하는 생각을 한다.

육학년에 올라가는 승미는 육체적인 변화를 보일 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

여자로서의 생리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세히 옷장 속을 살펴본다.

행여 생리대를 사서 쓰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인 것이다.

빠른 아이들은 사학년부터 생리를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난다.

엄마가 없이 아빠에게 말을 하기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속을 태우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무런 흔적도 없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이제는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브래지어도 필요한 나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딸들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신경을 쓴다고 했는데도 역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잠시 아내를 떠 올린다.

“유미야!

이럴 때 당신이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이제 우리 딸들도 여자로서 모든 것을 갖추어 나가야 할 때지?

당신이 없는 우리 딸들 얼마나 힘들고 불편할까?

여보!

그럴 때마다 꿈에서라도 나타나 나한테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내가 더 신경을 써서 우리 딸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해 줄게!“

승재는 달력을 보며 주말에는 시간을 내어 승미하고 쇼핑을 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아이들의 속옷과 필요한 것들을 큰 딸과 쇼핑을 하면서 브래지어와 생리팬티도 구입을 해 주리라 생각을 한다.

여자들이 생리팬티를 입는다는 것을 아내 유미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생리대의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제 딸들에 대해서 그런 점에서 더욱 세심한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큰딸 승미의 성품이다.

자신이 아무리 불편해도 절대로 아빠에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미리 준비를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승재는 아이들의 옷장을 정리하고 가게로 나온다.

그대 여미영이 가게로 들어온다.

여미영의 손에는 무언가 잔뜩 들려 있다.

“선생님!”

“어서 오시오.”

승재는 여미영이 오는 것을 반갑다고 하지도 그렇다고 냉정하게 하지도 못한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오?”

“지금 한가한 시간이지요?”

“그렇소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소?”

“한가한 시간을 내서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주려고 준비를 해서 가지고 왔어요.”

여미영은 두 손 가득 들려진 것을 보인다.

“미영씨!

그 정성은 고맙소만 그대로 돌아가 주었으면 하오.

내 집에 다른 어떤 사람이라도 간섭을 하는 것이 싫소.“

”선생님!

선생님의 삶에 간섭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완쾌되지 않은 승리를 위해서라도 영양식이라도 준비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것이라면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소.

엄마들이 하는 것만큼이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내 딸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오.

그 누구도 우리의 삶에 끼어든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승재의 말은 단호하다.

여미영은 잠시 그대로 꼼짝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미영 역시 그대로 물러설 기미가 아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온 것을 그대로 들고 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요?

오늘만 이것들을 준비해 두고 가겠습니다.“

여미영은 안채로 들어갈 몸짓을 한다.

“아니요!

가져 온 것은 그대로 두고 가도 좋소.

허지만 내 집 주방에 들어가게 할 수는 없소.

내 딸들과 나만의 공간이오.

함부로 들어가지 마시오.“

여미영은 단호하게 막아서는 승재를 거부할 수가 없다.

그때 승인의 차가 와서 멈추는 것이 보인다.

승재는 나가서 승인이를 데리고 들어온다.

승인이는 여미영을 보고 아빠의 등 뒤로 가서 숨는다.

“승인아!

잘 있었니?“

여미영이 인사를 하며 반가운 척을 하자 승인이는 더욱 아빠의 등 뒤로 간다.

언제든지 낯선 사람을 보면 아빠 등 뒤로 가서 숨어버리는 승인이다.

특히 여미영이 오는 날이면 더욱 아빠 등 뒤로 바짝 숨어버린다.

“승인이는 언니가 오는 것이 싫어?”

여미영은 승인이가 온 것을 기회로 다시 기회를 만들고 싶다.

“미영!

이제 그만 돌아가 주었으면 하오.

우리 승인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소.“

”선생님!

정말 너무 냉정하십니다.

제가 그렇게 싫으신 것입니까?“

”내가 미영씨를 좋고 싫고 할 것이 뭐가 있겠소?

우리 아이가 이렇게 반응을 보이고 있고 나 또한 타인이 내 삶에 끼어드는 것이 싫소.

더 이상 내 삶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마시오.“

또 다시 승재는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을 한다.

여미영은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그대로 나가 버린다.

여미영이 나가고 나자 승인은 아빠 품안으로 안겨든다.

“우리 승인이 오늘 많이 배우고 왔니?”

승재는 이내 여미영의 존재를 잊고 막내딸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빠!

저 언니 또 와?“

”아니, 이제 안 올 거야!

우리 승인이는 저 언니가 싫어?“

“응!

저 언니가 싫어!

아빠!

이제 오지 말라고 해!“

”그래,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하게 할게!“

승인이는 아빠 곁에 그 누구도 함께 있는 것을 극히 싫어하고 있다.

용케도 과일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잘 알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그 어떤 여자도 아빠와 조금이라도 친숙하다는 것을 느끼면 격한 반응을 보이며 아빠의 등 뒤에 매달린다.

승재는 그런 승인이의 마음을 알고 있다.

어린 승인이는 아빠를 그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것이 싫다는 반응이다.

“승인아!

아무도 아빠 곁에 오지 못하게 하면 되겠지?“

”응!“

나이는 아홉 살인 승인이는 정신연령이 아직 다섯 살 짜리다.

더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발달장애를 가진 승인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는 집중력이라든지 상상력이 나이보다도 훨씬 뛰어 넘는다는 미술교사들의 말이다.

승재는 승인이 그림이라도 열중해서 능력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지고 승인이의 교육에 모든 정열을 쏟아 붓는다.

승리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다.

승인이를 잠시 두고 나간다.

“언니 데리고 올게 혼자 있을 수 있지?”

“응!”

승인이는 다시 그림 그리는데 열중해 있다.

그렇게 승리를 데리고 와서 간식을 먹이고 나니 가게 손님들이 하나 둘 과일을 찾는다.

이제 또 다시 바빠질 시간이다.

저녁 장을 보러 나가 들어가는 길에 주부들이 들려서 사가지고 가고 퇴근길 아빠들이나 직장인들이 곧잘 들려 사가곤 한다.

늦은 저녁시간이면 산책을 나왔다가도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보고 사가지고 가곤 한다.

승재의 하루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늘 딸들과 가게 안을 맴돌며 살아가는 승재의 일상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5장,

더 이상 여미영은 승재의 가게에 나타나지 않는다.

승재 또한 여미영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딸들에 대한 세심한 신경을 쓴다.

큰 딸인 승미를 데리고 브레지어와 생리팬티를 구입해 주고 딸들의 속옷도 함께 구입을 하며 승미와 쇼핑을 한다.

쇼핑을 하는 동안 승리는 승인이를 데리고 집을 본다.

이제 승리의 상처도 많이 아물어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보행을 하면서 그동안 밀린 공부를 하느라 더욱 책상 앞을 떠날 줄을 모른다.

공부에 대한 욕심도 누구보다 많은 승리의 성품이다.

무엇이든 남들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남들 앞에서 리드하기를 즐겨하는 승리의 성품이 두어 달 가까이 학교를 가지 못해 쳐진 공부를 하느라 더욱 열중을 한다.

그런 승리의 모습이 승재를 기쁘게 하고 있다.

“승미야!

우리 맛있는 것을 사 가지고 갈까?“

”아빠!

집에서 늘 과일을 먹고 있는데 다른 것이 뭐가 필요해요?“

“그래도 너희들이 먹고 싶은 것이 있을 것 아니냐?

과일만 먹는다고 다른 것이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

”아빠!

과일만으로도 충분해요.

승리도 승인이도 과일을 좋아하고 있으니 다른 것을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아요.“

“그래?

그럼 우리 부지런히 집으로 가서 동생들을 데리고 외식을 할까?“

“가게 문은 오늘 아주 열지 않으시려고요?”

“그런가?

그럼 안 되겠지?“

”아빠!

자장면 시켜다 먹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딸들이 자장면 먹은 것이 오래 되었구나?

그러자.

아빠도 자장면이 먹고 싶다.“

“아빠!

고맙습니다.

실은 이런 속옷들이 필요했거든요.“

”그랬어?

승미야!

아빠가 모르는 것이 많다.

이제 승미가 아빠한테 그런 것들을 말해주면 참 좋겠다.

아빠는 여자가 아니라서 모르는 것들이 많거든!“

“그래도 아빠처럼 자상하게 이런 것들을 사 주시는 아빠는 별로 없을 걸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술을 마시고 엄마를 때리고 집안을 늘 불안하게 하는 아빠들이 많은 것 같애요.

그리고 아빠가 무섭다는 친구들도 있어요.

아빠처럼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아빠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있지 않니?

아빠가 못해주는 것을 그 친구들은 엄마가 다 해주시니 좋을 것이다.“

”아빠는 저희들에게 엄마 몫까지 다 해주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저희들은 별로 불편한 것도 모르고 엄마가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요.“

”승미가 아빠를 그렇게 이해를 해 주고 있으니 아빠는 참 좋다.

우리 딸들이 있어 아빠는 늘 힘이 생기고 행복하단다.“

부녀는 손을 마주 잡고 이야기를 하며 걷는다.

아무런 일도 없이 편안하고 바쁜 일상생활이 계속된다.

이제 승미가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승리는 오학년이다.

따라서 승인이는 열 살이 되지만 여전히 그 상태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다섯 살의 어린아이의 철부지 모습의 승인이다.

티 없는 승인이의 눈동자는 맑고 곱다.

승인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만 바라보고 있으면 참으로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승인이의 정신연령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자신이 살아 있을 때는 승인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가 있지만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과연 승인이가 어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앞이 암담해지는 승재다.

승인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오직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직업을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승인이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승재로서는 승인이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 하나만으로 세상에 나설 수가 없는 승인이다.

모든 앞가림을 할 수 없는 승인이는 혼자서는 세상을 향해서 한 발도 나갈 수가 없다.

승인이는 장애인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받는다.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승인이다.

독창적이고 색상의 선택이 탁월하다는 평이 내려지지만 승재로서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 또한 숨길 수가 없다.

영원히 다섯 살 어린 아이로 멈춰버리는 승인이의 정신이다.

“유미야!

우리 승인이를 어떻게 하지?

다섯 살의 어린아이의 정신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가 있을까?

너무나 아름답고 예쁜 우리 승인이가 평생을 그 나이의 생각으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인지 당신이 대답을 해봐!

당신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밤이면 깊은 잠을 들지 못하는 승재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난 다음에 가게의 간이침대에서 늘 잠을 청하곤 하지만 단 하루도 편안하게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세 딸들의 앞날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특히 승인이의 앞날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나이에 비해 육체는 조숙해서 늘씬하고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지만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승미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집안 살림을 거의 맡아서 해 내고 있다.

이제 밥을 하는 것에서부터 빨래며 집안 청소를 어른들 못지않게 척척해내곤 한다.

힘든 아빠를 위해 자처하고 나선 승미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을 맡아서 준비하곤 한다.

“승미야!

아빠가 할 테니까 너는 공부나 하면 좋겠다.“

”아빠!

저도 이젠 다 컸습니다.

밥하는 것 빨래하는 것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고 제가 있는데 아빠가 하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아요.

주방에 들어와 계시다가 손님이 오시면 물 묻은 손으로 나가셔야 하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싫고 제가 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아빠한테 맡겨드릴 수는 없는 일이에요.“

”아빠는 우리 승미가 집안일과 동생들에게 신경을 쓰느라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아빠!

공부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동생들이라고 해도 일일이 시중을 들어줄 수 있는 동생들이 아니고 이젠 다 큰 아이들이니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요.“

”그래도 승인이는 아직 어린아이잖니?

그래서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데 네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

”아빠!

우리 승인이는 이제 모든 것을 알아서 해 나가는 것이 많아졌어요.

혼자서 씻기도 하고 옷도 잘 갈아 입으니 손이 갈 것이 없어요.

그냥 곁에서 잘 하는 것인가 하고 봐주기만 하면 되니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요.“

“고맙다.

그러나 네 성적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젠 고등학교도 가야하고 특히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너무 실력이 모자라면 아빠가 참으로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네!

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승미는 이제 집안의 안주인 노릇을 톡톡하게 해 내고 있다.

워낙에 제 엄마의 성품을 타고 태어났는지 깔끔하고 정리 정돈을 잘 한다.

아내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맏딸이다.

승미는 그런대로 반에서 상위권에 속하고 있는 실력이다.

그러나 승리는 악착같은 성품이 있어 일 이등을 놓치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 내고야 마는 승리의 성품이다.

이름 그대로 모든 일에 승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품인 것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돈을 주고 작명소를 찾는다는 생각을 애초에 해 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붙인 맏딸 승미의 이름과 자매간처럼 보이도록 지어주며 인생의 승리를 하라고 한 것이고 막내인 승인이는 자신이 혼자서 어질 인자를 넣어 모두 승자를 하나씩 붙여 넣다보니 자신의 형제들과 같이 모두 승자가 붙여진 이름이 되어버렸다.

아내는 단 한 번도 막내의 이름조차 불러보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승인이라는 이름을 말을 해 주었지만 자신의 입으로 제대로 막내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얼굴도 제대로 보지를 못했던 막내였다.

엄마의 품안은 고사하고 엄마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자라고 있는 승인이다.

승인이에게는 오직 아빠만이 존재를 하고 있다.

그런 승인이 학교는 싫다는 말도 하지 않고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은 역시 그림이다.

이론으로야 배울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교사의 말이라면 잘 따르고 그대로 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승인은 늘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하며 그림을 그린다.

이제 승재는 그런 승인에게 스케치 북 대신에 아내가 쓰던 그림도구 일체를 내어준다.

그동안 아내의 그림과 도구들을 그대로 보관해 오고 있던 승재였다.

자신의 것과 함께 그림과 도구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해 오면서 가끔 꺼내보곤 한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아내의 그림을 꺼내본다.

아직 미완성인 그림들도 있다.

아내가 쓰러지기 전까지 조금씩 시간을 내어 그리던 그림들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서너 작품이 된다.

그 작품들에서 아직도 아내의 진한 체취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아내의 모든 혼과 정성이 들어 있는 작품들이다.

“여보!

우리 승인이가 당신을 닮아가고 있소.

이제 당신이 쓰던 도구 일체를 승인이에게 물려주고 싶소.

당신도 승낙을 하는 거지?“

승인이는 엄마의 모든 것들을 물려받자 눈이 반짝거리며 빛을 발한다.

“승인아!

이제 그리고 싶은 대로 네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라!

엄마가 하늘에서 그런 승인이를 보면서 얼마나 좋아할까?“

”엄마?

엄마 없어!“

“아냐!

엄마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단다.

우리는 언제나 엄마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엄마 없어!“

승인은 아빠가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

그러나 엄마는 늘 우리와 함께 있는 거란다.“

승인은 눈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승재는 이제 집을 다시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직은 여유가 없다.

아이들이 점점 더 커가고 방이 비좁다.

특히 승인이를 위해서는 화실도 마련해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세 딸을 단칸방에서 키우는 것이 못내 미안하고 자신이 무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더욱 최선을 다해서 장사를 해 나간다.

어떻게 하든 승미가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아이들만의 방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욱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이렇게 단칸방에서 아이들을 품어 안고 살아가는 것도 이제는 힘들다는 생각이다.

다 큰 여자아이들을 아빠와 같은 방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그렇지만 공부 때문이라도 각자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승재는 생각을 한다.

아직 집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가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전셋집이라도 얻을 생각으로 알아본다.

그러나 전셋집은 생각보다 상당히 비싸다.

더구나 딸들에게 각자의 방을 주려면 평수가 작은 것은 방이 모자란다.

자신은 거실에서 잠을 잔다고 하더라도 방이 세 개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승미가 중 삼으로 올라가는 시점이다.

승리 또한 중학생이 된다.

더욱 마음이 조급해지는 승재다.

이 겨울이 지나고 나서 봄이 되면 이사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승재는 큰 형수님을 찾아간다.

모든 경제적인 것을 형수님이 맡아서 관리해 오고 있는 것이다.

형수님과 상의를 해 볼 생각인 것이다.

“형수님!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서방님!

어떤 일이든 제가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움이 되어드릴게요.“

형수인 오화영은 막내시동생이 자신과 의논을 하겠다며 찾아온 것이 좋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아이들이 커서 단칸방에서 지내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렇겠지요.

어머님께서도 늘 걱정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형수님과 상의를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아직 집을 구입하기에는 능력이 닿지 않고 전셋집을 얻으려고 알아보니 돈이 부족합니다.

형수님의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부족한가요?

아무래도 아이들 각자의 방을 주어야 하니까 작은 평수는 안 되겠지요.“

”네!

손에 쥔 것은 일억 정도인데 그것으로는 집을 구하기하 상당히 어렵습니다.“

”전세 값이 너무 비싸지요?

아무래도 적어도 방이 세 칸짜리를 얻으시려면 그 돈으로는 얻지 못할 것입니다.“

”네!

오천 정도가 부족한데 혹여 돈을 빌리실 곳이 없겠는지요?“

“그 정도면 마땅한 곳이 있나요?”

“네!

바로 가게 뒤쪽으로 아파트가 있는데 조금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그 정도면 방이 세 개가 있는 평수를 얻을 수 있더라고요.”

승재는 자신이 알아보고 다니던 아파트를 이야기한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6장,

오화영은 방이 세 칸이면 시동생이 거처할 방이 없다는 것을 걱정한다.

“그러면 서방님은 방이 또 없지 않습니까?”

“저야 늘 가게에 나가 있으니 잠이야 거실에서 자면 되지요.

우선은 아이들 방을 마련해주는 것이 급하니까요.“

”서방님!

그 돈은 제가 융통해 드리겠습니다.

매달 수입에서 갚아나가시는 것으로 하시고요.“

”정말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이자와 원금을 매달 갚겠습니다.“

“서방님!

우리는 형제입니다.

저희가 서방님을 도와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이자를 받겠습니까?

오천 정도면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세요.“

오화영은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시동생이 참으로 믿음직스럽다.

오화영이 여러 번 재혼을 권유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재혼 말이 나오기만 하면 일언지하 거절을 하는 시동생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살아가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서방님!

막내 승인이를 위해서라도 재혼을 하세요.“

”형수님!

승인이를 위해서라면 제가 재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승인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로 세상을 살아야합니다.

이제 새엄마를 맞아 승인이가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데 제가 재혼을 왜 합니까?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승인입니다.“

”서방님!

재혼을 하신다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승인이를 구박하고 함부로 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로군요.

그것은 옛날 말입니다.

요즘 여자들 너무 현명해서 전처소생들에게 함부로 막 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 속으로 낳은 자식만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저 또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 힘들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아닙니다.

지금의 이 상태가 저와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만족스럽고 편안한 삶입니다.“

”서방님!

지금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성장을 해서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고 난 이후 혼자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그때 가서도 승인이를 위해서 헌신을 하실 것인가요?“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승인이는 제가 살아 있는 동안 보살펴야 할 제 몫입니다.

어떻게 하든 자립심을 길러주어야겠지만 나이를 먹어도 정신연령이 다섯 살을 넘지 못한다는 우리 승인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 때를 위해서라도 재혼을 하셔야 합니다.

서방님과 승인이를 위해 함께 살아갈 사람을 지금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승인이를 위해서 서방님과 재혼을 하겠다는 여자들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또한 늘 서방님 때문에 걱정과 근심을 하고 계신 부모님을 위해서도 이제는 재혼을 하시어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형수님!

반드시 아내가 있어야만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산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아내가 없어도 저희는 서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지금 이런 상태가 너무 좋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저희들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런 불편도 불만도 없습니다.

이대로 그냥 지켜봐 주십시오.“

오화영은 더 이상 시동생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오화영은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더 이상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승재가 원하는 돈을 선뜻 내 준다.

아직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오화영이다.

남편과 둘이서 맞벌이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 흔하다는 명품이라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조차 관심을 가지지 않고 착실하게 돈을 모으면서 살아오고 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낭비라고는 모르고 살아왔다.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시어머님께서 집안 살림을 모두 맡아서 해 주시고 아이들을 키워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이제 오화영은 정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참으로 부지런하게 앞만 보면서 살아온 세월이었기에 그녀의 수중에는 적지 않은 돈을 저축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오화영은 남편이 시동생의 삶을 보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본다.

평소에도 가정적인 남편이었지만 더욱 가정적이고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오화영을 행복하게 해 준다.

승재는 집을 계약한다.

비록 전셋집이지만 마음이 흡족하다.

이사 날짜가 정해지고 승재는 승미를 데리고 와 본다.

“승미야!

이제 우리는 이 집에서 살게 된다.“

”아빠!

정말 좋아요.“

“그동안 좁은 방에서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았지?”

“아니에요.

아빠만 계시면 저희들은 행복해요.“

”방이 세 개인데 우리 방을 어떻게 쓸까?“

승재는 맏딸인 승미의 의견을 묻는다.

“아빠!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빠가 안방에서 승인이와 함께 쓰시면 좋겠어요.

승인이 그림을 그리는 아틀리에는 거실에 만들면 좋겠고요.“

“그래?

거실에다 아틀리에를 만들면 너희들이 불편할 것이 아니냐?“

”불편할 것도 없어요.

저희들은 이제 집보다는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 집에 손님이 오시는 일도 거의 드문데 거실을 그렇게 사용을 한다면 더욱 효과 적일 것 아닌가요?“

승재는 승리의 그런 생각에 감탄한다.

아무래도 승인이를 혼자서 재운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던 승재였다.

몸은 그 또래의 아이들보다 키가 크기에 다 큰 여자아이지만 다섯 살의 어린정신을 가지고 있는 승인이는 아직도 승재에게는 아기였다.

“우리 맏딸의 생각이 역시 쓸만하구나!

아직 승인이를 혼자서 방을 쓰게 한다는 것이 무리겠지?“

”네!

승인이는 평생을 아기로 살아가야 하는 동생이라서 혼자서 방을 쓸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아직은 아빠가 보살펴주세요.

제가 조금 더 성장을 해서 어른이 되면 그때는 승인이를 제가 보살피겠습니다.“

승재는 그런 말을 하는 승미가 어른스러워 보인다.

벌써 제 동생을 책임지려고 하는 승미의 어른스러운 마음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지는 느낌이 전해오고 콧등이 시리다.

“승미야!

아빠는 너희들에게 그런 짐을 지우지 않겠다.

승인이는 끝까지 아빠가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우리 승미와 승리가 아무런 책임감 없이 너희들의 길을 가 주었으면 아빠는 더욱 행복할 것 같다.“

“아빠!

아빠가 언제까지 승인이를 돌보며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빠도 나이가 드시고 늙어 가시면 승인이를 어떻게 보살필 수 있겠어요?

제가 언니고 맏딸이니 승인이는 당연히 제가 보살펴주어야 할 것입니다.“

승재는 그런 승미를 말없이 꼭 끌어안아준다.

너무도 기특하고 대견한 승미다.

누가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니다.

승미가 동생들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일은 어려서부터 엄마 없이 자란 탓에 책임감이 생겨난 것이라는 걸 느끼면서 승재는 가슴이 아파온다.

어린가슴에 얼마나 큰 책임감이 승미의 어깨를 짓눌렀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아빠를 생각하면서 늘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동생들을 돌봐주면서 자신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생각들이 승미를 많이 힘들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맏딸에 대한 미안함과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이사를 하기 위해 승재는 딸들의 침대와 책상을 준비한다.

그동안 단칸방에서 제대로 된 책상도 없이 공부를 해 왔던 딸들이다.

안방에도 자신의 침대와 승인이를 위한 싱글 침대 두 개를 준비한다.

거실에는 승미의 말대로 승인이를 위한 아틀리에를 꾸민다.

또한 그동안 싸 두기만 했던 아내의 그림을 걸어 놓고 미처 아내가 완성하지 못한 작품들을 진열해 놓으면서 아내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승인이의 화필은 점점 더 아내의 기법을 닮아가고 있다.

그림물감의 채색이라던지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기 자신의 취향을 마음대로 발휘하면서 그리는 방법이 마치 아내가 가르친 것처럼 많은 점들이 닮아 있다.

색체에서 구성에서 기법에 있어서도 마치 아내에게서 배운 것처럼 점점 더 아내의 화법을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곤 한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다.

그저 기초적인 것들을 배운다 하더라도 승인이가 얼마나 받아드리고 얼마나 이해를 한 것인지 승재 자신도 알 수 없다.

승재는 컴퍼스를 구입해주고 그림물감도 충분하게 준비를 해 준다.

이제 집안에서의 승인이는 마음을 놓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한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승인이는 하루 종일이라도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자신의 세계속에 몰두하는 집념이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잠시 간식을 주고 나면 더 이상 신경을 쓸 일이 없다.

모든 것을 준비를 하고 나서 이사를 한다.

승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가져보는 승리는 기쁨에 들뜬다.

“아빠!

정말 이 방이 나 혼자 쓰는 거예요?“

“그래!

이제는 이 방은 승리 혼자서 쓰는 방이다.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고 혼자서 잘 수 있지?“

“그럼요!

아빠는 제가 아직도 어린애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중학생이에요.

와!

너무 좋아요.

침대도 책상도 너무 너무 좋아요.“

승리는 성품 그대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아빠!

우리 집이 너무 좋아요.

이젠 독서실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얼마든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그래!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언니를 속상하게 하지 말고 잘 지냈으면 한다.“

”네!

언니가 하는 일도 많이 도와줄 거예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승재도 온 몸에 행복함이 전해져 온다.

가게는 이제 더욱 넓어진다.

살림을 하던 방에 과일을 저장할 수 있는 냉장고를 옮겨 놓고 나니 가게가 상당히 넓어지면서 많은 과일들을 진열해 놓을 수가 있다.

승재는 종업원 둘을 고용한다.

지금까지 배달을 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서 본격적인 배달을 하면서 장사를 더 넓혀갈 계획을 세운다.

소매상인들을 위한 도매도 곁들이면서 배달을 한다는 광고를 낸다.

또한 그날 팔다 남은 상하기 쉬운 과일들은 근처의 노인정으로 보낸다.

상해서 버리는 것보다는 노인정에서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고 계시는 어른들에게 드리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노인정에는 환호성이 터진다.

과일 하나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시는 것이 마음이 푸근하면서 보람을 느끼게 된다.

“차사장님!

이거 매일 받아먹기만 해서 미안합니다.“

노인정의 총무라는 어르신의 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어르신!

이렇게라도 어르신들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요.“

“그래도 그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차사장님께서 참으로 좋은 일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어르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야 그날 팔다 남은 것을 드리는 것이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받아서 맛있게 드셔주시니 저로서는 보람된 일이지요.“

승재는 오히려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장사는 더욱 활기를 띠운다.

배달 또한 심심치 않게 주문이 들어온다.

최고의 상품으로 조금은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있는 판매 전략이다.

새벽같이 청과물 시장으로 나가 최고의 상품을 구입해 오는 승재다.

이젠 모든 사활을 걸고 장사에 자신의 온 힘을 쏟는다.

아이들도 모두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일에 열중한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해 나가고 있는 아이들이다.

집안을 위해서 매일 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르며 승미를 편안하게 해 준다.

집이 넓기에 승미의 손을 빌리지 않기 위해서였고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음식을 할 줄 아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한다.

오전 중에 와서 아이들의 저녁까지 해 놓고 퇴근을 한다는 조건이다.

다행스럽게 도우미 아주머니를 선뜻 받아드리는 승인이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승인이가 아주머니를 보자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드리며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승재는 이제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장사에 더욱 신경을 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7장,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고부터 승미는 안심을 하고 공부에 열중한다.

집안일에 별로 신경을 쓸 것도 없으니 오로지 공부하는데 신경을 집중시킨다.

승미는 아빠에게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다른 집 아빠들 같으면 벌써 다시 결혼을 하고 새엄마를 맞아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새엄마를 맞아드릴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을 위해서 살아가시겠다는 마음을 알고 있는 승미다.

승미 역시 새엄마를 맞아드리는 것에는 반대를 한다.

그것은 자신과 승리는 상관없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철부지 어린 아기로 살아가고 있는 승인이를 위해서라도 새엄마는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들이 없을 때 승인이가 구박을 받거나 매를 맞으면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에 아빠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승미다.

승미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들만 위해서 살아가시는 아빠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에 전념을 한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승미는 대학입시를 위해서 조금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일류대학은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재수를 하거나 지방에 있는 대학에는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오직 공부에 매달린다.

승미는 진학문제를 아빠와 상의한다.

“아빠!

저는 간호학을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니?“

승재는 중학생이 되면서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을 한 승미의 말을 떠올린다.

“네!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모든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돌봐주면서 빠른 쾌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런 생각이라면 아빠가 반대할 마음이 아니다.

아빠는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고맙습니다.

대학은 y대를 지망하고 있습니다.“

”우리 승미는 충분히 해 낼 수 있다고 아빠는 믿고 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빠가 저희들을 위해서 고생을 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빠를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겠습니다.“

”승미야!

아빠는 너희들을 위해서 하는 고생이 아니다.

이것이 아빠의 삶이고 아빠의 보람이다.

어떤 일을 하던 마음의 부담을 갖지 말고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했으면 한다.

우리 승미가 간호사가 되어 흰 가운을 입고 일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할 것이라고 아빠는 상상이 된다.“

”네!

반드시 수간호사가 될 것입니다.“

승미는 야무진 꿈을 펼쳐 보인다.

승재는 그런 딸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죽은 아내에게는 이다음 자랑스럽게 딸들의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승미가 고삼이 되자 자정이 다 되어서야 학원에서 돌아온다.

승재는 매일 그런 승미를 데리러 나가곤 한다.

늦은 밤에 행여 좋지 않은 일이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힘들고 피곤한 딸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데리고 오기 위해서다.

지하철에 시달리며 오는 것보다는 트럭이지만 잠시라도 눈을 붙이게 해 주면서 데리고 오는 것이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승재는 시간을 보며 가게 문을 닫고 잠시 집으로 들어간다.

승리와 승인이가 궁금한 승재는 집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본다.

승인이는 깊은 잠이 빠지고 승리는 공부를 하고 있다.

“승리야!

언니를 데리러 갔다 올게!“

“아빠!

오늘 저도 함께 가면 안돼요?“

”너도 가고 싶어?“

“네!

아빠하고 얘기도 하고 싶고요.“

“그래?

승리가 아빠한테 할 말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네!“

”그래, 승인이는 잠이 들었으니 함께 다녀오자.“

승재는 둘째를 태우고 승미의 학원으로 간다.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말해 볼래?”

“아빠!

저 유학을 가면 안 될까요?“

”뭐?

지금 유학을 가겠다는 말이니?“

”지금 당장이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승재는 갑작스러운 유학이라는 단어 앞에 잠시 침묵을 한다.

아내와 반드시 유학을 가겠다는 꿈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으로 대학 강단에 서질 못했던 젊은 시절이었다.

“승리야!

유학을 가겠다는 네 생각에 반대하지 않겠다.

그러나 아빠는 네가 유학을 가겠다는 생각을 듣고 싶다.“

”아빠!

저는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 대국이라고 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현지에서 모든 것을 몸으로 부딪치고 눈으로 보면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서 세계경제의 동향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네 뜻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면 차근차근 모든 것을 알아보고 준비를 해 보자.

남들이 간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나는 유학은 안 된다.“

”아빠!

선생님하고도 상의도 해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 실력에 맞는 학교를 선택해서 응시를 할 수 있다고 하니까 더욱 열심히 해서 제 실력에 맞는 학교를 찾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구나?“

”네!

다행히 영어는 자신이 있습니다.

아빠!

보내주시기만 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제 학비를 벌 생각입니다.“

승리는 다부진 결심을 보인다.

승미의 학원 앞에 도착을 한다.

“우리 깊은 생각을 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저기 언니가 나온다.“

승미가 학원 정문을 나서는 것을 본다.

승미는 학원을 나서면서 아빠의 차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뛰어온다.

승재는 그런 승미를 마중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승미를 기다린다.

“아빠!”

“우리 딸 힘들었지?”

“아니에요.

아빠가 매일 이렇게 와 주시니까 기운도 나고 공부도 더 잘 되는 걸요.“

“언니!”

승리도 차에서 내려 언니를 부른다.

“어?

승리도 왔어?“

”응!

심심해서 아빠 따라서 왔지.“

“어서들 타라!”

승재는 두 딸들을 태우고 나서 출발을 한다.

“우리 맛있는 것을 먹고 갈까?”

두 딸들을 보면서 말을 한다.

“정말요?”

승리가 반색을 하며 좋아한다.

“아빠!

승인이가 깨면 어떻게 해요?

그냥 집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승미는 집에 혼자 있는 승인이를 걱정스러워한다.

“승인이는 한 번 잠이 들면 아침까지 깨지 않으니 걱정할 것 없다.”

“그래도 누가 알아요?”

"아빠!

언니 말대로 집으로 가요.

대신 피자 사가지고 집에 가서 먹어요.“

승리는 언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승인이를 생각한다.

“오냐!

우리 피자를 사 가지고 집으로 가자.“

동생을 생각하는 언니들의 마음이 예뻐 승재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진다.

늘 동생들을 먼저 생각하는 승미의 예쁜 마음을 승리도 따라하고 있다.

승미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인이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아빠!

승인이를 깨울까요?“

승리가 묻는다.

“그냥 둬라!

깨운다고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다 일어나 피자를 먹는 것이 소화가 되겠니?“

”그럼 승인이 것을 남겨야지요.“

”식으면 맛이 없다.

승인이는 나중에 아빠가 사 줄 테니 너희들이나 먹어라!“

“아빠도 함께 드세요.”

세 사람은 늦은 밤 그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야참을 먹는다.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들고 난 후 승재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승리가 유학을 가겠다고 결심을 한 이상 보내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

한 번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 내고야 마는 승리의 성품이다.

또한 자신과 아내 유미가 해 보지 못하던 일이다.

유학을 갈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한 그들 부부였다.

딸에게만큼은 후회를 남기며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깊은 상념에 빠져든 승재는 또 다시 아내 유미 생각을 한다.

유미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생각을 한다.

아내는 두 말하지 않고 찬성을 했을 것이다.

딸의 미국유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을 아내라고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고민할 일도 없다는 듯 보내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아직 이년이라는 기간이 있다.

더욱 알뜰하게 모으고 부지런히 장사를 한다면 힘은 들겠지만 유학경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매달 부지런히 갚아나가고 있는 형수님의 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형수님께 빌린 돈을 모두 갚고 나면 다시 돈을 모을 수가 있을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서 그런 고생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거의 새벽 세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두어 시간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고 학교에 보낸다.

과일을 떼러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저장고가 있어 매일 과일을 받으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참으로 편리함과 시간의 여유를 주고 있다.

승인이까지 학교에 보내고 나서 승재는 잠시 자신의 시간을 갖는다.

특별한 주문이 없는 날은 승재는 조금 천천히 가게로 나가는 것이다.

이미 종업원들이 가게 문을 열어놓고 장사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은 시간의 여유를 즐기곤 한다.

승미의 수능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승재는 승미의 건강을 위해서 도우미 아주머니께 부탁을 해서 특별한 고단백 음식을 할 재료를 준비해 준다.

그동안 승미와 승리를 위해서 건강에 지치지 않도록 보약을 먹였지만 다시 수능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승미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지치기라도 하면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승미야!

너무 초조하게 마음을 가지지 말고 평소처럼 편안하게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치루겠습니다.“

”그래!

절대로 초조해 하면 안 된다.“

승리는 어디서 들었는지 찰떡과 엿을 사서 언니에게 준다.

그런 두 자매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은 승재다.

이제 내일이면 고시 장으로 가는 승미에게 잠을 푹 자도록 일러둔다.

“편안한 마음으로 푹 자야 한다.

내일 아침에 아빠가 데리고 갈 테니까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푹 자라.“

“네!”

승미는 일찍 잠자리에 든다.

아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계시는지 잘 알고 있는 승미다.

다행히 수능시험이 있는 날 날씨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해마다 거의 수능시험이 있는 날 혹독하게 추웠던 것에 비하면 춥지 않은 날씨였다.

승재는 일찍 일어나 승미가 먹을 밥을 준비한다.

승미는 깨우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난다.

일찍 잠을 잤기에 일찍 눈이 떠진 것이다.

기분이 상쾌하고 커디션이 매우 좋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

“잘 잤니?

컨디션은 어때?“

”아주 좋아요.

잠을 충분히 자서 그런지 머리도 맑고 개운해요.“

”다행이구나!

어서 아침을 먹자.“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딸들을 아침 식탁에 앉힌다.

다른 날보다 도우미 아주머니를 일찍 오게 해서 승인이를 부탁을 하고 승미와 함께 집을 나서서 고사장으로 향한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8장,

시간에 넉넉하게 시험을 보는 학교에 도착을 한다.

“승미야!

절대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루도록 해라!“

“네!

걱정하지 마세요.“

”어여 들어가라!“

“아빠도 그만 가세요.

날씨가 추운데 기다리지 마시고요.“

“아빠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차분하게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길 바란다.”

“네!”

승미는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학교 앞은 학부형들이 아들이, 딸이 시험을 잘 치루게 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기다리며 있다.

승재는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승미가 들어간 학교 안으로 시선을 둔다.

아내가 살아있으면 역시 저렇게 간절한 모습으로 딸을 위해 기도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콧등이 시려온다.

“유미!

당신도 지금 우리와 함께 있지?

이런 날 당신이 오지 않을 리가 있겠어?

여보, 다른 것은 말고 우리 승미가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차분하게 가지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줘!

우리 승미 간호사가 되면 얼마나 아름답겠어?

자신의 꿈을 향해서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이 도와 줄 거지?“

승재는 마음속으로 아내를 향해서 말을 한다.

승재는 다른 어머니들 속에 시간을 보내며 한 시간 한 시간의 시험이 다시 시작되느니 종이 울리면 자신도 모르게 간절한 기도 속으로 빠져든다.

특별히 대단한 성적을 거두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서 고생을 한 딸의 노력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빌면서 학교 교문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간다.

그 옛날 자신이 이렇게 시험을 보던 날 자신의 엄마도 이렇게 기다리며 기도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자신이 바로 어머니의 그 자리에 서 있다.

유미와 함께 서 있어야 할 이 자리에 혼자서 딸을 기다리고 있다.

허지만 승재는 외롭다거나 허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음속에는 늘 아내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또 다시 아내와 대화를 이어간다.

“여보!

우리 승미가 참으로 장하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의젓하고 어른스럽지 않아?

그러고 보니 우리 승미가 흰 가운을 입고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근사하고 잘 어울리겠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겠지?“

승재는 벌써부터 승미가 간호사가 된 모습을 상상해 본다.

누가 그랬던가?백의천사라고 하던 말처럼 정말 아름답고 근사한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하나 둘씩 교실을 나선다.

기다리고 있던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찾느라 눈이 커진다.

기다리고 있던 자식이 나오면 시험 잘 봤느냐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대체적으로 너무 어려웠다는 말들이 나온다.

승재는 불안한 마음이 된다.

승미도 어렵다고 말을 할 것만 같아서였다.

생각보다 승미는 뒤늦게 나온다.

“아빠!”

승미는 아빠를 발견하고 뛰어 온다.

“당황하지 않고 잘 봤어?”

“네!

별로 그다지 어렵지 않더라고요.“

”모두들 너무 어렵다고 하던데?“

”그래요?

별로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걸요.“

”다행이구나!

어디 가서 따끈한 것이라도 먹자.

많이 추웠지?“

”춥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줄곧 기다리셨어요?“

”그래, 네가 고생을 하면서 시험을 보고 있는데 아빠가 어떻게 가겠어?

다른 엄마들처럼 아빠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너무 추우셨을 것 같아요.

어디 따뜻한 곳으로 가서 몸이라도 녹이고 가요.“

승재는 주변을 살펴본다.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의 중국집으로 많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승재는 중국집 말고 한식집을 찾아본다.

조금 떨어진 곳에 갈비집이 눈에 들어온다.

승재는 딸을 데리고 갈비 집으로 간다.

“갈비 먹을까?”

“아빠!

그냥 따끈한 갈비탕으로 해요.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추위가 가실 것 같아요.“

갈비탕을 두 그릇 주문한다.

“우리 딸 고생이 많았다.

이제는 마음 편안하게 푹 쉬거라!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도 좋고.“

“여행은요?

그냥 집에서 쉬면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볼래요.“

그러나 승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게로 나간다.

아빠를 도와드리고 싶은 승미의 마음이다.

“승미야!

들어가서 네가 보고 싶은 책을 보면서 쉬거라!“

“아빠!

이때가 아니면 언제 가게 일을 도와드릴 수 있겠어요?

학교 다닌다는 핑계로 가게엔 나와 보지도 못하잖아요.

아빠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계신지 저도 몸으로 깨닫고 해야지요.“

”우리 승미는 정말 고운 간호사가 될 것이야!

아빠는 네 고운 마음씨가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

믿어주시어 고맙습니다.“

승미는 점심을 해서 가게로 가지고 나간다.

늘 점심을 사서 드시는 아빠에게 자신이 시간이 있을 때라도 따뜻한 밥을 해서 드시게 하고 싶은 승미의 마음이다.

종업원 두 사람을 합쳐 세 사람분의 식사를 해서 가지고 나가는 승미는 문득 아빠가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하실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엄마가 있다면 장사를 하시더라도 두 분이서 손을 마주잡고 해 나가면 힘든 것도 모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아빠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들 삶에만 치우쳤던 것을 생각하면서 아빠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빠는 자신들을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계신 것이다.

딸 셋을 위해 아빠 청춘을 모두 불사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승미는 정성을 다해서 직접 점심준비를 한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셔도 자신이 직접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승미가 점심을 해서 가지고 나가자 승재는 기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승미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승미야!

힘들게 뭐 하러 밥을 해서 가져와?

점심 한 끼 대충 사 먹으면 되는 것을.“

“아빠!

어떻게 점심을 대충 드세요.

이제 아빠도 젊은 나이도 아니신데 한 끼라도 부실하게 드시면 건강을 해칠까 걱정스럽고 마음이 불안합니다.

제가 시간이 있을 때 이렇게라도 아빠에게 해 드리고 싶어요.“

”네 마음을 아빠가 왜 모르겠니?

그러나 아빠는 우리 승미가 이런 것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네가 좋아하는 책도 보면서 시간이 있을 때 친구들도 만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더 좋다.“

”친구들은 나중에 만나도 됩니다.

아빠가 건강하셔야만 저희들이 마음을 놓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승미는 가지고 온 점심을 풀어 놓고 식탁을 준비한다.

“식사들을 하세요.”

두 명의 종업원은 좋아서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진다.

매일 사 먹는 것보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서 해 내온 밥이 훨씬 영양가 있고 맛도 좋다.

“잘 먹겠습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인사를 한다.

“자, 기왕에 해 내온 것이니 맛있게 많이들 먹어라!”

승재 또한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승미는 처음으로 아빠의 재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다.

아빠가 재혼을 하시면 승인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흔든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승인이를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몸은 중학생인 승인이 다섯 살 어린 계집아이의 말과 행동을 누가 이해를 하고 맞추어 줄 수가 있을 것인가?

승미는 아빠의 재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 승미의 마음이다.

허지만 함부로 아빠의 재혼에 대해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승미는 거의 매일 점심을 해서 가지고 나간다.

추운 날 따뜻한 국을 해서 식지 않게 보온병에 담아 가지고 나가면 세 사람이 든든하게 먹을 수가 있다.

“승미야!

추운데 매일 이렇게 고생 할 것 없다.

아빠가 알아서 맛있는 걸 사 먹을게!“

“아빠!

저는 고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빠가 하시는 고생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혹시 재혼이라도 하시면 모르지만........“

승미는 조심스럽게 재혼이라는 말을 꺼내본다.

“재혼?

우리 승미는 아빠가 재혼을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니?“

”언제까지 혼자 살아가실 수는 없겠지요.“

”승미야!

아빠 가슴 속에는 아직도 네 엄마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리고 아빠 곁에는 우리 세 딸들이 있어 아빠는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아빠의 사랑은 오로지 네 엄마 한 사람뿐이다.“

”아빠!

엄마는 벌써 아주 오래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이제는 가슴에 묻어두시고 아빠의 삶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아빠의 삶?

아빠의 삶이 재혼을 하는데 있다고 생각하고 있니?

아빠는 우리 세 딸들, 특히나 우리 승인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너나 승리는 너희들 나름대로 각자의 길에서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 승인이는 아빠가 없으면 살아 갈 수가 없다.

승인이를 그렇게 만든 것 역시 아빠가 아니겠니?“

”그것이 왜 아빠의 책임이에요?“

”태아를 위해 더욱 조심하고 많은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우리는 직업을 더 크게 생각하고 뱃속에 있는 태아를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랬다면 네 엄마도 먼저 떠나지 않았을 것인데 참으로 아빠가 무모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아빠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잖아요?“

”어찌 되었던 승인이는 부모의 잘못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아빠는 죽는 날까지 승인이를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너나 승리는 너희들의 길을 열심히 살아주면 아빠는 그것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다.“

승미는 아빠의 확고한 마음을 확인한다.

승인이를 위해서라도 아빠가 재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시는 것이 맞지만 아빠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또한 알고 있는 승미다.

그러나 세상은 모든 것을 다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빠의 결심을 따르기로 마음을 먹는다.

승미는 원하는 대학에 무사히 합격을 한다.

승재의 기쁨과 보람은 그동안의 모든 고생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한다.

승재는 이제 새내기 대학생이 되는 맏딸을 위해 쇼핑을 한다.

승미를 데리고 옷과 가방과 구두 그리고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준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완연한 숙녀티를 내는 맏딸의 모습이다.

“와!

우리 맏딸 정말 아름답구나!“

“아빠!

이 모든 것이 아빠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저희들 모두를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키워주셨어요.“

”아빠가 한 일이 뭐가 있어?

너희들이 타고난 성품들이 고와서 아름답게 성장을 해 주었지.

이 모습을 아마 엄마가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러실 거예요.

아빠의 바람대로 엄마도 보고 계실 것 같아요.“

”암!

언제나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는 엄마다.

비록 몸은 우리를 떠났지만 엄마의 혼백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네!

그것이 아빠가 바라시는 일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승미는 아빠의 사랑이 아직도 조금도 식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콧등이 시큰해진다.

어떤 일이든 아빠는 그렇게 조금도 엄마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9장,

승재는 승미의 입학식에 가려고 아침부터 서두른다.

맏딸의 대학교 입학식에 참석을 하려고 모처럼 양복을 꺼내 입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입어보는 양복이 오히려 어색하고 쑥스럽다.

“승미야!

아빠가 이상해 보이지 않니?“

”아빠!

아주 멋져요.

그러고 보니 우리 아빠가 상당한 미남인데요?

잠바만 입고 계신 모습보다 너무 멋지고 근사해요.“

”그 말이 정말이냐?

아빠는 오히려 이상해 보이고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아니에요.

우리 아빠가 이렇게 근사한 분인 줄 몰랐어요.

가끔은 이렇게 차려입으세요.

정말 너무 멋지고 근사한 아빠 모습이에요.“

”양복을 입고 장사를 어떻게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가끔 데이트를 신청 할 건데요?설마 제 신청을 거절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분의 데이트를 거절할 수 있는 배짱 좋은 남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지.

데이트 신청만 해 주십시오.

언제든지 만사 제쳐놓고 달려 나갑니다.“

”호호호..........

아빠는 완전히 딸 바보라니까요.“

“하하하.........

바보라도 좋지.

세상에서 우리 딸들처럼 아름답고 착한 딸들이 어디 있나?

난 완전한 딸 바보다. 하하하“

승재는 딸의 말에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자, 가실까요? 우리 공주님!”

승미의 모습은 새내기처럼 맑고 곱다.

야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는 승미의 차림이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스포티한 옷을 입은 승미는 상큼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입학식을 보는 내내 승재는 아내를 생각한다.

이 모습을 아내는 얼마나 대견스러워 할 것인가?

“여보!

지금 당신도 보고 있지?

우리 승미 얼마나 아름답고 의젓한지 당신은 내려다보고 있지?

정말 당신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이 기쁨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항상 당신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승재는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제 승미가 대학생이 되었으니 승미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승리의 유학을 위해 전적으로 알아보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실력이 어느 정도이고 승리의 실력으로 미국에 있는 어떤 학교엘 가게 될지도 상세하게 알아봐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 승리는 어학에는 뛰어난 소질을 보이고 있다.

초등학교 다니면서부터 영어를 무척이나 잘 하던 승리였다.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방학 동안에 어학연수를 보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경비를 알아본다.

두 아이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도 승재는 마음을 놓고 잠을 잘 시간이 없다.

이제 부지런히 돈을 모아 아이들의 학비를 마련해야 한다.

승재는 더욱 장사를 넓혀나간다.

지금의 규모로서는 승리의 유학자금을 마련하기에 벅찬 것이다.

마침 옆 가게 미용실이 매물로 나온다.

같은 건물이기에 승재는 주인을 만나 미용실을 얻어 벽을 허물고 가게를 하나로 통합했으면 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문의를 해 본다.

다행스럽게 옆 가게의 벽을 허물기 좋은 판자로 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계약을 한다.

미용실은 승재의 가게보다 작은 평수지만 두 개를 합쳐놓으니 상당한 규모의 가게로 변하고 제법 근사한 점포로 탈바꿈을 한다.

과일과 더불어 고추와 마늘 등 작물도 함께 취급을 하면서 종업원 수도 더 늘려나간다.

이젠 어떤 물건이든지 제철에 맞는 물건들을 함께 취급을 한다.

가게는 활발하게 움직이며 제법 사람들로 웅성거리게 된다.

승재는 늘 제때에 물건을 구입해 오는 것만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한다.

그 옛날 예술가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승재의 모습이다.

완전한 장사꾼의 모습이고 장사엔 이력이 붙어 어떤 물건을 들여놓아도 별로 재고가 없이 팔아치우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승재는 승리를 어학연수를 보내기로 결정을 한다.

뜻하지 않은 아빠의 결정에 승리는 기쁨에 들떠 있다.

“너 혼자서도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지?”

“그럼요!

미국 현지에 가서 제 영어실력을 발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유학을 떠나기에 앞서 어학이 필수가 아니겠느냐?

말이 통하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지.“

”네!

그러나 자신이 있습니다.

가끔은 길에 나서면 외국인이 눈에 뜨이면 대화를 신청하곤 했습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제 어학실력을 시험해 보곤 하는 것이지요.“

”부끄럽지 않더냐?

모르는 외국인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아빠!

저는 더 넓은 곳을 향해서 나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 정도가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 아빠도 그런 승리를 믿는다.

아빠하고 같이 못가는 미국이지만 아빠는 우리 승리를 믿고 보낸다.

삼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성공적인 연수가 되기를 믿는다.“

“아빠!

절대로 아빠를 실망시키는 딸은 되지 않겠습니다.

아빠가 저희들을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계신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야무진 승리의 말이다.

승리의 어학연수를 결정하고 나니 맏딸인 승미가 또 걸린다.

승미 또한 외국에 나가보고 싶어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두 딸을 내 보내기엔 경제적 여건이 허락지 않고 있다.

승재는 승미와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승미야!

아빠가 우리 맏딸에게 너무 미안하구나!

동생인 승리만 어학연수를 내 보내고 맏딸인 넌 보내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아빠!

저는 괜찮습니다.

승리는 유학을 떠나야 하니까 어학연수가 필요하지만 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너무 신경을 쓰지 마세요.“

”말을 그렇게 해 주니 참으로 고맙다.

경제적인 것이 허락해 준다면 승리 혼자 내 보내기보다는 너하고 둘이서 함께 다녀오게 하면 아빠도 마음이 놓이고 좋을 것인데 아직은 아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구나.“

“아빠!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무엇 하러 어학연수를 갑니까?

공연한 낭비일 뿐이지요.

승리처럼 유학을 가는 것도 아니고 어학을 꼭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낭비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승미는 맏딸답게 아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린다.

“승미야!

그래도 아빠에게는 우리 맏딸이 기둥인 것을 알지?

우리 승미가 있기에 아빠는 무엇을 해도 안심이 되고 믿을 수 있단다.

아빠에게 든든한 기둥이 바로 우리 맏딸이다.“

”고맙습니다.

아빠!

저희들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이 되어드리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승미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신에 학교 강의가 끝나면 가게로 와서 일을 돕는다.

승재가 아무리 말려도 승미는 거의 매일 가게로 와서 일손을 거들고 있다.

이제 집안일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주시고 승인이 역시 도우미 아주머니하고 많이 정이 들어 그런지 잘 따르며 지내고 있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상당히 성실한 사람이다.

게다가 승인이를 잘 돌봐주고 계시는 아주머니기에 승인이 역시 잘 따르고 있다.

가게는 저녁이면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저녁시장을 보는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과일 뿐만이 아니라 각종 야채들과 고추나 마늘 깨 계란 같은 것들이 있기에 주부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승재는 매일 새벽이면 산지에서 구입을 해서 가져온다.

그러기에 조금이라도 싼값으로 소비자들에게 팔고 있다.

이제 승재의 가게는 입소문이 퍼져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주부들은 남들보다 먼저 구매를 하기 위해 발걸음이 잦아진다.

승재가 새벽이면 집을 나서기 때문에 아침은 늘 승미의 차지가 된다.

전날 도우미 아주머니가 다 준비해 놓고 간 반찬이 있지만 아빠를 위해서 반드시 국을 준비하는 승미다.

여름이면 시원한 냉국,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국을 준비하는 승미다.

두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시고 나면 그제야 학교를 간다.

승재는 아이들이 다 학교에 가고 난 이후에야 잠시 집에 들려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가게로 나가 하루의 장사를 준비한다.

승리의 유학준비는 차질없이 준비가 되어간다.

생각보다 실력이 우수한 승리는 자신이 원하는 미국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제출한다.

일단 시험을 먼저 보고 결정이 되는 것이다.

시험을 보기 위해 승리는 다시 미국으로 간다.

번번이 승리는 혼자 보내는 승재의 마음은 불안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않고 있으니 그저 마음으로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승리는 삼학년 가을에 학교의 허락을 받고 시험을 치루기 위해서 출국을 한다.

미국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미국 고등학생들이 보는 수능시험을 치러야 한다.

SAT는 크게 수학(Math)과 어휘(Verbal)의 두 파트로 이루어져있으며 한국학생들의 경우 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SAT 점수가 토플(TOEFL)점수 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이미 정보를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승리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서 출국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승재의 마음은 승리를 혼자서 보내는 것이 불안하기만 하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아직은 어린아이로 보이는 아빠의 마음이다.

승리가 돌아오기 전까지 승재는 거의 매일 승리와 전화 통화를 한다.

어린아이를 물가에 혼자 내 보내는 심정이다.

그러나 승리는 그런 아빠의 걱정을 보란 듯이 날려버리고 무사히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을 거두고 귀국을 한다.

“아빠!

승리가 해 냈어요.“

”우리 딸, 너무 장하구나!“

입학 허가서를 보여드리며 자랑스러워하는 승리의 모습은 당당해 보인다.

또한 승리는 일단 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도 부여받는다.

“승리야!

너무나 잘 된 일이다.

가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를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아빠!

아빠가 고생을 하시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공부만 하겠어요?

저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조금이라도 아빠의 힘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절대로 안 된다.

공부를 하러 갔으면 모든 신경을 공부하는데만 전념을 했으면 한다.

아빠가 그만한 능력도 없는 사람으로 보이니?“

”아닙니다.

아빠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편안하게 공부한다면 제가 아빠나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고 염치없는 사람이 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언니 또한 언니가 원하는 길을 가고 있다.

너는 네 길에서 남들보다 우뚝 서고 싶다는 네 꿈을 향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하루라도 빨리 네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고 싶다.

그것만이 아빠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빠!

고맙습니다.

아빠의 바다는 참으로 넓고도 깊습니다.

저희들 셋을 모두 포용을 하시고도 넓은 팔로 감싸 안아주시는 아빠의 그 바다에 안겨 하고 싶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반드시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습니다.“

“그래!

반드시 네 꿈을 향해서 한발 한발 굳건하게 나가야 한다.“

승재는 그런 승리가 믿음직스럽다.

승리의 유학을 위해 모든 준비를 한다.

이제 두 달만 있으면 출국을 하는 승리다.

옷을 구입하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가면서 준비를 하는 승재는 새삼스럽게 아내의 필요성을 깊이 깨닫는다.

“여보!

당신이 정말 그립다.

그리고 당신이 정말로 필요하고 보고 싶다.“

승재는 아내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아내는 아직도 갓 서른 살의 아주 젊은 모습 그대로다.

문득 거울을 통해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의 사진을 본다.

이젠 아내와 자신이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이를 먹지 않는 아내와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초로의 남자다.

승재는 거울을 통해서 본 자신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이젠 영락없는 장사꾼의 모습이 자신을 보고 있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0장,

승재는 딸들의 뒤를 대기 위해 더욱 장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매달 승리에게 보내야 하는 돈과 대학생이 된 승미와 미술에 특기를 보이고 있는 승인이의 뒷받침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도 나태해진다거나 소홀이 할 수 없는 장사다.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장사야 말로 아이들의 미래고 희망이라는 생각을 한다.

승인이는 점점 그림 그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런 승인이를 위해 화구와 그림물감을 사는 일도 만만치 않다.

보통아이들 같으면 열여덟이면 사춘기를 지나 여성스러운 면이 많아지는 나이지만 승인이는 여전히 다섯 살 계집아이의 행동을 보인다.

사고력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면서 눈동자는 빛을 발한다.

그러나 승인이의 육체는 완연한 여성스러움을 보이고 있다.

생리도 꼬박 거르지 않고 매달 정확한 날짜에 보이고 있고 앞가슴 역시 제법 봉긋하게 솟아있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승인이를 보면서 승재는 더욱 불안한 마음이 되어간다.

이제 단 한순간도 혼자서는 어디를 내 놓을 수 없는 딸이다.

학교에 다녀오면 늘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승인이의 일과다.

승재는 큰 딸 승미가 가게로 나오면 승인이를 보려고 집으로 잠시 들어가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막내딸을 볼 시간이 없다.

“우리 승인이 그림 그리고 있니?”

“아빠!”

승인이는 아빠를 보면 늘 아빠 품에 안기곤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긴다는 것보다는 아빠를 안아준다는 것이 맞을 정도로 승인이의 키는 훌쩍 커버렸다.

“승인이 뭐 먹고 싶어?”

“아빠!

돈가스 사줘!“

“돈가스 먹고 싶어?”

“응!”

“그래, 그럼 오늘 언니하고 돈가스 먹으러 가!”

“아빠는 안가?”

“아빠는 가게 봐야지.”

“싫어!

언니가 가게보고 아빠하고 가!“

“그럼 언니도 먹고 싶을 텐데 어떻게 하지?”

“그래도 아빠하고 가!”

승인이의 막무가내 식 떼쓰기가 시작되면 이길 수가 없다.

자신이 한 번 생각하는 일을 바꾸는 법이 없는 승인이다.

“그래, 그럼 언니도 함께 데리고 가자.”

“응!

아빠랑 언니랑 그렇게 가!“

승재는 승인이를 데리고 가게로 나온다.

저녁을 돈가스를 먹이기 위해서다.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돈가스 전문점이 있어 그곳으로 간다.

손님이 많은 시간이지만 승인이를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운다.

그 어떤 것도 자식들을 우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모든 종업원들이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종업원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있는 승재다.

혼자만 잘 살자고 종업원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승재의 성품이다.

그들 또한 자신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임을 생각하는 승재다.

그들의 어려운 입장을 생각해서 먹는 것 또한 입맛에 맞는 것으로 사 주고 노는 날이면 적게라도 용돈을 지급하곤 한다.

그런 그들은 가게 일을 자신의 일처럼 모든 성의를 다해서 손님을 대하고 판매를 한다.

승재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돈 보다는 사람임을 느낀다.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나면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해 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하는 그들이다.

조그만 배려가 때로는 큰 이득이 되어 돌아오곤 한다.

조그만 배려를 해 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크나큰 힘이 되고 용기를 주곤 한다.

이제 승재는 강단에 서있는 것보다는 장사를 하고 있는 자신이 더 어울리고 보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더욱 부지런한 장사꾼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승인이는 무척이나 돈가스가 먹고 싶었던 모양이었는지 자신의 것을 다 먹고 나서도 아빠나 언니 것을 넘겨다본다.

“승인이 더 줄까?”

“응!”

승재는 일인분을 더 주문한다.

승인은 평소에는 밥을 그다지 많이 먹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가끔 한 번씩 몰아서 많이 먹곤 한다.

마치 그동안 허기진 사람처럼 생각보다 상당량의 음식을 먹고서도 소화를 시킨다.

승인은 또 다시 돈가스 일인분을 다 먹는다.

“우리 승인이가 돈가스가 많이 먹고 싶었구나?”

승미가 묻는다.

“응!”

“승인아!

뭐가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아빠나 언니한테 말해!“

”.....................“

그러나 승인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스스로 먹고 싶다고 말을 한 적이 없다.

누가 물어보면 그제야 말을 하는 승인이다.

자신이 스스로 무엇을 요구해 본 적이 없다.

별로 말이 없는 승인이다.

“이제 배불러!”

“맛있게 먹었어?”

“언니!

돈가스 맛있다, 그치?“

“그래, 정말 맛있다.

다음에 우리 또 올까?“

”응!“

승미는 승인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승인이의 해맑고 천진스러운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러나 남들 눈에 보이는 승인이의 모습은 저능아의 모습 그대로다.

그것이 승미는 속상하다.

승미 또한 어디를 가든 승인이를 데리고 다니기를 좋아하지만 남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때때로 속이 상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 봐주면 좋을 것인데 마치 무슨 외계인을 보는 듯한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속상하다.

그러나 승미는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동생이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나는 승미다.

승인이의 모든 것을 세심하게 살펴주는 승미다.

승인이가 생리일이 되면 생리대를 해주고 행여 옆으로 새지 않을까 꼼꼼하게 챙겨주고 옷 입는 것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며 엄마처럼 보살피는 승미다.

아직 생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승인이다.

생리일이 되면 늘 피가 나온다고 울곤 하는 승인이에게 그 어떤 말로도 설명을 할 수가 없어 매달 생리일이 가까이 되면 신경을 쓰곤 한다.

“언니!

피가 왜 나와?“

“이제 우리 승인이도 여자가 되었다는 표시야!”

“여자가 되면 다 피가 나와?”

“그래!

여자들은 누구나 때가 되면 다 그런 거란다.“

“언니도 피가 나와?”

“그럼, 우리 승인이처럼 매달 그렇게 피가 나온단다.”

“그럼 아빠도?”

“승인아!

아빠는 남자라서 안 나오지.“

”왜 여자만 피가 나와?“

”여자들은 아기를 낳아서 엄마가 되잖니?

그러니까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란다.“

”그럼 나도 엄마가 되는 거야?“

”우리 승인이가 결혼을 하면 엄마가 될 수 있지만 글쎄 그건 언니도 잘 모르겠다.“

”난 왜 안 되는데?“

”우리 승인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

언니 결혼이 뭐야?“

승인이는 완전한 다섯 살짜리 꼬마다.

때로는 긴 침묵을 지키지만 한 번 말문이 터지면 끝없는 질문을 한다.

무엇이라고 설명을 해 줄 수 없는 승미는 답답함을 느끼지만 승인이의 눈빛을 보면 티 없이 맑고 곱다는 생각을 한다.

거짓과 욕심이 없는 맑고 순수한 눈빛이다.

“승인아!

우리 승인이 너무 곱다.“

“언니!

예쁘다고 하는 말이야?“

“그럼, 우리 승인이 정말 예쁘고 아름답다.

네 모습처럼 우리 승인이 영혼도 맑고 아름다울 거야!“

“영혼이 뭔데?”

또 다시 승인이의 끝없는 질문이 시작된다.

승미는 그런 승인이와 지치지도 않고 자신이 아는 범주 내에서 승인이가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을 해 나간다.

승인이의 눈높이로 승인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승미다.

승미는 이따금 오래전에 죽은 엄마를 떠올려본다.

늘 아빠 방에 엄마 사진이 있어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만 엄마의 실체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에 없다.

승미의 기억에 있는 엄마는 병원에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있는 모습뿐이다.

그러나 승인이를 보면서 엄마의 환상을 느끼곤 한다.

엄마를 제일 많이 닮았다는 승인이다.

아빠 말에 의하면 그림을 그리는 모습까지도 엄마를 닮았다는 승인이다.

승미는 아빠와 승인이를 위해서 학교가 끝나는 대로 곧장 귀가를 한다.

그런 승미를 좋아하는 나인규는 승미와 시간을 갖지 못해서 애가 타지만 언제나 강의가 끝나면 사라지곤 하는 승미였다.

나인규는 승미와 같은 삼학년이지만 복학생이다.

군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한 나인규의 눈에 차승미는 말 그대로 천사였다.

오늘도 나인규는 승미를 만나기 위해 강의를 빼먹고 승미의 강의실을 지킨다.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나온다.

승미의 모습을 본 나인규는 승미에게로 가서 무작정 손목을 잡고 이끈다.

“왜 이래요?”

그러나 나인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승미를 끌고 자신의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간다.

“대체 왜 이래요?”

“타!”

“내가 왜 타야하지요?”

“차승미!

절대 나쁜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냐!

어디 가서 얘기 좀 하자.“

”그럴 시간이 없어요.“

”대체 뭐가 그리도 바쁘니?

잠시만 시간을 내 주는 것이 그리도 어려워?“

”집에 가봐야 해요.“

”결혼을 한 유부녀도 아닌데 집에 급하게 가야 할 일이 대체 뭐야?“

”내가 그런 이유를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그리고 나선배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어요.“

같은 학년이지만 분명 입학을 이년이나 먼저 했기에 승미는 꼬박 선배존칭을 사용한다.

그는 경영학과 학생이다.

언제나 자가용을 가지고 다니는 부유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승미다.

관심이 없다기보다 남자하고 노닥거릴 시간이 없는 승미는 모든 이성 관계를 멀리하고 관심조차 갖지를 않고 있다.

자신의 처지에 이성 친구나 애인을 만든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바쁜 아빠를 도와 가게 일도 도와야 하고 승인이를 위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승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차승미!

남자의 자존심을 모두 내 던지고 애원을 한다.

잠시 시간을 내서 차라도 한 잔 마시자.“

“나선배!

제겐 그런 시간들이 모두 사치입니다.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제겐 없습니다.“

승미의 단호한 거절의 말이다.

그러나 그대로 순순하게 물러설 나인규가 아니다.

“그럼 일단 타!

너의 집에까지 데려다 줄게!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면 되겠다.“

나인규는 문을 열고 승미가 타기를 기다린다.

승미는 잠시 생각을 하다 나인규의 차에 오른다.

나인규는 시동을 걸고 승미의 집 방향을 묻는다.

“차승미!

우리 정말 사귀어 보지 않을래?“

”전 누굴 사귀면서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바쁘신 아빠의 일을 도와드려야 하고 동생을 보살펴야 합니다.“

“왜?

엄마가 없어?“

”제가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참, 내가 왜 이런 대답을 해야만 하지요?“

승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말을 하고는 스스로 놀라고 있다.

“그 정도는 별일도 아니잖아?”

나인규는 이제 승미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음을 느낀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