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바다
제 1장,
차승재는 부지런히 병원에서 집으로 출발을 한다.
오늘이 집의 잔금을 받고 이사를 하는 날이다.
벌써 이년이 넘도록 아내와 함께 병원생활을 해 오고 있는 차승재다.
이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내는 벌써 다섯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아내 문유미의 모든 간병을 맡아서 해 나가고 있는 차승재는 직장도 그만두고 수입원이 없이 오직 아내를 살리기 위한 생각뿐이다.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빌린 돈과 병원비를 생각해서 그나마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연립주택 조그만 평수의 집을 전세로 얻어 놓았다.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받은 은행융자를 빼고 빌린 돈과 병원비를 제외하고 나서 얻을 수 있는 집이 평수가 작은 연립주택이다.
모든 짐들은 이미 옮겨 놓았다.
짐이라고 해야 불필요한 것들을 처분하고 간단하게 이사를 한 차승재다.
아내가 임신 중독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이 벌써 이년이 넘는 세월이다.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임신 중독증상을 보여 왔지만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병원에 다니는 것을 소홀해 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다.
임신중독으로 인해 온 몸이 붓고 힘들어 했지만 병원에 입원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둘 다 모두 미술학원의 유명한 부부강사다.
같은 대학을 나온 부부는 서양화와 동양화를 전공한 사람들이다.
대학에서부터 사랑을 나누던 커플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문유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밑으로 남동생과 여동생을 둔 문유미는 어머니가 홀로 자식을 키우면서 숱한 고생을 하시는 것을 보아오면서 대학 생활을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학비를 조달하곤 했다.
차승원 역시 그리 넉넉한 집안의 아들이 아니고 간신히 남에게 빌리러 가지 않을 정도의 형편을 유지해 오고 있는 집안의 막내다.
미술에 소질을 보이고 있는 막내아들의 뒷바라지를 감당하기에 힘에 겹다.
위로 두 형들이 있어 큰 형의 도움을 받아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차승재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둘은 사랑이 깊어갈수록 서로 장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직장을 가지고 난 후의 일이었다.
다행히 차승재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원에 취업이 된다.
차승재보다 일 년 후에 졸업한 문유미 또한 차승재가 다니는 학원에 강사로 취업된다.
그들은 부부강사로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아서다.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그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서 학생들이 수업을 맡는다.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면서 그들의 실력은 눈에 뜨이게 나타난다.
결혼을 하고 삼년 만에 아기를 갖는다.
그동안 단칸방에서 방 두 개짜리 전세를 얻고 나서야 아기를 가진 것이다.
첫아기의 출산을 순조롭게 하고 나서 문유미는 아기를 친정엄마에게 부탁을 하고 다시 출근을 하며 특강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한다.
아기를 보시기 위해 매일 딸네 집으로 출근을 하시는 장모님이시다.
하루 종일 아기와 함께 계시다 딸이나 사위가 오면 집으로 돌아가시곤 한다.
그렇게 편안하게 아기를 키울 수 있어서 그랬는지 다시 둘째를 임신한다.
배가 부르고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출근을 고집하면서 이겨낸 문유미는 둘째 역시 별 어려움 없이 순산을 한다.
둘 다 모두 딸들이다.
장모님이 계시기에 그들은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한다.
말이 없이 유미를 도와주시곤 하는 장모님이시다.
그들은 계획대로 아파트를 분양받는다.
이십 팔 평짜리의 아파트다.
은행 융자금을 받고 구입했지만 다시 철저한 계획을 세우면서 매달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면서 부부는 꿈을 키워간다.
이제 학원가에서는 부부 미술 강사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차승재와 문유미는 더욱 부지런히 일을 한다.
방학기간에도 그들 부부는 특강을 맡는다.
다른 시간의 강의보다 수입이 많은 특강이다.
학원에서는 그들 부부에게 특강을 맡기곤 한다.
그렇게 그들은 한눈 한 번도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예정에 없던 셋째 아이의 임신이다.
임신초기부터 임신중독 증상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병원에 다닐 시간이 없다.
약을 복용하면서 부종이 가라앉기만 기다린다.
허나 늘 서 있는 강의 때문인지 부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특별히 별 다른 이상이 없는 문유미는 출산을 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니 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워낙에 꽉 짜인 스케줄이다.
두 아이를 별로 힘들지 않게 순산을 한 문유미는 특별하게 신경을 쓸 것도 없다는 듯 매일 강의로 바쁜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나 달이 지나갈수록 부종은 더 심해지 두통과 현기증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문유미는 방학 특강이 끝나고 나서야 병원을 찾는다.
이미 팔 개월의 무거운 몸이다.
더 이상 자신을 지탱 할 수 없다.
지속적인 갈증이 생기고 소변 량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의사는 급하게 입원을 권유한다.
이미 혈압이 올라가고 단백녀가 생긴 상태였다.
문유미는 곧 바로 입원을 하지 않고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과 상의를 해야 하고 학원의 결강을 막기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를 해야 하기에 의사의 권유를 가볍게 듣고 집으로 돌아간다.
의사는 여러 번을 입원할 것과 아기를 조기 출산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이미 문유미의 상태는 위험한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문유미는 입원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날 밤을 보내지 못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혼수상태로 빠져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이 된다.
병원에서는 급하게 아기를 꺼낸다.
다행이 미숙아지만 아기를 살려낸 것이다.
그러나 산모가 뇌출혈이 생겨 큰 수술을 해야만 한다.
혈압이 급격하게 높아서 뇌에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또한 이미 시신경의 손상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고 문유미는 여러 번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기에 차승재는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갑작스러운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은행 융자금을 갚고 알뜰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두 아이의 양육비가 만만치 않다.
많은 저축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은 친정어머니께 매달 얼마간의 돈을 드리고 나면 저축한다는 것은 그저 마음뿐이다.
차승재는 여기저기에서 돈을 구한다.
어떻게 하든 아내를 살려야만 하는 것이다.
아내가 없다면 자신의 인생 또한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뿐이다.
문유미는 생명은 살아 있다고 해도 무엇 하나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또한 시신경의 손상으로 이미 시력을 잃은 문유미는 무엇 하나도 볼 수가 없다.
차승재는 학원을 그만 두고 아내 곁에서 모든 것을 해내고 있다.
아내의 대소변은 물론이고 아내의 손과 발이 되고 눈이 되어준다.
말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도 없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다.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들 부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셋째 역시 딸이다.
많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딸을 퇴원을 시켜 장모님께 맡긴다.
이제 세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딸이 생사를 넘나드는 것을 보시는 장모님의 모습 또한 하루하루 수척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아이들만을 열심히 키우신다.
문유미는 간신히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지만 더 이상의 호전은 보이지 않고 있어 차승재로서는 마음만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
더 이상 밀린 병원비도 사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친다.
차승재는 집을 처분하기로 마음을 먹고 장모님과 의논을 해서 결정한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당신의 모습이 미안하고 죄스럽다는 말씀 뿐 눈물만 흘리신다.
또한 형님들께도 더 이상의 부담을 드릴 수도 없는 것이다.
힘겹게 살아가시는 형님들이 그동안 도움을 준 것이 여러 번이지만 모든 것이 그저 푼돈이 될 뿐이었다.
집은 내 놓기가 무섭게 계약이 되었다.
집값은 구입당시보다 조금 비싸게 팔렸지만 은행 융자금을 제하고 빌려온 돈을 갚고 밀린 병원비를 갚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작은 평수의 연립이라도 전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 쉰다.
차승재는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급하게 병원으로 간다.
아내를 오랜 시간 혼자 둘 수 없다.
불안한 마음으로 승재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먹는 것조차 거부를 한다.
병원을 비울 때는 늘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오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기다려 가끔 아이들을 보러 가기도 하고 돈을 구하러 다니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내는 승재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주어도 입을 꽉 다문 채 열지 않는다.
승재가 급하게 병실로 들어서자 호스피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승재를 맞이한다.
“오늘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까?”
“그럼요!
약도 거부하고 일체 입을 열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승재는 미안함을 나타내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유미야!
나를 기다렸어?“
유미는 그제야 어두웠던 표정이 풀리고 손을 더듬어 남편의 손을 찾는다.
“내가 늦게 와서 미안해!”
승재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아준다.
유미는 무언가를 말을 하지만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승재는 유미의 입모양을 보면서 대충 알아듣고 아내의 마음을 알아낸다.
아이들을 묻는 것이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우리 아이들을 만나보지 못하고 왔어!
다음에 다시 시간을 내서 만나고 올게!
자, 이제 이것을 먹고 약도 먹어야지?“
승재가 떠 넣어주는 음식을 받아먹는다.
차승재는 한 수저 한 수저를 정성껏 떠먹인다.
대화라도 마음 놓고 나눌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지만 그저 입안에서만 웅얼거리는 소리뿐이다.
얼마나 답답하고 자신이 초라해 보이겠는가 싶은 마음에 마냥 불쌍해진다.
“여보!
많이 먹자.
그래야 힘이 나서 이 모든 병을 이겨낼 수가 있지.
어서 많이 먹어!“
그러나 유미는 반도 먹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조금만 더 먹자.”
유미는 고개를 흔든다.
유미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뿐이다.
무엇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볼 수도 없다.
“유미야!
당신이 많이 먹어야 내가 기분이 좋지.
나를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먹어!“
그러나 유미는 고개를 돌리고 그만 먹는다는 표시를 강하게 한다.
“그래, 알았어!”
차승재는 먹이는 것을 중단한다.
더 이상 무리하게 먹이면 소화도 되지 않고 다시 토하기 일쑤다.
아내를 앉혀놓기 위해 앞뒤로 고여 놓았던 방석들을 치우고 다시 눕혀준다.
한곳으로만 누워있으면 욕창이 생길까 싶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을 자세를 바꾸어 주지만 어느새 등에 욕창이 생겨 고생을 하고 있다.
매일 소독을 하고 치료를 하지만 한 번 생긴 욕창은 쉽사리 낫지를 않고 있다.
온 몸은 살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뼈에 가죽을 씌워놓은 것처럼 만져지는 곳마다 뼈마디가 앙상하게 손에 잡힌다.
“유미야!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지?“
웅얼거리며 알고 있다고 대답을 한다.
“우리 이다음에 한 날 한시에 함께 이 세상을 떠나기로 약속한 것 기억나?”
유미는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은 반드시 일어날 수 있어!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얼마든지 마음껏 그릴 수 있어!“
그러나 유미는 고개를 흔든다.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틀림없이 눈도 다시 보게 될 것이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어!
그러니까 희망을 놓으면 안 돼!
내가 당신을 이렇게 지키고 있으니까 나를 믿지?“
유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차승재가 가장 사랑하는 유민의 눈이다.
크고 깊숙한 눈은 사슴을 닮았다고 늘 생각하던 아름다운 눈이다.
지금 그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절대로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차승재는 아내의 눈물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온다.
유미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한다.
“미안할 것 없어!
내가 아파도 당신이 이렇게 나를 보살펴 줄 것이잖아?
당신 몸이 내 몸이고 내 몸이 당신 몸이니 당신이 아파하면 나도 같이 아파!
그러니까 눈물을 흘리지 마!“
또 다시 웅얼거리는 소리가 입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그래, 참아내야 해!
우리는 반드시 해 낼 수 있어!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공주님들을 위해 이겨 낼 수 있는 거야!“
그들의 그런 모습들은 모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아내를 위해 잠시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승재의 모습은 환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고 보호자들에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
병원 내에서는 이미 칭송이 자자한 차승재의 모습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출도 하지 않고 꼬박 아내 곁을 지키는 차승재의 모습이다.
글: 일향 이봉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