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소설&드라마

[연재소설] 아빠의 바다 (41회-50회)

淸山에 2013. 4. 2. 18:46

 

 

 

 

제 41장,

승인이는 다른 낯선 곳에서는 불안한 증상을 보이곤 한다.

그것을 알고 있는 승미는 아빠가 돌아오실 때까지 아빠의 집에 있기로 인규와 합의를 한다.

인규 역시 처제의 그런 모든 것들을 잘 알고 있기에 두말없이 승낙을 한다.

“승미야!

네 시어른들께서 참으로 마음이 넓고 좋으신 분들이시다.

네가 더욱 열심히 섬기고 따라야 할 것이다.“

”네, 아빠!

특히 시아버님께서는 저를 어찌나 생각을 해 주시는지 참으로 편안하고 좋습니다.“

“그래, 그러기 때문에 네가 더욱 잘 받들어 모시고 잘 해 드려야 할 것이다.

아빠는 네가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남편과 서로 사랑하면서 편안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참으로 행복하다.

홀몸이 아닌 너에게 승인이를 부탁하고 간다는 것이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승리를 생각해서라도 아빠는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승리가 얼마나 아빠를 기다리고 보고 싶어 하겠어요?

저도 출산을 하고 나면 그이하고 함께 승리를 만나러 갈게요.“

“고맙다.

승리에게 꼭 그렇게 전해주마!“

승미는 아빠에게 이것저것을 준비해 드린다.

의상을 비롯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구입해 드리면서 그동안 아빠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얼마나 승리를 그리워하셨을까 생각하니 미처 마음을 써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승리 또한 얼마나 아빠가 그립고 보고 싶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온다.

승미는 승리를 위해서 의상을 몇 벌을 준비해서 보낸다.

의상과 필요한 소품을 함께 구입해서 아빠 편에 보낸다.

비행장까지 따라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배웅을 해 드린다.

승인이를 데리고 비행장까지 나가면 승인이도 따라가겠다고 떼를 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떼를 쓴다면 난감할 것이라는 생각에 승재도 승미도 집에서 인사를 대신 하기로 하고 사위인 인규가 모셔다 드린다.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는 승재다.

그런 장인어른을 위해 인규는 여행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알려드리고 여행에 대한 소책자도 구입해드리고 가시는 미국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일러드리곤 했다.

뉴욕비행장에는 승리가 나오기로 한 것이다.

승재의 마음은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으로 해외에 나간다는 기분도 그렇지만 십여 년 만에 만나게 될 승리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기분이 묘해지기도 한다.

승재는 비행기가 멈춰서버린 듯한 생각을 한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초조해진다.

그러나 승재의 생각일 뿐 비행기는 정시에 뉴욕공항에 착륙을 한다.

승리는 비행기 도착시간을 알고 비행장에 나와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십여 년 만에 만나는 아빠다.

참으로 그립고 보고 싶은 아빠의 모습이다.

승리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없다.

오직 아빠뿐이고 아빠가 전부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장을 해 온 승리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승리로서는 오직 아빠 생각뿐이다.

승리는 악착스럽게 공부에 매달리면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걸린 세월도 아니고 그다지 고생을 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빠의 고생으로 남들보다 편안한 유학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승리가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고 나서 이미 승리를 스카우트하려는 기업이 있을 정도로 승리는 매우 우수한 성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승리의 야심은 그들의 생각을 뛰어 넘어 웬만한 기업엔 눈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정부 산하기관인 대기업에서 승리의 실력을 인정하고 러브콜을 한다.

승리는 자신의 모든 조건을 제시한다.

역시 생각대로 오케이다.

승리는 그쪽에서 내어주는 숙소로 옮긴다.

독신자 아파트라고는 하지만 조용하고 상당히 넓은 평수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부유층들만 살고 있는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안전지역이다.

승재는 비행기에서 내려 가방을 찾아 검색을 통과한 다음 출구로 나오면서 과연 딸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리며 딸의 모습을 찾아본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승리가 먼저 알아본다.

승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간다.

“아빠!”

승재는 자신을 보며 아빠라고 하는 승리는 바라보며 잠시 어안이 벙벙해진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숙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승리다.

“네가 내 딸 승리가 맞니?”

“아빠!”

승리는 아빠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내 딸 승리가 맞구나!

승리야!“

승재 역시 승리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로 반가움의 눈물이다.

“어디보자!

아빠 딸이 너무 많이 성장을 해서 그냥 스치고 지나가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승재는 승리를 품안에서 떼어 놓으며 승리의 얼굴을 본다.

참으로 생각보다 더욱 아름답고 세련된 여인의 모습이다.

“아빠!

많이 늙으셨어요.

저 때문에 더욱 많이 늙어지신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아니다!

내 딸이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가 되었는데 아빠만 세월을 비껴 갈 수가 있다던?

참으로 아름답고 아주 세련된 숙녀로구나!“

“아빠!

어서 가야지요.“

승리는 아빠의 여행 가방을 끌고 자신의 승용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간다.

승용차는 중형이다.

“이 차가 네 것이냐?”

“네!

회사에서 내 준 것입니다.“

“업무용으로 말이냐?”

“아닙니다.

제 사적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 요구조건을 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승재는 딸의 능력이 그 정도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좋은 승용차를 잠시 손으로 만져본다.

참으로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딸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서 타세요.”

“그래!”

아빠가 차에 타시자 승리는 차의 시동을 건다.

“이렇게 저 말고 다른 사람이 타는 것이 처음입니다.

아빠가 처음으로 이 차를 타신 것입니다.“

“그러냐?

참으로 기분 좋은 말이구나!“

차는 승차감이 좋게 속력을 낸다.

뉴욕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조용하고 부유층들이 사는 동네라서 그런지 깨끗하기도 하다.

“동네가 참으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네!

이곳은 부유층이 사는 주택가지요.

그래서 안전하고도 아주 조용한 곳입니다.“

“이런 곳에 집을 얻으려면 상당한 돈이 들어가겠구나?”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제가 제시한 모든 조건을 모두 수락하고 집도 그 중에 한가지일 뿐입니다.“

”아빠는 정말 우리 딸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구나!

오랜 세월 보지 않았던 것만큼 아빠는 우리 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스럽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실감이 난다.“

”아빠!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고 제가 어떻게 변했다고 하더라도 전 아빠의 딸입니다.

아빠가 없고서는 차승리 또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차승리의 오늘을 만들어 주신 아빠가 아닌가요?“

”허허허.........

우리 딸이 그렇게 말을 해 주니 아빠는 정말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구나!

대단한 딸을 가진 아빠들의 심정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차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참으로 널찍하고 쾌적한 주차시설이 되어 있는 곳이다.

주차를 하고 승리는 가방을 꺼내고 아빠를 모시고 자신의 숙소로 향한다.

십일 층에 있는 승리의 숙소다.

“들어오세요.

아빠, 이곳이 아빠 딸의 살아가고 있는 집입니다.“

승재는 생각보다 상당히 넓은 아파트를 보고 놀라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참으로 경관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고 테그도 넓어 아침이면 테그에서 차를 마셔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참으로 좋은 곳이구나!

그리고 집이 생각보다 넓어서 답답하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네!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집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집에서 연구를 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일도 하곤 합니다.

매일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집에서 보내며 일을 하는 시간이 때로는 더 많을 때도 있지요.

자신이 맡아서 하는 일을 정확하게 해 놓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럼 재택근무도 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제 일의 사정상 그런 일이 종종 필요할 때가 있거든요.

복잡하고 시끄러운 사무실 보다는 집에서 조용하게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학위 수여식이 끝나고 나면 아마 무척 바빠질 듯싶습니다.“

승리의 학위 수여식은 일주일 뒤에 있다.

그것에 참석하기 위해서 승재는 서둘러 날아온 것이다.

승재는 짐을 풀러 승미가 사 보낸 승리의 의상들을 꺼낸다.

“네 언니가 사 보낸 것이다.

학위 수여식에 입으면 좋을 것이라고 하더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세상에!

한 두 벌도 아니고 이렇게 여러 벌을 사 보내다니?

언니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모양이네요.“

“그렇다기보다는 언니가 네게 보내는 사랑과 정성이 아니겠니?

너를 향하는 언니의 사랑일 것이다.“

“아빠!

고맙습니다.

우리 자매들이 이렇게 서로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아빠의 사랑 때문입니다.

아빠가 심어주신 그 사랑으로 인해 어디를 가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래!

그것이 참으로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다.

진심으로 남을 사랑하면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된단다.“

“네!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빠의 숭고한 사랑과 진심으로 가족을 아끼며 사랑하고 계신 그 사랑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승리는 아빠의 그 큰 사랑이 얼마나 자신을 바르게 잡아주고 있는 것인지 수없이 깨닫는다.

승리는 아빠를 위해서 준비해 놓은 식탁을 차린다.

이곳에서 승리는 음식솜씨도 많이 늘었다.

혼자서 자취 생활을 하다보면 음식을 사 먹는 것보다 해 먹어야 돈이 들지 않기에 되도록 음식을 해 먹곤 하던 승리다.

한국 재료들을 파는 곳도 많고 어떤 재료든지 다 있는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한국요리를 할 수 있는 모든 재료들을 다 구입할 수가 있다.

“아빠!

지금까지 둘째 딸이 해드리는 음식을 드셔보지 않으셨지요?“

”어디 그럴 시간이나 있었니?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보내고 나서 아빠는 늘 걱정이 많았다.

기숙사에 있을 때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나서부터 우리 승리가 음식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굶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단다.“

“아빠!

아무리 음식을 할 줄 모른다고 해도 굶고 있을 수는 없지요.

나가면 인스턴트식품들이 얼마나 많은데 굶겠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것에 길들여 있지 않은 우리 딸들이 많은 고생을 하겠지.“

“아빠!

그래서 음식을 하는 것을 많이 배웠어요.

한국인의 집에 초대를 받고 가면 늘 한가지씩은 배워가지고 옵니다.

참으로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시고 재료들도 남은 것이 있으면 나누어 주시거든요.“

“그랬구나?

오늘 우리 딸이 어떤 음식을 해 주는지 기대를 가져도 되겠지?“

“호호호.......

네!

아빠 딸의 요리솜씨를 보시고 흉을 보지 않으시겠지요?“

그러나 승리는 자신이 있다는 표정이다.

불고기와 된장국 그리고 김치를 담가놓고 있는 승리다.

아빠가 가지고 오신 김과 젓갈류 그리고 멸치로 멸치볶음을 만든다.

상은 그런대로 풍성해 보인다.

아욱과 조개를 넣은 된장국이다.

냄새부터 시원한 맛을 내고 있는 된장국을 승재는 맛본다.

“음, 정말 시원하고 맛있구나!

된장국을 맛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맛있다.“

승재는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듯 딸을 바라본다.

글: 일향 이봉우

 

 

 

 

제 42장,

승리는 아빠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마냥 즐겁다.

그동안 함께 해 보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다 해보려는 생각이지만 생활이라는 것이 그리 마음먹은 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승리는 시간을 쪼개어 아빠와 연극도 보고 영화 관람도 하고 뉴욕의 번화가를 활보하면서 외식도 즐기곤 한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남자와의 데이트를 즐겨보지 못하고 숨 가쁘게 살아온 나날들이다.

이성과의 교재라는 것조차 생각을 해 볼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시간을 쪼개어 아빠 모르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느라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도 그럴 수 있는 생각도 해보지 못하고 지내온 날들이었다.

“아빠!

이렇게 아빠 팔짱을 끼고 뉴욕의 번화가를 거닐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정말 이런 날이 언제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꿈이려니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빠도 정말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 딸이 이런 대 도시 미국의 중심부인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도 조금도 빠지지 않는 늘씬하고 아름다운 미녀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이 아빠는 놀랍기도 하지만 너무나 자랑스럽다.“

“호호호..........

아빠는 역시 딸 바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세상에서 아빠만큼 딸들을 사랑하는 아빠도 그리 흔하지 않을 걸요?“

“아빠가 딸 바보라고 해도 아빠는 이 세상에서 내 딸들이 가장 자랑스럽고 대견한 것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니?

우리 딸들처럼 아름답고 아빠만 사랑하는 딸들이 있음 나와 보라고 하지.“

두 부녀는 거리를 활보하면서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두 부녀는 그저 행복하다.

“아빠!

학위수여식이 끝나고 나면 일주일 휴가입니다.

그때 미국의 유명한 곳을 여행하도록 해요.“

“오냐!

우리 승리하고 단 둘만의 여행이 지금부터 기다려진다.“

승리는 세밀하게 여행 일정을 잡는다.

자신도 아직 여행이라고는 해 보지 않고 살아온 미국이다.

어디가 어딘지 알지 못하고 가 보지 못하면서 살아온 미국 땅이다.

미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랜드케넌이다.

승리는 아빠를 위해 미 서부여행을 하기로 일정을 잡는다.

미 서부에 있는 켈리포니아를 통해서 그랜드케넌과 요새미티 국립공원등 광활한 자연과 함께 쑈 오락으로도 유명한 라스베거스도 둘러볼 계획이다.

아빠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여행일정을 짜는 것도 승리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되고 있다.

승리는 학위수여식에 언니 승미가 보내준 의상을 입는다.

우아하고 세련된 멋이 풍겨 나오는 고급스러운 의상이다.

또한 승리는 한층 더 멋스럽고 여성스럽게 해 주는 의상이기도 하다.

“참으로 우리 승리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이 아니냐?

너무나 멋지고 우아해서 아빠는 눈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빠!

정말 그렇게 멋지게 보여요?“

”그럼!

세상 어느 여성 박사님이 우리 딸처럼 아름답고 우아할 수가 있을 것이냐?

바라보기에도 아까운 아빠의 딸이다.“

승재는 너무 아름답고 우아한 딸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던가?

저런 아름답고 우아하고 훌륭한 딸을 보지 못하고 먼저 떠난 아내를 생각하면 다시 가슴이 아파져 온다.

그러나 딸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어 자신을 추스른다.

학위 식은 참으로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다.

미국에서도 내 노라 하는 대학에 경제학 박사의 학위 수여식이다.

이름 있고 덕망이 높은 사람들이 대거 참석을 한 자리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도 우뚝 돋보이는 승리의 모습이다.

승리는 보는 모든 사람들이 승리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곤 한다.

승재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저 자리에 서기 까지 얼마나 피눈물 나는 고통과 인고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새삼스럽게 딸의 모습이 커 보이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무나 저 자리에 설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과 모든 유혹과 고된 시간들을 통해서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대단한 자리다.

공부만 잘 한다고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승재다.

얼마나 많은 유혹의 시간들이 있었을까?

얼마나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을까?

얼마나 피눈물 나는 고통의 시간들을 흘려보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그런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이 자리에 서 있는 승리가 너무나 커 보인다.

딸자식이지만 이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큰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존재에서 저렇게 큰 인물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승리의 모습을 대단하게 보여진다.

그렇게 학위수여식은 대단한 행사였다.

이제 미국 내에서도 머지않아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서 온 여성의 이름을 자주 들을 수 있을 것이고 결코 무시하지 못할 존재로 자리를 잡아갈 것임을 승재는 믿고 있다.

그들은 차승리라는 여성에게 큰 존재의 힘을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재는 너무나 기쁜 마음을 주체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온 세월들이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다.

이렇게 큰 인재를 키워낸 자신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칭찬을 한다.

“아빠!

고맙습니다.

아빠가 저를 이렇게 키워주신 것입니다.“

승리는 모든 영광을 아빠에게로 돌린다.

“승리야!

아무리 부모가 잘 키워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자식들이 참으로 많다.

아빠는 너를 비롯해서 네 언니에게도 그리고 우리 승인이에게도 늘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우리 딸들이 너무나 성실하고 바르게 자라준 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하단다.“

“아빠!

그것은 모두 아빠가 그렇게 키워주신 것입니다.

아빠의 참 사랑이 우리 모두를 그렇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놓고 아빠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물장구도 치면서 바다를 향해서 나갈 꿈을 키우면서 그렇게 자란 것입니다.

아빠의 바다는 이 세상 그 어느 곳 보다도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어린 저희들을 키워준 포근하고 넓고 깊이 있는 바다였습니다.“

“승리야!

이제 아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

이제는 조금씩 모든 것을 정리해서 승인이와 단 둘이서 살아갈 준비를 하련다.“

“아빠!

그러지 마세요.

언니하고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승인이는 언니나 제가 맡아서 책임을 지겠습니다.

이제는 아빠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빠에게 새로운 인생이라는 것은 없다.

아빠는 우리 세 딸들이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이제 너나 언니는 아빠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그러나 승인이는 아빠의 영원한 숙제다.“

“아빠!

이제 그 짐을 내려놓으세요.

언니나 제가 바라는 것은 아빠의 행복이고 아빠의 편안한 노후입니다.

승인이를 데리고 결코 아빠의 노후가 편안해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든 승인이를 이곳으로 데리고 올 계획입니다.“

“안 된다.

결코 승인이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도록 할 수도 없고 네가 승인이를 데리고 무엇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거라!

승인이는 죽은 네 엄마가 이 아빠에게 맡겨 놓은 것이다.

한시라도 승인이를 떼어 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허지만 아빠!

이제 엄마 기억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벌써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일입니다.

이제는 그런 기억속에서도 벗어나고 승인이로부터도 벗어나서 아빠만의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보내셔야만 합니다.“

”승리야!

아빠는 네 엄마와 지금까지 한시도 떨어져 살아왔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비록 네 엄마의 육체는 그 옛날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고는 해도 네 엄마와 영혼의 결합은 한시도 떨어져 본적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언제든 어디든 함께 하는 그런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이다.“

승리는 아빠의 그 말을 무시하지 못한다.

아빠의 숭고한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허지만 이미 너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아빠의 사랑 앞에 자신이 과연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아빠!

우리 엄마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이지 싶습니다.

누구든지 아빠 같은 그런 사람을 만나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주저 없이 받아드릴 것 같아요.“

“승리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서로 욕심내지 말고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주려는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사랑을 할 수 있지 않겠니?“

”허지만 삶이란 것이 그리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니지요.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장애물과 힘겨운 파도와 무수한 장벽을 넘어야 하는데 어찌 그렇게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것을 함께 어깨를 맞대고 서로 힘이 되어주면서 헤쳐 나가다보면 더욱 더 큰 사랑으로 다가올 것이 아니겠니?“

승리는 아빠의 그 말에 그저 웃음으로 대꾸를 한다.

이따끔 아빠는 현실에서 먼 그런 생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의 영혼과의 삶에서 아빠는 현실을 잊고자 하는 안쓰러운 모습을 보는 승리다.

힘들고 지치고 외롭고 허전할 때 아빠는 엄마의 영혼과 대화를 한다.

도피하고 모든 것을 망각하고 싶어 하는 아빠의 마음을 승리는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아빠의 모습이 추하다거나 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아빠의 모습에서 그 어떤 강인함을 보기도 하는 승리였다.

엄마의 영혼과 오직 딸 셋만이 아빠의 삶이다.

그 딸들이 아무리 못나고 힘들게 해도 아빠에게는 그 삶이 전부인 것이다.

승리는 엄마를 향한 아빠의 마음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아빠의 힘이고 원동력이 되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

“아빠!

내일 아침 일찍 출발을 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이다.

이제 아빠와 둘만의 여행이다.

첫날은 센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을 둘러볼 예정이다.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금문교는 센프란시스코의 상징이기도 하다.

센프란시스코는 항구도시로 피셔맨즈워프, 금문교, 차이나타운, 유명한 케이블카 관광까지 다운타운을 구경하는 것만 해도 하루 일정으로 꽉 채워진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출발을 해서 캘리포니아의 대 농장 지대와 평원지대를 경유해서 요새미티 국립공원 미 서부 국립공원 중에서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요새미티 공원이다.

요세미티 폭포는 미국에서는 첫 번째로 전 세계적으로는 다섯 번째로 높은 폭포다.

긴 계곡을 따라 뽀얀 우윳빛 물줄기가 꽐꽐 쏟아지는 광경은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고 있다.

엘카피탄 바위는 세계 최대 화강암 바위로 수직으로 1,000미터 이상 솟아오른 바위로 전 세계의 암벽 등반가들에게 사랑받는 바위로 사람이 올라가고 있어도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바위라고 한다.

삼일 째 되는 날 라스베거스로 향한다.

라스베거스는 풍부한 볼거리로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이미 호텔 자체만으로 관광지가 되어버린 라스베거스 발라지오 호텔, 보는 것 자체만으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세계 최대의 호텔들이 밀집한 톤거리 스트리트를 따라 다운타운의 레이저 쑈를 감상하고 라스베거스의 명소를 돌아본다.

그리고 다음날 절경인 그랜드캐년을 돌아보는 빡빡한 일정이 남아 있다.

그러나 두 부녀는 피곤한 것을 모르고 일정에 따라 차질 없이 여행을 한다.

미국 애리조나 주 북부에 있는 거대한 협곡이다.

길이 350km(리틀콜로라도 강의 합류점에서 미드호까지), 너비 6~30km, 깊이 약 1,600m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협곡은 미국 애리조나 주 북부 콜로라도 강(江)이 콜로라도 고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곳에 형성되었다

계곡 벽에는 많은 단구가 계단 모양을 이루며, 계곡 저지에는 콜로라도강이 곡류한다.

그랜드캐년의 상 ·하류에도 협곡이 이어진다.

원래 콜로라도강이 흐르던 곳에 콜로라도 고원의 일부가 융기하여 깊이 약 1,600m의 협곡이 생긴 것인데, 계곡 벽에는 시생대 이후 7억 년 동안의 많은 지층이 나타난다.

지층의 빛깔은 여러 가지이나 적색 또는 주황색이 많다.

협곡의 북쪽은 카이바브 고원이고 남쪽은 코코니노 고원인데, 이들 고원은 평탄하다.

반건조지역이기 때문에 계곡 벽에는 수목이 간간이 있을 뿐이지만, 고원에는 수목이 무성하다.

그랜드캐니언의 단구에는 하바수파이 인디언 보호지구가 있으며, 소규모의 농경이 이루어진다. 고원에는 나바호 ·카이바브 ·후아르파이 등 인디언 부족의 보호지구가 있다.

그랜드캐니언의 중심부는 1919년 국립공원(면적 2,600㎢)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카이바브 고원과 코코니노 고원을 잇는 길은 곡저에는 작은 길 하나뿐이며,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길로도 350km나 된다.

국립공원의 하류에는 그랜드캐니언 국립기념공원과 미드호(湖) 국립 레크리에이션 지역이 있다.

승재는 여행을 하는 내내 승인이를 많이 생각한다.

이런 좋은 곳을 함께 여행을 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승인이를 데리고 오지 못하고 둘째와 단 둘만의 여행이 승인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대단한 그랜드캐년의 이모저모를 둘러보며 대단한 장관 앞에 압도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렇게 일주일의 여행일정을 끝내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이제 승리는 출근을 해야만 한다.

미국사회에서 더욱 큰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승리는 다시 자신을 불태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43장,

승미는 매일 아빠를 찾으며 울고 있는 승인이를 달래기에 진땀을 뺀다.

처음 얼마동안은 언니와 함께 있다는 것에만 좋아하던 승인이는 얼마 지나지 못하고 아빠를 찾기 시작한다.

아빠가 아주 멀리 승리언니가 있는 미국에 갔다는 말과 함께 승인이의 마음을 다독이는 승미는 아빠가 미국에 갔다는 말을 듣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아빠!

엉엉........아빠!“

승인이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렇게 아빠를 찾으며 울곤 한다.

“승인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아빠가 오실 거야!“

”싫어!

지금 아빠 오라고 해!“

“그래, 그럼 우리 아빠한테 전화할까?”

“응!”

승미는 승인이를 달래주기 위해서 전화를 한다.

다행스럽게 아빠가 전화를 받으신다.

“아빠, 잠시 승인이 전화를 받으세요.”

승미는 곧 바로 승인이에게 전화의 수화기를 건네 준다.

“아빠!”

“승인아!”

“아빠, 빨리 와!”

승인이는 아빠의 음성을 듣자 울음을 그치고 당장 오라고 성화를 한다.

“그래, 아빠가 금방 갈게!

언니 말 잘 듣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응. 언제와?“

”바로 갈게!

울지 말고 언니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승인이는 다시 전화의 수화기를 언니에게 건네준다.

“승미야!

네가 얼마나 힘들겠니?

승인이가 저렇게 매일 조르고 있는 것이냐?“

”아마 아빠가 많이 생각이 나는 모양이에요.

매일 아빠를 찾고 있어요.“

”그래, 알았다.

아빠가 당장이라도 알아보고 비행기 표를 앞당길 수가 있다면 앞당겨서 귀국을 해야겠다.

우리 승인이가 얼마나 힘들겠니?“

”아빠!

그렇다고 너무 서둘지 마세요.

승인이도 이제 조금씩 아빠를 떨어져 살아가야 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아빠가 없이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미야!

자세한 것은 돌아가서 이야기를 나누자.

밤이 너무 깊은 시간이니 어서 잠을 자거라!“

”그곳은 지금 아직 오전중이겠지요?“

”그래, 승리가 출근을 하고 아빠가 혼자 있다가 잠시 나가보려는 참이다.

나가는 길에 비행기 표를 앞당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을 하마!“

승재는 마음이 초조해진다.

아직 귀국 날짜가 일주일 남아 있지만 한가하게 그 기간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

항으로 간다.

승리가 출근을 하면 혼자서 미국의 명소들을 둘러보곤 하는 승재다.

혼자만의 거리를 거닐고 미국의 유명한 곳들을 둘러보면서 늘 승인이를 생각하곤 한다.

승인이와 함께 거닐며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다섯 살 짜리의 아이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으며 무엇이 남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승인이의 정신세계가 승재는 늘 많은 숙제로 남기곤 한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 세계에 빠져 있는 승인이의 모습은 때로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자신의 내면세계에 푹 빠져 있는 다섯 살 아이가 어디 있을 것인가?

또한 승인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다 큰 성인여자의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눈에 비쳐질 것이다.

승재는 늘 승인이를 위한 작은 선물들을 구입한다.

여자아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라든지 인형들, 그리고 작은 완구들은 승인이를 기쁘게 해 주고 승인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할 것이다.

다행히 승재는 삼일 후에 떠나는 비행기 표로 바꿀 수가 있다.

영어가 짧아 걱정을 하고 나간 길이었지만 공항의 직원들 중에 한국인이 더러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승재는 잠시 쇼핑을 하고 승리의 숙소로 돌아온다.

그리고 퇴근을 하고 돌아올 승리를 위해서 저녁을 준비한다.

가끔 이렇게 승리를 위해서 저녁을 준비하곤 하는 승재다.

마트에 가면 한국의 식재들을 얼마든지 구입할 수가 있기에 모처럼 잡채를 만들어줄 마음으로 모든 재료들을 구입해 가지고 온 승재다.

승리가 특별히 좋아하는 잡채다.

승리는 잡채에 무엇보다 많은 시금치가 들어간 것을 좋아한다.

색깔대로 파프리카를 채 썰어서 볶고 양파와 대파 당근과 버섯 등을 곱게 채 썰고 식용유를 대신해서 참기름에 재료하나하나를 정성껏 볶아서 내 놓는다.

고기를 넣는 것보다 참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볶아서 해 주는 것이 승재만의 비법이다.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한다.

당면을 물에 불려놓은 것을 삶아서 다시 참기름과 간장을 넣고 색깔이 나도록 볶아준 다음에 모든 고명들을 넣고 잘 섞으며 무쳐놓는다.

참으로 모든 색상들이 곱고 아름답고 맛있게 보이고 냄새 또한 아주 고소하고 좋은 냄새가 눈과 후각을 자극하고 있다.

그동안 승재는 승리를 위해서 김치도 담가놓고 물김치도 담가 놓았다.

가을철이라 그런지 그곳에서도 각종 채소들이 한국과 거의 같게 싱싱하고 온갖 종류의 모든 야채들을 구입할 수가 있다.

승리는 아빠가 해 준 모든 요리들을 매우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아빠의 손맛에 길들어진 승리의 입맛이다.

승재가 하지 못하는 음식은 거의 없을 정도로 딸들의 입맛을 맞추어주곤 하며 살아온 세월이었기에 승리는 아빠의 솜씨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볶음밥을 비롯해서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그리고 자장밥 같은 것은 거의 전문가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승재의 음식솜씨는 딸들의 미각을 매료시킨다.

승재는 모든 요리에 자신 나름대로 재료들을 사용하면서 맛을 살짝 바꾸어 보기도 하고 영양을 생각해서 재료들을 선정하기도 한다.

오므라이스나 카레라이스에 건강에 좋다는 고구마를 많이 넣기도 하고 파프리카를 많이 넣어 아이들의 눈과 미각을 돋우어 주기도 하는 센스장이 아빠인 승재다.

“아빠!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요.“

승리가 들어서면서 집안에 퍼져 있는 고소한 냄새로 음식을 알아낸다.

“아빠!

잡채를 하셨어요?“

”그래, 네가 먹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와!

우리 아빠 정말 최고!

어떻게 그렇게 딸의 마음을 잘 알아요?

안 그래도 오늘 아빠하고 마트에 가서 잡채재료를 사려고 생각하고 왔거든요.“

”그랬니?

그럼 오늘 아빠가 참으로 잘 한 것이구나?“

“그럼요.

너무 너무 신나고 기분이 좋아요.“

승리는 옷도 벗지 않고 주방으로 간다.

“와!

눈과 코가 너무 행복해 합니다.“

승리는 포크를 들고 잡채를 집어 먹어본다.

“와!

바로 이 맛, 정말 때로는 잠을 자다가도 먹어보고 싶은 우리 아빠만의 맛!

세상 어디에서도 이 맛을 볼 수 없을 거에요.

아빠, 정말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아요.“

”승리야!

아무리 그래도 어서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서 먹자.“

승재는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늘 간단하게라도 샤워를 하는 승리의 습성을 알고 있다.

“네!

그럼 잠시 뒤에 와서 포식을 하겠습니다.“

승리는 입맛을 다시며 방으로 들어간다.

승리가 샤워를 하는 동안 승재는 식탁을 준비한다.

이제 승리를 위해서 음식을 해 줄 수 있는 날들이 다시 올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이 먼 곳을 다시 승인이를 떼어 놓고 올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승리를 위해서 늘 마음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제 사회의 첫발을 떼어 놓는 승리는 당분간 결혼에 대해서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만의 생활을 하며 고생을 할지 다시 또 마음이 아파온다.

식탁이 거의 다 준비가 되었을 때 승리의 산뜻한 모습이 주방을 환하게 비쳐준다.

편안하고 샤프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승리의 모습은 더욱 여성스럽다.

“아빠!

벌써 준비를 다 해 놓으셨네요.“

”어서 앉아라!

이제 국만 퍼 담으면 된다.“

”국도 준비를 하셨어요?“

”그래, 마트에 가 보았더니 아욱이 보이잖니?

조개를 넣고 감자 조금 넣어서 끓여봤다.

예전부터 가을 아욱국은 대문을 닫아걸고 먹는다는 말이 있다.“

“대문은 왜 닫아걸어요?”

“그만큼 맛이 있어 이웃도 주기 아깝다는 뜻이란다.

원래 우리 민족은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정이 많은 민족이잖니?

그런데 가을 아욱국은 나누어 주기 아까울 정도로 맛이 좋다는 것이다.“

“아, 그렇군요.정말 너무 시원하고 이 안에 들어 있는 감자하고도 맛이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잡채의 느끼함을 잡아주기도 하고 속을 편안하게 다스려주는 것 같아요.“

“어서 많이 먹어라!

아빠가 너를 위해서 언제 다시 이렇게 음식을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승리야!

아빠는 내일 모래 귀국을 한다.“

”내일 모래라니요?

아직 일주일 남아 있잖아요?“

”그래, 그렇기는 하지만 승인이가 아빠를 기다리며 울고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아빠가 더 이상 이곳에서 아빠만의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공항에 가서 표를 바꾸어 왔다.“

“아빠가 혼자서 공항에 다녀오셨다고요?

제게 전화를 하시지 않고요?“

”바쁜 너에게 그런 시간을 낭비하라는 부탁을 할 것이 뭐가 있니?

산책도 할 겸 쇼핑도 할 겸 나가는 길에 잠시 공항에 들린 것이다.“

“영어가 통하지 않았을 것이데요?”

“공항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의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

직접 다니면서 모든 것을 해 주더구나.“

“그러셨군요?

그래도 생각보다 빠른 귀국이라 조금은 당황스럽네요.

아직 언니나 승인이를 위해서 선물을 다 준비하지 못했는데요.“

”승리야!

무슨 선물이 따로 필요하니?

그저 조그만 것들로 아빠가 준비를 했으니 너무 신경 쓸 것 없다.“

”그래도 태어나는 조카를 위해서 뭔가를 해 주고 싶습니다.

아빠!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해요.“

”그럼 그러자.

대신 비싸고 큰 선물을 가지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네!

저도 아직은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부녀는 마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승리는 아빠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함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그들 부녀는 저녁식사 후에 가까운 곳으로 쇼핑을 나선다.

승재의 말대로 비싸고 큰 선물은 아니더라도 이제 세상에 태어날 조카를 위해서 모빌과 신발 양말과 예쁜 속옷들을 준비한다.

물론 한국에도 얼마든지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한국에 나갈 기회가 없는 승리는 처음으로 태어나는 조카를 위해 이 정도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승재는 그런 작은 딸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렇게 승재는 예정보다 삼사일 정도 일찍 귀국길에 오른다.

아빠를 배웅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내서 집으로 돌아온 승리다.

“아빠!

언제까지고 건강하셔야 해요.

반드시 제가 아빠를 편안하게 모실 것입니다.“

”고맙구나!

그러나 아빠 걱정은 하지 말고 이 넓은 세계무대에서 마음껏 네 꿈과 야망을 펼쳐나가기를 바라고 늘 건강하고 아프지 말거라!“

“네!

건강에 유념을 할게요.“

공항에서 그들의 작별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아빠!”

승리는 다시 아빠의 품안으로 안긴다.

이제 이렇게 떨어지면 언제 다시 아빠를 보게 될 수가 있을 것인가?

승리의 눈에서는 슬픔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승리야!

눈물을 함부로 보여선 안 되지.

넌 두 어깨를 활짝 펴고 당당하고 씩씩하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 네가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아빠가 불안하지 않겠어?“

”아빠, 죄송해요.

그러나 아빠 딸은 전혀 나약하지 않습니다.“

승리는 다시 환한 웃음으로 아빠와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글: 일향 이봉우

 

 

 

 

제 44장,

승재는 비행기에 탑승을 하고 자신의 자리로 찾아가 편안하게 앉는다.

살아오면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날을 보내고 가는 길이다.

자신의 딸이 그렇게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딸들의 뒷바라지에만 여념이 없었던 세월들이었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주기만을 바라고 고대를 하면서 살아왔던 세월들 속에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던 순간들이 많았던가?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흘러가 버린 추억으로만 남겨진다.

승재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낀다.

이윽고 비행기가 이륙을 한다.

잠시 창으로 시선을 던지며 뉴욕의 공항을 내려다본다.

점점 공항의 모든 것들은 작게 비쳐지면서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저.........한국분이시죠?”

갑자기 들려오는 조심스러운 여자의 음성이다.

승재는 비로소 고개를 돌려 옆 사람을 본다.

자신을 향해 보면서 말을 건네고 있는 여인을 보며 승재는 갑자기 가슴이 쿵하며 내려 앉는 소리를 듣는다.

승재는 잠시 대꾸할 말을 잊는다.

“아니신가요?

그럼 일본사람인가요?“

여인은 일본어로 바꾸어 묻는다.

“아, 아닙니다.

한국사람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도 한국인입니다.“

여자의 화사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보이는 웃음은 승재의 가슴을 더욱 떨리게 한다.

처음으로 갖는 감정이다.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시는 길이신가요?”

“아, 네!

실은 딸아이의 학위 수여식에 참석을 하느라......“

“네!

대단한 딸을 두셨네요.“

“고맙습니다.

헌데 그쪽은 여행이신가요?“

”아, 제 이름은 그쪽이 아니고 이양희라고 부릅니다.“

“네, 차승재입니다.”

두 사람은 얼떨결에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는다.

승재 또한 낯선 여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스스럼없이 다가가며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무언가 끌리는 매력이 있는 여인이다.

처음 보는 순간 가슴에 심한 충격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이양희 또한 비행기에 탑승을 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으려다 남자의 깊은 생각 속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을 하며 호기심이 일어난 것이다.

단 한 순간도 곁눈질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만 잠겨있는 남자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곁을 바라보기를 기다려보지만 남자는 마치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듯 움직임도 없었다.

이양희는 자신이 먼저 말을 걸어보기로 하고 입을 뗀 것이다.

“얼마만의 귀국이신가요?”처음으로 승재가 묻는 말이다.

“저는 오랜 동안 외국으로 떠돌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굳이 한국으로 돌아갈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하고요.

이번에도 오년 만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어머니의 팔순이 다가오면서 어찌나 들어오라는 성화를 하시는지.........“

이양희는 말을 하면서 살포시 웃음을 보인다.

그 모습이 승재는 편안한 마음이 되어간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딸자식으로 인해 처음으로 해외를 나왔다 가는 길입니다.

한 달도 못되어 돌아가는 길이지요.“

“왜 혼자 나오셨습니까?

그런 좋은 일에는 부부함께 나오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네!

그러나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지요.“

”......................“

이양희는 함부로 물어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승재를 바라본다.

“이미 아주 오래전 세상을 달리 한 사람입니다.”

“아, 네!

그런데 아직 혼자서 살아가시고 계신 것인가요?“

”네!

오직 딸들을 키우는 것만이 제가 살아가는 이유랍니다.

딸을 셋이나 선물로 주고 간 사람이지요.“

이양희는 말을 하는 승재의 모습에서 행복함이 묻어나는 것을 본다.

허전함과 쓸쓸함보다는 행복함이 묻어나는 승재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오는 동안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제 곧 착륙을 한다는 기내 방송을 듣고 이양희는 전화번호를 적어서 준다.

“혹시 술친구라도 필요하시면 연락을 주세요.”

“아, 고맙습니다.

꼭 한번 만나서 술이라도 하지요.“

승재 역시 전화번호를 적어서 준다.그렇게 그들은 다음을 약속하며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공항에 도착해서 착륙을 하고 서로 눈으로 인사를 하며 각자의 짐을 챙겨들고 내린다.

짐이 별로 많지 않은 승재는 곧바로 검색대를 통과하고 공항 출구로 나온다.

“아버님!”

나인규의 음성이다.

“어?

자네가 바쁜 이 시간에 웬일로 나왔는가?“

”그 사람이 핸들을 잡으면 위험할 것 같아서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걱정을 해 줘서 잘 다녀오는 길일세!

이렇게 바쁜 시간에 나오지 않아도 내가 혼자서 갈 것을 공연한 고생을 했네!“

“아버님!

어떻게 부모님이 먼 여행에서 돌아오시는데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겠습니까?

당연이 제가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양희는 승재가 인규를 만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눈으로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승재 또한 그런 이양희에게 눈으로 인사를 한다.

“아버님!

아시는 분이십니까?“

언제 인규가 보았는지 묻는다.

“아닐세!

비행기에서 옆 좌석에 함께 타고 오면서 대화를 좀 나누었을 뿐일세!“

“그러셨군요.

지루하시지는 않으셨겠습니다.“

”그렇지.

참으로 상냥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왔네!“

“다행입니다.

어서 가시지요.

처제가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규는 승재의 가방을 끌고 걸음을 옮긴다.

자신의 승용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가서 가방을 트렁크에 넣고 승재가 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운전석으로 가서 출발을 한다.

차는 서서히 공항을 빠져 나온다.

승재는 이양희가 택시를 타는 것을 본다.

일반 택시가 아니라 콜택시를 타는 모습을 본다.

승재는 잠시 이양희의 모습을 눈으로 쫒는다.

승재의 그런 모습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인규다.

지금까지 장인어른의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인규이기에 더욱 유심히 관찰을 한다.

나인규는 그녀가 누군가를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소문이 무성한 학교 선배의 누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부모형제를 모두 외면하고 외국으로만 나가서 살아가고 있는 여자라는 것을 소문을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는 여인이다.

그 사연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상류층의 딸이라는 것을 안다.

부모가 주는 모든 것들을 뿌리치고 자신 스스로가 고생을 하며 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금은 특이한 여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인규다.

인규는 장인어른이 그녀에게 보이는 관심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세한 내막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운전을 한다.

“집은 별 일이 없지?”

“아, 네!

집사람이 처제로 인해 조금 신경을 쓰기는 하지만 별 일이 있을 것이 뭐가 있나요?“

”우리 승미가 고생이 많을 것일세!

승인이가 고집이 한 번 나오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도 제가 보는 데서는 그런 고집을 피우지 않던데요.”

“그래?

아마 형부가 어려운 줄을 아는 모양일세!“

승재는 비로소 현실로 돌아와 승인이 걱정을 한다.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도로가 많이 막히지 않는다.

저녁시간이 거의 되어서 집에 도착을 한다.

집으로 들어서자 승인이가 나오면서 무조건 아빠 품안으로 안겨들며 눈물을 흘린다.

“아빠!”

“우리 승인이가 아빠를 많이 보고 싶어 했구나?”

“아빠!

엉 엉엉!

아빠는 승인이가 미워?“

”승인이가 왜 미워?

아빠도 승인이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빠가 얼마나 승인이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지?“

그제야 승인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아빠 품안에서 떨어진다.

“승미가 홀몸도 아닌데 고생이 많았구나?

승인이가 저렇게 아빠를 찾을 줄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빠!

승리는 어때요?

잘 지내고 있나요?“

”그럼!

아주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다.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고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는지 모르겠더라!

이 아빠가 너무나 큰 복이 있어 아빠 딸들이 그런 큰 사람으로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빠는 너무나 행복하단다.“

”아빠!

정말 고생이 많으셨어요.

샤워를 하시고 편안한 옷을 갈아입고 나오세요.“

“그러자.

승리가 보낸 선물도 있으니 저녁을 먹고 나서 푸러보아도 되겠지?“

”그럼요!

그동안 밀린 이야기도 하고 승리 이야기도 더 들려주세요.“

승재는 방으로 들어가 잠시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아 본다.

참으로 편안하고 쉼터 같은 자신의 공간이다.

승재는 평상으로 돌아온다.

오랜 시간 비웠던 가게는 주인이 없을 때가 매상이 떨어진다는 것은 정한 이치다.

승재는 그것을 만회하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종업원들의 마음도 그동안 해이해졌던 것이 사실이었고 주인이 돌아오고 나서야 모두들 그동안 떨어졌던 매상을 다시 끌어올리기위해 많은 노력들을 한다.

가게는 다시 활발하게 정상운영이 되고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승인이 또한 그동안 등한시했던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한다.

이제는 제법 집안 청소와 세탁기를 돌릴 줄 알게 된 승인이다.

또한 반찬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더라도 밥을 해서 있는 반찬을 꺼내어 먹을 줄도 알게 되면서 승재는 끼니때가 되어 꼬박 집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혼자서 챙겨먹곤 한다.

그동안 승미가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그것을 곧잘 따라하는 승인이다.

비록 정신연령은 다섯 살 꼬마아이의 수준이지만 여자로서의 본능이 살아 있음인지 집안 청소며 설거지 세탁기 돌리고 빨래는 널고 걷어서 정리하는 것을 곧잘 한다.

조금씩 여자다움을 갖추어 나가는 승인이다.

그러나 승재는 안심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나면 집에 들려보든지 전화를 한다.

“아빠!”아빠의 음성에 승인이의 음성을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우리 승인이 뭐하고 있어?”

“아빠!

그림 책 보고 있어!“

“그림은 그리지 않고?”

“응!

지금은 책을 보고 싶어!“

“그래, 책을 보고 싶으면 봐야지.

우리 승인이 점심을 뭘 먹을까?“

“아빠, 집에 안와?

승인이 혼자서 먹어?“

“아니, 아빠가 집에 갈 건데 자장면 시킬까?”

“아빠, 정말?

와 신난다.“

승재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하고 나서 집으로 출발을 한다.

승인이가 혼자서 점심을 챙겨먹는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안쓰럽다.

국물도 없이 물에 말아서 대충 김치만을 가지고 먹곤 하는 승인이다.

집에 도착을 하자 음식이 온다.

승인이는 자장면 한 그릇을 비우고 다시 탕수육까지 먹는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승인이의 체질이기에 승재는 감사한 마음으로 승인이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을 마음껏 먹게 해 준다.

승인이가 다 먹는 것을 보고 식탁을 치우고 나서 승재는 다시 가게로 나간다.

막 승용차를 출발시키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상대의 번호를 확인하던 승재는 갑자가 얼굴색이 변한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양희 바로 그녀의 휴대전화 번호였다.

글: 일향 이봉우

 

 

 

 

제 45장,

승재는 심호흡을 하고 나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차승재입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네!

기억하다마다요.

안 그래도 이여사님께 연락을 드린다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리지 못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잊지 않으시고 기억을 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결례를 범했군요.“

”오늘 시간 어떠세요?“

”시간이야 만들면 되는 것이지요.

어디신지 제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아직은 술 마시기 이른 시간이죠?

이따 저녁때쯤이면 어떨까요?“

”저야 이여사님이 정하시는 시간이면 그 시간에 맞추겠습니다.“

이양희는 다섯 시쯤이 좋겠다며 시간과 장소를 말을 한다.

승재는 가게로 돌아가 부지런히 저녁장사를 준비해 놓고 시간을 기다린다.

저녁은 대부분 승인이가 혼자서 찾아 먹곤 하기 때문에 별 걱정은 없다.

그다지 늦게 귀가하는 일만 없다면 별 일이 없다.

승재는 자신의 옷차림을 살펴본다.

집에 잠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 그만 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새삼스럽게 여자를 만난다고 옷차림에 신경을 쓸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인사치례로 한 번만 만나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시간을 기다린다.

있는 그대로의 차림으로 나간다고 마음을 정했지만 자꾸만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오늘 아침에 옷을 모두 갈아입고 나왔다는 것이 그나마 조금 마음에 위안을 주고 있다.

그대로 나가기로 다시 마음을 정한다.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고 대단한 약속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타이른다.

시간이 되자 승재는 뛰는 가슴으로 가게를 나선다.

첫 데이트를 하는 소년의 가슴처럼 심하게 가슴이 뛴다.

“허, 내가 이 나이에 이 무슨 해괴한 일이지?

아무래도 내가 이제는 늙기도 전에 망령이라도 나는 것인가?“

시동을 걸기 전에 잠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본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한다.

이미 이양희는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늦었던가요?”

“아니에요.

제가 집에 있기가 답답해서 일찍 나왔습니다.“

이양희는 수수한 차림으로 편안한 모습이다.

승재는 자신이 굳이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지 않고 나왔어도 그다지 미안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가게에서 그대로 나오신 거지요?”

“네!

집에 들려 옷이라도 바꾸어 입고 나왔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닙니다.

지금의 그 모습이 참으로 좋습니다.

저도 아주 편안한 복장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새삼스럽게 젊은 아이들처럼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도 없겠지요.“

”참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시는 매력이 있으십니다.“

“후훗, 그런가요?

제가 그 누구를 편안하게 해 준다는 말을 참으로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입니다.

늘 주변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며 살아오고 있었지요.“

”그것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니 참으로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 느낌이 듭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 그런 의미에서 제가 저녁과 술을 사겠습니다.“

”처음부터 숙녀 분께 신세를 질 수는 없겠지요?

오늘은 제게 양보를 하십시오.“

승재는 기분이 몹시 좋아진다.

“호호호.........

그렇게 하시는 것이 기분이 좋으시면 그렇게 하시지요.

누가 사든 그것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지요.“

그들은 차를 마시고 자리를 옮긴다.

저녁식사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간다.

이양희의 주량은 그다지 센 편은 아니지만 적을 주량도 아니다.

“술을 많이 마십니까?”

승재가 묻는다.

“전에는 늘 술을 마시곤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술을 별로 입에 대지 않고 있지요.“

”네, 그러시군요.“

“승재씨는요?”

이양희는 어느 틈에 승재씨라는 호칭으로 바꾸어 부른다.

“저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품이긴 하지만 술을 마실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겁니다.

혼자서 굳이 술을 마시고 딸들에게 불안한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지요.“

”그러셨군요?

참으로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이신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딸을 미국유학을 보내어 경제학 박사로 만드셨겠지요?“

”제 자신이 노력한 것에 비하면 딸들이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하며 공부를 했지요.

아빠로서 자식이 마음 놓고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지 못하고 늘 허덕이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미안하고 죄스럽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내도 없이 세 딸들을 혼자 손으로 키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승재씨는 참으로 대단한 아빠고 남편이라는 생각이네요.“

”부끄럽습니다.

그저 내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아빠로서 모든 힘을 기울여 자식들을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 재혼을 하지 않으셨어요?“

”재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 딸들에게 더 이상의 아픔과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막내인 셋째 딸을 누가 이해를 하고 돌보며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제게는 재혼이라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승재씨!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셋째따님의 발달장애 정도를 이해하고 받아드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여자들 많지요.

서로 사랑하고 기대며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이제는 자식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처럼 쉬운 것은 없지요.

허나 현실은 이상과는 달리 참으로 어렵고 힘들지요.

그런 것을 모두 받아드려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이제 새삼스럽게 재혼을 해서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아닙니다.“

이양희는 그런 승재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참으로 진솔하고 순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술을 마신다.

서로가 편안하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언제 또 나가십니까?”

승재가 묻는 말이다.

“글쎄요?

이젠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너무 연로하시고 이제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기보다는 서로 많은 것을 이해하면서 지난날들의 모든 것을 이해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양보하면서 이해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양희씨는 많은 것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가요?

허지만 그렇지 못할 일들이 많지요.

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때로는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요.“

“네!

그렇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 또한 지나버리더군요.

그때는 죽을 것만 같은 심한 고통도 번민도 모두 지나가버리고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그래서 늘 조금은 덜 후회하도록 현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그들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많은 이야기는 나눈다.

문득 승재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에 눈길이 간다.

이제는 일어서야 할 시간이다.

“제가 오늘 시간을 많이 빼앗았네요.”

이양희는 눈치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닙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늘 어린아이 같은 막내딸이 기다리고 있지만 때로는 그림 그리는데 심취를 하고 있어서 사람이 들어가도 모를 때가 많지요.“

“그래도 오늘 많이 늦었습니다.

시간이 오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다시 만나면 되지요.“

”마침 이번 휴일이 가게 문을 닫는 날입니다.

가까운 교외로 함께 나가실 시간이 있습니까?“

”그러지요.

답답한 공기보다는 조금 외곽으로 빠지기만 해도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지요.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들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식당을 나선다.

각자 타고 온 승용차가 있어 바로 헤어져야만 한다.

“모셔다 드리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래서 그날 제가 모시러 간다고 한 것입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승재는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니, 태어나 생전 처음으로 가벼운 마음과 기분인 것만 같다.

만나서 기분 좋은 여인이다.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곱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승재가 들어서자 승인이는 그리던 그림을 접고 일어난다.

“아빠!

승인이 졸려서 잘래!”

“그래, 그림을 너무 무리하게 그리지 말고 어서 자야지.”

승재는 승인이를 침대로 데리고 가서 눕힌다.

침대에 눕자 그대로 잠속으로 빠져드는 승인이다.

참으로 천사 같고 아름다운 딸의 모습이다.

승인이의 방 불을 끄고 문을 닫아준다.

승재는 주방으로 들어가 와인을 한 잔 따라서 베란다로 가지고 나간다.

집집마다 환한 불빛을 비추고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것만 같다.

모두 얼마나 행복할까?

다른 모든 집들은 모두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와인을 입으로 가져간다.

와인 한 잔을 함께 나누어 마실 그 누군가가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렇게 혼자 살아왔는지 기억에도 없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고 살아온 세월이다.

이제는 무언가에 의지하고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승재는 실소를 터트린다.

잠시 만나본 이양희를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한다.

시원시원하고 막힘이 없는 성품에 소탈하기도 하지만 어딘가 기품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승재는 오랜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내가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다른 여자를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승재다.

그런 자신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직 그 여자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아무것도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자꾸만 이양희의 모습이 떠나지 않고 있다.

승재는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이제 다른 여자가 필요할 정도로 외롭고 쓸쓸한 것이냐고.

아니면 이제는 자신의 사랑이 식어 버린 것이냐고 묻는다.

유미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냐고 묻지만 무엇하나도 답을 내릴 수가 없다.

가끔은 진한 외로움에 몸을 움츠려들게 할 정도로 춥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딸들이 있기에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고 힘을 얻을 수가 있었다.

잠시 자신의 나이를 떠올려본다.

오십의 중반이다.

오십 줄의 사나이고 할아버지가 될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이제 자신이 새롭게 다른 여자를 만나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가끔 밥이나 함께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친구정도로 좋을 것이다.

승재는 자신이 이제는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롭고 쓸쓸하다는 느낌이 바로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침대에 눕지만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승재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승재는 이양희에 대해서 잊는다.

그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승재는 오직 일에 매달리며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주말이 다가오자 다시 이양희가 떠오른다.

무엇을 입고 나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설래진다.

승재는 이양희와의 데이트에 다시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본다.

주말이면 더욱 바빠지는 가게의 일을 끝내고 나서 내일의 약속을 생각한다.

글: 일향 이봉우

 

 

 

 

제 46장,

나인규는 이양희에 대한 것을 소상하게 알아본다.

또한 이양희의 행적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관찰을 한다.

장인어른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고 더욱 세밀하게 그동안 이양희에 대한 모든 것을 모든 루트를 통해서 알아본다.

이양희!

어떤 여인인가?

대기업의 고명딸이다.

위로 오빠 셋을 두고 막내로 태어난 고명딸이다.

고생이라는 것이 뭔지 힘들다는 것이 뭔지 아쉽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란 것이다.

그런 그녀가 외국으로 나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녀의 고집 때문이다.

아직 부모가 살아계신 이양희다.

이양희는 대학을 다니면서 연애를 했다.

그저 지나가는 가벼운 바람이 아니고 그녀 나름대로 진실한 연애를 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그녀 집안에서는 도저히 받아드릴 수 없는 상민이고 천민이라는 것이다.

농촌에서도 아주 어렵고 자신의 땅 한 뼘도 없는 가난뱅이 무지랭이 집안이라는 것이다.

없는 사람들이 당연한 것처럼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과 맏이를 공부시켜 남은 아이들이 덕을 보며 살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맏자식 하나를 위해 모두들 희생이 되어 일을 하면서 맏이의 뒤를 대고 있는 전형적인 가난뱅이의 집안이다.

맏이 하나만 잘 되면 그동안의 모든 고생을 보상받을 것이라는 희망하나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비참한 모습이다.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고는 해도 정작 그 당사자는 온갖 고생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아르바이트도 한두 가지만을 가지고는 학비와 생계비를 충당하기가 힘들다.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들 틈틈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실정인 것이다.

이양희는 그런 남자를 사랑한 것이다.

주변에서 반대를 하면 할수록 그들의 사랑은 불타오른다.

아무리 머리가 수재라고 하더라도 공부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 성적은 하위권을 벗어 날 줄을 모르는 고학생의 고달픔을 이양희는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의 학비를 충당해주곤 한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싹터 오르던 사랑이 주변의 거센 반대로 더욱 심하게 타오르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사랑은 학교 내에서도 점점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집안에서는 온갖 회유와 설득을 해 보지만 이양희는 귀를 막아 버린다.

반대가 심해질수록 더욱 불꽃을 튀기며 잠시도 그 남자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이양희는 집을 나와 남자와 살림을 차린다.

비록 남들이 말하는 단칸 월세 방이라 하더라도 이양희로서는 참으로 행복하고 꿈만 같은 시간들이다.

이양희는 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하고 둘만의 행복하고 달콤한 생활을 한다.

아들을 출산하고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던가?

허나 그 행복은 결코 오래 유지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그대로 방치할 부모님과 오빠들이 아니다.

아들이 첫 돌이 되기도 전에 그들은 남자에게 심한 모욕과 수모를 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모와 모욕을 주면서 이양희 곁을 떠나라고 강요를 한다.

그들의 요구대로 남자는 이양희의 승용차를 타고 나가 아들과 함께 절벽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것으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이양희는 미친 여자가 되어 부모와 오빠들을 비난하고 나선다.

그룹에 끼치는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어디서든지 부모와 오빠들을 상대로 비난을 한다.

세상의 모든 초점은 그런 이양희를 맞추며 관심을 보인다.

온갖 악성루머들이 이양희를 따라다니며 함께 춤을 춘다.

그룹은 그런 이양희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다.

결국 이양희는 외국으로 보내어진다.

기거할 숙소와 살아갈 생활비가 보내어지지만 이양희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숙소에도 들어가지 않고 거리의 노숙자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아무렇게나 내 던지려는 몸부림을 한다.

그러나 그룹에서는 그런 이양희를 보호를 해 준다.

언제나 보이지 않은 그림자의 손으로 막다른 길에서 구출해 내곤 한다.

매일을 술로 세월을 보내는 이양희다.

마약을 손에 대기만 하면 자신도 모르게 병원에 입원이 되어 있곤 한다.

물론 이양희는 그것이 모두 그룹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더욱 심한 난동과 횡포를 부리곤 하지만 그룹을 상대하기란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몹시 추운 겨울 거리에서 얼어 죽을 생각으로 술을 마시고 잠이 든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병원에서 눈을 뜬다.

더 이상 살아가야 할 가치를 잃고 방황을 하며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서 무수하게 많은 시도를 해 보지만 그때마다 모두 실패를 한다.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을 방황과 고통 속에서 좌절을 하며 부모님과 그룹의 모든 것을 거부하면서 연락을 일체 하지 않고 보낸다.

허나 그룹에서는 이양희의 모든 것을 수시로 보고를 한다.

십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양희는 자신의 고통이 조금은 덜해지는 것을 느낀다.

허나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식당에서 세탁소에서 아니면 마트의 점원으로 일을 하며 생계비를 번다.

그리고 돈이 모이면 어디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애원도 귀를 닫아 버린다.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기엔 이양희의 가슴은 너무나 심한 충격으로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이 낳은 아들만이라도 남겨두었더라면 하는 진한 아픔과 고통을 씻을 수가 없다.

그렇게 십 오년의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이양희는 잠시 귀국을 한다.

부모형제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비로소 죽은 사람의 기일을 생각해 낸 것이다.

누구 한 사람 기억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 형제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

을지 그제야 생각이 난다.

이양희는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귀국의사를 밝힌다.

그룹에서는 모든 준비를 해 준다.

그리고 이양희는 십 오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조용하게 귀국을 한다.

그리고 조용하게 그의 형제들의 행적을 수소문해 본다.

그들은 이미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사는 형편이 좋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양희는 그들의 모든 것을 그룹에서 뒤를 봐 준 것임을 알게 된다.

그의 부모는 그들의 모든 것을 봐주도록 지시를 한 것이다.

이양희는 가만히 그의 형제들을 지켜보며 더 이상 자신이 나서야 할 것이 없음을 알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조용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여전히 그룹에서의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최저한의 생활을 해 나간다.

조금씩 돈을 모아서 가고 싶은 곳을 여행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양희다.

더 이상 아무런 욕심도 원망도 고통도 없는 삶이다.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철저하게 서민의 생활을 하면서 소탈하고 인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두 분 모두 연로하신 분들이시기에 이번 어머니의 팔순을 맞아 다시 한국으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인규다.

인규는 조용하게 장인어른과 이양희를 지켜본다.

두 분의 사이가 어떻게 발전을 해 나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공연히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기로 한다.

승미는 이제 막달이 되어 해산을 앞두고 있다.

막달이 되어서 승미는 시댁으로 들어간다.

늘 자신 때문에 노심초사 하시면서 근심을 하고 계시는 시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막상 막달이 되어오니 자신 또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친정 엄마가 안 계신 승미로서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시어머님뿐이다.

어차피 시댁으로 들어가 살아야 할 것이다.

승미는 모든 살림을 정리하고 아예 시댁으로 들어간다.

홍수희는 그런 승미가 더없이 사랑스럽다.

아기를 출산하기 전에 들어와 살겠다는 며느리의 마음이 곱다는 생각을 하며 딸들보다 더 위해주고 잘 해 주겠다는 생각을 한다.

따지고 보면 딸들이야 남의 가문으로 가서 남의 대를 이어주며 살고 있는 것이지만 며느리야 말로 자신들의 대를 이어주고 가문을 일으켜 세울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도 그랬던 것처럼 이 집안을 위해서 살아갈 사람은 딸들이 아니고 바로 며느리다.

또한 이제 이 집안의 실질적인 안주인은 며느리에게 돌아갈 것이다.

홍수희는 이층 아들의 방을 최선을 다해서 새롭게 단장을 한다.

아들 방은 워낙에 넓게 만들었다.

이층엔 그런 아들 방 하나와 서재가 있고 욕실과 거실이 있다.

그리고 방으로 이어진 테라스가 있어 언제든지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셔도 좋은 그런 공간이 있다.

승미는 그런 시어머님의 마음에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된다.

“아가!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자.

이젠 이 집에서 네 자리는 아주 당당하고 든든한 것이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어머님께서 항상 저를 예쁘게 봐주시고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편안합니다.“

“그래,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다오.

아들이든 딸이든 크게 신경을 쓰지 말고 그저 건강하게만 출산을 하렴!“

“네!

그렇게 하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승미는 참으로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자신이 이렇게 사랑받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이 된다.

이제 출산을 앞두고 승미는 더욱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매사에 조심한다.

그런 승미를 위해 홍수희는 출산에 도움이 되는 음식들을 준비해 준다.

이층의 침실을 두고 승미는 아래층에서 지낸다.

언제 출산의 신호가 올지 모른다는 홍수희의 생각으로 아래층에서 홍수희와 함께 방을 쓰며 하루하루 초조하게 출산을 기다린다.

“힘들지?”

홍수희는 겨울임에도 임산부를 위해 딸기를 사서 승미에게 먹인다.

“많이 먹어라!

비타민이 모자라면 빈혈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니 무엇이든 많이 먹어야 한다.“

“어머님!

저 이러다가 뚱보가 되면 어떻게 해요?“

”그러지 않는다.

아기를 낳고 나면 다시 원래 네 몸으로 돌아갈 것이니 안심을 해라!“

“정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럼!

여자들이란 출산을 하고 나면 다시 정상적인 제 몸으로 돌아간단다.

물론 체질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하겠지만 출산 후에 관리를 제대로 해 주면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럼 안심하고 어머님께서 주시는 대로 모두 먹겠습니다.”

“오냐!

무조건 많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분만을 할 때 쉽고 고생을 덜 하게 된다.“

승미는 입덧이 끝나고 나서부터 입맛이 좋아 아무것이나 잘 먹는다.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다 먹는 식성이다.

승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한다.

산모가 할 수 있는 운동을 배워서 철저하게 해 나가고 있다.

그것이 태아와 산모를 위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시작한 것이다.

인규 또한 그런 아내를 위해 시간을 내어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승미에게 맞추어 나가곤 한다.

회사의 바쁜 일과 중에서도 늘 두어 번 전화를 해 주는 것을 잊지 않고 되도록 일찍 집으로 귀가를 해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태아에게 아빠의 음성을 들려주기도 하고 태교를 위해서 아빠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한다.

홍수희는 그런 아들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흐뭇해진다.

자신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아기는 여자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임신을 해도 남편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지 못했다.

그저 여자의 몫이려니 하고 사업에 바쁜 남편이 신경을 쓰지 않도록 모든 것을 안으로 참으며 혼자 감당하곤 했었던 기억이 나면서 아들의 모든 것이 새삼스러우면서도 부부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새롭게 한다.

자식 또한 여자 혼자만의 몫이 아닌 것이다.

함께 만들고 함께 키워가야 할 자식인 것이다.

승미는 새벽녘에 진통이 시작된다.

“아, 배야!”

혼자 진통을 견디다 못해 입술사이로 새어 나온다.

“아가!

배가 아프니?“

홍수희는 잠결에 승미의 비명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난다.

“어머님!

아, 배가 아파요.“

“언제부터 아팠어?”

“한참......되었어요.”

홍수희는 이층으로 올라가 아들을 깨운다.

“어서 차를 준비해라!

드디어 우리 아기가 세상에 나올 모양이다.“

인규도 정신이 번쩍 들어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내를 본다.

“여보!

많이 아파?

조금만 기다려!“

인규는 차를 대기시켜 놓고 승미를 안는다.

“나를 꼭 잡아.”

인규는 조심스럽게 승미를 차에 태운다.

홍수희 역시 함께 차를 탄다.

승미는 심한 산고를 겪는다.

인규는 그런 승미의 산고의 고통을 보면서 피가 마르는 기분이 된다.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가를 비로소 알게 된다.

승재 또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온다.

“아버님!”

“승미 어찌 되었나?”

“아직 출산을 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제 엄마를 닮았으면 그리 심한 고통을 겪지는 않을 것일세!”

아이를 커다란 고통 없이 순산하던 아내 유미를 떠 올린다.

글: 일향 이봉우

 

 

 

 

제 47장,

아이 셋을 출산하면서 심한 입덧이라는 것도 모르고 두 아이는 큰 산고 없이 순산을 했던 아내 유미가 생각이 난다.

막내 승인이를 출산을 하고 일어나지를 못하고 오랜 세월 심한 고통과 싸움을 한 것은 자신들의 불찰과 무지에 의한 것이었다.

아직 분만실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승미에게 다가간다.

“아빠!”

“승미야!

기운을 내!

아무런 일도 없이 순산을 할 것이라고 아빠는 믿고 있다.“

”그럴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의 큰 딸 잘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빠가 기다리고 있으 마!“

잠시 승미의 얼굴에 송글 송글 맺혀 있는 땀을 닦아주고 나서 밖으로 나간다.

엄마가 아닌 아빠가 곁에 지키고 있기에는 어색한 것이다.

승재는 가게로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을 지시를 하고 승미의 출산을 기다린다.

승재의 말대로 승미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그날 오후에 건강한 사내아기를 출산한다.

홍수희와 나회장의 기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인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이토록 깊은 감동을 주고 이토록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가 있다는 말이던가?

두 부부는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으로 인해 할 말을 잊는다.

“아가!

참으로 크고 장한 일을 했구나!

아들이다.

우리 집안의 대를 이어갈 장군감이다.“

나회장은 병원에 오지 못하고 전화로 당신의 기쁨을 전한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사랑해주신 은덕입니다.“

”아가!

가지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다오.

이 애비가 네게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

”네!

아버님의 크신 사랑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입니다.“

”아니다!

무사히 퇴원을 하고 집에서 보자.

그리고 네가 무엇을 가지고 싶은지 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을 해서 말해다오.“

“네, 아버님!”

승미 또한 큰 기쁨이 온 몸에 전해져 온다.

이렇듯 부모님들께서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모습이 승미로서는 정말 자신이 장한 일을 해 낸 모양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승재의 기쁨 또한 남다르다.

아이들 셋과 홀로 남겨졌을 때의 암흑 속을 헤매던 심정이었던 것이 먼 옛날 일만 같다.

참으로 장한 일을 한 승미를 마음껏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사부인이 보는 앞에서 그럴 수도 없는 일이라 간단하게 칭찬만을 하고 병실을 나선다.

“아버님!

참으로 기쁩니다.

이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습니다.“

“왜 안 그렇겠나?

더구나 자네는 외아들이 아닌가?

우리 승미가 참으로 장할 일을 해 주었네!“

“네!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서 들어가 보시게!“

인규는 병원 주차장까지 장인어른을 배웅해 드린다.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정문을 나서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이양희였다.

잠시 차를 주차시키고 전화를 받는다.

“어디세요?

아직도 병원이세요?“

”양희씨!

지금 막 병원을 나서고 있습니다.“

”그럼 출산을 한 것인가요?“

”네, 아들을 분만했습니다.

자연분만으로 산모와 아기도 아주 건강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궁금해서 전화를 해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내일 시간을 비워두십시오.

할아버지가 된 축하주를 내고 싶습니다.“

“호호호........

네, 기쁜 술은 얼마든지 마시겠습니다.

내일 다시 전화를 드리지요.“

승재는 이양희의 전화를 받고 더욱 기분이 상승된다.

만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이양희는 자신에 대해서 말을 아끼고 있다.

결혼을 했는지 아니면 아직까지 미스인지조차 아직은 아는 것이 없다.

그들은 만나면 늘 지금의 심정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과거에 대한 것은 서로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승재로서는 아낄 말도 없다.

딸 셋을 둔 홀아비에 막내딸이 지능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양희는 자신에 대해서 말을 아끼며 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서로 친구로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이상 발전하는 것을 서로가 두려워한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느끼고 있는 감정이다.

이양희는 겨우 자신의 집으로 따로 나올 수 있었다.

부모형제와 한 집에 기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숨이 막히는 일이다.

더구나 아버지의 사업이 거의 큰오빠 손으로 넘어간 지금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양희의 이름으로 된 이 아파트만 하더라도 아직은 어머니가 계시기에 딸의 몫으로 챙겨놓으신 백여 평의 아파트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딸을 위해 어머닌 아파트를 준비해 놓으시고 언제든지 돌아오면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 놓으신 것이다.

“양희야!

이제는 절대로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말아라!

엄마나 아버지가 이제 얼마나 더 살겠니?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용서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어머니 박여사도 딸의 지난날을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후회하고 있다.

그저 딸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를 떼어 내려고 했던 것뿐이었다.

어차피 딸이 낳은 아이까지 딸에게 떼어낸다면 심한 반발을 할 것이고 그렇다고 그 아이를 딸의 품안에서 자라게 할 수는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절대로 용납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미 그들 사이에 자식이 있는 이상 결혼식을 시켜 살아가도록 해 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 나중의 일이다.

그렇게 자식을 데리고 자살을 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딸만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다.

박여사는 딸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받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고 피눈물을 흘리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딸이 미국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자살을 선택할 때마다 얼마나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렸는가?

행여 딸자식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될까 싶어 노심초사 밤잠을 잊고 새우기가 일쑤였다.

미국지사에 단단히 부탁에 또 부탁을 하며 딸의 뒤를 봐주고는 있다고 하지만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딸이 막노동에 험한 일을 해 가면서 술에 젖어 자신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고 길거리 노숙자로 살아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 한탄스러운 세월이었다.

참으로 오랜 세월 딸은 이미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지고 인생의 밑바닥을 기면서 살아간다.

아무것도 받아드리지 않는 딸이다.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딸의 모습은 처참한 몰골이지만 부모로서 어떻게 해 줄 수도 없다는 것이 숨을 쉬고 있기에도 힘들 정도였다.

이십 여 년의 긴 세월 끝에 돌아온 자식이다.

더 이상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못하게 모든 것을 모두 해 주고 싶은 박여사다.

“양희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 주마!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말을 해라!“

“엄마!

제 나이가 지금 몇 살 인줄 아세요?

이 나이에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뭐가 있겠어요?

머릿속에 들어 있던 알량한 지식마저 이제는 모두 바닥이 났습니다.

지금까지 이십 여 년 동안 제가 하면서 살아온 일이 육체노동입니다.

이 나이에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할까요?“

”무슨 그런 말이 있느냐?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그래도 좋다.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재산을 주겠다.

그러니 더 이상은 외국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엄마하고 약속을 해 다오.“

“엄마!

그렇게 할게요.

그나저나 어디 좋은 남자 없수?“

”왜?

그런 사람이 있으면 결혼을 하겠니?“

”못할 것도 없지요.

그러나 나 같은 여자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수?“

”왜 네가 어때서?

알아보면 없지 않겠지.

내 사람들을 통해서 알아봐야겠다.“

박여사의 안색을 화색이 돈다.

딸이 이제는 모든 과거를 잊고 결혼이라도 한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뭐가 있을 것인가?

“후훗!

엄마 지금도 명문가에서 저를 선택하리라는 생각을 하세요?“

”꼭 명문가가 아니면 어떠냐?

너를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하지.“

“정말 그런 사람이면 집안이 한미하다고 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이제 네 나이에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지 싶다.”

“허긴 나이 오십 줄에 가까운 딸, 그것도 아주 지독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딸이니 이것 저 것을 재고 할 이유가 없겠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봐야하지 않겠니?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 너를 맡겨도 안심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야 하지.“

박여사는 긴 한숨을 내 쉰다.

딸의 인생을 망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들들이 그렇게 지독하게 사람을 다룰 줄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젊은 호기의 아들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이 실수였고 잘못이었다.

적당히 엄포를 주어 떼어버리라고 한 것이 지독한 수모와 멸시를 주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인간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린 사람은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남자의 형제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해 준 박여사다.

그것이 박여사 나름대로의 속죄의 방법이었다.

“엄마!

너무 신경을 쓰지 마세요.

이제는 저도 조금은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지친 것 같아요.“

”왜 안 그렇겠니?

무엇이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말을 해라!

엄마나 아버지가 아직은 살아 있으니 너 하나 살게 해줄 힘은 있다.“

“네!

허지만 신경을 쓰지 마세요.

아무런 욕심도 꿈도 없습니다.

이렇게 평범하게 그리고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겠습니다.“

이양희는 더 이상의 아무런 꿈도 없다.

이제 재벌 딸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이양희가 살아온 이십 여 년의 밑바닥 인생이 몸에 배여서 그런지 사치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저 평범하게 시간이 나면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을 기웃거리며 옷을 사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오뎅이나 순대를 먹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양희의 의상은 명품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청바지 하나도 길가에서 만 원짜리를 사 입거나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해 입는 것이 보통이다.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도 이양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들을 입고 나타난다.

모두들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지만 이양희로서는 그런 것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박여사나 올케들이 의상을 준비를 해 주어도 이양희는 그 의상들을 입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고급스러운 명품들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고 불편하다.

세월이 이양희를 변하게 만들었다.

이양희가 사는 고급빌라는 재력이 없는 사람들은 살 수가 없는 값비싼 곳이다.

이양희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순순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이고 이양희가 받아야 할 권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양희는 백여 평의 빌라에 침실과 거실 그리고 주방을 제외한 공간은 그대로 비워둔 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용을 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이양희는 다음날 오전에 승재에게 전화를 한다.

“승재씨!

너무 일찍 전화를 하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이제 바쁜 일이 대충 끝나서 상관없습니다.“

“이따 오후에 제가 가게 근처로 가겠습니다.”

“네!

근처에 오셔서 전화를 주십시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양희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집안을 청소한다.

청소라고 해야 쓰지 않는 공간은 손을 대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를 하러 오는 사람이 있기에 충분한 것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48장,

오후 네 시가 다 될 무렵 이양희는 승재의 가게 앞에서 전화를 한다.

승재는 전화를 받으면서 이양희의 차를 발견한다.

“네!

잠시 기다려주세요.“

전화를 끊고 종업원들에게 다시금 이것저것을 지시를 한 다음 바로 가게를 나선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요?”

“아닙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기다렸어요?”

“그럼요.

양희씨 전화를 기다리면서 계속 밖을 내다보았지요.“

”후훗!

듣기만 해도 정말 기분이 좋은데요.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일찍 왔어요.“

”특별한 시간이라?

기대가 되는데요.“

”지금부터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제게 승재씨 시간을 주시는 겁니다.

돌아오시는 시간은 알고 있으니 틀림없이 그 시간까지는 모셔다 드리지요.“

”네!

제 시간을 모두 양희씨에게 드리겠습니다.“

승재 또한 흔쾌하고 대답을 한다.

이양희는 그리 붐비지 않는 도시를 서둘지 않고 빠져나간다.

춘천가도를 시원하게 달린다.

가평에 있는 별장으로 가는 것이다.

어머니 이름으로 되어 있는 별장이다.

박여사는 이 별장도 딸에게 상속을 하려고 한다.

별장의 열쇠꾸러미는 이미 양희의 손으로 건네져 있다.

이미 이양희 별장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다.

별장이라고 해도 외진 곳에 뚝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고 이제는 주변에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한적한 곳이기보다는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이다.

별장은 적은 평수가 아니고 이층으로 되어 있는 넓은 대지를 가지고 있는 멋진 곳이다.

“이곳은 제 어머니 별장입니다.

잠시 제가 빌려 쓰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별장의 잠금 쇠를 풀면서 말을 한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별장이라고는 말만 들었지 와보는 것도 처음입니다.“

”보통 서민들의 생활에 별장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지는 않지요.

그야말로 특수계층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어머님께서는 특수계층에 계신 분이신가 보군요?“

”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이양희는 언제 준비를 했는지 차에서 물건들을 꺼낸다.

“실은 오늘은 별장에서 요리를 해서 먹으면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준비를 좀 해 봤습니다.”

“요리 할 줄 아세요?”

“왜요?

음식을 할 줄 모르게 생겼어요?”

“아니요!

그러나 느낌으로 어쩐지 음식하시는 것하고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지금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면서 살아왔어요.

나 말고는 누구를 위해서 요리를 해 보지 않았지만요.“

”그렇군요.“

”승재씨는 잘 하세요?“

”잘 한다기보다는 자식들을 키우다 보면 하지 않고는 안 되지요.

한 가지 한 가지 하다 보니 늘어나는 것이 음식이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그럼 오늘 제 솜씨보다는 승재씨 솜씨를 보게 생겼네요.“

두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온 물건들을 정리한다.

“우선 목이라도 축일까요?”

이양희는 와인을 준비한다.

와인과 어울리는 간단한 안주도 준비가 되어 있다.

“승재씨!

내가 어떤 여자라고 생각해요?“

”글쎄요?

양희씨가 어떤 사람이라고 궁금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상관없는 모양이지요?“

”그런 것은 아니지요.

양희씨의 과거가 어떤 것이었든 지금의 양희씨로서 제겐 충분하니까요.“

이양희는 잔을 다 비운다.

승재는 말없이 그녀의 잔에 와인을 따른다.

“승재씨!

RE그룹 아시지요?“

”그 그룹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제가 그 그룹하고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승재씨는 어떤 마음일지 궁금합니다.”

“네?

그 거대한 재벌그룹과 연관이 있다?

글쎄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설령 그 그룹과 연관이 있다고 해도 저하고는 별상관이 없지 싶습니다.“

“그런가요?”

“네!

제 자신이 사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젊은 혈기라서 양희씨를 사랑하니 결혼을 해 달라고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니.........“

그런 말을 하는 승재의 마음은 충격이었다.

“허기야 지금 우리는 결혼하고는 무관한 만남을 갖고 있으니 별 상관도 없겠네요.

허지만 젊은 시절의 저는 그 그룹의 사람이었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자식을 잃었답니다.“

”......................“

승재는 말없이 이양희를 바라본다.

이양희는 그런 승재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 다시 와인을 모두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승재는 다시 그녀의 잔에 와인을 채워준다.

이양희는 조금씩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가 대 재벌의 고명딸이라는 것에 승재는 놀란다.

그녀의 그 어떤 모습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참으로 소탈하고 따뜻한 성품의 그녀가 대 재벌의 고명딸이자 외국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놀라는 승재다.

그러나 승재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이양희의 말을 듣는다.

“나는 재벌가의 딸로 태어나 참으로 혹독하게 이십 여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와 아들을 잃고 방황한 세월들이 참으로 길었고 너무나 아픈 세월이었지요.

부모형제를 보지 않으려 했고 그들의 모든 지원을 철저하게 거부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자살을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내가 방법이 틀린 것이 아니고 그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늘 나를 감시하고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는 그들 앞에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무기력한 인간이었지요.“

이양희는 다시 와인 잔을 입에 가져간다.

“술은 그만 드십시오.”

승재는 이양희가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제지한다.

“이 정도는 마시는 것도 아니지요.

십 년 세월을 술로 살아왔고 나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 동댕이치려고 노숙을 하며 사내들에게 집적거리기도 했지요.

그러나 아무도 내 이 추잡하고 거추장스러운 육체를 차지하지 못하더군요.

물론 그 거대한 그룹이 나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양희는 또 다시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참으로 가엽고 불쌍한 여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여인이라는 생각을 하는 승재다.

“진실로 그 사람을 사랑했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을 따라서 살면서도 그것이 힘들다거나 비참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단칸 월세 방이 어떤 것인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고 난 그 이후에도 매달 돈을 지불해야만 들어 갈 수 있는 단칸방에서 살아왔지요.

그리고 밑바닥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입에 먹을 것을 넣으려면 나가서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지요.

식당일에서부터 청소부 세탁소 일 거의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내 모든 고통과 쓰라린 과거를 잊곤 했지요.“

”참으로 대단한 삶을 살아오셨네요.“

”후훗!

그것이 대단한 삶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도 그들은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난 이십 여 년이라는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가족들과 화해를 하고 또 다시 이렇게 편안하고 안일한 삶속에 갇히게 된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합니다.“

”양희씨!

지금이라도 돌아오신 것이 참으로 잘하신 것입니다.

이미 지난 과거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다시 양희씨의 자리로 돌아와 남은 인생이라도 더욱 값지고 행복하게 살아가셔야만 합니다.“

”승재씨!

어떤 삶이 값진 삶인가요?

허기야 승재씨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여자와 사별을 하면 남자들 거의 대부분 자식들 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먼저 추구하곤 하는데 승재씨는 정말 값지고 대단한 삶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닥치고 보면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딸들의 눈을 보면 정신을 차리고 키워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식들보다는 내 삶이 먼저라는 생각을 합니다.“

”네, 자식들을 키우는 것이 바로 내 삶입니다.

내가 해야만 하고 반드시 지키며 키워야 하는 내 자식들입니다.

죽은 아내도 내가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승재씨는 정말 보람 있고 대단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큰 딸도 그렇지만 작은 딸을 아무나 그렇게 경제학 박사를 만듭니까?

양쪽 부모가 다 있고 돈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훌륭하게 키우기 쉽지 않습니다.“

“내가 키웠다기보다는 저희들이 알아서 모든 것을 다 잘 해준 아이들입니다.

참으로 아빠 마음을 알고 잘 따라와 주었고 말썽 없이 잘 자라준 딸들이지요.“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대화를 하느라 날이 저물어 가는 줄도 모른다.

“아,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언제 준비를 해서 먹고 가지요?“

”둘이서 준비를 하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준비를 해서 먹으면 되지요.

다음 기회가 또 있는 것이 아닌가요?“

”후후후.........

다음에 또 오시려고요?“

”아닙니까?“

둘은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을 준비한다.

간단하게 카레라이스를 해서 먹을 생각이다.

“오늘은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양희씨!

마음 쓰지 마세요.

좋은 기회는 얼마든지 다시 올 것이니까요.“

그들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그곳을 출발한다.

승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이양희는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을 승인이를 생각하며 너무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서두른다.

아직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다섯 살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는 딸이라면 아빠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양희가 술을 많이 마셨기에 핸들을 잡은 승재는 이양희의 마음과는 달리 천천히 운전을 해 나간다.

“속력을 내지 그래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서 때로는 기다리다 혼자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래도 불안해요.

이렇게 늦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양희씨!

이제는 다시 외국에 나가지 않을 거지요?“

”네!

이번에 들어올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잠시 다녀가려고 했는데 그냥 주저앉았어요.

어머니의 성화도 있었고 그러고 왠지 그러고 싶으니까요.“

이양희는 승재씨 때문이란 말을 목구멍으로 삼켜버린다.

당신이 있어 들어가기 싫다는 말을 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 말을 꺼내고 나면 더욱 그와 가까워질 것만 같아 그만 삼켜버린다.

승재는 가만히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양희씨!

이렇게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저도 승재씨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우리의 이 만남이 어떤 의미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행복해요.“

둘은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승재의 아파트 정문 앞에서 차를 세운다.

“운전해도 되겠소?”

“네!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미 술기운이 모두 사라져버린 이양희의 모습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49장,

승재는 술을 마신 이양희가 운전을 하고 간다는 것이 불안하다.

“잠시 기다려주시오.

잠시만 집에 들어갔다 오겠소.“

”승재씨!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냥 들어가세요.“

”양희씨!

내가 불안합니다.

안에 들어가 잠시 아이만 보고 내려올 것이니 기다려주시오.“

승재는 그 말을 하고 차에서 내린다.

음주음전을 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대리운전을 부르는 것도 안심이 되질 않는다.

승재는 급하게 집으로 올라가 승인이를 본다.

다행스럽게 승인이는 잠이 들어 있다.

승인이를 확인하고 나서 다시 내려간다.

승인이는 잠이 들면 아침까지 깨지 않고 그대로 잠을 자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

이양희는 승재를 기다리며 승재의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을 받는다.

생각보다 빨리 나오는 승재를 본다.

승재는 양희가 기다리는 것을 생각하고 급하게 차에 오른다.

“승인이는요?”

“잠이 들어 있습니다.

양희씨를 데려다 주고와도 충분합니다.“

승재는 다시 시동을 건다.

“승재씨!

가셨다가 되돌아 와야 하는데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내가 운전을 하고 가도 됩니다.“

”안 됩니다.

음주운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아십니까?

내 생명도 그렇지만 남의 생명까지 파괴하는 아주 무섭고 아찔한 것입니다.

내가 내려주고 차를 주차장에 넣고 나서 택시로 돌아오면 됩니다.“

”미안해서 어떻게 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인데........“

“양희씨!

이렇게라도 양희씨와 더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고마울 따름이지요.

편안한 마음으로 행선지를 알려주시오.“

이양희는 자신이 사는 동네 이름을 말한다.

소위 강남의 노른자위라는 곳이다.

승재는 천천히 운전을 해 나간다.

승재의 운전솜씨는 안정적이고 차분하다.

절대로 서두르는 법도 없고 급하게 운전을 하지 않는다.

이양희는 승재의 운전이 참으로 차분하고 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눈을 감는다.

이렇게 편안하게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 있었던가 싶은 생각을 한다.

이양희를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온 시간이 열한시가 넘은 시간이다.

승인이는 세상모르고 잠이 들어 있다.

승재는 잠이 들어 있는 승인이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승인이를 혼자 두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는 것이 미안스럽고 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승인아!

미안하다.

아빠가 너를 오랜 시간 자꾸 혼자 두게 되는구나.

아빠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자꾸만 이렇게 돼서 정말 미안하구나!“

승재는 잠이 든 승인이의 모습을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승인이의 방에서 나온다.

처음으로 이양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말을 해 준 날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대기업의 외동딸!

그러나 보통의 여자들보다 더 혹독한 세월을 살아야 했던 그녀의 기구한 삶이 승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식을 잃고 방황해야만 했던 수많은 나날들을 견디어 내기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을까?

자신은 아내를 잃고서도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을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졸지에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이양희의 심정을 승재는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 때문이었으니 가족들에 대한 원망의 세월이 얼마나 깊고 아픈 것이었을지 짐작을 할 수가 있다.

오늘 처음으로 이양희는 자신 앞에서 많은 술을 마셨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이양희의 꼿꼿한 성품을 볼 수가 있었다.

어디에서든 자신을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가질 줄 아는 여자인 것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승재는 고개를 젓는다.

자신의 가슴속에 깊숙이 들어 있는 아내 이외에는 그 어떤 여자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만 자꾸만 이양희의 모습이 죽은 아내의 환상을 물리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승재는 그다지 힘들어 하지 않고 이양희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일주일에 두어 번씩 만나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끼리의 마음이 통해서일까?

서로가 자주 연락을 하며 시간을 즐긴다.

그 모든 것을 사위인 나인규가 알고 있다는 것을 승재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승미의 아기는 벌써 백일이 가까워진다.

나회장과 홍수희는 아기의 백일을 위해 커다란 잔치를 준비하려는 생각이다.

처음으로 태어난 손자의 백일을 그냥 보낼 수가 없다.

이미 주변에서 나회장의 손자 백일을 기념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회장에게 보다 더 잘 보이려고 하는 중견간부들의 계획이기도 하다.

승미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보통의 평범한 모습이 아니고 대기업의 안주인으로서 어울리는 차림새와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는 승미다.

손자의 재롱에 흠뻑 빠져 있는 홍수희는 모든 것을 승미에게 맡긴다.

집안의 모든 일들은 승미의 손으로 조금씩 넘겨져 가고 있다.

아기는 승미의 품안에서보다 할머니와 유모의 품에서 자란다.

승미는 시어머니를 대신해서 온 집안을 통솔하게 된다.

그것은 워낙에 집안 살림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홍수희가 자청한 일이기도 하고 승미 역시 집안 살림을 야무지게 잘 해내는 것을 본 나회장의 생각이기도 하다.

승미는 조금씩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해 나간다.

시어머니의 손에서 새어나가던 살림살이의 씀씀이가 승미의 손으로 건네어지면서 그런 모든 것들이 차단이 된다.

무엇을 하나라도 꼼꼼하게 살피고 확인을 하는 승미의 성품이었고 지금까지 절약을 하면서 생활을 해오던 승미의 몸에 밴 절약습관이 살림을 더욱 야무지게 이끌어 가고 있다.

“아가!

식솔들에게 너무 인색하게 하지는 말아라!

무엇보다도 우선 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네, 아버님!

그러나 지나치게 헤픈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아낄 것은 아껴가면서 그 사람들의 사정을 봐주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네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너무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어 지면 반발하는 사람들도 나오지 않겠니?“

나회장은 아내의 헤픈 것에 비해서 며느리의 똑 소리 나는 살림 솜씨로 인해 행여 아랫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된다.

“아버님!

제 나름대로 사람을 다루고 싶습니다.

아낄 것은 아껴가면서 베풀면 지금까지의 헤프던 것을 고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마음 충분히 알았다.

이젠 네 어머니 시대는 끝났음을 그 사람들도 알겠지.

나도 너를 믿는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행여 힘든 일이 있거든 언제든지 말을 해 다오.

이 애비는 언제나 너를 도와 줄 수 있는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으 마!“

“네, 아버님!”

승미는 시아버님의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진다.

모든 것은 너무나 넘쳐나고 모든 것은 너무나 풍족한 것이 오히려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해이하게 해 주고 있었다.

무엇 하나 아낀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마구 쓰고 버리는 것을 보통으로 생각하는 아랫사람들의 태도에 승미는 조금씩 변화를 준다.

집안 곳곳이 쓸데없이 켜져 있는 전구를 끄는가 하면 너무 많은 음식을 해서 다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아까운 음식물이 너무 많은 것이다.

승미는 재료들이 들어오는 것을 검토하고 줄여나간다.

처음에는 모두들 그러는 승미를 보며 반발을 한다.

그러나 승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계획대로 살림의 모든 것을 줄여나가면서 어디에서든 헤픈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얼마든지 아끼지 않는 승미지만 너무 헤픈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반발을 하던 사람들은 차츰 승미의 본심을 알게 된다.

승미가 자신들을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자신들도 모든 것이 너무 헤프고 아끼지 않고 마구 쓰고 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승미는 차츰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모든 관리를 해 나간다.

“여보!

당신이 너무 고생이 많아서 어떻게 하지?“

인규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집안일에 매달리는 승미의 모습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일이 고생을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손에 물을 묻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관리하고 사람을 부리는 일인데 힘들 것도 없고 고생이 될 것도 없지요.“

”그래도 사람을 부리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요?

더구나 우리 어머니하고 방식이 다른 당신이 많이 힘들 것이라는 걸 알아요.“

“이젠 그렇지 않아요.

모든 것은 조금씩 이해를 하다보면 차츰 좋아지게 되어 있어요.

당신은 집안일과 내 걱정을 하지 말고 회사 일에 더욱 충실하면 됩니다.“

승미는 걱정을 해주는 남편의 마음이 참으로 고맙다.

“여보!

이번 휴일에 친정에 가지 않겠소?“

”아버지한테요?“

”그래요.

우리 당신 친정에 가본 것이 언제요?

아들을 낳기 전이 아니요?“

”아, 그렇네요.

허지만 이번 휴일에는 이모님들이 우리 성빈이 백일을 의논하시기 위해서 집으로 오신다고 해서 시간을 낼 수 없어요.“

”그것이 무슨 의논을 할 것이 있다고 이모들이 오셔?

아무튼 무슨 핑계꺼리만 있으면 몰려들 오니 당신이 힘들어 큰일이다.“

“여보!

성빈이 아빠!

사람이 사는 곳에 아무도 오지 않으면 그 집안이 어떻겠어요?

누가 오시든 당신은 그저 반갑게 맞이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이모님들께서 오셔서 함께 의논하고 상의를 하면 좋은 일이지요.

그리고 성빈이 백일이 다 되어 가는데 친정에 갈 시간이 없지요.

우리 성빈이 백일이나 지나고 나서 함께 가도록 해요.“

인규는 아내의 말이 옳다는 생각을 한다.

아들의 백일은 부모님께서는 큰 행사로 치루려는 생각을 하시고 계시다.

그것을 만류할 수 있는 이유가 없다.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손자고 그토록 바라던 손자의 백일을 그대로 넘기실 부모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규는 장인어른의 데이트를 잘 알고 있고 이제는 그것을 숨기면서 하도록 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알고 있던 이양희가 아니다.

재벌그룹의 딸이라고는 해도 오랜 세월 그룹과 떨어져 독자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룹하고는 아무런 연관도 없이 살아가고 있기에 자유스럽고 매스컴의 추적을 받지도 않는 자유분방한 사람이다.

또한 이제는 완전한 서민층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인규로서는 안심이 되는 상대다.

두 분이서 마음만 합해진다면 얼마든지 편안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대로 모른 척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또한 아내도 늘 아버지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규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여보!

좋은 분이 있는데 아버님께 소개를 해 드릴까?“

”정말 그런 분이 있어요?“

”응, 슬하에 자식도 없이 사시는 분이신데 당신 생각을 듣고 싶소.“

”내 생각을 들으나 마나 좋은 인연이 있는 분이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이제 우리 아빠도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거든요.“

“정말 당신 말대로 그렇게 되었으면 참 좋겠소.

그렇게만 된다면 처제를 우리가 맡아서 돌봐주어도 좋겠지.“

”여기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요?“

”그렇게 해야지 어쩌겠소?

우리 부모님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드리실 것이오.

처제가 다른 장애를 가진 것도 아니고 발달장애가 되어 세상에 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두 분이서 잘 알고 계시니 받아 드려주실 것이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

아빠 생각만 하면 늘 죄송스럽고 마음이 안타까워요.“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요.

일단 우리 성빈이 백일을 끝내고 나서 함께 장인어른을 찾아뵈러 갑시다.“

”그럴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일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요.

여보, 정말 그렇게 좋은 분이 있어요?“

”그렇소.

그분도 이미 아버님을 알고 계신 분이시오.“

”정말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이제 우리 아빠가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어요.“

승미는 아빠의 진정한 행복을 원하고 있다.

자식들만을 키우시면서 살아오신 아빠의 남은 생애가 늘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남편의 말에 승미는 커다란 희망을 가진다.

글: 일향 이봉우

 

 

 

 

50장,

아기의 백일은 참으로 성대하게 치루어진다.

나회장은 일체의 선물을 사양한다.

축하 금이나 그 어떤 선물을 모두 사양한다는 말을 사전에 미리 한다.

그냥 와서 진심을 다해서 손자의 건강과 무탈함을 빌어달라는 뜻을 전한다.

귀하고도 소중한 손자의 백일이다.

나회장과 홍수희는 연신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아기는 무엇을 안다는 듯 연신 벙글벙글 웃으며 이 사람 저 사람의 품으로 안겨 다니면서도 조금도 보채지도 않고 칭얼거리지도 않는다.

“허허..........

그 녀석 무엇을 아는 게야?

이렇게 순하고 착할 수가 있나?“

나회장은 그런 손자의 모습이 더욱 사랑스럽고 대견스럽다.

백일잔치는 오후부터 시작을 해서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모두들 빈손으로 와서 처음에는 황송하고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모두들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기의 앞날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서 아기의 백일을 축하하며 아기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이 된다.

승재 또한 늦은 시간까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참으로 흐뭇하고 보기 좋은 모습이다.

승재는 이미 외할아버지로서 손자 성빈이를 위해서 오늘 입은 옷들을 선물해 준 것이다.

성빈이는 오늘 서너 번의 옷을 갈아입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도 그렇고 기저귀를 갈아 채우면서 옷을 바꾸어 입히곤 한다.

오늘의 의상은 친정아버지가 보내주신 돈으로 승미가 준비를 한 것이다.

승미의 모습 또한 예전의 서민적인 모습이 아니고 회장님 댁의 하나뿐인 며느리로 당당하고 위엄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젠 누구든지 승미의 위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없다.

특히 이 집안의 시누이들의 위세는 승미 앞에서 한 풀 꺾이어 그들만의 도도한 모습을 내 보일 수가 없다.

부모님이 위하고 이 집안의 대를 이어줄 아들을 낳은 올케다.

이젠 안살림을 모두 도맡아서 해 나가고 있는 올케의 위세에 그대로 주눅이 들어 있는 시누이 들인 것이다.

일찍 결혼을 해서 내 노라 하는 집안으로 시집을 갔지만 아직 안살림은 고사하고 시댁의 모든 것에서 밀려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올케의 모든 것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동생 인규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삭막한 것인지 가슴이 허허롭다.

말뿐인 그 집안의 며느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들과는 달리 모든 것을 다 맡아서 해 나가고 있는 올케의 그 능력이 또한 새삼 부럽다.

승미는 매너 있고 상냥하고 우아한 몸놀림으로 손님들을 접대한다.

모든 손님들은 승미의 접대에 감격해 하면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승재는 그런 맏딸의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대갓집의 며느리로 자신의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며 처리해 나가는 딸의 모습이 승재의 가슴을 쭉 펴게 만들고 어깨에 힘을 주게 만들고 있다.

“아버님!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나인규가 옆으로 다가오면서 잔을 드린다.

“고맙네!

그러나 조금만 주시게!“

인규는 승재의 잔에 술을 반 정도 따른다.

“참으로 기분 좋은 날일세!

우리 큰애가 이제는 자네 집안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몸에서 나타나는 것만 같네!“

“네!

이제는 저의 집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부모님께서도 모든 일들은 저보다는 집사람과 의논을 하시곤 하십니다.“

“그것이 모두 자네가 진심을 다해서 성빈애미를 사랑해주기 때문일세!”

“아버님!

집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누구를 사랑하겠습니까?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이 집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 것입니다.“

”말이라도 정말 고맙네!“

“말뿐이 아닙니다.

만일 집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성빈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제 집안이 이렇게 평화롭고 따뜻하게 된 것이 모두가 그 사람의 노력입니다.

참으로 노력하는 사람이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승재는 그런 인규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동안의 모든 고생들이 봄눈 녹듯 모두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딸들은 키우면서 어렵고 힘들었던 모든 순간들이 잊어지는 순간이다.

“아버님!

이번 주말에 찾아 뵈도 될까요?“

“이번 주말?

자네가 시간을 낼 수가 있겠나?“

”저 혼자 가려는 것이 아니고 집사람과 성빈이를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허허허..........

그렇게만 된다면 나야 얼마나 기쁜 일이겠나?

허지만 바쁜 중에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게!

오늘 이렇게 모두를 보았는데 무리하지 않았으면 하네!“

“집사람과 찾아뵌 것도 오래 되었고 또 그 핑계로 집사람을 데리고 하루쯤 친정에서 쉬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나야 좋은 일이지.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네!

아침을 먹고 일찍 가겠습니다.“

인규는 행여 장인어른이 다른 약속을 잡아 놓으실까 미리 약속을 한다.

모든 잔치가 끝이 나기 전에 승재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돈과의 작별인사를 하고 승미와 인규의 배웅을 받으며 호텔을 나선다.

참으로 살아온 세월들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이제 승재는 서서히 승인이를 데리고 살아갈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승인이가 편안하게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면서 자신의 사후에라도 언니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승인이를 그렇게 해 주기 위해서 꾸준히 저축을 해 나가는 것이 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정리를 해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양희가 떠오른다.

그녀와의 만남!

그리고 그녀를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 것인가에 생각이 멈춘다.

아내가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가고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여인이다.

그러나 재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는 승재다.

감히 그녀와 재혼을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과는 어울릴 수 없는 고결한 여인이다.

또한 그 집안에서 자신과 같은 남자에게 결혼을 허락할 리도 없는 것이다.

대기업 총수의 딸이다.

그것도 아들만 있는 집의 양념 딸,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딸일 것인가?

승재는 자신이 헛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승인이와 단 둘만의 삶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급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동안의 자신의 심장에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이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선다.

차를 주차시키고 나서 막 현관으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다.

승재는 무심코 눈을 들어 쳐다본다.

“어?

이 시간에 이곳까지 웬일이오?“

생각하지도 않은 이양희였다.

“이제 오시네요.”

“한참 기다렸소?“

"한 시간 정도?

그러나 지루한 줄도 몰랐어요.

반드시 온다는 확신이 있으니 기다렸지요.“

”전화를 하지 그랬소?“

말을 하면서 승재는 어쩔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다시 이양희와 되돌아 아파트를 나선다는 것은 승인이가 불안하다.

“이렇게 승재씨를 봤으니 되었어요.

그만 돌아갑니다.“

이양희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양희씨!

여기까지 와서 오래 기다렸는데 어떻게 그냥 보내겠소?

잠시 내 집에 들어갑시다.“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것이 뭐가 있겠소?

우리 승인이에게 아빠 친구라고 소개를 하면 되지 않겠소?

시간이 늦은 이 시간에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갈 곳이 어디 있겠소?“

승재는 엘리베이터의 단추를 누른다.

잠시 문이 열리고 승재는 이양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다.

“번거롭게 해 드린 것 같아서 미안해요.

허지만 보지 않고서는 잠이 들 것 같지가 않았어요.“

”잘 와 주었소.

그러지 않아도 나도 양희씨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이었소.“

엘리베이터는 승재가 버튼을 누른 층수에 멈춘다.

승재는 현관의 열쇠를 열고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선다.

거실에 승인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들어오시오.”

이양희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잠시 소파에 앉아 있으라는 말을 하고 승인이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오늘도 승인이는 혼자서 잠이 들어 있다.

승재는 잠시 승인이의 방으로 들어가 승인이의 이부자리를 손을 봐주고 나서 나온다.

“차는 뭐로 하시겠소?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는 커피하고 인삼 차 뿐이오.“

”후후.........

저는 뭐든 차 종류는 다 있는 줄 알았네요.“

“술을 마셨소?”

“네!

허지만 많이 마시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차를 운전해서 왔소?”

“아니요!

그러다 승재씨에게 혼나려고?

택시를 타고 왔어요.“

”잘 했소.“

승재는 인삼차를 준비한다.

인삼차를 두 잔을 준비해서 거실로 나온다.

"저녁은 어찌 했소?“

”오늘 집에 가서 먹었지요.

가족들과 함께 먹는 자리였는데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불편하더라고요.“

”양희!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가족들이오.

자꾸만 가족들과 떨어지려는 마음을 갖지 마시오.

그러다 보면 정말 가족들에게 소외당하고 말 것이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잘 안 되고 있어요.

이제는 모든 것을 잊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가슴 밑바닥에 남아 있는 앙금이 가끔은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다 털어버리시오.

그래야 가족들도 당신도 편안할 것이오.“

”승재씨!

당신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편안해요.

늘 이렇게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었으면 하는 혼자만의 공상을 하곤 해요.“

”...........................“

승재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양희의 말뜻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승재씨!

이제는 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요.

당신을 향하고 있는 내 마음,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아요.

더 이상은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내 마음에 이제는 당신이라는 남자가 꽉 들어차 있어요.“

“양희!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함께 갈 수 없는 사람들이잖소?

내가 감히 당신을 어떻게 바라볼 수가 있겠소?“

”왜요?

내가 당신에게 부족한가요?“

”부족한 것은 바로 나요.

그리고 당신에게 큰 짐을 안겨줄 생각도 없소.“

”무엇이 큰 짐이지요?

승인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요?“

“그렇소!

그 누구도 그 아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승재씨!

당신 혼자 지고 가는 것보다는 곁에서 내가 도와주면 안 될까요?

함께 지고 가면 혼자보다는 가벼울 것이 아닌가요?“

”당신이 왜 그런 짐을 지려고 하오?

그리고 당신 집안에서 얼마나 반대를 하겠소?

이제 우리는 젊은 청춘들이 아니오.

이제 무슨 일을 감당할 만한 젊은 패기가 있는 것도 아니잖소?“

승재는 차분하게 이양희의 감정을 가라앉히려 한다.

“승재씨!

우리 집안이 겁나고 무서운가요?

이제는 제 결혼에 대해서 그 누구도 간섭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당신 같은 남자라는 것을 알면 오히려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입니다.

감히 나 같은 여자가 당신에게 어울리기나 할지 두려운 마음입니다.“

이양희는 승재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을 한다.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더 이상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는 승재를 알고 있다.

한 발자국도 더 이상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승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