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장,
이양희는 처음으로 보게 될 둘째 딸을 생각하며 가슴이 울렁거린다.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 딸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심을 한다.
엄마로서 입에 맞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해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다.
아직 서로 대면은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전화로 화상통화로 서로 음성과 얼굴은 익히 알고 있지만 막상 이렇게 만나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딸들 중에서 가장 대단한 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딸을 키워낸 사람은 남편이다.
사랑하는 남편의 대단히 훌륭한 딸이다.
“여보!
승리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아직 입맛이 그대로 있겠소?
벌써 그곳에 나가서 산 세월이 얼마인데 입맛이 그대로 있으려는지 모르겠소.“
”아무리 그래도 본연의 입맛마저 없어지지 않지요.
우리가 어려서 먹던 엄마의 손맛을 왜 그리워하고 찾게 되나요?
우리 본연의 입맛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런가?
승리가 워낙에 잡채를 좋아해서 내가 미국에 갔을 때도 잡채를 해 준 기억이 나는군!
그때도 얼마나 맛있게 잘 먹던지 흐뭇하다는 생각을 했었소.“
“그래요?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잡채인가요?”
“비법은 무슨?
난 아이들에게 야채를 많이 먹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잡채를 해도 시금치를 많이 넣고 색색의 파푸리카를 넣고 고기 보다는 고명을 참기름으로 볶는 것이 비법이라고 할까?
고기를 넣게 되면 소고기를 연하고 좋은 부위를 온갖 양념으로 준비했다가 살짝만 볶아서 넣어주곤 하지만 되도록 많은 고기를 넣지 않지.“
“그렇군요.
그렇다면 당신이 조금만 도와주면 맛있는 잡채를 준비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음식은 뭐가 있어요?“
”다른 것이 뭐가 있겠소?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냉이를 넣은 된장찌개면 아주 좋아하지.“
이양희는 소상하게 승리의 식성에 대해서 물어본다.
승재 또한 그런 아내의 세심한 배려가 고맙다.
특별한 음식은 아니더라도 엄마의 정성이 담긴 음식이라면 서로의 정이 깊어질 것이고 서로 얼마나 깊은 사랑이 우러나겠는가?
승재는 하루하루가 열흘처럼 길게 느껴진다.
승리가 와서 묵게 될 방을 양희는 다시 정성스럽게 손을 본다.
침대에 새로운 침대보와 이불을 준비한다.
아주 좋은 것으로 정성을 다해서 편안하게 쉬었다 가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
승리언니 언제와?“
승인이가 묻는다.
“승리언니 보고 싶어?”
“응!
근데 언니가 왜 안와?“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올 거야!“
“언니 어디 있는데?”
승인이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언니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미국?
먼데야?“
“그럼 아주 멀지.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곳인걸!“
“우리도 비행기 타고 여기 왔는데 여기도 먼 곳이야?”
“그래, 우리도 비행기 타고 왔지.
그런데 승리언니가 있는 곳은 여기보다도 더 먼 곳이다.
그래서 언니가 자주 우리 있는 곳에 오지를 못하고 있단다.“
“그럼 안 가면 되지.
아빠도 엄마도 있고 승인이도 있고 우리 사랑이와 보람이도 있는데 승리언니는 왜 가?“
“글쎄 말이다.
언니가 왜 가야만 하는지 언니 오면 물어보자.“
이양희는 가끔 이런 천진스러운 승인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몸은 이제 중년 여인의 모습이지만 정신세계는 아직도 어린아이의 승인이가 사랑스럽다.
맑고 고운 정신세계를 지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늘 삶에 찌들고 세파에 허덕이면서 맑고 고운 정신세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바로 현실이고 삶이다.
아무리 모든 욕심을 다 내려놓고 청정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삶은 힘겹고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인간의 욕심은 끝나는 곳이 없어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뭔가를 채우려는 욕심으로 허덕이며 목말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막상 마지막 죽음에 이르러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에도 욕심을 부리고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승인이의 맑고 고운 영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을 향해 아무런 욕심도 욕망도 없으면서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것이다.
이양희는 그런 승인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
“엄마!
승리언니는 엄마가 왜 안 돼?“
”승리언니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엄마가 될 수 없단다.“
“응!
그렇구나!
근데 왜 결혼을 안해?“
”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없나보다.
우리 승인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
승리언니 정말 예쁜데 왜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
”글쎄다.
그것은 엄마도 모르겠는데?“
이양희 또한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 사귀는 사람이 없는지 또한 정말 결혼을 하지 않을 생각인지 승리의 마음이 궁금하고 승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부모로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승리의 귀국날짜가 가까울수록 이양희와 승재는 마음이 바빠진다.
다행히 승미가 공항으로 나가 승리를 만나 제주도로 함께 오기로 약속이 된다.
나인규는 처제의 마중을 위해 시간을 비워 아내와 함께 공항으로 나가 마중을 하고 곧 바로 부모님의 집이 있는 제주로 출발을 하기로 스케줄을 잡아 놓는다.
나인규의 감독아래 제주의 꿈의 동산은 모든 진행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나인규는 모든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공사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그런 나인규가 처가 집일에 대해서 시간을 낸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구가 아직도 아내인 승미를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는 나인규다.
승미는 벌써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둔 승미는 이제 어엿한 대기업의 안주인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아 품위와 지성은 겸비한 훌륭한 내조자로서 손색이 없다.
그토록 깐깐하고 도도하던 홍수희 역시 뒷방으로 물러나 집안에 아무런 실권이 없다.
워낙에 살림을 싫어하고 일하는 것을 싫어하던 홍수희는 그저 뒷방으로 물러나 남은여생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낙이다.
손자 손녀의 재롱과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홍수희다.
승미가 하는 일에 대해서 아무런 간섭도 무엇인가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 홍수희다.
나회장 역시 모든 실권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나서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 적어진다.
특별한 일에만 결재를 해 주고는 남은 것은 이제 모두 나인규의 인선에서 모든 경영이 이루어지고 실질적인 사주가 된 나인규다.
“여보!
우리 처제가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인사더라고.“
“그래요?
얼마나 유능하고 유명한지 난 잘 몰라요.
그저 해외뉴스를 통해서 가끔 나오는 승리를 보면 참으로 크기는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승리의 힘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으니까요.“
”생각보다 처제 힘이 아주 대단하더군!
무엇이든 잘 되지 않는 국제문제를 처제의 루트를 잘 찾아서 가기만 하면 나라를 위해서 발벗고나서서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처제의 입김이 작용하기만 하면 일이 수월하다는 평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야!
이번 귀국길도 국제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하는 귀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함께 오는 사람들의 인선이 무시하지 못할 대단한 사람들이거든!“
“그렇다면 개인적인 시간이 없을 것이 아닌가요?”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바로 제주도로 갈 수 있다고 한 것도 얼마동안은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정말 그래야겠지요.
얼만 만에 만나는 우리 자매들인데 서로 만나볼 시간이 없다면 안 되지요.“
승미 역시 승리가 그립고 보고 싶다.
벌써 만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이십 여 년도 더 넘는 세월들이다.
유학을 떠난 뒤로 한 번도 한국에 나오지 않고 미국에서 잔뼈가 굵어간 승리다.
얼마나 변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립고 보고 싶은 동생이다.
“이번에 당신도 핑계 김에 제주에서 푹 쉬었다 오구려!”
“당신 뒷바라지는 어떻게 하고요?”
“내 걱정은 하지 마오.
아이들이야 할머니가 계시고 사람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휴가라고 생각하고 자매들끼리 오랜만에 좋은 시간도 갖고 부모님 모시고 푹 쉬면서 지내다 오구려!“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승리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 아무런 결정을 할 수가 없어요.
일단은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그나저나 처제가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너무 늦은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네!
장인어른께서 큰 걱정을 하고 계시는데........“
“꼭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나름대로 인간으로 성공을 하고 그 길에 만족과 보람을 느끼면서 사회에 큰 일꾼이 되어 살아가는 것도 좋은 삶이라는 생각을 해요.
반드시 여자로서 여자의 길만 가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어디 그런가?
이 다음 우리 딸이 결혼을 하지 않고 그렇게 산다면 괜찮겠소?“
”승리처럼만 성공을 해 준다면야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에요.
그 정도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신의 길에 더욱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면 결혼을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이 되겠지요.“
승미는 동생 승리의 삶이 멋지고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능력으로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제 차승리는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멋지고 당당한 승리의 모습은 함부로 근접할 수 없을 정도의 위엄과 당당함이 깃들여있다.
국제 경제인 모임이 당당하게 한국에서 개최가 된 데에는 차승리라는 미혼여성의 힘이 실려 있음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그것은 상당히 크고 대단한 모임이다.
각 국가에서는 그 모임을 개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유치하고자 했으나 차승리라는 동양의 조그만 나라의 미혼여성을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조차 차승리를 귀빈대접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들 일행보다 보름은 앞당겨 귀국을 하는 승리다.
차승리의 입국날짜를 알고 비행기에는 귀빈석으로 좌석을 마련하고 모든 대우는 특별한 대우를 한다.
승리가 귀국을 하는 날 정부 중요인사들도 비행장으로 마중을 나간다.
그것을 모르고 있던 나인규였다.
승리가 일반 출입구로 나오지 않고 귀빈들만 드나드는 특별한 출입구로 나오면서 많은 정부요직에 있는 인사들과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 인규와 승미는 놀라는 얼굴이 된다.
승리는 한동안 그들과 대화를 하고 나서야 개인의 시간이 주어진다.
나인규와 승미는 그저 그들의 모습만 지켜보며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다.
승리가 그들과 헤어져 언니를 알아보고 승미가 있는 곳으로 온다.
“언니!”
“승리야!”
그들은 비로소 반가움의 해우를 한다.
둘은 서로 포옹을 하며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체취를 느낀다.
“언니!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정말 반가워요.“
“승리야!
나도 너의 그 당당하고 대단한 모습을 보니 너무 자랑스럽고 마음이 기쁘다.
아참, 형부에게 인사를 해야지.“
나인규가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우리 큰 처제 이제야 만나게 되는구려!
참으로 반갑소.“
“형부!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언니를 아주 많이 사랑하신다는 자랑은 늘 듣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고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만 언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언니 역시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오.“
”어서 다시 제주 비행기를 타야합니다.
시간이 촉박한 것 같으니 어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승미가 시간을 보며 말을 한다.
제주에서 부모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그럽시다!
가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이오.“
그들은 다시 김포비행장으로 출발을 한다.
그리고 시간에 맞추어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을 한다.
“얼마 만에 오는 고국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이제 처음으로 내 고국을 밟아봅니다.“
“그래!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난 세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우리 막내 동생 승인이 역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언니!
언니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참으로 좋습니다.
승인이도 언니모습처럼 그렇게 행복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승인이의 모습은 참으로 고귀하고 평화스럽게 보인다.”
승미는 자세히 승인이의 모습을 말해준다.
글: 일향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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