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종엽이 군에 입대를 한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입대를 하는 것이다.
졸업을 하고 나가는 것보다는 한 학기라도 남겨놓고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 취업을 위해서 더 좋
겠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었다.
귀숙은 종엽이 군 입대를 하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온다.
얼마나 힘들고 고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다.
임씨 또한 하나뿐인 손자의 군 입대를 놓고 안쓰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피해 갈 수도 없는 길이고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어미야!
종엽이 방을 내가 혜영이를 데리고 써야겠다.“
임씨는 종엽이가 떠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말을 한다.
“어머님!
이제 아이들 셋이서 한 방을 쓰기에 너무 좁습니다.
이제는 어른들 만큼이나 자란 딸들 셋이서는 너무 좁아서 종희하고 혜영이를 그 방으로 보낼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 것 없다.
계집년들이야 좀 좁게 살면 어떠냐?
내가 혜영이를 데리고 그 방으로 가야만 혜영이도 조금이라도 편안할 것이 아니겠냐?“
”어머님은 늘 혜영이 생각만 하십니까?
우리 아이들 생각을 조금만이라도 생각을 해 주시면 안 되시는지요?“
귀숙은 갑자기 서운함이 밀려온다.
“조금 있으면 모두 떠날 기집 년들을 생각하고 말 것이 뭐가 있냐?
좁으면 좁은 대로 살면 되는 것이 아니냐?“
“어머님!
혜영이가 누구입니까?
어머님의 핏줄이라도 되는 것인가요?
그이가 저 몰래 어머님과 짜고 어디서 낳아 온 아인가요?“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네가 몰라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임씨는 며느리의 말에 놀란다.
“그렇지 않고서야 늘 그렇게 혜영이를 끼고 도시는 어머님이 저는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끼고 돌기는 내가 뭘 그렇게 끼고 돈다는 말이냐?”
“혜영이로 인해서 종선이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 줄 생각이나 해 보셨습니까?
어머님께서 늘 혜영이를 끼고 도시고 종선이를 얼마나 상처를 주셨는지 생각이나 해 보셨습니
까?“
”그깐 년이 상처는 무슨 상처!“
임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냉정하게 말을 한다.
“참으로 너무 하십니다.
우리 종선이 제 뱃속으로 낳은 제 자식입니다.
어떻게 혜영이만도 못할 수가 있는지 저는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 나더러 종선이를 미워한다고 너는 말을 하는데 얘기 좀 해 보자.
지년이 얼마나 잘났길래 제 언니들도 가지 않는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지 얘기를 해 보아라!“
“종선이가 왜 대학을 못갑니까?
종희와 종은이가 가지 못했으니 종선이라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우리 종선이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어머님께는 왜 그렇게 못 마땅스러우신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예부터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고 했다.
우리 집 형편에 제 년을 대학을 보낸다면 하나뿐인 지 오래비는 어쩌려고?“
”이제 종엽이도 대학을 마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우리 종선이는 대학을 보내고 말 것입니다.“
귀숙은 시어머님의 생각이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에 심한 울화증이
치밀어 오른다.
“네가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무엇 하러 쓸데없는 낭비를 하려는 것인지 나도 너를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런 돈이 있거들랑 이제 종엽이 결혼자금을 준비를 해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
”종엽인 자신이 벌어서 결혼을 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종엽이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종선이를 대학을 보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머님은 혜영이가 대학을 가겠다고 해도 그렇게 말리실 것입니까?“
”혜영인 맡겨놓은 돈이 있으니 그 돈으로 시키면 될 것이 아니냐?
그 애는 우리한테는 부담스럽지 않는 아이가 아니더냐?“
”어머님!
지금까지 혜영이를 키우고 가르치면서 그 돈에 손을 댄 것으로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혜영이도 제 자식입니다.
그이와 제 자식이 된 아이를 부모가 남겨놓은 돈이 있다고 그것을 쓸 수는 없는 일이지요.“
”..............................“
임씨는 귀숙을 말없이 바라본다.
지금까지 매달 혜영이의 양육비를 받으며 데리고 있는 아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있던 임씨로서는
뜻밖의 말이었다.
그런 임씨의 마음을 귀숙은 꿰뚫어 보고 있다.
“그 아이의 양육비라고 매달 그 돈에서 떼어 쓴다면 정작 대학입학과 대학 등록금 그리고 혜영이
가 결혼을 할 때 무엇으로 어떻게 합니까?
우리 형편에 그 모든 것을 책임을 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지금까지 돈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말이냐?”
“네!
한 순간도 혜영이가 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자식이라는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이 있으니까요.
어머님께서도 종선이를 이젠 그만 미워하시고 혜영이와 같이 사랑으로 보살펴주시길 부탁드립니
다.“
”.............................“
임씨는 말이 없다.
귀숙은 종희와 혜영이를 종엽이의 방으로 보낸다.
언제까지 다 큰 아이를 한 방에서 재울 수도 없는 일이고 이제는 자매들끼리 함께 방을 쓰면서
서로 정을 나누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임씨는 그런 며느리의 처사에 대해 일체 말이 없다.
생각해 보면 다 큰 손녀딸 셋이서 함께 방을 쓴다는 것이 비좁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임
씨다.
그러나 손녀딸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 당신도 모르게 공연히 심술이 나는 것이다.
아들 며느리가 뼈 빠지게 일을 해서 쓸데없는 기집 년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기만 해도 심술
이 난다.
종희처럼 나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도 집안을 위해서 쓰지 않고 제 자신의 앞날을 위해 저축을
한다는 것도 임씨로서는 심술이 난다.
종희가 벌어오는 돈은 귀숙은 한 푼도 쓸 수도 없고 받을 생각도 없다.
더 공부를 시키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하며 버는 돈이다.
그런 돈을 자신이 편안하고자 받아서 쓸 수는 없다.
또한 종희도 언젠가는 미용실을 차려야 할 것이다.
집에서 도움이 되어 줄 수 없는 마당에 종희의 수입을 바란다면 종희는 평생을 남의 미장원에서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귀숙의 생각에 임씨는 불만이 많다.
딸년들은 시집을 가기 전에 부지런히 벌어서 친정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임씨로서는
종희도 불만스러운 것이다.
종은이 역시 집안 살림을 한다고 해도 늘 외출이 잦다.
언제부터인가 종은이는 시간만 나면 밖으로 나간다.
손녀딸들에 대해 모든 것이 마땅치 않은 임씨다.
그럴수록 임씨의 마음을 혜영이를 향해서 열려 있다.
아무리 며느리가 서운하다고 해도 정이 가게끔 하는 혜영이다.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많은 것도 혜영이다.
임씨는 이제 당신이 이 집안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음을 생각한다.
며느리 역시 당신의 말에 그다지 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손녀딸 년들 역시 할머니라면 싫
어한다는 생각을 한다.
임씨는 더욱 심하게 담배를 피우며 가슴속의 답답함을 내뱉는다.
저녁상 앞에 앉은 사람이라야 혜영이와 아들뿐이다.
며느리는 늦게까지 일을 하고 들어온다.
종희도 요즘 들어 퇴근이 늦고 종선이 또한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다니며 공부를 한다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종은이는 왜 안 들어 와?”
임씨는 소리를 지르며 종은이를 부른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에그, 이년이 고새 또 나갔군.”
“나가다니요?
저녁을 먹지 않고 종은이가 어디를 나갔다고 그러세요?”
고흥수는 어머니의 말이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고년이 요새 바람이 들었는지 툭하면 밖으로 나가지 뭐냐?
아직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년이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지금 그 나이면 한창 친구도 만나고 놀러 나가고 싶은 나이지요.
집에만 있으니 답답한 모양이지요.“
고흥수는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하고 수저를 든다.
반찬이라고 해야 된장국에 김치와 콩나물 무침과 김이 전부다.
“쯧쯧쯧.............
이래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 견딜 수 있나?
먹는 것이라도 좀 잘 먹어야 하는데 찬이 시원치 않으니 원!“
아들을 핑계로 반찬이 시원치 않음을 불평하고 있는 임씨였다.
날이 갈수록 더욱 주머니를 졸라매고 있는 며느리의 처사가 밉다.
종선이 대학을 보낼 생각으로 더욱 쥐어짜는 살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머니!
그래도 집 사람이 나가서 일을 하니 이나마 집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집안에만 있으면 우리 집이 지금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냐?
남정네가 능력이 모자라면 함께 나가 돈을 벌어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남정네 먹는 것이 이렇게 부실해서야 어디 나가서 힘이라도 제대로 쓸 수나 있겠냐?“
”저는 이 정도만 해도 입맛이 좋아서 그런지 밥맛이 꿀맛입니다.
집사람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다니는 것이 마음이 아프지요.“
임씨는 아들의 말이 서운하다.
당신 생각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제 안식구를 생각하는 아들의 말에 서러움이 밀려온다.
“누가 뭐라던?
그저 늙으면 어서 죽어야지.“
그제야 고흥수는 어머니가 반찬투정을 하시는 것을 깨닫는다.
“고기 잡수신 지가 오래 되셨지요?”
“나 같은 것이야 뭐...............”
“내일은 생선이나 고기라도 사 오라고 하겠습니다.
요즘 어머니가 진지를 잘 못 드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나야 아무려면 어떠냐?
너희들이 걱정이지.“
임씨는 아들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이 풀어진다.
“우리 혜영이도 요즘엔 먹는 것이 시원찮지?”
“할머니!
저는 아무거나 잘 먹어요.“
혜영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밥을 먹다 대답을 한다.
고흥수는 어머니의 이런 모습들이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도 안다.
당신의 손녀들보다 더 챙기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고흥수로서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지만 그래
도 어머니의 말벗이 되어주는 혜영이 고맙기만 하다.
임씨는 여전히 혜영에게 신경을 쓴다.
고흥수로서도 그다지 달가운 모습이 아니다.
혜영이 밥을 다 먹고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머니!
아이들이나 집사람이 보는 데서는 그렇게 혜영이를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것들이 뭐라고 하든?“
”종선이나 집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상할 것인지 어머니는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종선이는 어머님의 핏줄입니다.
아무리 해도 혜영이에 의해서 종선이가 받는 상처를 생각해 주셔야지요.“
"그래, 내가 아무리 종선이를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내 핏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미워해도 싫어해도 보지 않을 수 없는 아이고 혜영인 너희들 말대로 남이니 오죽 불쌍하냐?
내가 돌보지 않고 사랑을 주지 않으면 그 아인 어디에 기대고 살 것이냐?“
”어머니!
집 사람도 혜영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똑같이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자꾸만 그렇게 어머니가 끼고 도시니까 혜영이에게 사랑을 더 주지 못하고 어머니 눈치를 보게 됩니다.
종선이도 그렇게 챙겨주시고 사랑해주신다면 누가 뭐라겠습니까?“
”난 종선이 년이 악착스럽게 공부를 하는 것이 싫다.
부모가 고생을 하건 말건 제 욕심만 차리려는 년을 어찌 사랑한다는 말이냐?“
”어머니!
자식이 공부를 잘 하면 좋은 일이지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자식이 있으니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모르고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 종선이가 좋은 대학에 가서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성공을 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깐 년이 성공을 해서 뭣하냐?
어떤 놈 좋은 일이나 시킬 것인데............
우리 종엽이를 더 뒷바라지 해주고 우리 종엽이가 성공을 해야지.“
”아들이나 딸이나 모두 같은 자식입니다.
너무 그렇게 아들 딸 편견을 갖지 마시고 똑같이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돈이 있거든 얼른 돈을 모아 이 달동네를 떠날 생각이나 하렴!
언제까지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달동네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냐?
기집 년들 가르치느라 등 뼈골이 빠지고 나면 그때 후회를 해 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어머니!
자식을 태어나게 했으면 부모로서 최선의 도리는 해야지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하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집안 형편을 봐가며 하는 소리다.
아들도 아니고 계집애를 뼈골 빠지게 하며 가르칠 필요가 어디 있느냔 말이다.가르쳐 놓아야 남의
집으로 시집을 가 버릴 년들을 뭐 하러 그런 억척을 떨어가며 못 가르쳐 안달을 해?“
고흥수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늘 늦은 밤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는 아내가 안쓰럽다.
편안한 생활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늘 일에 치여 힘겹게 살면서도 집에 돌아와야 편안하게 쉴 방
조차 변변치 않다.
벌써 어머니와 한 방을 쓰는 것도 십 여 년이 넘는 세월이다.
제대로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고 아예 잊고 사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도 귀가 밝고 밤잠이 없는 노인이다.
어머니와 같은 방에서 부부생활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고흥수는 늘 아내에게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나 지금 아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제 제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 종엽이의 거처가 문제였다.
다시 딸들을 한 방으로 합치기에는 이미 다 큰 딸들이다.
글: 일향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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