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소설&드라마

[스크랩] 달동네 사람들 11회~20회

淸山에 2013. 4. 2. 19:20

 

 

 

 

제 11장,

두 부부는 한숨을 내 쉰다.

그렇다고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보!

종엽이가 제대를 하고 나면 우선 거실에서 살도록 해야겠어요.

딸들은 거실에서 쓰게 할 수는 없고 종엽이라면 이해를 하고 거실을 쓸 수가 있을 거예요.“

“아직 서너 달 있어야 하니 그때 닥치고 나서 생각합니다.

그것보다는 내일 고기라도 사 들고 오면 좋겠소.“

“고기요?”

“어머니가 드시는 것이 부실해 보여서.............”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내일 모래 휴일이니 가족들이 모두 있을 때 삼겹살이라도 먹도록 하지요.“

”그럽시다.“

귀숙은 요즘 가족들이 찬이 없는 밥을 먹는다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부를 하고 있는 종선이를 위해서라도 뭔가를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이지만 시

어머님의 눈치가 보이고 종선이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라면 또 집안이 시끄러울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기에 모든 것을 모른 척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시어머님께서 남편에게 불평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님만을 위해서 고기를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이 모두 쉬는 날을 택해서

삼겹살이라도 사서 먹일 생각이다.

워낙 고기를 좋아하시는 시어머님이시다.

그러나 시어머님의 입맛을 모두 맞추어 드릴 수 없는 생활이다.

시어머님의 불만을 알면서도 귀숙은 모른 척 하고 휴일 날이 되어서야 점심에 삼겹살을 준비한다.

모처럼 아들 종엽이만 빠진 모든 가족이 함께 있는 날이다.

새벽까지 공부를 한 종선이도 잠에서 깨어나 다시 책상에 앉는다.

“종선아!

오늘은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가라!“

“그럴게요.”

종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을 한다.

귀숙은 종선이를 먹이기 위해서 부지런히 준비한다.

아침도 안 먹고 다시 책상에 앉은 종선이다.

“엄마!

오늘 고기값은 제가 낼게요.“

종희가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어 엄마에게 내 준다.

“그래!

오늘 우리 종희가 사는 고기를 먹어보자.“

귀숙 또한 기분 좋게 딸의 돈을 받아 정육점으로 간다.

모처럼 가족들이 둘러앉아 삼겹살 파티를 한다.

귀숙은 그런 가족들을 보며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기분도 좋다.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는 것이 가슴이 아프고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흐

뭇해진다.

종은이는 별로 먹지 않고 고기를 굽고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한다.

“종은아!

이제 너도 어서 먹어라!“

귀숙은 종은이가 먹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며 말한다.

“엄마!

난 속이 거북해서 그런지 별로 생각이 없어요.“

”왜?

속이 왜 거북해?“

”모르겠어요.

요새 며칠째 속이 좋지 않아요.“

”가서 약이라도 사 와야 하지 않겠니?“

“아뇨!

괜찮을 것 같아요.

속이 편안해지면 그때 먹을게요.

어서 엄마나 맛있게 잡수세요.“

거의 음식이 끝나갈 무렵 종희는 엄마를 부른다.

“엄마!

할 말이 있습니다.“

”응?

뭔데?“

”많이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오빠가 제대를 해서 오는데 방이 없잖아요.“

”그래, 그래도 어떻게 하니?

한 가족이니 좁은 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요, 제가 따로 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무슨 말이야?

네가 따로 나간다는 말을 엄마는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동안 알아봤는데 미용실에 있는 친구와 함께 방을 얻어서 미용실 근처로 나갔으면 합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애가 집을 나가서 산다는 것이 말이 되니?

좁으면 좁은 대로 가족이 부대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귀숙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듯 일언지하에 잘라버린다.

“엄마!

생각해 보세요.

오빠하고 한 방에서 지낼 수도 없는 일이고 우리 넷이서 한 방도 쓸 수도 없고 또 집에서 미용실까

지 출 퇴근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교통비도 생각을 하면 그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방을 얻을 돈이 어디 있냐?“

임씨의 퉁명스러운 말이다.

“할머니!

친구하고 둘이서 반씩 내서 얻으면 됩니다.

그 정도는 모아 놓은 것이 있습니다.“

”너 혼자 편안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런 돈이 있으면 집안을 위해서 써야 하지 않겠냐?

어째 너는 너 혼자만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냐?“

임씨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귀숙의 귀에 거슬린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엄마도 반대를 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네가 고생을 해야만 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귀숙은 더 이상 시어머님의 입에서 싫은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결정을 한다.

아이들의 일에 일일이 나서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시는 시어머님의 성품이 귀숙으로서는

정말 싫은 것이다.

“네!

엄마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래서 기집 년들이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시집도 가기 전에 제 살 궁리만 하고 있으니 가르쳐 놓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기어이 임씨는 한 마디 하고 만다.

종희는 엄마의 허락을 얻고 나자 마음이 개운해진다.

늘 북적거리고 좁은 집에 들어오면 편안하게 몸을 누일 곳도 없다.

혜영이는 공부를 한다고 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있고 할머니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푸념은 늘 짜증이 나게 한다.

모든 일에 불만이 많으신 할머니의 잔소리와 넋두리는 이제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신경을 거스르게 한다.

인자하심과 푸근하신 할머니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할머니의 모습은 늘 짜증이 나게 하고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이제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종희였다.

종희는 준비를 해 놓았는지 이사 갈 준비를 한다.

이사라고 해야 옷가지와 소지품뿐이다.

귀숙은 그런 종희를 위해 부엌살림 몇 가지를 빼 내고 김치와 반찬을 준비하느라 더욱 바빠진다.

변변치 않은 살림살이라 별로 빼내어 줄 만한 그릇들이 없다.

귀숙은 없는 돈에 그릇들을 몇 가지 새로 구입을 하고 종희가 좋아하는 밑반찬들을 만든다.

임여인은 그런 귀숙의 모습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대충하면 될 일이지 뭘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해 주냐?”

그러나 귀숙은 그런 시어머님의 말을 못 들은 척 해 버린다.

일일이 참견하시고 불평을 하시는 시어머님을 상대를 하려면 머리가 아프고 심정이 상하게 된다.

그런 귀숙의 태도가 또 못 마땅스러운 임씨다.

“제 년이 저 좋아서 나가는데 그렇게 챙겨서 내 보낼 일이 뭐란 말이냐?”

“우리 종희가 집이 싫어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도 멀고 집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따로 나가는 아이를 너무 그렇게 서

운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부모로서 자식들을 편안하게 키워주지 못하는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그 정도로 정성을 다해서 키우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별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던?

대충 있다가 돈을 모아 시집이나 가면 그만인 것을 유난들을 떠니 참으로 가관이다.“

”......................“

더 이상 귀숙은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귀숙은 종희에게 줄 이부자리가 변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싸구려일망정 깨끗하고 좋은 색상

을 골라 이부자리를 사 들고 온다.

“누구 것이냐?”

임씨는 새로 사들고 온 이부자리를 펼쳐본다.

“종희에게 줄 것입니다.

변변한 것이 없으니 싸구려라도 새로 사서 내 보내야 하지요.“

”넌 참으로 이상하구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제대를 해서 집으로 돌아올 종엽이 생각은 하지 않니?

우리 종엽이 줄 이부자리를 새로 마련을 할 것이지 어찌 그깐 년을 그리도 끔찍스럽게 생각을 하느

냔 말이다.“

“어머님!

따로 나가는 아이를 이 정도도 해 주지 못한대서야 부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종엽이야 깨끗하게 손질을 해서 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디 아들보다 딸을 더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냐?

종엽이를 먼저 생각하고 챙겨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냐?“

”네!

아들도 딸들도 제게는 모두 소중한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종엽이는 늘 제가 보살피고 가꾸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부자리라도 깨끗하게 해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어머님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임씨는 새로 구입한 이부자리가 탐이 난다.

색상이 곱고 좋아 보이는 이부자리를 당신이 덮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다.심통

이 난 임씨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더욱 심하게 담배를 피워대는 시어머님으로 인해 집안은 늘 담배연기와 냄새로 인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하루에 담배 한 갑과 소주 한 병은 떨어지면 안 되는 임씨다.

남편과 함께 피우는 담배와 소주 값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다.

소소한 잔돈푼은 반찬값보다 더 들어가는 담배 값과 소주 값이다.

좁은 집안은 두 사람이 피워대는 담배로 인해 늘 머리가 아프다.

옷을 입고 나가도 자신의 옷에 늘 배여 있는 담배냄새로 인해 때로는 담배를 피우냐는 오해를 받기

도 한다.

그러나 귀숙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투덜거리며 불평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보니 아이들을 달래고 이해를 시킬 뿐

이다.

이제 이번 주말이면 종희가 따로 나가는 날이다.

귀숙은 마음이 자꾸만 허전해져 오며 불안하다.

결혼을 하지 않은 딸이 따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 귀숙으로서는 안심이 되지 않기도 하지만 무언가

를 자꾸만 잃어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귀숙은 속이 좋지 않다는 종은이의 말을 까맣게 잊는다.

약을 먹었는지 지금은 어떤 것인지 생각조차 하지를 못한다.

매일 매일 종희와 시어머님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머리가 아프다.

귀숙은 저녁 일을 하지 않고 일찍 집으로 온다.

하루 이틀만이라도 엄마의 손으로 정성을 다한 저녁이라도 해서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다.

“어찌 이리 일찍 들어온 것이냐?”

귀숙의 손에 반찬거리가 들려져 있음을 보고 임씨는 좋아한다.

“그냥 마음이 심란해서 저녁 일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뭐냐?”

“찬거리 조금 사왔습니다.”

임씨는 귀숙의 손에 들려진 봉투를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간 고등어와 두부와 어묵이 들어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간 고등어를 보자 입이 벌어진다.

임씨는 한 마리만을 내 놓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보관을 한다.

귀숙이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온다.

고등어가 한 마리만 내 놓은 것을 보고 냉장고를 열어 넣어 둔 고등어를 꺼내어 손질을 한다.

“그것을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냐?”

“네!

아이들도 먹어야 하지요.“

”애들이야 아무것이나 먹이면 어떠냐?

늙은 것이 입맛이 없어 두고 해 먹으려고 하는 것을 몽땅 다 할 참이냐?“

임씨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머님!

한창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가끔이라도 입맛에 맞는 것을 해 주어야 밥이라도 제대로 먹지요.“

“오냐!

늙은 것이야 더 살면 무엇을 하겠냐?

그저 어서 죽어야 하는데...........

내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서라도 어서 죽어야 하는데........“

그러나 귀숙은 그런 시어머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녁을 준비한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의 심통이라 생각을 하며 귀를 막아버린다.

점점 연세를 드시면서 더욱 심해지는 시어머님의 심통이다.

종은이가 어디를 다녀오는 길인지 급하게 부엌으로 들어온다.

“어? 엄마가 벌써 왔어요?”

“저녁을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니?

할머니께서 늘 걱정을 하고 계시다.“

종은이는 엄마의 일손을 돕는다.

“이것을 구워라!”

손질을 한 고등어를 내 민다.

“엄마!

이것을 다 해요?“

”그래, 그것이 뭐가 많으니?“

“그래도 할머니께서 아시면 큰일 나지 않아요?”

“....................”

귀숙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엄마!

정말 다 구워도 돼요?“

종은이 다시 묻는다.

“어서 다 구워!

다른 식구들은 입이 아니니?“

종은은 잠시 엄마를 바라보다 고등어를 불 위에 얹는다.

고등어 냄새가 퍼져 나가자 종은이는 구역질을 하면서 부엌에서 뛰어 나가고 있다.

귀숙은 그런 종은이를 급하게 뒤쫓아 나간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2장,

귀숙은 종은이가 구토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다.

그러고 보니 속이 좋지 않다고 했던 종은이의 말이 생각난 것이다.

약이라도 지어주지 못한 엄마의 무능함을 새삼 깨닫는다.

아직 아이들이 한 번도 큰 병 치례를 하지 않고 자라주는 것에만 고맙고 또 당연히 그러려니 하면

서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새삼 겁이 난다.

무슨 큰 병이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밀려온다.

“종은아!

왜 그러니? 응?“

등을 도닥여주면서 걱정스럽게 묻는다.

종은이는 한참을 그렇게 구토를 하고 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어디가 어떤 것이니?

언제부터 그런 것이니?“

귀숙은 종은이가 몹쓸 병이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엄마!”

종은이는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

“왜 그래?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이냐?“

귀숙은 종은이를 딸들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엄마!

미안해요.“

”아냐!

지금 그런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 어디가 아픈 것이냐?“

”나..........결혼할래!“

“뭐?

결혼?“

귀숙은 종은이의 느닷없는 말에 어이가 없다.

그러고 나선 가슴이 툭 내려 앉는다.

“너 지금..............

설마 아니지?

설마......너?“

“엄마, 나 아기 가졌어요.”

“......................”

귀숙은 멍하니 종은이를 바라볼 뿐이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에 없다.

뭔가 종은이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만 믿고 싶다.

“아기?

지금 아기라고 했어?“

”...................“

“너 혼자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애 어머니도 이미 허락을 하셨어!”

“뭐?

결혼을 허락해?

누가?

누가 결혼을 허락했다는 거야?

대체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엄마!

결혼 시켜줘요.“

귀숙은 어이없다는 듯 종은이를 바라볼 뿐이다.

아직 스물 한 살인 종은이다.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엄마!

우리 서로 좋아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아기도 반드시 낳아서 기르자고 했어요.“

”철썩!“

귀숙은 종은이의 뺨을 때린다.

“정신 차려!

결혼이라니?

그리고 아기라니?

이 무슨 가당치도 않은 헛소리를 하고 있어?“

“엄마!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허지만 결혼하고 싶어요.“

가슴에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자신의 딸이 결혼도 하지 전에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생각하는 귀숙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귀숙은 한참을 눈을 감는다.

그런 귀숙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먹고 사는 것이 뭔지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키우지 못했다는 자책이 가슴을 더욱 아프

게 하고 있다.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집안에 살림을 맡아서 한다는 것에만 안심을 하고 대견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 종은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

을 한다.

“종은아!

엄마하고 병원에 가자.“

“안 돼요!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우리 그냥 조용하게 마무리 하자.

지금 넌 아무것도 몰라서 아기를 낳겠다고 하는 거야!

아기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넌 아직 엄마가 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잖니?“

”엄마!

엄마도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우리들을 낳은 것이 아니잖아요?

엄마가 되면 나도 아기를 기를 수가 있어요.“

”안 돼!

그렇게 하게 내 버려둘 수 없다.어서 일어나!“

귀숙은 종은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종은이는 엄마의 손을 뿌리친다.

“싫어!

아기 낳을 거야!“

문을 열다 들어오려던 임씨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기라니?

대체 무슨 소리냐?“

“아, 어머님!”

귀숙은 시어머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온 몸에 맥이 풀린다.

“기어이 종은이 너 사고를 쳐도 단단히 친 모양이로구나!

내 네 년이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시간만 나면 집 밖을 나가는 년이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난 게야!“

“엄마!

결혼할래!“

귀숙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시어머님께서 아시기 전에 해결을 하려고 했던 일이 이제는 모두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이년아!

네 오래비도 네 언니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네 년이 결혼을 해?

무슨 염치로 결혼을 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냐?“

임씨는 펄펄 뛰면서 욕설을 퍼 붓는다.

귀숙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온 집안을 더욱 시끄럽게 하시며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

던 일인 것처럼 떠들고 계시는 것이다.

“어머님!

동네 다 듣습니다.

제발 조용히 말씀을 하세요.“

”이것이 지금 조용히 말을 할 상태냐?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벌써 사내놈이나 꿰차고 임신이라니?

대체 이것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던 고흥수 역시 아연실색을 한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이야?”

“아범아!

이 일을 어쩌면 좋더란 말이냐?

저년이 피도 마르지 않은 저년이 사내놈과 붙어서 임신을 했다는 구나!“

임씨는 아들을 보자 더욱 펄펄 날뛰면서 욕설을 퍼부어 댄다.

“어머니!

안방으로 건너가 계세요.“

”이게 어디 조용히 해결이 될 문제냐?“

“글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어머닌 잠자코 건너가 계세요.”

고흥수는 아내보다 어머니가 더 펄펄 날 뛰고 계신 것이 마음이 상한다.

어머니의 기세에 눌려 아내는 아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고흥수는 임씨는 안

방으로 보낸다.

귀숙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자, 우리 얘기를 해 보자.

지금 아빠가 들은 말이 사실이냐?“

고흥수는 종은이를 보면서 묻는다.

“아빠!

잘못했습니다.

허지만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여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아요.

무섭고 두려워요.“

“당신이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요.

우선 종은이의 말을 듣고 나서 생각을 합시다.“

고흥수는 울고 있는 귀숙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누군지 말해 줄 수 있니?”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부모 형제는 있고?”

“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하고 누나 네 명과 형님 두 분이 계세요.“

“아이고!

그런 곳에서 네가 살아 낼 것 같으냐?“

귀숙은 기겁을 한다.

“동창생?

그럼 동갑나기냐?

그리고 학교는 다니고 있고?“

“아니요!

그 애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도 하고 누나 가게에서 도와주기도 하고요.“

“그래, 그 집에서는 알고 계시는 거냐?”

“네!

어머니를 만났고 결혼을 시켜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빠와 엄마만 허락을 해 주시면 됩니다.“

“음!”

고흥수 역시 할 말을 잊는다.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둘째 딸이 엄청난 사고를 친 것이다.

이제 야단을 치며 매를 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깊은 생각 속에 빠져든다.

앞이 보이지 않은 캄캄한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여보!

어떻게 해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다는 말인가요?“

귀숙은 같은 말을 묻고 또 묻는다.

“이러지 말고 차근차근 생각을 합시다.

이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소란스럽게 굴어야 우리만 망신당하는 일이

니 조용히 생각하면서 해결방안을 찾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고흥수는 아내를 데리고 딸들의 방에서 나간다.

“내 저년이 큰일을 낼 줄 알았다.”

“어머니!

이제 그만 하십시오.

그런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 어쩔 것이냐?

하루하루 배가 불러 올 것인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하겠니?“

”그러니까 어머니라도 가만히 계셔주셨으면 합니다.

어머니가 중간에서 자꾸 시끄럽게 하시면 저희가 더 힘들어 집니다.“

임씨는 아들의 말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채라도 휘어잡고 욕설이라도 마음 놓고 하고 싶지만 아들이 참견하지 말라는

말에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귀숙은 다음날 일을 하러 나가지 못한다.

몸과 마음이 충격으로 인해 움직일 수조차 없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귀숙이었으나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 온다.

모두 나가고 나서 귀숙은 종은이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종은이 역시 심한 입덧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다.

“엄마하고 얘기 좀 하자.”

종은이는 일어나 앉는다.

“종은아!

너 아직 결혼을 할 때가 되지 않았어!

그리고 그렇게 시누들이 많은 집으로 가서 어떻게 살아 낼 것이냐?

이제 스물 한 살짜리 남자애가 어디에서 무슨 돈을 벌어서 아이를 키우고 생활을 할 수 있겠니?

응?“

”엄마!

그 애는 지금도 돈을 벌고 있어!

그리고 누나들이 식당도 하고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해서라도 같이 돈을 벌면서 살아 갈

수 있잖아?“

”아직 어린 네가 그런 고생을 하고 살고 있는 것을 엄마가 가슴이 아파서 어떻게 보고 살아가니?

엄마 말을 듣고 아기를 가서 없애고 모든 것을 잊자. 응?“

”안 돼요.

어떤 일이 있어도 아기를 낳아서 키울 겁니다.“

”너 정말 엄마가 죽는 것을 볼래?

엄마가 너를 그렇게 보내고 나면 어떻게 살 것 같으니?

아무리 힘들고 고생을 해도 너희들 잘 사는 것을 보려고 이렇게 모든 것을 참으며 살고 있는데 엄

마를 이렇게 힘들게 할 것이냐?“

“엄마!

잘 살게요.

더욱 노력해서 잘 살게요.“

이미 종은이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귀숙은 그대로 참담한 심정이 되어간다.

아무리 달래고 어르고 야단을 쳐도 종은이의 결심을 꺾을 수가 없다.

“엄마!

기왕에 이렇게 된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종은이가 바라는 대로 결혼식을 시켜주세요.“

종희는 이미 종은이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말을 한다.

“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었는지..........“

귀숙은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새카맣게 속이 타 들어간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3장,

고흥수는 며칠 동안 아무런 말도 없다.

귀숙은 그런 남편의 처사가 불만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여보!

이렇게 두 손을 놓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해요?

그대로 나 몰라라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우선 생각을 해 봅시다.

모든 일이 감정적으로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잖소?“

고흥수는 아내의 성화에도 며칠을 잠자코 아무런 말도 없다.

귀숙은 혼자 속이 타 들어간다.

며칠을 아내가 속을 끓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말도 없던 고흥수가 종은

이를 부른다.

“가서 데리고 오너라!”

“여보!

데리고 오라니요?

결혼을 승낙하시겠다는 말인가요?

안 됩니다.

절대로 이 결혼을 승낙시킬 수 없어요.“

그러나 종은이는 얼굴이 환해진다.

“내일 오라고 하겠습니다.”

“여보!

안 돼요.

절대로.........절대로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소?

당신이 종은이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소?

이대로 아기를 낳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니 본인만 성실하다면 결혼을 시켜 주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

이오.”

“아!”

귀숙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그대로 쓰러진다.

귀숙으로서는 아직 어린아이로 보이는 둘째 딸이다.

세상을 모르고 철부지 어린아이로 보이는 딸을 시집을 보낸다는 것이 귀숙으로서는 답답하고 앞이

캄캄해져 온다.

“어멈아!

아범 말대로 결혼을 시켜버리자.

제 년이 좋다고 날뛰는데 무슨 수로 말릴 것이냐?

더구나 뱃속에 새끼까지 넣은 년을 무슨 수로 말릴 것이냐?“

임씨는 한 수 더 거든다.

“어머님!

제발 아이들에게 함부로 말씀을 하지 마세요.

어머님께서 그렇게 아이들을 구박하시고 싫어하시니 아이들이 모두 집을 나가려고 하는 것이라고요.“

”왜 모든 것을 나한테 덮어씌우고 있냐?

내가 그년들을 내 쫓기라도 한다는 말이더냐?“

임씨의 음성은 높아진다.

다음날 종은이는 이성민과 함께 집으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이성민은 고흥수와 귀숙에게 큰 절로 인사를 드린다.

고흥수는 이성민을 자세히 본다.

큰 키에 인물은 어디를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편이다.

“우리 종은이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고?”

“네!

학교 친구입니다.“

”대학은 왜 안 갔나?“

”안 간 것이 아니라 형편이 따르지 못해서 못 갔습니다.“

”그래?

형제는 몇이나 되고?“

”누님 네 명과 위로 형님이 두 분이 계십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모두들 대학을 가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시고 계십니다.“

”그런가?

모두들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계신가?“

”네!

누님들은 모두 장사를 하고 계십니다.

식당과 야채가게 그리고 형님들 또한 작은 공장을 하고 계십니다.“

“그럼 자네도 그런 형제들을 보고 자라서 장사로 나설 생각인가?”

“네!

지금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모아놓은 돈이 없어 누님이나 형님의 일을 돕고 있지만 저도 장사를 하

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스물 한 살인 자네가 가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나?“

“결혼만 시켜주신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제 가족은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고흥수는 그런 이성민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생각을 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하는 이성민의 모습이 당당하고 남자답다는 생각이 든다.

“좋다.

그런 각오만 되어 있다면 기꺼이 허락을 하마!“

귀숙은 그런 남편이 내심 불만이었지만 그렇다고 내 놓고 반대만을 고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알고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양가 상견례가 이루어진다.

어차피 날짜를 끌고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 바로 양가의 상견례 날짜가 정해지고 이성민의 집

근처에 있는 중국집으로 장소가 정해진다.

이성민의 모친인 민유자가 멀미를 하기 때문에 차를 타고 나갈 수 없다는 말에 따라 그들의 동네에

있는 장소를 선택한 것이다.

민유자는 기골이 장대하고 꺽진 성품이다.

남편과 일찍 사별을 하고 칠남매를 혼자 손으로 모두 키워낸 억척스러운 사람으로 인상조차 억세

게 생긴 모습이다.

어느 정도 자식들이 크면 모두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는 타입이다.

다른 어머니들처럼 악착스럽게 대학을 보낸다는 생각보다는 먹고 사는 일에 무슨 일이든 하라고

종용을 하는 사람이다.

이제 환갑 진갑을 다 넘긴 민유자는 딸의 살림을 맡아서 해 주며 아직도 자식들이 모두 당신의 뜻

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성민의 큰 형부부와 누나 두 사람의 부부가 함께 나오고 고흥수 부부와 임씨가 함께 한 자리다.

귀숙은 민유자의 첫 인상에 더욱 가슴이 답답하고 앞이 캄캄해진다.

서로 수인사들을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민유자는 담배를 피워 문다.

“나는 서방이 없이는 살아도 담배 없이는 못사는 사람입니다.

칠남매를 키우면서 모든 답답함과 힘드는 일들을 이 담배로 인해 이겨내고 견디어 낸 사람입니다.“

”네!

그 심정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전하고 쓸쓸할 때 이 담배처럼 좋은 것은 없지요.“

임씨는 당신도 담배를 꺼내며 함께 피운다.

“이왕에 일이 이지경이 되었으니 날짜를 끌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빠른 날짜를 잡아 결혼식만 올리면 저희들끼리 알아서 살아갈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결혼식인데 준비를 해야 할 것들도 있고.........“

귀숙이 조심스럽게 말을 하자 민유자는 싹뚝 말을 잘라버린다.

“준비고 뭐고 뭐가 있겠습니까?

없는 집에서 빚을 내서 혼사를 치루려는 생각을 하지 맙시다.

예단이고 예물이고 다 필요 없는 것이지요.

식장에서 결혼식만 올려주는 것으로 합시다.

두 아이들 저희들 말대로 커플링인가 뭔가 하나씩 해 주고 결혼식만 올려주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

니까?“

”그래도 방도 마련해야 하고 가구들도 있어야 하지요.“

“방이야 우리 성민이가 그동안 벌어 놓은 것이 있으니 단칸 월세 방을 얻고 가구가 뭐가 필요합니

까?

둘이 덮고 잘 이부자리하고 그릇 두 어 개만 있으면 되는 것을요.

우리 자식들 모두 그렇게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저희들이 서로 악착스럽게 벌어서 집도 마련하고

없는 것 없이 다 해놓고 살아가고 있지요.

물론 성민이 위로 아직 셋은 전셋집에서 살고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내 집들을 마련하며 살 것

입니다.

성민이도 그런 제 누나들과 형들을 봐서 잘 해 나갈 것입니다.“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민유자의 손에서는 담배가 떨어지지 않는다.

끝까지 다 피우고 나서 꽁초를 끄고 다시 새 담배를 연신 불을 붙이며 피워대면서 말을 하는 민유

자다.

좁은 중국집 방안은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귀숙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민유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민유자는 자신의 집 근처에 단칸방을 얻는다.

그리고 동네 예식장을 예약하고 민유자의 말대로 성민과 종은은 십팔 케이로 커플링을 해서 나누

어 낀다.

딸의 결혼식이라고 준비할 것도 없다.

귀숙은 절로 나오는 한숨을 수없이 내 쉰다.

이렇게 결혼을 시키려고 했던 딸자식이 아니다.

그래도 남들처럼 흉내라도 내면서 좋은 마음으로 결혼을 시키고 싶은 엄마의 마음인 것이다.

단칸 월세 방이 작아서 장롱이 들어갈 자리도 없다.

간신히 옷을 넣어 입을 서랍장과 화장대만 준비를 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면서 귀숙의 한숨은 꺼

질 줄을 모른다.

“너 이런 결혼이 하고 싶니?”

“엄마!

정말 잘 살게요.

지금 시작은 보잘 것 없어도 누구보다 잘 하고 살게요.“

종은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을 한다.

“어미야!

너무 속상해 하지 말거라!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도 팔자가 사나우면 못사는 법이고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가서도 제 팔자

가 좋으면 옛이야기를 하면서 잘 살 것이다.“

”그래도 그 시어머니가 너무 억세 보여서 마음이 불안합니다.

마음이 여린 종은이가 과연 버티어 낼 수 있을지 정말 불안합니다.“

”종은이는 잘 해 낼 것이다.

살림도 할 줄 알겠다, 뭐가 걱정이냐?“

임씨는 며느리의 마음을 이해한다.

세상 어떤 어미가 딸자식을 그렇게 결혼을 시키고 싶어 하겠는가?

과부 홀아비 만나는 것도 이보다는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임씨다.

귀숙은 걱정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딸의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시어머님도 남편도 아이들도 변변한 옷이 없는 것이다.

부모와 시어머님은 그래도 한복을 입어야 하는데 한복이 있을 리가 없다.

남편 또한 작업복에 잠바뿐이다.

귀숙은 한복 값을 알아본다.

아무리 싼 것을 해 입는다 해도 이삼 십 만원이다.

시어머님과 둘이 해 입는다면 오십 만원은 있어야 하고 남편의 양복 또한 만만치 않은 가격인 것이

다.

귀숙은 큰 한숨을 내 쉰다.

생각지도 않은 딸의 결혼이라 준비된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내 양복이야 세탁소에서 빌려 입으면 되지만 당신과 어머닌 한 벌씩 해 입지 그래!”

속없는 남편의 말에 귀숙은 그저 한숨을 내 쉰다.

귀숙은 대여해준다는 한복을 알아본다.

그것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그날 하루 잠시 빌려 입는 한복 값이 생각보다 비싸다는 생각을 하면서 힘없이 가게를 나선다.

그러다 얼마 전에 딸을 결혼식 시킨 이웃의 미나 엄마를 떠올린다.

평소에 친하게 지냈기에 그 결혼식에도 다녀온 귀숙이다.

나이도 비슷하고 체격도 비슷하고 같은 일을 하러 다니는 미나 엄마하고는 각별하게 지내고 있는

처지였다.

귀숙은 저녁을 먹고 미나네 집으로 간다.

“어서 와!

이 시간에 우리 집에 다 올 생각을 하니 무슨 일이 있어?“

”미나 엄마!

나 부탁을 할 것이 있어서 왔어!“

”뭔데?

종엽이 엄마가 나한테 부탁할 것도 다 있어?“

”저.......미안하지만 지난번 결혼식에 입었던 한복 좀 빌릴 수 있을까?“

”한복을 갑자기 왜?“

”실은 우리 종은이를 결혼시켜야 하는데..........“

“종은이라니?

종희가 아니고?“

”그랬다면 한복을 빌리러 오지도 않을 것이야!“

귀숙은 종은이가 사고를 친 것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그랬구나!

그래도 그쪽에서 서둘러 결혼식을 치루자고 하니 다행이지.

나 몰라라 하면 어쩌겠어?“

말을 하면서 미나 엄마는 자신의 한복을 꺼낸다.

“입어봐!”

“입어보나 마나 맞지 뭐!”

“그래도 어디 입어나 봐!

그리고 비싼 것은 아니니 조심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편안하게 가져다 입어!

우리 주제에 본견으로 비싼 것을 해 입을 수 있어?“

귀숙은 대충 입어본다.

참으로 잘 맞는다.

“됐다.

마침 잘 됐네!

안 그래도 한 번 입고 입을 때가 없어 아까워하던 것이니 이렇게 종엽이 엄마라도 입게 되었으니

더 좋은 일이다.“

귀숙은 시어머님의 한복만 해 드린다.

대여를 해 드린다고 해도 노인이 음식을 드시다 흘리시기라도 하면 세탁비를 별도로 주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보태어 해 드리면 아이들 혼인 때 두고두고 입으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귀숙은 급하게 거행되는 결혼식을 가까운 집안에만 알린다.

자랑 삼아 떠들며 보낼 수도 없는 결혼식이다.

조그만 결혼식장에서 어중이떠중이 모여들어 복잡하기도 할뿐더러 종은이가 임신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보내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도 않다.

간소하게 치루어진 결혼식이다.

예식장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하객들을 접대한다.

갈비탕에 몇 가지 나오는 간단한 음식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종은이가 행복한 모습으로 아빠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들어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종은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가까운 곳으로 하룻밤을 보낼 예정이다.

남들처럼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룻밤을 보내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여행을 가서 돈을 낭비할 수 없다는 신랑의 말이다.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손님을 접대하고 집으로 돌아온 귀숙은 온 몸에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느

낌이다.

종엽이도 제대를 해서 그런 엄마와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을 치우기에 바쁘다.

이제 두 딸이 떠난 집은 그런대로 넓다는 생각을 한다.

집은 다시 조용해지면서 평온을 되찾아 간다.

종엽이도 한 학기를 마치고 중소기업에 취업이 된다.

귀숙은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전처럼 일에 열중하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이제 종은이가 출산 달이 다가 온 것도 잊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잊는

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4장,

결혼을 시키고 나면 부모로서 그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시어머님의 생신과 아이의 출산준비를 위해 모른 척 할 수만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귀숙은

돈을 준다.

딸이 결혼을 하고 첫 번째 맞이하는 시어머님의 생신에 친정에서 모른 척 한다면 딸이 얼마나 큰

수모를 당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없는 돈에 이십 만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해주고 나니 또 다시 아

이의 출산용품이 마음에 걸리는 귀숙이다.

아무것도 해 준 것도 없이 맨 몸으로 보내다 시피 한 결혼이다.

귀숙은 또 다시 삼십 만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해서 종은에게 보냈다.

허리가 휘어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없는 살림에 그런 목돈을 빼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자식을 위하는 일이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종은이가 첫아들을 출산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귀숙은 시간을 내어 이미 퇴원을 하고 집으로 가 있다는 딸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미역과 소고기

그리고 종은이의 시어머님을 위해 담배 한 보루를 준비해서 휴일 날 찾아간다.

아기 출산 첫 이래가 되는 날이다.

함께 가기를 싫어하는 남편을 두고 혼자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삼십 여분이면 도착을 할 수 있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다.

자신이 간다는 연락을 받아서인지 사위인 이성민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

다.

이성민은 귀숙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보자 반색을 한다.

“어머니!

쉬시는 날 오시게 해서 죄송스럽습니다.“

”쉬는 날이 아니면 시간을 낼 수 있어야지.

자네가 이렇게 나와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저희들 집을 모르시니 당연히 나와서 모시고 들어가야지요.“

이성민은 귀숙의 손에 들려진 것들을 받아서 들고 앞장 서 걷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올라가서야 딸의 집에 도착을 한다.

마침 사부인인 민유자가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하다 귀숙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 나와서 맞는다.

“사부인!

어서 오십시오.“

”죄송스럽습니다.

출산하는데 힘이 되어드리지 못하고 사부인께만 맡겨놓고 이제야 얼굴을 내 밀어 정말 죄송스럽

습니다.“

”직장을 다니시니 그럴 수밖에요.

어서 들어가십시다.“

귀숙은 안으로 들어간다.

참으로 작고 좁은 방이다.

“엄마!”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정은이 눈물을 보이며 엄마를 반긴다.

“수고했구나!

엄마가 와 보지 못해서 미안하다.“

”엄마!

이제 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해서 우리들을 낳으셨는지 알겠어요.

너무 힘들고 죽는 것만 같았어요.“

”그래!

엄마란 그렇게 고통스럽게 자식을 낳는 것이다.

이제 아기를 잘 키우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

”네!“

귀숙은 방안이 답답해진다.

제대로 갖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안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사이 민유자가 커피를 준비해서 가지고 들어온다.

“사부인!

대접해 드릴 것이라고는 커피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부인께서 고생을 하시는 것을 보니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고생이랄 것이 뭐가 있겠어요?

오늘이 한이레가 되니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 모든 것을 해야지요.“

민유자는 담배를 피워 문다.

귀숙은 기겁을 하지만 무엇이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엄마!

담배는 나가서 피우시라고 했잖아요?

아기에게 얼마나 나쁜지 아세요?“

사위가 질색을 하며 말을 한다.

“이놈아!

너희들 그리고 내 손자 손녀들 모두 이렇게 키웠어도 아무런 일도 없다.

내가 무엇 때문에 누구 눈치 보느라 담배를 나가서 피워야 하냐?“

민유자는 씨도 먹히지 않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듯 연기를 내 뿜는다.

“엄마!

아직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와 산모를 생각해서 나가서 피우고 들어와요.“

이성민이 다시 음성을 조금 높여 말을 한다.

“네 놈은 참으로 유별난 놈이다.

네 형들이나 누나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웬 유별을 그리도 떨고 있는지 원!“

민유자는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간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우리 엄마는 담배가 없으면 못사시는 분이니..........“

“알고 있네!

허지만 아기와 산모가 있는 좁을 방에서는 안 피우셨으면 좋겠네!“

“네!

내일부터는 오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까지만 봐 주신다고 했거든요.

형수님들은 친정에서 보내고 오셨지만 누님들은 엄마가 봐주셨는데 꼭 일주일씩만 봐주시고 누님

들이 일어나 모든 것을 다 했지요.“

”일주일 만에 어떻게 집안일을 할 수 있을지..........“

귀숙은 한숨을 내 쉰다.

그렇다고 모든 시설이 다 되어 있는 집도 아니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고생스러운 집이다.

귀숙은 그렇다고 종은이와 아기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귀숙은 젖을 배불리 먹고 잠이 들어 있는 아기를 내려다본다.

처음으로 본 손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분이 묘해진다.

이젠 어디를 가든 할머니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감이 나질 않는다.

“종은아!

밥 먹어!“

이성민은 언제 나가서 준비를 했는지 산모의 밥상을 가지고 들어온다.

찬이라고 해야 미역국과 밥만 달랑 있을 뿐이다.

“어서 밥을 먹어라!

산모가 밥을 잘 먹어야 젖도 잘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만 가 볼게!“

귀숙은 몸을 일으킨다.

“어머니!

진지라도 드시고 가십시오.“

이성민이 놀라며 만류를 한다.

“아닐세!

집에 할 일도 태산같이 밀렸고 할머님과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네!

시간이 나면 다시 들릴 테니 나오지 말고 어서 같이 식사를 하시게!“

”엄마!

그렇다고 이렇게 그냥 가시려고?“

“그래, 어서 밥 먹고 푹 쉬거라!”

귀숙은 좁은 방안은 벗어나 밖으로 나온다.

이성민이 따라 나오는 것을 억지로 들여보내고 딸의 집을 벗어난다.

아무리 급하게 올린 결혼식이라 하더라도 막상 딸의 집을 와서 보니 가슴이 아프고 서글퍼지는 귀

숙이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더라도 이렇게 해서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터덜거리며 버

스정류장으로 걸어 나간다.

신생아와 산모가 있는 좁은 방안에서 아무렇지도 담배를 피우는 사돈의 모습이 참으로 어이가 없

고 그런 속에서 생활을 하는 종은이의 모습이 안쓰럽고 불쌍해져 오면서 가슴이 아프다.

귀숙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집으로 돌아온 귀숙은 가슴이 멍멍해지면서 기분이 우울해진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소?”

“일은 무슨 일이 있어요?

좁아터진 방이 너무 답답해 보이고 우리 종은이가 불쌍해서 그래요.”

“이제 너무 신경 쓰지 마오.

그것도 제 팔자려니 하고 마음 편안하게 가집시다.“

고흥수는 귀숙이 마음 아파하는 것이 안쓰럽다.

“에효, 시집을 보내고 나면 할 일이 모두 끝난 것인 줄 알았는데.......”

“그러니 어쩌겠소?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만 마음을 써요.”

“어떻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이제 조금 있으면 아이 백일에 돌에...........”

“없는 집구석에서 그런 것을 어찌 일일이 다 해 준다는 말이냐?”

임씨가 한 마디 한다.

“어머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은이가 무시당하고 얕잡아 보이니 하는 말이지요.“

고흥수가 귀숙을 대신해서 말을 한다.

“얕잡아 보든 말든 무시를 당하거나 말거나 지년이 알아서 하겠지.

힘들고 뼈 빠지게 일을 해서 그 년에게 다 쏟아 부을 작정이냐?“

”어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머닌 지금까지 사위 둘에게 매년 생일이면 빠지지 않고 선물을 사 보내지 못해서 안달을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고흥수는 감정이 격해진다.

“이 일에 네 동생들 말이 왜 나오냐?”

“어머니가 딸들을 생각해서 하시는 것이나 이 사람의 마음이나 똑같은 것이 아니고 뭐냐고요?

왜 어머닌 우리 아이들을 그리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인지 정말 너무 화가 납니다.

아직도 말끝마다 이년 저년 소리나 하시면서 왜 그러시냐고요?“

”여보!

새삼스럽게 왜 이래요?“

귀숙은 남편을 말린다.

“그래!

이젠 너 마저 이 애미가 보기 싫다는 말이로구나!

아이고, 내가 어서 죽어야지!“

임씨의 넋두리가 시작이 된다.

귀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더 이상 시어머님의 그런 넋두리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귀숙은 미나네 집으로 향한다.

그래도 답답한 속내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미나 엄마다.

마침 미나 엄마는 집에서 쉬고 있다.

“어서 와!”

“뭐하고 있었어?”

“하긴 뭘 해?

집안 일 대충 끝내놓고 그냥 쉬고 있었지.”

미나 엄마는 주방으로 들어가 두 잔의 차를 준비해 온다.

“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어?”

“그렇게 보여?”

“그래, 표정이 심란스러워 보여!”

“늘 시어머님 때문이지 뭐!

노인이 왜 그렇게 날이 갈수록 더 극성스러워지고 손녀딸들을 곱게 보시지 않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그 집 시어머닌 정말 그 정도가 심하시더라!

밖에 나오셔서 말씀을 하셔도 손녀딸들에 대해서 좋게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어!

정말 당신도 여자이면서 왜 그러시는지 나도 이해를 하기 힘들더라!“

”우리 술이라도 마시자.“

”술?

종엽이 엄마가 술을 마신다고?“

미나 엄마는 놀라는 눈이 되어 바라본다.

“왜?

나라고 못 마시라는 법이 있어?

마시지 않으려고 하니 안 마시는 것이지 못 마시는 것은 아니야!“

”그래, 잠시만 기다려!“

미나 엄마는 소주와 안주를 준비한다.

마침 끓여 놓았던 매운탕과 밑반찬 두어 가지를 꺼내놓는다.

이럴 때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술을 마시며 속을 털어 버리는 것이 병이 생기지 않고 제일

좋은 약이다.”

두 여인은 서로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평소의 귀숙은 술잔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마시는 것만 보아도 질려버리는 귀숙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녀들은 서너 순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잔을 주고받는다.

“미나 엄마!

나 정말 힘들어 죽겠다.

우리 시어머님이 일일이 참견을 하시는 것을 더 이상 참고 있으려니 가슴에 화가 치밀어 오르니

어쩌면 좋으냐?“

”참지 말고 까짓것 그냥 해 붙여!“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

남편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러다 내 가슴에 병이 들어버릴 것

만 같다.

당신은 지금까지 사위들 생일을 꼭 챙겨주시면서 우리 종은이는 무시당하든지 얕잡아 보든지 그

냥 두라고 하신다.“

”정말 참으로 괴상스러운 노인네다.

종엽이 아버지는 뭐라고 해?“

”지금 둘이서 한참 말다툼을 하고 있을 거야!

그 꼴이 보기 싫어서 나와 버렸다.“

“잘 했어!

종엽이 아버지도 이제는 종엽이 할머니의 그런 생각을 못하시게 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함부로 아이들을 취급하지 못하시게 해야 된다고.“

”그렇지?

정말 우리 어머님 너무 하신 것이 맞지?“

귀숙은 술이 취하는 것을 느끼지만 또 잔을 들어 술을 마신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삶이 너무 힘들고 어디론가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자로서 즐거움도 행복도 모두 잊고 오직 엄마로서 며느리로서만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을 도피

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자, 마시자!

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때까지 마셔보자!“

미나 엄마는 귀숙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다시 술잔을 권한다.

저녁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귀숙은 처음으로 술이 취하도록 마신다.

“아하!

술은 이래서 마시는 모양이구나?

나 지금 우리 시어머님도 무섭지 않고 식구들 걱정도 되지 않는다.“

”후후후.............

술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야!

사람 간덩이를 부어오르게 하는 것이지.“

글: 일향 이봉우

 

 

 

 

제 15장,

그 시간 고흥수는 자신의 어머니를 상대로 힘겨운 말씨름을 한다.

“어머니!

제발 좀 그 사람 마음을 힘들게 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어쩐다고 오늘 네가 그렇게 말이 많냐?“

”그 사람이 아니면 우리가 지금 이 정도라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어머닌 지금까지 영이와 영숙이를 위해서 해마다 빠지지 않고 문서방과 김서방 생일 선물이라도

챙겨서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

그 잘난 것을 보낸다고 지금 생색을 내고 싶은 것이냐?“

”어머니!

어머니가 딸들이 귀하고 소중하면 그 사람 역시 딸들이 귀하고 소중합니다.

왜 어머니 딸들만 소중하고 제 딸들은 아무렇게나 어머니가 학대를 하고 계신지 정말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학대?

내가 언제 네 딸년들을 학대를 했냐?

매를 때리기라도 했냐?

아니면 굶기기라도 했냐?

너 그러고 보니 이 어미가 그만 죽었으면 하는 모양이다만 그러지 말아라!

그것도 불효를 저지르는 일이라는 것을 왜 몰라?“

”네!

어차피 저는 효도를 해 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어머니만 잠자코 계셔준다면 집안이 시끄러울 일이 없습니다.

그 사람 힘들게 일을 하고 와서 늘 어머니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면 제 복장이 얼마

나 터지는 줄 아십니까?“

”그래 이놈아!

내가 어서 죽어야지.

어서 죽어 이 꼴 저 꼴을 보지 말아야지.

내가 죽고 나면 계집에 빠져서 제 누이동생들을 찾아보지도 않은 놈이다.

아이구, 영감!

이제 그만 나를 데려가시오.“

임씨는 대성통곡을 한다.

고흥수는 어머니를 그대로 두고 밖으로 나온다.

어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은 어머니의 완고함에 질려버리는 고흥수다.

고흥수는 아내를 찾아 보지만 어디에서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 남의 집을 잘 가지 않는 아내의 성품을 아는 고흥수는 마음을 달래려고 시장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시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임씨는 아들이 나가자 통곡을 멈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과 며느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이제는 저녁을 할 생각도 안하고 들어오지 않고 있어?

어디 너희들이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내가 벌써 너희들에게 꺾일 것 같으냐?

어림도 없는 소리다.“

임씨는 벌써 수없이 담배를 피워문다.

방안은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혜영은 집안의 분위기를 알고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가 저녁을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주방으로 들어가 쌀을 씻는다.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집은 이제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

“혜영아, 뭐하고 있냐?”

임씨는 혜영이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이고, 어린 것이 이무슨 고생이냐?

어서 들어가 공부나 해!

할미가 밥을 할 것이니 넌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어여 들어가!“

“할머니!

아빠와 엄마는 어디 가셨어요?“

”낸들 아냐?

이 늙은 것을 고생을 시키기로 작심을 했나 보다.“

임씨는 시간을 보면서 저녁을 한다.

하나뿐인 손자 종엽이가 돌아올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종엽이의 저녁은 준비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흥수는 시장을 돌아보지만 아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집 사람 안 들어 왔어요?”

“그래, 아마 늙은 시애미 골탕을 먹이려고 작심을 한 게지.”

저녁준비가 거의 다 되어 갔을 때 종엽이 귀가를 한다.

“엄마는요?”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엄마를 찾는 종엽이다.

“네 눈에는 엄마만 사람으로 보이더냐?

이 할미는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애미만 찾고 있으니 원!”

임씨는 서운함을 느낀다.

그러나 종엽이는 할머니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버지!

엄마는 어디 가셨어요?“

”모르겠다.

화가 나서 집을 나갔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엄마가 왜 화가 나셨어요?

또 할머니께서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렸어요?“

“.......................”

“참, 우리 집은 할머니 때문에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어요.

다른 집 할머니들을 매우 인자하시고 정이 많으신데 우리 할머닌 참으로 별나신 분이시긴 합니

다.“

”그러니 어쩌냐?

지금까지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살아온 네 엄마가 고마울 따름이다.“

고흥수는 그런 아내가 더없이 고맙고 미안스럽다.

부부생활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내는 그저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살아가면서 모든 불만을

토해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도 참기 힘들어 고생을 하고 있지만 아내도 사람이고 여자이다 보면 자신처럼 힘들고

괴로울 때가 왜 없겠는가?그러나 아내는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해 오지 않는다.

저녁을 대충 먹고 나서 고흥수는 다시 대문 밖으로 나가 아내를 기다린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다.

어디를 가서 이토록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아니다.

이젠 고흥수는 불안해지는 마음이 되어 대문 밖에서 서성인다.

얼마를 그렇게 대문 밖에서 서성이던 고흥수는 귀숙이 오는 것을 보면서 반색을 한다.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오?”

“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귀숙은 술이 취한 눈으로 남편을 바라본다.

“술을 마셨소?”

“네!

미나 엄마하고 술을 마셨어요.

내가 술을 마시면 안 되나요?“

”아니요!

잘 했소!

어서 들어갑시다.“

고흥수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를 한다.

귀숙이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것을 보자 임씨는 역정을 낸다.

“자알 한다.

살림하는 여편네가 식구들 저녁을 줄 생각도 하지 않고 술이나 퍼마시고 다니고 취해서 들어오다

니?“

”어머니!

처음으로 술을 마신 사람입니다.

편안하게 잠이 들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마십시오.“

”오냐!

이젠 이 늙은이가 빨리 없어져야하겠다.

이젠 보자보자 하니 며느리 술주정까지 받아야 할까보다.“

고흥수는 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든 대꾸도 하지 않고 이부자리를 깔고 귀숙을 눕게 한다.

귀숙은 술이 취해서 그대로 잠이 든다.

“애비야!

대체 애미가 왜 이렇게 억세지는 것이냐?

벌써 이 늙은이를 꺾으려 드니 어쩌란 말이냐?“

”어머니!

왜 이 사람이 어머니를 꺾으려든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주신다면 이 사람 마음이 이렇게 상하지는 않을

것이 아닙니까?

이 사람이 언제 자신에게 잘 해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

“이젠 제발 마음을 돌려주세요.

어머니가 어머니 자식들 소중하신 것만큼 이 사람 역시 자식들이 소중하고 귀하지 않겠습니까?

없는 살림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일을 하면서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가

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이 사람이 병이 들거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알았다!

더 이상 내 뭐라고 하지 않으마!“

“네, 한 순간이라도 이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저는 견딜 수 없습니다.

저를 생각해서라도 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임씨는 아들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서글퍼진다.

이제는 대 놓고 제 안식구의 편을 들고 역성을 하는 아들이 야속한 것이다.

다음날 새벽 귀숙은 제 시간이 되어 눈을 뜬다.

자신이 술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온 것과 남편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귀숙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조금만 마신다고 한 것이 생전 처음으로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온 자신이 참으로 간덩이가 부

은 것이다.

“벌써 일어났소?”

귀숙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고흥수가 따라서 일어난다.

“준비하고 출근을 해야지요.”

“속이 아프지 않소?”

“괜찮아요.”

귀숙은 시어머님이 깨시기 전에 방에서 나가 주방으로 간다.

어제 저녁을 어떻게 가족들이 먹었는지 모르고 술을 마신 것이다.

대충 아침 준비를 해 놓고 출근을 서두른다.

남편보다 앞서 출근을 하는 귀숙이다.

생전 처음으로 술을 마신 귀숙은 속이 아파 하루 종일 고생을 한다.

속이 쓰리고 자꾸만 메슥거리며 속이 좋지를 않다.

“어휴!

술을 마시고 나면 이렇게 힘드는 것을 왜들 그리 마실까?“

귀숙은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님!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시어머님께 사죄를 드린다.

“또 다시 그러지 마라!

이 늙은 것이 네가 쉬는 날에도 온 가족을 위해서 몸을 움직여 밥을 해야만 하는 것이냐?“

”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며느리의 사죄를 받고 나서야 임씨의 마음도 풀린다.

당신도 술을 마시면서 며느리가 술을 마시는 것이 싫은 임씨다.

모든 것을 당신의 잣대로만 생각하시는 시어머님의 성품이다.

집안은 그런대로 조용하게 지나간다.

종은이의 아기 백일에 가 볼 수는 없지만 귀숙은 금반지를 한 돈 값을 종은이의 통장으로 보낸다.

백일을 하던 하지 않던 친정에서 모른 척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시어머님께서 아시면 또 다시 싫은 소리를 하실 것이기에 아무도 모르게 통장으로 입금을 시킨다.

“엄마가 가보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 돈으로 아이 금반지라도 해서 끼워주거라!“

“엄마!

고마워요!“

”종은아!

열심히 하고 살아주기를 바란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그렇게 살 수 있지?“

”그럴게요.

누구보다 더 잘 살게요.“

”그래!

고맙다. 우리 종은이!“

귀숙은 목이 메여온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픈 자식이다.

누가 등 떠민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집에서 살림만 하면서 보살펴 주었더라면 그렇게 아무나 사귀

면서 그런 결혼을 하지 않을 딸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돈을 벌려고 일에 매달린 것이 후회스럽다.

어떻게 하든 돈만 벌면 자식들에게 더 좋은 것을 입히고 먹이면서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시어머님께 맡겨놓았던 지난날들이 너무나 후회스러운 귀숙이다.

손에 쥔 것이 없이 몸으로 때우며 일을 하지만 늘 시원찮은 돈벌이에 매달려 자식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이 아프다.

귀숙은 이제 종선이만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해 주리라는 다짐을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종선이를 위해서는 아무리 반대를 하시는 시어머님의 말

씀이라도 순종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악착스럽게 공부를 하고 있는 종선이를 볼 때마다 힘이 솟는다.

종선이는 늘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귀가를 한다.

집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틈만 나면 종선이에게 일을 시키지 못해서 안달을 하시는 할머니의 성

화와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잠시도 종선이에게 공부를 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할머니다.

혜영이는 어리다는 핑계를 대시고는 모든 것을 종선이에게 시키곤 하신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늘 자정이 되어야 돌아오는 종선이를 보면 귀숙은 더욱 마음이 아프다.

시어머님이 조금만 종선이를 배려를 해 주신다면 종선이가 학원만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집안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혜영이와 둘이서 쓰는 방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조용하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인데 늘 시어머

님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있는 종선이다.

귀숙은 시간을 보면서 종선이를 마중하려고 나갈 준비를 한다.

“오늘도 또 나가냐?”

임씨의 못마땅스러운 음성이다.

그러나 귀숙은 대꾸도 하지 않고 방을 나선다.

“그깐 년을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봐야 뭐 할 거이냐?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들어온 사람이 새벽에 다시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꼭

그렇게 마중을 나가야 하겠냐?“

시어머님의 타박에도 귀숙은 그대로 집을 나선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는 길이 만만치 않다.

늦은 밤 행여 사고라도 생길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자식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잠이 올 리

가 없다.

또한 이렇게 늦은 밤이지만 잠시의 시간이라도 종선이와 단 둘만의 시간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종선이는 계단을 올라오면서 엄마를 발견한다.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계단을 뛰어 올라온다.

그런 종선이를 보는 귀숙의 얼굴도 환한 웃음이 번진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6장,

귀숙은 종선이를 위해서라도 더욱 허리띠를 졸라맨다.

이제 대학입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종선이다.

몇 달 남지 않은 수능을 코앞에 두고 있는 종선이를 위해 신경을 쓴다.

늦은 밤에 돌아와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있는 종선이의 건강을 위해서 한약을 한재 지어온다.

먹을 것을 해 주고 싶어도 시어머님께서는 종선이를 챙겨 먹이기보다는 감추어 두고 당신과 종엽

이만을 먹으려 하기에 몹시 신경이 쓰인다.

아예 다려서 팩으로 넣은 것을 들고 들어오는 귀숙을 보며 귀숙의 손에 들려진 보따리를 받으려

하신다.

“이것이 뭐냐?”

임씨는 화색이 도는 얼굴로 묻는다.

“어머님!

종선이 약입니다.“

”뭐?

그년이 어디가 아프다고 하던?“

”이제 몇 달이면 대학 시험이 있는데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고 하니 아이가 어떻게 견

디겠습니까?

약이라도 먹여서 그때까지 원기를 보충해 주어야 하지요.“

”너 참으로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구나?

이 집안에 약 먹을 사람이 없어 그깐 년에게 보약을 지어 주냐?“

“어머님!

보약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누가 허약한 사람이 있나요?“

“왜 없냐?

나만 하더라도 당최 입맛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네 눈에는 보이지도 않냐?

그리고 우리 종엽이도 늘 늦게까지 일을 하고 들어오는데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지 생각이라도 해 봤냐?“

또 다시 임씨의 짜증과 잔소리가 끝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그 모든 것을 각오한 귀숙이다.

아무리 시어머님의 잔소리와 짜증이 심하다고 해도 모든 것을 귀를 막을 생각으로 지어온 약이다.

귀숙은 새벽에 집을 나서는 종선이에게 한 팩을 먹이고 두 팩을 가방에 넣어준다.

“종선아!

잊지 말고 꼭 챙겨 먹어야 한다.“

”엄마!

할머니가 저렇게 성화를 하시는데 무엇 하려고 지어오셨어요?

엄마가 얼마나 시달림을 당하시는지 눈에 선해요.“

”그런 생각하지 말아라!

할머니가 아무리 그렇게 하셔도 내 자식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다.

넌 그저 모든 것에 귀를 막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엄마 말을 알아듣지?“

”네!

꼭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엄마에게 실망을 시켜주지 않을 겁니다.“

귀숙이 그렇게 종선이를 위해 모든 정성을 다 하는 것을 보는 임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공연히 심술이 나고 더 짜증스러운 나날이다.

임씨는 귀숙이 노는 휴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귀숙이 휴일 날이어도 고흥수는 일을 나가고 없다.

귀숙은 시어머님이 왜 그러는 것인지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한다.

거의 점심이 가까이 되어도 임씨는 그대로 자리보존을 하고 있다.

귀숙은 돼지고기를 조금 사다 안주를 하고 술상을 본다.

“어머님!

약주 한 잔 하세요.“

돼지고기 냄새를 맡은 임씨는 슬그머니 일어난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몇 번을 밥상을 가지고 들어온 것을 배고픈 것을 참고 며느리가 약을 해 준다는 말을 하기를 기다

리고 있던 임씨다.

“빈속에 술을 마시라는 말이냐?”

말과는 달리 임씨는 술 한 잔을 입안으로 털어 넣고는 고기를 집어 입안 한 가득 넣고 씹는다.

임씨는 말없이 소주 반병과 고기 한 접시를 모두 비운다.

“어머님!

많이 서운하시지요?

저도 어머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허지만 저의 형편을 어머님도 잘 아시듯 그렇게 많은 돈을 함부로 쓸 수 있는 여유가 없지 않습니까?

다음번에는 어머님 보약을 지어드리도록 할게요.“

”누가 보약을 먹고 싶어서 그러냐?

그냥 몸이 부실해서 그런지 이젠 자꾸 여기저기가 고장이 나니 갈 때가 된 모양이다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스럽기도 하고......“

임씨는 며느리의 말에 마음을 슬그머니 풀어 버린다.

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는 임씨다.

공연히 자신의 심술로 인해 며느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임씨로서는 더 이상

심술을 부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배가 부르도록 실컷 먹고 나서는 마실을 나간다.

귀숙은 한숨을 내 쉰다.

시어머님의 심술은 연세를 잡수실수록 더욱 심해진다.

그래도 젊어서는 그다지 심한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정정하시고 틀니를 하시고서도 고기류를 좋아하시며 잘 드시고 정신이 맑아 치매

가 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고 감사할 뿐이다.

만일 시어머님께서 치매라도 앓으신다면 자신은 모든 것을 중지하고 어머님을 보살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정도의 집안일을 거들어주시며 보살펴주시는 것에 감사한 생각을 하며 최선을 다해서 어머님

을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집안은 조용하다.

혜영이도 중 삼학년이고 보면 공부에 더욱 최선을 다하며 늘 공부하는 자세로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를 한다.

이젠 임여인의 말동무를 할 시간도 없고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한 혜영이다.

귀숙은 그런 혜영이에게도 신경을 많이 쓴다고 노력을 한다.

혜영이 부모가 남겨놓은 돈은 아직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혜영이를 키우고 있는 귀숙이다.

조금씩 이자를 주어 늘려가면서 혜영이의 앞날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늘 디자이너가 꿈인 혜영이다.

어린 나이의 혜영은 의상에 대한 관심도 대단해서 지금도 틈만 나면 종이로라도 옷을 만들어 본다

고 제 딴에는 늘 디자인을 연구하며 종이옷을 만들어 가면서 노력을 하는 것을 본다.

자신의 세 딸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혜영의 인물이다.

귀숙은 혜영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혜영엄마를 떠올려보곤 한다.

참으로 아름답고 고운 인물이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다만 성품이 까칠하고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차가움이 있는 혜영엄마의 성품이었다는 것을 기

억하고 있다.

귀숙은 늘 종선이가 오기 전에 간단한 야식을 준비한다.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혜영이와 종선이를 위한 것이다.

“혜영아!

공부하니?“

”엄마!“

혜영은 귀숙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의자에서 일어난다.

“이것을 조금 먹고 해라!”

“매일 엄마가 피곤해서 어떻게 해요?

저는 이런 것을 해주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무슨 말이냐?

저녁을 먹고 지금까지 시간이 얼만데?

그리고 빈속에 공부를 하면 공부가 되니?

어서 먹고 공부 조금만 하고 자거라!“

“엄마는 또 언니 마중 가실 거지요?”

“그래!”

“엄마!

오늘은 저도 엄마하고 같이 나갈게요.

그리고 언니가 오면 이것도 함께 먹고요.“

”그럴래?

공연이 우리 혜영이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에요.

오히려 맑은 공기도 마시고 정신이 들 것 같아요.“

혜영은 귀숙을 따라 나선다.

귀숙은 혜영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선다.

“혜영아!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 않니?“

”엄마!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어요.

늘 엄마와 아빠의 사랑 안에서 아무런 불편함 없이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

한지 몰라요.

엄마와 아빠가 저를 거두어 주시지 않았다면 전 지금 고아원에 있겠지요?“

”혜영아!

지금도 네 엄마 아빠를 기억하고 있니?“

”네!

그리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혜영아!

아마 네 엄마나 아빠도 그 나름대로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네 마음의 미움이나 원망을 쌓아두면 너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잊고 오직 네 앞날만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

”.......................“

”엄마는 혜영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떤 일이 있어도 뒷바라지를 해 줄 생각이다.“

”그렇지만 언니들도 있고 오빠도 있는데 어떻게?“

혜영은 집안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엄마는 무엇보다도 우리 혜영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며 반드시 성공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을 위해서 엄마가 더 노력을 할게!“

“엄마!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엄마와 아빠의 따뜻한 사랑을 반드시 갚으며 살아가겠습니다.“

”우리 혜영이가 잘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엄마와 아빠에 대한 사랑이다.

누구보다 더 잘살고 더 당당해 지는 것을 잊지 마라!“

혜영은 늘 귀숙의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을 느낀다.

귀숙은 혜영이 어릴 때 받은 상처가 아물어 가기를 바라면서 늘 세심한 신경을 쓰며 어루만져주곤

한다.

시어머님께서 혜영을 보살핀다고는 하시지만 혜영이 어려서 당신의 말벗으로 삼고 당신의 무료함

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이제 혜영이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꿈을 꾸며 미래를 설계하는 나이가 되

자 시어머님의 마음도 차츰 혜영에게서 멀어지며 혜영이 공부하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있다.

종선이와는 달리 혜영이 공부를 하는 것을 보시면 늘 방해하지 않게 조용히 놔두고는 모든 것을

당신이 하시곤 한다.

늘 혜영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시는 시어머님이시다.

귀숙은 이제 자신이 더욱 혜영이를 보살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두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

아온다.

그런대로 집안은 평화롭다.

종희는 가끔씩 집에 오며 직장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자신의 가게를 갖기 위해 알뜰하게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종희의 모습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안쓰

럽다.

요즘 젊은 아이들처럼 좋은 옷도 사 입지 못하고 악착스럽게 돈을 모으며 자신의 미용실을 갖기

위해 절약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종희다.

언젠가는 반드시 멋진 미용실을 갖겠다는 일념으로 일을 배우고 더 좋은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공

부를 하고 있는 종희다.

귀숙은 이제 그런 종희를 걱정하지 않는다.

오직 종선이와 혜영이의 공부를 뒷받침 해 주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일을 나가고 있는 귀숙이

다.

아들 종엽이 또한 착실한 사회인이 되어 월급을 꼬박 엄마 손에 가져 온다.

아이들이 사치와 낭비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그저 대견스러운 귀숙은 종엽이의 월급을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꼬박 저축을 해 나간다.

“엄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일찍 퇴근을 하고 돌아온 종엽이가 귀숙을 보며 하는 말이다.

“무슨 말인데?”

“이번 주에 손님을 데리고 오려고 합니다.”

“손님?

어떤 손님?”

“여자가 있는데 엄마가 보시고 결혼을 허락해 주셨으면 해요.”

“뭐?

벌써 결혼을 생각할 여자가 있다는 말이냐?“

“네!

사귄지는 반년정도 되었는데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귀숙은 그저 멍하니 아들을 바라본다.

아직 아들의 결혼을 생각해 보지 않은 귀숙이다.

아직은 이삼년 더 벌어야만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던 귀숙으로서는 뜻밖에

아들의 말에 그저 멍할 뿐이다.

“서두르는 이유라도 있니?”

“이유는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결혼을 하면 방은 어떻게 하고?

이제 종선이 대학입학금을 마련도 해야 하는데..............“

”엄마!

그렇다고 당장 결혼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엄마가 봐주셨으면 해요.“

종엽은 한발 물러선다.

“뭐하는 여자냐?”

“지금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큰 미용실은 아니고 동네에서 작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종희도 미용사인데 며느리도 미용사?“

“결혼을 하면 들어앉게 할 생각입니다.

동네에서 아줌마들 상대로 하는 미용실이니 큰 수익도 없을 것 같고 결혼을 하면 저는 엄마처럼

밖으로 나가 다니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종엽은 어려서부터 엄마가 없는 집이 싫었다는 말을 한다.

“그래!

네가 마음에 두고 사귀는 아가씨가 있으니 일단 한번 보자.

주말에 몇 시에 올 거니?“

”아무래도 엄마가 계셔야 하니까 엄마 퇴근시간을 맞추어야겠지요.

저녁에 함께 오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귀숙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이제 아이들도 모두 저마다의 갈 길을 갈 때가 되었음을 인정하며 받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만 돈 들어 갈 일이 아득하다.

그렇다고 자식이 결혼을 하겠다는데 반대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하든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면 결혼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엇으로 어떻게 해

야 할지 암담한 노릇이다.

귀숙은 일을 나가서도 한숨을 내 쉰다.

자식들이 성장을 하고 나니 큰 몫 돈이 들어갈 일이 아득해져온다.

 

 

 

 

제 17장,

귀숙은 시장을 봐온다.

아들이 처음으로 데리고 오는 여자인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던지 안 들던지 아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대접을 해야 할 소중한 손님이라는

생각을 한다.

“뭘 그리 많이 사왔니?”

임여인은 벌써부터 마음이 붕 떠진다.

이제 손자며느리를 본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커진다.

“어머님!

별로 많이 장만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 먹는데서 두어 가지만 준비하려고 합니다.“

“네가 일도 일찍 마치고 와서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다.

우리 종엽이를 위해서라도 어멈이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이지.“

귀숙은 저녁에 하는 일을 빠지고 일찍 귀가를 해서 음식을 준비한다.

임여인 역시 귀숙을 돕는다.

이제 손부를 본다는 생각만으로 기대감과 흥분이 일고 있는 임씨였다.

동태매운탕을 끓이고 잡채를 하고 맛깔스러운 겉절이를 준비한다.

먹던 김치는 익어서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겉절이를 준비하는 귀숙이다.

아들이 좋아한다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허락을 해줄 생각이다.

이것저것을 따지고 반대를 할 처지도 아니다.

시할머니도 계시고 시누이들이 많은 집안의 장손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경제력이 여유가 있는 집도 아니고 달동네 조그만 집에 여러 가족이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

고 있는 서민층이다.

고흥수 역시 일이 끝나는 대로 곧 바로 귀가를 한다.

언제나 귀가시간이 늦는 법이 없는 고흥수지만 다른 날과는 달리 집으로 귀가를 하는 발걸음이 바

빠진다.

아내의 걱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짝이 있을 때 보내야 한다는 것이 고흥수의 생각이다.

둘이 서로 좋다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제 아들이 결혼을 하기만 하면 어머님 생전에 증손을 보실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고흥수는 마

음이 더욱 바빠진다.

“애들 아직 안 왔소?”

집으로 들어서면서 묻는다.

“아직 올 시간이 되지 않았어요.”

귀숙은 밖을 내다보며 남편을 맞이한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혜영이 아빠가 들어오시는 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와 인사를 한다.

“오냐!

우리 혜영이 공부하고 있었구나?“

”네!“

“허허..........

그래, 어서 들어가 부지런히 공부해라!“

고흥수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처음으로 오는 며느리 감에게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늘 집에 오면

하루의 모든 먼지를 씻어내야 하는 현장 일이다.

고흥수가 샤워를 끝내고 아내가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갔을 때 대문이 열리면서 종

엽이 들어선다.

“저희 왔습니다.”

종엽이의 말소리에 귀숙이도 임씨도 주방에서 나온다.

이미 모든 준비가 다 된 것이다.

“들어와!”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있는 오주영을 보며 종엽이 채근을 한다.

오주영은 종엽의 집을 둘러본다.

가난한 달동네라는 말을 들었지만 생각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집이다.

오주영은 종엽의 채근에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대문을 바라보고 있던 귀숙은 집안으로 들어오는 오주영을 보며 놀라는 눈이 되어 멍하니 바라본

다.

아무리 마른다고 해도 저렇게 마를 수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뼈에 가죽만을 씌워놓은 듯한 너무나

바싹 마른 아가씨의 모습에 그저 어안이 없다.

오주영을 바라보던 가족들은 너 나 없이 아무런 말이 없다.

“어서 오너라!”

한참만에야 귀숙은 입을 열어 오주영을 반긴다.

종엽은 주영이 준비를 했다는 것들을 내려놓는다.

“초대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오냐!”

임씨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오주영의 인사를 받을 준비를 한다.

“뭐하냐?

어서들 앉아서 인사를 받자.”

임씨의 채근에 고흥수와 귀숙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주영은 큰 절로 할머니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생존해 계시고?”

임씨가 묻는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려서 돌아가시고 어머님 혼자서 저희 자매 셋을 키우셨습니다.”

“딸들뿐이냐?”

다시 임씨의 질문이다.

“네!

제가 중간으로 위로 언니와 아래도 여동생이 있습니다.“

”쯧, 쯧, 쯧

네 어머니의 심정을 알만 하구나!

지금 몇 살이냐?“

임씨의 계속되는 질문에 고흥수와 귀숙은 그저 듣기만 한다.

“지금 스물 셋입니다.”

“우리 종엽이와 세 살 차이니 나이 차이는 좋지만 어찌 그리도 바싹 말랐는지 보기에 좋지 않구나!

혹시 몸에 무슨 병이라도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가족들이 원래 살이 찌지 않는 타입이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보기에 영 좋지가 않다.

많이 먹고 살이라도 좀 쪄야겠다.“

임씨는 다시 혀를 끌끌 찬다.

“할머니!

그래도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종엽은 할머니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귀숙은 그런 와중에서 오주영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몸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주영을 세밀하게 관찰을 하던 귀숙은 오

주영이 기침을 자주 하는 것을 느낀다.

“감기 들었니?

기침을 자주 하는 것 같구나?”

“네!

감기가 아니라 얼마 전에 가게에서 그냥 잠이 들었는데 연탄가스를 마시고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

습니다.

그때부터 기침이 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약을 먹고 있어서 많이 좋아진 것입니다.“

오주영이 대답을 한다.

“그랬구나?

큰일 날 뻔했다.”

귀숙은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주방으로 간다.

종선이만 빠진 저녁상에 둘러앉는다.

“맛있게 많이 먹어라!”

“네!”

그러나 오주영은 밥을 거의 다 덜어내고 겨우 한수저가 될까 말까하게 자신의 밥그릇을 비우고 나

서 식사를 시작한다.

“먹는 것이 그렇게 시원찮아서 어디 살이 찌겠니?”

임씨는 다시 혀를 끌끌 찬다.

귀숙 역시 오주영이 밥을 먹는 것을 보면서 걱정을 한다.

께작거리며 먹는 모습이 완전한 병자의 모습이다.

밥상을 물리면서도 주방에는 얼씬도 할 생각이 없는 오주영의 모습이다.

귀숙이 주방을 모두 치우기도 전에 종엽은 오주영을 데리고 일어선다.

“주영이가 돌아가겠답니다.

데려다 주고 오겠습니다.“

종엽은 오주영을 데려다 준다는 말을 하고 둘이서 함께 집을 나선다.

임씨는 마땅치 않다는 듯 표정이 좋지 않다.

“아범은 생각이 어떠냐?”

“어머니!

저는 영 아닙니다.

그렇게 몸이 약해서야 어디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인지 걱정스럽네요.“

”그래!

그리고 그 친정 에미가 딸만 낳았으니 그 딸이 어미를 닮아 아들을 낳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다.“

”어머님!

아무리 그래도 종엽이가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쩝니까?

우리 종엽이가 그 아이보다 더 빠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결혼은 반대다.“

임씨는 단호하게 반대를 하고 나선다.

“종엽이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고흥수 역시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종엽이는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 돌아온다.

종엽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귀숙은 종엽이의 방으로 들어간다.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냐?”

“네!”

종엽은 당연한 것처럼 대답을 한다.

“종엽아!

아무리 늦은 시간이지만 엄마하고 이야기좀 하자.“

”네!

엄마는 주영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문제가 아니다.

엄마가 보기에 그 아이는 분명히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마른 것은 체질이 그렇다 치지만 병색이 완연한 사람이 아니냐?“

“엄마!

그렇지 않아요.

너무 마른 체격이라 가끔은 그런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건강한 사람입니다.“

”종엽아!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건강이 재산이다.

그런 나약해 보이는 아이는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할머니까지도 모두 반대를 한다.

반대를 하기 위한 반대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네가 좋다면 어떤 조건도 없이 모두 받아드릴 마음이었다.

허나, 이것은 아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없겠니?“

종엽은 대답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다.

어머니의 말을 반박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귀숙은 아들의 마음이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아들을 주시한다.

“엄마!

말씀 잘 알아듣겠습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영이가 더 치료를 받고 기침이 멈춘 다음에 데리고 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난 내 아들을 믿는다.

그리고 엄마가 반대를 하는 이유를 이해를 했으면 싶구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행이 종엽이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을 보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면서 아들의 방

을 나선다.

그 뒤로 종엽이는 주영이에 대한 말이 없다.

귀숙은 종엽이 말을 하지 않는 이상 묻지 않기로 한다.

종선이의 수능시험이 있는 날까지도 종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퇴근을 하고 늦게 귀가하는 것도 아니다.

조마조마 하던 귀숙은 조금 안도하면서 종선이의 시험장으로 함께 간다.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다.

남편은 일을 내 보내고 나서 귀숙이가 종선이와 집을 나선다.

“종선아!

절대로 허둥대지 말고 침착하게 네 실력을 발휘할 수 있지?“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를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렇지만 수능이 있는 날은 날씨가 매우 춥다.

귀숙은 종선이의 옷을 다시 바로잡아주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다른 학부모들처럼 교문

앞에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다린다.

귀숙이 믿는 종교는 아무것도 없다.

먹고 살기 바쁜 귀숙에게 종교는 사치스러운 것이다.

귀숙은 두 손을 모아 자신이 알고 있는 신들의 이름을 외우며 종선이를 위해 기도를 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엄마!”

귀숙은 놀라면서 뒤를 돌아본다.

“네가 이곳을 어떻게 왔어?”

생각지도 않은 아들 종엽이가 온 것이다.

“엄마가 이렇게 계실 줄 알았어요.

추운데 어디 따뜻한 곳으로 가서 기다리세요.“

”아니다!

내가 자식을 위해서 온 정성을 다 하고 싶다.

내 자식들에게 마음 놓고 해 줄 수 있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뿐이다.“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그동안 잠시라도 몸을 녹이고 오면 되지요.“

”종엽아!

너 마저 이 고생을 할 필요가 없으니 어서 회사로 돌아가거라.

종선이가 나오면 네가 왔다 갔다는 것을 말해주마!“

”엄마!

회사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엄마하고 함께 종선이를 기다리겠습니다.“

귀숙은 그런 아들이 대견스럽고 고마운 마음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그 아이를 안 만나니?”

종엽이를 바라보지 않고 묻는 귀숙이다.

“네!

서로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엄마 말씀처럼 너무 약하면 우리 집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주영이도 결혼한다는 것 자

체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엄마 때문은 아니지?”

“그럼요!

그리고 아직 결혼을 서두를 나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종엽이의 말에 귀숙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종엽은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8장,

종선이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응시 장을 나온다.

“오빠!

오빠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배고프지?

어디 가서 맛있는 것 먹자.”

“오빠가 살 줄 거야?”

“그래!

엄마도 많이 추우실텐데 어디 따뜻한 곳에 들어가자.“

종선이가 원하는 대로 경양식집으로 들어간다.

“이런 곳 비싼데 아니니?”

귀숙은 이렇게 비싼 곳보다는 차라리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먹고 들어가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엄마!

생각보다 비싼 곳이 아닙니다.

이런 곳은 학생들도 자주 오는 곳이거든요.“

”그래?

내가 뭘 아는 것이 있어야지.“

귀숙은 이런 레스토랑에 들어와 본 적이 없다.

평생 외식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온 삶이다.

아이들의 입학이나 졸업 때가 되면 먹는 자장면 이외에는 다른 음식을 밖에서 사 먹는다는 것을 생

각할 수 없는 삶이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돈가스와 비후가스를 주문한다.

어머니를 생각해서 특별히 소고기로 된 비후가스를 주문하는 것이다.

“종선아!

시험 잘 봤니?“

종엽이 묻는다.

“오빠!

생각보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

“그래?

나오면서 시험문제가 너무 어렵다는 아이들이 많던데?”

“그래?

난 어려웠다는 생각도 없이 문제를 풀었는데 대체적으로 만족했고 실수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

아!”

“잘 되었다.

너만이라도 엄마를 실망시켜드리지 말아야지.“

종엽은 자신이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음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은 성적이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시험을 보고 나서도 엄마를 보기가 너무 민망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맙다.

네가 지원하는 학과는 어디지?“

”오빠!

난 법대를 들어갈 거야!“

“법대라면 S대를 들어가야 하는데 자신이 있니?”

“꼭 S대가 아니더라도 R대나 O대에 들어가도 돼!

그곳은 들어갈 자신이 있어!“

“우리 종선이는 공부를 워낙 잘하니까 오빠도 꼭 들어가리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법대를 나온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더라.

더구나 우리같이 아무런 연줄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마 더 힘들고 어려운 과인지도 모르겠다.“

”오빠!

난 그런 생각을 부숴 버릴 거야!

남들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당당하게 그런 사람들과 어깨를 겨루며 나갈 거야!“

종선의 표정은 야무지다.

귀숙은 남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귀를 기울인다.

종선의 자신감대로 종선은 높은 성적을 거둔다.

일류대학이라는 O대 법학과에 무난히 합격을 한다.

귀숙은 종선이의 입학금을 위해 몇 년을 저축해왔던 적금을 찾는다.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가볍다.

세 딸들 중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는 유일한 막내딸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새내기 대학생이 되는 종선이와 쇼핑도 하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어 준

다.

남들처럼 모든 것이 메이커는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종선이를 위해서 제대로 새것으로 사준

것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니 마음 같아서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종선이와 혜영이는 언니들이 입었던 옷들과 물건들을 물려받으며 자랐다.

혜영이 역시 예외일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혜영이의 이름으로 저축이 된 통장을 건드리지 않고 키우고 있는 귀숙으로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처지이다.

때로는 혜영이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혜영이의 앞날을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귀숙이다.

지금은 그 돈이 불어서 처음의 배는 된다.

큰 몫 돈이 아니고 조금씩 이자를 놓아서 키워가는 돈이다.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는 혜영이다.

그런 혜영이를 위해서 단 한 푼도 축낼 수 없는 소중한 돈이다.

이제 혜영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귀숙은 가끔 싸구려 천을 구입해 주기도 한다.

그 천으로 할머니 옷을 만들어 드리기도 하고 자신의 옷도 만들어주기도 하는 혜영이의 솜씨는 참

으로 야무지다는 생각을 한다.

타고난 손재주가 있는 것인지 시장에서 사 입는 옷보다도 디자인에서나 꼼꼼한 바느질에서나 월등

히 낫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집에 재봉틀이 있었다.

별로 쓸 곳도 없고 쓸 시간도 없어 구석에 처박혀 있던 재봉틀이었다.

그런 재봉틀을 언제 배웠는지 곧잘 해 내는 혜영이다.

아마 시간이 나는 대로 시어머님께 배웠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어린 것의 솜씨는 대단하다는 생

각이 든다.

혜영은 그러면서도 공부도 썩 잘 해내고 있다.

학급에서는 물론이고 전체에서도 상위권에 속하고 있는 실력이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도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서 이제는 추석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된다.

추석의 차례 상 또한 만만치 않음을 생각하면서 귀숙은 조금씩 추석을 위해 준비를 해 나가면서 바

쁜 나날을 보낸다.

“에미야!

이번 추석부터는 음식을 너무 많이 준비하지 마라!“

”어머님!

허술하게 준비를 하면 서운하시지 않으시겠어요?“

”이제 아이들도 나가고 제사상에 오른 음식들을 먹지 않으니 처분하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만 같

다.

전 같지 않고 동네 늙은이들도 하나 둘 저 세상으로 떠나버리고 모이는 할멈들이라고 몇 되지 않으

니 밖에 가지고 나간다 해도 먹을 사람도 없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냥 우리도 간편하게 차려서 차례를 지내자.“

임씨는 겨울이 지나면 하나씩 떠나버리는 할멈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이다.

이제 당신도 이 세상을 하직할 때가 다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더구나 그렇게 정정하던 담배 가게 쌍둥이 할멈마저 떠나고 없는 마당에 밖에 나가들 가 있을 곳도

없고 모이는 할멈들도 별로 없다.

이제 모일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경노 당뿐이다.

그러나 하나둘씩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당신의 나이를 생각하는 임씨

였다.

이제 거의 여든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임씨다.

죽기 전에 증손이라도 안아보고 죽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뿐이다.

종엽이 결혼을 해야만 당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인데 아직은 결혼을 독촉하기엔 빠르다는 아

들의 말에 임씨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귀숙은 다른 때보다 차례 상 준비를 간소하게 한다.

그래도 사대 조를 모시는 차례 상이기에 준비하는 것들이 만만치 않다.

더구나 딸들이 나가 있으니 손을 거들어 줄 사람도 없다.

종선이는 학교를 다니면서 늘 늦어서야 귀가를 한다.

제 딴에는 부모의 힘을 덜어드린다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

도 늘 공부에 매달리곤 하는 종선이다.

또한 혜영이 역시 공부를 하느라 일을 시킬 수가 없다.

귀숙은 그런 두 아이들이 참으로 대견스럽고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마음이 든다.

힘들지만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늦은 시간까지 차례 준비를 조금씩 해 나가고 있는 귀숙이다.

추석 전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종희도 집으로 돌아온다.

온 가족이 모여 늦게까지 그동안의 싸인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제 종희도 기술도 많이 늘고 단골이 많아졌다는 말에 온 가족은 기뻐한다.

또한 그런 종희를 추석이 끝나고 나면 다른 곳에 스카웃이 되어 자리를 옮기고 수입 또한 늘어난다

는 이야기에 더욱 기뻐하며 축하한다.

종희는 자신의 꿈을 위해 수입의 거의 전부를 저축한다.

자신이 생활을 하는데도 대단한 절약을 하면서 거의 지출을 하지 않고 악착스럽게 돈을 모아가는

종희다.

종희로서는 가난이 싫고 너무 지겹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악착스럽게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종희야!

돈을 모으는 것도 좋지만 먹을 것은 조금씩이라도 먹으면서 돈을 모았으면 하는 엄마 마음이다.

지금 한창 젊은 네 모습이 너무 마르고 피부도 거칠어진 것 같다.“

”엄마!

미용실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리고 가끔 미용실 원장님이 외식을 시켜주시기도 하고요.

피부는 하루 종일 거의 햇살을 보지 못하니까 그런 것이지 거친 피부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세요.“

종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한다.

다음날 새벽부터 귀숙은 분주하게 서두른다.

종희가 잠에서 깨어 엄마의 일손을 거들고 나선다.

생각보다 빠르게 차례가 끝나고 모든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 과일과 차를 가지고 오

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앉는다.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종엽이 부모님을 보며 입을 연다.

“아버지, 그리고 엄마!

저 결혼하겠습니다.“

”뭐?

결혼?

갑작스럽게 결혼이라니?“

”아무래도 결혼을 하는 것이 제 자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자는?

새로 사귀는 아가씨가 있었니?”

귀숙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니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주영이하고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의 그 아가씨?“

”네!“

”지금은 아픈 것이 다 나았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새삼스럽게 다른 여자를 사귄다는 것도 그렇고 이미 정이 들었고 사랑하고 있으니 다른 여자를 생

각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주영이도 결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 살이 좀 찌기라도 했냐?“

임씨는 바짝 마른 오주영을 떠올린다.

“할머니!

그 집안은 장모님을 비롯해서 살이 찌지 않는 체질들입니다.

그렇다고 어디 아픈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사람들보다 살이 찌고 뚱뚱한 사람들이 병이 더 많지요.“

”그래!

네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허나 마른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아이는 정도 이상으로 너무 말라서 마치 병자처럼 보인다.“

귀숙은 답답하다는 듯 말을 한다.

“엄마!

아무리 그래도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희 이미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종엽은 어른들의 입을 막으려고 못을 박는다.

“그래, 정 네가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막지는 않겠다.

허지만 결혼을 하려면 그만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무엇을 가지고 할래?“

”우리 집에 그런 돈이 없어요?

그저 전셋집만 얻어주시면 됩니다.“

”뭐라고 했어?

너희들 따로 나가 살겠다는 말이냐?“

임씨는 기겁을 한다.

“어머님!

이 집에 종엽이가 결혼을 해서 살 방이 어디 있습니까?

따로 나가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전세방을 얻을 돈이 어디 있니?

네가 이제 직장 생활을 한 것이 이년도 못되는데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을 해 놓았다마는

전세방을 얻을 돈이 되기나 하니?“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부모로서 아무것도 준비를 해주지 않으실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 돈으로 패물을 해주고 방은 작은 연립이라도 전세를 얻어주시면 됩니다.“

귀숙은 할 말이 없다.

부모의 심정을 너무나 모르는 아들이다.

그렇다고 아들의 결혼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스물일곱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직장을 가진 아들이고 손이 귀한 집안에 아들의 결혼은 결코 이른

것은 아니다.

“양가 부모님 상견례 날짜를 잡겠습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그 아이를 먼저 다시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고 나서 우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

너는 부모도 형제도 보이지 않냐?“

고흥수는 성급하게 서두르는 아들을 나무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 주 휴일에 데리고 오겠습니다.“

”종엽아!

너 혹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

그 아이가 혹시 임신이라도 한 것이냐?“

귀숙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임신 한 것은 아닙니다.

허지만 제가 책임질 일은 했습니다.“

이제 귀숙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이미 부모가 반대를 할 상황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래, 어쩌겠냐?

형편대로 일을 치루자.“

임씨는 어서 하루라도 빨리 종엽이가 결혼을 해서 증손을 안겨주기를 기다리며 고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종엽이는 자신의 결혼을 선포하는 식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귀숙은 그저 마음만 동동 거린다.

갑작스러운 아들이 결혼 말에 나오는 것은 한숨이다.

전세방도 아닌 전셋집을 얻으려면 그만한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글: 일향 이봉우

 

 

 

 

제 19장,

귀숙은 오주영을 보자 다시 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에 비해 조금도 달라져 보이는 곳이 없다.

가끔씩 하는 기침하며 혈색이 하나도 없는 얼굴이며 마치 눈 감고 있으면 죽은 사람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마른 몸매가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아들이 사랑하고 있다는 여자다.

더 이상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깊은 호흡을 한다.

“우리같이 어려운 집에 시집을 와도 되겠니?”

최대한 온화한 음성으로 말을 한다.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구나!

참으로 고맙다.

이렇게 층층시하와 시누들이 많은 집에 와 준다는 것이 정말 고맙다.“

”허지만 한 집에 함께 살라는 말씀은 아니시지요?“

오주영은 귀숙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다.

그런 오주영의 태도가 귀숙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러나 귀숙은 다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른다.

“너도 보다시피 우리 집에 너희들이 들어와 살 방이 없으니 함께 살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니?”

“어멈아!

그것이 무슨 말이냐?

지금 종엽이 방에 작지만 함께 들어와 살도록 해야지 따로 살림을 내 보낸다는 말이냐?“

임씨는 펄쩍 뛴다.

“어머님!

그 방에서 둘이서 생활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 두 식구도 아니고 어떻게 좁은 집에서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럼 우리 종엽이 보고 싶을 때는 어쩌란 말이냐?

좁아도 한 집에 서로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 아니냐?

절대로 딴 살림을 낼 생각을 하지 말아라!“

오주영은 얼굴색이 변한다.

할머님의 말씀이 너무 강경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핏기 없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져 온다.

“할머니!

대체 그 방에서 둘이서 어떻게 살아요?

그리고 이 사람은 맨 몸으로 시집을 옵니까?“

종엽이 큰 언성으로 말을 한다.

“종엽아!

걱정하지 마라!

엄마도 너희들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근처에 적당한 살림집을 구해서 너희들끼리 따로 나가 살게 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 근처라니요?

이 달동네에서 살라는 말인가요?”

종엽이 기겁을 한다.

“왜?

이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냐?

그리고 비싼 동네는 무슨 돈으로 집을 얻을 수 있겠니?“

”저는 이 동네가 싫습니다.

이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로 집을 알아보겠습니다.“

”.......................“

귀숙은 멍하니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물론 오주영이 살고 있는 곳도 비싸고 잘 사는 동네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집하고 멀리 떨

어져 살고 싶어 하는 아들의 마음에 서운함이 밀려오는 귀숙은 그저 멍하니 아들의 얼굴만 바라본

다.

“엄마!

주영이는 아직 다른 곳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굳이 이곳까지 와서 살라고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우리 집에 함께 들어와 사는 것이 아니고 집을 얻어서 사는데 낯선 이곳에서 살라고 할 이유가 없

지요.“

”알았다.“

귀숙은 자신의 마음을 누르며 더 이상 아들과 대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짧게 대답을 한

다.

양가의 상견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루어진다.

더 이상 미루고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귀숙은 또 다시 미나 엄마의 한복을 빌려 입고 고흥수 역시 세탁소에서 양복과 와이셔츠를 빌려온

다.

상견례 자리에는 자식들을 두고 시어머니 임씨와 그들 부부만이 참석한다.

상견례 장 역시 오주영이 사는 근처로 정해진다.

조그만 한식집으로 정한 곳으로 종엽은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고 간다.

종엽의 이름으로 예약이 된 식당이다.

아직 오주영의 가족은 보이지 않는다.

종엽은 예약이 된 방으로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고 들어간다.

크지 않은 작은 식당이고 이미 저녁때가 되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이 하나도 없는 한산한 식당이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오주영이 어머니를 모시고 언니와 동생과 도착한다.

그쪽의 가족 전부가 나온 것이다.

서로의 수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는다.

“너무 갑작스러운 결혼이야기에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인사가 끝나고 나자 귀숙이 말문을 연다.

“갑작스럽다니요?

이 아이들이 교재를 해 온 것이 벌써 이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습니

까?“

오주영의 어머니 장경희는 놀라는 표정으로 대꾸를 한다.

“네, 별 다른 말이 없었지요.

워낙에 말이 없는 아이가 돼서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이거야 원!

어떻게 부모가 자식의 일을 그렇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저도 이 결혼을 시키지 않으려고 참으로 많이 말렸지요.

층층시하 게다가 시누들이 그들먹한 집안이고 그렇다고 경제력이 있어 잘 사는 것도 아니

고...........

엄마라면 이런 결혼을 시키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시겠지요.

아시다 시피 저희는 가난하고 딸들도 많습니다.

그저 딸을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지요.“

귀숙은 장경희의 당당하고 오만한 태도에 화가 나지만 꾹 눌러 참는다.

누가 시어머니고 누가 친정어머니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 장면이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서로 저렇게 좋아 못사는 것을 부모라 한들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더구나 고서방이 매일 우리 아이를 좋아하며 찾아오곤 하니 이대로 모른 척 방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장경희는 아예 종엽을 사위취급을 하고 있었다.

아들을 가진 귀숙은 오히려 할 말이 없다.

“결혼 날짜는 제가 좋은 곳에 가서 잡겠습니다.”

“네, 그러시지요.”

“더 날짜를 끌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빠른 날짜를 잡아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장경희의 태도는 거침이 없다.

“아무리 빨라도 준비할 시간을 있어야겠지요.

방을 얻어야 하고..........“

”아니?

지금 방을 얻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단칸방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경제력에 맞추어야지요.”

“단칸방은 안 됩니다.

소중하고 귀하게 키운 내 자식을 단칸방에서 시작을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빌라나 연립을 얻어주셔야만 살림을 채우지요.

곱게 키운 자식을 아무렇게나 귀찮은 물건 치우듯 그렇게 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

“이보시오, 사돈!

모든 것은 형편에 따라서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강압적으로 한다고 일이 해결이 되겠습니까?“

임씨는 화가 나는 것을 억누르고 귀숙을 대신해서 말을 한다.

집근처도 아니고 이 먼 곳에 방을 얻어 내보내야 한다는 것만도 마음에 들지 않은 임씨는 장경희의

말에 더욱 화가 난다.

“사장 어르신!

제게는 그 어느 아들보다 더 귀한 자식입니다.

아무리 힘이 드신다고 해도 하나뿐인 아드님을 단칸방을 얻어서 내 보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첫출발을 그렇게 초라하게 시작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고흥수는 살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자신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고 너무 당당하고 거센 안사돈 되는 사람의 모든 것이 비위가 상한다.

양가 상견례는 그쪽의 의도대로 모든 것을 하기로 합의를 한다.

그것은 종엽이가 더 요구하고 있기에 귀숙과 고흥수는 아무런 의견도 내 세우지 못하고 끌려간 꼴

이 된 것이다.

“어멈아!

아무래도 우리 종엽이가 무엇에 씌워도 단단히 씌운 것만 같다.

딸을 가진 사람이 어찌 그리도 당당할 수가 있더란 말이냐?“

집으로 돌아온 임씨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머님!

그쪽만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우리 종엽이가 오히려 더 그렇게 원하고 있으니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그러기에 뭐가 씌웠다는 게지.

여우같은 그 집 여자들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린게야.“

임씨는 모든 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귀숙은 늦게 들어온 아들의 방으로 들어간다.

“얘기를 해도 되겠니?”

“네!”

“그쪽으로는 얼마면 집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니?”

“엄마!

장모님 말씀대로 단칸방은 안 됩니다.

그쪽에 장모님께서 봐 둔 곳이 있는데 새로 지은 연립인데 전세가 칠천만원이라고 합니다.“

”칠천?

우리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니?“

”그럼 어떻게 합니까?

결혼을 하지 말까요?“

아들의 태도에 귀숙은 어이가 없다.

“우리 형편대로 할 수는 없니?

꼭 그렇게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모두 해야만 하니?“

”네!

장모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습니다.

저도 초라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자식을 결혼시키시려면 그 정도의 경제력을 해 주시는 것이 부모의 도리가 아닌가요?“

”도리?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주어야 하는 것이니?“

”그럼요.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요?“

종엽은 당연히 부모가 다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당당한 태도다.

귀숙은 그런 아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아들하고의 감정만 상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입을 다물

어 버린다.

결혼날짜를 잡아서 통보를 해 온다.

결혼식은 십이월로 잡힌다.

불과 삼 개월 후다.

귀숙은 미안한 마음이지만 월세를 살고 있는 아랫방을 내 보내고 전세를 들이도록 한다.

그래야 전세 이천만원이다.

방 한 칸에 부엌이 있을 따름인 방이다.

그래도 손재주가 있는 남편이 직접 방을 꾸미고 부엌을 현대식 주방으로 개조를 하고 작은 화장실

도 안에 있는 방이다.

내 놓기만 하면 잘 나가는 방이다.

그러고 나서 계를 들고 있는 것을 입찰시킨다.

계를 타기 위해서는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하지만 다른 곳에서 빌리는 것보다는 매달 이자와 계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갚아나가는 것이기에 힘들지만 그렇게 곗돈을 타기로 한다.

그것 또한 이천만원이다.

종엽이의 월급을 한 푼도 축내지 않고 고스란히 저축을 해 둔 것이 있다.

종엽이의 이름으로 들어 있는 통장에는 삼천 만원이 조금 넘은 돈이다.

그중에서 또 이천만원을 보탠다고 해도 집값을 지불하려면 모자라는 돈을 어디에서 채울까 고심을

한다.

식장 비용이면 잔치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귀숙은 아들이 얼마나 예물비용을 쓸 것인가를 의논한다.

“종엽아!

예물을 어떻게 할 것이냐?“

”남들이 해주는 대로 해야지요.

요즘은 결혼을 하는데 다이아 반지는 필수이고 신부의 생일 달에 들어 있는 탄생석도 해야 하는

데.........“

종엽은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네 통장에 들어 있는 돈에서 엄마가 이천만원은 네 집값에 보태도 되지?“

“얼마나 들어 있는데요?”

“삼천 이백 조금 넘는다.

그러니까 네가 천 이백이면 패물을 하고 신부에게 보낼 함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니?“

”그렇게 해야지요.“

귀숙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모두 달라고 한들 주지 않을 수도 없는 통장이다.

귀숙은 할 수 없이 큰딸 종희를 찾아간다.

집으로 부르기엔 너무 바쁜 딸이다.

종희가 퇴근 무렵이 되어 전화를 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엄마!

여기까지 어떻게 오실 수 있어요?“

”그럼 어쩌겠냐?

필요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데 엄마가 와야지.“

”오빠 결혼 때문에 그런 거지요?

안 그래도 제가 천만 원을 내 놓으려고 했습니다.“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큰돈을 내 놓니?

그러지 말고 혹시 가진 것이 있거든 엄마에게 이천만원만 빌려줄래?‘

“천만 원은 그냥 드리고 천만 원만 빌려드릴게요.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다 드리고 싶지만 저도 제 꿈을 위해서 함부로 돈을 쓸 수는 없어요.

다 드리지 못해서 죄송스러워요.“

종희는 선뜻 돈을 찾아 엄마에게 내 준다.

“미안하구나!

엄마가 자식들에게 손이나 벌리고 정말 면목이 없다.“

”엄마!

제가 맏딸로서 집안에 보탬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 가게를 가지게 되면 그때는 많은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글: 일향 이봉우

 

 

 

 

제 20장,

결혼식장 역시 신부 측 동네에 있는 식장으로 예약을 한다.

이곳 달동네보다는 조금 나은 곳이기는 하지만 신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서로 예물을 맞추고 예단이 오간다.

신부 측에서 시댁에 보내온 오백만원과 시할머니 금반지와 시어머니 금반지를 보내온 것이다.

임씨의 입은 함지박만큼 벌어진다.

당신 생전에 손가락에 누런 금반지를 끼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임씨로서는 손부의 생각이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귀숙은 남들이 하는 대로 그 속에서 이백 만원을 다시 신부 측에 예단 값으로 보낸다.

“어멈아!

종현이 고모들을 예단에 빼서는 안 된다.

난 지난번에 해 입은 한복이 있으니 영희와 영숙이 내외를 옷 한 벌씩 해 주어야 한다.“

”어머님!

고모네 부부를 옷을 한 벌씩 해드리면 이 돈 전부를 드려도 될까 말까 하는데 종엽 아버지 양복은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제 고모네들에게 예단도 보내지 않을 작정이냐?“

”어머님!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일이 남이 하는 것을 모두 따라할 수가 있습니까?

집안 친척들 예단으로 예단 이불을 하기로 했으니 고모들도 그것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도 참!

너 정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내가 살아 있는데 시누이들을 그렇게 소홀하게 대한다는 말이냐?

내 죽은 다음에 우리 종엽 애비가 너 무서워서 동생들을 생각하고 챙기기나 하겠냐?“

임씨는 삐진다.

그러나 귀숙은 시어머님의 말씀을 따를 수가 없다.

삼백만원 중에서 다른 것을 몰라도 남편 양복을 한 벌 해 주어야 하고 아이들 옷도 싸구려일 망정

한 벌씩은 해 입힐 생각이다.

자신이야 한복을 대여해주는 곳에서 빌려 입을 생각이다.

가끔 시어머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귀숙이다.

손녀딸들을 무시하시며 소용없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당신 딸들을 아직까지 끔찍하게 챙기시는 시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어머님이 서운하시거나 말거나 귀숙은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한다.

결혼준비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추가 된다.

신부가 원하는 대로 패물을 다 해주고 화장품에 핸드백 그리고 옷도 세벌과 코트에 한복과 두루마

기에 장식품 등 귀숙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지만 종엽이는 모든 것을 신부가 원

하는 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제주도 신혼여행을 예약한다.

결혼식 전날부터 집안친척들이 집으로 찾아온다.

대부분 시골에 사시는 어른들과 친척들이다.

좁은 집안은 많은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귀숙은 손님들 뒷바라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시누이들 역시 전날 도착을 한다.

그래도 큰 시누이는 선뜻 삼백만원이라는 큰돈을 내 놓는다.

“언니!

없는 살림에 정말 큰일을 하십니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뿐인 친정조카 결혼에 더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적

더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고모!

이 돈이 얼마나 큰돈인데 그런 말을 해요?

정말 이렇게 큰돈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예단도 변변치 않게 받으시면서 염치없습니다.“

”예단은 무슨 예단을 받겠어요?

요즘은 모두 그렇게들 하니까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어디 있어요?

그래도 층층시하 시누이들이 많은 집에 시집을 오는 아가씨가 있다는 것만 해도 참으로 대단한 일

이지요.“

영이의 마음 씀은 언제나 푸근하고 따뜻하다.

작은 시누이 영숙은 오 십 만원만 슬그머니 내 놓는다.

결혼식은 그런대로 무사히 치루어 진다.

신부 측의 손님이 별로 없는 것이 쓸쓸해 보이기는 하지만 종엽이의 직장 동료들이 많이 참석해 주

어서 그런대로 자리가 꽉 차 보이는 결혼식이다.

신부가 힘들어 할 것 같아 폐백 또한 대충 받는다.

일일이 하나하나 모두 받으려면 신부가 쓰러질 것 같은 마음이 귀숙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

며 대충 한꺼번에 절을 받으라고 정한다.

폐백을 마치고 나서 음식을 먹여 신혼 여행길에 오르게 한다.

더 이상 잡고 있어야 신부가 너무 힘들어 할 것 같고 신부를 지치게 한다는 귀숙의 생각이다.

“어머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가서 고운 꿈을 꾸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거라!“

신랑 신부가 떠난 피로연은 거의 파장에 가까워진다.

손님들 또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다시 귀숙의 집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 다시 하루를 힘들게 보내야 한다.

영이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귀숙을 거들기 위해 따라서 집으로 온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음식을 내 보내야 하고 술상을 보아야 한다.

종선과 혜영은 공부를 하기 위해 이미 독서실로 가고 없다.

한창 술상을 들여가고 내 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애들에게 오는 전화인가?”

고흥수는 집안 친척들을 상대로 술상에 앉아 있기에 부엌에 있는 귀숙이 들어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엄마!”

종엽이의 음성이다.

“벌써 도착했니?”

“엄마!

지금 여기 병원이에요.“

”무슨 말이냐?

병원이라니?

대체 지금 그 말이 무슨 말이야?“

”제주도에 있는 병원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려 앰블란스를 타고 병원으로 바로 왔습니다.“

“뭐야?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이냐?"

“사고가 아니라 그동안 결혼준비를 하느라고 많이 지친 모양이더라고요.

비행기 안에서 의식을 잃어 바로 병원에 연락을 해서 엠블란스 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병원으로 왔

습니다.

그러니 우선 급한 대로 돈을 보내주세요.“

”......................“

귀숙은 할 말을 잃는다.

기가 막힐 일이다.

신혼여행을 떠난 신부가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것이 있을 수가 있는 일인가?

귀숙의 전화에 고흥수는 전화를 받고 있는 귀숙의 옆으로 온다.

“무슨 소리야?

무슨 사고가 난거야?”

고흥수 역시 신혼여행을 간 아이들이 무슨 사고인가 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얼마를 보내주면 되겠니?”

“우선 백만 원만 보내주세요.”

“알았다.

내 지금 나가서 보내줄게!“

“종엽이에게 무슨 사고가 생긴 것이오?”

“아니에요.

새 애기가 그동안 결혼준비를 하느라 너무 무리했던 모양이었는지 비행기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네요.

그래서 지금 제주도 한국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아무리 결혼준비로 과로를 했다고 해서 젊은 애가 졸도라니?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냐?“

언제 임씨도 곁에서 듣고 한 마디 한다.

집안 어른들 모두 너나없이 한마디씩 하신다.

“어허?

내 신혼여행을 간 새신부가 졸도를 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네!

집안 맏 종부가 몸이 그렇게 허약해서 어디.......“

귀숙은 급하게 돈 백만 원을 들고 은행으로 간다.

정신이 없다.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어찌 할 것인가?

신혼여행 길에서의 졸도를 한다면 앞으로 험난한 인생을 어찌 살아 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귀숙은 돈을 송금하고 나서 큰 한숨을 내 쉰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우선 백만 원만 부쳐달라는 종엽의 말이 떠오른다.

“우선 백만 원이라면 더 들어갈 수도 있는 말이 아닌가?

대체 잠시 잠간의 졸도가 아니란 말인가?”

귀숙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끝까지 말리지 못한 이 결혼에 대해서 자신이 엄마로서 너무 무능한 것

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제대로 뒷받침을 해 주지 못한 자식들이다.

그러기에 자식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다 들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서로 사랑한다면 다른 것은 따지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병약해 보이는 새아기의 건강이 걱정이 되면서도 설마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이 믿

었던 것이 후회가 된다.

그러나 이제 어쩔 것인가?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귀숙은 마음을 다스리며 부지런히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집안은 모두 새아기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이 오고 가고 있다.

너무 병약해 보인다는 등 너무 말라서 보기 흉하다는 등의 좋지 않은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귀숙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주방으로 가서 술상을 본다.

뒤숭숭하게 밤을 보내고 나서 귀숙은 새벽에 출근을 한다.

큰 시누이가 모든 것을 해 내기로 한 것이다.

집안에 손님이 있다 해도 더 이상 결근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간신히 점심시간까지 일을 하고 나서 아들에게 전화를 해 본다.

“새 애기의 상태가 어떠냐?”

“조금 전에 병실로 옮겼습니다.

우선 안정을 취해야 한다기에 일인용 병실로 옮겨 치료 중에 있습니다.“

”대체 무슨 병이더냐?“

”그냥 너무 무리를 해서 그런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시 마세요.

이삼일 상태를 봐서 이 사람이 다니는 서울의 병원으로 후송할 계획입니다.“

“뭐?

서울로 후송이라니?

아주 심각한 상태냐?“

”그것은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이제 정신이 깨어났고 안정을 취하는 일만 남았으니 두고 봐야지요.“

전화를 끊고 나서 귀숙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너무 말랐고 병색이 들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것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결혼

을 시켰다는 것이 자꾸만 후회로 다가온다.

가깝기나 하다면 당장이라도 뛰어가 볼 것이지만 제주도라면 오가는 비행기 값이 만만치 않을 것

이다.

그 먼 곳을 하루 이틀 거리도 아니고 직장을 계속 결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래저래 귀숙의 마음은 불안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제대로 먹은 것이 없다.

자꾸만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집에 돌아오니 이미 모든 친척들이 돌아가고 난 후였다.

시누이 역시 점심을 먹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바쁜 사람이 며칠 집을 비웠으니 마음이 급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다.

“종엽이에게 연락을 해 보았소?”

고흥수의 물음이다.

“네!

낮에 전화통화를 했어요.“

“뭐라고 해요?”

“아직 상태를 더 두고 보고 경과를 봐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을 할 계획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병이 있어도 큰 병이 있는 것이 아니요?

정상적인 아이가 결혼준비가 힘들었다고 비행기 안에서 혼절을 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 아

닌 것 같소.“

”그렇다고 해도 이제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저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야지요.“

”아무래도 이 결혼은 우리가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냐?“

두 부부의 대화에 임씨가 끼어든다.

“어머니!

사기라니요?

말씀을 그렇게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냐?

잠시도 아니고 서울로 후송을 한다는 말 자체가 큰 병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더

냐?“

”일단 아이들이 돌아와야 모든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종엽이가 처음부터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

까?“

”아고, 사람이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거덜이 나는 법인데 이 일을 어쩌면 좋을지 앞이 캄캄해진

다.“

”..................“고흥수와 귀숙은 그런 노인의 말을 그저 듣기만 한다.

어른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안이야 거덜 나고 말고 할 것은 없겠지만 아들의 앞날이 뭐가 되겠는가?

참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귀숙은 답답한 마음에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간다.

차라리 일을 하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근심 걱정이 줄어들 것이고 남은 모든 것들을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하는 귀숙이다.

남은 음식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없는 모든 그릇들이 다 나와 있는 상태다.

설거지는 말끔하게 모두 다 해 놓았지만 정리를 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귀숙은 모든 것을 정리를 하면서도 근심과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또 다시 전화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는다.

어떤 변동이 있으면 다시 연락을 해 오리라는 마음으로 전화벨 소리에 모든 신경을 쓰고 있다.

종엽은 전화를 해 오지 않는다.

귀숙이 하루에 한 번씩 전화로 상태를 알아보지만 답답한 마음뿐이다.

그렇게 열흘정도를 제주도 병원에서 보내고 나서 다시 서울로 이송한다는 연락이 온다.

엠블란스로 비행장까지 가고 서울 공항에서 병원 엠블란스가 기다리기로 예정이 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귀숙은 더욱 큰 한숨을 내 쉰다.

종엽이 그렇게 오주영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와 대학병원에 입원을 시켰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고

흥수와 귀숙은 병원을 찾는다.

시간이 없는 그들은 일이 끝나고 난 이후 늦은 저녁에 병실을 찾는다.

역시 일인용 병실이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