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소설&드라마

[스크랩] 달동네 사람들 01회~10회

淸山에 2013. 4. 2. 19:10

 

 

 

 

제 1장

장마철이라고 해도 지루하게 내리 퍼붓는 빗소리에 귀숙은 잠에서 깨어난다.

밤새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몇 시나 되었소?”

남편 고흥수는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켠다.

귀숙은 시간을 보기 위해 불을 켠다.

새벽 네 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비가 오지?”

시어머니 임씨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담배를 찾는다.

“밤새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어요.”

“으쩌냐?

오늘도 아범은 또 공치게 생겨서 으쩔꺼이냐?”

임씨는 담배를 깊숙하게 빨아드린다.

비가 내리는 날은 일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죽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일을 나가는 며느리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고 보기에도 딱하다.

귀숙은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한다.

다섯 시가 되면 집을 나서야 한다.

새벽부터 하는 청소부 일을 하고 있는 귀숙이다.

새벽에 집을 나서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 만큼 퇴근시간이 일러서 집안 살림을 하는 데는 더 없이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위로 아들 하나에 딸 셋을 밑으로 두고 있는 그들 부부다.

아들 종엽이는 고 삼 수험생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을 보내기 위해 그들 부부는 힘든 줄을 모르고 억척스럽게 일을 하며 돈을 모은다.

방이라고 세 칸이 있지만 시어머니와 한 방을 쓰고 있는 부부였다.

방 한 칸에 딸 셋이 쓰고 제일 작은 방이 아들 방이다.

유일하게 독방을 혼자 쓰고 있는 아들이다.

아들의 공부를 위해서 시어머니와 한 방을 거처하고 있는 부부였다.

딸들 방 역시 넓지 않은 방이기에 책상을 들여놓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제 각각의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딸들이다.

“어머님!

밥솥은 타이머를 맞추어 놓았으니 더 주무셔도 됩니다.”

세수를 하고 들어온 귀숙은 시 어머님께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시는 것을 보며 하는 말이다.

“잠이 깼는데 모할라꼬 다시 자리에 눕노?

그나저나 니 고생시러바서 우짜노?”

“어머님!

비가와도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데요.

아범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저라도 이렇게 나갈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워해야지요.”

방안은 두 사람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로 가득하다.

“종엽 아부지!

새벽 담배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새벽에는 어머님과 당신이 담배를 참으셨으면 좋겠네요.”

“답답하니 그렇지.

벌써 열흘 째 일을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이 달에는 완전한 적자 아닌가?”

“그것을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해요?

모두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어쩌겠어요?”

고흥수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미장이다.

다른 일보다 미장일은 비가 조금만 와도 쉬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장마철만 되면 꼼짝도 할 수 없는 것이 고흥수의 일이다.

귀숙은 시간을 보며 몸을 일으킨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려는 것이다.

밤새 내린 비로 인해 출근시간이 더 걸릴 것을 생각해서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오야!”

고흥수는 대문까지 따라 나온다.

“비가 오는데 들어가요.

새벽부터 뭐 하러 비를 맞고 그래요?”

“다녀오시오.”

고흥수는 귀숙이 골목을 다 빠져나가도록 대문밖에 서 있었다.

“이런 젠장 헐 놈의 것!”

고흥수는 가래를 탁 뱉고 나서 집안으로 들어간다.

임씨는 주방으로 간다.

어제 저녁 국과 반찬을 모두 준비를 해 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손자를 위해 계란 프라이라도 해 먹일 생각이다.

공부하느라 수척해진 손자의 얼굴이다.

그 넘의 공부라는 것이 뭔지 손자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가는 것이 마냥 안쓰럽고 보기에 딱하다.

“어머니!

저도 종엽이와 밥을 먹고 아버지 산소에 다녀올까 합니다.

이 많은 비에 행여 손 볼 곳이 없나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그리해라!

하루 죙일 사내가 집안에만 있는 것도 보기 싫다.”

임씨는 조금은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 된다.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내고 나면 아들의 땅이 꺼지는 한숨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답답하다.

이제 막 칠순을 넘긴 임씨였다.

온 몸이 아픈 곳이 여기저기 많다.

며느리를 대신해서 살림을 맡아서 하고는 있지만 몸이 마음먹은 대로 따라주지 않고 있기에 늘 며느리 보는 것이 미안스럽다.

그나마 아들이 쉬지 않고 일을 나가는 날은 마음이 조금은 가볍지만 이렇게 장기간 일을 하지 못하고 집에 죽치고 있는 날은 더욱 답답해진다.

임씨는 주방으로 나가 술병과 간단한 안주를 쟁반에 담아서 가져온다.

안주라고 해야 별 것이 없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다.

임씨는 늘 아침을 먹기 전에 소주 한잔을 마시곤 한다.

무겁고 아프던 몸이 말짱해지는 것이다.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임씨다.

고흥수는 말없이 술잔을 비워내고 나서 푹 고아진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그 시간 골목은 집집마다 환하게 불이 켜진다.

거의가 새벽이면 일을 하러 나가는 고만고만한 집들이다.

긴 장마에 남자들 대부분이 집에 있어도 여자들은 일을 나가야 하는 직업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태풍이 몰아쳐도 그녀들은 쉴 수가 없다.

바쁘고 고달픈 하루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어김없이 찾아 든다.

임씨는 아이들을 깨운다.

“어여들 일나그라!”

종엽이는 부스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나와 이미 차려진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든다.

늘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면서 밥부터 먹고 나서야 세수를 하는 종엽이다.

종엽이를 시작으로 고 삼, 고 일, 중 이학년과 초등학교 육학년인 막내까지 모두 일어나 방에서 나온다.

아이들은 이년 터울들이다.

큰 딸 종희, 종은, 그리고 막내 딸 종선이다.

고흥수 역시 종엽과 함께 밥을 먹는다.

아버지의 묘소에 다녀오려면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산소가 무너진 곳이 없는 가 살펴봐야만 그나마 안심이 된다.

다행스럽게 비는 조금 잦아든다.

밥 수저를 놓기가 바쁘게 냉장고에 있는 소주 한 병과 마른 오징어 한 마리를 챙겨 넣고 주방으로 와서 일회용 컵과 나무젓가락을 등산 가방에 넣고 종엽이보다 한 발 먼저 집을 나선다.

이제는 도로가 개통이 되어서 경북에 있는 영주까지도 두세 시간이면 도착한다.

고흥수는 마침 떠나려는 영주 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비는 이제 많이 잦아들었다.

오늘까지만 내린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맞아 들어가려는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출발을 하는 차창을 내다본다.

그 시간 임씨는 가늘어진 빗줄기를 보며 담배를 태운다.

남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하나뿐인 아들을 따라 서울로 올라온 것도 벌써 이십 여 년의 세월이 다가온다.

손자 종엽이가 돌도 되기 전에 농토를 정리해서 올라온 서울이다.

남편과는 워낙 나이차이가 많이 났던 임씨였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와서 보니 당신과 세 번째 결혼을 한 것이다.

모두들 자식을 갖지 못한다는 이유로 헤어지고 십팔 년이라는 나이차이가 있는 어린 여자인 당신이 세 번째 여인네로 들어온 것이다.

이 아들을 위로 두 아들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간신히 얻은 아들이었다.

그리곤 밑으로 두 딸을 둔 임씨였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나서 결혼을 시킨 아들이 서울로 이사를 가겠다고 결정을 했을 때 별 반대를 하지 않고 아들의 뜻을 따라 서울이라는 곳에 발을 디디며 농토를 정리해서 가지고 온 돈으로 바로 이 집을 구입했다.

달동네의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대지 삼십 여 평뿐인 손바닥 만 한 집이지만 워낙 손재주가 있는 고흥수는 집을 손보며 개조를 하고 방을 늘리고 해서 대문 옆에 방을 만들어 세를 놓고 조금씩 나오는 월세를 아이들의 간식비로 충당을 한다.

서울로 올라온 고흥수와 귀숙은 아이들과 살림을 어머니께 맡기고 돈을 번다.

노동판으로 나가서 배운 것이 미장일이다.

귀숙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왔다.

남의 집 파출부에 식당 일에 무엇이든 닥치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부지런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귀숙이 지금의 청소부 일자리를 얻은 것이 벌써 오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비록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매달 일정한 날에 들어오는 돈은 큰 몫 돈이 된다.

게다가 의료보험과 산재 보험에 가입이 되어 온 가족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퇴직금이 보장이 된다는 것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귀숙은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아들이 무사하게 대학에 합격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아들의 뒤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고 삼 엄마들은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나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는 자신은 누우면 그저 골아 떨어지고 아들이 언제 잠을 자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제대로 학원도 변변히 보내지 못한 아들이다.

일류대학은 아니라 하더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만 들어 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종엽이는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상위권에서 밀려나 중 상정도의 실력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지 모르지만 지방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면 아들의 하숙비가 더 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밑으로 여전히 딸 셋을 가르쳐야 하기에 더욱 힘들어진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나니 비는 그쳐 있다.

“이젠 그만 왔으면 좋으련만……….”

내일부터라도 남편이 일을 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자신이 아무리 벌어봤자 남편의 수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비만 오지 않으면 거의 쉬지도 않고 일을 나가는 남편이다.

옛날 같지 않고 미장일의 일당이 적은 액수가 아니다.

한 달 꾸준히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형편이 좋을 것이다.

귀숙은 퇴근을 하는 길에 시장에 들린다.

동네에 있는 재래시장이다.

전국에서도 꽤 유명한 큰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는 것도 많은 보탬이 된다.

늦은 시간에 나가면 떨이를 하는 야채들이 제법 싼값에 구입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가끔은 저녁을 먹고 시장에 나가보는 것이다.

귀숙은 종엽이를 위해 큰마음 먹고 사골을 산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아프시다는 시어머님과 시험 준비를 하는 아들을 위해서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사골을 사고 과일을 조금 산다.

딸들이 걸리기는 하지만 가족 전체가 먹을 수 있는 양을 사려면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하기에 조금 사면서도 마음이 찜찜해진다.

수박이라도 한 덩이 사 들고 들어 갈 수만 있다면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참외 몇 개만 사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이렇게 비싼 사골을 어찌 사 온 거이냐?”

시어머니 임씨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머님!

어머님과 종엽이를 위해서 샀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요즘 많이 힘들어 하시는 것 같고 종엽이도 시험공부를 하느라 많이 지쳐있고 해서 큰마음을 먹고 샀습니다.”

“나야 뭐………

우리 종엽이와 애비가 먹는 것이 션찮아서 걱정이었는데 잘 되었다.”

임씨는 아들과 손자를 먹일 생각에 사골을 물에 담근다.

손녀딸들은 임씨의 안중에 없다.

오직 종엽이와 아들뿐이었다.

무엇이라도 아들과 종엽이를 더 챙기시는 시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귀숙은 큰 한숨을 내 쉰다.

당신도 여자이시면서 여자를 가볍게 생각하시는 시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원망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워낙 아들이 귀한 집안이다.

남편 역시 외아들로 자라 아들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던 시어머님은 아들보다 딸들이 더 많은 것이 늘 불만이신 것이다.

딸들에게 미안하고도 죄스럽다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자책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첫 아들을 낳고 밑으로 내리 딸만 낳은 것이 늘 죄스럽다.

자식 일이야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딸 셋 중에서 아들 하나만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역시 귀숙도 버릴 수 없는 아쉬움이다.

딸 셋을 내리 낳을 때마다 시어머님의 한숨소리와 찬바람이 도는 냉대를 말없이 견디어야 했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받아드리곤 했다.

시어머님의 종엽이 사랑은 유별난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일을 하러 나가면서 더욱 눈에 뜨이게 딸들과 차별이 심한 것을 보곤 하지만 모른 척 눈을 감아 버린다.

자신으로서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인 귀숙이다.

자신 또한 자라면서 딸이라고 많은 구박을 받고 자란 귀숙이다.

귀숙은 자신을 절대로 딸을 구박하지도 않고 차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지만 막상 계속 딸만 셋을 낳고 보니 서운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마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생겼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는 귀숙은 자신의 딸들만이라도 그런 대우를 받지 않고 자라게 해 주려는 배려를 하지만 늘 시어머님의 꾸중을 듣기도 한다.

없는 살림에 모든 것을 다 채워 줄 수 없다는 것이 늘 가슴이 아프다.

무엇이건 오빠에게 양보를 하고 아들이라는 특권으로 인해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오빠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딸들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을 하고 이해를 하는 귀숙이다.

가난이 죄는 아니라고 해도 가난으로 인해 받는 고통은 참으로 힘들다.

모든 것을 참아내야 하는 인내를 길러야 하고 가난으로 해서 겪는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귀숙은 어떻게 하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

허나 그것은 마음먹은 대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이 달동네의 가난한 삶에 언제나 힘들고 지치는 매일의 연속이다.

 

 

 

 

제 2장,

무더운 여름도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가을의 문턱이다.

여름내 그렇게도 퍼붓던 비가 이제는 가뭄이 든다고들 한다.

이제 종엽이는 카운트를 세면서 입시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두들 곤한 잠에 빠지고 집안은 고요하다.

종엽이는 잠을 쫓기 위해 두 눈을 비비며 긴 기지개를 켠다.

앞으로 시험일 까지는 삼십 여 일이 남아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공부에 집중을 한다.

갑자기 후당탕탕 하면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야 이새끼야!

죽여, 어서 죽여봐!”

종엽이는 머리를 감싸 쥔다.

또 다시 옆집 부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물건을 때려부수는 소리 사람을 때리는 소리 여자의 악을 쓰는 욕설 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고흥수와 귀숙이 잠에서 깨어 안방의 불을 밝힌다.

“아유, 또 시작이 되었네!

우리 종엽이 공부를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해?”

임씨 역시 일어나 앉는다.

“당신이 가서 어떻게 좀 해 봐요.”

고흥수는 옷을 주점주점 입고 밖으로 나간다.

싸움은 어찌나 크게 악을 쓰며 물건들을 때려부수는지 이미 잠을 깬 동네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누군가 그 집의 대문을 두드린다.

“이거야 원!

어서 문 열어!

여기 당신네들만 살아?

야심한 밤중에 온 동네를 다 깨우면 당신네들이 우리를 책임 질 거냐고?”

화가 나서 남자는 발로 대문을 걷어차며 악을 쓴다.

그러나 대문은 열리지 않고 더욱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붓는 소리만 커진다.

“야!

좀 조용히 하지 못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툭하면 싸움질을 해대며 온 동네를 다 깨우고 있으니 어디 이런 것들이 있어?

어서 문 열어!”

잠시 뒤에 대문이 열리며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한다.

“이봐!

싸우고 싶으면 멀리 나가 싸우든지 온 동네를 다 깨우면 당신이 일을 나가지 못하는 일당이라도 줄 거야?”

“죄송합니다.”

옆집 김씨는 연신 사죄를 한다.

그러나 안에서는 엉엉거리며 큰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귀숙은 안으로 들어간다.

“이봐!

혜영엄마!

대체 지금 몇 시인 줄이나 알아?

제발 좀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살자. 응?

우리 종엽이 시험공부하고 있는 것을 몰라서 이래?”

“아줌마!

저 새끼가 술을 처먹고 들어와 사람을 개 패듯 패는데 어떻게 해요?”

여자는 울음소리를 더 크게 내면서 악을 쓴다.

“자네가 건들지 않으면 혜영아빠가 먼저 시작하는 것은 아니잖아?

좀 조용히 좀 살자. 응?”

귀숙은 여자를 달래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술을 처먹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아직도 젊은 혜영엄마는 큰 소리로 악을 쓴다.

“글쎄 좀 조용히 해!

온 동네 사람들 모두 깨우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귀숙은 큰 소리를 내어서 나무란다.

“엉 엉 엉!

내가 저 자식만 만나지 않았더라도 이 고생은 하지 않을 사람이란 말이에요.

엉 엉 엉!”

“이봐요!

정말 그렇게 큰 소리로 악을 쓰며 울 겁니까?

대체 이 동네 너희들만 살아?”

골목 끝 집의 민씨 아저씨였다.

그제야 혜영엄마는 움찔 한다.

“이사 가!

너희들 같은 것 때문에 더 이상 피해를 볼 수 없으니 여기서 이사를 가!”

민씨 역시 새벽에 일어나 일을 나가야 하는 사람이다.

민씨의 서슬은 시퍼렇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김씨는 두 손을 모아 빌면서 사죄를 한다.

“또 한 번만 이런 소란스러움이 있다면 내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서 나가라고 할 것이니 명심하라고.”

“네!

잘 알겠습니다.

더 이상은 피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민씨는 대문을 나선다.

“기집 년이 더 악착을 떨고 있으니 잘 될 집구석은 애초에 틀려먹었어!”

혜영엄마는 얼굴이 굳어진다.

자신을 들으라고 일부러 큰 소리를 내어 말을 하는 민씨라는 걸 알고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린다.

“이제 좀 조용히 합시다.”

귀숙도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흥!

무슨 대단한 인간들이라고 남의 부부싸움에 끼어들고들 난리들이야?

내 원 참 더러워서 살수가 있어야지.”

귀숙은 다시 돌아서며 혜영엄마를 돌아본다.

“왜요?

내가 못할 말을 했어요?

동네사람들 때문에 부부싸움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곳이 어디 있어요?

이사 가면 될 거 아니에요?”

“그래, 이사를 가!

이사를 가지 않으면 나라도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서 사람을 바꾸라고 하겠다.”

귀숙 또한 화를 낸다.

“걱정하지 말아요.

살라고 잡아도 이사를 갈 겁니다.”

귀숙은 더 이상 상대를 할 수 없음을 알고 그 집에서 나온다.

안하무인도 이런 경우는 없는 것이다.

동네에서 일을 다니지 않고 있는 유일한 여자였다.

아직 혜영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어린 아이를 놔두고도 일을 다니는 달동네 사람들이다.

“종엽아!

오늘은 그만 자라!”

귀숙은 아직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들을 보며 말을 한다.

“잠시 푹 쉬어주는 것도 좋지 않겠니?”

시간은 자정을 훨씬 넘어 한시로 치닫고 있다.

종엽은 엄마 말대로 그대로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간다.

귀숙은 종엽의 이부자리를 봐 주고 불을 끄고 안방으로 온다.

남편과 시어머님은 나란히 담배를 태우고 있다.

“그만 자요.”

“이거야 원 시끄러워 큰일 나지 않았나?

아이가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무슨 대책이 없을까?”

“대책은 무슨 대책이 있겠어요?

사람 사는 것이 천태만상이지요.”

귀숙은 자리 속으로 몸을 눕힌다.

빨리 잠이 들어야 할 것인데 눈은 말똥거린다.

남편 역시 잠이 쉬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번 조부님 제사를 어쩐다?”

며칠 있으면 다가오는 조부님의 제사 걱정이다.

“어쩌긴 뭐가 어째요?”

“종엽이 시험이 코앞인데 제사를 지낸다고 집안이 분주할 것이 아니요?

제 고모들도 올 것인데……..”

“그런다고 제사를 모시지 않을 수는 없지요.

종엽이를 도서관에서 늦게 오라고 해야지요.

종엽이 없이 제사를 지내도 되지요?”

“…………………………..”

“그리 해도 된다.

우리 종엽이가 공부가 우선 아이가?“

어둠 속에서 이들의 말을 들은 임씨의 대답이다.

남편은 묵묵부답이다.

아들이 없이 자신 혼자서 지내야 하는 제사가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귀숙은 어느새 잠 속으로 빠져든다.

귀숙은 제사 준비로 마음이 분주하다.

사대 조를 모시는 남편이다.

고조부로부터 장손으로 내려온 집안이다.

그것도 간신히 아들 하나씩만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고흥수의 조부께서 마나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재취를 얻어서 자식을 낳으신 것이 지금의 고흥수 사촌들이다.

작은 집 형님은 고흥수 보다 나이는 더 많지만 늘 고흥수의 아래 서열이다.

조부님의 제사에 참석을 해야 할 사촌들은 서울에 사는 사촌 하나만 참석을 하고 그 외에는 멀다는 이유로 불참을 한다.

동서도 없는 귀숙은 모든 일을 혼자 해 내야만 한다.

누구 한 사람 의논을 할 사람도 없다.

늘 시어머님과 남편의 뜻대로 준비를 하는 제사였다.

이제는 딸들이 성장을 해서 엄마의 일손을 많이 돕는다.

맏딸인 종희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손을 거들고 나선다.

“엄마!

우리도 제사를 간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이제 철이 든 종희의 말이다.

“많이 간편해 진 것이다.”

“요즘 세상에 어느 집에서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마련해서 제사를 지내요?

우리는 너무 제사 지내는 것에 대해서 음식을 많이 해요.”

“그럼 어떻게 하니?

이것도 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새벽잠을 자지도 못하며 벌어서 이렇게 제사 지내는 것에 몽땅 쏟아 붓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이 음식들 모두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것이 얼마나 많아요?”

종희는 엄마가 힘들게 벌어서 이 모든 것을 허비한다는 생각을 한다.

“………………………….”

그 말은 딸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귀숙이다.

요즘 아이들 떡도 안 먹는다.

또한 제사상에 올리는 유과나 전들을 아이들이 잘 먹지를 않는다.

경북지방이 고향이라 배추전이 빠지면 안 된다.

배추전과 미나리 부추로 전을 부치고 동그랑땡과 동태 포를 부쳐야 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일이다.

특히나 빠지지 않는 돔배기(상어)는 탕 국에도 들어간다.

삼색 나물은 물론이고 소고기와 조기 그리고 간고등어 또한 빠지지 않는다.

돼지고기 사태를 삶고 닭도 통째로 삶아서 올려 진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어머님인 임씨는 집에서 반드시 두부를 만들어 쓰시는 것으로 알고 더욱 분주했던 제사였다.

일 년이면 아홉 분(조부님이 두 분의 아내)과 두 번의 설 명절을 합하면 열 한 번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 집이다.

맏딸인 종희의 말대로 제사를 지내려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

아끼려고 해야 아낄 수도 없는 것이다.

때로는 허리가 휘청거린다.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은 달이면 더욱 힘들어진다.

아무리 아끼고 줄이려고 해도 시어머님의 심기가 불편해지고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종은아!

어서 나와서 거들어!”

종희는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종은이를 소리쳐 부른다.

그러나 좀처럼 종은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워낙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종은이다.

“얼른 안 나오고 뭐해?”

“공부하는데 왜 불러?”

종은이의 뽀루퉁한 음성이다.

“너만 공부하니?

나는 공부할 것이 없어서 이러고 있니?

어서 손 씻고 이것을 부치란 말이야!”

종희가 심통스러운 말을 한다.

“엄마도 아무 말 안 하는데 언니가 왜 그래?”

종은이는 심술이 난다.

일을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종은이다.

“종은아!

바쁜데 도와주면 좋겠다.”

엄마의 말에 종은은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일손을 돕는다.

할 일이 태산이다.

일을 하는 종은이는 얼굴이 우거지상이 된다.

거의 저녁때가 되자 큰시누인 영이가 먼저 도착을 한다.

그런 고모들을 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종희였다.

조금 일찍 와서 엄마의 일손을 거들어 주었으면 하는 종희는 고모들이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도착을 해서도 고모들은 일손을 거들 생각을 하지 않고 늘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느라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제사가 끝나고 나서도 고모들은 부엌에는 나가지 않고 엄마 혼자 늘 그 많은 설거지를 다 해 내곤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는 종희로서는 고모들이 오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종희야!

가서 큰고모께 인사를 드리고 오너라!“

일을 하고 있는 종희를 보면서 귀숙이 나무란다.

“엄마!

지금 어떻게 인사를 해요?

이렇게 일이 잔뜩 밀려 있는데 인사가 뭐가 급해요?“

”잠시 불을 끄고 나갔다오면 될 것이 아니냐?

인사를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못할 것이 없지 않니?“

그러나 종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엄마 말대로 인사를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희는 그럴 마음이 없다.

늘 고모들이 오기만 하면 엄마는 부엌을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이 종희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런 종희의 마음을 아는 귀숙은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제 3장,

큰 시누인 영이는 그다지 멀지 않은 제천에 살고 작은 시누인 영숙은 춘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이는 남편이 우체국 공무원으로 우편배달부다.

참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영이 또한 억척스럽고 부지런하다.

아들만 셋을 두고 있는 영이는 박봉의 남편 월급만으로는 아들들은 제대로 가르친다는 것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임을 알고 농사를 짓고 있다.

얼마나 억척스럽게 농사를 짓는지 처음에 남의 농토를 빌려서 시작한 농사가 이제는 제법 자신의 농토를 마련하고 논도 구입을 해서 논농사도 함께 짓는다.

경운기는 물론이고 콤바인까지도 다룰 줄 아는 억척스러움을 보이고 있다.

영이는 보따리를 이고 들고 하면서 대문을 들어선다.

“시상에나, 뭔 보따리가 이리도 많다냐?”

시어머니 임씨는 딸아이의 머리에 있는 보따리를 받아 내린다.

귀숙 또한 일하던 손을 멈추고 물건들을 받아 내린다.

그리곤 약속이나 한 듯이 영숙이 뒤따라 들어선다.

“언니가 지금 도착한 모양이네!”

“어서 온나!”

욕심이 많은 영숙은 영이가 가지고 온 보따리들을 풀어 헤친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 가져갈 것이 없나 하고 살피는 것이다.

영숙의 그런 마음을 아는 영이는 영숙을 보며 말을 한다.

“야야, 이거는 손대지 마라.

너희 것은 이미 택배로 보냈다.”

영이는 영숙의 욕심을 안다.

무엇이라도 움켜쥐면 내 놓지 않는 영숙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랬어?

그럼 그렇다고 전화라도 하지?”

“오면 이리 볼 것인데 뭐 한다고 전화비를 들여?

여그 오면서 택배를 불러 보내고 왔다.”

“언니!

금년 농사 잘 되었수?”

“그냥 그럭저럭 되었다.”

귀숙은 보따리에서 나오는 것들을 보면서 고마워한다.

참기름에 들기름 참깨 고춧가루와 각종 잡곡들이 들어 있다.

“큰고모!

농사짓기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데 일일이 이렇게 챙겨오세요?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 정말 미안해요.”

“언니!

내가 이렇게라도 언니에게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을매나 좋은지 알아요?

힘들게 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아가는 언니가 항상 고맙지요.”

“제가 어머님을 모시고 사나요?

어머님께서 저희들을 데리고 살아주시는 거지요.”

그 사이 영숙은 부엌으로 들어선다.

“넌 고모들이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냐?”

“일손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요?”

종희가 고개를 끄덕하면서 하는 말이다.

“아직도 할 일이 많냐?”

“그럼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거들어야 일이 끝나겠구나!“

”고모!

이런 날은 좀 일찍 오셔서 일을 도와주시면 안 돼요?

우리는 모두 공부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종희가 심술 난 음성으로 말을 한다.

“내가 어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냐?

이렇게 늦게라도 오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내기 힘든 사람이다.“

”우리 엄마는 놀고 있나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와서 제사 준비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일 년이면 제사를 지내느라 진이 다 빠져버릴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요.“

”어디 네 엄마만 그러고 살겠니?“

종희는 더 이상 고모하고 말하는 것을 중단한다.

종은은 작은 고모가 달려들어 일을 하자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집안은 갑자기 시끌시끌해진다.

뒤이어 사촌인 시동생과 남편도 귀가를 한다.

일손이 많다 보니 얼마 되지 않아 제사상 차림이 완성되어간다.

시간은 아직 이르기 때문에 그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잠시 꽃을 피운다.

“종엽이는 어느 대학을 지망하고 있어요?”

영이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나이의 조카인 종엽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어느 학교든 서울에 있는 대학만 들어가면 좋겠어요.

지방 대학을 가게 되면 하숙을 시켜야 하는데 하숙비가 어디 만만하겠어요?”

“그래도 종엽이는 공부를 잘해서 그리 되겠지요.

우리 기찬이 놈은 농사일을 더 좋아하니 공부는 뒷전이라 대학을 가려는지 걱정스럽네요.”

“참, 언니두!

뭐가 걱정이유?

지가 좋아하믄 농사꾼이 되도 좋지요.”

영숙이 한 마디 거들고 나선다.

“니도 민재가 대학을 안 들어간다고 하면 좋겠냐?”

“나야 우리 민재 하나뿐이니 그렇지만 언니는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은 언니와 함께 농사를 짓는 것도 좋지 뭐!”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뿐인 영숙의 말이다.

제사가 다 끝나고 대충 설거지가 끝나고 나니 새벽 한시가 넘은 시간이다.

귀숙은 두 시가 다 되어가는 것을 보고 잠이 든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조용히 출근을 한다.

모두들 한 밤중이다.

시어머님조차 깊이 잠이 드셨는지 귀숙이 나가는 것도 모르신다.

마음 같아서는 귀숙이도 하루쯤 결근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이 결근을 하게 되면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이 그만큼 힘이 들어진다.

잠을 자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 두었던 제사 음식들을 가지고 출근을 한다.

새벽에 사람들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청소를 마치고 나면 잠시 그들만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그제야 아침들을 먹으면서 피곤하고 지친 몸들을 쉴 수가 있는 시간이다.

아침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점심때나 되어서야 직원들 모두 점심이 끝나고 나서 구내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는 그들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이 비어 있을 때 또 다시 그들은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빌딩은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담당이 주어진다.

그날 자신의 몫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주임의 지적을 받는다.

사무실과 복도 그리고 계단과 화장실로 구역이 나누어 일주일마다 돌아가면서 순번이 정해진다.

모든 곳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빈틈까지도 세밀하게 청소를 해야만 한다.

귀숙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적을 당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몫을 충실하게 일을 해 오고 있다.

고흥수 역시 시간이 되자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 출근을 한다.

임씨 역시 잠을 자는 딸들을 깨우지 않고 조용하게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낸다.

제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사촌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아들과 며느리가 출근을 하고 아이들 모두 학교에 가고 나니 집안은 조용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두 딸들 역시 잠에서 깨어난다.

“늦잠을 잤나 보네!”

영이는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며 늦잠을 잔 것이 미안하다.

“아직 더 잠을 자도 되는데 뭐 한다고 벌써 일어나냐?”

“올케가 고생이 많네요.

잠도 제대로 자지도 못했을 텐데 출근을 했으니 얼마나 힘들꼬?”

“그래, 애미가 고생이 심하다.

출근이 너무 일러서 새벽잠을 자지 몬하고 일을 하러 다니는 것을 보믄 마음이 쨘 하구마!”

두 사람의 이야기소리에 영숙도 깨어난다.

영숙은 빈손으로 와서는 얼마간의 돈을 어머니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엄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두고 쓰세요.”

“야야, 너 이카믄 안 된다.

너그 언니처럼 네 올케 손에 건네줘야 하는 거이 아닌가?

내사 시방 돈이 뭐가 필요하노?”

“그래도 없는 살림에 누가 엄마에게 용돈을 줘?

담배도 사 피우셔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는데 누가 해줘?”

“그런 걱정일랑 당최 하지 말거라!

네 올케와 오빠가 어디 이 애미 담배하고 술을 떨어트려 본 적이 있능가 말이다.

담엘랑은 네 올케 손에 쥐어 주그라.”

“숙아, 엄마 말씀이 맞다.

넌 언제나 엄마 손에 가만히 주고 가는데 그러면 안 된다.

엄마 용돈은 용돈이고 네가 할 도리는 해야 하지 않겠니?”

“피!

내가 그런 여유가 어디 있노?

엄마 드리면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지 왜 따로따로 해?”

“그럼 엄마 드리지 말고 올케를 줘!

그래도 사람이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숙은 들은 체 만체한다.

언제나 무슨 때면 빠지지 않고 꼭 참석하는 영숙이다.

허나, 무엇 하나 들고 오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살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영숙 또한 억척스러운 성품이다.

장사를 하는 두 부부의 억척스러움은 인근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그들 부부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한다.

춘천 시내에 아파트를 마련해서 살고 있고 점포 또한 남의 것이 아닌 자신들의 소유로 되어 있는 점포다.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으로 그 만큼 일구고 사는 사람들이다.

아들 하나만을 낳고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고 사는 부부들이다.

농촌의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 영숙의 남편은 농사라면 질색을 한다.

해도 해도 손에 쥐는 것 없이 허리 한번을 펴지 못하고 평생을 고생만 하시며 살아오신 부모님의 모습을 닮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며 두 사람이 힘을 합해서 장사를 하면서 억척스럽게 일구어낸 재산이다.

지금도 웬만한 일에는 결코 함부로 돈을 쓰지 않는다.

영이는 그런 영숙의 성품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밥상을 차린다.

얼른 한 술 먹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임씨는 그렇게 두 딸들이 떠나고 나자 갑자기 허전함이 밀려온다.

북적거리던 집안에 텅 빈 채로 혼자 남겨진 허전함이었다.

임씨는 담배를 물고 대문을 나선다.

골목 어귀에 있는 담배 가게를 찾아간다.

“나오셨수?”

임씨와 같은 또래의 쌍둥이 할머니가 담배 가게를 지키고 있다.

“할멈들 아직 안 왔소?”

“이제들 오겠지.”

“내 비빔밥을 맹글어 올까?”

“그러면 다들 입들이 벌어질 것이오.

헌데, 갑작스럽게 웬 비빔밥을?”

“어제가 우리 바깥시어른의 제사였잖수?”

“아, 이맘때가 제사였지?

아, 저기 꼬부랑 할매도 오네!”

동네 담배 가게는 할머니들의 사랑방이다.

오전 열 시쯤이면 너덧의 할머니들이 모여 담배도 피우고 며느리 흉도 보고 손자들 자랑도 하고

영감 욕도 하는 사랑방이다.

느즈막히 아침을 한 술 떠먹고는 며느리들의 눈치도 보이고 심심해서 나와 사람구경도 하고 당신

들 가슴에 쌓인 불만도 풀고 하는 곳이다.

“어서들 오우!”

임씨는 노인들을 반긴다.

“내 들어가 준비해서 나오리다.”

임씨는 나물과 전들을 아이들이 잘 먹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그것들을 치우기도 하고 시

간도 보낼 겸 제사 밥을 몽땅 큰 양푼에 넣고 비빈다.

제사 때마다 음식이 이리저리 채이는 것이 보기에도 영 마땅찮다.

밥을 비벼서 수저 너덧 개를 꽂고 뜨겁게 데운 탕 국을 가지고 나간다.

“우와!

정말 맛있겠는데?”

할멈들이 우르르 다가앉는다.

이렇게라도 먹는 날은 저녁때가 되어도 배고픈 줄을 모르는 날이다.

언제나 점심을 건너뛰어야 하는 할멈들이다.

일을 나가는 며느리들이 아침밥을 넉넉하게 해 놓고 나가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용돈을 쥐어주는 며느리들도 없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에야 남겨진 밥을 한 수저 떠먹고 나와서는 저녁때가 되어야 집으로

들어가는 할멈들이다.

그나마 조금의 여유라도 있는 할멈들은 경로당이라도 가서 점심도 먹고 화투도 치면서 추운 겨울

날 뜨끈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이렇게 수중에 돈 한 푼 구경하기 힘든 할멈들은 자연히 담배

가게로 몰려온다.

누가 내 쫓는 사람도 없고 함께 있는 친구들도 있고 또한 운이 좋은 날이면 이렇게 먹을 것도 생

기는 날도 있기에 늘 담배 가게가 사랑방이 된다.

임씨는 할멈들이 먹는 것을 보면서 담배를 태운다.

“딸들은 다녀 갔수?”

쌍둥이 할멈이 수저를 놓으며 임씨에게 묻는다.

“조금 전에 아침 한 수저 떠먹고는 부리나케들 갔지.

언제나 오면 그렇게 급하게들 가 버리곤 하지.”

“며느린 일을 나갔을 것이 아니요?”

“그야 이를 말이오.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새벽에 일어나 일을 나갔지.”

“얼마나 힘들까?

제사를 조금 줄여보지 그래요?”

“그런다고 조상님의 제사를 줄이고 성의 없이 해서야 쓰나?

조금 힘들더라고 모든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지.”

임씨의 대답에 쌍둥이 할멈은 그저 바라본다.

늘 푸짐한 제사상을 마련하는 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쌍둥 할멈은 그런 것이 모두 소용이 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자식들이 힘들어 버는 돈이다.

그런 돈을 그렇게 낭비하는 것은 자식들을 고생시키는 짓임을 알고 있는 담배 가게 윤씨 할머니다.

윤씨 할머니 역시 며느리가 직장을 다니고 있다.

집안 살림은 모두 맡아서 해 나가고 있는 윤씨 할머니다.

제사를 지내는 일만 해도 간단하게 준비를 한다.

제사가 끝나고 나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으면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준비를 하는 쌍둥 할머니

윤씨로서는 임씨의 성품을 이해할 수가 없다.

허지만 그 덕분으로 입이 즐거울 수가 있고 없는 할멈들에게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가난하고 없이 살아가는 달동네의 할멈들이다.

그런 할멈들에게 누가 밥 한술이라도 내 주겠는가?

할멈들은 눈치 볼 것도 없이 밥 수저를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간다.

 

 

 

 

 

제 4장,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하는 쌍둥이 할멈이다.

또한 출근을 하는 며느리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살아 있는 사람이 우선이고 그 다음은 조상님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이 좋은 것이라 생각

하며 간소하고 간단하게 준비를 하는 성품이다.

없는 살림에 힘들게 벌어서 제사에 몽땅 쏟아 붓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윤씨 할머니다.

할멈들은 밥 양푼이 다 비워지자 그제야 물러앉는다.

“이제 추워지면 이 집 제사를 연이어 먹을 생각하니 기다려지누만.”

어떤 할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 말에 대부분 할멈들이 동조를 한다.

언제나 제사준비를 푸짐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담배라도 좀 주슈.”

담배를 피우는 유씨 할멈이 꼬부랑 할멈에게 손을 내 민다.

“앗따!

입만 가지고 다니슈?

언제 한 번이라도 담배를 사서 피워본 적이 없는 얌체 머리하고는…..”

꼬부랑 할멈은 그러면서 담배를 건넨다.

“누가 돈은 주어야 말이지.

아들놈이라고는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와서 쥐어주는 돈이 많기라도 하나…”

또 다시 푸념들이 늘어진다.

이젠 배도 부르고 하니 걱정할 것이 없다.

딸에게 얹혀사는 유노파의 푸념이다.

“어서 죽어야지.

이젠 더 살아 뭐 하누?”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으며 하소연을 한다.

“그 놈의 쓰잘데기 없는 소리는?

죽기는 왜 죽어?

이렇게 좋은 세상 악착같이 더 살아서 좋은 것도 많이 먹고 살아야지.”

꼬부랑 할멈의 톡 쏘는 말이다.

허리가 꼬부라져 꼬부랑 할멈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성품이 대쪽 같다.

그래도 그 중에 가장 여유가 있는 할멈은 담배를 사도 한 보루씩 사간다.

나이가 들어도 장가를 가지 않는 아들과 단 둘이서 살고 있는 할멈이다.

누구 눈치 볼 것도 없고 아들이 주는 용돈은 늘 넉넉하다.

달동네에 살지만 그래도 새로 지은 빌라에서 살고 있는 꼬부랑 할멈이다.

경노 당 보다는 이곳이 더 좋아서 매일 이곳으로 오면서 가끔 손에 순대라도 사 들고 오기 때문

에 모두들 기다리는 할멈이다.

꼬부랑 할멈의 단 하나의 소원이 아들이 장가를 가는 것이다.

이제 당신도 칠십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나이이고 보니 아들을 밥해주는 것도 힘들지만 당신이

죽고 나면 아들이 어찌 혼자 살아 가려나 하는 생각을 하면 근심과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들이 직업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인물이 못생긴 것도 아니다.

키도 남들보다 크고 누가 보더라도 잘 생긴 아들이다.

남들이 알아주는 호텔의 주방장으로 있는 오십이 된 아들이다.

아무리 결혼을 하라고 종용을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아들이다.

동네의 닥지닥지 붙어 있는 집이 아니고 새로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빌라를 사서 단 두 식구

살아가고 있는 꼬부랑 할멈의 오직 하나의 소원이 아들이 여자를 데려다 살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결혼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임씨는 그렇게 서너 시간을 보내고 그릇들을 챙겨 가지고 들어온다.

며느리가 퇴근하고 오기 전에 집안이라도 더 말끔하게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지고 나갔

던 그릇들을 챙겨들고 온다.

아침에 큰 딸이 청소를 해 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시금 둘러보며 식구들을 기다려야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손녀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오냐!

어여 씻고 공부혀!”

종선은 손을 씻고 와서 냉장고에서 과일을 찾는다.

“시방 뭐 하능겨?”

“할머니!

과일 먹으려고요.”

“과일은 네 오빠나 주려고 하는데 손대지 마라!”

“할머니는 맨날 오빠 밖에 몰라!

맛있는 것은 감추었다 오빠만 주잖아?”

“그려!

너그들 모조리 쓸모 있는 것들이 있냐?

우리 종현이가 이 집안의 대들보인디 당연한 일이지.”

임씨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말을 한다.

그러나 종선은 얼른 사과 하나를 집어 방으로 들어간다.

종선이는 그런 할머니에게 불만이 많다.

늘 오빠만 끼고 도는 할머니가 밉기까지 하다.

반찬도 맛있는 것은 모조리 오빠나 아빠 차지다.

엄마나 언니들과 자신은 언제나 뒷전이고 아무렇게나 취급을 당하는 것에 때때로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난다.

지금도 냉장고에는 사과와 배 그리고 좋아하는 감과 귤이 잔뜩 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으레 오빠만 고기와 과일을 먹이는 할머니가 밉다.

사과를 다 먹고 나서 종선은 또 다시 할머니의 눈치를 본다.

감을 하나 더 먹고 싶은 생각에 할머니가 방에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얼른 냉장고를 열고 감을

꺼낸다.

“저……저년이 지 오래비 먹을 것도 남기지 않고 다 처먹으려고 해?”

“할머니!

아직도 냉장고에 과일이 많은데 왜 못 먹게 해요?”

“이년아!

종현이가 공부하느라 바짝 마른 것도 눈에 보이지 않냐?

뒀다 우리 종현이를 먹여야 하는데 어디다 손을 대?

어여 가져다 둬!”

임씨는 악을 쓴다.

손녀들이 먹는 것은 무엇이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손자 종현이는 과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것을 한 개라도 축내려는 종선에게 악을 쓰며 야단을 한다.

그때 집으로 들어오는 귀숙이 모든 것을 본다.

“어머님!

그냥 두세요.

어린 것이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요?”

임씨는 며느리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엄마!”

종선이는 자신을 감싸고도는 엄마를 보자 눈물이 글썽인다.

“어서 먹어!”

귀숙은 냉장고를 열고 귤과 감을 더 꺼내어 내준다.

막내가 아들이라고 믿었던 탓인지 시어머님과 남편은 늘 냉정하게 대한다.

더 이상 자식을 갖지 말자고 하며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러 간 귀숙을 불러낸 남편이었다.

어디서든지 아들이라고 한다며 아들을 하나 더 낳고 싶은 남편과 시어머님의 욕심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딸이 태어나자 아예 정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제대로 안아 주기는 커녕 아

무리 울어도 달래주는 법이 없었다.

귀숙은 그럴수록 막내딸이 가엽고 불쌍했다.

시어머님께 맡기고 일을 나갔다 오면 언제나 제대로 기저귀조차 갈아 채우지 않아 사타구니가 벌

겋게 부어 오른 아기를 안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귀숙은 옷을 갈아입고 막내가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엄마!”

“그래, 어서 먹고 공부해라!”

“할머니는 정말 무서워!”

“그렇지 않아!

지금 오빠가 시험을 앞두고 고생을 많이 하고 있으니 그런 거지.”

귀숙은 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 것인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온다.“

아냐!

할머니와 아빠는 날 싫어하셔!”

“그렇지 않아!

자식을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어?

모두 우리가 넉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무엇이든 많이 있으면 왜 그러겠니?”

귀숙은 종선을 다독여 준다.

“오빠 시험 끝날 때까지만 참아 주었으면 한다.

오빠가 시험이 끝나기만 하면 오빠보다 너를 더 많이 해 줄게!”

“엄마, 정말?”

“그럼, 우리 막내 엄마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종선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서 공부해라!”

귀숙은 방을 나서며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자식은 아들이든 딸이든 같은 것이다.

시어머님이나 남편처럼 아들이라고 더 끌어안고 딸이라고 냉대를 한다면 세상의 많은 딸들이 얼

마나 서러울 것인가?

시어머님은 그렇다고 쳐도 남편마저 시어머님을 따라가는 것이 때로는 섭섭해지는 마음이 들지

만 내색을 하지 않는다.

이제 집안은 온 가족이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온통 종엽이에게 맞추어져 있다.

먹는 것도 집안의 분위기도 종엽이를 위해서 있다.

종엽이는 온 가족의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

성적이 상위권에 머물지 못하고 늘 중 상으로 가는 종엽으로서는 부모가 기대하는 만큼 좋은 대

학에 들어갈 자신이 없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 보리라는 생각으로 코앞에 닥친 대입준비를 위해 잠자는 시간도

아낀다.

시험일이 다가오자 온 집안은 더욱 초긴장 상태가 된다.

시험 당일 날 고흥수와 귀숙은 일을 하러 나가지 않고 종엽을 데리고 시험장으로 가기로 한다.

하루 벌지 않는다고 당장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니 자식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리라

는 생각이다.

다른 학부모들 모두가 생업을 잠시 멈추고 시험장 밖에서 자식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초

조하게 기다린다.

기온이 떨어져 매우 춥다.

그러나 추위를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무 곳에도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 부부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신들께 기원을 올린다.

귀숙은 아들이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 주기를 빌어본다.

지금까지 제대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스럽다는 마음과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은 안타까움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들은 점심 먹는 것조차 잊으며 하루 종일 추위와 함께 시험장 밖에서 기다린다.

오후가 되어 마지막 시험지를 제출한 학생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온다.

기다렸던 가족들은 자식들의 모습이 보이자 서로 감싸 안고 사라진다.

고흥수와 귀숙 또한 종엽이의 모습을 기다리며 목을 길게 빼며 아들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다른 아이들이 거의 다 나올 때까지 종엽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보!

우리 종엽이가 웬일이죠?”

귀숙은 초조함을 누르지 못하고 안 절 부절이다.

“기다려봅시다.

시간이 있으니 충분하게 검토를 하고 다시 더 확인하는 것이 좋은 것이지.”

“그렇겠지요?

차분하고 침착한 우리 종엽이니까 그러겠지요?”

“……………………….”

두 부부는 연신 고개를 기다랗게 늘어뜨리며 운동장을 바라본다.

그렇게 기다리던 종엽이의 모습이 보인다.

“저기, 종엽이가 나와요.”

귀숙이 종엽이를 보며 얼굴이 밝아진다.

종엽은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곳으로 온다.

“추운데 들어가시지 않고 뭐 하러 기다리세요?”

“시험은 잘 봤지?

어렵지 않았어?”

고흥수는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다른 것은 나중에 묻고 어서 따뜻한 곳으로 가자.”

귀숙은 근처에 있는 중국집을 보며 아들의 손을 잡고 걷는다.

이미 중국집은 시험을 보고 나온 수험생들과 부모들로 꽉 차 있다.

간신히 빈자리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간다.

“뭐 먹을래?

네가 먹고 싶은 것을 시켜!”

종엽이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킨다.

자장면 두 개와 탕수육을 주문하고 뜨거운 엽차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호호 불면서 조금씩 마시

며 아들의 얼굴 표정을 살핀다.

“어렵지 않았니?”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어요.”

“그래,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결과를 기다리자.”

귀숙은 그렇게 아들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아빠!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지방에 있는 학교에라도 가야 하나요?“

종엽이는 불안한 듯 말을 한다.

“어떻게 지방에 있는 학교에 가겠니?

네 고생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생활비하며 방세를 어떻게 감당하고?”

귀숙은 종엽이 지방학교에 가게 된다면 드는 비용이 먼저 걱정이다.

“그럼 재수를 해요?”

“우리 기다려보자.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마당에 미리 걱정을 할 필요가 있겠니?

어서 식기 전에 맛있게 먹자.“

고흥수는 미리 사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지방이라고 해도 멀리만 아니면 집에서도 얼마든지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

옛날 같지 않아 학교 버스가 다니는 곳도 많고 교통편이 상당히 좋아진 요즘에 그런 것으로 미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귀숙은 아들의 성적이 상위권에 들지 못하는 것도 모두 부모책임이고 잘못이라고 생각하

면서 마음이 아파온다.

제대로 된 공부방 하나 없는 형편에서 상위권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고 이기심이

라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학원을 다니게 한 것도 아니다.

언제나 좁은 집안에서 시끄러운 소음과 싸움을 하며 공부를 해 오고 있는 자식들이다.

귀숙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줄을 모르는 형편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뿐인 두 부부의 노력은 그날이 맨날 변함이 없다.

귀숙은 매일 아침이면 출근을 하기 전에 아들 종엽이를 위해 기도를 한다.

딱히 믿는 종교도 없는 귀숙은 그저 시어머님께서 하시던 대로 두 손을 모아 빌면서 아들이 집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다.

깨끗한 물을 받아 옥상으로 올라가 두 손을 모아 빌고 또 빈다.

글: 일향 이봉우

 

 

 

 

 

제 5장,

이미 예상했던 대로 종엽은 그다지 우수한 성적이 아니다.

귀숙이 바라던 대로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니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대학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집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에 부부는 한시름 덜었다는 위

안을 삼는다.

사 년제 종합대학이라는 것과 집에서도 다닐 수 있는 교통편이 좋다는 것에 안심을 하면서 귀숙

은 대학입학금을 납부한다.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참으로 오랜 세월 모아온 돈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매달 조금씩 저축을 해 올 수가 있었음에 감

사드리며 많은 돈을 납부한다.

종엽이는 자신이 해 낸 일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처럼 힘들지 않게

입학금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종엽이의 대학생활은 시작이 된다.

그런 아들을 위해 지금까지 입던 옷과는 달리 옷 몇 벌과 신발도 새로 구입해주고 나니 허리가

휘청거린다.

겨우내 네 번의 제사가 연거푸 있고 구정을 지내고 하다 보니 이젠 조금의 여유가 없다.

임씨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음식을 가지고 나가 시간을 보낸다.

연이어 거푸 있는 제사이기에 식구들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 나물들과 전들을 이웃 할멈들과 나누

며 먹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

그런 재미들로 심심하지 않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임씨였다.

더구나 종엽이가 대학을 합격한 것을 몇 번을 자랑하며 이야기를 한다.

모든 할멈들은 임씨의 그런 말을 듣도 또 들으면서도 새삼스러운 말처럼 맞장구를 치며 축하를

해 준다.

봄이 되자 동네는 긴 기지개를 켜며 조금씩 움직임들이 활발해진다.

추운 겨우내 웅크렸던 개구리가 튀어 오를 준비를 하느라 구부리고 있는 모습처럼 동네는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해진다.

하루하루 일당으로 버티던 사람들이 봄철이 되면서 많은 일들이 주어지기 시작하자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동네의 분주한 모습들이다.

고흥수 역시 봄철이 되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나간다.

일요일도 휴일도 없이 한달 만근을 채울 수 있다.

귀숙이 또한 봄이 되면서 직장에서 조장으로 승진을 하면서 월급도 올라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가 없다.

“와!

엄마가 조장으로 승진을 했어요?”

큰 딸인 종희는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어멈아!

그러면 월급도 더 많이 나오는 거이냐?”

임씨는 승진을 했다는 것보다는 며느리의 월급이 더 많아진다는 것에 관심을 보이며 기뻐한다.

“우리 집이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다.

어멈이 승진을 하고 아범 또한 매일 쉬는 날도 없이 일거리가 밀려들고 우리 종엽이가 대학생이

되고 나니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다.”

“어머님!

이제는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생활이 되겠지요.

어머님께서 오래도록 건강하신 모습으로 저희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생활은 안정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귀숙은 힘든 줄도 모르고 더욱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봄이 그렇게 거의 다 지나고 초여름의 문턱에 들어서인지 덥다는 느낌이 들면서 일을 하면서도

땀이 쏟아진다.

귀숙은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보다 퇴근 전에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이젠 조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이 더 커진 것이다.

조그만 틈새라도 놓친 곳이 없나 하고 살펴야 하고 조원들의 계획표도 작성하고 모든 물품들도

관리를 해야만 한다.

자신에게 배당된 조원들이라고 해야 다섯 명이 불과하지만 그들에게 배당이 되는 물품들을 담당

해야만 하고 그들의 모든 지시사항들을 전달해야 한다.

물품들은 가지 수만 하더라도 상당히 많다.

걸레를 비롯해서 화장지와 수건, 고무장갑 세제와 세수 비누 청소복과 장화 등 모든 것을 자신이

관리를 해야 한다.

특히나 화장지와 세제와 비누 수건과 고무장갑 등은 조그만 관리를 못해도 없어지기 일쑤였다.

조원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지고 나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설득을 하고 이해를 시켜도 언제 없어지는지 사라져 버린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언제든지 많은 신경을 쓰게 하고 피곤하게 만들지만 귀숙은 그들을 이해하며

늘 넉넉하게 타 오려는 마음이지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귀숙은 시간이 날 때마다 조원들 하나하나씩을 설득해 나간다.

그 물건의 가치와 직장을 잃어버리는 것과의 비교를 하면서 설득을 한다.

물건들을 가져나가다 적발이 되면 그 자리에서 사직서를 써야 한다는 것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욕심을 내는 그들이었다.

하나같이 형편들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로서는 그런 사소한 물품들마저 생활에 보탬이 되고 있

다는 것을 모르는 귀숙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인해 소중한 직장을 잃어버릴 수는 없는 일임을 강조한다.

조원들은 서서히 귀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귀숙은 차에서 내려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장은 저녁 장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여기저기 외쳐대는 장사꾼들의 높은 목청과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풍

경은 언제 보아도 삶의 활력이 된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곳이 있어 귀숙 또한 그곳으로 간다.

속옷과 양말이 무척이나 싼값에 팔리고 있다.

너도 나도 더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해 아우성이다.

귀숙 또한 아이들을 생각해서 양말을 고른다.

양말조차 좋은 것이 차례가 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신다가 목이 늘어난 것이 아니면 조금 성하다 싶은 것은 모두 아이들의 몫이었다.

아이들이 커나가듯 양말도 남아나는 것이 없다.

한 켤레 오백 원이라니 공짜나 다름이 없다.

귀숙은 스무 켤레를 고르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 봐야 만원이다.

값을 계산하고 다시 시장을 한 바퀴 돈다.

생선전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싱싱해 보이는 각종 생선들을 본다.

어머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간 고등어가 싱싱하고 맛도 좋게 보인다.

“간 고등어 한 손에 얼마에요?”

“이쪽 것은 칠천 원, 오천 원 만원에 세 손.”

장사꾼은 손으로 가르키면서 말을 한다.

마음 같아서는 제일 좋은 것으로 두어 손 사가지고 아이들까지 먹이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여

유가 없는 살림이다.

귀숙은 오천 원짜리 두 손을 산다.

이것만으로도 한 끼는 온 가족이 먹을 수는 있지만 한꺼번에 다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어머님의 입맛을 돋우어 드리기 위해서 한 손만 상에 올릴 생각이다.

오이와 콩나물을 사서 들고 집으로 온다.

“시장 봐왔니?”

임씨는 며느리의 손에 들려진 봉투를 받아 든다.

막내인 종선이 방에서 나와 반긴다.

“웬 양말이 이리도 많냐?”

“양말이 아주 싸더라고요.

애들도 신고 아범과 어머님께서도 신으셔야지요.”

“무슨 양말을 여자들 것이 이리도 많냐?”

“여자가 더 많으니까요.”

“기집애들 아무거나 신으면 어때서?

아범이나 종엽이를 좋은 것을 신겨야지.”

여자들 양말이 더 많은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못마땅하다는 내색을 하신다.

“할머니!

여자들이라고 왜 나쁜 것만 신어야 해요?”

종선은 할머니의 말에 심술이 난다.

그리곤 양말 봉지를 빼앗듯 할머니의 손에서 나꿔챈다.

“저런…….저 버르장머리 없는 년!

기집 년들이 아무거나 신으면 어때서 그래?”

임씨는 종선이의 손에 빼앗긴 봉지를 다시 빼앗으려 한다.

그러나 종선은 이미 봉지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임씨는 다른 봉투를 열어 제킨다.

“간 고등어 사왔구나!”

임씨는 금새 화색이 돈다.

“네!

저녁에 한 손만 굽고 나머지는 어머님께서 드시고 싶으실 때 두고 드세요.”

임씨는 주방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귀숙 또한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저녁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좀 쉬지 뭐 하러 나오냐?

내가 다 해 놓았다.

고등어만 구우면 먹을 것을 너까지 나오지 않아도 된다.”

“제가 할게요.

내일 아침 국도 끓여야 하고 제가 하겠습니다.”

“참, 옆집 혜영 어멈인가 하는 년이 집을 나갔더라!”

“네?

집을 나가다니요?”

귀숙은 시어머님의 말씀이 무슨 말인가 하는 얼굴로 묻는다.

“허구 헌 날 그렇게 싸움질을 하고 그러더니 아예 서방도 새끼도 버리고 집을 나가서 안 들어온

다고 하더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요?

남편이야 그런다 치지만 제 자식을 버리다니?”

“그러기에 독한 년이지.

아마 그 사내놈은 그래도 찾으러 다니는 모양인데 마음먹고 나간 년이 어디 눈에 뜨이기라도 하냐?”

“혜영이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지 아범이 들어올 때까지 어린 것이 하루 종일 혼자 있더라.

지도 뭔가를 아는지 울지도 않고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더라.”

“쯧쯧 쯧!

어린 것이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모두 지가 타고난 팔자대로 사는 것이지 어쩔 것이냐?

쥔 여자가 와서 집을 내놓으라고 한 모양인데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정말 큰일이네요.”

“오늘도 집을 보러 사람들이 여럿 다녀갔는데 어린 것이 울지도 않고 누가 물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더란다.

먹을 것이나 제대로 먹고 있는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임씨는 혀를 끌끌 찬다.

기어이 혜영엄마가 일을 벌인 모양이다.

모든 것에 불만이고 불평을 하면서 늘 화가 난 사람처럼 찌푸린 얼굴이었다.

이런 동네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불만인 여자였다.

자신은 아직도 공주라고 착각을 하며 살고 있는 여자인 것이다.

언제나 남편과 딸아이보다는 자신을 더 가꾸고 매만지며 살아가는 여자다.

옷 하나를 사도 남편과 딸아이의 옷보다는 자신의 옷을 구입한다.

그것도 가까운 재래시장을 두고 차를 타고 나가서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는 여자인 것이다.

재래시장을 가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알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이용하면서 그 물건들을 가지

고 택시를 타고 다닌다.

다섯 살 혜영이는 종일 반 어린이 집에 다니고 있다.

하는 일없이 집에 있으면서 아이를 어린이 집에 종일반으로 보내고 있는 여자다.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것이 멋인 줄 알고 살아가는 여자다.

큰 딸인 종희만 빼고 저녁상에 둘러앉는다.

된장국에 오이무침과 장아찌 감자조림과 김치가 있고 간 고등어 구이가 있지만 감히 누구도 손을

댈 수가 없음을 안다.

“종엽아!

어서 먹어라!”

임씨는 간 고등어를 떼어서 종엽이의 밥그릇에 놓아준다.

“할머니!

전 먹지 않아도 되요.

할머니 드세요.”

종엽이는 다시 집어 할머니께 드린다.

“내 것은 여그 있다.

어여 먹어!”

임씨는 다시 종엽이의 밥그릇에 놓아준다.

“저는 괜찮다니까요.”

그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종선이가 종엽의 밥그릇에 있는 간 고등어 조각을 낼름 집어 간다.

“오빠!

내가 먹어도 되지?”

“그래, 먹어!”

“저 저 저런 년을 봤나?

어여 오래비 주지 못하냐?”

임씨는 얼굴 전체에 노여움이 번진다.

그러나 이미 생선토막은 종선이의 입으로 들어가고 없다.

“저 우라질 년!

감히 지 오래비 것을 넘보는 발칙한 년!”

임씨는 종선이의 태도가 못내 괘씸해진다.

“종선아!

어서 잘못 했습니다 하고 빌어!”

귀숙은 시어머님의 노여움이 가득 찬 얼굴을 본다.

“엄마!

왜 오빠만 먹어야 하는 거야?

우리는 먹으면 안 되는 거야?“

종선은 눈을 똑바로 엄마를 바라보며 항의한다.

“저년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거라!

어디서 함부로 제 오래비 것을 넘보느냔 말이다.“

임씨는 더욱 심하게 역정을 낸다.

그러나 종선이는 잘못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그런 종선이를 뭐랄 수도 없고 남편을 바라보는 귀숙이다.

마음이 불안하고 행여 남편 또한 시어머님의 역성을 들어 종선이에게 매를 때릴까 싶어 남편의

태도를 주시한다.

그러나 고흥수는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는 듯 밥을 먹고 있다.

가슴이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불안한 귀숙이다.

덮어놓고 종선이를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분위기는 순간적으로 험악하게 변해간다.

“할머니!

그만 두세요.

제가 종선이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종엽이 할머니의 심사를 달래느라 말을 한다.

“저년이 먹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네가 그런 말을 했겠느냐?

이 집안에는 항상 저년이 말썽인 것이야!

고분고분 한 곳도 없고 무엇이건 참을 줄도 모르는 고약한 년!

네 이년을 그냥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다.“

글: 일향 이봉우

 

 

 

 

제 6장,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진다.

귀숙은 얼른 또 다시 종선을 나무란다.

그러나 종선은 절대로 빌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다진다.

“어서 할머니께 빌지 못해?”

귀숙은 큰 소리로 야단을 친다.

“내가 왜?

왜 맛있는 것이 있음 맨날 오빠만 줘?

난 먹으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어?”

종선은 잘못이 없다는 듯 따지고 든다.

그 모습을 보던 임씨는 더욱 서슬이 퍼렇게 되며 갑자기 일어서더니 종선을 잡아끌고 밥상에서 모질게 떼어 내서는 때린다.

“네 이년!

이 고약한 년!

어디서 그 따위 버르장머리를 배웠어?”

귀숙은 시어머님께 종선을 떼어내지도 못하고 남편을 본다.

고흥수 역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년아!

배워 처먹지 못한 년!”

임씨는 화가 나는 대로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종선을 때리고 있다.

“엄마!

아 ………..악!”

종선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린다.

“할머니!

이제 그만하세요.”

종엽이 나서서 할머니를 말린다.

임씨는 종엽이 말리고 나서자 슬그머니 물러선다.

“오냐!

네 년이 오늘 네 오래비 때문에 살아 난 것인 줄 알아라!

이 못된 년!”

다시 한 번 더 그 따위 행실을 할 때는 내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종선아!”

종엽이 종선이를 감싸려 하지만 종선은 그런 종엽이를 뿌리치고 방으로 들어간다.

한참을 종선이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이제 그 누구라도 밥맛을 잃었다.

“할머니!

다음부터는 그런 것을 저에게만 주지 마세요.”

“왜 그러냐?

저런 년이 겁나서 그런 것이냐?”

“할머니!

종선이는 아직 어립니다.

종선이나 동생들이 얼마나 먹고 싶겠어요?”

종엽이는 늘 동생들 보기에 민망스럽다.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지 마라!

기집 년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다.”

종엽이는 답답하다는 듯 할머니를 바라본다.

노인의 특유한 옹고집이다.

귀숙은 주방을 치우고 나서 딸들의 방으로 들어간다.

종선은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있다.

둘째 딸인 종은이 역시 화가 나 있다.

“종선아!”

귀숙은 막내가 덮고 있는 이불을 걷으려 하지만 종선은 더욱 이불을 끌어 당겨 몸을 숨긴다.

“미안하구나!

엄마가 못나서 그래!

우리 종선이 얼마나 아팠니?”

“엄마!”

종선이는 엄마 품으로 파고들면서 서러움의 눈물을 쏟아낸다.

“엄마!

정말 우리 할머니 왜 그래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어요.

종선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매를 때려요?”

종은이도 종선이가 할머니가 때리는 매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한다.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서 맛있는 것을 많이 사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인데 모두가

아빠와 엄마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다.”

“할머니는 여자들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세요.

당신도 여자이시면서 왜 그러시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어요.”

귀숙은 두 딸을 달래고 어루만져준다.

딸들의 방에서 나온 귀숙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문 밖으로 나선다.

시어머님과 함께 쓰는 안방으로 들어가 봐야 남편과 어떤 말도 나눌 수 없는 상황이다.

둘이서 피워대는 담배연기 자욱한 방안이 더욱 답답할 것이다.

종희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대문 밖에서 서성인다.

한참을 서 있고 나서야 옆집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혜영을 발견한다.

“혜영아!

왜 여기 나와 있어?”

“…………………………”

혜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귀숙을 바라본다.

“아빠는?”

그저 고개를 가로 저을 뿐이다.

“아무도 없어?”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밥은 먹었어?”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귀숙은 혜영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집안은 엉망이고 어수선하다.

우선 혜영을 무엇이라도 먹이려고 주방으로 들어가 살펴보지만 언제 밥을 한 것인지 밥솥에는 그

대로 말라서 달라붙어 있는 밥이 한 수저쯤 있을 뿐이다.

“에효,

이 사람들이 뭐하고 있는 것인지…..

어린 것이 눈에 밟히지도 않는 것인가 원!

혜영아!

나오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아줌마가 밥을 가지고 올게! 알았지?”

혜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 것이 얼마나 배가 고플 것인가를 생각하니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귀숙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밥과 국을 가지고 간다.

식구들도 모두 저녁을 시원찮게 먹었을 뿐이기에 밥과 반찬은 고스란히 있다.

“혜영아!

어서 밥 먹자!”

어린 혜영은 밥을 보더니 허겁지겁 밥 수저를 입으로 가져간다.

“혜영이가 배가 많이 고팠구나?”

귀숙은 혜영이가 밥을 다 먹고 나서 물수건을 해서 혜영이의 얼굴과 손을 닦아준다.

얼마나 울었는지 아이의 얼굴은 그대로 눈물자국이 말라붙어 있는 것이 보기에도 안쓰럽고 딱하다.

“혜영아!

혼자 있을 수 있지?”

혜영은 큰 눈을 들어 잠시 귀숙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착하구나!

코 자고 있으면 아빠하고 엄마가 올 거야!

혼자서 잠 들 수 있니?”

혜영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위로 올라가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잠이 든다.

잠이 든 어린것의 모습이 가엽고 안쓰럽다.

귀숙은 가만히 문을 닫고 나온다.

긴 한숨이 뿜어져 나온다.

모두가 하나같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긴 긴 한숨이다.

귀숙은 가게로 발길을 옮긴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딸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이 들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

게로 간다.

평소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빵과 우유를 산다.

시어머님은 잠이 드셨을 것이다.

귀숙은 봉지를 뒤로 감추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안방은 이미 불이 꺼져 있다.

워낙 초 저녁 잠이 많으신 시어머님이시다.

귀숙은 안심을 하며 딸들의 방문을 가만히 열어본다.

다행이 두 딸은 엎드려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자, 이것들을 먹어라!”

종선은 얼른 몸을 일으켜 봉지를 열어본다.

그리곤 이내 환한 얼굴이 된다.

“조용히 하고 먹어!”

귀숙은 문을 닫아준다.

시간을 본다.

열 시가 넘은 시간이다.

이제 또 다시 고등학교 이학년인 종희가 도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한다.

또 다시 종희의 대학입학금을 마련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대학을 보내야 하는 부모로서 손에 쥔 것이 별로 없는 사정으로 그저 나오는 것은

긴 한숨뿐이다.

남편과 둘이 억척스럽게 일을 나간다고 해도 종엽이의 대학 등록금을 내고 나면 저축할 여유가

빡빡하다.

적금 한 개도 부을 여유가 없다.

“엄마, 아직 안 잤어요?”

잠을 자지 않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들어서던 종희가 하는 말이다.

“그래, 잠도 오지 않고 너도 안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아니, 그냥 잠이 오질 않는다.

어서 씻고 밥 먹어야지?”

“내가 알아서 찾아 먹을게요 어서 들어가 주무 세요.”

종희는 맏딸답게 무엇이든 엄마를 챙긴다.

“아니다!

어서 씻고 나오너라!”

귀숙은 주방으로 가서 국을 따뜻하게 데운다.

더워지는 날이라고 해도 식어버린 국을 주기 싫어서다.

종희가 씻고 나와 식탁에 앉는다.

“공부하기 힘들지?”

“엄마!

나 대학에 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느닷없는 종희의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대학을 안 가다니?”

“많은 생각을 해 봤어요.

꼭 모두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법도 없지만 대학을 나온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니?

엄마가 누구 때문에 새벽잠을 놓치면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모두가 너희들을 위해서………..

너희들을 조금이라도 더 가르치고 더 잘 키우기 위해서 그러는 것인데….”

“엄마!

내가 대학을 들어가면 오빠와 내 등록금이 얼마씩 나오는지 아세요?

아무리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그 등록금을 벌수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종은이하고 종선이는 또 어떻게 해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마!

엄마가 몸뚱어리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너희들이 하고자 하는 공부를 시키지 못한 엄마가

되긴 싫다.”

“엄마!

조금만 바꿔서 생각을 해 봐주세요.

집안 형편을 뻔히 알면서 무리하게 대학을 다닌다고 해서 큰 벼슬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공

부를 잘해서 장학생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남들이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난 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고 싶어요.”

“기술?

어린 네가 무슨 기술을 배워?”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기술이 많아요.

나이 들어서도 써 먹을 수 있는 기술들이 많이 있어요.”

종희는 엄마를 설득해 나가려고 애를 쓴다.

“미용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곧 바로 취업을 하고 싶어요.”

“안 돼!

엄마가 어떤 수를 쓰더라도 꼭 대학에 보내준다.”

그러나 귀숙은 자신의 말이 허황된 것임을 안다.

종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에 설득을 당할 엄마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자식들을 위한 일이라면 당신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마다하지 않으실 엄의 성격임을 잘 알고 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당신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매달리는 엄마의 성품이다.

새벽 청소부에서 남의 집 가사 도우미 일까지 그리고 식당의 설거지까지 맡아서 하고 있는 엄마

의 모습은 늘 종희를 힘들게 한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에 비해서 너무나 늙어 버린 엄마의 모습이다.

그런 엄마를 대할 때마다 어서 커서 돈을 벌어 엄마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은 생각만을 늘 해오던

종희였다.

자신이 대학을 간다면 엄마는 더욱 힘들어 질 것이고 그러다 엄마는 그대로 쓰러져 버릴 것만 같

다.

어차피 공부에 더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적이 우수한 편도 아니다.

종희는 대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을 한다.

그러나 엄마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엄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식들을 반드시 대학을 보낼 생각이다.

당신이 얼마나 더 힘이 들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으시는 것만 같다.

엄마의 생각이 참으로 답답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종희는 엄마를 설득하기에 서둘지 않는다.

엄마도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것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

에게 시간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종희는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할머니로부터 받는 성 차별의 대우가 너무나 싫다.

여자라는 이름만으로 차별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또한 그것을 부당하다고 항의

할 수도 없는 집안이다.

종희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한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집안 형편에 자신이 대학을 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그 많은 등록금을 벌수 있는 자신도 없고 그럴 수 있는 사회도

아니다.

글: 일향 이봉우

 

 

 

 

 

제 7장,

종희는 자신의 성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렇게 악착스럽게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제부터 아무리 부지런히 공부를 한다고 해도 좋은 대학은커녕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집안 사정이 넉넉해서 자신이 하숙을 해 가며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공부보다는 무언가 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게 되는 것을 꿈을 꾼다.

그 동안 종희는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는 것을 알아보았다.

기술직은 상당히 여러 가지 분야에 걸쳐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 미용에 관심을 두게 된 종희였다.

가장 빠르고 취업도 쉽고 나중에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된다고 해도 큰 자본이 없이도 얼마든지 가

능한 일이었다.

엄마가 아무리 희생을 하신다 하더라도 형제들 모두를 대학을 보낼 수는 없는 일임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종희로서는 공부보다는 직업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그러나 삼학년에 올라가서 정식으로 엄마의 허락을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까지는

남들이 하는 대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저녁이면 도서실로 가서 공부를 하고 오는 종희였다.

귀숙은 큰 딸의 마음을 알고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을 해야 하는 딸아이가 집안을 걱정하고 부모생각을 해서 대

학을 포기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아들과 딸이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서 장학금이라도 타면서 학교를 다녔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학원도 제대로 보내지 못해본 자식들이다.

귀숙은 자신의 팍팍한 살림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휴일인 내일은 종희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귀숙의 마

음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막 골목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자신의 옆집 대문 앞이다.

“무슨 일이에요?”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묻는다.

“아휴, 종엽이 엄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

앞집 아주머니의 근심 어린 표정이다.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혜영이 말이유.

벌써 저렇게 혼자 있는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아이가 탈진이 되고 다 죽어가게 생겼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여인의 음성에는 근심이 잔득 들어 있다.

“뭐라고요?

아직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귀숙은 옆집에 살면서도 자신의 삶으로 인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조금 전에 통장님이 혜영아빠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더니 아이가 널브려져서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있다지 뭐유.”

“어떻게 그런 일이?”

귀숙은 걱정을 하면서 들여다보는 동네 사람들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가 본다.

“이런 쳐 죽일 년 놈들 같으니~~

어떻게 어린 자식을 이렇게 혼자 두고 들어오지도 않느냔 말야!”

통장 부인인 이여인이 아이에게 미움을 떠 넣어주며 욕을 한다.

“아주머니!

혜영이 상태는 어때요?

큰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지요?”

이여인은 귀숙을 보며 반색을 한다.

“종엽이 엄마가 왔네!

정말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난감한 일이네!”

귀숙은 혜영의 상태를 살펴본다.

그래도 살겠다는 의지로 미움을 받아먹는다.

아이는 그대로 오줌과 똥을 쌌는지 냄새가 역하고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귀숙은 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일단 아이를 닦아 준다.

옷을 갈아입히고 편안하게 눕힌다.

“혜영아!

아줌마 알아보겠니?”

“무서워!”

아이의 눈에서는 비로소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웃이 있다고 해야 무슨 소용이 있을꼬?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네!”

“정말 큰일입니다.

이웃이 있다고 해야 모두들 새벽에 일을 나가고 늦게 들어와 피곤해서 잠을 자기 때문에 그 누구

도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동네이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네요.”

“종엽이 엄마!

어쩌겠수?

오늘은 종엽이네서 혜영이를 하룻밤 데리고 있으면 안 될까?

내일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당분간이라도 아이를 맡아줄 기관을 알아볼게!”

이여인은 사정을 하다시피 말을 한다.

종엽이네 사정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딱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네!

마침 내일 휴일이니 그렇게라도 해 봐야지요.

일단 집으로 가서 어머님께 말씀을 드리고 나서 데리고 가지요.”

귀숙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혜영의 상태를 말씀을 드린다.

“저런.......짐승만도 못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방치를 해?“

임씨는 주저 없이 승낙을 한다.

“어서 가서 데리고 오니라!

하루 이틀쯤이야 거두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냐?”

귀숙은 혜영을 안고 온다.

아이는 얼마나 울고 무섭고 혼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 눈동자는 겁에 잔뜩 질려 있다.

그제야 동네 사람들도 제 각각 혀들을 차며 돌아간다.

“에효, 몹쓸 인간들 같으니.

아직 어리디 어린 것을 이렇게 방치를 하다니, 그러고도 부모라 말을 할 것이지.”

임씨는 혜영을 안고 당신 자리 옆에 누인다.

“아가!

을매나 혼자서 무섭고 두려웠냐?

이젠 할미 곁에서 안심하고 있거라!”

임씨는 혜영을 토닥거려준다.

“내일은 통장이 잠시라도 아이를 맡길만한 기관을 알아봐 준다고 했으니 오늘 하룻밤 데리고 있

어야지요.”

“그거이 어디 그리 쉽겠냐?

더구나 내일은 휴일인디 알아 볼만한 곳이 있을라나 모르것다.”

“그러네요.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어쩌냐?

그렇다고 이 어린 것을 혼자 내버려 둘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정해지는 때까지라도 데리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냐?”

다행스럽게도 임씨는 혜영을 감싸 준다.

저녁이 되자 혜영은 많이 안심이 되었는지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혜영아!

어서 많이 먹어라!”

임씨는 혜영을 끼고 반찬을 놓아준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는 종선은 표정이 일그러진다.

자신은 단 한 번도 할머니의 저런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혜영을 향

한 질투의 눈길을 보낸다.

그런 종선의 마음을 귀숙은 읽어 낸다.

저녁을 먹고 귀숙은 종선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다.

“엄마하고 바람 쏘이러 나오니까 좋지?”

“엄마, 혜영이 언제까지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종선아!

혜영이가 싫으니?”

“혜영이가 싫은 것이 아니고 할머니가 미워!

난 지금까지 할머니가 저렇게 사랑해 준 적이 없어!

혜영이는 할머니 손녀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데 왜 할머니는 그렇게 그 애를 사랑하고 계신 거

야?”

“우리 종선이가 그래서 화났구나?

그런데 혜영이를 생각해 보렴!

이제 겨우 다섯 살짜리가 엄마 아빠도 들어오지 않은 빈 집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혼자서 그

여러 날을 보냈다는 것을 생각해 봐!”

“…………………………..”

“할머니께서는 혜영이를 사랑하시는 마음보다는 안쓰럽고 불쌍하신 것이다.

아직도 혜영이는 아기잖니?

너 같으면 빈 집에서 얼마나 혼자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럼 혜영이는 우리 집에서 살아?”

“아니!

당분간 데리고 있기야 하겠지만 다른 곳으로 가게 되겠지.

그 안에 혜영이 아빠나 엄마가 온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지만 우선은 그런 아이들을 맡아주는 곳

이 있다니까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만이라도 동생이다 생각하고 잘 대해주면 좋겠다.”

“네!”

종선이는 순순하게 엄마 말을 따른다.

빈 집에서 혜영이가 혼자서 지냈다는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밉던 마음이 풀어진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이를 맡길만한 곳을 찾지 못한다.

“종엽엄마!

미안해서 어떻게 해?

좀처럼 쉽지가 않네!”

통장 댁 이여인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도 혜영이네 친척들을 아는 사람들이 없다.

집에 들어가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어느 곳에도 전화번호를 적어 놓은 곳이 없다.

계획을 하고 집을 나간 것인지 아무 곳에도 연락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구청 사회과에서도 혜영이를 보고 갔으나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무작정 아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의 보호자가 아무도 없고 더구나 전셋집이라고 해도 전셋돈을 빼서 나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셋돈은 그대로 살아 있고 모든 살림 또한 그대로 있기 때문에 길가에 버림을 받은 아이가 아니

라는 것이다.

“에미야!

어떻게 하겠니?

반드시 아이 때문이라도 돌아올 사람들이다.

오지 않을 사람들 같으면 한두 푼도 아닌 전셋돈을 그대로 두고 나갔겠냐?

아마 혜영아빠가 혜영엄마를 찾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우리가 봐주자.”

“어머님!

어머님께서 힘들어서 어떻게 그렇게 해요?”

“내가 힘들 것은 없다.

오히려 너희들 모두 나가고 나면 혜영이 고것이 조잘조잘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심심하지 않아

서 좋다.”

“어머님께서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해 보지요.”

귀숙은 어머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한다.

별 달리 많은 손이 가는 아이도 아니다.

먹이고 씻기는 일을 모두 시 어머님께서 맡아서 해 주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다행스럽게 아이들도 혜영이를 잘 돌봐주고 있었다.

그렇게 혜영은 생각지도 않게 귀숙이 맡아서 돌보게 된다.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아무도 혜영이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이제 집주인은 더 이상 집을 빈 집으로 놔 둘 수 없다며 집을 내 놓는다.

구청 사회과 직원들과 통장님 댁이 참관을 하고 집을 비우기로 한다.

전셋돈은 혜영의 이름으로 예치를 하고 귀숙이 맡아서 두기로 한다.

혜영이 학교에 들어가면 학비와 생활비로 매달 얼마씩 지출을 하기로 서류로 작성을 해 둔다.

또한 혜영의 부모가 아이를 찾으러 왔을 때 돈을 부모에게 돌려주기로 하고 혜영은 그렇게 귀숙

의 가족이 된다.

그 집안의 모든 가구들과 살림들은 사회과에서 실어간다.

혜영에게 필요한 것을 제외한 남은 모든 것들이다.

전셋돈이라고는 하지만 달동네 작은 단독이다.

대지 이십 여 평에 건평 수 십삼 평짜리 작은 집이다.

오천 만원이 전셋돈의 전부였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 재산이다.

귀숙은 혜영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깊숙이 간직한다.

혜영의 부모가 왔을 때 다시 집을 얻어 살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돈이었다.

다행히 혜영은 가족들을 곧잘 따른다.

낯설지 않고 늘 보아왔던 사람들이기에 금방 적응을 하는 것이다.

혜영은 생각보다 성품이 밝고 고운 아이다.

임씨는 그런 혜영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다.

다니던 어린이 집을 그만두게 하고 임씨는 혜영이와 함께 시간을 즐긴다.

혜영은 그런 임씨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혜영은 안정을 되찾자 임씨를 잘 따르고 붙임성 있고 애교스럽게 임씨의 마음을 잡는다.

천성이 밝고 고운 아이다.

임씨의 말동무로서 손색이 없다.

임씨는 당신의 손녀들보다 더 혜영을 끼고 돈다.

어린 것이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고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신다.

혜영이 또한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서 자신을 보살펴주시고 함께 할머니와 있다는 생

각에 아무것도 겁나고 무서운 것이 없다.

늘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조잘거리며 임씨의 말동무가 된다.

“우리 혜영이 뭐 먹고 싶니?

할미가 라면 끓여줄까?“

”정말요?

할머니라면 끓일 수 있으세요?“

”그럼, 할미가 못하는 것이 어디 있냐?

라면 끓여서 할미랑 같이 먹으면 좋겠지?“

”네!

좋아요.“

혜영은 라면을 끓이는 임씨 곁에서 조잘 거린다.

그런 혜영이 귀엽다는 듯 임씨의 얼굴은 사랑으로 넘친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가 어쩌다 그렇게 부모 운이 없는지 딱하다는 생각을 한다.

글: 일향 이봉우

 

 

 

 

제 8장,

종희는 고 삼학년에 올라가서 미용학원을 다닌다.

이젠 엄마도 이해를 하고 받아준 것이기에 마음 편안하게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가고 있는 종희였다.

다행히 생각보다 적성에도 맞고 손재주가 있는 종희다.

여름 방학이 되기 전에 종희는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피부 맛사지사 자격증에 도전을 하기 위해 학원을 계속 다닌다.

임씨는 그런 종희를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흡족해 한다.

기집애가 고등학교만 나오면 그것도 과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임씨로서는 종희가 일찍 기

술이라도 배워 돈벌이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희 마저 대학을 들어가네 뭐네 한다면 당신 아들이나 손자인 종엽이가 많이 힘들 것이라는 생

각을 하던 임씨였다.

또한 공부가 늘 시원찮은 종은이는 애초에 대학이라는 것은 꿈도 꾸어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

고 있는 임씨는 자꾸만 종선이가 눈에 거슬린다.

악착스러운 성품대로 공부를 잘 하는 종선이다.

언니들과는 달리 공부를 아주 잘 하고 있는 종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종선이가 보나마나 대학을 가려고 할 것이고 며느리 또한 그런 종선이를 위해 어떤 일을 하

던 반드시 대학을 보낼 것이다.

그것이 임씨로서는 벌써부터 마땅스럽지가 않다.

그저 제 언니처럼 고등학교만 졸업을 해서 어디든지 나가 돈을 벌어오면 좋으련만 종선이의 성품

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임씨는 종선을 볼 때마다 종선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종선아!

공부는 그렇게 파고들어 뭐 해?

어여, 나와 집안을 말끔하게 청소해!”

공부를 하고 있는 종선이를 불러내려고 한다.

“할머니!

이따가 언니가 오면 하라고 하세요.

저 지금 공부해야 한단 말이에요.”

“아 글씨 언능 나오지 못햐?

할미가 시키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고 반항을 해?”

그러나 임씨는 그대로 둘 기세가 아니다.

“요것마저 해 놓고 나갈게요.”

종선은 화가 나는 것을 누르며 하던 공부를 마저 하겠다고 말한다.

“저년이 그래도 이 할미 말을 거역해?

이년아, 너를 없애려고 니 애미가 병원에 갔을 때 데리고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하니 아까워서 니 애비를 보낸 내 잘못이 크다.”

“할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종선은 할머니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묻는다.

“왜?

이 할미 말을 못 알아 듣냐?

너를 낳지 않으려고 낙태수술을 받으러 니 애미가 병원에 갔는데 잘나빠진 점쟁이 년이 아들이라

고 하는 바람에 내가 니 애비를 보내 니 애미를 데리고 왔다.

니 년은 그렇게 뱃속에서부터 어른들을 속이고 질긴 니 년의 목숨을 구했어!”

“나를………엄마가 나를 낙태수술을 하려고 했다고?”

“오냐!

쓰잘데기 읎는 기집 년이 지 목숨을 살리려고 뱃속에서부터 어른들을 속이고 있었으니 자다가도

생각하면 니 년의 꼴도 보기 싫다.”

종선이는 큰 충격을 받는다.종선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엄마가 자신을 낳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 종선으로서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왜?

믿어지지 않냐?

망할 년!”

임씨는 종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슬그머니 안방으로 들어간다.

종선은 충격 속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자신의 출생이다.

아예 지워버리려고 했던 자신의 출생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은 종선은 그대로 방바닥에 엎어

져 흐느낀다.

그렇게 얼마를 흐느끼던 종선은 그대로 잠이 든다.

귀숙은 집으로 돌아와 종선이 나오지 않자 의아하다는 생각을 한다.

“종선이는 나갔어요?”

“나가긴?

그 년은 이제 지 애미가 오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귀숙은 시어머님이 종선을 향해 늘 욕설을 하시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시어머님께 따지고 대 들 수는 없는 일이다.

종선이 딸이라는 것을 아시고 나서부터 못마땅해 하셨고 단 한 번도 안아주시기는커녕 고운 눈으

로 바라보시지도 않으시는 것이다.

귀숙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갈아입고 딸들의 방문을 열어본다.

문소리가 들려서 그랬는지 종선이 눈을 뜬다.

귀숙은 종선이가 울었음을 알아본다.

“종선아!

왜 그래?

또 할머니께 야단을 맞았니?”

“엄마!”

종선은 다시 엄마 품 안에서 한참을 흐느낀다.

“종선아!

무슨 일이야? 응?”

“엄마!

정말 나 낳지 않으려고…나 없애버리려고 병원에 갔었어?”

종선의 음성은 울음이 가득 담겨져 있다.

“뭐야?

그런 말을 누가 해?”

“할머니가………엄마가 정말 나를 낳지 않으려고 병원에 갔었어?”

“아니야!

그건 할머니께서 잘못 아신 것이다.

엄마나 아빠는 절대로 너를 낳지 않으려고 한 적이 없다.

가난한 우리 집에 엄마가 너를 또 다시 임신을 하자 할머니가 못마땅해 하셨다.

행여나 또 딸일 까봐 걱정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낙태수술을 하러 병원에 갔었어?”

“종선아!

아빠하고 엄마는 할머니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연극을 한 것이다.

그리고 점쟁이 집을 가시게 하고 아들이라고 거짓말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엄마는 병원에 간 것으로 하고……….”

“정말?

엄마 그 말이 정말이야?”

종선은 희미하게나마 얼굴빛이 되살아 나고 있다.

“그래!

아무리 힘든 다고해도 살아 있는 생명을 없애려고 생각하는 아빠나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종선이가 잘 알지?”

“아, 엄마!

고마워요!”

종선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엄마 품 안으로 다시 안겨 든다.

“할머니가 어떤 말씀을 하시든 절대로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

할머니께서는 네가 아들이기를 얼마나 소원을 하셨는지 모른다.

그리고 네가 꼭 아들이라고 믿고 계셨는데 당신 믿음에 대한 역정을 내시는 것이라고 이해를 해 드려라!”

귀숙은 종선이의 얼굴을 닦아준다.

어린 것이 그런 말을 듣고 얼마나 심한 상처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 밑바닥에 심한

통증이 밀려온다.

“우리 종선이 엄마 말 믿지?”

“믿어요.

그리고 엄마가 날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도 알아요.”

“고맙다.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었어!

가서 씻고 공부 해!”

정선은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간다.

귀숙은 큰 한숨을 내 쉰다.

시어머니를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이해를 해 드리려고 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머님!

왜 그렇게 종선이에게 잔인하세요?”

“내가 뭘 잔인하다는 말이냐?

그 년이 뭐라고 하든?”

“어머님!

다른 아이들처럼 종선이도 제 자식입니다.

제가 열 달 배 아파서 낳은 자식입니다.

어떻게 없애기 위해 병원을 갔었다는 말씀을 하세요?”

“내가 없는 말이라도 했냐?

그때 내가 잘못했지.

점쟁이 년의 말을 믿고 너를 수술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년이 아주 교활한 년이라서 뱃속에서부터 어른들을 가지고 놀았다.”

“그것이 어떻게 정선이 잘못입니까?

아들과 딸을 어떻게 사람마음대로 할 수가 있겠어요?

어머님!

제가 이렇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정선이를 미워하지 말아 주십시오.”

귀숙은 시어머니 임씨에게 애걸을 한다.

“미운 것을 어쩌냐?

보기만 해도 꼴 보기 싫은 것을 어쩌란 말이냐?”

임씨는 역정을 낸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어머님의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시다면 정선이와 한 집에서 사실 수 없지요.”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다.”

“네!

그러시다면 제가 정선이를 데리고 따로 나가 살겠습니다.”

“뭐야?

너 지금 그 말은 이 늙은이더러 나가라는 말이냐?”

“어머님!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애미가 되어 자식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아직 어린 정선입니다.

이 근처에 방을 따로 얻어 제가 정선이와 따로 살면 어머님 마음도 불편하실 일도 없고 정선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임씨는 말이 없다.

며느리의 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또한 당신 자신이 정선이에게 너무 심하게 대했다는 생각을 한다.

“미안하구나!

내가 주책이었나 보다.

그저 아들이라고 믿었던 것에 대한 화가 가라앉지 않는구나!

차라리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 마음도 들지 않았을 것을……..

더 이상 정선이를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을 하마!”

“어머님!

고맙습니다.”

귀숙은 눈시울이 붉어진다.

시어머님도 결코 독하신 분이 아니 시라는 것을 안다.

아들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결코 그러실 분이 아니시다.

하나뿐인 손자에 대한 불안감이 노인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시는 것이다.

아들 하나씩만 명맥을 이어온 조상님들에 대한 죄스러움이시다.

귀숙은 저녁을 하면서도 자꾸만 한숨이 새어 나온다.

언제 하루라도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 갈 수가 있을 것인가?

종희는 그런 엄마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원을 다니면서 희망에 부풀어 있다.

졸업을 하기 전에 취업을 나갈 계획이다.

가을이 되기만 하면 취업을 나갈 생각에 마냥 신이 난 종희였다.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어 동생들의 학비를 대 줄 것이고 엄마의 고생을 덜어드릴 수 있다는 생각

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종희는 학교 수업이 끝나기만 하면 학원으로 가서 기술연마를 위해 무료봉사에 참여를 한다.

퍼머와 컷트를 동네 어르신들께 해 드리는 무료봉사다.

그로 인해 나날이 종희의 기술은 손에 익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그런 종희를 보면서 귀숙은 편안하게 마음먹기로 한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처럼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힘들게 살아가지만 않는다면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집안은 그런대로 평온을 유지한다.

혜영은 단 한 번도 엄마 아빠를 찾지도 않고 밝게 자란다.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늘 따른다.

임씨 역시 그런 혜영이 때문에 종선을 괴롭히고 미워하는 일에 둔해진다.

혜영이의 손을 잡고 곧잘 시장에도 다녀오시며 혜영이의 간식을 사 주곤 하신다.

그런 할머니와 혜영이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종선이를 무시하곤 하지만 더 이상의 말썽

은 일어나지 않는다.

종선은 더욱 열심히 공부에 온 정성을 쏟는다.

절대로 할머니가 무시하지 못하게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야무진 각오를 가슴 가득 채우면서

무섭게 공부를 하는 종선이다.

아무도 그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리라는 각오가 대단하다.

아무리 할머니라고 해도 절대로 자신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 것이라는 오기와 각오로 종선은 이

를 악물고 공부를 한다.

종선은 할머니의 모든 것이 싫다는 생각뿐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할머니에게 받은 모든 서러움을 되돌려드리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할머니가 뭐

라고 하시든 공부에 더욱 몰두를 한다.

할머니에게는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인 혜영이보다 더 못한 자신의 존재라는 것이 늘 종선이

를 이를 악물게 한다.

누구보다 잘나고 반드시 성공을 할 것이라고 결심을 한다.

자신이 혜영이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이 화가 나기도 하고 더욱 할머니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공부를 하게 만든다.

아무리 할머니가 일을 하라고 시켜도 꼼짝도 하지 않는 종선이다.

그런 시간이 아깝고 할머니의 말씀을 고분고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종선이는 더욱

공부에 온 신경을 쓴다.

“이제 저년이 소죽은 귀신처럼 내 말이라면 아예 무시를 하는구나!”

임씨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종선이가 괘씸하다.

“어머님!

종선이는 공부에 더 마음이 있는 아이입니다.

공부를 하게 그냥 내 버려두세요.“

”사내 녀석도 아니고 기집 년이 공부를 그렇게 해서 뭐에 쓰냐?

집안일이나 거들도 손끝이 야물기만 하면 신랑 잘 만나 시집을 잘 가면 호강을 하고 살 것인데

뭐 하러 공부에 신경을 쓰냐?“

임씨는 종선이의 모든 것이 마땅치가 않다.

글: 일향 이봉우

 

 

 

 

제 9장,

종희는 자신의 뜻대로 취업을 나간다.

종로에 있는 미용실에 취업이 된 것이다.

아직은 손님들의 머리를 만질 수 없고 심부름과 청소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런대로 더욱 열심히

노력을 하면서 배워나간다는 자세로 출근을 한다.

아침마다 미용실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모든 준비를 해 놓는다.

미용실은 지금까지 동네에서 보아왔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넓고 열 명의 미용사들이 제 각각의

조수들을 데리고 있는 곳이다.

종희 역시 그 중에 한 명인 조인경 선생의 조수로 배정을 받는다.

조인경은 그 중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원장님 다음가는 위치에 있다.

성품 또한 만만치 않게 도도하고 까칠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종희를 달갑지 않게 대하면서 조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종희는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노력을 한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일과 종종걸음으로 일을 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으나 자신도 머지않

아 반드시 저런 미용사가 되리라는 희망과 꿈을 꾸면서 어떤 꾸지람에도 기가 죽지 않는다.

미용실은 다른 곳보다 퇴근이 조금 늦다.

아침에 조금 늦게 출근을 하기 때문에 늘 다른 직장보다 퇴근시간이 늦다.

직장을 퇴근해서 오는 손님들 또한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희는 꾸지람을 들어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더욱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조인경은 그런 종희의 태도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다.

조인경 밑에서 버텨내는 조수들이 별로 없다고 할 정도로 참으로 차갑고 도도한 성품이다.

다른 선생들 밑에 있는 조수들은 그런 조인경의 조수들은 늘 동정하면서 자신들의 선생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깨닫고 한다.

조인경이 조수가 자주 바뀌는 까닭도 조인경의 차가움과 냉정함 그리고 심한 질타를 견디지 못하

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희는 조인경의 질타가 심할수록 더욱 최선을 다한다.

이런 시련이 아니면 자신이 성공을 할 수 없다고 수없이 자신에게 타이르면서 묵묵히 일을 해 나간다.

종희는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진다.

그런 종희를 보면서 귀숙은 늘 안쓰럽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만만한 곳이 아님을 알아가는 딸의 모습이 애처롭고 가슴이

아프다.

늘 힘들어 하고 피곤해 보이는 종희의 모습이다.

“종희야!

힘들면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지 않을래?”

귀숙은 그런 종희를 보면 늘 가슴이 아프다.

지금 한창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고생을 하고 있는 딸의 모습이 안쓰럽고 부모로

서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

이 정도의 힘든 것을 참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기술을 배우겠어요?

학원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는 아무 곳에서도 써 먹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잘한다고 칭찬을 해 주시는 것보다 잘못한다고 호되게 질타는 하

는 선생님이라서 더욱 신경을 집중시키게 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종희가 그러고 보니 참으로 생각이 깊구나!

힘들다고 울고 투정을 부릴 줄 알았는데 정말 기특하고 장하다.”

마음과는 달리 귀숙은 종희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준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이겨내서 미용사로서 당당하게 내 자리를 차지하고 말 것이니까요.”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넌 반드시 해 낼 것이라고 믿는다.

엄마는 그런 네가 자랑스럽고 든든하구나!”

귀숙은 종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른스럽고 속이 깊은 것을 알고 마음이 놓이고 든든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종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사회의 혹독한 시련을 배운다.

봄이 되자 이젠 혜영이를 자신들의 입양아로 호적을 새로 만들어 준다.

더 이상 기다려봐야 돌아오지 않는 그들이었다.

다섯 살 아기를 두고 집을 나가버린 그들이다.

이제 일곱 살이 된 혜영을 더 이상 집에만 둘 수가 없다.

혜영은 아빠 엄마라 부르며 잘 따른다.

귀숙은 혜영을 위해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에 입학을 시킨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한글조차 깨울 칠 수가 없다.

이미 양녀라 하더라도 자식인 이상 힘이 닿는데 까지는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귀숙의 생각이다.

다행이 시어머님께서 혜영을 잘 돌봐주시며 언제나 유치원 차가 있는 곳까지 데리고 나가시고 아

이가 돌아오는 시간이면 나가서 데리고 들어오신다.

혜영은 이제 붙임성도 좋고 할머니만을 졸졸 따라다니며 잘 따른다.

그런 혜영을 임씨는 당신의 친손녀 딸들보다 더 사랑해 주고 계신 것이다.

또 다시 둘째 딸이 고 삼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종은이는 공부에 영 마음이 없다.

종은이의 성적은 하위권이다.

공부를 싫어하는 종은이는 학교 성적에는 관심이 없다.

“종은아!

너 어쩌려고 그렇게 공부를 하지 않니?”

“엄마!

나 공부하기 싫어!

어렵고 힘들어!”

종은이는 집에 와서도 책을 잡아보지 않는다.

집안일을 하기 좋아하는 종은이는 빨래나 청소 그리고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만드는 일을 더 좋

아한다.

“종은아!

엄마는 우리 종은이가 좋은 대학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학생이 되어 멋진 젊은 날들을 보내기를

바라고 있다.

너처럼 곱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멋진 대학생활을 해 나가고 싶지 않니?”

“엄마!

나 절대로 대학에 가지 않을 거야!

이렇게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더 좋아!”

귀숙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큰 딸이 가지 못한 대학이다.

둘째와 셋째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보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그러나 종은이는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채 집에 오기만 하면 집안일에 시간을 보내곤 한다.

임씨는 그런 종은이가 한없이 사랑스럽다.

제 스스로 알아서 집안일을 하고 대학에 간다는 말도 하지 않으니 대견스럽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 종은이는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가서 잘 살 것이다.”

“할머니!

정말 그럴까?”

“그럼, 너처럼 이쁘고 바지런한 사람을 누가 데려갈지 복덩이 안고 가는 것이지.”

“할머니!

전요 집안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암!

그래야지.

여자는 그저 아들 낳고 집안일을 잘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쓰잘데기 읎이 대학에 가 봤자 눈만 높아지고 허파에 바람만 들지.”

워낙 어려서부터 순하고 자기주장을 내 세우지 않고 욕심도 없는 손녀다.

공부를 못한다고 아들과 며느리가 성화를 하고 있지만 임씨에게는 공부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

이 아니다.

공부를 못하더라도 얌전하고 순하게 부모 말을 잘 들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종은이는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거의 맡아서 해 나간다.

아무리 귀숙이 야단을 치고 말리기도 하지만 공부보다는 집안일에 더 취미를 가지고 있는 종은이

의 마음을 바꾸어 놓을 수가 없다.

“종은아!

너 정말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으냐?”

“엄마!

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갈 수가 없어요.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 들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잠이 와요.”

“어떻게 하면 좋으냐?

네 언니도 대학을 가지 못하고 너 마저 대학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으니 다음에 중신을 하려면 내

놓을 것이 한 가지도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

“누가 선을 봐서 결혼을 해요?

그냥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을 하면 되지 뭐!”

종은이는 매사에 걱정도 없고 욕심도 없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이나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이렇게 집안에서 살림이나 하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편안하고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종은이

를 보면서 귀숙은 큰 한숨을 내 쉰다.

종희처럼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네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고 고생을 하게 될지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일이다.”귀

숙은 그러나 더 이상 종은이를 설득할 방법이 없다.

자식일과 건강은 마음먹을 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식들 하나하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차라리 종희처럼 자신의 일을 찾아서 해 나간다면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될 수가 있지만 아예 자

신의 미래조차 생각하지 않는 종은이 안타깝다.

“종은아!

네가 뭔가를 하고 싶은 일은 없니?”

“엄마!

난 그냥 이렇게 집에서 살림하고 있는 것이 좋아.

어디 다니고 배우고 하는 것은 딱 질색이야.”

귀숙은 더 이상 종은이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느낀다.

종은이가 살림을 맡고 나서자 임씨는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무엇 하나 못하는 것이 없는 종은이다.

학교를 다녀오면 집안 청소부터 식구들 빨래까지 다 하고 저녁을 준비하는 종은이로 인해 임씨는

경노 당에 나가 노는 것이 일이 되었다.

동네 경노 당은 매달 이만 원씩 내고 하루 종일 놀면서 점심을 먹는다.

할아버지들 방과 할머니들 방이 따로 있어 십 원짜리 화투를 치든가 서로 이야기들을 하시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신다.

점심시간이 되면 할머니들 중에 어린 축에 속하시는 할머니들께서 점심을 준비하면서 할아버지

들의 점심까지도 챙겨주신다.

반찬이라도 해야 두어 가지 뿐이지만 집에서보다 맛있게 드신다.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드시는 점심상은 유별나게 맛이 좋다.

임씨는 그런 종은이가 마음에 쏙 든다.

허나 종선은 더욱 악착스럽게 공부에 매달린다.

고등학생이 된 종선은 늘 상위권에서 성적을 유지하면서 잠을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를 한다.

그런 종선의 태도가 임씨의 심기를 건드리곤 한다.

“저 쓰잘데기 읎는 기집 년이 무신 공부를 한다고 늦게까지 불을 쓰고 그러냐?”

임씨는 늘 밤중이면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공부를 하고 있는 종선이 못마땅스럽다는 듯이 역정을

낸다.

“어머니!

아이가 공부를 하는데 모른 척 하세요.”

고흥수는 어머니를 다독여드린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면 되는 거이지 꼭 오밤중까지 불을 쓰면서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어?

기집에 그냥 고등학교만 다녀도 충분하지 뭐 하러 비싼 등록금 없애가믄서 대학을 간다고 안달을

하는지 모르것다.”

임씨는 혀를 끌끌 찬다.“

요즘은 여자라도 대학을 다니면 좋은 곳에 취직도 하고 앞날이 좋게 풀리지요.

배울 수만 있다면 배우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그것도 집안 형편을 봐가면서 해야지.

저년은 집안 형편이 우애되든 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독한 년이다.”

“어머님!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에 가고자 하면 보냅니다.

종희도 종은이도 가지 못한 대학을 종선이만이라도 간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보냅니다.”

귀숙은 시어머니의 마음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마디를 던진다.

“그럴 돈이 있거든 종엽이에게 더 쓰려무나!

종엽이가 그저 잘돼야 한다.

기집 년들 잘 되어 봤자 모두 남의 집으로 보낼 것들인데 무신 소용이냐?”

귀숙은 시어머님의 그런 사고방식이 답답함을 몰고 온다.

그러나 더 이상 시어머님께 항변할 수도 없다.

언제나 여자들을 무시하고 경시하는 시어머님의 완고한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

든 일이다.

당신도 여자이면서 여자를 경시하시는 시어머님의 굳어진 사고방식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불가

능한 일이다.

귀숙은 그럴수록 종선이를 다독인다.

“종선아!

엄마가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학을 보내줄게!

할머니 말씀에 상처받지 말고 열심히 공부를 해!”

“엄마!

난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대학에 갈 거야!”

종선은 더욱 공부에 매달린다.

그런 종선의 모습이 귀숙을 더욱 힘이 나게 하는 일이다.

이제 종선은 임씨가 함부로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또한 공부를 한다고 매일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종선이다.

거의 종선이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날들이다.

임씨는 더욱 혜영이에게 모든 정을 쏟아 붓는다.

아들 며느리의 몸에서 나온 자식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래도 하늘이 점지해 주신 손녀라는 생각을

한다.

혜영이 또한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혜영인 자신이 이곳에 얹혀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

양녀로 입적이 된 것도 알고 자신을 낳은 부모가 모두 자신을 버리고 사라졌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혜영이다.

그런 혜영은 또 다시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머니께 잘 보이고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생

각을 하는 것이다.

어린 가슴에 받았던 상처는 혜영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기에 더욱 사랑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혜영이다.

혜영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몸매가 늘씬하게 잘 빠졌다.

아직은 초등학생이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큰 키에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어 더욱 돋보

이는 인물이다.

혜영은 길을 가다가도 쇼윈도에 디스프레이를 해서 걸어 놓은 의상들을 유심히 보곤 한다.

언젠가는 자신도 저런 멋진 옷을 만들어 입겠노라는 생각을 해 본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혜영은 멋진 의상을 그리곤 한다.

혜영의 상상 속에서 공주 옷도 멋진 드레스를 상상하면서 그려내곤 한다.

반드시 유명한 의상디자이너가 되고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꾼다.

그리고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 엄마를 찾겠다는 결심을 한다.

절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왜 버림을 받아야 했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이

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 혜영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를

할 수도 없다.

글: 일향 이봉우

 

 

 

 

 

제 10장,

종엽이 군에 입대를 한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입대를 하는 것이다.

졸업을 하고 나가는 것보다는 한 학기라도 남겨놓고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 취업을 위해서 더 좋

겠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었다.

귀숙은 종엽이 군 입대를 하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온다.

얼마나 힘들고 고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다.

임씨 또한 하나뿐인 손자의 군 입대를 놓고 안쓰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피해 갈 수도 없는 길이고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어미야!

종엽이 방을 내가 혜영이를 데리고 써야겠다.“

임씨는 종엽이가 떠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말을 한다.

“어머님!

이제 아이들 셋이서 한 방을 쓰기에 너무 좁습니다.

이제는 어른들 만큼이나 자란 딸들 셋이서는 너무 좁아서 종희하고 혜영이를 그 방으로 보낼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 것 없다.

계집년들이야 좀 좁게 살면 어떠냐?

내가 혜영이를 데리고 그 방으로 가야만 혜영이도 조금이라도 편안할 것이 아니겠냐?“

”어머님은 늘 혜영이 생각만 하십니까?

우리 아이들 생각을 조금만이라도 생각을 해 주시면 안 되시는지요?“

귀숙은 갑자기 서운함이 밀려온다.

“조금 있으면 모두 떠날 기집 년들을 생각하고 말 것이 뭐가 있냐?

좁으면 좁은 대로 살면 되는 것이 아니냐?“

“어머님!

혜영이가 누구입니까?

어머님의 핏줄이라도 되는 것인가요?

그이가 저 몰래 어머님과 짜고 어디서 낳아 온 아인가요?“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네가 몰라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임씨는 며느리의 말에 놀란다.

“그렇지 않고서야 늘 그렇게 혜영이를 끼고 도시는 어머님이 저는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끼고 돌기는 내가 뭘 그렇게 끼고 돈다는 말이냐?”

“혜영이로 인해서 종선이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 줄 생각이나 해 보셨습니까?

어머님께서 늘 혜영이를 끼고 도시고 종선이를 얼마나 상처를 주셨는지 생각이나 해 보셨습니

까?“

”그깐 년이 상처는 무슨 상처!“

임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냉정하게 말을 한다.

“참으로 너무 하십니다.

우리 종선이 제 뱃속으로 낳은 제 자식입니다.

어떻게 혜영이만도 못할 수가 있는지 저는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 나더러 종선이를 미워한다고 너는 말을 하는데 얘기 좀 해 보자.

지년이 얼마나 잘났길래 제 언니들도 가지 않는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지 얘기를 해 보아라!“

“종선이가 왜 대학을 못갑니까?

종희와 종은이가 가지 못했으니 종선이라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우리 종선이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어머님께는 왜 그렇게 못 마땅스러우신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예부터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고 했다.

우리 집 형편에 제 년을 대학을 보낸다면 하나뿐인 지 오래비는 어쩌려고?“

”이제 종엽이도 대학을 마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우리 종선이는 대학을 보내고 말 것입니다.“

귀숙은 시어머님의 생각이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에 심한 울화증이

치밀어 오른다.

“네가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무엇 하러 쓸데없는 낭비를 하려는 것인지 나도 너를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런 돈이 있거들랑 이제 종엽이 결혼자금을 준비를 해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

”종엽인 자신이 벌어서 결혼을 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종엽이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종선이를 대학을 보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머님은 혜영이가 대학을 가겠다고 해도 그렇게 말리실 것입니까?“

”혜영인 맡겨놓은 돈이 있으니 그 돈으로 시키면 될 것이 아니냐?

그 애는 우리한테는 부담스럽지 않는 아이가 아니더냐?“

”어머님!

지금까지 혜영이를 키우고 가르치면서 그 돈에 손을 댄 것으로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혜영이도 제 자식입니다.

그이와 제 자식이 된 아이를 부모가 남겨놓은 돈이 있다고 그것을 쓸 수는 없는 일이지요.“

”..............................“

임씨는 귀숙을 말없이 바라본다.

지금까지 매달 혜영이의 양육비를 받으며 데리고 있는 아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있던 임씨로서는

뜻밖의 말이었다.

그런 임씨의 마음을 귀숙은 꿰뚫어 보고 있다.

“그 아이의 양육비라고 매달 그 돈에서 떼어 쓴다면 정작 대학입학과 대학 등록금 그리고 혜영이

가 결혼을 할 때 무엇으로 어떻게 합니까?

우리 형편에 그 모든 것을 책임을 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지금까지 돈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말이냐?”

“네!

한 순간도 혜영이가 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자식이라는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이 있으니까요.

어머님께서도 종선이를 이젠 그만 미워하시고 혜영이와 같이 사랑으로 보살펴주시길 부탁드립니

다.“

”.............................“

임씨는 말이 없다.

귀숙은 종희와 혜영이를 종엽이의 방으로 보낸다.

언제까지 다 큰 아이를 한 방에서 재울 수도 없는 일이고 이제는 자매들끼리 함께 방을 쓰면서

서로 정을 나누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임씨는 그런 며느리의 처사에 대해 일체 말이 없다.

생각해 보면 다 큰 손녀딸 셋이서 함께 방을 쓴다는 것이 비좁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임

씨다.

그러나 손녀딸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 당신도 모르게 공연히 심술이 나는 것이다.

아들 며느리가 뼈 빠지게 일을 해서 쓸데없는 기집 년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기만 해도 심술

이 난다.

종희처럼 나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도 집안을 위해서 쓰지 않고 제 자신의 앞날을 위해 저축을

한다는 것도 임씨로서는 심술이 난다.

종희가 벌어오는 돈은 귀숙은 한 푼도 쓸 수도 없고 받을 생각도 없다.

더 공부를 시키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하며 버는 돈이다.

그런 돈을 자신이 편안하고자 받아서 쓸 수는 없다.

또한 종희도 언젠가는 미용실을 차려야 할 것이다.

집에서 도움이 되어 줄 수 없는 마당에 종희의 수입을 바란다면 종희는 평생을 남의 미장원에서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귀숙의 생각에 임씨는 불만이 많다.

딸년들은 시집을 가기 전에 부지런히 벌어서 친정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임씨로서는

종희도 불만스러운 것이다.

종은이 역시 집안 살림을 한다고 해도 늘 외출이 잦다.

언제부터인가 종은이는 시간만 나면 밖으로 나간다.

손녀딸들에 대해 모든 것이 마땅치 않은 임씨다.

그럴수록 임씨의 마음을 혜영이를 향해서 열려 있다.

아무리 며느리가 서운하다고 해도 정이 가게끔 하는 혜영이다.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많은 것도 혜영이다.

임씨는 이제 당신이 이 집안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음을 생각한다.

며느리 역시 당신의 말에 그다지 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손녀딸 년들 역시 할머니라면 싫

어한다는 생각을 한다.

임씨는 더욱 심하게 담배를 피우며 가슴속의 답답함을 내뱉는다.

저녁상 앞에 앉은 사람이라야 혜영이와 아들뿐이다.

며느리는 늦게까지 일을 하고 들어온다.

종희도 요즘 들어 퇴근이 늦고 종선이 또한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다니며 공부를 한다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종은이는 왜 안 들어 와?”

임씨는 소리를 지르며 종은이를 부른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에그, 이년이 고새 또 나갔군.”

“나가다니요?

저녁을 먹지 않고 종은이가 어디를 나갔다고 그러세요?”

고흥수는 어머니의 말이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고년이 요새 바람이 들었는지 툭하면 밖으로 나가지 뭐냐?

아직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년이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지금 그 나이면 한창 친구도 만나고 놀러 나가고 싶은 나이지요.

집에만 있으니 답답한 모양이지요.“

고흥수는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하고 수저를 든다.

반찬이라고 해야 된장국에 김치와 콩나물 무침과 김이 전부다.

“쯧쯧쯧.............

이래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 견딜 수 있나?

먹는 것이라도 좀 잘 먹어야 하는데 찬이 시원치 않으니 원!“

아들을 핑계로 반찬이 시원치 않음을 불평하고 있는 임씨였다.

날이 갈수록 더욱 주머니를 졸라매고 있는 며느리의 처사가 밉다.

종선이 대학을 보낼 생각으로 더욱 쥐어짜는 살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머니!

그래도 집 사람이 나가서 일을 하니 이나마 집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집안에만 있으면 우리 집이 지금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냐?

남정네가 능력이 모자라면 함께 나가 돈을 벌어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남정네 먹는 것이 이렇게 부실해서야 어디 나가서 힘이라도 제대로 쓸 수나 있겠냐?“

”저는 이 정도만 해도 입맛이 좋아서 그런지 밥맛이 꿀맛입니다.

집사람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다니는 것이 마음이 아프지요.“

임씨는 아들의 말이 서운하다.

당신 생각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제 안식구를 생각하는 아들의 말에 서러움이 밀려온다.

“누가 뭐라던?

그저 늙으면 어서 죽어야지.“

그제야 고흥수는 어머니가 반찬투정을 하시는 것을 깨닫는다.

“고기 잡수신 지가 오래 되셨지요?”

“나 같은 것이야 뭐...............”

“내일은 생선이나 고기라도 사 오라고 하겠습니다.

요즘 어머니가 진지를 잘 못 드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나야 아무려면 어떠냐?

너희들이 걱정이지.“

임씨는 아들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이 풀어진다.

“우리 혜영이도 요즘엔 먹는 것이 시원찮지?”

“할머니!

저는 아무거나 잘 먹어요.“

혜영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밥을 먹다 대답을 한다.

고흥수는 어머니의 이런 모습들이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도 안다.

당신의 손녀들보다 더 챙기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고흥수로서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지만 그래

도 어머니의 말벗이 되어주는 혜영이 고맙기만 하다.

임씨는 여전히 혜영에게 신경을 쓴다.

고흥수로서도 그다지 달가운 모습이 아니다.

혜영이 밥을 다 먹고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머니!

아이들이나 집사람이 보는 데서는 그렇게 혜영이를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것들이 뭐라고 하든?“

”종선이나 집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상할 것인지 어머니는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종선이는 어머님의 핏줄입니다.

아무리 해도 혜영이에 의해서 종선이가 받는 상처를 생각해 주셔야지요.“

"그래, 내가 아무리 종선이를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내 핏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미워해도 싫어해도 보지 않을 수 없는 아이고 혜영인 너희들 말대로 남이니 오죽 불쌍하냐?

내가 돌보지 않고 사랑을 주지 않으면 그 아인 어디에 기대고 살 것이냐?“

”어머니!

집 사람도 혜영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똑같이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자꾸만 그렇게 어머니가 끼고 도시니까 혜영이에게 사랑을 더 주지 못하고 어머니 눈치를 보게 됩니다.

종선이도 그렇게 챙겨주시고 사랑해주신다면 누가 뭐라겠습니까?“

”난 종선이 년이 악착스럽게 공부를 하는 것이 싫다.

부모가 고생을 하건 말건 제 욕심만 차리려는 년을 어찌 사랑한다는 말이냐?“

”어머니!

자식이 공부를 잘 하면 좋은 일이지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자식이 있으니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모르고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 종선이가 좋은 대학에 가서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성공을 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깐 년이 성공을 해서 뭣하냐?

어떤 놈 좋은 일이나 시킬 것인데............

우리 종엽이를 더 뒷바라지 해주고 우리 종엽이가 성공을 해야지.“

”아들이나 딸이나 모두 같은 자식입니다.

너무 그렇게 아들 딸 편견을 갖지 마시고 똑같이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돈이 있거든 얼른 돈을 모아 이 달동네를 떠날 생각이나 하렴!

언제까지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달동네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냐?

기집 년들 가르치느라 등 뼈골이 빠지고 나면 그때 후회를 해 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어머니!

자식을 태어나게 했으면 부모로서 최선의 도리는 해야지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하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집안 형편을 봐가며 하는 소리다.

아들도 아니고 계집애를 뼈골 빠지게 하며 가르칠 필요가 어디 있느냔 말이다.가르쳐 놓아야 남의

집으로 시집을 가 버릴 년들을 뭐 하러 그런 억척을 떨어가며 못 가르쳐 안달을 해?“

고흥수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늘 늦은 밤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는 아내가 안쓰럽다.

편안한 생활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늘 일에 치여 힘겹게 살면서도 집에 돌아와야 편안하게 쉴 방

조차 변변치 않다.

벌써 어머니와 한 방을 쓰는 것도 십 여 년이 넘는 세월이다.

제대로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고 아예 잊고 사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도 귀가 밝고 밤잠이 없는 노인이다.

어머니와 같은 방에서 부부생활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고흥수는 늘 아내에게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나 지금 아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제 제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 종엽이의 거처가 문제였다.

다시 딸들을 한 방으로 합치기에는 이미 다 큰 딸들이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