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뒤 김종락은 한 다발의 돈을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은행 문 앞에서 작가라면서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김종필에게 말했다. “아, 수고하십니다. 군사혁명 참 잘하셨습니다. 국민들이 절대 지지하고 있으니 꼭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 소견이 있습니다. 과도기에는 반드시 쌀값이 뜁니다. 혼란기가 닥치면 장사꾼들이 매점매석을
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우선 막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종필은 좋은 훈수 하나 들은 듯 기분좋아했다고 한다. 육사 8期 주축 中情 창설 5월16일 밤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를 조직하는 데 협조해 달라고 불러낸 육사 8기 동기생 최영택(前 주일 공사) 중령과 함께 혁명군 완장을 만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울 명동 입구의 상패 만드는 집으로 갔다. 가게 주인은 낚시와 등산용 지도를 만들어 팔기도 하는 사람인데 김종필한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김종필이 육본 정보국 기획과장으로 있을 때, 이 주인이 5만분의 1 군사 지도를 등산용으로 팔려는데 허락해달라고 부탁해 왔다. 김종필이 상부에 이야기해서 좌표를 지우고 판매하도록 해주는 바람에 돈을 많이 번 사람이었다. 이 주인은 그날 밤을 새워 4500장의 완장을 만들어 주었다. 17일부터 하얀 천에 혁명군이라 쓴 완장을 나누어 주니 군인들의 사기가 충천하는 것이었다. 혁명군이 아닌 군인들은 완장을 찬 동료들을 보고 부러워했다. 최영택은 완장의 심리적 효과에 놀랐고 이를 적절하게
이용한 김종필의 두뇌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17일 오후 김종필은 최영택에게 “우리 동기들을 불러오자. 우선 徐廷淳(서정순), 李永根(이영근),
그리고 제대한 뒤 대구에 내려가 있는 高濟勳(고제훈)을 불러 와”라고 했다. 이들이 정동 舊(구)러시아 공사관 근처의 하남호텔에 모인 것은 5월18일이었다. 김종필이 대강 정해준 지침에 따라 이들은 중앙정보부의
조직案(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6·25 전부터 육본 정보국에서 근무한 장교들로서 당시
전투정보과 비공식 문관이던 박정희와 親面(친면)이 있었다. 이들은 작업을 하다가 石正善(석정선)을 생각했다. 동기생 석정선은 4·19 직후 김종필과 함께 군내 정화운동을 주동한 인물이었다. 김, 석 두 중령은 둘도 없는 친구로서 5·16 석 달 전에 헌병대에 같이 구속되었다가
강제 예편당할 때까지는 행동을 함께 했다. 그 뒤 석정선은 “나는 처자식도 있고 하니 혁명은 그만두겠다”고 하여 손을 뗐었다. 김종필은 “좋다. 네 갈 길을 가라. 그러나 혁명이 누설되면
네가 한 걸로 알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동기생들은 뛰어난 정보장교인 석정선의 머리가 필요하니 그를 불러야겠다고 김종필에게 건의했고 김종필도 양해했다. 석정선이 참여하자 하남호텔의 모임은 활기를 더해갔다. 이들은 중앙정보부뿐 아니라 군사혁명위원회를 이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조직안도 만들었다. 이들은 혁명 정부 권력 구조의 산파이기도 했다. 19일 김종필은 최영택 중령에게 장면 총리 직속으로 되어 있던 중앙정보위원회의 李厚洛(이후락) 실장으로부터 업무 일체를 인수하라는 지시를 했다. 이후락은 자유당 시절에 김정렬 국방장관으로부터 발탁되어 장관 직속의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이 부대의 이름을 자신의 군번을 따서 79부대로 붙였었다. 79부대의 주 임무는 미국 CIA와 정보 교류를 하는 것이었다. 이후락은 장면 정부 시절에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뒤 같은 일을
보고 있었다. 정보위원회는 그러나 경찰, 군의 여러 정보기관을 통합 조정하는 국가 정보기관으로서는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영택 중령은 이후락 실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부인이 전화를 받는데 “안 계신다”는 것이었다. 최영택은 이후락과 함께 연합참모본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최영택은 “사실 저는 최영택입니다”라고 하니 부인은 “어머나 그러세요. 잠깐 기다리세요”라고 하더니 이후락을 바꾸어 주더란 것이다. “최영택 중령입니다. 이젠 군사혁명이 성공 단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중앙정보부를 창립하려고
하는데 도와주십시오.” “아, 협조하지요.” “인수인계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좋습니다.” “일단 내일 한번 뵈면 어떨까요.” “좋지요. 내일 오후 1시에 명동 사보이호텔 지하 다방에서 만납시다.” 5월20일 최영택은 김종필을 따라가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들에게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조직과 기능 등 혁명 정부의 통치 기구 조직에 대해서 보고했다. 최영택은 차트를 넘기고 김종필이 설명했다. 장도영 총장은
‘최고’란 말이 거슬린다고 지적했다. 최연장자인 김홍일 외무장관이 말했다. “지금 우리는 군사혁명을 한 것입니다. 이런 시기엔 권위 있는 이름이 필요합니다. 비록 공산 국가에서 쓰고 있다고 해도 ‘최고’란 단어를 못 쓸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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