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화록이 중요한 것은 5·16 전후의 사정을 보여 주는 당시의 유일한 공식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 뒤에 만들어진 기록이 미화, 왜곡, 축소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자료는 한미 간의 공동 기록에 의하여 보존되었기 때문에 정확성이 보증되고 있다. 이 회담에서 5·16 혁명의 기획자 김종필 중령이 길게 설명하는
혁명의 과정과 동기도 그런 점에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김종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진정한 목적을 매그루더 장군에게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하여 오해가 있었습니다. 본인은 현직에서 강제 전역당할 때도 매그루더 사령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거사계획이 탄로날
것이란 판단에 도달하였습니다. 먼저 우리가 벌인 정군운동의 배경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귀하는 한국군의 고급 장성들과 매우 친밀하였습니다만 이들은 하급 장교들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하여서는 무관심한 분들이었습니다. 둘째, 4월 혁명 이후 육군에서는 군부를 숙정해야 한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것이 공산화와 쿠데타를 막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육군 내부에는 상호 반목하는 많은 파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하급 장교들은 고급 장성들의 부패상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예컨대 어느 중장은 280만 환을 축재했고 부하 장교의 부인과 관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우리 하급 장교들이 상관들을 존경할 수 있었겠습니까. 1960년 3월15일 선거에서 고급 장교들은 부정선거를 위해서 2억 환의 자금을 받아 선거에 쓰지도 않고 착복했습니다. 우리 군은 표면적으로는 臨戰(임전)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나 그 이면은 부패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북한군 하급 장교들은 사병들과 침식을 같이 하면서 그들의 사기를 높이고 정신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급 장교들의 이런 솔선수범은 하사관들의 생활 태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아무리 장비가 좋다고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단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런 군대는 싸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고급
장성들의 집과 사무실을 찾아가서 그들의 양심에 호소하였습니다. 이들은 우리를 불평분자로 몰았습니다. 매그루더 사령관이 박정희 소장에 대해서 오해를 갖게 된 것이 이 무렵이었습니다. 박정희 장군을 배후 조종자로 지목했으니까요.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급 장교들이 박정희 소장을 좋아한 이유는 그의 정직, 청렴성, 그리고 이해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혁명에는 250명의 장교와 3,500명의 사병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의 일념은 나라를 구하고 부패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부정축재를 하면서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방관해온 정치인들입니다. 우리는 혁명 이후 정부를 민간인들에게 이양할 것이며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계획과 목적이 매그루더 사령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우리와 매그루더 사령관 사이에는 깊은
오해가 있습니다. 이런 오해를 불식하고자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