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대, 박용기 중령 등은 이한림의 전화를 감청한 요지를 계속해서 보고받고 있었다. 이한림의 회고록 기록과는 달리 박용기의 기록에 따르면 박정희는 16일 오전 10시쯤 처음으로 이한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 이한림은 박정희에게 “넌 빨갱이가 아닌가. 즉시 동원한 부대를 원대 복귀시켜라”고 소리쳤다는 것이었다. 이날 오후 3시쯤 박정희는 다시 이한림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때도 이한림은 박정희의 협조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하고는 “나의 승인 없이는 절대로 혁명이 성공할 수 없으니 부대를 원대 복귀시켜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1군 부사령관 尹春根(윤춘근) 소장, 정보처장 李召東(이소동) 준장은 쿠데타를 진압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17일에 들어서니 이한림 사령관이 육사 교장일 때 배출시킨 정규 육사 출신 대위들을 중심으로 하여 1개 중대 병력을 편성, 사령부 경비에 투입할 것이라는 첩보가 주체 장교들에게 들어왔다. 조창대, 박용기 중령은 사령관 주변의 방어가 굳혀지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게 되었다. 오후 6시 이들 혁명파 장교들은 육본으로 전화를 걸어 1군과의 연락책 역할을 하고 있던 오치성 대령에게 ‘이한림 체포 작전’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한다. 오치성은 박정희 소장과 협의한 뒤 ‘좋다’는 통보를 했다. 조창대, 박용기 중령 등은 18일 새벽에 덮치기로 했다. 그 전에 손을 써야 할 부분이 있었다. 이들은 우선 사령관의 관사를 경비하고 있는 헌병들을 철수시켜 줄 것을 박태원 헌병부장에게 요청하여 승락을 받았다. 혁명파에 합류한 심리전 참모 許順五(허순오·전기안전공사 사장 역임) 대령으로부터는 1개 중대를 지원받아 관사의 외곽을 포위하기로 했다. 이한림을 체포한 뒤 서울로 데리고 갈 지프도 준비하고 운전은
혁명파인 엄병길 중령이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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