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朴正熙 照明

연재(42) “나는 허수아비야. 朴正熙가 다 하고 있어”

淸山에 2011. 3. 15. 11:23

 

 
 
“나는 허수아비야. 朴正熙가 다 하고 있어”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42)/ 혁명군과 장도영 측의 합동회의장은 계급 서열이 무시되었다. 혁명군의 영관급 장교들이 육본 측 장성들보다도 상좌에 앉아 있는 판이었다.
趙甲濟   

 
 

 

 
 
 CIA 서울지부장의 등장
 
 워싱턴 시각으로 5월16일 정오, 미 국무부는 對(대)언론 정례 브리핑을 가졌다. 이날 링컨 화이트 대변인은 한국에서 발생한
쿠데타에 대해서 이런 논평을 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보고를 받고 있으며 이 사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사태는 아주 유동적이고 불명확하기 때문에 내용 있는 논평을
할 처지가 못 된다. 매그루더 장군과 그린 대리대사의 성명(기자 注─쿠데타에 반대하고 장면 정부를 지지한다는 내용)은
그들의 직무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워싱턴은 이 논평을 통해서 매그루더와 그린이 취한 조치는 현지에서 알아서 한 것일 뿐 케네디 대통령의 결심을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한 것이다. 적극적인 쿠데타 반대 입장에서 한 발을 크게 뺀 셈이다. 이날 밤 미 국무부 차관 체스터 보울즈는 그린 대리대사에게 急電(급전)을 보냈다. 보울즈는 러스크 국무장관을 대리하고 있었다. 보울즈는 이 전문에서 ‘합헌 정부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한 뒤 다음과 같은 현실론을 편다.
 
 <그러나 (윤보선) 대통령과 군 지휘관 및 정부 요인들의 이상한 비협조, 이들이 쿠데타를 진압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총리와 다른 각료들의 잠적으로 미루어 볼 때 장면 정부가 이번 위기를 맞아 큰 상처를 받지 않고 견디어 낸다는 것은 거의 無望(무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태가 확실해질 때까지 일단 조심스럽게 관망하는 자세(wait and see)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장면 정부가 재건되기를 희망하면서 그런 목적에 방해가 될 만한 언동을 피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 정부가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지금 이미 끝나버린 것일지도 모르는 장면 정부의 운명과 우리의 입장을 같이 묶어
버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될 것이다>
 
 
 

 

 
 

 
 국무부는 쿠데타에 반대하는 최초의 입장에서 한 걸음을 더 뒤로 뺀 것이다. 이날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앨런 덜레스 부장은 케네디 대통령 앞으로 중요한 정보 보고서를 한 장 올렸다. 그 동안 CIA 서울지부가 추적한 한국 쿠데타에 관련된 정보 보고서의 두 페이지짜리 요약이었다. 이 보고서에는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이 박정희 소장의 모의를 자세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장면 총리에게는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미국 측과는 정보 교환을 해 온 상황이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이 정보 보고를 접한 미국 정부 고위층은 아마도 이런 정부는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장도영 총장이 결국은 박정희에 의해서 조종되고 말 것이라는 예상을 했을 것이다.
 
 한미 관계가 혼돈에 빠져 있던 5월16일 직후의 상황에서 CIA 서울지부장 피어 드 실버가 등장한다. 5월16일 아침 그는 급보를 받고 반도호텔 건너편에 있던 미국 대사관으로 출근했다. 그는 CIA 본부로 쿠데타의 발생을 알리는 제1보를 보낸 뒤 담배를 피워 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장면 총리가 가르쳐 준 비밀 전화번호가 생각났다.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벨이 울리고 떨리는 목소리가 응답했다. 실버가 영어로 말하니 상대방도 영어로 말했다. 실버는 “총리를 좀 바꾸어 달라”고 했다. 상대방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 요지는 ‘장면 총리는 실각했고, 도주 중이며,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누구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나는 박종규 소령입니다. 혁명군을 대표합니다.”
 
 실버는 “만나고 싶습니다. 제가 거기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CIA에서 對(대)공산권 공작 전문가로서 잔뼈가 굵은 실버는 길을 건너 반도호텔로 갔다. 1층 로비에는 한 무리의 서양 사람들이 잠옷을 입고 실내화를 신고 나와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국군의 공수단 군인들도 모여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키가 큰 사병이 지키고 있었다. 실버가 다가가니 사병은 무엇인가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실버는 영어로 “고맙다”고 말하고 웃음을 지으면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8층으로 올라가서 오른쪽 장면 총리의 집무실로 갔다. 문을 두드리자 호리호리한 몸집을 한 소령이 나왔다. 얼굴은 긴장되어 있었고 기진맥진한 듯 보였다. 방에 들어가니 완전무장한 공수단원 몇 명이 더 있었다. 실버가 “박종규 소령입니까” 하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박종규는 볼멘소리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총리는 이미 도주한 뒤였다. 지금 막 박정희 소장에게 상황을 보고하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실버는 명함을 꺼내 뒤에다가 사무실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주면서 “언제든지 전화를 걸고 찾아오면 만나겠다”고 했다. 실버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CIA 본부에 연락을 취했다. 박정희와 박종규의 이름을 알려 주면서 이들에 대한 신원
조회를 부탁했다. 실버가 그때 알고 있던 혁명군 장교들은 이 두 사람이 유일했다.
 
 

 

 
 

 아침 9시, 박종규가 미국 대사관으로 찾아왔다. 박종규는 실버를 데리고 김종필이 머물던 사무실로 갔다.
실버는 초면의 김종필을 이렇게 묘사했다(회고록 《서브로자》).
 
 <나는 박종규 소령을 따라 4층으로 올라가서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큰 회의실로 들어갔다. 김종필 중령이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중키였고 체격은 호리호리한 편이었다. 童顔(동안)이었으며 조용하고 침착했다. 박 소령이 한국말로 나를 소개하자 나에게
의자를 권했다. 박 소령은 통역을 맡았다. 내가 그 뒤 박정희 장군이 주도하는 정부와 접촉하는 데 있어서
김종필은 시종일관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는 내가 CIA 중견 간부라는 사실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CIA가 미국 정부 조직상 어떤 지위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정중하고 주의 깊게 질문하곤 했다. 이날 대화의 주도권은 김종필이 잡았다. 그는 왜 군사혁명이 필요했는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 갔다. 김종필은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고 깊이 있게 표현할 줄 아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나는 그들이 이제 대한민국을 통치할 책임을 떠맡았으므로 먼저 주도권을 잡고서 미국 대사관 및 미군 사령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재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나는 그동안 혈맹관계를 유지해온 우리 두 나라가 적대적 관계가 된다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해 주었다>
 
 실버는 김종필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본부에 보고한 뒤 그린 대리대사에게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린은 매그루더 사령관이 흥분해 있으므로 박정희를 상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은 “매그루더의 정보참모가 박정희의 좌익 행각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실버는 벌써 CIA 본부에 조회한 자료에 의해서 박정희가 지금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린은 “그런 이야기를 매그루더 사령관에게 해줄 필요가 있겠다”고 실버에게 충고했다. 
 

 

 

 
 
 姜英勳 육사 교장
 
 5월16일 새벽 4시쯤 서울 서대문 부근에 살던 육사 교장 姜英勳(강영훈·국무총리 역임) 중장은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바로 윗집에 사는 金炯一(김형일) 중장이었다. 육군 참모차장을 거쳐 당시 국방장관 보좌관으로 있던 김 중장은
박정희 소장과는 노선이 달라 자주 충돌한 사람이다.
 
 “지금 총소리 안 들리오?”
 
 “어디서 나는데요?”
 
 “한강 쪽입니다. 아마도 쿠데타가 난 모양입니다. 하여간 우리 집에 와서 의논합시다.”
 
 “쿠데타가 났다는데 의논하면 뭣 합니까. 나는 사관학교로 가봐야겠어요.”
 
 강영훈 교장은 그 길로 자신의 차를 불러 타고 광화문으로 나갔다. 혁명군들이 공포를 쏘면서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청량리 쪽으로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그는 구파발─북한산성을 돌아 의정부를 거쳐 태릉으로 가기로 했다.
그는 의정부에 도달했을 때 미 1군단장 라이언 중장의 숙소를 찾았다. 라이언 중장은 대뜸 이런 질문부터 했다.
 
 “박정희라는 쿠데타 지휘자를 아시오?”
 
 “좀 알지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까?”
 
 “한국전쟁을 치른 장군인데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당신네들이 더 잘 알 것 아닙니까.”

 
 
 

 

 
 

 라이언 중장은 상황 설명을 해주는데 6군단 포병단이 참여했다는 말에 강영훈 중장은 충격을 받았다. 대포까지 끌고 서울로
들어갔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강 중장은 ‘대단한 유혈사태가 날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했다.
 
 육사에 가보니 학력이 좋은 교수·교관 요원 등 기성 장교들은 “우리도 혁명군에 참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들썩거리고 있었다. 姜 교장은 이들을 집합시킨 뒤 “딴 생각하지 말고 교육에 충실하고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생도대장으로서 전술교육을 맡고 있던 이는 金益權(김익권) 준장이었다. 서울대 법대 1회 졸업생이자 육사 5기 출신인 그는 박정희가 육사 중대장일 때 생도였으므로 평소에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4·19 이후 공권력의 令(영)이 서지 않아 생도들이 외출을 나갔다가 깡패들에게 얻어맞고 오는 경우도 있어 그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익권 준장을 비롯하여 참모장과
교수부장은 姜 교장에게 “빨리 육본에 가셔서 혁명을 지지한다고 말씀 드리십시오”란 건의까지 했다고 한다.
 
 강영훈은 오후에 육본으로 떠났다. 그 직후 육본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생도대 부대장을 지낸 바 있는 朴蒼岩(박창암) 대령이었다. 朴 대령은 육사생도들이 시가행진을 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김익권은 ‘지휘 계통을 따라 명령이 내려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창암이 전화를 바꾸는데 박정희였다.
 
 “각하, 저 김익권입니다. 교장을 통해 지시를 내리시든지 참모총장을 통해서 명령하시면 따르겠습니다.”
 
 “여보, 혁명하는 데 무슨 지휘 계통을 따지오? 그리고 교장은 여기 없소.”
 
 박정희는 화가 난 듯이 전화를 끊었다. 김익권은 강영훈 교장이 그곳에 도착한 줄 알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박창암 대령이 또 전화를 걸어 왔다. ‘1개 전투중대 병력이 무장을 하고 육사로 갑니다’란 통보였다.
 
 
 

 

 
 

 강영훈 교장 차가 청량리 부근을 지나는데 맞은편에서 세 대의 트럭이 오고 있었다. 박창암 대령이 타고 있었다.
강영훈 중장은 차를 멈추게 한 뒤 박 대령에게 물었다.
 
 “어딜 가나?”
 
 “육사로 갑니다.”
 
 “사관학교엔 갈 필요 없네. 나와 함께 육본으로 가세.”
 
 “안 됩니다. 저는 임무가 있습니다.”
 
 육사에 도착한 박창암 대령은 김익권 준장에게 “생도들을 집합시켜 달라”고 했다. 김 준장은 스피커를 통해서 이런 취지의
교내 방송을 했다고 한다.
 
 “모든 학생들은 강당에 집합하기 바란다. 지금 군사혁명이 일어났는데 설명이 있을 것이다. 절대로 강권하는 것은 아니다.
생도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자발적으로 모이도록 했는데 8개 생도 중대 가운데 1개 중대 정도만 모였다. 박창암 대령은 다시 장교들을 소집해 달라고 했다.
그는 이들 생도와 장교들을 상대로 혁명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돌아갔다. 육사 장교들은 아직은 생도들을
이끌고 나갈 마음이 아니었다.
 
 16일 오후 3시를 넘어 육본에 도착하여 장도영과 박정희를 만난 강영훈은 “사관 생도들은 정치에 이용하지 맙시다”라고
했다고 한다. 박정희가 바깥으로 나간 틈에 강영훈은 친구 사이인 장도영에게 말했다.
 
 “야, 정신 차려라. 대체 뭘 하는 거야?”
 
 “야, 나는 허수아비야. 박정희가 다 하고 있어.”
 
 “무슨 소리야? 참모총장이 그 따위 소리해도 되나?”
 
 “오늘 아침에 타군 참모총장들을 모이게 해서 회의를 해봤어. 공군 총장은 쿠데타에 반대하는데
해군참모총장은 의견을 말하지 않더군.”
 
 “아니 공군하고 해군이 무슨 상관이야. 육군이 중심인데 자네가 정신 차려야지.”
 
 장도영은 일어서면서 “지금 회의를 하는데 같이 가자”고 끌었다. 혁명군과 장도영 측의 합동회의였다.
회의장의 의자 배치를 보니 계급 서열이 무시되었다. 혁명군의 영관급 장교들이 육본 측 장성들보다도 상좌에 앉아 있는 판이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柳原植 대령이 일어났다.
 
 “저희는 참모총장님을 모시고 윤보선 대통령을 찾아뵙고 왔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것은 인조반정에 해당하는 일이다’고 극구 칭찬하셨습니다.”
 
 柳 대령은 尹 대통령의 말을 일방적으로 왜곡하여 전달하고 있었다. 다른 장교가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모든 문제를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일 대 일로 결정해야 합니다.”
 
 회의실 분위기는 살벌했다. 박정희도 일어나더니 한마디 불평을 털어놓았다.
 
 “아직까지도 장면이가 어디 갔는지도 모르고 붙들지도 못하고 말이야, 뭣들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