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은 대통령이 하야하면 우리 정부가 54개국과 수립해 놓은 국교가 무효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보선은 이날 오후 장도영과 박정희가 배석한 가운데 하야를 번복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혁명 내각을 구성했다. 내각수반 겸 국방부 장관은 장도영(39), 외무부 장관은 金弘壹(김홍일·57) 예비역 육군 중장, 내무장관 韓信(한신·40) 육군소장(국방연구원), 재무장관 白善鎭(백선진·40) 육군 소장(육본 군수참모부장), 법무장관 高元增(고원증·41) 육군 준장(국방부 법제위원장), 문교부 장관 文熙奭(문희석·40) 해병 대령(해병대 작전교육국장), 부흥부를 대체한 건설부 장관 朴基錫(박기석·34) 육군 대령(2군 공병부장), 농림부 장관 張坰淳(장경순·40) 육군 준장(육본 교육처장), 상공부 장관 丁來赫(정래혁·38) 육군 소장(국방연구원), 보사부 장관 張德昇(장덕승·44) 공군 준장(공군의무감), 교통부 장관 金光玉(김광옥·36) 해군대령(해군대학 총장), 체신부 장관 裵德鎭(배덕진·38) 육군 준장(1군 통신부장), 국무원 사무처장 金炳三(김병삼·40) 육군 준장(육본 일반참모비서실장), 공보부장 沈興善(심흥선·36) 육군 소장(육본 인사참모부 차장).
이들 14명 중 50대는 한 사람뿐이었다. 40대가 7명, 30대가 6명이었다. 장면 내각 장관들보다도 20세 가량이 젊어진 것이다. 거의 한 세대의 연령 차였다. 이 세대교체는 5·16 쿠데타가 혁명으로 진행하기 시작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목표 달성과 효율성, 그리고 책임감과 추진력으로 무장한 30, 40대가 60대의
민간 정치인들을 대체하고 국가 지도부를 차지한 것이다. 젊어진 국가 지도부는 그 젊음 그대로 전광석화 같은 개혁 조치들을 연일 터뜨리기 시작한다. 패기만만한 장교단에 의한 대한민국의 전면적인 접수와 개조 작업이 발진한 것이다. 중앙정부부처, 국영기업체, 경찰, 지방행정기관의 장과 간부로 나간 장교들은 현대적 조직 경영을 경험한 당시 대한민국의 가장 선진된 세력이었다. 당시 한국군 장교단 약 6만 명 가운데 약 10%가 渡美(도미) 유학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 비율은 당시 외무부 공무원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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