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과 지성, 氣와 理
한국의 지금은 야성의 시대이지 지성의 시대는 아니다. 몽골적 야성과 유교적 지성이 민족성의 2대 기조(基調)라는 시각은 한국인에게 하나의 화두를 제공한다. 야성과 지성을 어떤 비율로 섞을 것인가 하는 궁합의 문제가 그것이다. 야성을 주로 하여 고구려(高句麗)같은 나라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성을 주로 하여 조선(朝鮮)과 같은 나라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반반씩 섞어 신라(新羅)같은 나라를 만들 것인가. 한국인의 민족성을 규정하는 2대 기본 반찬을 어떻게 섞을 것인가 하는 것은 시대정신이 결정할 것이고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엘리트가 대중의 힘과 세계의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느야 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계가 된다고 하겠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형효(金炯孝) 교수는 몽골=야성을 氣로, 동사로, 유교=지성을 理로, 명사로 상징한 적이 있다. 한 국가나 인간을 움직이는 요소로서 힘, 정열, 추진력, 군사력, 경제력, 상무정신, 오기, 개척정신, 모험정신, 단결심, 종교적 응집력 같은 것은 몽골=야성=氣에 해당하며 논리, 이성, 법률, 제도, 과학, 학문, 분석력 같은 것은 유교=이성=理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점보기에 비유한다면 동체와 엔진과 연료는 氣에, 조종실의 각종 항법장치와 자동조종장치 및 나침반은 理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슴과 근육은 氣이고 머리는 이성인 것이다. 한국인의 한 단점은 이 2大 요소를 배합하는 기술이 서툴다는 데 있다. 균형감각이 부족한지 극단적 배합을 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서 주자학(朱子學)을 도입하는 것은 좋은데 이것을 중국보다도 더 교조화해 버리니 과부 개가(改嫁)금지 같은 위선적인 도덕률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신바람은 무질서로, 도덕률의 통제를 받지 않는 천박한 힘으로 전락한다. 동사만 쓰는 대화는 활기에 넘치겠지만 살벌할 것이고 명사만 쓰는 대화는 각박할 것이다. 동사는 명사의 통제를 받고 명사는 동사를 엔진으로 삼을 때 언어에 질서가 생기는 것처럼 氣와 理를 균형 있게 섞어야 몸이나 나라가 편해진다. 이것은 중용(中庸)의 문제이다. 중용은 기하학적인 중간이 아니다. 어중간한 타협도 아니다. 中正이다.
주체성과 균형감각에 입각하여 중심을 잡고 서는 것이다. 자신의 주체적 판단을 기준으로 삼고서 그 상황이 요구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용이다. 朴正熙가 좋은 예이다. 그는 국가근대화를 목표로 세워놓고서 동원이 가능한 자원을 自由自在로 활용한 사람이다. 일본의 국가주의, 유교의 실용적 측면, 미국의 조직경영, 사회주의의 통제 기술까지도 참고로 하고 빌어와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국가 근대화에 도움이 된다면 악마하고도 거래를 할 사람이었다. 자신의 敵으로부터도 배울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존심의 소유자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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