訓民正音과 字倣古篆
정인지서문의 象形而字倣古篆과 세종실록 其字倣古篆의 자방고전 문구를 놓고
아직까지 학자들간의 해석이 분분하고, 이 字倣古篆을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
훈민정음의 기원설이 뒤바뀌고 또한 아혹한 말썽을 일으키는 상당히 중요한 문구이다.
운림당 발행 서예자료인『훈민정음.용비어천가』책자의 "훈민정음 명해" 말미에
《그런데 이 글 가운데「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協七調」라 한 것은 「훈민정음」의 기원이
字形은 옛 篆字요 음성원리는 대체가 한자의 음운이란 설명에 틀림없다.
이미 「제자해」에서 발음기관에서 象形 되었음을 논단하였는데 여기서는 古篆 기원을 내세웠다.
이 양자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해명할까?》 라는 문구가 있듯, 이 字倣古篆의 논란이 그것이다.
아래는 "훈민정음 연구"(김석환, 한신문화사, 1997) 12~14쪽의 字倣古篆 부분을 발췌한 글로
字倣古篆은 옛날 전자의 상형이 아니라, "옛날 전자 만든 방식을 모방했다"라는 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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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자에 대한 글짜로서의 해석에 두 가지 풀이가 있으니, 하나는 ㄱ, ㄴ, ㄷ과 같은 음소적 낱자(字母)를
말함이니 實錄과 鄭序에 "二十八字"의 字가 그것이요, 또 하나는 "나, 감, 닭" 따위 음절적 단위를 말함이니
실록의 "分爲初中終聲合之然後乃成字"란 字가 바로 그것이다. 字자의 이러한 뜻 가운데에 여기에서 어느
것을 취해야 되느냐가 문제인 바 앞의 "정서"에서 발취된 글귀를 보면 二十八字의 "字" 밖에는 달리 언급된
바 있음을 발견할 수 없으며 "실록" 인즉 친제언문 二十八字 아래에 이어서 其字는 倣古篆 이라고 하였으니
其字란 바로 二十八字를 가리키는 것이어 이는 문맥상 첫째 뜻인 二十八字의 字로 채택됨이 당연한 사리이다.
따라서 최현배 선생의 둘째 뜻의 "字"로써 자방고전을 해석 하였음은 너무도 심한 오류가 아닐 수 없음을
족히 발견 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러나 특히 이분네의 주장을 가볍게 묵살할 수 없는 입장에서 "자방고전"을
또한 둘째 뜻의 "字"로도 아울러 참고 해 보려 한다.
다음에 "倣"은 본받을 "방"자이니 본받는다는 뜻은 물론이요, 같다는 뜻도 될 것이고, 모방한다는 뜻도 될
것이며, 또는 고전 기원설을 제창하고 있는 그네들을 위해서는 본뜬다는 뜻으로 보아도 아니될 것은 없다.
그러므로 여기의 본받았다, 같다, 모방했다, 본떴다 이 네가지 말 가운데 각자가 어느 것을 취하든 그 字意의
골자는 궤를 같이하는 말이라 하겠다. 따라서 그네들의 주장인 字形을 옛날 篆字에서 모방했다는 뜻에 벗어날
수 있는 근거에는 부족됨이 없지 않은지라 그렇다면 이제 그네들의 해석을 존중해 주지 않을수 없거니 倣자를
나 또한 모방한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다시 생각한 바가 있도다. 그는 곧 둘째로서 漢字라는 表意文字 임으로
그 글짜가 어디에 表意對象이 되는 글자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 사는 집(住宅)을 말할 때에
말은 같은 집이로되 집"家"자를 쓸데와, 집"室"자를 쓸데와, 집"宮"자를 쓸데가 다 각각 다른지라, 그러므로
똑같은 모방한다는 말에도 그 모방하는 對象에 따라 그 글짜도 또한 다른 것임은 물론이다. 다시 말하면 모방
하는 데에도 어느 물체의 꼴(形)을 그대로 모방함을 표현할 경우와 어느 行爲나 方式을 그대로 모방함을
표현할 경우와는 그 "모방"의 말은 비록 같되 각각 그 쓰이는 글짜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 고증인지라 훈민정음 해례의 制字解 가운데에 "形之圓象乎天也", "形之平象乎地也" 운운한 글귀로 볼때에
"象"자를 꼴(形) 모방을 표현한 데에 쓰였으며 초성해, 중성해의 해설 가운데에서 "皆倣此"라는 문구를 본다면
나머지는 모두 이와 같은 式이니 미루어 알도록 그 "방식" 모방을 뜻한 데어 "倣"자로서 쓰였으니 이것 으로도
가히 확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鄭麟趾가 그 서문에서 "象形而字倣古篆"이라 한 것은 한글 二十八字 만든 내력에 대하여 하나하나
그 설명을 열거하여야 할 자리에 古篆이라는 당초 그 글자를 만들 적에 예를들어 산모양을 본떠서 뫼"山"자를,
고기의 꼴을 본떠서 고기"魚"자가 된 象形文字임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한글 글짜 만든 식의
하나하나 매거하는 번폐를 피하기 위한 꾀로써 이를 생략하고 다만 "象形而字倣古篆" 이것을 풀어 말하면
"꼴을(象形) 본떠서 글짜를 만들되 옛날 篆字와 같다", 혹은 "꼴을 본뜨되 글짜는 옛날 篆字 만든 式을 모방
했다"는 한마디로서 한글 二十八字에 대한 取象방법을 밝히었도다.
상고 = 앞의 "象形而字倣古篆" 글귀를 "象形而字倣古篆"이라고 막 내려붙이지 않고 "象形而字하되 倣古篆"
이라 토를 달면 더욱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 바 곧 "꼴을 본떠서 글짜를 만들되 옛날 전자와 같다"라는 번역이
되므로 고전의 字形을 말함이 아니고 그 글짜 만들 적에 꼴을 본떠서 만든 방식이 같음을 뜻하였다는 글귀
임이 한층 더 뚜렷하게 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고사(高士) 제현의 채증 자료로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정인지 서문의 이 글귀에 대하여 한번 토를
띄어 본다면 "象形而字하되 倣古篆하고 因聲而音하되 協七調하니 三極之義와 二氣之妙가 其不該括이라"
이렇게 토를 띄어서 읽고 보면 아무도 그 뜻을 살피기에 별로 의심될 것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후세
학자들이 종래 읽어 온대로 "字倣古篆"이라고 내려 붙여도 그 진의에 하등 어긋남이 없는 이상 구태여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해야 될 이유는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字倣古篆"의 뜻이 옛날 篆字를 모방했다는 말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다 같은 모방을
표현한 말에 있어서도 어느 물건의 形體에 대한 꼴의 모방을 표현할 경우에는 "象"자로서 나타내는 것이요,
어느 행위나 방식의 모방을 표현할 경우에는 "倣"자로서 나타내는 것이 제자해 가운데에 쓰인 實例를
보더라도 表意文字로서의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만약 "字象古篆"이라고 "象"자로서 표현 되었을 경우라면 그네들 주장과 같이 "옛날전자"
더 넓게 漢字에서 그 "자형"을 본떴다는 해석으로도 가이 무방 하거니와 字倣古篆 이라고 엄연히 "倣"자로서
표현 되었으니 그 해석인즉 "글짜는 옛날 전자 만든 방식을 모방했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고전 만든 그 방식인지라 앞에 든 바와 같이 "뫼산"자는 산(山)모양을 직접 본뜨고 "고기어"자는
고기(魚)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우리 한글도 이와 같은 식으로 가령 "ㅇ"자는 목구멍의 텅빈 모양을 본뜨고 "ㅣ"자의 선 모양인 것은 사람을
본떠서 만들기 때문에 한글 二十八字 만든 내력의 하나하나 매거하는 번폐를 피하고 한마디로 이것을
표현하기 위한 데에서 통변된 문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