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 배움/우리말 벗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淸山에 2011. 4. 7. 14:36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떴다 봐라 저 종달새

석양은 늘어져 갈마기 울고 능수버들가지 휘늘어진디

꾀꼬리는 짝을 지어 이산으로 가면 꾀꼴~ 꾀꼴~

(이하 생략)

 

♪ 남원산성 - 장민

 

♪ 남원산성 - 김용임

 

내가 2008년부터 2년간 근무했었던 남원에서 생겨나고 불리었다는 등가타령

(‘남원산성혹은 둥가타령이라고도 한다)의 일부이다.

 

오늘은 나를 아주 미워(?)하는 수진 선배님의 마음도 풀어주고자 하는 일환으로 그 선배와 이름이 비슷한 수지니, 날지니 등의 이름을 가진 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를 생각하면 백기완 선생님께서 쓰신 소설 장산곶매 이야기

제일 먼저 생각난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자)

 

그런데 수지니 날진이 등으로 불리는 매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여러 가지 문헌을 참고하여 분류해 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수지니 - 새끼 때부터 집에서 사람의 손으로 길들인 매나 새매.

날지니 - 야생 매.

해동청(海東靑) - 수지니 중 깃털에 푸른빛이 나는 것.

송골매 - 수지니 중 깃털색이 흰 것.

보라매 - 난 지 1년이 안 된 새끼를 잡아 길들여서 사냥에 쓰는 매.

()지니 - 날지 못할 때에 잡아다가 길들인, 한 살이 되지 아니한 매.

()지니 - 산에서 자라 여러 해가 묵은 매나 새매.

()지니 - 두 살 된 매나 새매.

()지니 - 두 해 묵어서 세 살 된 매나 새매.

()지니 - 세 살이 된 매나 새매를 이르는 말. 동작이 느려 사냥에는 쓰 지 못한다.

초고리 - 작은 매.

 

한편, 고려시대에 몽골이 우리나라를 침략, 지배하는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몽골에서 우리나라에게 사냥용 매(특히 해동청)를 조공으로 요구하였는바, 조정에서는 그 조공용 매의 사육과 사냥을 관장하는 관청인 응방(鷹坊)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매와 관련된 우리말인 수할치시치미의 뜻은 아래와 같다.

 

수할치 - 매를 부리면서 매사냥을 지휘한 사람.

시치미 -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말이나 짓. 매의 주인이 자기 주소를 적어 매의 꽁지 위 털 속에다가 매어 둔 네모진 뿔.

 


p6_1-ctbaik.jpg



이미지 출처 : http://ctbaik.blog.me/140022748545


이제 우리나라의 재야운동가이면서 통일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 계시는 백기완 선생님께서 쓰신 (민중의 삶의 지표를 제시해 민중을 열광시켰던) 소설 장산곶 매 이야기에 대하여

선생님께서 써 놓으신 글을 옮겨 본다.

 

우리나라의 중허리 장산곶은 텃새가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대륙의 묏 부리가 바다를 향해 미친 듯이 냅다 뻗히다가 갑자기 허리가 잘리고 거기서부터 깊은 수렁이 생겨 물살이 숨 가쁘게 소용돌이친다. 따라서 망망대해와 접해 있는 중국대륙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기압골의 변화는 곧바로 장산곶 마루턱에 와 닿아 그곳에 세찬 물살과 함께 풍랑이 조용히 잦을 날이 드물다. 이리하여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깔이 드세고, 풀뿌리 나뭇잎 가지가 약한 놈은 견뎌 배기질 못하여 거칠고 우람한 낙락장송만이 살아남아 드높이 우거졌다.

이 우거진 솔밭에는 유명한 전설이 많다.

 

장산곶 사람들이 원래가 성깔이 드세니 갖가지 민란을 일으켰다가 관군에 쫒기면 이 숲속에 숨는데 그럴라치면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혹 만용스러운 관군이 숲 속에 한 발길이라도 들여 놓을라치면 금방 칼끝에 녹이 슬어 백발백중 민란의 주역들에게 당했다는 전설이다.

 

왜 써보지도 않은 칼끝에 녹이 슬까?

바로 그 숲 속은 무서운 날짐승, 매의 서식처였기 때문이다.

이놈의 사나운 매 중에서도 장수매(우두머리)는 있는 법이었다. 이를테면 장산곶매란 이 장수매를 이른다. 이 장수매는 장산곶 바닷가, 몇 억년을 두고 요동치는 물결에 시달려 깎아지른 듯 높이 선 벼랑, 그 바람 찬 절벽에 솔밭이 우거진 어둠침침한 곳에 노상 둥지만 틀고 앉아있는 것이다. 천리밖에 개미새끼 한 마리의 움직임도 포착한다는 유난히 빛나는 눈매, 밤송이처럼 뻐그러진 앞가슴, 사나운 발톱, 지칠 줄 모르는 칼날 같은 날개, 여기에 슬기와 용맹을 곁들인 장수매는 이렇게 이상한 성품을 가진 놈이었다. 좀처럼 숲 속에서

나오는 법이 없는 놈이었다.

 

그러나 한 번 날개를 쳐 하늘에 떴다고 하면 천하의 날짐승, 들짐승들이 겁에 질려 맥을 못 추고, 사나운 정기가 온 누리에 서려 밭을 갈던 황소가 코에 땀을 흘리고, 물동이를 이고 가던 아낙이 선채로 굳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놈은 꿩이다 산토끼다 주변에 널려있는 자질구레한 먹이는 손을 대는 적이 없다. 그것들은 제 놈이 거느리는 여타 매에게 주고 자기는 일 년에 꼭 두 번만 사냥에 나서는데 그 사냥터는 조선반도가 아니라 멀리 서해 바다를 넘어 중국 본토요, 또 하나는 만주의 넓은 들을 넘어 사철 눈이 내리는 곳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지금의 시베리아였다. 중국 본토는 이른 겨울 그곳의 짐승들이 낟알을 먹고 잔뜩 살이 올랐을 무렵이요, 시베리아는 한반도에서는 초여름, 그곳 날짐승 들짐승들이

새싹을 뜯어먹고 기름져 날뛸 무렵이었다.

 

여기서 소개하는 줄거리는 매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도 맨 앞부분에 속한다. 어떤 대목이냐 하면 이 장수매가 수륙만리 넓은 땅으로 사냥을 떠나는 전날 밤 하는 그 놈의 입버릇인 부리질이다. 즉 이 장수매는 사냥을 떠나는 전날은 그의 사나운 주둥이로 그 놈이 자리했던 둥지와 생활 주변을 밤새도록 딱딱하고 송두리째 까 팽개친다는 것이었다.

 

자기 둥지를 깨서 삶의 전의를 새롭게 다지고 그 다지는 소리로 하여 병든 사람을 일으키는 부리질말이다. 자기 둥지란 지금까지의 오욕의 역사다. 침략주의와 그 앞잡이들의 문화요, 그것에 오염된 우리들의 문화경험이다. 아니 역사의 합리적인 발전지향에 대립되는 째째한 소시민 의식이요, 개인의 명예와 욕심이다. 따라서 민족의 자주통일에 대립되는

일제의 분단적 혹은 보수적 가치관일 뿐이다.

 

왜 그 짓이었을까.

제 증조할머니가 설명해 준 바에 의하면 이러했다.

 

장수매가 한 번 사냥에 나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명을 건 혼신의 싸움터에 나서는 것이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온 정성을 싸움에만 두어야지 그까짓 집터에 집착을 하면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전백승을 확인하되 설혹 한번 지는 날이면 매의 서식처가 적에게 발각될지 모를 일이요, 그렇게 되면 어느 때든지 장산곶매의 최후 보루가 위태로워질 것이 두려워 자기 둥지를 남김없이 부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리질은 큰 적과 싸우는 마지막 입질연습이요, 부리질을 통해서 자기의 정신적 상황을 점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만약 여의치 않으며 장수매는 갑자기 부리질을 거두어서 사냥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놀라는 것은 매가 아니라 장산곶 사람들이었다.

 

조선반도 사람들은 새의 울음소리에 관한 전설을 많이 믿어 왔다. 아침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요, 소쩍새가 솟적디 솟적다... 하면 풍년이, 그리고 솟뗑 솟뗑.. 하면 흉년이 든다는 식으로....

 

그러나 그 곳 사람들은 장수매의 부리질을 더욱 좋아했다.

왜냐하면 부리질로 밤을 지새운 날이라야 장수매는 사냥을 떠났고, 그것은 마치 민중이 도약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장수매가 사냥을 떠나면 병약한 자는 병이 낫고 장가 못간 이는 장가를 들고 또 주인 놈한테 억울함을 당한 머슴은 그날 아침에 난을 일으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전설이 있었다. 이래서 장산곶 사람들은 장수매의 부리질이 성공리에 끝나고 멀리 사냥에 떠나는 바로 그 순간 덩달아 춤을 추면서 기뻐했다.

<백기완 선생님의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에서>

 

 

위 소설과 관련된 글 한 편 더쓰고 맺는다.

 

우리는 저렇게 날아야 해

푸른 창공 저 높은 곳에서

가장 멀리 내다보며 날아갈 줄 알아야 해

 

우리는 저렇게 싸워야 해

부리질을 하며 발톱을 벼리며

단 한 번의 싸움을 위해 뛸 줄 알아야 해

 

벼랑 끝 낙락장송 위에

애써 자신의 둥지를 짓지만

싸움을 앞두고선 모둘 부수고

모든 걸 버리고 싸워야 해

 

내 가슴에 사는 매가 이전 오랜 잠을 깬다

잊었던 나의 매가 날개를 퍼덕인다

안락과 일상의 둥지를 부수고

눈빛은 천 리를 꿰뚫고 이 세상을 누린다

 

날아라 장산곶매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훨 넘어

싸워라 장산곶매

널 믿고 기다리는 민중을 위해

 

 

 

 

 

 

 
         
         
 
 
 
 
 

 
     


               

 
 

 

 
 
 

 
      
     
              
          
 
            
 
 
           
 


 
 

 

 

 
 
해동청이 늙은 닭만도 못할 때 있다.
 
김영조

 
“해동청(海東靑, 조선 푸른매)은 천하의 좋은 매이지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게 한다면 늙은 닭만 못하고,

한혈구(汗血駒, 천리마)는 천하의 좋은 말이지만 쥐를 잡게 한다면 늙은 고양이만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닭으로 사냥을 할 수 있겠으며, 고양이로 수레를 끌 수 있겠습니까.

(海東靑 使之司晨 則曾老鷄之不若矣 汗血駒 使之捕鼠 則曾老猫之不若矣)”

 


위 글은 ≪토정비결≫을 쓴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이 포천 군수로 있을 때에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는데, 그 중 “사람을 쓰는 데에는 반드시 그 재주대로 하여야 한다.”라는 조목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람을 쓸 때는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는 뜻이겠지만 더불어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분명히 그 사람만 가진 특성이 있고 쓰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한번 생각해볼 이야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