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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글쓰기의 한 惡習

淸山에 2011. 9. 12. 12:32

  

 

  

한국인 글쓰기의 한 惡習 
 
 
 <김정일은 상해 시찰을 하면서 '천지개벽'이란 말을 했을 정도로 북한 체제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趙甲濟   
 
  편집장으로서 남이 쓴 글을 고치고 줄이고 하는 일을 오래 해왔다. 한국인들의 문장력은 國力에 비례하여 발전해왔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지식인층의 문장력은 한글專用을 무작정 추종하면서 오히려 정확성이나 品格에 있어선 못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교정을 보다가 보면 한국인의 문장습관중 되풀이되는 惡習이 많이 발견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할 정도로 -하다'는 공식이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날 정도로 건강하다>
  <그는 출장을 도맡아다닐 정도로 주인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청백리라고 불릴 정도로 깨끗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의 100대 인물로 꼽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문장에서는 '했다'로 잘라버려야 한다. 뒤의 '정도로 -하다'는 것은 중복이거나 쓸데없는 부연설명이다. 이런 惡習의 심리가 재미 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난다'라고 쓰면 되는데 여기에 의미부여를 하여 '새벽 5시에 일어날 정도로 건강하다'는 식으로 해석을 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단편적 사례를 너무 확대해석하여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것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는 건강해서가 아니라 걱정이 많아서일 가능성도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일과 건강하다는 현상을 억지로 연결기키려는 방식이 '-할 정도로
 하다'이다.
 
  <김정일은 상해 시찰을 하면서 '천지개벽'이란 말을 했을 정도로 북한 체제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위의 例文은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라고 한 말을 바로 그의 개혁의지로 연결시키는 전형적인 과장과 일반화의 논법이다. '천지개벽이란 말을 했다'고 전달만 하면 될텐데 이 말을 해석하고 의미부여를 해야 자신이 쓰는 글이 돋보인다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기자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이 이미 설정해놓은 논리의 틀에 사례를 그냥 끼워넣으려는 독재적
모습이기도 하다.
 
  위의 例文 필자는 김정일이 개혁 마인드가 강하다는 점을 미리 전제해두고 '천지개벽' 발언을 그 논리 구조속에 끼워넣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라고 말했다고만 전달하면 독자들은 자신의 思考 틀속에서 나름대로 해석하고 판단한다. 그러지 않고 '-할 정도로 하다'라는 틀에 끼워넣어버리면 독자들은 필자가 제시한 해석에 끌려가든지 거부할 수밖에 없다. '-할 정도로 -하다'는 문장이 많이 쓰이지 않을 때 한국 사회가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 사회로 성숙될 것이다. 
 
 
 
 

 

 
 
문장 교정/강제하는 문장과 여유를 남기는 문장
 
 
 조갑제
 
  <이 시절에 그는 부산 대화재 때 그 동안 일군 재산이 몽땅 잿더미가 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는 수출에 기여한 공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영광을 맛보기도 했다>
  위의 例文도 나쁜 문장에 속한다.
  <이 시절에 그는 부산 대화재로 재산이 몽땅 잿더미가 되었다> <그는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로 바꾸면 더 좋아진다. 화재를 당하는 것 자체가 시련을 겪는 것이므로 굳이 이것이 시련이라고 설명해주지 않아도 된다. 훈장을 받는 일이 영광이다. 굳이 훈장을 받는 일이 영광이라고 독자들에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된다. 공기와 물이 소중한 것임을 인간이면 다 아는데 굳이 소중하다고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제한된 지면에 많은 정보와 감동을 넣는 행위이다. 불필요한 표현 때문에 꼭 들어가야 할 소중한 글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훈장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식의 군더더기 기사를 쓰는 이유는 그냥 [훈장을 받았다]고 쓰면 뭔가 허전하게 보이기도 하고 훈장을 받은 의미를 덜 강조하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글에 너무 집착하여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주입시키겠다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법도 한국인이 가진 독선적인, 내려누르려고 하는 식의 非민주적 思考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글에는 읽는 사람들의 몫이 있어야 한다.
 
  여유를 남기는 문장, 담백한 문장이 좋다.
 

 

 

 
 
문장 교정/중복 설명, 불필요한 설명의 例
 
  <그는 인간적인 신의나 금전적 신용이 약한 사람은 동반자로서 함께 일할 만한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신의와 신용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사람은 회사에 금전적인 손실을 끼칠 것은 물론 사람들 사이의 좋은 관계마저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위의 例文은 이렇게 줄일 수 있다.
  <그는 신의나 신용이 약한 사람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정해두었다. 그런 이들은 회사에 금전적 손실을 끼치고 人和를 깨뜨릴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 신의'란 말에서 '인간적'은 필요 없는 낱말이다. 信義는 모두 인간관계의 현상이므로 인간적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금전적 신용'도 마찬가지이다. 앞에 信義란 말이 있으므로 신용은 자동적으로 금전적인 면을 가리킨다.
 
  그 뒤의 문장은 전면 삭제해도 좋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기술했으므로. 신의와 신용이 없는 사람의 폐해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제한된 紙面안에 가장 많은 정보를 담는 경제활동이다. 문장을 경제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으면 중복된 문장, 불필요한 설명이 들어가 글이 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