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일, 대구 박정희 소장의 관사에서는 중요한 모임이 있었다. 5·16 쿠데타 작전의 작전참모역을 하던 박원빈 6관구 사령부 작전참모, 수도권에 위치한 33사단 작전참모 오학진 중령, 30사단 작전참모 이백일 중령이 박정희와 머리를 맞대었다. 4월 말부터 2군 사령부에서 있었던 비상 훈련에 참여한 세 장교들은 자연스럽게 박정희를 찾아본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박원빈은 “거사일을 5월12일에서 5월16일로 연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하고 건의했다. 그는 “제가 5월13일부터 16일까지 주번 사령으로 근무하기 때문에 출동 명령을 내리기가 좋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박정희는 “생각해 보자”고 했다. 5월6일, 박정희는 안동 주둔 36사단장 尹泰日(윤태일·서울 시장 역임)과 宋贊鎬(송찬호) 준장을 대구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윤태일이 “지금 결행하는 것은 다소 빠른 느낌이 든다”고 했더니 박정희는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박정희와 거의 일심동체처럼 움직이던 이주일 2군 참모장은 통신참모 박승규 대령에게 “5월 중순에서
늦어도 하순 사이엔 거사한다”고 암시를 주었다. 5월8일, 박정희는 부산으로 내려가 군수기지사령부 참모장 김용순 준장을 만났다. 거사 날짜가 임박했음을
알리고 “부산 지역을 책임져라. 방송이 나가면 부대를 동원하여 상황을 장악하라”고 지시했다. 5월9일, 박정희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 오전에 김종필은 이종태 대령의 발설로 방첩대가 5월12일 거사 계획을 알게 되었다는 판단을 했다. 이날 밤 10시 아스토리아호텔 객실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박정희 장군을 비롯, 김종필, 오치성 대령, 김동환 중령, 김형욱 중령, 신윤창 중령, 이낙선 소령이 모였다. 이 모임에서
박정희는 일단 5월12일 거사를 중지하기로 결정하고 대구로 내려갔다. 5월12일, 박정희는 다시 대구에서 상경했다. 이 무렵 최경록 2군 사령관은 미국으로 장기간 출장 중이었으므로 박정희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대구를 떠나기 전, 박정희는 광주의 육군항공학교장 이원엽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구로 와서 이주일 참모장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박정희를 태운 경비행기는 고향인 선산과 금오산 위를 날았다. 박정희는 이것이 고향을 마지막으로 보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박정희는 경비행기를 5군단 비행장에 내리게 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5사단장 채명신 준장이 비행장에 나와 있었다. 박정희는 “이제 준비는 끝났다. 곧 연락을 줄 것이니 출동 준비를 하고 대기하라”
고 지시하고는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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