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한국을 떠나면서 6

淸山에 2009. 8. 11. 14:50
 

 

 

 

 

 
 
 
 
아침 일찍 일어 나 보겠다고 했었는데 역시 힘들더라.
조금 조금만 더 하다 보니 오늘도 열두시가 되어야 일어났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간단히 세수 양치 하고는 차려 진 식탁에 앉아 오늘 할 일 생각한다.

기분은 상쾌하다. 여기 시간과 기후에 익숙해 지는 건가?
역시 똑 같은 텃밭 가꾸기와 두엄에 쌓인것 밭에 올려 놓고는
역시 맥주는 시원하게 들이킨다.
 
 
굿이가 멍멍 짓으며 현관으로 달려 가니 누가 왔는 가 본데..
딸은 보이후렌드 하고 같이 들어 온다.
 
"Hellow ! How are you ?
크리스라고 하는 동양계 학생이다.

내 작년에 여기 오니깐 딸애는 대학에 다녀 이내 이 친구를
사귀어 내 온다는 말을 듣고 나 한테 인사까지 온 녀석이다.
 
그러니 기특하다고 야단 칠 수도 없었고 또한 아들녀석 때문에 
겪었던 오랜 일이 딸 아이 문제에도 마음을 비워야지 다른
도리가 없다.
 
나는 여기에 직장이 있는 일로 일찌기 뉴질랜드에 왔었다.
일년 사개월 혼자 있다가 가족을 불렀고 그때 아들은 네살이었다.

딸은 물론 여기에서 낳았고.
한국인은 없었으므로 현지 친구들만 만나게 되고 한국인들이
정작 이민 붐이 불어 몰려 올 때에 학교에서는 학국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다들 컸었다.
 
그러니 어찌 한국인 며느리와 사위를 기대 하겠는가?
아들녀석도 여기 뉴질랜드 여자를 오년채 사귀고 그동안 
갈라 놓고 싶어 별의별 일은 다 했었지만 끝내는 와이프도
최근에야 마음을 접었나 보다.
 
한참 이민 붐에 오셨던 가족들도 자녀들의 배우자 때문에
짝을 지어 오느라 한국에 나가 있는 교민들 많이 본다.
 
나도 그래 보고자 2002년 11월에 아들하고 같이 한국에 왔다가
여기에서 좋은 일거리 만들어 남게 해 주렸더니 아들은 여기가 낯 설어
뉴질랜드만 못 하다 하여 나도 더 이상 어쩌지 못했었다.
 
 
하나 더 " 한국 여자는 여기 여자 만큼 이쁘지 않어여. "
그래서 결국은 뉴질랜드 여자 친구를 사귀었었다.
 
그러므로 딸애가 데려 오는 크리스는 동양계라
아들녀석 문제 보다는 낮다고 생각하나 보더라.
 
자녀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나도 그랳었나
오래 전 나의 일을 생각 해 본다.
 
 
2005년 7월 22일 금요일
 

 ***
 
 
 

  
 
 

'문학 & 예술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홀로 외로움에 젖으면  (0) 2009.08.11
한국을 떠나면서 7  (0) 2009.08.11
한국을 떠나면서 5  (0) 2009.08.11
한국을 떠나면서 4  (0) 2009.08.11
한국을 떠나면서 3  (0) 2009.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