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한국을 떠나면서 5

淸山에 2009. 8. 11. 14:47
 

 

 
 
 

 

 

 

내가 타던 차를 아들녀석이 운전을 하니
나는 밖에 나가고 싶어도 꿈쩍 못 했다.
 
작년에 여기에 왔을때도 종효가 맘 놓고 사용을 하고
내 어데 가고 싶으면 오히려 사정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돌아왔고 여기 생활을 해야 하므로
종효가 집에 왔을 때 차 얘기를 했는데
" 알고 있어요 " 하더만 언제 돌려 준다는 것인지..
 
그동안 집에서 학교 다녔고 직장을 얻어서도 집에 쭈윽
머물렀다가  내 여기 오기 일주일 전 부터 방을 얻어
따로 나가 생활 한단다.
 

좀 늦었지만 이제야 나가 살게 되었단다.
여기의 생활은 그렇다.

고교(의무 교육제)를 마치면 이 나이에 성인으로 인정하고
직장을 잡아 가족의 품에서 나가던지 대학에 진학하기로
또한 집을 나간다.

직장도 대학도 아닌 자는 정부에서 실업자 수당을 받기에
또한 집을 나가는게 여기의 모습이다.
 
그러나 한국 가족들은 조금 늦게 느긋하게 움직인다.
그렇더라도 집에서 처는 아들과 딸에게도 밥값이라고
얼마씩 받았었다.

어떤때는 수입이 조금 밖에 없다고 미루기도 했었나 부다.
어려서 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는 일주일에 얼마씩 정해서 용돈을 주었고
특별히 더 필요 할 때는 합당하거나 아니면 어떤 일을 예로 들면
차 청소를 한다던지 정원 다듬기에 손을 빌려 주면 이때 얼마
더 주는 것으로 그냥 받아 쓰는 것은 없는 것으로 살아 왔었다.
 
대학때는 학생 수당이 정부로 부터 지급 됨으로 이 돈과
간혹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 조금씩 돈도 모아서 컴퓨터에
쏟아 붇는 것이야 제 마음이니깐.
 

 

최근에 오는 한국 학생들 영어 가르쳐 주면 시간당 NZ$25 받아 일주일
몇 시간이면 제 쓰는 용돈은 그런대로 충당 하더만 그동안 직장을 다녀
돈이 들어 온게 그동안 컴 엎그레이드 하고 통장에 NZ$2.000  있으니
부족한 것을 어떻게 해서 차를 하나 마련해야 한단다.
 
그 작은 돈으로 어떤 차를 살련지 !
내가 보태 주고 싶어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꾸윽 참고 있다.
 
종효가 인터넷을 연결 해 준 덕으로 오늘은 이메일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싸이트 클럽에도 들러 귀향 도착 인사도 올렸고
이제 틈틈히 클럽에 글도 올리게 미리 노트북에는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분주히 옮겨 놓는다.
 
 
 
 2005년 7월 21일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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