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한국을 떠나면서 1

淸山에 2009. 8. 11. 14:32
 

 

 
 
 
 

오래 나와 있었던 한국의 생활을 접고 드디어 출국하는 날이다.
출국이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잠시 착각 같으나 귀국이란 말도 틀리지 않나 싶다.

오늘 찾아 가는 곳이 근 이십사년채 사는 곳이니 歸國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부랴 부랴 오전까지 할 일이 여기저기 있었고 집에서 잠시 잠을 자고는
오후의 시간대에 짐을 가지고 나섰다.
 
 
누나 조카의 조그마한 차에 짐을 올리고는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홍대쪽으로 차를 몰았다.

""B and B 음식점"" 모양도 깔끔하게 찬을 올려 주는 한식집.
여기 있는 동안 몇차례 찾아 보았기에 기회만 되면 올 만한 곳이다.

분위기 있게 실내 장식을 꾸며서 앉아 식사를 먹기에 편한 식당이다.
귀에 들리는 피아노곡의 선률이 알듯 말듯한 곡인데 멜로디 따라 가보니
내가 좋아 하던 마티니의 " Plaicer d'Amor 사랑의 기쁨 " 이었다.
 
덧 없구나 사랑의 기쁨---
한 평생 못 잊을 사랑의 괴롬---
나는 못 잊으리 못 잊을 실비아의 사랑-----
나를 두고 딴 사랑 찾아 갔네-----
 
 
고국을 떠나는 지금 나의 심금을 이 음악으로 전환하는 가 싶더니
이어서 "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젠티나여 ! 나 위해 울지 마오 ! "

곡이 나오니 입 맛 돋구던 마지막의 저녁 식사가 섭섭하게 마음을 적시더라.
퇴근 시간대에 인천 공항 강북도로 길로 접어 둘고
서해의 낙조에 노을 빛 내린게 언제 다시 이 조국을 보게 될까?
 
누나와 조카 그리고 비따(슈나이더 개 이름)는 나를 배웅 한다고
이제 잠시 후면 헤어짐을 남기고 돌아 가야 하는 길.
 
아주 오래 전 생각이 떠오른다.
이른 새벽 졸리운 세살짜리 아들을 내려 보고는 아내와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김포 국제 공항을 달리면서 이제 이 조국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비장한 마음 다짐으로 한국을 떠나던 일천구백팔십이년의 십일월 출국이
오늘 떠나는 것에 맞추어 왜 생각이 떠 오르지..........
 
이번에 2년 2개월의 한국 머물음이 그랳었나 보다.
사이 사이 뉴질랜드를 다녀는 왔었지만 세삼스레 오늘의 출국은
남다르게 처움으로 외국을 나가던 때와 흡사 하였다.
 
공항 주차장에서 비따(슈나이더 개)와 마지막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고
짐 수속을 하고는 작은 누나와 조카와 헤어진다.

섭섭함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랗게 다가 온다.
이번 머물움에도 그랳지만 내 고교 시절과 대학 마칠 때까지의
모든 도움으로 나에게 있어서 남다른 누님이었다.
 
위로 형님 세분과 누님 세분이 있어 모든 형제의 따뜻한 형제애
보살핌이 컷기에 막내인 나로서는 타국 생활도 연로해 계시는 어머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부담 없이 지내 왔었다.

이제 아흔 넷의 어머님 때문에 여기 오게 되었고 다시 떠나는 마음이
무거웠음에 언제 급하게 와야 할지도 모른다.
 
통화 할 수 있는 형님들 누님들 모두와 전화대화 나누면서
한동안 울먹임에 말을 계속 못하고 듣기만 하다가는 겨우
간략히 대답을 마치고 이제는 여기 누님하고도 작별의 시간을 나눈다.
 
그동안의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 안해도 마음 읽어 주는 누님에게
언제든 건강하게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05년 7월 18일 월요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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