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대니얼(Jack Daniel)
술은 특히 전쟁 중의 병사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물건이다.
전투에서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은 병사들을 진정시켜 줄 수 있는 물품으로
술보다 더 나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북군에게
위스키를 공급하여 유명해진 위스키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테네시 위스키를 대표하는 잭 대니얼이다. 소년 시절에 친척집에서 양조기술을 익힌 잭 대니얼은 1846년
테네시 주의 링컨 카운티에서 잭 대니얼사(Jack Daniel Distillery)를 창업하였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사탕단풍나무로 만든 목탄으로 여과한 위스키의 맛이 매우
뛰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사탕단풍나무 숯(차 콜 필터)으로 위스키를 여과(濾過)하는
공정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위스키 분(分類)류 상 버번 위스키와 테네시 위스키를 구분하는 방법이 되었다. 위스키의 품질에 자신감을 갖게 된 그는 동업자 친구와 함께 자신들이 제조한 위스키에
벨 오브 링컨이라는 상표를 붙여 8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북군 주둔지에 판매했다.
그 당시에 군(軍) 주둔지(駐屯地)에는 통행(通行)이 금지(禁止)되어 있었으나
잭 대니얼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위스키를 판매했다.
그들은 위스키를 실은 마차를 건초 더미로 덮어서 위장한 다음에
심야를 이용하여 병사들에게 위스키(whiskey)를 판매했다.
전쟁 중이라 즉석에서 총살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있었지만
잭 대니얼 위스키의 맛에 매료된 병사들은 그들을 보호하여 주었다.
잭 대니얼(Jack Daniel)은 남북 전쟁이 끝난 후 귀향한 병사들의 입을 통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그는 아예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사용하게 되었다. 1865년 잭 대니얼은 린치버그라는 마을의 계곡 물이 대량의 천연 지하수가
용출되어 흐르는 것임을 발견하고 증류공장을 아예 그곳으로 옮겼다.
그곳은 위스키 제조에 적합(適合)한 천혜(適合)의 지역이었다.
그는 이듬해 미국 최초로 위스키(whiskey) 공장을
정부에 합법적(合法的)으로 등록하였다.
1890년 세인트 루이스에서 열린 위스키 경연 대회에서
잭 대니얼 올드 넘버 7이 최우수상을 획득(獲得)한 이래
잭 대니얼(Jack Daniel)은 우수(優秀)한 품질을 바탕으로
명실공(名實共)히 미국의 대표적인 위스키로 군림하고 있다.
잭 대니얼은 위스키 사업의 수익금의 상당부분을 자선 사업과
종교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명예를 쌓았다.
그의 뒤를 이어 받은 조카는
그의 명성을 이용하여 잭 대니얼 상표에 그의 초상화를 집어넣었다.
창업자의 이름을 회사명과 상표명으로 하고 있는
잭 대니얼은 좋은 이미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콧수염을 길게 기른 잭 대니얼(Jack Daniel)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만든 위스키를 열심히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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