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063 나의 일기장에서 발췌

淸山에 2026. 1. 10. 07:35


2025년 01월 01일 수요일
맑음 늦은 저녁은 약간의 비

깊은 간밤의 잠에서 깨어 일어 났다.
뒷뜰의 텃밭 돌아 보고 새해의 첫날 한국의 형님누님의 문안 글이 떠 올랐다.
그리고 강화의 처제와 동서에도 글 보냈다.

새해 2025년을 맞아
형님 누님께 문안 글 드립니다.

간지로 을사년이 되어 과거의 역사로 보면 암울했던 조국의 앞날이 시작되었으니 
새해도 걱정이 앞서는군요.

막내의 모습과 기력도 예전과 다름을 느끼게하여
형님누님께는 얼마나 변화에 곤란을 겪고 계실까 걱정의 그림을 그려 봅니다.

이곳에 사는 교민들 교제로 그들의 형제자매 피붙이 면면을 알 수 있는데
저와 같이 형님누님의 도움과 사랑을 받은자는 드물어 저는 언제나 자랑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형님 누님!
그간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너무나 간간히 소식 듣고 전하느라 특별한 일은 없으신줄 믿지만
지난 해 넘어 새해를 맞으니 또 세월의 무상함과 한 살이 더해지면서
형님누님의 안부 생각이 간절히 떠 올랐습니다.

저의 가족 종효 원희도 
지들 짝 맺지 못함에는 어쩌지 못하지만
각 직장에 충실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처는 오랜 고심 끝에 지난 10월 척추 대수술을 하여
재활에 좋은 회복을 가지는 중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저도 충실히 교회에 몸담고 특별한 건강의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황반변성으로 정기적 눈 시술 치료는 받고 있어요.

새해 2025년에도 형님누님 자녀와 손자녀 모두에
주님의 각별한 사랑과 은혜안에 유익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5년 1월 1일
동생 창균 드림



새해 2025년을 맞아
처제와 동서에 문안 인사 글 보낸다.

간지로 을사년이 되어 과거의 역사로 보면 암울했던 조국의 앞날이 시작되었으니 
새해도 걱정이 앞서는구나.

나의 모습과 기력도 예전과 다름을 느끼게하여
장모님과 이모님께는 얼마나 변화에 곤란을 겪고 계실까 걱정의 그림을 그려 본다.

이곳에 사는 교민들 교제로 그들의 형제자매 피붙이 면면을 알 수 있는데
나와 같이 형님누님과 동생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은자는 드물어 나는 언제나 자랑으로 감사하고 있다.

처제와 동서!
그간도 어떻게 잘 지냈는가?
너무나 간간히 소식 듣고 전하느라 특별한 일은 없는 줄 믿지만
지난 해 넘어 새해를 맞으니 또 세월의 무상함과 한 살이 더해지면서
강화의 장모남과 이모님의 안부 생각이 간절히 떠 올랐다.

이곳의 가족 종효 원희도 
지들 짝 맺지 못함에는 어쩌지 못하지만 각 직장에 충실하며 잘 지내고 있다.
종효 엄마는 오랜 고심 끝에 지난 10월 척추 대수술을 하여 재활에 좋은 회복을 가지는 중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단다.
나도 충실히 교회에 몸담고 특별한 건강의 어려움은 없다.
다만 황반변성으로 정기적 눈 시술 치료는 받고 있다.

새해 2025년에도 처제 동서 그 아들 모두에
주님의 각별한 사랑과 은혜안에 유익한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2025년 1월 1일
형부 남창균 

추기 : 선정 엄마 언니에게도 안부 전해줘


새해 첫날의 거리는 조용하다.
저녁 수요예배를 오고가면서 한산한 차 모습으로 운전을 실감한다.
예배에서 가정과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하였고, 조국 대한민국과 뉴질랜드를 위한 기도, 그리고 가까운 교우와 이웃의 어려움과 질병 사고에 잘 회복을 위한 기도로 올 한해의 내가 맡아해야 할 기도의 제목으로 선정하여
내 스스소 겸허 겸손으로 섬기는 자세를 갖도록 기도하였다.


2025년 01월 08일 수요일
맑음

집안의 주차장에 보도불럭을 아래위로 갈아 놓는 작업을 약 3일 가량 힘든 일을 잘 마쳤다.
약간의 공간이 생긴 부분은 준비했던 모래를 뿌려 넣었고 그리고 수돗물을 틀어 이들을 청소하며 담금질로 마쳤다. 수년 간 잡초가 자라 풀 깎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고 잡풀 뿌리가 깊게 자리하여 그냥 뽑히는 경우가 없었으니 이번의 아래위 갈아 엎고 놓는 작업으로 그 깊숙히 자란 뿌리채 뽑아 이제 당분간 어려운 수고를 덜었다. 이런 작업은 꼼꼼히 공간을 좁혀야 함으로 보도불럭이 그 사이 공간에 들어 가지 않을 때 망치로 세게 두두려 넣는 일로 팔도 힘들었었다. 여러 번 이런 작업을 해 보았기에 그 경험으로 숙달로 끝난기라.

오늘 작업의 피곤이 커 샤워하고 잠에서 푹자고 일어났다.

집의 단톡주택 구조는 집 외부에 수도 꼭지가 2 혹은 그 이상 있어 물이 필요할 때 고무 호수를 연결하여 물 공급을 원할하게 한다. 집에도 뒷뜰과 앞뜰에 각 하나가 있어 앞뒷뜰 각 채소들에 물 뿌릴 때 요긴하게 이용한다. 뜰이 넓어 그 먼 곳까지 물 공급이 되려면 호스 길이가 역기 길어야 한다. 또 오래 사용하다보면 엉키고 설켜 낡아 호스를 교체해야 함으로 엉키지 않게 조심있게 사용한다.

오늘 앞뜰의 호스를 새 것으로 갈아 멀리까지 물 공급이 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앞뜰 전채 사용하기에는 머리를 써 물 수압을 최대한 살려 잘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처는 멀리 고추밭에 물 공급을 하려니 약간 모자란 거리에 투덜투덜하고 물 조절을 사방에 퍼지게 해 놓고 그 먼곳에 하려니 물이 도달하기 전에 그 앞에서 날려 수돗물 손실을 초래하였다. 하여 물 품어 나오는 부분을 조절하여 수압이 한 곳으로 물 퍼지도록 좁혀 멀리 도달되는 것에 그럴게 물 공급하며 채소가 상하던지 하여 않된다고 말한다. 거리가 충분하여 수압 높아도 그곳에 도달은 거뜬하고 또 수압으로 잎이 손상될 경우는 거의 없음에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머리를 써 보라 핀잔을 주엇다. 그랬더니 그것에 마음 상해 종알종알 원망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 매사에 나와 이런 일로 싸움이 되어 집안에서 이런 일로 생기는 마찰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일상 생활에 매사 머리로 생각을 하고 할 일이 많은데
그 머리 생각을 어디다 쓰려 나와 이렇게 다투게 되는지 모르겟다. 나는 어떤 일에도 그 해결 방법에 여러 방법을 생각하고 이행한다.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를 찾는 것이다.



2025년 01월 09일 목요일
맑음

며칠 비 오지 않아 가뭄같이 토양이 건조하다.
물 공급을 수시로 하여 채소들은 아직 매마르지 않아 다행이다.
지난 며칠동안 보도불럭 작업에 온 근육이 피곤하였던바 크게 움직이는 것 보다 침대에 누워 쉬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돌아가신 아버님, 형님의 모습이 자주 꿈에 나타난다.
형님의 장사하던 시장에서 나도 몇 년 세월 도왔기에 이른 나이의 삶 현장이 지금도 뚜렸하며
7남매 형제누나 중 일찍 홀로 돌아가셔 지금도 가장 아쉬웠고 형님하고 더 살겨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서울 학창 시절로 올라가 많은 기회를 잃었다. 나중에 결혼 후 형님이 계신 시장 건물이 큰 불로 홀랑 타 없어졌던 뉴스에 형님 가게를 찾아 허탈해 계셨던 오습이 있었고 동회에서 긴급 구호로 몇 가지 생활품 제공하는 것 방아 형님 가게에 왔던 생각이 떠 오른다.

그리고 나는 뉴질랜드로 이민 떠나 몇 해 후 1985년 8월 경 첫 한국 방문 때 문창동 이사 했던 집으로 찾아 모처럼의 회후를 한 것이 나에게는 마지막 생전 모습으로 남았다. 장사에서 돌아 온 저녁 집에서 뵈었고 뉴질랜드의 모습 이야기에 신기해 하셨던 형님의 반응을 그려 보며 좀 더 건강했더라면 이곳 구경도 왔을 법 했는데 나는 나대로 오클랜드로 이사하여 내 사업에 바뻤고 형님은 또 형님대로 가족 생계의 장사에서 고생하셔 처, 종효, 원희가 어릴 때 셋이 한국 방문하였을 때 형님의 환갑 잔치에 참석하여 흥겨운 잔치 모습 등의 비디오 테이프를 오클랜드에서 돌아 보았을 때는 영상의 마지막 흥겨웠던 형님의 얼굴이 남았었다.

그리고 몇 해 후 병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장례에 참석 겨를도 없이 수 년, 수 십년 세월이 흐른 지금이다. 형님은 집안의 장남으로 체력도 크고 용모도 멋졌다. 당시에 어떻게 사교 춤을 배워 시장 장사 후 근처의 카바레에 단골로 다녔던 일도 있었으니 당시의 같은 동료들 혹은 파트너의 이쁜 여성들이 가게에 자주 단골로 와 내 짐작은 이미 알고 그들을 만났으니 당시에 형님은 꽤 인기가 있었던 싶었다.
이때 카바레의 단골로 동네 친구 김명선의 아버지도 계셨다. 대전 중심가 가까운 곳에 철물점 운영에 열심일 때 그분도 댄스를 알게 되었고 저녁 시간 쯤이면 정장 차림으로 가게 앞 이층에 있던 유명한 카바레에 들어가기 위하여 집의 가게에서 기달렸던 모습은 내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에 춤바람은 유명한 사회 문제로 별의별 이야기 거리가 신문에 실려 나와 내 맘 속에 춤바람은 좋은 점 없이 사회 반발에 가까웠는데 당시에 이것으로 가정파탄 등이 수 없이 흘러나와 정부에서는 사회 기강 등에 엄벌 등으로 강력히 제재를 가했었다.

지금은 사교댄스라는 젊잖은 명칭에 각 개인의 건전한 취미 생활로 변했지만 세월은 이것의 각 평가를 달리하게 만들어 삶의 일상 생활이 되었다. 

아무튼 멋졌던 형님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새롭게 이 글을 적게 만든다.


2025년 01월 10일 금요일
맑음

한방 치료에 2주간의 휴가에서 오늘은 돌아 온 첫날로 문자 알림까지 받았다.
집 현관 입구 청소를 하느라 아침 시간 다 보내고 겨우 약간의 밥을 먹은 후 침술원에 갈 준비를 하였다. 제이슨은 이미 나를 기다리느라 나도 제 시간에 닿아 다행이었다. 허리 근육을 지압으로 풀고 침술에 또 부황 뜸으로 온 몸의 기력이 다시 회복되어 좋았다. 

낮잠을 잘 자고 일어났다. 마침 고경자 권사의 전화가 울린다.
지금 또 King Fish 머리부분 있으니 가져가겠냐고 한다. 그래서 곧 가겠다고 차를 몰았다.
이용운 장로와 그의 낚시 팀 두 명이 이제 막 낚시에서 돌아 와 짐을 푸는 중이다. 고 권사는 오늘 잡은 King Fish머리와 그제 잡았던 머리와 그리고 오늘의 반 토막이지만 Kawai릉 얻어 오늘 싱싱한 회를 먹겠다. 집에 도착하여King Fish를 여러 토막으로 자르고 소금물에 절였다. 이들을 오븐에 구워 먹으면 좋은 것을 알아 이렇게 모두 잘 절여 빈통에 담았다. 하루 이상 숙성되면 궈 먹어야지.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고 권사는 이지견, 김태숙 가정에 생선을 건네 줄 것을 제의하여 교회 옆에서 그들을 만나 주었다. 이들은 1월 말 경에 호주로 이사 간다는 이야기를 들어 또 아쉬움의 헤어짐 인사를 해야 했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삶 중에 교회에서 큰 사건으로 얽혀 있어 그 일이 떠 올라 그 후일담을 적어야겠다.

이지견, 김태숙 장로(한국의 모 교회에서 장로 임직) 부부는 2016년 경 본 교회에 참석하여 한국의 다락방 교단 출신의 교인이라는 이유로 교인들로부터 많은 경계 의심을 받았고 결국은 이런 이유가 겹쳐 교회 공동의회에서 교인들의 이의 제기로 결국은 부서장 회의를 거쳐 그들 가족에 제명을 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에 나는 교회 시무 장로 당회 서기의 직책을 모두 내려 놓게 되는 결과까지 초래하여 내 직분의 조기 사의를 하여 그날 부터 시무 장로직을 내려 놓았다. 이 일로 조충만 담임목사와의 관계도 멀어져야 하는 큰 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이지견 김태숙 가족에 최후까지 지켜 줄 의무에서 지켜 주지 못함의 결과였지만 다락방 교회 출신이란 이름으로 이들을 내 쫓아야 하는 교회내의 반발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여 나는 그 책임까지 거론하여 그들 가족을 지켜주려 했는데 결국은 조충만 담임목사의 이들 가족 제명 제의에 내 직분도 내려 놓는 계기가 되었던기라. 이 날 이후 나는 교회에 교인으로 예배에 참석하였고 결국은 2020년 2월 29일부로 조충만 목사의 서울 새벽교회의 담임으로 이임하는 것으로 떠났으니 그것으로 조충만 목사와 남창균 장로의 관계는 더 이상 회복 없이 끝나게 되었다.

이지견 김태속 가족이 우리 교회 오게 된 경위도 조 목사의 적극 좋은 만남에서 본 교회 출석이 되었었고,
또 2016년 경 조목사의 부교역자 재임시의 새벽교회 이승영 목사와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오클랜드 방문 등에 접대를 이달견 장로 집에서 거행하는 등의 봉사도 있기에 간단히 그들 가족을 징계하는 것에는 담임목사의 조 목사도 부담이 되었을터 끝까지 지키지 못함에 나는 회의를 느껴 내 직분의 장로 은퇴를 일찍 올려 담임목사와의 관계도 그 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들었다. 내가 그들 가족을 끝까지 지켜 주려 했던 명분은 신앙적으로 신심이 깊고 교회 봉사에도 누구 못지 않게 열심이라 이런 교인을 지켜 주는 의무가 내 마음 깊이 자리하여 한번 의무는 끝까지 지키려는 나의 성격도 한 몫 했었다.

그리고 이 장로부투는 교회를 떠났지만 담임목사 조 목사도 서울로 이임하게 된 후 그때의 일은 까마득한 간략한 일로 바뀌었으니 이제 그들 가족이 시드니로 이주하게 된 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과 마지막이 될지는 모르지만 헤어짐의 인사는 나눠야겠기에 오늘 그들 부부를 만나 아쉬운 석별의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뜻밖에 옛 한시 생각이 떠 올랐던 아래의 3 한시를 꺼내 본다.

③ ❾ 41 勸酒 - 于武陵 (810-미상)
勸君金屈卮 滿酌不須辭 花發多風雨 人生足別離

④ ㊵ 題驛亭壁上 (無題) - 無名氏
衆鳥同枝宿 天明各自飛 人生亦如此 何必淚沾衣

⑥ ❼ 23 渭城曲(送元二使安西) - 王維(699-761)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盡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이들은 나의 한시 암송 중 세번째로 정리한 배열이 벌써 긴 세월 지나 또 다시 꺼내 보는 4번째의 암송 기회가 오는가 싶구나. 

생각해보면 이들 구절은 절절이 아름다운 한시로 내 사랑을 듬뿍 받아 왔는데, 언제 블어 봐도 내 입에 졸졸 담아 살던 그 때의 열정이 지금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지난 3번째 다시 암송 기회의 68수가 마지막에서 더 오를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아래 파일은 내가 부서장 회의에 참석한 마지막 회의록이 되겠다.
 


  오클랜드한인교회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AUCKLAND
22 EDMONTON RD. HENDERSON, AUCKLAND
TEL 836 0191  http://www.kpcanz.com


2018년 2월 11일 14:00   2월 부서장 회의 (청년부실)(남창균 장로 기도)

참석자 : 조충만 남창균 박상덕 이창윤 김봉회 안재홍 한승호 정운봉(8명 참석)

회의 내용

1. 전월 부서장 회의록 점검과 그 이행 여부 확인
2. 위 사항 중 2월 전교인 체육 대회는 후반기로 연기
3. 전월 회의록 내용 중 교회 창립 30주년 행사에서 교역자 세미나의 교재비용은 교회 재정에서 지출하기로 결의. 세미나 강사 이정철목사에 주일 설교 맡김
4. 부흥설교자 문봉주 목사의 일정 3월 23일(금)저녁 7시, 3월 24일(토)오전 6시 그리고 오후 7시, 3월 25일(주일)2부 예배 설교
5. 교회 창립 30주년 행사 중 Homecoming Day 진행 시간 일부 수정 동의-
16:00 ~16:30 교회 방문 그리고 복도 사진전 참관
16:30 ~18:00 창립30주년감사예배(예배. 음악 연주. 30년사 비디오)
18:00 ~       만찬과 친교 대화(부페식 식사) & 기념품 증정
6. 교회 창립 30주년 행사 중 Homecoming Day 초청 대상자 적절히 선택한다.
7. 교회 근조기 구입하기로 결의하다(196,900원)
8. 교회 창립 30주년 행사 교민지 광로 1차 2곳, 2차 2곳 그리고 원터치, 코리아포스트 웹싸이트에 올려 놓기로 의견 정리하다.
9. 전월 회의록 내용 중 성가대카톡방 문제는 해당 교인과 성가대의 협조로 카톡방 폐쇄를 진행하였다는 말을 듣다.
10. 지난 2월 4일 임시부서장회의록 그리고 그 이행 이후의 이지견/김태숙 가족에 대한 문제점 토의에서 그들이 2월 24일 남섬 휴가에서 돌아 와 어떤 답변을 줄 것에 대한 기다림에 당회에서는 서전 통보의 기간 단축을 위해 이번 주 중에 당회는 그들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 문자를 보내기로 결의
11. 이지견/김태숙 가족에 대한 교회 부서장회의 결의 후 각 부서장의 입장 표명을 발표하였으며, 김봉회 장로와 이창윤 장로 그리고 조충만 담임목사의 남창균 당회 서기는 당회 서기의 직분에 적절히 회의 진행에 동참 되었느냐는 질문 후 남창균 장로 개인 의견 표명 후 남창균 장로는 그가 교회에서 맡고 있는 모든 직분의 수행에 적절히 따라 돕지 못 하였음을 시인하고 모든 직에 사표를 발표하였다.

16:35 오늘 회의에 필요한 모든 토의가 끝나 이후의 종결을 보지 못하고 당회
서기(부서장 서기) 남창균 장로는 회의장을 떠났다.


부서장 서기
장로 남창균
부서장 회장
목사 조충만



2025년 01월 15일 수요일
맑음

 오늘의 뉴스가 내 삶에서 가장 심란한 날이 되겠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공수처는 체포 후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구속영장을 발부받으면 최장 20일 동안 구금해 수사할 수 있고,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길 수도 있다.
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석방해야 하는 만큼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상대로 고강도 조사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3일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해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해 국회를 봉쇄하고, 영장 없이 주요 정치 인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체포•구금하려 하는 등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대통령의 신분에 내외란 죄에 의한 현행범이 아니면 구속 수사 대상이 아닌 면책으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야당의 국회의석으로 몰아 붙인 내란 수괴범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헌법제판소에 그 탄핵 소추가 올라 있는 중 공수처의 체포 영장까지 발부 받아 두 번째 시도끝에 윤석열 대통령이 과천 공수처 청사에 들어 갔으니
그들 말에 의하면 체포 되었다는 발표로 이 뉴스가 올랐다.

민주 자유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있는 상태에 어찌 이런 일을 벌이는가?
대한민국의 보수 우파 국민은 울분의 심정에 사법 절차의 순서 시작이지만 공수처의 48시간내에 구속 상태로 전환 되겠는지가 다음의 예측 부분이 되었다.

탄핵 찬성파들은 오늘의 체포 소식에 망나니 춤판이 벌어졌지만 길고 짧은 것은 다음의 기다림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마음의 신념 다짐을 다시금 되새기며 오늘의 이 울분을 참는다.

저녁 뉴스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에 드리는 글’자필 편지
를 열어 읽고 구구절절 왜 12.3 비상계엄을 발동하였는지 그 배경을 더 이해하여 대 국민에 호소력이 높아 질 것을 확신하였다.

깨친 국민이 일어 날 것을 기다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에 드리는 글’자필 편지



20250115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5일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자필 편지를 통해 지난달 12•3 비상계엄 선포 배경과 정당성, 공조수사본부(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군 검찰단)의 체포영장 집행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날 오후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글은 새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만년필을 들고 밤새 작성한 '국민께 드리는 글'"이라며 윤 대통령의 입장문을 게재했다. 윤 대통령은 입장문을 통해 "작년 12월14일 탄핵소추되고 나니 이제서야 대통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계엄 선포 등) 저의 어리석은 결단은 저의 변함없는 자유민주주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윤 대통령이 쓴 '국민께 드리는 글' 전문이다.

국민 여러분, 새해 좋은 꿈 많이 꾸셨습니까?
을사년 새해에는 정말 기쁜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작년 12월 14일 탄핵소추되고 나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됐습니다. 좀 아이러니하지만, 탄핵소추가 되고 보니 이제서야 제가 대통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6년의 공직생활, 8개월의 대선 운동, 대통령 당선과 정권 인수 작업, 대통령 취임...취임 이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일만 하다 보니, 제가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지내온 것 같습니다. 공직 인사, 선거 공약과 국정과제, 현안과 위기 관리 등,외교, 안보, 경제, 사회 문제를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능력은 노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무조건 열심히 치열하게 일해왔습니다. 대통령답게 권위도 갖고 휴식도 취하고 하라고 조언하는 분도 많이 계셨지만, 취임 이후 나라 안팎의 사정이 녹록치 않았습니다.

글로벌 안보 및 공급망 위기,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외생적 경제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지난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에 따른 국가채무의 폭발적 증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영끌 가계대출 문제, 소주성 정책에 의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경영 악화와 대출금 문제 등은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데 어려움을 더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민 여러분께서 어려운 여건에도 저와 정부를 믿고 따라주신 덕분에, 차근차근 현안과 위기를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징벌적 과세 정책을 폐기하고 시장 원리에 충실하게 부동산 정책을 펴 온 결과, 주택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와 경제를 연결하여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수출에 노력한 결과, 지난해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달성하고 우리보다 인구가 2.5배 많은 일본을 거의 따라갔습니다. 1인당 GDP는 지난해 일본을 추월했구요.

한미동맹의 핵기반 업그레이드와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 그리고 한일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미일 3국 협력체계는,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요새는 안보와 경제, 그리고 사회개혁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 지난 2년 반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좀 더 현명하게 더 경청하면서 잘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도 많이 듭니다.

지난 대선 기간, 그리고 취임 후 2년 반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부족한 저를 믿고 응원해주신 국민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떠오르고, 지친 몸을 끌고 새벽일을 시작하시는 분들, 추운 아침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책가방을 둘러메고 나가는 학생들, 어려운 여건에서 아프고 불편한 몸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찾아뵙고 도움을 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일하다가 이렇게 직무정지 상태에서 비로소 "내가 대통령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안타까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직무정지가 저의 공직생활에서 네 번째 직무정지입니다. 검사로서 한 차례, 검찰총장으로서 두 차례, 모두 세 차례의 직무정지를 받았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제게 적당히 타협하고 조금 쉬운 길을 찾지 않는다고, 어리석다고 합니다. 어리석은 선택으로 직무정지를 받다보면 가까운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해도 풀리고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가 힘이 되었습니다.

늘 저의 어리석은 결단은 저의 변함없는 자유민주주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이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는 가짜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린 독재와 전체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한 제도이고, 자유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통해 실현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 공동체 모든 사람들의 자유가 공존하는 방식이 바로 법치입니다. 법치는 자유를 존중하는 합리적인 법과 공정한 사법관에 의해 실현됩니다. 법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경제에 있어 자유시장경제 원리와 결합하여 자율과 창의를 통해 우리의 번영을 이루어내고, 풍부한 복지와 연대의 재원을 만들어내며 번영의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없지만 훌륭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고 개방적이고 활발한 국제교역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안보, 경제, 원자재 공급망 등에서, 모든 나라들이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의 번영을 지속하고 미래세대에 이어주려면, 자유와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가 특히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적대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 국가는, 체제와 가치가 다르더라도 상호존중과 공동이익의 추구라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협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체제와 지향하는 가치가 우리와 다르고, 우리에게 적대적인 영향력 공세를 하는 국가라면, 늘 경계하면서 우리의 주권을 지키고 훼손당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의 적대적 영향력 공작을 늘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런 세력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우리를 만만히 보지 않도록 하면서 상호존중과 공동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하고 조심해야 공동 변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UN이 설립되고 어떤 사유이든 분쟁을 군사 공격과 전쟁으로 해결하는 것은 국제법상 금지되고, 방어 목적 이외 전쟁은 금지되었습니다. 총칼로써 피를 흘리는 군사공격과 전쟁 도발은 국제법상 금지되었으므로,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외교상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어, 총칼을 쓰지 않는 회색지대 전술이 널리 사용되게 된 것입니다.

허위선동의 심리전, 정치인 매수와 선거 개입 등의 정치전, 디지털 시스템을 공격하는 사이버전, 군사적 시위와 위협을 보태어 시현하는 하이브리드 전술이 널리 쓰이게 된 것입니다. 국가기밀정보와 핵심 산업기술 정보의 탈취와 같은 정보전도 하이브리드 전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현대적 신흥 안보는 군사 정치 안보를 넘어서, 경제 안보, 보건 환경 안보, 에너지 식량 안보, 첨단 기술 안보, 사이버 안보, 재난 안보 등 매우 포괄적이고 다양합니다.

군사 정치 안보는 정보 보호, 보안과 각종 영향력 공작 차단을 포함합니다. 군사도발과 전쟁은 상대국의 주권을 침탈하는 정치 행위인데, 국제법이 금지하는 군사도발과 전쟁을 하지 않고 공격과 책임 주체도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회색지대 하이브리드 전을 주권 침탈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권위주의 독재 국가, 전체주의 국가는 체제 유지를 위해 주변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을 속국 내지 영향권 하에 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국내 정치세력 가운데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과 손을 잡으면 이들의 영향력 공작의 도움을 받아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데 유리합니다.

그러나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의 핵심 국익을 내줘야 합니다. 국가기밀 정보, 산업기술 정보 뿐 아니라 원전과 같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등을 내주고, 나아가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붕괴시키고, 스스로 외교 고립화를 자초합니다. 국익에 명백히 반하는 반국가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력이 집권 여당으로 있을 때뿐만 아니라, 국회 의석을 대거 점유한 거대 야당이 되는 경우에도 국익에 반하는 반국가행위는 계속됩니다. 막강한 국회 권력과 국회 독재로 입법과 예산 봉쇄를 통해 집권 여당의 국정 운영을 철저히 틀어막고 국정 마비를 시킵니다.

여야 간의 정치적 의견 차이나 견제와 균형 차원을 넘어서, 반국가적인 국익 포기 강요와 국정 마비, 헌정질서 붕괴를 밀어붙입니다. 이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어떤 정치세력이라도 유권자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어, 무도한 패악을 계속하기 어렵지만 선거 조작으로 언제든 국회 의석을 계획한 대로 차지할 수 있다든가 행정권을 접수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선관위의 엉터리 시스템도 다 드러났습니다. 특정인을 지목해서 부정선거를 처벌할 증거가 부족하다 하여, 부정선거를 음모론으로 일축할 수 없습니다.

칼에 찔려 사망한 시신이 다수 발견됐는데, 살인범을 특정하지 못했다 하여 살인사건이 없었고 정상적인 자연사라고 우길 수 없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법치국가라면 수사기관에 적극 수사 의뢰하고 모두 협력하여 범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거 소송의 투표함 검표에서 엄청난 가짜 투표지가 발견되었고,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이 해킹과 조작에 무방비이고, 정상적인 국가기관 전산 시스템의 기준에 현격히 미달한데도, 이를 시정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발표된 투표자 수와 실제 투표자 수의 일치 여부에 대한 검증과 확인을 거부한다면, 총체적인 부정선거 시스템이 가동된 것입니다.

이는 국민의 주권을 도둑질하는 행위이고 자유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행위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향하는 정상적인 국가라면, 선거소송에서 이를 발견한 대법관과 선관위가 수사 의뢰하고 수사에 적극 협력하여 이런 불법 선거 행위가 일어났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은폐하였습니다.

살해당한 시신은 많이 발견됐는데, 피해자 가족에게 누가 범인인지 입증 자료를 찾아 고소하여 처벌이 확정되지 않는 한 살인사건을 운운하는 것을 음모론이라고 공격한다면 이게 국가입니까? 디지털 시스템과 가짜 투표지 투입 등으로 이루어지는 부정선거 시스템은 한 국가의 경험 없는 정치세력이 혼자 독자적으로 시도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다가 적발되면 정치세력이 붕괴될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기껏해야 금품 살포, 이권 거래, 여론 조작 등일 것입니다. 하지만 투개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을 연결시키는 부정선거 시스템은, 이를 시도하고 추진하려는 정치세력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투개표 부정선거 시스템은 특정 정치세력이 장악한 여론조사 시스템과, 선관위의 확인 거부 및 은폐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살인범을 특정하지 못해서, 살인사건을 음모론이라고 우기는 여론 조성 역시, 투개표 부정선거 시스템의 한 축을 구성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라면 지금 이 상황이 위기입니까? 정상입니까? 이 상황이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입니까? 아닙니까? 전시와 사변은 우리 국토 공간 위에서 벌어지는 물리적인 상황, 즉 하드웨어의 위기 상황이라면, 지금 우리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운영 시스템과 소프트웨어의 위기 상황인 것입니다.

헌법 66조는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며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의 하드웨어를 지키고 운영체계와 소프트웨어를 수호하라는 책무를 부여한 것입니다.

거대 야당이 국회 독재를 통해 입법과 예산을 봉쇄하여 국정을 마비시키고, 위헌적인 법률과 국익에 반하는 비정상적인 법률을 남발하여 정부에 대한 불만과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수십 차례의 줄탄핵으로 잘못 없는 고위공직자들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비리를 수사하고 감사하는 검사와 감사원장까지 탄핵하고, 자신들의 비리를 덮는 방탄 입법을 마구잡이로 추진하는 상황은, 대한민국 운영체계의 망국적 위기로서 대통령은 이 운영체계를 지켜낼책무가 있습니다.

저는 헌법기관인 감사원장까지 탄핵하여 같은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법정에 세우려는 것을 보고, 헌법 수호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비상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거대 야당의 일련의 행위가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하고, 대통령에게 독점적 배타적으로 부여된 비상계엄 권한을 행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계엄은 과거에는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것에 국한되는 것이었지만, 우리 헌법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규정하여, 전쟁 이외의 다양한 국가위기 상황을 계엄령 발동 상황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자유민주국가의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국가위기 상황을 알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힘쓰자는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국가위기 상황을 군과 독재적 행정력 만으로 돌파할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상황을 공유하고 국민의 협조를 받아 돌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엄이라는 말이 상황의 엄중함을 알리고 경계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이 위기 상황임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계신 국민들께, 상황의 위급함을 알리고 주권자인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국회 독재의 망국적 패악을 감시, 비판하게 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지키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국방부장관에게, 국회 독재를 알리고 질서 유지를 하기 위해, 그리고 부정선거 가동 시스템을 국민들께 제대로 알리고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 최소한의 병력 투입을 지시하였고 국회 280명, 선관위에 290명의 병력이 투입된 것입니다.

국회에 투입된 280명의 병력은 국회 마당에 대기해 있다가, 그리고 선관위에 투입된 병력은 수십명의 디지털 요원만 내부 시스템에 접근하고 나머지는 외부에 대기해 있다가, 계엄 선포 2시간 30분 만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이 있자 즉각 철수하였고, 아무런 사상자나 피해 없이평화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계엄은 범죄가 아닙니다. 계엄은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보좌하기 위해, 합동참모본부에 계엄과가 있는 것입니다. '계엄=내란' 이라는 내란몰이 프레임 공세로 저도 탄핵소추되었고, 이를 준비하고 실행한 국방부장관과 군 관계자들이 지금 구속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병력 투입 시간이 불과 2시간인데, 2시간짜리 내란이 있습니까? 방송으로 전 세계, 전 국민에게 시작한다고 알리고, 3시간도 못 되어 국회가 그만두라고 한다고 병력 철수하고 그만두는 내란 봤습니까?

합참 계엄과 계엄 매뉴얼에 의하면, 전국 비상계엄은 최소 6~7개 사단 병력 이상, 수만 명의 병력 사용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국방부장관은 합참에서 작전부장과 작전본부장을 지낸 사람으로 이런 걸 모를 리 없습니다.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이기 때문에, 소규모 병력을 계획한 것입니다. 국회의원과 국회 직원 등은 신분증 확인을 거쳐 국회 출입이 이루어졌으므로, 계엄해제요구 결의안 심의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본관과 마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오히려 280명의 군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병력 철수 지시에 따라 군은 마당에 있던 시민들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철수했습니다. 국회를 문 닫으려 한 것입니까? 아니면 폭동을 계획하길 했습니까? 최근 야당의 탄핵소추 관계자들이 헌법재판소에서 소추 사항 중 내란죄를 철회하였습니다. 내란죄가 도저히 성립될 수 없으니, 당연한 조치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란 몰이로 탄핵소추를 해놓고, 재판에 가서 내란을 뺀다면, 사기탄핵, 사기소추 아닙니까? 탄핵소추 이후의 상황을 보아도 그 오랜 세월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부하는 정치인들이 맞나 싶습니다. 하지만 최근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이 우리나라의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주권자로서 권리와 책임의식을 가지게 된 것을 보고 있으면, 국민들께 국가위기 상황을 알리고 호소하길 잘했다고 생각되고, 국민들께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됩니다.

저는 대통령에 출마할 때부터,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영광의 길이 아니라 형극의 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반듯하게 세우고, 자유와 법치를 외면하는 전체주의적 이권 카르텔 세력과 싸워 국민들에게 주권을 찾아드리겠다고 약속한 만큼, 저 개인은 어떻게 되더라도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제가 독재를 하고 집권 연장을 위해 이런 식으로 계엄을 했겠습니까? 그런 소규모 미니 병력으로 초단시간 계엄을 말입니다. 사법적 판단이 어떻게 될지는 제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국민 여러분께서는 이 계엄이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를 살리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 잘 아실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독재에 국회의원들이 저항하고 민주화 투쟁을 했다면, 세계 어느 나라 헌정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막가파식 국회 독재의 패악에 대해, 헌법 수호 책무를 부여받은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저항하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 기능을 정상화시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수사권 없는 기관에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정상적인 관할이 아닌 법관 쇼핑에 의해서 나아가 법률에 의한 압수•수색 제한을 법관이 임의로 해제하는 위법•무효의 영장이 발부되고, 그걸 집행한다고 수천 명의 기동경찰을 동원하고, 1급 군사시설보호구역을 무단 침입하여 대통령 경호관을 영장 집행 방해로 현행범 체포하겠다고 나서는 작금의 사법 현실을 보면서, 제가 26년 동안 경험한 법조계가 이런 건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경시하는 사람들이 권력의 칼자루를 쥐면 어떤 짓을 하는지, 우리나라가 지금 심각한 망국의 위기 상황이라는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씁쓸한 확신이 들게 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법치는 형식적 법치, 꼼수 부리는 법치가 아닙니다. 이런 법치는 인민민주주의 독재, 전체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악용되는 법치입니다.

법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져야 하고, 일단 만들어진 법은 다수결의 지배가 아니라, 소수자 보호와 개인 권익 보호에 철저를 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좌파 운동권도 자신들이 주류가 아닐 때는 이러한 법치주의의 보호에 기대왔지만, 국회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다음에는 실질적 법치보다 다수결의 민주가 우선하며, 법치국가적 통제보다 민주적 통제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저는 검찰총장 시절 민주당 정권의 이런 무법적 패악을 제대로 겪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법률가, 법조인은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 여러분, 힘내십시오. 주권자인 국민 여러분께서 확고한 권리와 책임의식을 가지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밝고 희망적입니다.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5년 01월 19일 일요일
맑음

늦은 시간 선고가 내릴 시간을 훨씬 초과에도 소식은 없고 초조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한국 시간으로 한밤 12시가 넘어도 결과의 소식이 없었으니 담당 차은경 판사의 결정이 심각하다 보였다.

나는 잠결에 몇 차례 눈이 뜨여 비몽사몽 이곳 시간 새벽 5시(한국 시간 다음 날 새벽 1시) 넘어도 조용하던게 1시간 지나자 간단한 긴급 뉴스에 구속 사유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것으로 구속 영장 발부 되었으니 경천동지할 노릇이었다.

애초에 담당판사의 배경을 익히 알아 긴가민가 했는데 오죽 변명의 판결을 낼 것이 없어 증거 인멸 우려 한 줄로 구속을 결정하다니 한 나라의 현행 대통령을 파렴치 범 다르듯 증거인멸을 갇다 붙였던가?
이 뉴스에 가까이 진을 쳤던 보수 시민들이 서부법원 건물 창을 깨뜨리는 등 파괴로 울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판사는 경찰에 신병 보호를 요청했더구나.

이 판결에 내 정신이 격분되었다. 아니 보수 국민 대부분을 노하게 만들었겠다.
지금까지 숫한 법정 구속 등의 뉴스에 분명히 파렴치 범 같이 빠지려는 정치인들에 물증이 소명되었으니 구속은 없다는 것으로 증거인멸이 없어 구속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등에 변명을 그나마 참고 왔었는데 대한민국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현행범 같이 파렴치 범으로 구속하다니 지들이 걸면 이현령비현령이 납득되지 않아 사법부의 불신이 깊게 베여 조국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되는데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침에 잠깐 잡에서 깨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법 사고방식과 이렇게 다르게 판단을 하는 판사가 많았다니 정의의 잣대 사법부가 이래도 되는것인가? 대한민국이 두 쪽으로 나니어 각각의 판단이 이러한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법원 판결이 이렇게 기울어지도록 나오면 이에 격분할 국민을 어떻게 수습하려 하는가?

겨우 밥 몇 숟갈 뜨고 교회로 갔다.
만나는 교인들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역만리의 고국이 걱정된다.
우리 새대는 얼마나 고생하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뤘더냐? 세상이 바뀌어 가난한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세상 사람들 부러움에 있던 지금에 정치판과 사법부의 난행은 울분을 토하게 만들었다.
서울 구치소에서 임시 체포구금 중에 이 소식을 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사법부의 검찰에서 잔뼈가 굳은 윤석열이 이런 수모 당하다니? 지지 보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런 대한민국이면 밑 바닥부터 갈아 엎을 국민저항운동이 힘차게 울려야하겠다.

교회의 예배도 귀에 들어오지 않게 예배 끝나 휴게실에서의 대화도 각자의 현 사법부 부당함에 
대한민국의 앞 날을 걱정하였다.

민주 시민들의 국민 저항이 심각한 사태로 돌입한 것을 읽은 서울구치소 안에서 윤 대통령은 옥중 입장문으로
‘평화적 방법으로 의사 표현 당부”발표 되었다. 법 테두리안에서 폭력이 아닌 평화를 알려 이것이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야겠다. 또 “시간 걸려도 포기 않고 잘못된 것들 바로 잡겠다’가 올랐다.

국민의 의분과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2025년 01월 20일 월요일
흐림

어제의 울분이 싶게 풀리지 않았었다.
온 하루가 그렇게 마음 아풀 때
“손에 손잡고/코리아나 단장 : 이상규/ 출처 : 
전광훈 TV (미국 아틀란타 GMC/은혜선교교회: 하현일목사)”
의 노래가 떴다. 하현일 목사의 선창에 광화문 광장의 
수만 자유수호 참석자의 화음이 귓가에 꽂힌다.
아마도 이 곡이 보수 우파의 선곡으로 된 듯 내 마음의 위로를 만든다. 정지용의 향수 가곡도 골라 들었는 중 지나 온 하루의 만감이 풀어진다. 비로서 편한 마음으로 진정되고 어제를 잘 넘긴 오늘은 무엇으로 나를 달랠까?

며칠 전부터 컴퓨터의 용량에 대한 계산을 해 보았다.
사용 중인 컴퓨터의 용량은 222GB 파일로 저장되어 20GB 정도 남아 있으니 컴퓨터의 속도에도 
지장을 주어 여러 불편이 많아 죵효에 문의하니 용량이 큰 컴 써버로 구입하던지 혹은 지금의 
저장된 자료을 다른 USB로 옮겨 놓는 방법 둘 중 하나의 처리 밖에 없다는 말을 들어 며칠 
고심 중에 오늘 새 USB를 구입하여 자료를 옮겨 사용하는 방안을 채택하였다. 가까운 
전자 상가에서 ADATA 1000GB을 $ 145.35 구입하였다.

하여 컴퓨터 본채의 저장된 자료를 새USB에 옮기는 작업을 신중하게 진행하느라 
오전의 시간을 보냈다.

작업의 오차가 없어야 함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했으며 옮겨고 나면 본채의 컴큐터 자료실에 
“20250120부로 자료를 USB ADATA로 옮겼다”고 코멘트를 남겨 놓았다”

새USB에 832GB
컴퓨터에104GB 남았다고 자료가 뜬다.
자료가 잘 이전 되었음을 확인까지 잘 하였으니
다음에 같은 항목으로 자료를 새로 추가 하게 될 경우의 처리 방법도 모색해 놓았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니 새USB를 본채 컴퓨터에 껴 놓고 지낼까 혹은 매번 뽑아 
놓을까 궁리 중이다.




2025년 01월 21일 화요일
약간의 비

오랫만에 비 소식에 텃밭은 다행이었다.
앞뒷뜰 고루 다니며 각 채소를 살폈다. 물론 잘 익어가는 포도알도 몇 알 입맛에 즐겼고.
이전에 가득찼던 물통이 거의 비웠던데 오늘 많이 보강되지 않겠는가 기대한다.

오늘의 뉴스 전면에 미국 트럼프의 제47대 대통령 취임으로 강력한 힘의 미국이 이슈로 올랐다.
모든 분야에 미국을 따라 올 국가가 없어 미국의 말 한마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 세계는 이미 그의 입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재밍시에도 강한 어조가 세계를 힘쓸어 이번의 2기 집권에 어떤 정책이 펼쳐질지 큰 그림은 벌써 언론을 통하여 알려져 왔다. 세계의 각 해당 분야는 바짝 긴장하며 그의 제 1호 행정명령이 무엇인지 그 무게를 짐작한다. 이임의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섰고 그의 정책에 따라
작금의 대한민국 흐름도 유불리의 정책,경제, 외교, 군사 총망라하여 긴장하는 집단(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포함)의 향후 입지도 그려 보았다. 현재의 대한민국 전방위 사회 전채를 혼돈의 도가니에 몰았던 이재명이 왜 조용하던가? 그는 평소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을 점령군으로 지칭하여 이제 그는 밤잠을 설치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을 과반수 이상의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하여 이미 헌법재판소에 제기를 해 와 있는 중 미국의 변화가 그를 옥제고 있는 것이다. 그(이재명)가 강력히 주장했던 중국, 북한, 러시아 편에서 트럼프는 반 중국, 러시아, 북한 정책을 예상하기에 트럼프가 원하는 자유 진영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인물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과 맥을 같이 하기에 이재명은 풍전등화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꼴을 지켜 보자.

화요바둑 모임에 10명이 참석했다.
처음 찾은 정영우 님은 회원 등록에 차후 생각을 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11:00부터 찾은 회원들이 각자의 대상 친선 게임에 승부가 희비를 오가는 경우 예상하던 15:30을 훨씬 초과하여 진행되어 오늘도 거의 5시가 되어서 끝났다. 게임의 성격상 불가피 몇 주 이렇게 늦었는데
오늘 카톡방에서 어느 회원은 10:00부터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올라 와 2명이 긍정 반응이 되었다. 하지만 교회의 휴게실을 베려로 빌리는 공간에서 교회 교역자가 시간에 문 열어 줘야하고 또 닫는 등에 회원들의 이해가 필요할 것으로 회장 유해동 장로에 섣불리 동의할지도 모르겠기에 먼저 카톡 문자로 내 의견을 알려 주었다. 

아울러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주일 유해동 장로는 화요바둑모임의 재정에서 교회에 $20.00 감사헌금을 하자고 제안을 받아 그 집행을 염두에 두고 오늘 모임에서 발의 제안을 하려 했더만 10명 회원 참석에서 각자 한 두 명씩 빠지는 경우가 생겨 결국은 이 안건에 제의를 하지 못했기에 회원 중 모임에 적극적이었던 장준택 박사에 전화로 이 안을 상의했었다.
그는 지금 시기가 이르다고 차후 회식 같은 시간에 하자는 답을 낸다. 유 회장의 제안에 총무가 $20.00 감사 지출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회의에 먼저 양해를 구하는 순서가 필요하기에 장 박사에 문의했던바 그의 시기상조 답에 부당한 몇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참석자 회원에 교회 참석자보다 외부 회원이 더 많다는 것과, 또 회원들은 나이가 많은 교인들이지 않느냐였다. 이 말은 일정 사업이 없는 은퇴자 수입에 비하여 이런 비용을 지출하기는 너무 과한 뜻으로 보였다. 이곳에 사는 교민 중 은퇴자 연령은 그래도 연금을 모두 받기에 생활에 이 정도 지출 이상은 충분히 감당되지 않을까에 너무 공짜만 원하는 격 같아 좀 더 긴 대화에서 오늘은 이 정도에 그치고 통화를 마쳤다. 오늘 통화 한 일을 익명으로 유 해장에 자초지통을 말하기로 하여 유해동 장로에 또 통화로 알리니 그는 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게 본인이 처음 제안하기 겸연쩍지 않은지 너스레는 좋았다.
유해동 장로와 마음 속 깊은 속내는 전혀 알 수 없도록 상호간의 관계는 없었다. 어번 바둑모임에 그가 처음 교회 담임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때부터 나는 같은 참석 가능성이 됨으로 또 모임의 총무도 맡았는데 그가 회장이면서 겪던바 내 성격과 차이가 많음을 알았다. 그의 성격을 알게되면서 내가 일정 부분 거리를 둬야 할 것을 미리 조심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항상 서로 겪고 부딪쳐 봐야 안다.




2025년 01월 22일 수요일
맑음

어제의 약간 비에 텃밭은 만족하지 못했다.
오클랜드의 여름은 이렇게 기복이 심하여 가물게 되면 토양이 갈라지듯 바짝 매마른다.
텃밭 살피는 중 13호의 달콤한 포도 작은 송이 하나 따 입가심한다. 머잖아 아주 달콤할 때 수확하면 이리저리 나눠 줄 구상이 떠 오른다.

이른 낮잠에서 일어나 샤워로 몸 식히고 저녁에 교회 참석을 준비하였다.
일산에 작은 형님이 안부 궁금하신지 카톡 통화가 왔다. 몇 주 전 연락과 같은 대구, 대전, 일산의 형님 누님의 안부 나눴고 역시 대구 형수님은 치료 불가능한 상태를 약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평소 카톡에 문자 보내면 꼭 늦어도 답이 왔었는데 대구 형님은 아무 문자 답글이 없었다. 
대전의 둘째 누님도 아직 내 문안 글을 열어 보지 않아 잘 계신 것으로 추측하였다. 

구정 명절이 가까워 이럴 때 부모형제간의 소식이 유독 간절하여 오늘 카톡 통화가 있엇지싶다. 
내 혈육의 8촌 이내에서 대구, 일산, 그리고 나의 순서로 연장자에 남았으니 그 예상에 위 어른이 
모두 이 세상을 떠나 이제 우리 형제가 순서에 남아 있는기라. 
또 어느 세월 후 다음세대로 지나겠지만.

늦은 오후 시간 교회의 황형철 집사 통화 요청이 와 긴 시간 교회의 정관개정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작년 12월 초의 임시 공동의회에 제의했다가 통과 되지 못한 정관을 다음 달에 좀 더 회의를 
거칠 예정인바

그 사전 준비에 내가 회의상에서 발표한 뜻 의중을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황형철 집사를 
통해 그 뜻을 알고 싶어 문의 한 통화였다. 긴 시간 내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의견을 알려 주었으니 그럼에도 이해 못한 부분이 있으면 더 질문하라는 여유를 주고 끊었다.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2년 7개월째인데 아직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교회의 목회 등 모든 
목회에 어려움이라면 서로 의견을 통합하고 나가면 될 것을 혼자 긴 고민의 시간 후 교회의 새 행정 등을 고쳐야 할 때는 여간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정관 문제는 이미 정관이 있어 그에 새로 정정할 필요가 있을 때 합당한 결의 준비를 거쳐 바꾸어 간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사전 교감 토의도 없이 막상 공동의회에 상정하여 마찰이 생기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 고민해봐야 하낟.

긴 통화 후 뒷뜰에 나왔다. 마침 흰고양이 나타나 내 옆에 따라다니니 먹이 한 줌 꺼내 주었다.
나는 뜰 거릴다 포도 송이 몇 알 입에 넣었고 또 뒷담 쪽에 있는 Passionfruit 2개를 씻어 
수저로 떠 먹는다.
달콤한 맛을 느껴 기분은 좋았다. 이쪽의 첫 수확 맛을 알아 자주 떨어진 것을 먹겠구나.



2025년 01월 23일 목요일
맑음

컴퓨터가 내 삶에 정착된지도 꽤 오래 되었다.
1999년 8월 19일 나의 마지막 사업 정리로 지금의 27 Oakley Avenue, Waterview, Auckland로 이사하고
몇 개월 후 아들 종효가 사용하던 컴퓨터 Upgrade하며 남은 작은 용량의 컴퓨터를 나에게 줘 내 이름의 Hotmail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용방법을 간단히 알려 주어 메일 편지 주고 받는 것에 신기함을 느껴 관심이 되었으니 애초에 컴퓨터 같은 기기는 가까이 하지 못하는 문외한이었음에도 두려움을 하나씩 극복하며 모르는 부분은 종효에게 물어 보았다. 슬슬 컴퓨터 다르는 시간이 늘며 인터넷 상에 들어가니
게임을 즐기는 여러 창에 눈이 떴다. 이 중에 카드게임 FreeCell이 가장 관심이 되었고, 이 분야에서는 승률이 아주 높은 정도로 끌어 올렸다.

이런 나날 중에 2002년 쯤이 되겠는지 야후의 채팅 창에도 들락하였으니 컴퓨터 사용안에 이런 일은 또 다른 흥미진진한 놀이 창으로 컴퓨터가 일반 생활에 차차 자리 잡을 첫 당시에 채팅이란 용어는 엄청 인기가 높았었다.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것은 마우스로 모니터 창에 뜬 이것저것의 웹핑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는 기회이 창이 되기에 이때는 자판기의 언어 사용에도 능숙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군 시절 영문타자기를 사용했었기에 한영자판기 사용은 그때의 경험을 살려 모니터를 바라보며 앞에 있는 자판기의 각 언어 철자는 손가락의 위치에 의존하여 빠르고 쉽게 글 쓰기에 가능했었다. 이것은 컴퓨터 사용자에 필수적이 되어 컴퓨터 사용자의 이용 자격은 기본이 충분했었다. 

채팅방이란 시간 공간을 뛰어 넘어 실시간 창에 글을 써 올려 상호 의사 소통이 가능하기에 미 매체를 이용한 사회 부조리도 많았으니 사람의 심리는 문명 기기와 함께 득세하기 마련이었던가싶다.

이때의 채팅방 중에 사행시방은 특별한 나의 관심이 고조되어 나의 주 무대 시절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곳이 뭐 하는 줄도 몰랐고 재목 적혀 있는 뜻 따라 어느 방에 들어가 보니 아이디 대명으로 글 올려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참여자의 지역 분포도 전 세계에 걸쳐 있어 참말로 신기한 모임이었다. 
흥미진진한 여러 채팅방을 거치며 어느 날에는 사행시 방에도 들어갔다. 방 Title 그대로 4행시를 즐기는 그런 모임의 방이다. 

방법을 모르니 그냥 눈으로 구경만 하는 눈팅이다. 시제를 넉 자 올리면 그 시제에 따라 각자 글을 지어 보인다. 

예를 들어 


꽃샘추위                                                                 
꽃단장에 산해진미 그리운벗 청하려니                                       
샘시새움 봄날씨는 예측불허 난망하네                                      
추측컨데 이제오나 꿈길마저 야속한데                                        
위로한다 뉘시온지 답글몇줄 남겼구나


위와 같이 시제 “꽃샘추위”에 4 4 4 4 글을 4행으로 만들어 주면 된다. 
구경을 하고 보니 그 의미 뜻을 알아 나도 참여하게 되었고, 이런 모임이면 시간 보내기도 좋아 흥미를 끌었다. 

즉 옛날 선비들이 한여름 계곡에 발 잠겨 풍류를 읊을 때 시제에 따라 글 짓던 모습이 보여 신선놀음으로 생각되었다. 참여자가 얼마나 빨리 그 올려진 시제에 글을 짓는 정도에 글 내용 또한 잘 되면 금상첨화가 되었으며, 경험이 늘자 나의 대명 “청산에”가 여러 친구에 호감이 되었다.

윗글은 “나의 이야기”에서 13항목 ‘13 컴퓨터를 익혔을 때 그리고 주량과 취미’를 참조하였다.



이와 같이 컴퓨터의 25년차 경험에 이른 지금 이 기기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내 삶의 한 축에 자리하였다. 내 나이 또래에는 감히 컴퓨터 이용이 어려위 몇 소수에 불과하고 훤씬 젊은 층에도 이런 문명의 기기 사용은 어려움을 겪기에 삶의 질에서 남과 같이 비등한 위치에 있으려면 필요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어제 컴퓨터에서는 내 사용기기의 UPGRADE 창이 떠 업그레이드 클릭하고 창을 껐었다.
그리고 오늘 창을 열으니 모니터가 검게 뭔가 이상을 감지했으니 갑자기 어리둥절 중에 모니터 창 화면을 바꾸면 되는 생각에 원래의 화면을 저장해 두었던 곳에서 원상복귀는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도 갑자기 당하는 일에 정신이 아찔하겠지만 나는 이런 자료를 정확한 위치 파일에 넣었기에 침착한 작업에 도움이 충분했었다. 컴퓨터의 사용 범위를 보면 엄청 무궁무진하기에 나의 자료 사용에 한한 현재의 능력에도 감사하며 때에 따라서는 하나씩 또 새로운 분야에도 익힐 수 있는 시간과 자료는 얼마든지 있어 다행이다.



나의 초등학교(옛 국민학교) 시절의 학업에 열중하려는 배경은 생각 만큼 쉽지 않게 어려웠다.

교과서 공급도 원할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용품을 구입하는데 그 품질을 보건데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2칸의 집에서 한 칸은 형님 가족이 윗쪽의 한 칸에 부모와 형님,누님 함께 좁은 방에서 지냈었다. 밤에 전기불 켜 놓기도 사정이 어려워 석유 등잔 혹은 촛불 켜 불을 밝혀야 했었다.

작은 방안에 여러 식구에 포개져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든 공간에서 내가 시험을 앞두고 공부한다고 촛불을 켰을 때 당시는 내가 잘 관리하면 위험을 몰랐었다. 지금의 먼 훗날에 그때를 돌이켜 볼 때는 아찔했다는 생각이 더 높았으니 방 두 칸에 형님내 가족과 부모와 형님 누님 함께 좁혀 살아야 하는 공간에서 내가 깜박 촛불 관리에 잘 못 있었다면 어찌 되었겠을까에 간간히 관리 소흘로 불난 집의 상항을 뉴스로 보았을 때와 비교해 보았을 때 아찔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의 나에게 삶의 가치를 잘 모를 때이기에 단순히 가족의 품안에서 하루 세끼 밥 잘 먹으면 그것이 행복이었으니 사고로 인하여 집에 불이 나거나 어떤 불상사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에서 벗어 났구나. 그 때 아무 불상사 없이 지내 왔기에 지금의 76세의 인생을 보고 있지 않을까? 그 당시의 환경 처지가 주마등처럼 떠 올라 그 생각을 글로 정리하였다.



2025년 01월 26일 일요일
흐림

오늘도 약간의 비 내려 텃밭의 채소 걱정은 덜었다.
부엌의 어제 사용한 그릇을 깨끗히 씻고 내가 만든 미역국으로 조반을 하였다.
먹던 밥 맛이 예전과 다르게 뻑뻑하여 Long Grain 먹는 것 보다 맛이 없었다. 새로 나온 브렌드라 처가 몇 포대를 구입했으니 싫고나쁠 평도 없이 먹어야 한다. 처도 새로 구입한 쌀이 잘 못 된 것을 말하더구나. 몰랐다고. 

밥 먹으면서도 처에 대한 불평이 머릿속에 묻힌다.
구매 습관이 잘 못인데 바뀌지 않는다. 구입의 양 조절을 잘 못하여 그 식품을 다 먹기 전에 버리던지 유효기간이 지나 또 멋기도 뭐하도록 수 십년 그런 불평을 달고 있으니 화가 솟는다. 집안에 과자 스낵류도 곳곳에 쌓여 그것을 볼 때마다 입에서 터저 나오는 화를 식히기 어렵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먹는 음식 함부로 버리는 것을 죄악으로 살았었다. 이곳 저곳 혹은 복도의 각 각 여러 구입한 식품이 모여 쌓이니 쥐가 집안에 들끌어 조절하기 힘들었다. 그제부터 아프다고 느워 있으니 화 낼 수도 없고. 그런 마음으로 밥을 먹어도 좋은 영양분으로 섭취가 될까? 내 스스로도 감내하며 아침을 먹었다.

나는 함부러 버리지 못하기에 아까운 식품 꾸벅꾸벅 처리한다. 통장을 하나에서 통일하여 사용하기에 내가 가끔 뭔가 구입하느라 지출이 이뤄지면 금액이 적거나 많거나 대부분 꼭 따저 묻는다. 뭐에 사용했는지. 때에 따라서는 아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인데 정작 아껴야 할 것은 식품 등 물건 구입에 꼭 필요한 것 만큼만 구입하여도 될 것에 비유하면 내가 사용하는 금액은 비교 조차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것으로 싸움도 벌써 오래 전의 일이고 지금은 함구하며 참아 왔다. 언쟁을 하면 어떠한 이유라도 맘 상할 것에 스스로 마음을 접고 산다. 오늘 아침 이 글을 남기니 내가 자제 하기로 마음을 비워 이해해야지 다짐한다. 매사 이렇게 달궈 왔었다. 또 참자. 

예배 후 2/4분기 제직회가 열렸다.
그간의 교회 재정 수입 지출에 대한 발표 후 아무 문제 없이 모두 동의하여 끝나고 기타 제의 시간에
내가 발표를 하였다.

1. 본당 설교대 앞에 마이크 중 대표기도자 혹은 성경봉독자 용을 손으로 들고 하기에 이것을 지지대 세워 놓고 진행하자고 건의
2. 교회 강대장 위치에 성경의 오늘 말씀 펼치는 것은 없는가?
3. 예배 후반의 찬송 선곡에 지금 참석자 의주에 알맞은 찬송을 선택하지 못하는가?

손기철 목사의 답변에 1은 시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하지 않겠는가의 답변이고
2번 질문의 성경을 놓는 강대상이 너무 커 없앴는데 추후 고려하여 적당한 크기의 책상을 고려 하겠다.
3에 대한 다같이 불러 볼 찬송 선택이었는데 자주 들으면 되지 않겠는가?로 답해 뭔가 시원찮았다.
많은 금액을 지출하여 새로 강대상 구입 등에 왔는데 마이크 고정 시설이 없어도 이것이 보기 간촐하여 좋지 않겄는가 였다. 이 발언으로 시간이 길어지며 처음 50여 명 참석에서 20여 명 남은 회의장 분위기에 겨우 종료를 하고는 다니엘선교회원들이 나에게 너무 과한 회의의 질문으로 내가 나섰다는 깊은 질타가 많았다.
결국은 휴게실에서 이들과 논쟁이 들어 늦은 시간까지 각자의 발언에 해명하고 나도 해야 할 일의 발표가 잘 못이지 않다고 주장하여 다수의 선교회원은 나를 못 마땅했다.  나도 사실 질문이 틀리지 않아 이런 제직회의실이 마땅한 질문 공간이라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교회의 휴게실에서 서로 좋은 것으로 끝나 집으로 돌아 왔지만 회의에서의 과정 그리고 같은 선교회원 대부분이 몰아 나를 질차하던 모습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분명 가만히 내가 참아 지낼 일이 아니라 결정하고 이용운 장로에 전화를 하였다. 집에 머물기에 그의 집으로 찾아가기로 하여 그를 만났다. 

오클까지 교회에서 중대사로 만나 있었던 과거 4년 이상 전부터 함께한 은퇴장로 모임에서 황청수, 차수환, 그리고 김봉회 장로가 각개격파 식으로 교회의 문제를 말 없이 지나가자 하던 그들의 말에 격분한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우선 이용운 장로에게 다니엘선교회 총무 직을 내려 놓기로 알렸고 그리고 그들 각기 3 장로들의 나에 공격성으로 대하년 이유와 그 말에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내 잘 못이 없었다. 하여 그렇게 나에 부딪힌 것에 나의 방어가 강하게 돌출되어 교회 문제의 내 주장을 급히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내 이야기 다 들려 줘 돌아 왔다.
그리리 후련한 마음 속에 의심이 풀리고 내 의지대로 따라 할 것을 다시 다짐한다.



2025년 01월 28일 화요일
약간 흐림

오늘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처가 아침 일찍 피 검사가 약속되어 7시에 근처 검사장에 다녀 왔다.
그리고 잠시 쉬고 11시에 홈닥터의 약속도 잡아 핸더슨의 병원에서 검진과 처방전을 받아 약간의 한국 식품 구입하고 집에 돌아 왔으니 나는 교회 바둑 모임에 갔으니 12시가 되었다.
이미 회원 8명 참석하여 관전 중인 장준택 박사와 2점 바둑으로 1승하였다. 그리고
김재도 집사와 2점을 주고 2승하였으니 전적이 좋았다. 아무래도 며칠 컴퓨터로 혹은 핸드폰으로 바둑 강좌를 시청하여 첫 포석 등 사활 문제에 몰입하여 내 실력의 바둑에 영양분이 공급된 상태로 오늘의 대국자들과 인용이 잘 되어 학습의 효과가 있었다. 요즘 장기와 바둑 동영상에 나에게 적합한 내용을 선택하여 계속 이어가야 한다.


병원에서 돌아 오는 중에 대구 형수의 이름 모를 병으로 지금 착잡해 하다는 말을 꺼내자
저는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던 일로 나에게 지금에서야 겨우 말을 하는데 처는 일산의 형수와 카톡 연결로
이미 백혈병으로 약에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산의 작은 형님은 지난 몇 주 전에 2차에 걸쳐 통화 했을 때 병명 이야기 없이 힘드시다는 말만하여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 내가 걱정을 할까 보아 그 정도만 말했던싶어 이찌 이런 일에 형제간에 사실 이야기 못하는 것이 좀 아쉬었다.

처가 당부하기로 나에게는 말하지 말라 했던 것을 들은바 나도 더 이상 아는채 하지 않아야 한다.
괜히 이런 것에 형제간 큰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어 조심해야 하니 참 애매하였다.

벌써 수 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 살고 있던 처제가 췌장함에 허덕이다 마지막의 사투에서 결국은 죽게 되기까지 나는 이 정도의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고 급기야 서울의 처제 둘이 급히 오는 것에 약간의 낌새를 챘었고, 또 장례식도 약식으로 딸 정원, 서원이 중심에 이뤄 나는 한편으로 매우 섭섭했었다. 형부로 혹은 이모부로 이런 일에 같이 협조하여도 좋을 관계인데 까마득히 모르고 처게가 죽고서야 정원이가 내일 장래를 치룬다고 나에게 전화로 알려 주느라 나는 비몽사몽 현실의 타격을 받았었다. 장례를 마치고 이곳에 홀로 살고 있던 동서에게 조용히 그 사실을 알려 주었을 때 동서도 깜짝 놀라고 엄청 섭섭하였었다. 오래 전에 같은 오클랜드에 살면서도 서로의 왕래는 커녕 딸 정원이 서원이도 그들의 엄마 편에서 그들의 아버지를 만나지도 않았으니 얼마나 배반을 받은 느낌이었을까? 그때가 오늘의 대구 형수님 병환 이야기와 겹치며 삶이 참 복잡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원이 서원이는 그 섭섭함에 나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방았던 이후 호주 시드니로 이주하더만 연락도 거의 끊다시피 지금도 그 이모 즉 처에세 혹은 사촌인 종효나 원희에게도 연락이 뜸하다고 한다.

혈육으로 그들의 아버지 즉 나에게 동서(양완모) 생각이 전혀 없던가 보다.
그러니 부부간에도 갈라지면 자식들에도 남남으로 나뉘는 것이 옛날 부모자녀 관계와 전혀 다른 모습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내일이 구정 명절인데 형제자매간에 혹은 부모간에 이런 모습의 안타까움은 주변에서 많이 들어 혹은 보고 있었다.


2025년 02월 06일 목요일
맑음

어제 늦은 저녁 동서의 내일 점심 식사 가능한가의 카톡 문자에 약속을 하고 오늘 아침은 일어나
포도13호의 포도망을 걷어 포도를 땄다. 그런데 포도망의 영향이 없던지 새가 침입하여 대부분이 엉망이 되었다. 기분이 상했으나 남은 포도알 추려 백에 담고 4호 포도에서 완전한 4송이를 따 함께 담았다.
오늘은 이 정도만으로 Passionfruit 과일도 넣어 동서에 준다.
포도 수확의 첫 나눔이 되었다.

약속에 가지 전 나는 처와 말 다툼이 생겼다.
주장의 물 버리면서 주의 사항 이야기 였지만 그 말 뜻을 이미 알고 있기에 충분히 그렇게 노력하지만 왜 거둡 그 이유 설명을 차근히 하는지 너무 간섭이 심하다 느꼈다. 이것으로부터 발단되어 언성이 높아지며 상호 고쳐야 할 문제점들이 나열되며 각각의 언성이 길어져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말 나온 김에 그렇게 지켜 보자는 조건에 처의 고쳐야 할 문제로 식품 쇼핑을 내가 해 줄터니 그 목록을 적어 나에게 줄 것을 요구하였고 이 문제만 잘 적응되면 괜찮다싶었다. 처도 동의한 것으로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아 이 정도로 말싸움 번질 것에 멈쳐 나는 동서 만나는 약속 시간 때문에 외출을 준비하여 서둘렀다. 아침에 준비한 익은 포도와 Passionfriut 함께 넣은 것을 가지고 차에 올랐다.


모처럼의 약속이라 만나 곧장 근처의 돌솥밥 집으로 찾았다. 식당에서 동서가 아는 교회 목사님이 계셔 그 분이 우리의 식비를 대납한 것을 추후에 알아 감사의 카톡 문자를 동서는 보냈다.


근처의 커피숍에서 그간의 흘러간 이야기에 두 어 시간 흘렸다. 병원 일로 의사 만남에 바뻤고 또 한국의 정치사회 문제가 마음의 기분을 심란하게 한 것 등의 일과를 이야기하였다. 동서는 최근에 모 교민듸 집 페인트 견적을 받아 다음 주부터 작업에 바쁠 것이라 한다. 동서는 평소 전립선 문제로 병원의 검사에 집중하며 이렇게 만나면 꼭 화장실 출입을 두여 차례 겸하여 일상에 소변으로 걱정하는 분위기를 오늘도 심하게 느꼈다. 헤어져 돌아 오는 운전 중에 처와 다툴 일 삼가햐겠다는 의지가 들어 매번 잘 유의하기로 했지만 오늘 같이 돌변한 상태가 있어 각자 심기 불편한 주제 삼갈 일을 생각해 평상 삶에 주위가 필요함을 알았다. 잘 지켜보자.

저녁 시간 나는 오랫동안 언제 종효와 대화의 시간을 가질 것인가 기다렸던 그 기회를 맞았다.
아침에 아들의 몸 이상으로 구토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 보면서 상태는 좋게 되었다는 답에서 지금 나와 대화의 시간이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 그가 시청 중인 컴퓨터에서 동의하여 나는 그의 침대에 걸터 앉고 말문을 열었다. 아침에 배탈 증세가 있었듯 전체적 그의 건강 문제의 시작으로 지금 종효의 체증이 과하게 늘어 그 문제를 올리니 아빠가 긴 시간 관심도 없다가 오늘의 말문이 뜻밖으로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긴 시간 침묵했었던 이유를 차근히 설명하여 늦었지만 그래도 아들에게 한 집에 있는 아빠가 조용히 아들 건강의 관심 이야기는 합당하지 않은가 물었다. 겨우 내가 늦은 관심에 이해를 하고 생각 보다 긴 시간 대화가 늘었다. 

즉 종효의 키에 적당한 체중은 75-80kg 되겠는데 120 kg의 체증은 큰 무리가 든 잘 못을 알고 있단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방법으로 식사 선택 조절, 체력 소모 운동, 그리고 의학적의 호르몬 과다결핍 등이 있을터 그 방법으로 조절해야 하는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홈닥터를 만나 상담에서도 보편적으로 듣는 말이겠지만 생각만큼 그 의지에 따라 식사조절, 체증운동의 조절로 들어서지 못했단다. 그래도 부모의 나이보다 충분히 오래 살아야 한다면 지금에도 고민을 가지고 대처하려는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고하며  처음의 긴 시간 대화에서 끝냈다. 차후에 다시 대화 시간을 갖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대화에 응해 줘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2025년 02월 08일 토요일
맑음

아침은 뒷뜰의 텃밭 점검으로 가뭄에 갈라진 밭과 채소의 시들시들 모습 보면서 거닐어 포도망 안에 포도 맛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여전히 13호는 달콤하다. 새가 들어와 이미 쪼아 놓은 포도에 속상하지만 어쩌랴. 문단속의 실패를 다음 시즌에 단단히 새긴다. 다른 포도는 아직도 덜 익었음을 안다. 붉은 포도들 그대로 햇살에 노출하였지만 가장 익었겠다 짐작하여 포도알 입맛을 보니 이들도 아직은 아닌기라.

새들이 이것을 지나치지 않아 일부는 쪼아 놓은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붉은 포도는 포도망을 씌우지 않아도 청포도 만큼 피해는 없었다.

이런 매일의 기록이 일기로 남았으니 나날의 흔적을 남기는 습성도 그렇고 시간도 꽤나 길어 일기쓰기는 내 삶의 당연함으로 자리하여 전생에 내가 글 쓰는 자였던가 싶더라. 그렇다고 남겨진 내 글이 일반 대중에 알려질 것도 아닐진대 이 만큼으로도 내 스스로 만족하여 왔으니 자화자찬이라 겸연쩍다.

나는 무엇으로 살았는가 돌이켜 보면 내세울 것 부끄러운데 회고록 같은 나의 이야기 글 작성과 내 취미에 한국인의 근세 정형시, 시조, 하물며 唐당 시절 유명했던 한시의 일부분을 암송하여 내 머릿속에 남겨 둔 것을 나 혼자 자랑한다. 지금은 그 바람이 조용하던차 며칠 전 통원 치료 기다림에 즐겨 암송하던 한시 구절 종이에 한자로 적다가 글 모습이 완성되지 않아 그 기억이 맴돌던 것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입에 암송이 되었건만 그 한자는 영영 가물가물하였으니 예전의 즐겨하던 암송 한시 모두 쓸 줄 알았던 자부심이 지금은 기억에서 멀었으니 아쉽구나. 이 기폭제로 다시 암송 시작할 때를 기다린다.

그저께 처와 다텄고 또 아들에 아주 모처럼 대화의 물고를 열은 이후 나에게 의기소침에서 혹은 긴장에서 떠난 듯 아침에 처는 빨래방에 가자는 요구에 그래 하며 곧장 컴퓨터 앞에서 일어 났다. 처는 이미 빨래 바구니 두 개를 작은 트롤리에 끌고 저 멀리 걷고 뒤 따르던 나는 부랴부라 집문을 닫고 차에 닿으며 왜 그 무거운 것을 나에게 남기지 않고 끌고 가냐했지만 처는 요즘의 내 허리 모습이 힘들게 굽어진 모습을 보고 그랬단다.

갑자기 머리가 뚱하게 부딪친듯 놀랐다. 이제라도 내 뒷 모습 이야기를 했으니 다행으로 내 모습 수정을 하면 되겠는데 아무튼 그런 굽힌 자세 이야기를 즉시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 모습 자세 바꿈의 기회도 얻고 또 항상 나의 정신을 꼭바로 할 의지가 흔들리지 않게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빨래방에서 돌아 오는 차에서 또 내 굽은 허리 모습이야기를 들어 조금 전에 내 자세가 정정되었겠지 했던 내 취지에서 아직 정정되지 않았음에 놀랐다. 그 이야기 고맙고 열심의 다짐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조금 전에 세탁할 모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처가 그 기기 앞에서 쩔쩔거리는 모습보며 세탁비누 넣었느냐고 물으니 아이고 까먹었다며 바닥에 놓였던 물비누통을 꺼내 세탁기의 흡입구에 적당량 넣는다.
그냥 세탁기 시동을 시도했다면 비누 없는 물 세탁만으로 헛탕이었지 싶었다. 그런 정신줄의 처나 나의 처량한 허리 휜 모습이나 흘쩍 늙어진 모습을 뒤로 한채 집에 돌아 왔으니 앞으로 어찌 해야 하오리까?

아들 종효와 대화에서 상기시켰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가 몇 인줄 아느냐? 그리고 우리 둘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 네가 우리를 보살펴야 하거늘 네 건강이 먼저 허물어지면 부모가 누구를 의지하고 살겠냐는 질문에 종효의 충격이 자극되었겠더라. 뭔가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빨래 작업을 마치고 차 청소 중에 지나던 낯선 한인 여자 2명이 말을 걸어 온다.
교회의 말씀을 나누기 위했다하였으니 그들의 소속된 교회를 이미 익히 아는지라 나의 신분을 정확이 알려 주었다. 교회 이야기 아닌 다른 이야기라면 얼마던지 좋으련만 이들은 ‘여호와의 중인’교인들로 오늘도 그 선교를 위하여 이 주위를 자나 나의 한국인 모습에 이끌려 다가 왔으니 더 따뜻한 대화 나누기 어렵게 그들은 돌아 가고나서야 내 직격이 너무 심했던가 싶었다. 사실 이들의 모습은 선량한 한국인들로 그들 사명은 열심으로 활동하여 칭찬해 줘도 부족하다. 아마도 교회 문제 주제 이외에 대화였다면 좋았으리라.


하늘 아래 같은 하나님을 주님으로 하였으나 왜 소속 교단에 따라 이질감 이상으로 사이비 교단에 구별되어 이단 교회란 이름 아래 격리하는가는 각각의 위치에 따라 정의가 다르기에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2025년 05월 05일 월요일
맑음


차가운 밤 기온에서 아침을 맞는다.
전기 히터를 켜 놓았기에 따스한 이불에 잠이 편했다.

오늘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어 앞뜰에 Organic Rubbish 내 놓아야 하고, 
또 내일의 Zoon Meeting 에 첨부 자료 등을 점검해야 한다. 또 앞으로 나올 Pastoral Resolution Committee 진행 결과에 따른 나의 의견과 생각을 파악해야 하는 등 사전 준비는 철저히 잡는다.

이것이 나만의 일하는 방법이라 다른 사람과 차별이 되는갑다.
마치 장기 게임의 그 순서를 예상하여 기물 움직이는 것 처럼 말이다.
처음으로 이 말을 글로 적는다. 

남창균이란 어떤 者인가?
어떤 일에도 사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일을 해 나가는 사람이겠다.
그 일이 중요함과 보통일 경우 또는 경미할 것에도 각각의 생각 할 시간만 다를 뿐이다.
예를 들면 잠시의 짬에도, 혹은 조금 긴 시간 고민이거나, 깊은 생각에서 최종의 내 뜻을 모아 일을 하는 등에
나는 철저히 준비를 하고 일을 진행하였다.

때로는 사람의 삶에 마주할 돌발적인 경우에 나는 긴급의 짬에도 그런 머리의 생각은 있어 왔다.
그러고 보니 어느 누구인들 그런 생각과 사고思考 없는 사람이 없겠구나.
데카르트가 말했던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허나 나의 경우는 그 잠시의 생각에서도 교차 검증까지 몇 단계의 흐름도 순서를 잡아 그 예상 변화와 각각의 장단점까지 세밀히 살펴 일을 선택 진행해 왔었다. 전광석화 같구나.

이것이 나에게 있어 실수하지 않는 비결이며, 내가 선택한 일은 대부분 꼭 이뤄지는 것으로 마무리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의 선택에 대한 순서가 되겠다.
그래서 꼼꼼하다는 평을 자주 받는다.

그 사람의 습관은 함부로 버리지 못하기에 나의 이 습관이 지금까지 유지 되었구나.
언제부터 이런 습관이 되었는지는 아직 생각을 못했었다.

아마도 나는 왼쪽 귀 고막이 제 구실을 못하던(내 생각을 하게 된) 어린 시절 6-7세부터 주위의 말 소리 제대로 듣지 못함으로 그 상황판단과 나의 의사 전달에 의심이 될 소지가 많아 내 머리속에서부터 이것일까 저것일까 그 상대의 말 소리 판단을 깊이 해 왔기에 나의 생각에 고민이었지 않나싶구나.

학교 수업에도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못하니 그 수업의 이해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이해하면 그 답이 쉽지만 그 말을 듣지 못함에서 오는 분별의 선택에 한계를 가져 왔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란 나의 판단이 즉각 생기는기라.

즉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을 경우로 내 생각이 자리 잡혀 그 갓가지 상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고등학교 1년 초 시절 곧 바로 가정 사정으로 학업을 포기했었으니 몇 년은 형님의 건어물 상점에서 일하였고,
1967년 가을 강직이 서울에서 만나는 기회에 그의 학교 재 편입 경우를 알고 나도 그와 같은 학업을 다시 찾는 계기가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까지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군 생활 30개월의 복무와 또 사회 진입의 직장 생활, 결혼, 그리고 뉴질랜드로 취업 이민하던 1982년 10월의
비행기가 하늘을 날 때 나의 꿈도 새로운 세상에 들었다.

1986년 초 드네딘 병원에서 인공고막 기능 설치 겸 등 대 수술에 결국 고막 설치는 실패하였지만
얼마 후 1987년 오클랜드에서 보청기 구입하여 내 귀에 착용하기까지 나의 삶 속에 대인 관계와 그 대화의 대부분은 내가 잘 듣지 못함으로 세상의 대화 약 30 - 50%는 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지났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때 보청기 착용부터 내 청력은 많은 도움이 되어 내 삶의 변화와 성격의 변화도 함께 있었다.

보청기 사용 이후는 약 15 – 20% 정도 못 들어도 생활과 삶에 불편은 감수할 수 있었다.
꼭 중요한 일의 경우 내가 다시 상대방께 설명을 요청하여 이해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과학과 의료 기기의 발달로 이런 보청기가 얼마나 사람의 삶을 유익하게 해 주는지 설명이 필요치 않겠다.
나는 절실히 느꼈다.

어린시절부터 젊은 시절까지 얼마나 어려운 삶에 혹은 학창 시절 공부에 어려웠을 것은.
내가 나의 이야기 My Story 글 쓰면서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나에게 귀 청력이 정상이었더라면
지금의 나의 삶과 그 위상은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머리는 그런대로 기본 이상 남 보다 조금 뛰어 났고, 공부도 청력만 좋았다면 일취월장 큰 교육과 학업이 이뤄져 나의 직업과 그 취업의 결과도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에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 가정을 해 놓고 생각이야 무엇인들 못 이뤘을까 한갓 꿈이었겠지만.

아무튼 나에게 귀 고막 손실은 1950년 6월 한국전쟁의 발발부터 그 피난 시절 그리고 1.4후퇴 때 또 다시 피난 시절에서 9.28서울 수복으로 대전 귀향에 아버님이 인민군으로 오인 받아 포로수용소에 끌려 갔을 때에
머머님은 아버지의 존재 팍악에 눈코 뜰새 없던 시기였다.

 나의 어린 아이 시절(3살 경) 홍역이란 아이들의 심한 전염에 적절한 치료 받지 못한 대한민국의 1952 – 1953년을 보내고, 전쟁의 휴전 이후 한반도 모든 땅덩이가 잿더미 된 현실에 의료 시설이란 제대로의 혜택이 없던 무렵 나에게 중이염과 귀 고막은 어떤 치료도 적절히 받지 못한 결과 그 후유증이 고막 상실로 이어 진 것이다. 원인이야 위에 적은 순서가 되었으니 그것을 누구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내 삶의 인생에 한 시절로 감내하여 지내 왔으니 그러부터 76살의 삶이 된 것이다.

지금이야 교회 생활이 나에게 그런 감내까지 주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니 이만으로도 주님께 감사로 살고 있다.
성경의 말씀이 우리 삶의 어려운 모진 고난을 비춰 삶의 방향을 잡아 주었으니 이래서 우리는 종교를 믿는갑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심지어 우리에 대종교 등 전 세계에는 수 많은 종교로 각 사람을 믿게 하였으니 그 종교의 역사도 수 천년에 달한다.

아마도 인간으로 집단 거주 생활을 하던 무렵부터 인간의 약함이 어떤 믿음을 갖게 하였지 싶구나.
거대한 지구 땅덩어리 않에 사람을 해치는 수 많은 주위로 부터 어떻게 그것을 이길 수 있는가 생각의 머리가 지금의 사회와 부족과 국가가 형성되었겠구나.

세계사의 역사를 배우며 이웃을 침범하고 전쟁하여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는 악순환이 지금도 전쟁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남의 것을 탐하여 뺏으려니 이웃을 죽이고 그 규모가 크다보니 이웃 마을 혹은 한 부족을 터 나아가 한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여 지금에 이루렀다.

내가 위에 언급한 대한민국의 한국전쟁은 공산 혁명이냐, 자유 민주 체제냐의 싸움이었지만 결국은 무엇을 탐하고 빼앗으려는 전쟁이 되었으니 이 세상은 세계사라는 장르가 우리의 배울 거리로 한 주제가 되었듯이 말이다.


초등 서울 모임 카톡의 윤대림 처 장례가 떴다.
몇 친구가 조의 표하는 글 올려 대강 짐작이 되었다.
고 임임빈 님 별세.

주위 친구들 나이도 그렇게 되었으니 누구인들 순서 없이 세상을 떠난다.
혹은 주위에 그런 직전의 아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것이 세상사의 일면이라 당연이 비껴가지 않지만 
나에게는 나의 이야기 글 남기는 것이 그 준비로 받았다.
지금도 틈틈히 글이 쌓이지만 그 마감은 하였어도 아직 또 진행으로 남겨 두었다.
내 숨 거두는 날까지가 될 지 모른다.

어제 박종화 집사 요양원 찾아 볼 때 그곳의 면면이 보였었다.
가령 나의 경우 이런 요양원에 들었으면 어떻게 지내야 할까?
위 나의 이야기 글 쓰는 일을 계속 그곳에서도 진행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 생각에 잠기기도 했었다.
컴퓨터도 내 방에 가져 와야 하고 그 기능도 매일 사용하며 글을 써 올릴 수 있을까? 등이다.

그런 소망이 되면 행복한 마지막 삶이겠지만
그럴 의식 조차 없이 남의 수발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결코 두려워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 뿐이다.

그 이상은 나의 욕심이겠다,
이 만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니 오로지 주님의 섭리에 따를 것이다.


2025년 05월 14일 수요일
맑음

새벽 눈 뜨자 생각난 것을 글로 쓰게 되었다.
즉 1972년 5월 22일 군 입대하여 6주의 훈련 과정 중에 생긴 종기 치료에 대한 글이었다.

그쪽으로 글을 쓰게 되었지만 그 군불 지피느라 그 직전의 과정이 많이 들었고, 
아무튼 이 글은 나의 이야기에 큰 부분으로 빠져 있어 오늘 우연히 그 생각에 떠 올랐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로 인한 나의 이야기 글이 더 나올 것이다.

그런 모티브로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나의 지난 76년 삶에는 그런 빠진 부분이 많을 것으로 보여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그 기쁨에 주님께 감사 한다.

삶이란 것은 지난 날을 회상하며 감사 혹은 뼈저린 다짐이 되지 않았던가?
오늘의 그 글에 많은 배움을 알았다.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은 받아야 하며,
또 그 과정을 회상하며 어떤 선택의 기로에 많이 참고해야 할 부분이란 것을 알게 하였다.
아직도 나의 삶에는 발견될 무긍무진한 자료가 있음을 알았다.
생각에 직접 따라와 주지 못해서 그렇지  76년의 세월이 작겠는가싶더라.

지난 1월 수반에 포도 망을 씌운 것에 이번 모두 수거 작업을 하였다.
1,2,3호의 한 포도망,
4호의 한 포도망,
8호의 한 포도망

이렇게 3가지 포도망을 벋겼다.
이들이 내년 시즌에도 그곳에 사용해야 할 터 씻기 전에 그 표시를 붙일 것이다.
13호 포도망은 지난 달 이르게 벗었으니 이제 모두 작업이 끝난기라.

이들을 어떻게 매듭으로 맨지 알기 때문에 그 방법을 역으로 생각하여 쉽게 작업할 수 있었다.
다음 시즌에 사용시 새 들이 쉽게 돌어 오지 못하도록 염두에 둬야 한다.
이번에도 그런 실패가 있었다. 이제 이들을 모두 잘 씻어 말려 보관해야지.
해마다 겪는 일이기에 그 장단점을 다음 시즌에 적용한다.
8호부터 초록 붉은색 검정으로 각 망을 기호로 표시했고
늦은 오후 이들을 라루피부 풀어 모두 큰 통에 담가 넣었다. 며칠 있다가 꺼내 씻어야겠지.
이 작업 중 25B Oakley Ave. 옆집 담 넘어에서 어느 노인이 나에게 집에 있는 고추의 씨앗을 원하여 
몇 개 원하더라. 하여 10여 개 따 주었다. 그리고 물었던 이 집에 사는냐고?
그는 딸래미 집에 놀러 왔다구나, 하여 이것을 말리는 방법과 다음 시즌에 심으로 자라는 것을 알려 주었으며
11월 12월 경에 이곳에 있으면 모종이 나올 때9 나눠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나올지 모르지만.

교회 문제의 Pastoral Resolution Committee에서 아직 아무 연락이 없었다.
추측컨데 지난 주의 부서장 회에서 손기철 목사가 부서장에 말한 노회의 청문에 대한 해명을 써 달라고 연락 온 것을 알려 주었어니 그것에 의하면 적어도 많게 2주일의 Notice가 적용되기에 이번 주일까지 그 답변서가 제출 될 거승로 그것을 받은Pastoral Resolution Committee가 그 후속 진행에 나 혹은 젊은 청년에 만남의 연락을 취할 것으로 되어 있다. 지난 주부터 그 답을 기다린바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이번 주일 까기 기다려 본다.
이에 속타는 교인들도 있지만 이것을 감수하고 진행한 일이라 어떨 수 없다.

뉴질랜드의 모든 행정이 이렇게 시일을 요하기에 이번의 교회 문제도 그와 다르지 않다.
또 내가 2017년 주님의교회 청문회 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에도 그렇게 되었었다.

이런 기간의 나는 잘 감당하고 참도록 훈련이 필요하였다.

그간 다니엘선교회원가의 나와 다툼도 이런 긴박한 심정에서 나온 다툼이었기에 내가 스스로 
인래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 일이 지나고 보니 내가 매우 잘 못 다른 것에 미안하고 실망스러웠다.
이럴 때 지혜롭게 했어야 했는데.

아직 고쳐야 할 부분이 많아 이제라도 깊이 반성한다.
모든 과정과 일에는 이런 인내도 필요하고 기다림도 갖는 아품의 시간도 있어야 하겠지싶다.
원하는 결과가 그리 쉽게 이루어 지지 않을터 그 감당의 고뇌가 이런 것이겠다.

어느덧 그 가까이에 다가 와 있다.
이번 주가 막바지 고비가 된다.
그 이후의 내가 할 일에 더 준비가 잘 되도록 하자.

위 일을 적고보니 또 집에서도 나와 겪게 되는 처 혹은 종효 그리고 집의 문제에서도 
그 영향 미침을 알게 되었다.

오래 되었지만 집의 냉장고에서 나가 자주 바실 음료로 우유와 주스를 꺼내면 그 밑바닥에 검게 그을린 때가 묻어 나왔다. 뭔지는 알았지만 긴 시간 그냥 모른채 지애 왔었다.

이제야 낮 시간 우유와 주스를 꺼내니 역시 그 밑바닥에 묻은 검댕이가 주방에 묻혀 있기에 오늘은 큰 맘 먹고 그것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곳에 있던 식료품을 모두 꺼내 그 냉장고의 플라스틱 몸채 일부분을 빼 그것을 물에 담고 깨끗하게 씻었다. 진작 이렇게 하면 해결될 것을 이제 한 것이 문제였지만 우선은 이곳에 처가 
많은 식표품을 껴 놓아 사용하는 버릇에서 비롯되어 은근히 화가 치밀기 시작했었다.
모두 잘 물에 닦고 제대로 껴 놓으니 괜찮아 좋았지만 마지막 내가 마실 우유주스 컵을 들고 움직이니 
위에 씻어 놓았던 그릇 큰 것이 걸리면서 아래로 떨이진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잡으로 들어 왔다.
웬만하면 내가 그것을 집어 올려도 되건만 이제 심통이 사나워 그 마음에서 그냥 온 것이다.
이것이 무언의 나의 시위였다. 왜 처는 이렇게 복잡하게 사는지 모른다.
이런 점에 나와 자주 부닻치며 싸워 왔으니 이것으로 조용하면 다행이겠구나.

즉 나의 심기는 항상 주위에 어떤 관계 없던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제 깨닮았다.
그 인내의 참는 것은 모든 것에 연결된다는 것을.

내가 봐서는 처가 고쳐야 할 점이 되건만 이것을 말하게 되면 크게 다툼이 되겠기에 여간하여 말하지 못하고
신경질이 나는 것으로 해결되어 그것이 문제가 됨을 이제 다시 깨닮았다.

즉 처는 집의 곳곳에 처가 움직이고 작없하는 곳 마다 내가 그 위치에서 무엇을 하건말건 복잡하게 놓여 있던 물건 식품 등에 의하여 왜 이것을 깨끗히 치워 놓지 못하는가가 나의 불평이 되는 점이다.

주방의 그릇 닦는 곳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자주 사용하는 냉장고에도 빈 틈이 없이 무엇으로 가득채워 넣는 성향에 나는 진절머리가 났었다. 그곳에 들어야 할 것은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식품류일진대
 빈 공간이 없도록 가득 채우다보면 신선한 것을 사와도 그것에 넣을 자리 공간이 없어 또 허우적 거리는 
것에 헤매다 결국은 냉장고의 사명대로 신선한 식품고가 아닌 아직 처리 못한 식품이 쌓인 냉장고 
역활로 본연의 냉장고가 아닌 생활에 신경이 쓰였다. 이것을 예로 들었지만 생활 공간에 이런 것이 자주 있다.


다른 곳은 여기 글로 쓰지 않겠지만 집안의 그 넓은 공간이 자끄만 복잡하게 쌓인 물건으로 인하여 
지나가기도 복잡하게 걸렸었다. 이것은 처의 생활 습관이 정상이 아님으로 나와 부딪치는 문제로 
자주 다툼이 되었다.

멸 개월 전에 심하게 다투었던 식품 구입에 대한 것도 이제 슬슬 또 그런 현상에 들었다.


처가 타고 다니는 차에 생식품퓨가 많이 저장되어 어떤 때는 그것이 썩어 시들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우도 
생겨 이것은 여간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건조한 식품도 초과 사용 이상으로 구매하여 집 곳곳에 
식품들이 쌓이는 것이 나의 심기를 사납게 만든다. 또 그렇게 말 해 주었건만 그 이야기 하면 왜 그랬는지 
본인도 의아해 하지만 그것으로 고쳐지지 않아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언제 조용히 알려 룩 섯이지만 나의 인내를 최대한 만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으로 크게 마음 상하게 되고 또 그 후휴증에 들어가면 이판사판이 되겠기 때문이다.

오후에 걷어 놓은 포도망을 씻어 놓느라 물통에 가루 비누 타 그들 모두를 담갓다.
그리고 며칠 지난 후 씽어 놓을 것이다.

그 작업이 끝나자 근처의 풀 자란 것에 Lawn Mower 로 앞 부분을 깎았다.
몇 회에 걸쳐 깎을 것이다.

초등학교 서울 카톡 방에 어제 저녁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거의 문자 올리는 일 없고 그들이 올리는 글 읽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요즘의 한국 정치 문제에 거론 된 이재명에 대한 이번 대통령 선거 입후보로 나오고 그에 관한 예전부터 소문으로 나왔던 나쁜 소문의 글잉 올라 왔었다. 그런 류가 많아지니 여태 조용하던 정인갑이 또 이것에 
맞불 놓듯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이유”라는 유튜브를 올려 놓았다.

거짓말을 되풀이 하면 믿게 된다, 
삼인성호(三人成虎)
란 뜻을 주제로 삼은 유튜브였다.

무슨 말이냐? 지금 카톡방에 올라 온 이재명의 썩은 말을 주제로 올려 놓으니
전인갑은 그렇게 삼인성호(三人成虎)하면 되겠느냐는 반문이었겠지만 아무도 그것에 관심 없어 
그 홀로 된 것을 알았으리라.

이 친구 여태 조용하더만
카톡방에 이제 대선을 맞고 이재명의 자격 지심을 논하니 그런 말이 통하겠냐는 으름장이었다.




2025년 01월 15일 수요일 — 맑음
오늘의 뉴스는 내 삶에서 가장 심란한 날이 되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다. 공수처는 체포 후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최장 20일 동안 구금해 수사할 수 있고, 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석방해야 한다.
지난달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봉쇄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은 윤 대통령이, 공수처의 체포 영장을 받아 과천 공수처 청사에 들어갔다. 민주 자유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보수 우파 국민의 마음은 울분으로 가득 찼다.
저녁 뉴스에서 윤 대통령의 ‘국민께 드리는 글’ 자필 편지를 읽었다. 12월 3일 비상계엄 발동의 배경과 이유를 이해하면서, 국민에게 호소력 있는 메시지임을 확신했다. 깨친 국민이 일어날 날을 기다리며, 내 마음도 오늘의 울분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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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19일 일요일 — 맑음
늦은 시간까지 선고 소식이 없었다. 한국 시간 한밤 12시가 넘어도 결과는 조용했고, 담당 판사의 결정이 심각하게 느껴졌다. 새벽 뉴스에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유는 ‘증거 인멸 우려’.
현행 대통령이 파렴치 범처럼 구속된다는 뉴스에 많은 보수 시민은 격분했다. 교회에서 만난 교인들도 말을 잃었다. 윤 대통령은 옥중에서 평화적 의사 표현을 당부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폭력이 아닌 평화를 선택한 그의 자세가 합법적 방법임을 받아들이며, 국민의 의분과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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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20일 월요일 — 흐림
어제의 울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중, 전광훈 TV를 통해 하현일 목사가 선창하는 ‘손에 손잡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광화문 광장의 수만 자유수호 참석자의 화음이 귓가에 꽂히며,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정지용의 향수 가곡도 들으며, 하루의 만감이 서서히 풀렸다.
며칠 전부터 컴퓨터 용량 문제를 고민했다. 기존 컴퓨터에 20GB 정도 남아 있어 속도 저하가 우려되었다. 오늘 새 USB를 구입하고 자료를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ADATA 1000GB USB에 자료를 옮기고, 작업 완료 후 컴퓨터와 USB 상태를 확인하며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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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21일 화요일 — 약간의 비
오랜만의 비가 텃밭에 도움이 되었다. 앞뒷뜰을 돌며 채소를 살폈고, 포도알 몇 알을 맛보았다.
오늘 뉴스는 미국 트럼프의 제47대 대통령 취임 소식으로 가득했다. 세계는 그의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윤 대통령을 둘러싼 국내 정치적 긴장과 맞물려, 세계 정세와 한반도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화요바둑 모임에서는 10명이 참석해 친선 게임을 즐겼다. 회의 중 유해동 장로의 $20 감사헌금 제안은 참석자들의 의견을 고려해 보류되었다. 모임 중 나는 사람 간 성격과 의견 차이를 이해하며, 상호 간의 거리와 예의를 조심할 필요성을 다시금 느꼈다.


2025년 01월 22일 수요일
맑음.
어제 내린 비로 텃밭은 아직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클랜드 여름은 기복이 심해 가물면 땅이 바짝 마른다. 텃밭을 살피다 13호 포도의 작은 송이 하나를 따 입에 넣었다. 곧 더 달콤해지면 이웃과 나눌 생각이 떠올랐다.
낮잠 후 샤워로 몸을 식히고 저녁 예배를 준비했다. 일산에 있는 작은 형님과 카톡 통화를 했다. 대구 형수는 치료가 어려운 상태라 약으로 연명 중이라고 했다. 대전의 둘째 누님은 아직 내 문안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잘 지내시는 듯하다.
혈육 8촌 이내에서 이제 우리 형제가 연장자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문득 실감났다. 시간이 흘러 다음 세대로 넘어가겠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마음에 남는다.
오후에는 교회 황형철 집사와 긴 통화를 했다. 작년 12월 임시 공동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정관 개정 건에 대한 내 의중을 정확히 이해시키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고, 이해가 부족하면 추가 질문을 받도록 했다.
교회의 새 행정과 목회 문제는 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관 개정 역시 충분한 사전 교감과 토의 후 공동의회에 상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화 후 뒷뜰에 나가니 흰 고양이가 따라왔다. 먹이를 주고, 포도 송이와 Passionfruit 두 개를 맛보았다. 텃밭 첫 수확의 달콤함은 마음까지 기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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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23일 목요일
맑음.
컴퓨터가 내 삶에 자리 잡은 지도 오래되었다. 1999년 8월, 마지막 사업 정리 후 이사하면서 아들이 쓰던 컴퓨터를 받아 사용을 시작했다. Hotmail 계정을 만들고, 인터넷과 게임, 채팅까지 경험하며 새로운 세상과 접속했다. 특히 사행시방에서는 ‘청산에’라는 아이디로 참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 학업 환경은 결코 쉽지 않았다. 좁은 집, 부족한 전기와 학용품 속에서 촛불을 켜고 공부하던 기억이 아찔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단순히 하루 세 끼 밥을 잘 먹는 것이 행복이었음을 깨닫는다.
25년 동안 컴퓨터와 함께하며 익힌 기술은 내 삶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문제에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과 자료 정리 능력은 큰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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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26일 일요일
흐림.
비가 내려 텃밭의 채소 걱정은 덜었다. 아침은 내가 만든 미역국으로 시작했지만, 새 쌀 브랜드는 맛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처가 구입한 식품들이 과다하게 쌓이는 문제로 속상함도 느꼈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며 조용히 먹었다.
예배 후 2/4분기 제직회가 열렸다. 교회의 재정 보고와 기타 제의 시간이 이어졌고, 나는 설교대 마이크, 성경 배치, 찬송 선곡에 관한 의견을 발표했다. 일부 선교회원은 내 발언을 과하다고 여겼지만, 나는 정당한 의견 제시라 판단하여 굽히지 않았다.
회의 후 이용운 장로와 만나 다니엘선교회 총무 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교회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어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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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28일 화요일
약간 흐림.
오늘은 바쁘게 하루를 시작했다. 처의 피 검사와 병원 방문을 도운 후, 나는 교회 바둑 모임에 참여했다. 장준택 박사와 2점 바둑으로 1승, 김재도 집사와 2점을 주고 2승하며 전적이 좋았다. 최근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바둑 강좌를 시청한 덕분에 학습 효과가 있었다.
서울의 누나와 카톡 통화를 하며 약간의 금전을 지원받았다. 대구 형수의 건강 문제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 사실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과거 처제의 췌장암 투병과 장례식 경험도 떠올랐다. 당시 나는 거의 알지 못했고, 장례 후 동서도 놀라 섭섭해했다. 가족 간 연락이 단절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구정 명절이 다가오면서 이런 복잡한 가족 관계가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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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시면 제가 이 날짜별 수필을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읽기 편한 한 편의 현대적 수필로 편집할 수도 있습니다.



2025년 02월 06일 목요일
날씨: 맑음
• 아침: 포도 수확. 13호 포도망 걷고 포도 수확, 일부는 새가 침입해 피해 발생. 4호 포도 4송이 추가 수확. Passionfruit와 함께 동서에게 전달.
• 가정: 처와 말다툼 발생. 물 버리는 일과 주의 사항 설명 문제로 언성이 높아짐. 식품 쇼핑 목록 작성 문제로 합의.
• 외출: 동서와 약속. 근처 돌솥밥 집에서 점심, 이후 커피숍에서 2시간 정도 담소. 동서 건강 및 병원 문제, 교민 집 페인트 작업 계획 등 공유.
• 귀가: 운전 중 처와 다툼 삼가 결심.
• 저녁: 아들 종효와 대화. 체중 및 건강 문제 논의, 식사 조절과 운동, 의학적 고려사항 논의. 종효의 건강 관리 의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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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08일 토요일
날씨: 맑음
• 아침: 뒷뜰 텃밭과 포도 점검. 13호 포도 일부 피해, 다른 포도는 아직 덜 익음.
• 회상: 일기 기록 습관과 과거 한시 암송, 기억에서 일부 희미해진 점 반성.
• 가정: 처와 빨래방 일화, 허리 굽은 자세 지적. 세탁기 사용 문제 발생, 소소한 불만과 심기 조절 필요성을 깨달음.
• 아들: 종효와 대화 후 변화 관찰.
• 외부인 접촉: ‘여호와의 증인’ 교인 두 명 방문. 대화 후 따뜻하지만 어려운 상황 경험.
• 신앙: 교단과 이단 문제에 대한 생각과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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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5월 05일 월요일
날씨: 맑음
• 아침: 전기 히터와 따뜻한 이불로 기분 좋게 기상.
• 계획: Organic Rubbish 내놓기, Zoon Meeting 첨부 자료 점검, Pastoral Resolution Committee 관련 사전 준비.
• 회상: 자기 성향과 사고 습관 분석. 사전 준비와 철저한 계획으로 삶과 일을 처리하는 방법 기록.
• 성장 과정: 청력 손실로 인한 의사소통 어려움, 보청기 사용으로 삶의 변화 경험.
• 역사와 신앙: 한국전쟁, 전쟁 속 어려움, 종교적 삶과 감사.
• 주변: 지인 별세, 요양원 방문, 나의 글쓰기 지속 가능성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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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5월 14일 수요일
날씨: 맑음
• 새벽: 군 입대 시기(1972년 5월 22일)와 훈련 과정 관련 회상.
• 회상과 배움: 지난 삶에서 빠진 부분 발견, 회상과 기록을 통한 배움과 감사.
• 포도 작업: 1,2,3호, 4호, 8호 포도망 벗김, 세척 후 보관. 새 방지 대책 계획.
• 이웃: 옆집 노인에게 고추 씨앗 전달 및 안내.
• 교회: Pastoral Resolution Committee 연락 대기, 기다림과 인내의 필요성 자각.
• 가정: 냉장고와 주방 정리, 처의 생활 습관으로 인한 심기 문제 인식, 인내와 참음의 의미 깨달음.
• 사회: 카톡방에서 한국 정치 관련 논쟁 관찰, 유튜브 공유로 의견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