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8b 나를 다시 찾았다 |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들었나?
“내가 너무 교만하였다”
그 교만함으로 인하여 나에게 돌아 오는 비참함을 보건데
내가 나를 옳게 판단하지 못한 그간의 내 삶에 통렬히 반성해야 했다.
그 낮은 자세를 이제야 알았구나.
겸손과 겸양
순종과 감사
내가 장로라는 것 보다 기독교인임을 내 자신이 마음으로 받았어야 했는데.
어느 시간 순간부터 너무 교만함으로 나를 바뀌어 놓았으니
그것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나 였던가?
친구들에, 교민들에, 교인들에
특별히 매주 주일에 만나는 교회의 교인들에는 예전의 남창균이 아닌 막나가는 남창균 장로로 둔갑된 허울이 된 나를 이제서야 알았다.
거만함과 교만이 가득한 남창균이었다.
내 딴에는 정의의 남창균으로 보였음싶어 가면으로 행하여 온 그간을 내가 깨달았다.
나의 순수한 초심이 이렇게 만들어 놓은 무대 위에 홀로 꼭두각시 춤으로 관객을 상대로 한 구경거리를 좋아 했더구나.
긴 세월 지나옴에서
어째서 그것을 몰랐었지!
나의 이야기 긴 글을 써 오면서도 그 허망한 나의 실체를 느끼지 못했었고,
나의 진면목이라 알려 준 그 때에도 홀로 자랑이나 된 듯 기세 듣등한 나의 허울에 내 입은 제대로 입 구실을 못한 나의 잘못을 이제야 알았다.
나의 진면목을 이제야 알았으니
과거를 떨쳐 버리고 새로운 나로 변해야 함을 이제야 주님은 나를 알게 하셨다.
주님!
저의 잘 못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정결한 손으로 저를 용서하옵소서.
남에게 그런 용서를 외치던 저의 수치를 씻어 주옵소서.
주님께 감사하오며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부터
1. 나의 입은 밥 먹을때 마실 때로 그리고 가장 최소한의 나의 심중을 겸손으로 표 할 때 말하라.
2. 카톡, 이메일 등에 나의 의중을 올릴 때 조심으로 낮은 자세의 입장을 갖고 올리라.
3. 매 시간 나의 낮은 겸손에 어디까지 낮아졌는지 더 더 낮아질 때까지 수양하라.
4. 내가 쓰는 글에 마음의 의중을 포함 할 때는 신중히 나의 낮은 자세를 옆에 두고 글로 쓰라.
5.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지위 고하 남녀 나이 불문하여 언제나 경어로 겸손하라.
위 5가지는 우선 지키며 또 나를 낮추는 말이 있으면 찾아 넣게 긴 침묵에서 찾았다.
Why did this suddenly occur to me?
“I was too arrogant.”
Seeing the misery that came back to me because of that arrogance,
I had to deeply reflect on my life in which I had not judged myself correctly.
I now realize that humble attitude.
Humility and modesty
Obedience and gratitude
I should have accepted in my heart that I was a Christian rather than an elder.
At what point did I change myself with too much arrogance,
and was it because I couldn’t handle it myself?
To my friends, fellow believers, church members,
especially to the church members I met every Sunday, I realized that I was not the old Nam Chang-gyun, but a sham,
who had become an elder who was going out of business.
I was Nam Chang-gyun full of arrogance and pride.
I realized that I had been acting with a mask on, thinking that I was the righteous Nam Chang-gyun.
My pure beginner's mind liked to show off to the audience with a puppet dance on the stage that I had created.
How come I didn't know that after all these years!
Even as I wrote my long story, I didn't feel my vain reality,
and even when I told you my true self, I only boasted and showed off my pretense, so I realized my mistake of not being able to properly use my mouth.
Now that I know my true self,
I must shake off my past and become a new me, and the Lord has made me realize that.
Lord!
I confess my mistakes.
Please forgive me with your pure hands.
Wash away my shame of shouting such forgiveness to others.
I thank you, Lord, and pray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Amen!
From now on,
1. Let my mouth speak when I eat or drink, and when I humbly express my heart.
2. When posting my thoughts on KakaoTalk, email, etc., be careful to post with a humble attitude.
3. Every hour, cultivate your humble humility until you become even more humble.
4. When including your thoughts in the text you write, carefully write with your humble attitude next to you.
5. Always be humble to the people you meet, regardless of their status, gender, or age.
I kept the above five things as a priority, and when I found words that would humble me, I searched for them in a long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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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 자란 1949-1982년까지의 한국 삶은 내가 태어나 배움의 학창 16년을 거치어 내 머릿속의 지식과 교양 등이 저장되면서 신생 대한민국의 탄생과 전쟁의 폐허 그리고 산업화 재건 수출 등 격동의 빨리빨리 정신이 베었으며 해마다 한 살을 보태는 새해는 한 겨울의 눈보라와 추위에 벌벌 떠는 정월을 깃점으로 설날(당시는 구정으로 불렸다)의 떼떼옷과 설빔의 기대에서 새학기의 시작인 봄을 맞을 때 산천초목의 싱그로움이 새록되는 들과 산을 보면서 먼산의 아지랑이는 나의 꿈이 함께 속삭이는 시절이었다.
차차 낮이 길어지면서 맞는 여름은 한 더위에 땀이 흠뻑 몸에 베이며 집주위는 잠자리 떼 날개짓이 맴돌아 어느덧 참외 수박 등의 달콤한 과즙이 입속에서 시원함이 기다려지는 계절 그리고 가을바람 솔솔할 때 가을벌레의 울음은 한 해의 후반부의 찬 서리에 어깨를 움추리며 매서운 겨울로 동지와 크리스마스의 성탄 노래에 한 해를 넘기는 송년이 1년 365일을 비숫하게 맞는 매년의 새해였었다.
이런 계절의 변화로 년 중 어느 월 일에 속하는 것을 몸에 느끼며 서른 세 해를 지냈던 1982년 10월 말 조국 대한민국을 떠나 뉴질랜드에 왔다.
이곳에 오기 전에 서울 뉴질랜드 대사관 사무실에서 뉴질랜드의 소개 책자를 얻어 New Zealand의 자료를 읽었으니 도착했던 당시의 봄 시즌을 기대하며 남섬의 드네딘, 퀸스타운 지역을 돌아 보던 중 높은 산 정상에는 하얀 눈이 쌓인 색다른 모습에 놀랐으며 또 입었던 봄 시즌의 잠바 걸친 것으로 추위를 이겨내기 힘들만큼의 움추림에 혹독한 첫 느낌을 받았다.
11월, 12월을 맞으니 점차 낮 시간이 길어져 12월 22일이 되어서 해 넘어간 저녁 9시 30분에도 눈에 보이는 시야는 아직 날이 훤했다. 즉 년 중 이때가 가장 낮의 시간이 긴 날이었다.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 성탄 기분도 이상했다.
한국에 남은 가족은 추운 기온에 흰 눈 날리는 성탄의 즐거운 모습이 떠 오를 때 이곳 뉴질랜드는 낮 시간도 길고 기온마저 차차 더워지는 것에 몸으로 받는 느낌은 아직 적응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년 말의 12월 31일도 짧은 밤으로 보내 새해 1983년을 맞는 나의 기분도 이상했다.
그간 새해를 맞는 원단의 첫 날 기분이 나에게는 영 스며들지 않는기라.
한 살 더 먹는 기분도 들지 않고 분명 달력의 1월을 지켜 볼 때 1983년은 확실한데 나이 한 살 더 얹어 놓는 것은 이상했었다.
설상가상 따뜻해지는 12월부터 길가의 가로수에서 체리의 붉은 과일을 따 먹으며, 1월 2월에 이곳의 여러 과일 입맛에 싱그러움이 온갖 활짝 핀 화초들과 함께 새 세상의 변화를 내 마음에 입혀 주더라.
3월에 들어서자 잎새 큰 나무들 살짝 노랗게 변하며 떨어지는 가을을 보면서 비바람 쳐 내리는 빗소리는 멀리 가족(처와 종효) 떨어져 있는 애잔한 마음에 스며들어 내 마음도흠뻑 젖게 하였구나.
내가 살고 경험했던 계절의 변화는 매년 1월 새해를 맞아 곧 구정이 다가 오기를 기다리고, 우리 고유의 구정은 달력에 1월 말이거나 2월 초순 경이라 해마다 달라지는 달력을 보면서 기달렸었다.
제삿상에 올려 진 제사 끝나고 먹는 떡국이 비로서 한 살 더해지는 그 나이 값이라 이때부터 비로서 새 한 살 더 먹는 셈으로 고쳐 불렀다.
그리고 15일 지나면 정월보름날이 되어 또 고유의 민속 절기가 되니 내 어려서는 오곡밥에 여러 놀이가 있었거든. 특히 연 날리기, 깡통 쥐불 놀이, 등이 연 중 어린 시절의 큰 놀이가 되었다. 늦은 밤의 보름달이 훤하게 떠 있을 때 어머니는 가장 고요한 단지 위에 깨끗한 냉수 떠 올려 가족 모두의 한 해 안위를 그 달에 비는 모습을 보았었다.
보름날에 얼킨 내 양말 이야기도 있거니와 새로 유행으로 시장에 나온 나이롱 양말을 신고 쥐불 놀이에서 보름을 기하여 하늘로 높이 던지던 중 그 불꽃이 내 양말에 닿아 그 양말이 모두 펑펑 구멍 난 것 생각하면 그 조금전 새로 신은 나이롱 양말 큰 누님이 동생에 준 보름 선물인데 이렇게 펑크나게 했으니 아찔했던 그 광경의 그 생각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얼마 전 돌아가신 큰 누님이 다시 떠 오르네.
그때는 그런 양말에 얼마나 신났었는지 알겠는가? 막 새로 나온 유행의 옷 감이었으니.
지금은 그런 면을 사용하지 않지만 그때는 그것이 큰 유행의 새로운 물건이었다.
이제 각 학교의 졸업식이 가까워 늦은 2월 경이 었던가? 보내는 자, 또 떠나는 자 함께 불렀던 졸업가의 노래는 누구나 지금도 귀에 선한 맬로디였다.
그리고 3월의 새학기에 특히나 어린이들의 새 학년은 모두에 인상 깊은 날이 되었다.
혹은 새 학년에 올라 그에 익숙하느라 모두 각오가 있을터 공부에 혹은 친구 사귀기에 기대감이 컸겠다.
나의 어려서 보릿고개가 펼치는 그런 시절이라 4월이라 하루 3끼의 식사가 어려워 지난 겨우내 모아 두었던 배추 무 잎 씨레기 말린 것에 보리라도 함께 죽에 써 먹어야 했던 궁핍한 시절도 기억에 있어 춘궁기 4월 5월은 배 허기짐도 함께 겪어야 했었구나. 지금의 자녀들은 그런 말에 이해 불가였지만 그때는 그렇게 나라가 어려웠고, 또 살림의 여유도 없던 시절이라 그것이 당연하였었다.
모든 대지 위에 봄 꽃이 피어나며 울긋붉긋 봄의 향연이 되면서 5월은 그렇게 멋진 달이었겠지만 보릿고개는 5월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덧 뜨거운 6월의 햇살에6월 6일 전국 현충일 기념과 함께 조국의 강산을 지켜야 할 그런 수호의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25일을 맞으면 조국의 200여 만 명의 백성이 죽었고, 또 1000여 만 명 이상의 이산 가족을 갖게한 한국 6.25전쟁의 되새김에 호국의 달이 더 생생하였다.
7월은 뜨거운 여름의 한창 시절로 여름 방학은 학생들에 얼마나 기다리는 방학이 될까?
모두가 환영하며 30일의 휴일을 생각하느라 그 방학은 신나는 날이었다.
그때는 여름의 뇌염 혹은 태풍의 피해로 어느 곳이 무너졌다거나, 혹은 누구가 뇌염에 죽었다는 소식이 더 꿈찍했는데 내가 지금도 건재하도록의 모습은 주님께 감사외에 설명이 안 되었다.
8월은 여름의 정점이여 참외 수박 등의 여름철 과일이 한창이라 그때의 과일은 몇 가지 없었다. 지금에야 새로운 과일 포함하여 1년 어느 때라도 대부분의 과일의 맛을 보지만 그때는 살구, 오이, 토마토, 참외, 수박, 밤, 사과, 배, 이 정고가 과일에 들어 단순했더라.
여름 방학이 끝나 새 학기 들어 8월을 홀딱 지나고 9월이 되면 벼 이삭도 누렇게 알곡으로 보이며, 오곡백과 익는다는 계절이 되어 마음도 훈훈한 수확이 곁들여졌다. 이 즈음의 추석은 대한민국이 조상 대대로 내려 온 명절의 극치가 된다. 음력 8월 15일 보름을 기하여 강강수월래가 전래된 그런 고유의 명절이 된다.
10월이 들자 기온의 변화와 산천초목의 색갈도 붉거나 노랗게 변하여 차차 한 해의 3/4분기를 맞는다. 룰론 학교는 가을 소풍도 있어 기다림의 하나 였고, 또 학교 운동회도 이 즈음을 택하여 기대하는 그런 달이었다.
이제 11월에 들어 차차 기온이 차가움도 피부로 느껴 벌써 따뜻한 겨울 옷에 추위를 견디어야 하는데 그 시절은 먹고 입는 옷에도 빈약하여 그 추운 겨울 지내기 어려웠던 옷차림은 잘이 시러워 참기 힘든 추위였다.
해의 낮은 짧아져 차차 밤이 길어지니 12월 22일 동지는 그야말고 년 준 밤이 가장 길었다.
며칠 뒤 12월 25일은 성탄절로 교회에 다니거나 아니거나 한국에서 가장 신나는 날이었음을 모르지 않았고 그 직전 겨울 방학 또한 새로운 30일의 방학을 기다림에서 이제 한 해의 마지막 정리로 들어셨다.
머잔하 오는 12월 31일의 보내는 해, 또 새로 맞는 새해을 기다리는 방송국의 중계방송에 12시 정각을 알리는 제야의 소리는 우리들 삶에 모두가 맞던 방송인지라 이렇게 한 해를 맞고 보내는 그 시절의 1년이 위와 같이 익숙했던 나에게 뉴질랜드의 새 삶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이 글의 초두에 썼듯 내가 처음 이곳에 와 겪었던 11월과 12월이 너무나 대한민국과 대조적이라 그 생생함에 기분마저 이상했었다.
한국에서의 33년 간 삶과 이곳의 지금은 43년의 삶의 비교가 되어 너무나 그 반대의 개념으로 감각을 느꼈고, 이제는 이것이 그런 삶이려니 내 몸에 익숙한 계절로 내 조국 한국의 계절 흐름이 이제는 낯 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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