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세월이 나에게 남긴 말들

淸山에 2026. 1. 10. 05:03

세월이 나에게 남긴 말들

 

나는 글쟁이가 아니다.

다만 매일의 생활을 놓치지 않으려 일기를 써 왔을 뿐인데,

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새 세월이 되었다.

 

어린 시절 방학 숙제 가운데 늘 빠지지 않던 것이 일기 쓰기였다.

숙제를 마친다는 핑계로 방학 때만 몇 차례 적어 냈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 학창 시절 대학 1학년에 들어 선 기념 삼아 일기장을 샀고,

그 일기는 3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군 생활을 하면서, 또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뉴질랜드로 취업 이민을 오기까지

일기를 꾸준히 쓰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작은 기록들은 늘 내 곁에 남아 있었다.

 

내 성격이 비교적 꼼꼼한 편이라

사소한 것이라도 적어 두고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메모장 같은 곳에 짧은 글들이 남았고,

사업으로 바쁜 나날 속에서는

세무 정리를 위해 회계 장부와 영수증을 철저히 챙겼다.

그 또한 내가 남긴 하나의 기록이었다.

 

그러다 1997 11,

대한민국의 IMF 외환 위기로 이곳 오클랜드의 주된 사업이 문을 닫게 되면서

마음의 상심이 컸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아들 종효가 업그레이드로 남은 컴퓨터를

내가 써 보라며 권했다.

 

이전 사업장에도 컴퓨터는 있었지만

나는 그것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왔고,

다룰 줄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아들은 처음부터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자판을 두드려 이메일을 만드는 일,

메일을 보내고 받는 방법.

당시는 ‘핫메일(Hotmail)’을 쓰던 시절이었다.

 

몇 글자 써서 보내고, 또 답장이 오는 일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모른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호기심이 있었다.

 

이메일을 주고받는 상대는 아들뿐이었는데

혹시 내가 좋아할까 싶었는지

카드 게임도 알려 주었다.

그것이 두 번째 컴퓨터 공부였다.

 

여러 카드 게임 가운데

프리셀(FreeCell)은 특히 자주 했고,

완성률은 거의 99.99%에 이르렀다.

이런 종류의 머리 쓰는 일에는

제법 익숙했던 모양이다.

 

내가 컴퓨터 운용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느낀 아들은

이번에는 웹사이트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순간은 지금도 또렷하다.

마치 무궁무진한 세계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는 느낌이었다.

 

자판 치는 일은 여전히 더듬거렸지만

오래전 군 복무 시절 익혔던 영문 타자 실력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당시 분당 200자 이상 치던 기억을 바탕으로

한글 자판도 연습을 거듭해

비교적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아마 1999년 혹은 2000년 쯤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컴퓨터가 점차 보급되던 시기,

나는 야후(Yahoo)에 이메일을 만들었고

어느새 채팅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무슨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는데

현란한 글자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접속해 있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누군가는 또 다른 대륙에서

같은 공간에 모여 있는 셈이었다.

 

채팅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기만 하니

누군가 “눈팅만 하지 말고 인사하세요” 하고 재촉했다.

쭈뼛거리며 “안녕하세요”라고 적었더니

곧바로 반가운 인사가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그 세계에 익숙해지기 시작 졌다.

 

그러다 어느 날 ‘사행시 방’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라 한동안 지켜만 보았다.

주제가 올라오면

잠시 후 4, 각 행 4글자로 된 글들이 올라왔다.

엉성한 것도 있었고,

제법 의미가 살아 있는 글도 있었다.

마치 시조 놀이 같기도 한, 묘한 재미가 있었다.

 

계속 눈팅만 하던 나에게

한 참가자가 직접 사행시를 써 보라 권했다.

어설프게 따라 써 보았는데

앞뒤는 엉망이었어도

글자 수를 맞추는 데 의미를 두었다.

기승전결이 맞쳐지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며

매일 인사를 나누는 친구들도 생겼다.

 

그 무렵 나는 아이디를 ‘청산에’로 만들었고

그 이름은 그대로 필명이 되었다.

이때 주고받은 사행시들이 아까워

모두 이메일에 옮겨 두었고,

세월이 흐른 뒤 블로그를 만들며

그 글들을 다시 세상에 올려 두었다.

지금도 티스토리에 남아 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2011년 하반기부터는

일기를 거의 매일 쓰기 시작했고,

그 기록들은 지금까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다.

 

이렇게 돌아보니

컴퓨터와 글쓰기는

어느새 내 일상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짧은 생각으로 적어 두었던 글들을

컴퓨터 파일 속에서

가끔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사이에도 세월은 무심히 흘렀고,

어느 순간 나는

내 삶의 시간을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태어난 이후 기억이 닿는 모든 것들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기록을 모아

「나의 이야기(My Story)」라 이름 붙였고,

이 기록에는 나의 부모와 세 분의 형님 세 분의 누님에 잃힌 이야기가 들어

역사의 시간으로 보면 1909년의 아버지부터 지금의 내 이야기까지

100여 년이 넘는 대하 大河 이야기가 된다.

지금은 001에서 070까지 이어져 있다.

 

누군가는 이런 글은 회고록 혹은 자서전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 같은 보통인이 거창한 단어 들먹이지 못하니

「나의 이야기(My Story)」가 적격이었다.

 

백 개쯤은 될 줄 알았지만

76년의 세월을 정리하고 보니

큰 흐름은 56개 단원에서 마무리되었다.

나머지는 짧은 단편의 생각들이다.

 

그중

055b 사람의 삶에 인생무상 외 2편 추가’까지는

블로그 〈청산에 살으리라〉 https://gasiriitgo.tistory.com/ 에 올려 두었다.

이제는 그저

나만의 기록 저장처로 남아 있지만

그 또한 충분하다.

 

여전히 내 컴퓨터 속에는

짧은 글들이 쌓이고 있다.

이 글도 그 연장선에서

같은 제목 아래 옮겨 놓으려 한다.

 

수필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하지만

문득 떠오른 제목,

‘세월이 나에게 남긴 말들’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이 제목으로 남은 글들을 하나씩 옮기려 하니

감회가 새롭다.

세월이 다 말라버리지 않고

이렇게 또 말을 남겨 주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

 

우선은 이미 남아 있는 글들부터.

그러다 보면

또 새로운 글들이 쌓이겠지.

 

그렇게 세월은

여전히 말을 남길 테니까.

 

2026년 1월 10일

오클랜드의 새 아침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