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055a 故 이정남 회장에 부치며

淸山에 2025. 9. 29. 05:34
 

 

 

이제 고인이 되신 이정남 회장님!

 

오늘 저녁에야 카톡을 통하여 교민 이정남 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향년 87세로 삶을 마감하며 남은 유가족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와의 인연은 40여년의 긴 세월이 연결되어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닐터 그도 나도 각자의 삶 중에 뉴질랜드의 생활이 생애의 반을 넘어 이곳은 제2의 고향일뿐 아니라 평생의 즐거움과 고뇌를 옆에서 지켜 보는 각고의 흔적이 있었으니 그 소회가 남다르다 하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홀로 외롭게 지내던 1983년 어느 날 남섬 드네딘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의 태권도 지도 차 모 체육관에서 그 휘하의 단원들과 함께 만나게 되어 단상 중앙에 걸려 있던 태극기에 단원들의 한국어 구령은 남다른 애국심이 발휘되던 시간이었다.

 

이후 년 중 정기적 기간에 몇 차례 드네딘에 방문하니 어느 날은 웰링턴 한국대사관에서 영사기와 한국의 영화 필름을 가져와 외국인 친구들 함께 집에서 그 영화를 감상하던 순간도 주마등같이 떠 오른다.

 

전국 각지에 몇 없던 교민들에 필요한 자료로 생각하여 그 무거운 것도 마다않고 웰링턴에서 들고 온 그의 헌신에 깊은 인연을 쌓아 내 가족이 오클랜드로 이사할 때는 지나는 나의 차량 중 웰링턴에서 잠시 그를 만나게 되어 향후 오클랜드에서 또 볼 기회가 연결되었으니 그와 그 가족과의 인연은 얼키고설킨 여러가지 일들이 지금의 나를 채찍질하여 글의 중반을 향하게 한다.

 

그와 뉴질랜드 한국 교민들과의 관계는 철저히 호감과 비호감으로 나눠 있다.

우선 그의 태권도 사범과 뉴질랜드태권도 협회장까지 맡도록 사업가의 면모로 볼 때 운동기질의 성격에 타인의 느낌에 남다를 수 있었고 또 재뉴한인회 구성원으로 웰링턴의 초창기 한인회장도 몇 회 역임하여 이에 따른 선호도의 좋고 싫음의 나눔에 양자가 구별되었었다.

 

그의 가족도 웰링턴에서 오클랜드로 이주하니 만나는 횟수는 더 많도록 그와 한인들과의 관계를 옆에서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2007년 뉴질랜드한인사 발간에 한길수 박사는 그에 따른 자료 취집으로 내가 보관하여 모았던 1982년부터 2007년 이전까지의 한인들 자료를 참조하여 이정남과 관계된 한인사에 깊게 반영되도록 사실 관계 증명을 설명하여 정확하게 한인사에 반영되도록 하였었다. 이 한인사에는 교민들의 한인회에 대한 과정도 포함되어 있어 많은 사실이 적용되었다.

 

심지어는 그의 사업분야에 피지의 골프협회에 관련하여 피지도 내가 직접 방문하여 피지골프협회에 관한 업무도 대행하여 온 일이 있어 뉴질랜드 한국 교민으로 살아 감에 한인사회에 연결되는 대부분의 일을 옆에서 지켜 볼 때 그의 삶과 인생을 엿보는 기회가 많았으니 내가 보는 그의 관점은 남들의 평과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교민들은 그가 태권도 지도자로 활동한 주 무대에 운동인의 인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를터이지만 내가 본 그의 관점은 그것과 사뭇 다른 사업가의 깊은 계산과 철두철미의 뇌리한 머리 회전에 평범 이상의 비상함에 놀랍기도 하였다.

 

그는 태권도 관련 분야가 주 활동 범위가 되어 뉴질랜드 전국 각지는 물론 당시(1988년 경)그의 휘하 제자들 5,000여 명이 뉴질랜드의 주 분야 곳곳에 포진한 관계로 그들로부터 듣는 정보와 도움이 크도록 각 분야에 적중하였고 아울러 세계 곳곳도 함께 다니는 관계에서 만나는 타국의 교민 삶에서 터득한 여러 분야에서 살아 남는 사업분야를 발견하여 그의 이곳 삶속에는 특별히 부동산 분야에 시간 틈틈히 찾아 봄으로 이재에도 덕을 본 것을 여러 번 듣게 되었다. 이것은 어느 날 내가 그에 질문을 하여서 그가 답변한 것이 되어 알게된 것이지만 내가 일찍 질문하여 알았더라면 나에게도 그 부동산 분야에 도움이 되었을 것을 너무 늦게 물어 봐 온 것이 아쉽다고 느꼈었다.

 

 

021 488 499 이정남 사모님 이경원 권사 번호

 

이정남 교민 자택서 별세…향년 87

   0   2,099   6시간전  김수동기자 (115..149.235)  한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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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남 교민이 오늘(56) 아침,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1936년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했으며 1966년 베트남 전쟁, 태권도 교관으로 참전했다. 그리고 1975년 뉴질랜드 웰링턴으로 이민을 온 고인은 웰링턴과 오클랜드에서 생활 했으며 뉴질랜드 태권도 협회, 뉴질랜드 한인회, 재뉴 대한 체육회, 재뉴 재향 군인회 등 뉴질랜드 사회와 한인 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를 했다.

 

장례식은 오는 5 10() 11  Purewa Cemetery에서 이루어진다.

 

김수동 기자

 

고인의 장례식이 열리는 Purewa Cemetery 위치를 확인하였다.

 

 5 10() 11  거행이라 아침부터 조반을 만들어 먹고 샤워하고 예복에 검은넥타이를 맺다.

오전 9 45분 쯤 집을 떠나 모터웨이 진입하여 국도 1번으로 연결하고 Remuera로 빠지는 길로 들어서 지도로 확인한 지점 부근에 입구 간판의 표식이 보이니 유유히 그곳으로 들었다.

 

Purewa Cemetery 장례식장이 보인다.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10 5분 정도라 입구에는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식장 앞쪽에는 여러 헌화 장식에 정돈된 것만으로 어림잡아 이십 여개 이상 보였다.

 

아직 내방객은 없어 주차된 차 안에서 기다리는 중 쏟아지는 빗줄기 거치게 내린다.

서서히 예배 참석자들이 보이며 일부는 안면있는 교민도 인사 나눠 나는 자리에 앉았다.

장례 예식 순서지를 받았다. 교회 예배로 기쁨의 교회 손진국 목사의 인도자였으며 유족 관계 그리고 “고 이정남 성도 천국 환송 예배”가 되었으니 몇 달 전 3 16일 예수님 영접과 세례를 받은 사실도 적혀 있었다.

 

그의 약력이 보여주듯 식장에는 Kiwi인에 태권도 합기도 복을 입은 제자들도 다수 참석하였다.

내가 그를 알게 된 초반에 전국에 걸쳐 5,000명 이상의 제자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 이후 추가 단원까지 합쳐 뉴질랜드 각계각층의 제자들의 활약에 각 지도층에 들어 있던 일을 들었었다.

 

입구 방문록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청빈낙도 淸貧樂道 Plain living, but high thinking!

오클랜드한인교회 장로 남창균”라 기입하였다.

 

예배 순서에 따라 장내는 숙연해지고 후반 쯤에 추모사Eulogy-정이사벨 손녀 외 진행에 추모사를 해 주실 분은 사전 적용 없이 자유롭게 받는다는 진행자의 말을 들어 옆자리에 변경숙 전 한인회장도 추모사 발표의 움직임이 보였다. 나도 그 후에 내 순서로 내가 발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사전 약속 준비 된 내용은 없었지만 나 홀로 그를 보내며 글을 짓던 내용이 있어 오늘도 한 번 읽어 보았었다. 그를 처음 만나 지금까지의 40여 년 인연에 얽힌 에피소드 삼아 짧게 발표하기로 마음 먹었다.

변경숙 끝나 나도 앞 사회석으로 발을 옮겼다.  마이크 앞에 서 ‘사전 약속 준비는 없었지만 지난 40여 년 고인과 관계된 인연 중에 특별했던 이야기로 함께한 조객에 알려 주었다. 그는 충분한 애국자 였으며 현지 제자들에 운동을 가르치면서 대한 조국의 말과 관습을 따라 교육하였던 만큼 태극기가 그 중앙에 보인 것과 함께  대한민국을 알리는데 조금도 주저 없이 대단 하셨던 분으로 소개하였다. 그리고 비록 그는 떠났기로 슬펐지만 이제는 기쁘다는 말로 그가 얼마 전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영광이겠냐는 말로 나는 오클랜드한인교회 장로 남창균 입니다 매듭지어 내 자리로 돌아 왔다.

 

장례 예배 다 끝나 나올때는 유족이 준비한 도시락 봉투 한 개씩 받아 내 차로 돌아 왔다.

그리고 장례 일정과 찍었던 사진 등을 종합하여 알림으로 서울의 윤대림 친구에 보내 주었다.

 

그와는 이정남이 한국 머물 시절 1975년 이전에 뚝섬 지역의 주산 학원을 인수하느라 알게 된 처지를 설명 받아 알았단다. 하여 고 이정남의 죽음도 카톡으로 알림이 적합하여 보내 주었던 것이다.

 

세상의 인연은 이렇게 얼키고설켜 가까우면서도 멀더라.




고이 잠드소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청빈낙도

淸貧樂道

Plain living, but high thinking!

 

오클랜드한인교회 장로 남창균



고 이정남 성도 환송 예배

 



그를 보내고 거의 2년이 흘러 다가온다.

 

카톡 명단에 ‘이정남 사모님’ 명단이 보여 간략히 안부의 문자를 보냈더니, 반갑다며 둘째 딸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잘 있다는 답글이 왔다.

 

이 카톡의 명단에는 고인이던 이정남 회장이 사용하던 핸드폰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후에도 사모님이 사용하며 지금까지 온 것으로 보니 그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한인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뉴질랜드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들에 연락 사항으로 지금도 그 핸드폰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가 이곳에서 보냈던 45년 이상에 교민들보다는 태권도 사범 시절 알던 제자들의 연락처부터 시작했으니 그들의 대부분 연락을 취했을 것이고 또 교민들도 만나게 되며 수록한 연락에 각 분야 모두가 그 핸드폰에 들었을터 그 대부분의 관계를 사모님이 옆에서 함께 이야기 나눴으니 그들의 면면을 소상히 알게 되어 사모님이 이제 사용하여도 달라질게 없는 그런 면면이겠다.

 

이정남 회장이 고인이 되고 이 번호는 계속 카톡에 남아 있어 내가 ‘이정남 사모님’으로 명단을 바꿨던 것이다.

 

2023 5 6일 지병으로 별세하였으니, 향년 87세 였다.

(2025 4 30일 추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