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036 나의 달라진 식성과 체질 그리고 성격

淸山에 2025. 9. 4. 13:50
 

 

 

내가 써 남길 이야기 글을 거의 다 쏟아 글에 남겼으니 더 이상 쓰여질 글이 없을 것으로 끝낸 “나의 이야기”가

세월과 시간이 흐름에 다시 읽어 보며, 감상도 하는 사이 또 새로운 글 주제가 떠 올라 그것도 글로 지어 놓게 되었다.

 

빨래의 옷감에 묻은 물기를 짜 내듯 짜고 더 돌려 비틀기도 하면서 지은 글이 더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원희 를 차로 데려오면서 새로운 글 이야기꺼리가 생겨났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 남겨 둘 충분한 자격이 들어 적는다.

 

우선 제목으로 “나의 달라진 식성과 체질 그리고 성격”이라 적었는데, 어려서 나와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게 달라진 새로움이 있었으니 “나의 이야기”에도 합당하여 지금 신나게 그 잡힌바 되는 시작과 끝이 들어섰다.

 

우선 性格을 놓았다.

어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 나는 참 부끄러움이 많아 누구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 했었다.

 

아울려 성격이 매우 빨랐기에 집의 누님에게 말하는 중에도, 나의 의사 표시에서 말을 음음하며 더둠던지 빼 먹고 건너띄는 그런 경우가 많았었다. 

 

이렇게 글로 적을 만큼 기억이 확실하다. 위 누님(둘째 누님)이 이것을 바꿔주려고 나에게 당부하듯이 말 해 주었다. 즉 ”창균아! 너는 말 할 때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해 봐” 이 말을 아주 천천히 나에게 당부하던 누님이 있어 이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고, 또 나의 의사 표시의 말에 생각을 하면서 말 표시를 하여 자랐으니 어느 정도 고쳐지게 되었지 않았을까? 

 

***   ***

 

위에 뜻을 마음에 담고 천천히 나의 의사 표시를 했기에 그때의 생각이 생생하게 회상되었다.

 

하물며 나는 자라가면서 나의 잠재되었던 성격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대학 시절 쯤에는 숫기를 모르듯 대담하게 내 의사 표시가 발산되어 소극적보다는 능동적의 변모가 발휘되어 갔다.

 

뉴질랜드로 이주한 이후는 내 삶의 위치가 다른 한국인보다 먼저 왔던 경험자 위치가 되어, 나중에 들어 온 한국인들에게 무엇이라도 나이 연령의 높고 낮음을 넘어 궁금한 것을 알려 주는 선임자의 위치로 대부분의 생활이 되었다. 

 

당시 뉴질랜드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누구라하여 피할수 없는 관계가 되어 시내 중심가에 있던 나의 사업처에서는 그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이 나의 성격 형성에 주로 관계 되었다고 인정한다.

 

다음으로 내가 평소에 즐기는 음식 식성에 대하여 말해 보자.

 

어려서의 나는 돼지 고기와 비린내 나는 생선류를 매우 싫어 했었다. 집의 식사에 이것이 나오면 가급적 다른 음식으로 배를 채웠으니 나름대로 나에게 그 이유가 있었다. 또 집안의 사정으로 넉넉한 육류 사 먹을 경제 여건도 어려웠다.

 

형편이 이러 하여 하루 3끼 식사에 올려질 종류는 당연히 채소 위주가 된 것이다.

 

***   ***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생긴 귀 중이염으로 고생하여 평소에 귀에서 고름이 자주 흘러 나왔다. 특히 음식에 돼지고기 혹은 비린내 나는 생선을 먹으면 더 심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가급적 위 두 가지 음식을 피하여 먹었던 것이다. 

 

어릴 때 시장 길의 음식점 혹은 술 집에서 문 밖에 내 놓은 장작 화로 위에 돼지고기 붉은 양념으로 익히는 광경을 자주 보는데 익혀지면서 내 코에 흘러 들어 온 그 맛의 향기는 나를 자극하면서도 그 음식을 피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내가 서른이 넘어 뉴질랜드로 이주 해  살게 되었다.

가끔 한국 배가 항구에 입항하기에 그들을 찾아 가게 된다. 그러면 그들이 반갑게 나를 맞이하고 접대하는 음식이 생선이나 돼지 고기 삼겹살이지 않겠는가? 

 

응당 찾아 간 배의 접대에서 나오는 음식이니 거절하기 보다는 한 점, 두 점 생선의 햇감이나 삼겹살을 먹어가면서, 그 맛의 진가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거절하기보다는 당연하게 받아 먹었다. 

 

이러면서 차츰 내가 평소 입에 담지 않던 생선 혹은 생선 회, 그리고 돼지 고기 삼겹살 등을 잘 먹게 된 것이다. 그 후 이제 사십 여 년이 더 넘게 세월 흘렀으니 지금의 나에게 특별히 먹지 못하는 음식은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이 내가 살아 가면서 식성의 특이함도 바뀌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체질 이야기를 적어 보자.

 

나의 어려서는 아주 작은 키의 몸이었고 또 다 크게 자라면서도 신장은 166.5cm, 몸 무게는 55-60kg 가 평균 나의 몸 상태였다. 이 체격은 한국인의 평균 혹은 조금 작다고 할까?

 

내가 한창 자랄 때의 한국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먹을거리에 신경이 많았을 때 였다.

 

특히 대체적으로 많이 먹고 싶을 때 마음 껏 먹지 못하고 자라던 시절이 많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의 자라는 체격이 작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년, 장년 이후에는 먹을거리에 힘들지 않았지만, 나의 평소 체격은 어릴 때의 충분한 영양가 음식이 부족하였던 것이 지금 나의 체격 형성에 기여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아무튼 나에게 어려서는 해마다 찬 바람부는 가을 부터 기침이 들어 고생을 많이 했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 새 봄이 되도록 콜록 콜록 기침을 했으니, 당시에 부모는 이런 나에게 기침 약 준비하느라 힘들었고, 이 때 오래 복용한 분말 약제가 생각난다. 당시의 열악한 한국 의료 사항에서 그런 약제가 나온 것은 당연하였겠다.

 

그때의 집 가옥은 나무 판자로 만든 집이라 방안의 기온이 추운 겨울의 차가움이 견디기 힘들어 생긴 감기, 기침이었다. 즉 바깥과 방 안의 기온 차가 너무 심하여 이런 상태로 자란 사람의 체온, 체질이 정상으로 가겠는가?

 

그런 고생을 하면서 자랐으니 청년 시절에도 겨울 추위에 콜록하는 기침은 피하지 못하여, 특별히 남들 앞에 나섰을 때 이런 콜록 거림은 피하고 싶도록 건강하기를 언제나 바라고 자라 왔었다.

 

***   ***

 

1982 11월 뉴질랜드로 떠난 이민의 삶이 되어 한국의 고향과 뉴질랜드의 계절 기온은 상이하게 달라 이것에 적응하느라 아마도 나의 체질이 달라지면서,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해마다 가을의 찬 바람에 기침하던 그 체질이 바뀌어 언제부터인가 바뀌는 계절이 왔음에도 기침하던 그 습관이 사라졌었다.

 

한 가지 아직 바뀌지 않은 것이 있으니, 아직도 나는 계절의 이른 시작부터 늦게까지 속 내의()을 입고 있도록 몸의 따스함을 좋아 한다.

 

벌써 오래도록 30-40년이 지나, 나에게 겪었던 그런 기침의 콜록거림은 없다고 본다. 

 

이런 변화를 확실히 알도록 나의 체질도 내 삶의 바뀐 변화에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위 세 가지 달라진 변화에 결론으로 요약하니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 했던가 누가 그렇게 말 하였다”.

 

어려서 가졌던 성격, 체질, 식성이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것을 밝힌다.

 

이렇게 대부분 좋은 면으로 바뀌어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님께 항상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