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034 漢詩 時調 近代詩 를 읊으며 순서의 소회를 쓰다

淸山에 2025. 9. 4. 12:31
 

 

 

         

“다시 꺼낸 암송 漢詩 時調 近代詩” 를 시작하고 암송 수가 모두 제법 늘었다.

한시漢詩 34 , 시조時調 14 , 근대시近代詩 10, 이렇게 나왔고 예전에 암송하였으나 재 암송에  들지 않던 漢詩 18,  時調 6 , 近代詩 7, 가 각각 남아,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지금까지 다시 꺼낸 암송 모두 58수가 되어 이들을 순서에 따라 조용히 눈감고 되풀이 암송을 하다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글귀에 막히기도 하였고, 또 다음 순서의 한시 제목이 떠 오르지 않아 답답한 애를 태우기도 하였으니 그 행복한 고민을 여러 번 되풀이 하던 중,  오늘 아침 시간에 내가 암송한 모든 것의 제목을 이야기 글로 적어 놓으면 앞으로 더 늘어 날 모든 한시, 시조, 근대시에 효과적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란 생각에 이 글의 의미가 담긴 서두의 글을 적어 놓는다.  어느 면에서는 나의 자랑 늘어 놓는 것 같아 부끄러움이 앞섰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암송의 의미를 더 발전 도약시키기 위해서 결정한 뜻으로 보이기를, 그어떠한 비평 불평의 글이 오더라도 잘 감당하겠기에 이와 같은 소회의 글이 되었다.

 

내가 자란 1950년대는 3년 이상의 한국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에 먹을 식량마저 부족한터 국가와 사회 전반이 극도로 어려움을 겪을 시절이라 그나마 가족으로 세 분의 형님과 세 분의 누님이 있어 형제누나의 보살핌 사랑이 넘쳤고, 또 엄하고 부드러운 부모님을 항상 뵙기에 행복한 시절이지 않았겠는가?

 

하물며 부모님은 생활전선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 밖에서 지내니 자연히 위의 형님과 누님이 함께하는 나의 자람에  삶의 영향이 깊게 자리 하였다.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위 누님이 평소 부르는 동요, 가곡이 내 귀에 솔솔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당시의 우리 시집詩集 책은 출판 형식이 매우 열악하여도 작은 크기에 인쇄된 책을 누님이 애용하느라 옆에서 쉽게 들여다 보는 짬을 가지며 자랐다.

 

***   ***

 

詩集에 쓰여진 글이 머리에 남기보다는 누님이 흥얼흥얼 불렀던 동요 혹은 가곡이 머릿속 기억에 잘 자리하였으니 이 감성은 나의 자라는 어린 시절 마음에 파문이 될 줄이야 당시는 아무 것도 모른채 잡혔던 것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들어 갔으니 잘 들리지 않던 나의 귀 청력 부족에도 학교 생활은 꼭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알고 잘 따랐으며, 전체적 중간 정도의 학업 실력으로  국민학교 교과서에 한자 병음으로 나온 책을 봐야 했으며, 어느 학년에서는 이순신 충무공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려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거진다” 라는 글이 나왔다. 외워보라(암송)는 담임선생님의 지적에 꽤나 고생했던 추억도 있게 자라 당시는 다 외우지 못하고 대강의 글귀만 어리에 남아 자랐었다.

 

또 어느 날 누님이 詩集을 읽다가 누님의 친구 오빠가 글을 지었다는 ”모란이 피기까지”를 알려 줘 그 이름 김영랑을 기억하며 그는 6.25전쟁 중 폭격사망 된 시인으로 들었다. 결국 이 싯귀절은 지금도 다 외우지 못했지만서도.

 

한편 더 자란 나의 중학교 시절의 우리 가곡은 대부분을 부르며 자랐으니, 이 음률의 멜로디가 그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지금도 당시의 잘 알려진 그 가곡을 사랑하여 수시로 부른다.

 

가정 형편으로 고교 1학년에 자진 자퇴를 하여 형님의 건어물 도소매상에 매달려 가장 예민할 시절, 시장 바닥에 묶혀야 했던 환경을 외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어느 날 서울로 떠난 친구 이강직이가 보낸 편지 글 읽으며 언젠가 해후할 일이 있겠지라는 막연함에 세월의 시간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 위 누님이 계신 것을 이유로 며칠 간의 서울 방문 기회를 형수님께 털어 놓아 서울행이 있었으니 이것이 나의 삶을 변화 시킬 줄은 몰랐었다.


***   ***

 

서울 도착 다음 날 막연히 편지 주소만 가지고 한강 다리 넘어 흑성동의 동네를 헤매며 찾았으나 자리에 없던 그에게 작은 쪽지 글 하나 남기고 북아현동 누님 집에 돌아 왔는데, 바로 그날 저녁 그가 찾아 온 것으로 반가움이 얼마나 넘쳤겠는가? 옆에서 우리들의 이야기 듣고 있던 누님이 강직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알고 사정을 물어 들어 보니 누님의 생각에 나에게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학교 진학이 되지 않을까 실마리를 털어 놓아 그 다음 날 친구 아버님을 만나 학교 편입 사정의 부탁을 드렸으니, 그 답변도 쉽게 곧바로 가능성을 알려 줘 고교2학년에 편입 방법을 얻었는거라. 나는 대전의 형님 형수님께 이 말을 알려 줄 방법이 여의치 않아 형수님께만 전후사정을 말 해 주고 그 이틀 후 나의 예전 마지막 학교 가방과 당시 입던 교복을 꺼내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나의 서울 학창 진학을 전송하기 위해 이른 새벽 대전역까지 여러 밑반찬(간장,고추장 포함)챙겨 들고 나의 상경 모습을 지켜 주었다. 지금도 그 광경이 새롭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몇 년을 시장에서 머무느라 늦어진 학업의 고교 2학년, 11월은 이듬 해 대학 진학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대입 공부로 돌입하였다. 미아리 너머에 위치한 고교 서라벌 예술 고등학교 야간 2학년도 얼마 후 겨울 방학이 되었으며 3학년의 졸업반은 대입준비로 몇 몇 친구에게만 있었고 대부분의 교우는 직장 생활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였다. 낮 시간의 오전 나는 종로에 위치한 “종로학원”에 몇 시간의 영어, 수학, 국어를 신청하여 여러 재수생과 함께하였다. 어느 날 국어 시간의 모 선생님이 “김소월의 진달래 꽃”을 가르치는데 한 손에 마이크 집고 한 손에 분필을 쥐어 이 싯귀절을 입에서 아우르는 그 모습에 나는 뽕 했던거라. 어떻게 그 긴 싯귀절을 읊어 낼 수 있을까? 너무나 멋 있던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싯귀절을 암송한다는 것에 “나도 저런 시간이 오겠지” 다짐하며 우여곡절 끝에 겨우 경희대학교에 입학하였으니 당시의 나에 학창 시절은 푸른 꿈이 넘치는 자유의 세상에 날개 달아 청년 시절은 세월을 뛰어 넘듯이 먼 이국 뉴질랜드에 이주하는 삶으로 거둡나 어느덧 중년의 불혹도 훌쩍 넘고 지천명의 50줄이 되었을 때 잘 나가던 나의 사업을 다 접게 되었다. 고국 서울의 머물음 긴 세월도 맞았다. 운 좋게 익혔던 컴퓨터 활용 기회를 가져 나름의 활동 공간으로 내가 지은 글 모을 기회도 생겨 좋아한 클래식 음악도 3900여 곡 이상을 무료로 컴퓨터에 저장하여 듣고 싶을 때 찾아 감상하였으니, 좋아 할 문학 장르에 서서히 다가갈 기회가 많아 즐겨 듣고 부르는 가곡 등의 클래식 선율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풍부하게 식혀주는 감성의 토양이 되었다.

 

***   ***

 

이때부터 서서히 우리의 근대시 암송이 늘어 어느 때 나는 사행시 짓는 클럽 모임방에 들어가 얼굴도 모르는 모임방 규정에 따라 각자의 사행시를 지어 발표하는 나날에 나의 컴퓨터 지식으로 이들의 발표된 모든 사행시 글을 모아 저장하여 훗날 나의 블로그에 모두 올려 놓았다. 이런 즐거운 시간도 지나자 야후의 모임방 웹사이트가 문닫는 공고에 옮겨진 파란싸이트 모임방에서 또 몇 개월 머물더만 이마저도 결국 폐쇄 방침에 지난 몇 년의 세월이 참으로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돌아 온 뉴질랜드의 삶 시간속에서 다음의 Blog에 “청산에 살으리라”의 블로그(https://gasiriitgo.tistory.com/)를 개설하여 나의 글과 사생시 혹은 관심사 모음을 올려 전체 글 15,047 개가 남겨진 제법 그 규모의 블로그 운영을 하였다. 며칠 전 어느 날 다음 웹 사이트에는 이 블로그도 폐쇄 조치(9 30) 공고가 나와 Tistory 싸이트에 옮기고 싶으면 신청을 하라는 공고문안에 따라 신청하였다. 그러자 그 다음 날 이 모든 자료가 옮겨진 티스토리에 지금 나의 글이 옮겨  있다.

 

아직 새 글 넣는 방법 기능은 없으며 어느 글에 댓글 넣는 기능만 살아 있다. 좀 아쉽지만 이것에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이 창에 평균 매일 60-100여 명의 방문 기록이 나온다. 그간의 전체 방문자가 544,800명이 함께 뜬다.

 

본론에 들어가기까지 나의 성장 과정에  내가 한시, 시조, 근대시 등에 가까워 진 이유를 알리려는 오늘의 이 서두가 너무 길게 되었구나.

 

이 글이 되어지는 시간 나의 귓전에 울린 연속 음악 음율은 지어지는 글 감정에 날개가 붙어 훠어훨 날아가며 아직 막힘이 없이 지나온 흔적이 적혀진다.

 

***   ***

 

지난 2018년 이후 암송한 글이 60여 수 있었다. 이때까지 수시로 읊어내는 암송이 재미가 붙었는데 새 봄 맞는 텃밭 관리로 들어서 이 과정을 건너 띄게 된 몇 개월 흐르자 대부분의 암송 글이 기억에서 잊혀지게 되었다. 매우 아쉬웠지만 다시 시작하면 잘 되리라 생각한 시간이 너무 길었는지, 그 어느 날 큰 마음 잡고 2022년 초입 “다시 꺼낸 암송 한시, 시조, 근대시”에 불을 지폈다. 처음은 아직 접하지 않던 한시를 선택하여 암송하였는데 5번째 한시부터는 이전에 암송했던 한시를 다시 올리자는 계획에따라 가장 마음에 닿는 글부터 끌어 왔다.

 

그러다 그 순서의 섞임에 어느 때부터는 예전의 순서에 맞쳐 익히자는 계획이 더 나은 것으로 지금까지 이어 와 있다.  순서 넣기 설명 ① ② ③ ④ ⑤ 을 넣고 다음의 이 모습이 지금 내가 다시 읊어 암송하는 순서이며 그 뒤의 숫자가 나오면 이것은 예전 첫 암송 때의 순서 매김임을 설명한다. 아울러 이 순서의 앞, 뒤 있어도 그 글이 우수하거나 좋다는 순위가 아니다. 오로지 나의 느낌이 닿는 순서일 뿐이다. 지금은 이들 모두가 나에게 마음 깊이 자리하여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런 싯귀가 되었다.

 

***   ***   漢詩   ***   ***



1.       -61 王之渙登鸛雀樓  欲窮千里目 이 있었으니 나도 멀리 내려다 보고 싶은 글이었다.

2.      -62 李商隱夜雨寄北君問歸期未有期가 있으니 약속이 어느 때 될지 약속의 그 날을 가늠한다

3.      -63 長卿逢雪宿芙蓉山柴門聞犬吠(삽작문 앞에 개가 짖네) 詩語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4.      -64 시선 李白이 황학루 미련이 커 지은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碧空盡,天際流 의 시어가 놀랍다.

5.      -42 崔顥黃鶴樓 이 한시로 그 이름이 크게 올랐으니 白雲千載空悠悠 긴 세월 흰구름이 머물더라.

6.      -22 고려의 鄭知常 送人  雨歇長堤草色多 고려의 7언 율시 최고의 한시라 칭하네 그려.

7.      -23 王維送元二使安西(渭城曲)이라 勸君盡一杯酒 친구여 한잔 더하게 권하는 이 글은 멋죠 

8.      -08 杜甫 시성의 春望 5언율시 모두가 아름다워 國破山河在 나라가 망하여도 산하는 남으니

9.      -41 于武陵勸酒에서 花發多風雨 人生足別離 은 인생의 참 맛을 알게 하더라.

10.    -65 長卿餘干鄰家漁未歸인가어미귀 등 시어는 유장경 특유의 감각이 있다.

11.     -28 申欽의 不賣香 혹은 恒藏曲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인생의 큰 교훈을 주는 글이라

12.    -59 杜牧金谷園落花猶似墜樓人 마지막 에 꽃 날리듯 날린 여인의 한이 서렸다.

13.    -60 劉長卿新年作을 올려 3번째의 암송 天畔獨潸然 已似長沙傅 기억이 길게 남는다.

14.    -58 충무공 李舜臣閑山島夜吟憂心輾轉夜 위태로운 조선의 왜 침략에 밤 잠 설쳤네

15.    -66 이순신의 閑山島歌는 한삼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읊었던 어린 추억 깃든다

16.    -67 薛濤 여류시인의 춘망사 4수 중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꽃 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의 가곡에

17.    -57 錢起-谷口書齋 寄楊補闕 閒鷺棲常早 한가한 백로는 항상 일찍 보금자리에 들었구나

18.    -34 張繼-楓橋夜泊 江楓漁火對愁眠 은 서러운 근심으로 고깃배 불 빛에 잠 못이뤄라 

19.    -68 다시 王維鹿柴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사람 보이지 않는 빈산에 사람 소리는 들리네

     -33 李穡-浮碧樓 정지상과 함께 고려의 가장 뽑히는 한시 城空月一片 옛 영화를 그리워하네

 

-xx 賈島-題李凝幽居 僧敲月下門 구절은 유명한 퇴고의 뜻을 만들었다

  -21 賈島-尋隱者不遇 송하문동자 언사채약거 지재차산중 운심부지처 : 전후 맥락에 뽕한다.

-20 李白-山中問答 笑而不答心自閒 웃으며 답 없으나 마음은 여유롭다

-17 翁禪師-靑山兮要我 청산은 나를 불러 말 없이 살라하고, 아 하 티 없이도 살라하네

-24 陶淵明-飮酒 第五首 心遠地自偏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여덜 구 모두 멋진 글이다.

-25 蘇軾-臨江仙 夜歸臨皋유명한 싯글에서 長恨此身非我有 내 몸이 내 것 아니란것에 오래 한

-26 常建-題破山寺後禪院 潭影空人心 나의 빈 마음이 못 그림자에 담겨, 와 닿는다.

-27 鄭知常-送人 2에 이별의 친구에 南浦春波綠 君休負後期 잊지 말게나 남포의 봄춘에

-29 杜甫 絶句 -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 산 푸르러 꽃은 불타듯 붉거웁다. 대단하구나

-30 常建 宿王昌齡隱居 전 여덞 구절이 멋지다. 松際微月 달 밝음이 살짝 소나무 끝에 올라

-31 孟浩然 春曉 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간밤 풍우 소리 들려, 꽃이 얼마나 떨어졌을까?

-32 孟浩然 初秋階下叢莎有露光 섬돌 아래 풀섶 위에 맺힌 반짝이는 이슬이라!

-35  陸游 柳橋晩眺-小浦聞魚躍 橫林待鶴歸 閑雲不成雨 故傍碧山飛 육유의 멋진 글이 많다

-36 太上隱者 答人-偶來松樹下 高枕石頭眠 山中無日曆 寒盡不知年 이런 글도 있는 것으로

-37 王維  竹里館-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왕유의 글이 이렇게 짧으며 

 

 

 

***   ***   時調   ***   ***

 

時調 01 ~ 10

1.     이화에 월백(月白)하고 - 이조년李兆年  1269-1343

2.    하여가 (何如歌) - 이방원李芳遠  1367-1422

3.   단심가 (丹心歌) - 정몽주鄭夢周  1337-1392

4.    오백년 도읍지를 - 길 재吉再  1353-1419

5.    천만리 머나먼 길에 - 왕방연王邦衍  생년몰 미상

6.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 이황李滉  1502-1571

7.    동짓달 기나긴 밤을 - 황진이黃眞伊  1506-1567

8.    청산리 벽계수야 - 황진이黃眞伊  1506-1567

9.    태산이 높다하되 - 양사언楊士彦  1517-1584

10.  청초 우거진 골에 - 임 제林悌  1549-1587

 

時調 11 ~ 20

11.           백두산석마도진北征歌-남이南怡 1441-1468

12.          철령 높은 봉에이항복李恒福  1556-1618

13.           한산섬 달 밝은 밤에-李舜臣 1545-1598

14.           가노라 삼각산아-김상헌金尙憲  1570-1652

15.              동창이 밝았느냐-남구만 南九萬 1629-1711

 

***   ***   近代詩   ***   ***

 

近代詩 01 ~ 10

1.     진달래 꽃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2.     광야 曠野 이육사 李陸 1904-1944

3.     나그네 박목월 朴木月 1916-1979

4.     사랑 한용운 韓龍雲 1879-1944

5.     깃발 유치환 致環 1908-1967

6.     초혼 招魂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7.     The Lords Prayer

8.     귀천 歸天 천상병 千祥炳 1930-1993

9.     바위 유치환 致環 1908-1967

10.   승무 僧舞 조지훈 趙芝薰 1920-1968

 

近代詩 11 ~ 20

11.            국화옆에서 - 서정주徐廷柱  1915-2000

12.            김수영金洙暎  1921-1968

13.           서시(序詩) - 윤동주尹東柱  1917-1945

14.           님의 침묵 한용운韓龍雲  1879-1944

15.           Back to Heaven 歸天 천상병千祥炳  1930-1993

16.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李相和  1901-1943

17.           지혜로운 이의 삶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1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