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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긴 세월의 삶이 지나면서
초등 시절의 친구들을 자주 접할 기회가 없었듯이 각각의 거처가 이곳 저곳 멀었었는데
특히나 나는 고향 땅 멀리 타국의 뉴질랜드에 거처가 되니
불알 친구라는 코 흘리개 시절의 대략 6년간은 우리들 삶의 기등 뿌리 같이 추억의 기본으로 남았겠다.
그래도 어찌 연줄이 닿아
대략의 이름 자 알고 옛 모습 기억되는 벗들은 몇 번이라도 얼굴을 맞 될 기회가 있어
우리들의 각각 힘든 삶 속에서 옛 추억 꺼내 볼 때 울적한 마음의 기분을 전환할 시간이 되어 좋았다.
이번에 삶을 마감한 벗 문범이는 나의 옛 시절 집에 가까워
동네 친구의 가깝던 흔적이 있었으니 세월 흘러 고향 땅 떠나 있던 서울의 학창 시절에
그의 대학 교정을 찾아 차후에 다가 올 우리들의 소망 몇 가지 이야기 나눌 뿐 어찌 어찌 각기 멀리 떨어졌었네.
이십 몇 년 전 그들 부부 뉴질랜드 관광차 온 시간 틈에 잠시 볼 기회에서
나의 서울 머물음 2003-2007년 사이 몇 번의 모임에 여러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으니
친구들과의 인연은 언제나 만날 기회가 힘들었었다.
허허!
세월의 무상함이여!
*** ***
어릴 때 그가 들려 주던 그 가족 이야기에
문범이 큰 형님이 6.25 한국 전쟁에 참여 시
M-1소총이었나 카빈이었나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총을 잘 쏘는 명중 사격수라
오십 보였는지 백 보 거리 넘어에 숟가락을 꼽아 놓고 사격하여 명중의 솜씨를 발휘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귀에 선하네 그려.
하물며 그의 쌍둥이 형제 중의 한 분이 대흥동 근처에
신사복 옷 맞춤의 기술이 있어 우리 집안에 미군 군 예복 한 벌이 어찌 있어 나의 품에 맞는 옷 수선을 부탁하여 입었던 기억도 뚜렷히 올라 와 우리들의 옛 흔적 추억은 이렇 때 써 먹으라고 생겼는가 싶구나.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 품에서 낳아 길러져
성인의 세월이 또 한 몫의 가족으로 살게 되더니
또 다른 시간의 세월 속에서 이렇게 한 명 한 명 친구 누구는 떠난다.
작년이었던가 친구 이규열이도 떠났고
이 친구는 우리들 학급 교실 앞 뒷 자리에 앉아 대강의 모습은 그때의 흔적뿐이었지만.
그 어린 동생을 교실에 데려 와 책상 아래에 가만히 앉게 했던 기억이 뜨는구나.
당시에 아무도 말 못할 사연이 있었기에 그렇겠다는 의미는 다 커서 이해했지만 당시에는 그냥 놀리는 말 베틈에 차후에는 미안해 했었다.
*** ***
뒤 늦게 옛 한시를 들여다 보니
우무릉의 권주라고 한 시에 이런 글 생각 난다.
勸酒 - 于武陵
勸君金屈卮(권군금굴치)
滿酌不須辭(만작불수사)
花發多風雨(화발다풍우)
人生足別離(인생족별리)
친구여 금잔을 받아 들게
가득채웠으니 다 마시야 하겠지
꽃 피는 시절에는 비 바람이 잦다는데
인생에 또 이별도 많다구나.
몇 몇 한시를 암송하게 되어
오늘 이 글이 떠 올랐다.
우리들의 삶 속에 좋은 날에는 분명 슬픔도 있을 것이고
또 인생의 삶은 언제나 이별의 순간이 자주 있는 것은 자연의 일이라고.
멀리 고국에 남아 있는 벗들아!
남은 삶의 시간에 언제나 평안이 가득한 유익한 시간이기를 바란다.
친구 벗에 명복을 빈다!
2022년 8월 9일 뉴질랜드에서
벗 창균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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