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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장기 게임 관전할 수 있는 유튜브를 찾았다.
자칭 장기 고수가 전국 각 지역을 다니며 게임하는 프로를 올렸으니 관심의 흥미가 끌렸다.
나는 어려서 자랄 때 장기를 자주 접하며 친구들과 시간 지나는 것 모르도록 열중했다.
중학교 때까지 동네방네 지나면서 장기 두는 모습 보이면 구경도 수없이 했지.
동급 친구들과 장기 두면 승勝의 확률이 더 높았다.
이 이후는 자주 들 기회 없었는데 시장에서 형님 가게 돕는 일에 들어서자 몇 차례의 장기 접할 기회가 있었고 대학 때 친구들과 가끔 장기를 둔 정도의 기회만 있을 때 고향 어려서 동네에 살던 박현 형님의 거처를 알고 찾았다.
(참고 - 01 부모님의 인연과 7남매 틈에서 막내로 태어남 & 04 군 입대에 30개월 복무)
아주 어려서 헤어졌으니 대학 시절 그 형님이 매우 궁금했었다.
그의 아버님이 판사였기에 누님으로부터 듣기로 그분은 이제 은퇴하여 변호사로 지낸다 했다.
당시의 서울 전화부 책을 공중전화에서 찾아 그의 아버지 성함 “박철”을 찾아보니 어렵지 않게 주소와 전화번호가 나왔다. 하여 그 번호로 전화를 거니 마침 박현 형이 전화를 받고 반가운 대화를 하고는 바로 그의 효자동 집에 찾아 가 만났다. 형은 군 제대하고 고려대 농학과에 복교하였었다.
방에서 보이는 장기가 있어 함께 장기 게임을 하게 되었다.
마침 그의 동생도 옆에서 관전하며 형님이 군 복무할 때 부대의 우승자로 뽑혔던 전력이 있다고 자랑의 말을 한다. 그런 전력이 있는 형하고 내가 게임이 될 것인가 의심스럽게 게임은 진행되었는데
너무 얕보는 마음에서 인지 나는 어렵지 않게 첫 게임에 절대적으로 이겼다.
깜짝 놀란 박현 형도 긴장으로 2번째 게임에 들었다.
그의 동생도 처음의 생각에서 더 흥미가 집중되며 관전하게 되었고.
두 번째 게임도 나는 어렵지 않게 승리하였다. 세 번째도 나는 어렵지 않게 그의 장기 수를 이겼다.
대학교 졸업 후 72년도 5월 군에 입대하여
동두천 미 2사단 자대 배치가 되니 근무 시간 이후의 자유 시간이 많아 휴게실에서 장기 둘 기회는 많았다. 어느 날 휴게소에 장기 대회를 열었다. 즉 그 부대에 내노라하는 장기 고수가 다 참여하는 대회에 나는 최 우승자로 선정되어 상품을 받는 일이 있었다. 이런 나름대로의 장기에 고수라 나도 자칭하게 되었던 거라.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교회에서 가까운 교우들과 장기를 둘 기회가 있어 교회에서의 전적도 결코 빛바래지 않으니 장기의 수 싸움에 여러 후속 수단을 바라보는 것에 머리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비숫한 머리 쓰는 바둑에는 왜 약하지? 어려서 바둑 둘 주위 기회가 거의 없게 자라 그런 영향을 이해 한다.
2021년 06월 12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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