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019 한시를 익힐 때 생각나는 아버님

淸山에 2025. 9. 3. 09:19

 

 

2020 08 08일 토요일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나의 한시 암송과 한자 쓰는 체득은 주로 밤 시간 잠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따스한 침대 속에서 핸드폰 열어 검색으로 찾은 멋진 한시들이 지금까지 내가 암송한 46수의 한시와 우리 시 중에 30수의 시를 누워 잠자리에서 끄적끄적 읽어가며 배웠고, 또 기억이 잘 되는 시간은 그간의 체험을 통하여 새벽의 머릿속이 최상이었다.

 

오늘도 그런 일상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문득 오래전의 아버님 생각이 떠올랐다.

 

거의 초등 어린 시절에 스친 아버지의 모습에 한 여름밤 방학 때였다.

놀기 좋아한 나는 한밤중임에도 동네 친구들과 가까운 문창국민학교 교정이 놀이터로 숨바꼭질을 하면 교정의 큰 나무 위에 올라 숨어 지냈던 적이 있었다. 

 

위에서 내려볼 때 간간히 흘러 보이는 근처 집 조명으로 혹은 밝은 달빛으로 찾아다니는 친구들 모습을 내려 보며 들키지 않으려 조마조마하게 숨었던 일들이.. 

 

그리고 끝나 헤어질 즈음 한쪽에선 아버님이 친구들과 모여 흥겹게 노는데 시조 가락 노래하는 분도 계셔 이런 모습은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때의 영창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말라~~~”음의 고저는 궁상각치우 5음계로 불렀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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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한쪽 담 쪽에 집을 지었다. 집안 목수로 계신 분이 맡아 기초 주축대부터 검정 색칠하면서 기등 올라가고 벽이 생겨 방구들 놓아 시멘트로 고루게 방바닥 만들어 지붕 기와으니 얹어 쓸모 있는 집이 되었다. 

 

앞쪽에 가게를 또 만들었으니 구멍가게라 불렸을 때다. 아버님의 주 일거리였고 나는 가끔 아버님 출타 중일 때 돌보는 것이라. 

 

그러면 동네 어른들 외상 술 달라 찾아오는데 외상장부 들쳐 보면 오래전에 가져간 금액 갚지 않은 일 예사였다. 장부철 옆에 보면 시멘트 봉투 종이 조각이 손바닥만 한데 당시에는 물자 귀할 때라 뭐라 한자로 써 놓은 것이 한 모금 모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고 보니 아마도 좋은 옛 한문 글귀 어디서 구했는지 적어 놓고 틈틈이 읽어 보더라. 

 

동네 어귀에 텃밭을 얻어 농사 지을 때면 혼자 하시기 벅차 나를 종종 불렀다. 

 

삽으로 흙을 파 올려 쇠스랑으로 흙을 부셔 고르게 만들고 또 고랑을 쳐 계절에 맞는 씨앗(고추, 상추, 깻잎) 뿌리고, 또 쪼갠 감자 재 묻혀 심어, 물 부족하면 집에서 펌프질에 물을 고랑으로 끌어 마지막 밭에서는 바가지로 퍼 뿌려 주던 일들, 한여름 뙤약볕에서 아버님은 목 말라 막걸리 사 오라 심부름 다녀올 때 나도 주전자 주둥이에 입대고 한 모금 들이켰는데 붉어진 얼굴에 살짝 숨어 집에서 잠자던 추억들이 되새겨 나온다.

 

아버지의 말은 엄하게 알고 살았던 내가 조금 컸다고 아버지에 크게 말대꾸 하고 싸웠던 일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불효에 세상 물정 모를 철부지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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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휴가 시절 잠시 집에 들렀다가 귀대 길에 아버님은 함께 가자고 충남도립병원(대흥동 소재)을 들러 알려주고 나는 귀대하였는데 추후 여기의 결과가 위암이란 진단을 나중에 알았다. 지금이야 위암도 조기 수술로 건재할 수 있지만, 당시는 위암 판정이면 손쓸 의학 기술이 없을 때라 그냥 체념으로 우울하기만 하였다.

 

”나는 아버님을 닮았다”고 형님 누님 친척들에게서 종종 들은 말이 있도록 그리고 대구 형님과도 가장 많이 닮았다고 들었다.

 

지금 생각하여보건대 나의 성품 성격도 또 취미도 아버님 닮았다 싶다.

아버님도 종종 좋은 한시 구절 입에 달고 가까이에 두고 살았음을 엿볼 수 있었듯이, 내가 지금 하는 한시에 푹 빠져 흥겨웁듯 즐기는 오늘 아침에 나는 예전의 아버님이 떠 올랐다.

 

그리고 아버님게 여쭈어본다.

登山鳥萊羹 海魚草餠”

등산조래미 임해어초병

“산에 오르니 새가 쑥국 쑥국 울어대고

바다에 가니 물고기는 풀떡 풀떡 뛰어오른다”

“너도 이 글 읽고 웃었구나” 하며 나에게 되묻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나는 지금 아버님이 거쳤던(당시는 물자 정보 귀했을 때라 이런 한시 글도 접하기 어려웠겠지)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한시 익히기에 정진한다.

 

아울러 족보를 찾아 보니 아버지는 세 형제 이름자로 

熙泰(빛날 희, 클 태), 熙動(빛날 희, 어른 동), 熙性(빛날 희, 성풍 성)이었고

熙泰 큰 아버지의 양자로 작은 형(일산 형) 星均이 올려진 것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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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윗대 할아버지 성함 자를 차례로

조부    廷植  조정 정, 심을 식

증조    濟輔  건널 제,  도을 보

고조    光鎭  빛 광, 진입할 진

5대조   載五  실을 재, 다섯 오

 

이렇게 한시 공부에 또 할아버지의 이름자 올려진 족보도 들쳐 보는 날이 있었다.

 

2020 07 16일 목요일 나의 조상을 회고하며

 

어제는 전날 대구 형님이 송금으로 보냈다는 금액을 구좌에서 확인 하였다.

 

남 씨 종정에서 부모님 쪽으로 할당된 종정의 배분금에서 또 형님들과 나뉘어 내 몫으로 보낸 것이다.

우선 NZ$6,200.00 송금에서 송금비용 $25.00 공제하여 $6,175.00 이 입금되었다.

 

예전에도 몇 차례 이런 혜택의 몫이 들어와 나에게는 비상금으로 사용하기에 너무 고마운 금액이다.

 

조상대대로 대전의 석교동(즉 에전에는 대전에서 떨어진 대덕군 산내면 호동리-범골) 지역이었는데

 

대전은 조선 시대에 공주목(公州牧) 직할의 일부와 회덕현, 진잠현(鎭岑縣)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성리학의 전성기에 박팽년(朴彭年),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권시(權諰), 윤휴() 등 기호학파가 활동하였던 지역이다.

 

***   ***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이 들어서면서 근대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1913년에 대전에서 분기하는 호남선 철도가 완공되면서 교통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1914년 회덕군, 진잠군과 공주군 일부를 폐합하여 대전군을 설치하고, 회덕면 읍내리(현 대덕구 읍내동)에 있던 회덕군청을 산내면 대전리(현 동구 중앙동)로 이전하였다.

 

1932년 충청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여 충청남도 행정의 중심이 되었으며, 

각종 산업시설이 들어섰다. 1935년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대전군은 대덕군으로 개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대전부를 대전시로 개칭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임시 수도로서 역할을 하였다.

 

범골은 1960년 대 무렵 대전시에 편입되고는 석교동, 호동은 대전시에서도 멀지 않은 지역으로되고

종정의 많은 땅이 조금씩 매물로 팔려 종정의 여러 사업 중 여유로 남으면 각 종친들이

항렬별로 배분된다. 조상 할아버지 덕에 베풀어지는 귀한 돈이 되어 자랑스럽게 이 돈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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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님!

고성 10秀文 할아버지 자손(나에게 어려서 어머님은 너는 경자 자손이라고 누누이 교육 시켜 이 경자 할아버지가 수자 문자 할아버지 되신다) 24세손이며, 廷植 할아버지에 은진 송씨의 할머니 슬하 3 3녀의 3남으로 1909己酉년 음력 12 5 熙性(빛날 희 성품 성)이시다.

향년 66세의 나이에 1975 10 1일 생을 마감하시었다”

 

“세종 25 4 29일 갑인 (1443) - 집현전에 숙직하던 남수문南秀文이 죽어 관곽과 쌀 등을 하사하다”

“단종실록 9, 단종 1 12 28일 경술 3번째기사 1453년 명 경태(景泰) 4년 남수문에게 고신을 돌려주다.

남형(南亨)이 상서하기를, "신의 아비 남수문(南秀文)이 고려사[前朝史]를 잘못 지어서 일찍이 고신(告身)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찬성(贊成) 권제(權踶)와 대제학(大提學) 안지(安止)는 죄가 신의 아비와 똑같은 처분을 받았는데, 

모두 다 고신을 돌려 받았사오니, 빌건대 아울러 돌려주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2020년 초는 코로나의 첫 징후가 생긴 중국 후베이성 우환부터 아비규환으로 1월에는 결국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하였다. 

 

그 여파의 3월에 Pandemic의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감염과 사망의 뉴스 보고에 뉴질랜드는 국경 봉쇄를 하고 몇 달 기간의 집 밖 나가지 못하는 조치까지 감수하였다.

 

거리는 한산하였고 주일 예배는 물론 어떤 모임도 허용하지 않아 영업의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아야 할 부도 직전의 나날이 계속될 때 집안에만 박혀 있어야 할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지루한 나날이 연속되었었다. 

***   ***

 

얼마나 지루한 시간이었던지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詩 암송을 지루한 시간대에 펼치니 여러 가지 유익함으로 감사의 시간이 되어갔다. 

 

당시까지 좋아한 시를 되새겨 보았고 이제는 점차 내용이 늘어나면서 가짓수를 세워 보니 이렇게 멋진 시간이 있었을까? 

 

큰 자부심이 발동하게 되었다. 한국 초창기의 멋진 시를 모두 올려 보았고 이제는 漢詩 쪽에도 범위가 넓어지는 시간에 돌입하니 漢詩의 뜻풀이에 제법 흥미가 돋는다. 

 

암송이니 한자 쓰기도 물론 익혀야 했고 나의 암송 시는 자연히 나의 마음속에 자리하여 암송 순서 따라 익혔던 모든 시 구절의 외침은 나의 삶의 멋진 활력으로 전진하여 나날의 코로나 방역 지침에 머무는 집안에서도 감사의 자극을 받아 생기가 새롭게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 자랑의 자부심 높았고 점차 그 어려울 漢詩의 뜻풀이도 이해가 높아지며 암송 시는 20 30 40개 하물며 60개까지 익혔다. 그 모두가 잘 알려진 漢詩 구절로 기나긴 팬데믹 기간을 잘 극복하여 정신적 수양에 큰 힘이 되었음은 이것도 감사이구나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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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진달래꽃 김소월金素月  1902-1934
02 광야(曠野) 이육사李陸史  1904-1944
03 나그네 박목월朴木月  1916-1978
04 사랑 한용운韓龍雲  1879-1944
05깃발 유치환柳致環  1908-1967
06초혼(招魂) 김소월金素月  1902-1934
07 The Lords Prayer 
08춘망(春望) - 杜甫  712-770   
09귀천(歸天) 천상병千祥炳  1930-1993
10 바위 유치환柳致環  1908-1967
11 숭무(僧舞) 조지훈趙芝薰  1920-1968
12 국화옆에서 서정주徐廷柱  1915-2000
13 김수영金洙暎  1921-1968   
14 서시(序詩) - 윤동주尹東柱  1917-1945
15 님의 沈默 - 한용운韓龍雲  1879-1944
16 Back to Heaven (歸天) 천상병千祥炳
17靑山兮要 我以無語 -懶翁禪師  1320-1376
18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1901-1943
 19 지혜로운 이의 삶 잡보장경에서
 20 山中問答 -   701-762
21 尋隱者不遇 - 가도(賈島)  779-843
22送人 - 정지상(鄭知常)  ? -1135
23送元二使安西 - 王維(왕유)  699-759
24飮酒5 - 陶淵明 도연명  365-427
  25 臨江仙 夜歸臨皐 - 蘇軾  1037-1101
26題破山寺後禪院 - 常建  708-765
27 送人2 - 鄭知常
28 賣香 - 申欽(신흠, 1566~1628)
29 江碧鳥逾白 - 杜甫絶句  712-770   
  30宿王昌齡隱居 - 상건(常建)
31 春曉 - 孟浩然  689-740
32 初秋 - 孟浩然  689-740
33浮碧樓부벽루 - 李穡이색 牧隱  1328-1396
34楓橋夜泊 - 張繼  715-779
35橋晩眺 -   1125-1210
36答人 - 太上隱者
37竹里館 - 王維  699-761
38春江花月夜 - 王錫  生卒 499-534
39 漁村夕照 - 李夢陽  1472-1530
  40次北固山下 -王灣  693-751
  41勸酒(권주) - 于武陵(우무릉)  810-
  42 黃鶴樓(황학루) - 崔顥  704-754
43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 - 陶弘景  456-536
44 사시(四時) - 陶淵明 도연명  365-427
45終南望餘雪 - 祖詠(조영, 699~762)
46 山亭夏日 -高棅
47空虛僧 & 問答 對句
  48 山居秋暝((산거추명) - 왕유(王維)
49漢江臨眺 - 王維
  50 春江花月夜 - 王錫  16구절 전문  生卒 499-534
51  山行 - 杜牧  803-852
  52 小池  - 楊萬里 (1127-1206
  53 賦得古原草送別 - 白居  772-846
  54 春有百花秋有月 - 慧開禪師  1183-1260
55   佚名 ( 질명) (王維으로 나오기도 한다)
  56 望月懷遠(망월회원) - 張九齡(장구령)  673-740
  57谷口 書齋 寄楊補闕 - 錢起  710-782
  58 閑山島夜吟 - 舜臣 1545-1598
  59 谷園 - 杜牧
  60 新年作 - 長卿

 

60여 암송 詩가 이뤄졌을 때 9월 새봄의 직전 집 마룻바닥 아래와 천장에 보온재 부착 작업이 정부의 무료 시스템에 혜택받느라 나의 손길 필요한 작업이 또 곧 이은 봄 채소 텃밭 손질로 닿으니 바쁜 나날의 시간에 계속되는 암송의 시간을 잠시 멈추어 놓았었다. 

 

채소밭의 좋고 싱싱한 채소의 밥상 올리느라 기뻐할 때 이전의 암송 드라이브 발동은 정지된 채 언제 또 시작하지 하는 사이사이 몇 개월이 또 훌쩍 지나는 2021년을 맞아도 좀처럼 암송 漢詩의 발동은 진척이 되지 않았다. “이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을 우리는 삶의 흐름에서 자주 만난다. 

 

60여 수의 漢詩 암송도 그때를 만나 이뤘고 이제 되살릴 때는 아니란 건가? 漢詩 암송의 시간을 맞으며 무척 행복했었던 그때를 생각하니 결코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확실하게 섰는데 재시도의 그날을 오늘도 손꼽아 기다린다.

 

위 글에 추가 연결 글을 넣어 이어지는 정리가 더 좋겠지만

013 컴퓨터를 익혔을 때 그리고 주량과 취미’참조하면 ‘다시 꺼낸 암송 漢詩 時調 近代詩

부분이 있어 위에 열거한 암송 한시 순서가 바뀐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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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hoto below

(Father and brother's photo, and 5th in the genealogy)

 

In the 1970s, Daegu's brother's house Bongrae -dong

       

In October 1982, just before leaving New Zealand, I went to Gyeongju and my brother -in -law

 

In the 1970s, Daegu's brother's house Bongdeok -dong

 

In 1973, in Seoul, in Seoul

 

In 1973, Parent was in sisters wedding day in Seoul, in Seoul







아래 사진

(아버지와 형님 사진, 그리고 족보에 올려진 5대조 )

The photo below

(Father and brother's photo, and 5th in the genea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