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016 늦게까지 함께한 Goody의 인연

淸山에 2025. 8. 20. 08:26
 

 

 

 

 

전생부터 이어 온 인연이려나 !

 

어제부터 주말이지만 한국에서 여기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오늘도 집에서만 머물렀다.

 

전 같았으면 잠시도 오래 있지 못하여 어데든 차를 몰고 다녔을텐데 이제 나이 탓인지 영 움직이는 힘들어진다

 

집에 굿이 (Martise Bichon Freise 중간 종 9년생) 의 털을 깎기로 했다.

털이 길게 자라 처음 온날 대충 가위로 잘라 주었다.

 

개 미용실에 가지 않고 내가 항상 해 주었는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집에서는 길게 나두어 내가 올 때마다 손질을 해 주었다.

 

이제 시간을 내어 잘 다듬기로 하고 머리부터 손질한다.

얌전히 앉아 있거나 세워서 가위질 소리 내면서 줄 곳 대화를 한다.

 

뭔 말인가 알아 듣기야 하겠냐마는 이야기 거리 하는 것 보면 뭐든지 상관 않는다. 그래도 대강의 눈치는 알아서 다음 동작의 준비도 잘하는 굿이.

 

굿이와 우리의 인연은 기이하다.

1997년 한국 IMF 경제난으로 뉴질랜드 여기도 그 여파를 타고 나의 주 사업이 접어 지면서 이후 시내의 비즈니스 상가를 팔고 시내 가까운 주택 하나를 구입하여 여기로 이사를 하였다.

 

***   ***

 

아는 교민 한 분이 우리 집을 방문하면서 개를 키워 보면 어떻겠냐 하며 굿이와 그의 살림(살림이었자 개 바구니와 이불)을 가져왔는데 이 녀석이 우리 가족 앞에서 귀여움을 떠는 것이다.

 

그는 집 밖에 키우는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굿이를 또 다른 친구로부터 건네 받아 같이 키었더니만 이 녀석이 집안으로 들어 오는 습관 때문에 영 길을 못 들이고 이참에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던 것이다.

 

넓은 뒤뜰도 있어 여기서 뛰어놀기 좋겠다 싶고 고맙다 인사하여 이날부터 우리 식구가 되었는데....

 

우리 집도 방안에 기르는 생각 못 하여 뒤뜰 창고 안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하루를 재웠다.

 

그랬더니 다음 날 웬 분이 와서는 시청에 근무하는데 이웃의 개소리 시끄럽다는 불평 제보가 와서 확인차 왔다는 것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굿이는 집 안에서 살던 개라 뒤뜰 창고에서 재우면 계속 개 신음 소리를 낼 터이니 이 개를 키우려면 불평이 오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가더라.

 

이날부터는 굿이를 차고에 집을 놓고 여기서 생활을 하되 낮에는 뒤뜰에 놓아 놀게 하였었다.

 

***   ***

 

 

응접실 안으로는 못 오게 하고 여기 규율을 만들어 방안에 기웃 되지 않게 하였다.

 

한동안 그렇게 생활하였다가 차고에서 뒤뜰로 가려면 부엌과 응접실을 통과 해야 하거나 아니면 차고 밖에서 뒤뜰로 보내던가 하는 불편이 생겨 어느 날부터는 응접실에도 허용하여 놀게 하였다.

 

마지막 마지노 선은 방안에만 못 들어가게 하고. 허나 이 놈이 귀엽게 놀다 나를 뒤 따르다 어느 사이 안방에도 슬쩍 들어와 깡총깡총 점프를 하면서 애교를 부리니 최후의 마지노 선도 스르르 무너져 이제는 온 방 안을 다 휘돌아다니고 쉬 하러 갈 때는 뒤뜰로 보내 용변을 혹은 마실을 가게 했다.

 

그렇게 하여 이후 우리 집의 온 구석을 이놈이 자리하면서 자라는데 어느 날 나의 시내 한복판 비즈니스 상가를 사신 한국 분이 우리 굿이를 보더만 자기가 원 주인을 잘 알고 이 개를 아는 교민한테 주었는데 이유인즉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니 이 개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아는 교민에게 주었던바 몇 개월 지나다 다시 나에게 온 경로가 되었다.

 

그리고 보니 비잉 돌아서 결국 나는 시내의 상가 비즈니스를 팔아 지금껏 살고 있는 주택으로 왔고 상가를 산 분은 덤으로 굿이를 나한테 넘겨준 격이 되었던 것이다.

 

***   ***

 

 

 

이렇게 인연이 맺어져 우리 집의 온 귀여움을 받는 굿이가 가끔은 전 주인으로 부터 선물도 받고 물론 그 주인을 잘 알아 본다.

 

아파트로 이사하느라 더 키울 수 없어서였지 엄청 들었다가 떼어 놓을 때 심정은 말로 표현 못 하였단다.

 

충분히 이해 가는 말이다.

우리 집에서 귀엽게 잘 자라는 것을 보고 흐뭇해하시는 그분들이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도 더 잘 자라게 하고 싶은 이심전심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 굿이는 옆의 의자에 머리를 쳐 박고 웅크리며 자고 있다.

 

***   ***

 

내 심심하다 싶으면 ""굿이"" 하고 불러 본다.

너 얘기하고 있었다는 말하면서 피싯 웃으며 잘 깎은 나의 솜씨 자랑도 할 겸 이놈의 사진을 창에 올리고 싶은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몇 장 올려 보련다.

 

혹시 궁금한 분들 위해 서둘러 사진 준비를 해야겠다.

 

기다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Attenedre c'est la vie !

 

우리도 기다리며 살아 보자.

 

2005 7 24일 일요일

 

***   ***   ***   ***

 

2010년 경일까?

년도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굿이의 나이가 15살이 넘자 귓소리 듣기도 약하여 잘 알아듣지 못하였고, 또 눈으로 보는 시력에도 한계가 나타나듯 모든 기능이 약화되었다.

 

뒤 뜰의 뛰어 놀음은 그래도 십여 년 이상의 곳곳 길이 익혀져 모든 장소의 장애물을 잘 알았음에도 어느 날 폐쇄한 수영장 가를 걸어가다 1.5m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이 사고로 여러 부분이 상했는데 나는 그 모든 상처를 깨닫지 못하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는데 밤새 아픈 신음이 커져 한밤에 응급 가축병원을 수소문하여 가까운 UNITEC 대학 안의 수의 가축병원을 찾았다.

 

거의 12시 경이라 어렵게 찾은 수의사는 자초지종을 들어 보더니 이 개의 나이와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조언을 해 주고 다음 날 낮에 가축병원을 찾아보라는 말로 진통제의 주사를 맞아 이때의 비용도 만만치 않게 지불하고 집에 돌아왔다.

 

새벽이 되도록 아퍼하는 굿이의 소리에 가족도 밤잠 설치고 아침 시간 근처의 가축병원을 찾으니..

 

그간의 상태 설명에 그 수의사도 어떤 치료에도 고통의 크니 이제 단념의 시간이 최선임을 말한다. 함께 찾은 딸내미 원희도 그 슬픈 말에 어쩌지 못하고 최종 선택을 받아 깨끗이 목욕하여 털을 잘 말린 상태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안녕의 인사를 하였으니 그 순간 그의 마지막 눈시울이 얼마나 나와 원희의 마음을 후려쳤던지이렇게 마지막의 이별을 고하고 집에 돌아와 처에게도 그 과정을 설명하였고.

 

그날의 집안은 모두가 깊은 슬픔에 잠겨 몇 날은 정말로 굿이와의 이별이 이토록 사무치는지 힘들었었다.

 

집안 모든 식구가 침울하고 집 안 분위기도 고요함으로 휩쓸어 굿이의 이별은 몇 해가 지나야 흔적이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2010년 굿이를 보내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