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나의 이야기

018 육십여 년 전의 초등 친구들과의 만남에

淸山에 2025. 9. 3. 09:13
 

2003년 고국의 머물 기회가 길어 국민학교 시절의 친구들을 서울에서 만나니 동네 친구 양주석, 김문범은 서울 학창 시절에 몇 차례 볼 기회가 있어 연락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초등 시절의 동창들 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서울 지역 동창들이 모임으로 있었는가 하면 고향 대전에도 그런 모임이 정기적으로 있었다 한다.

 

주석이는 서울 주재에 직장이 있어 서울의 누님 형님을 통하여 내가 뉴질랜드에 이민 갔던 것을 알았으니 그의 처 친구들이 그룹으로 뉴질랜드, 호주 여행 스케줄 중 오클랜드에 도착하여 그들 단체 객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하물며 전인갑이 뉴질랜드로 가족 이민을 오게 되어 또한 그를 만났으니 간간히 고국의 어렸던 초등 시절의 소식은 알게 되었다.

 

날짜는 기억에 없지만 여름 더운 계절에 서울 거주 동창 회식에 처음 만나 각각의 이름을 알고 보니 혹은 그들 각 얼굴이 낯익어 43년이 지난 당시의 기억이 흔적으로 잡힌다.

 

하물며 서울 거주 친구라고 여학생 몇 명도 참석해 였었다. 이름자는 기억에 없었어도 그 당시의 앳된 윤곽이 오버랩으로 연상되니 철부지 시절의 코흘리개들이 존댓말 없이 말문을 틔어 얘기하기가 처음에는 서먹했어도 그려! 그려! 맞장구쳐가며 즐거웠었던 시간을 가졌었다.

 

김문범, 김종식, 김주수, 양주석, 오용현, 윤대림, 이근승, 이기완, 이종근, 장택성, 한영환

11명은 모임에서 얼굴을 익혔고, 남옥현, 송재문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은 기억에 있었다.

 

그리고 처음 만남에 회원 가입을 몇 년 치 금액 일괄 지불하여 회원이 되었고, 해마다 년 회비로 100,000원씩을 납부하였다. 2005년의 뉴질랜드로 귀국했어도 누님을 통하여 납부하게 했으니 지금도 회원 자격이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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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빈 세월 흘러 2018년 한국에 갔을 때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여전히 각자의 연륜 만큼들 늙고 얼굴의 주름이 잡혔지만 반갑기 그지 없었다.

 

이때는 주석이가 서울 직장도 은퇴하여 고향 대전에 터 잡고 살기에 내가 대전에 내려갈 때를 맞아 대전 동창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대전 친구들은 이름 몇몇 들어 들어 알았지만 그때의 모임에 함께 했을 때는 각자의 사전 소개도 충분히 이뤄져 낯섧음은 없었다.

 

곽선근, 곽태영, 권오현, 김동석, 남옥현, 양주석, 박병석, 신헌영, 오흥윤, 이규열, 이영선, 이원종, 황이철, 전인갑 등이 그쪽의 멤버 14명이 있어, 당시는 그중 11명을 만났다.

 

이들은 약 58년 만의 만남이 된다. 그래도 그 옛 시절의 얼굴 윤곽이 남아 즐겁게 담소하며 술을 나눴으니 그 몇 해가 지난 지금도 또 다시의 만남을 기대하는 것이라.

 

졸업할 1960년 당시는 남녀 각 2반씩 총 4개의 반에 약 250-260명의 규모였지 않았을까?

이제 서울, 대전 합하여 약 25명가량이 정기적으로 각처에서 만나 나머지 90%의 친구들은 어디에 있는가?

 

듣자 하니 먼저 하늘나라에 간 녀석들도 있어 친구라는 명목이 아쉽기까지 하다마는 추억의 아름다움으로 그려 볼 때는 웬지 눈시울도 겹도록 그리운데 말이다.

 

지금도 대전 모임의 친구들은 카톡의 대화방을 통하여 수시로 실시간 대화의 시간이 있어 각자가 올려 주는 이야기에 어느 곳에서 지금도 숨 쉬고 있음을 안다. 하하하

 

서울의 친구들은 개별 카톡 대화가 있어 가끔 연락을 취하여 주고받으니 또한 별일들 없단다.

 

이렇게 인연의 끈은 질기고도 묘해 내가 이렇게 기록한 글같이 다른 친구들도 나름의 옛 생각 취하여 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2021 6 9일의 하루도 저물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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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은 대전 모임을 가진 날 낮 시간 모교 문창초등학교의 모습과 나의 옛 집을 

그리고 초등 친구들 모습도 함께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