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유교(柳橋)에서 내다보다(柳橋晩眺) - 육유(陸游)
小浦聞魚躍,
橫林待鶴歸.
閒雲不成雨,
故傍碧山飛.
소포문어약
횡림대학귀
간운불성우
고방벽산비
작은 물가에서 고기 뛰노는 소리 들리고,
가로누운 숲에서 학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네.
한가로운 구름은 비를 내리지 못하고,
푸른 산 근처에서 흩날리누나.
시인은 이 시에서 작은 포구, 물고기, 숲, 학, 구름 등을 나열하면서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전구轉句에서 “한운불성우閑雲不成雨”라며 빈 하늘에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은 비를 뿌리지 않는다고 읊었다. 여기서 부지런하지 않으면 보람을 거둘 수 없다는 ‘한운불우閑雲不雨’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이 한운閑雲의 모습을 통해 시인은 청운靑雲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백발만 늘어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분노忿怒하거나 실의失意하기보다는 인생을 담담하게 관조觀照하고 있는 느낌을 독자에게 주고 있다.
橋: 저장성浙江省 소흥紹興 동남부에 있는 다리 이름이다.
眺: ‘바라볼 조’자로 ‘바라보다, 살피다, 두리번거리다, 빠르다’ 등의 뜻이 있다.
魚躍: 물고기가 물위로 솟구치는 모습을 뜻한다.
橫林: 길게 가로 누운 숲을 가리킨다.
閑雲: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으로 늙어가는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 한
故: ‘예 고’자로 ‘예로부터, 옛, 묵다’ 등의 뜻이 있지만 접속사接續詞로 ‘짐짓, 일부러, 고로, 그러므로’의 뜻도 있다.
傍: ‘곁 방’자로 ‘곁, 기대다, 옆, 바싹 달라붙다’ 등의 뜻이 있다.
[출처] 육유陸游의 유교만조柳橋晩眺 - 유교에서 저녁 경치를 바라보며-작성자 향림
제목에 나오는 유교(柳橋)는 장강(長江) 하류에 위치한 항주(杭州) 근처의 지명입니다. 만(晩)은 ‘저녁’이라는 뜻이고, 조(眺)는 멀리 내다보는 일입니다. 유교만조(柳橋晩眺)는 ‘저물녘 유교에서 멀리 내다보다’로 풀이합니다. 지난주 이몽양(李夢陽)의 시 「어촌석조(漁村夕照, 어촌의 저녁노을)」에서는 동정호(洞庭湖)의 저녁노을을 감상했는데, 이번 주에는 항주 근처의 저녁노을을 즐기게 되네요. 시를 통해 절경(絶景)을 즐기는 것은 여행을 가서 눈으로 직접 즐기는 것과는 또 다른 운치가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잘 떠올리면서 감상해 보세요.
육유(陸游, 1125~1210)는 남송(南宋)의 시인으로,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에 쫓겨 남쪽으로 피란한 나라의 현실을 개탄하고, 금나라에 맞서 전쟁을 벌일 것을 촉구한 주전파(主戰派)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금나라와 화해를 도모한 주화파(主和派)에 밀려 관직 생활은 불우했습니다. 나라의 불행을 한탄하고 외세에 맞서 분연히 싸울 것을 주장하는 애국시를 많이 남겨서 중국인들에게 애국시인으로 많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만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유유자적하면서 전원생활의 풍취가 담긴 작품도 썼습니다. 이 작품은 만년에 지은 시 중 하나로 서정성이 돋보이는 명작입니다. 한편, 육유는 50년 동안 무려 시를 1만여 수나 남겨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시를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첫 구절에서 포(浦)는 본래 물이 드나드는 포구를 가리키지만 여기에서는 물가를 말합니다. 소포(小浦)라고 한 것으로 보아 마을 옆을 흐르는 홍동천(洪東川) 정도의 물길을 떠올리면 어떨까 합니다. 어약(魚躍)은 물고기가 물위로 솟구치는 모습입니다. 저물녘 시인은 물가로 나와 한가로이 물고기 소리를 듣습니다.
둘째 구절에서 횡림(橫林)은 ‘길게 가로누운 숲’입니다. 해가 조금씩 저물면서 먼 숲이 윤곽선을 잃고 검은빛을 띠면서 하나로 뭉쳐진 모습이 커다란 소가 누운 것처럼 보이는 걸 상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학이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아직은 이른 저녁입니다.
셋째 구절에서 한운(閒雲)은 한가로이 떠가는 구름으로 아무 일 없이 늙어가는 시인 자신을 상징합니다. 젊은 날엔 누구나 청운(靑雲)의 꿈을 품고 세상에 크게 이름을 떨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점차 구름을 이루기도 어렵고, 설령 구름을 이룬다 하더라도 큰 비를 뿌리기는 어려움을 깨닫습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지요.
넷째 구절에서 고(故)는 접속사로 ‘그러므로, 그래서’라고 새깁니다. 방(傍)은 ‘곁, 옆, 근처’라는 뜻입니다. 멀리 푸른 산 근처 흰 구름이 걸렸다 헛되이 흘러가는 모습을 통해 시인은 자기 인생을 조금은 쓸쓸하게 돌아봅니다. 분노나 실의에 빠졌다기보다는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늙어버린 인생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느낌입니다.
이 시에서 사자성어인 ‘한운불우(閑雲不雨)’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한(閒)과 한(閑)은 서로 통용됩니다. “한가한 구름은 비를 내리지 못한다.” 즉,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보람을 거둘 수 없다”는 뜻입니다. 노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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