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 :
왜곡된 ‘오직’의 의미는 루터의 본래 메시지와 분명히 다르다. 왜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하나.
응답 :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자각이 출발선이다. 그러려면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회는 집단적 인습에 사람들이 길들여지도록 만든다. 교회에 가면 내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돌아볼 여지가 오히려 없어져 버린다. 교회는 사람들을 집단화한다. 개인을 고독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고독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거기서 출발했다.”
질의 :
루터의 저항 정신이 사회를 향할 때는 어찌 되나. 충돌과 불협화음만 만들지는 않나.
응답 :
“중세의 교회는 성직자 중심의 하이어라키(hierarchy·위계) 사회였다. 루터는 그걸 허물었다. 교회를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했다. 여기에는 어떠한 계급도 없고, 서로 하는 역할만 다를 뿐이라고 했다. 이러한 루터의 교회론은 유럽에서 민주적인 의회제도가 태동하는 모태가 됐다. 그러니 루터의 저항 정신은 우리로 하여금 ‘체제 밖의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질의 :
체제 밖의 사유, 예를 들면.
응답 :
“예수님은 당시 이스라엘 실정법에 도전하신 분이다. 유대 율법에 ‘안식일을 어긴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돼있다. 예수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체제 안의 사유가 아니었다.”
질의 :
그럼 무엇인가.
응답 :
"체제 밖의 사유였다. 가령 예수는 늦게 온 자나 일찍 온 자나 똑같이 한 달란트를 줬다. 세상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면서 ‘되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어라. 오히려 그들이 되갚을까를 염려하라’고 했다. 우리도 이 사회가 기정사실화하는 틀을 끊임없이 넘어서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사유를 가르쳐 주셨다. 기존의 틀, 체제 밖에 대한 상상 말이다. 나는 그게 하나님 나라의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말미에 가슴에 품고 사는 딱 하나의 성경 구절을 물었다. 이 원장은 갈라디아서 5장1절을 뽑았다. "내가 너희를 자유하게 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이건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이기도 하다. "이게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본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 실존적 한계, 종교적 한계까지 모두 자유롭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다. 종교의 노예, 제도의 노예, 먹고 사는 문제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안식일의 주인이지, 안식일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거기에 부활의 길이 있다고 본다.”
마침 4월16일이 부활절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과 예수의 부활은 맥이 통한다. 이 원장은 "이 시대에 종교개혁이 절실하다”며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의 부활도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의 부활도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희망이지만, 우리도 하나님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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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원장이 추천하는 책 3권
.● 『노예냐 자유냐』 (베르댜예프 지음, 늘봄)=국가와 종교, 자본, 예술, 섹스에 대한 인간의 노예성을 해부한 책. 인간이 얼마나 노예처럼 살고 있는지 비판하며, 그걸 극복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상상력’을 강조한다.
● 『역사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지음, 길) =지금까지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다. 저자는 ‘과거를 구원하지 않으면 역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과거의 무수한 실패한 자들을 소환해 구원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말한다.
● 『다석 강의』 (다석 유영모 지음, 현암사)=다석은 한글을 ‘천문(天文)’이라고 했다. ‘하늘의 글’이란 뜻이다. 그 나라의 언어로 신학을 하는 것이 맞다. 한국적으로 신학을 하고, 한국적으로 사유하려면 이 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정배 원장
1955년 서울 출생. 대광 중·고에서 기독교 정신을 배웠다. 감리교 신학대에서 변선환 선생을 사사. 스위스 바젤대에서 5년간 유학하고,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이후 김흥호 목사를 통해 다석 유영모 사상을 접했다. 감리교 신학대 교수로 20년간 일했다. 교수직을 걸고 학내 불합리한 전횡에 맞섰다가 결국 사퇴했다. 최근에는 현장아카데미를 설립해 연구와 수행을 병행하면서 ‘작은 교회 운동’을 펼치고 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단독] “믿습니까?” 물으면 “아멘!” … 이건 중세시대 박제화된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