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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의 전성시대’ 시나리오를 쓰게 되고

淸山에 2016. 2. 25. 18:23





영자의 전성시대’ 시나리오를 쓰게 되고

문갑식 선임기자 
 

입력 : 2016.02.25 15:11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42):김승옥과 김지하와 순천만의 안개밀(中)]
 
 

<上편에서 계속>

김승옥은 김현-김치수와 함께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했는데 네명의 멤버 가운데 한명이 시인 최하림이었습니다. 지난 2010년 71세로 타계한 그를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채 한달도 되지않아 시인 최하림은 세상을 떴습니다. 성공가도를 질주하던 김승옥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65년 ‘서울 1964년 겨울’로 제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고 1966년 ‘다산성’ ‘염소는 힘이 세다’를 내며 영화계와도 인연을 맺습니다. 영화화된 ‘무진기행’의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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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포스터다. 김승옥의 시나리오는 영화계에 일대 파격이었다.
 

그런 김승옥의 앞길에 가시밭이 등장하지요. 1970년 절친했던 시인 김지하가 담시 ‘오적(五敵)’으로 구속된 것입니다. 김승옥은 김지하 사건으로 붓을 꺾는데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첫 국정원장 이종찬입니다.

“한때 김지하 혹은 그를 둘러싼 그룹이 북한과 연계된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의 생각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반항에 가까웠고 결론 부분에 가서는 인간존중의 ‘자유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 것 같았다…"

이런 의견에도 불구하고 당시 중앙정보부는 김지하를 잡기위해 혈안이 됐습니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주변 사람들이 200여명에 달하자 김지하는 제발로 남산(중앙정보부 건물)으로 걸어들어가 자수했습니다. 김승옥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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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이 새벽 왜 순천만 갈대밭을 찾은 것일까.



“피해다니던 김지하가 마지막에 저를 찾아왔어요. ‘더 이상 숨어 지낼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내 소재를 대라는 당국의 요구에 고통받고 있다. 박정희가 날 죽일 작정인 것 같다. 내일 자수할 테니 네가(김승옥) 밖에서 문인들을 모아 구명운동을 해다오.”

김지하가 감옥으로 간 뒤 김승옥은 박태순-이문구 등과 함께 구명운동을 벌였는데 불똥이 자신에게 튀고 말았습니다. 역시 김승옥의 회고입니다. “결국 나에게까지 감시가 붙었다. 불안 좌절 때문에 술만 늘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술을 못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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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문학관을 나와 다시 무진교쪽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작은 다리다.
 

2005년 EBS에서 방영한 ‘지금도 마로니에는’이라는 프로그램에는 김승옥과 김지하가 나눴다는 대화가 나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극작가의 창작인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성격을 잘 보여는 것 같아 인용해보려 합니다.


지하=난(蘭)을 친다고 하냐, 그린다고 하냐?

승옥=난은 친다고 하는거잖아

지하=그럼 난 난을 치고있었냐 그리고있었냐?

승옥=난을 그리는걸 친다고 하는거지. 그리는거하고 치는거하고 결국 같은 말 아냐?

지하=며칠전에 수업시간에 쫓겨났어. 교수님이 난을 치라하길래 한번에 쭉쭉 그렸더니 공을 들이라고 하는거야. 다음번에 천천히 그렸더니 이번엔 그리지말고 치라는거야.

승옥=….

지하=소설을 계속 쓸거냐

승옥=써볼까 그래.

지하=….

승옥=왜?

지하=나는 시같은걸 써보고싶은데.

승옥=쓰지뭐.

지하=토하듯 쓸 수 있는건 시뿐이잖아. 난을 치듯이.

승옥=소설은 그리는거고.

지하=술은 퍼마시는거고.

승옥=청춘은 토해내는거고.

욱일승천하던 청년 소설가가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의 구속에 이어 정권의 압력을 느끼면서 술에 빠져가는 과정을 잘 그려낸 이가 한국의 ‘3대 구라’라는 황석영입니다. 그는 신문 연재로 인기를 끌던 ‘장길산’이 인기를 끌 무렵 김승옥과 만났습니다.

“한국일보에서 자료비를 받은 무렵이다. ‘참새방앗간’이라고 청진동 한국문학사 사무실에 들르니 술에 주린 동료 문인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여관방에서 밤새워 마시고 새벽주점을 찾아 마시고 며칠을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폭음했다.”

당시 황석영은 우이동에, 김승옥은 수유리 부근 언덕의 신흥주택가에 살았는데 귀갓길이 같다는 핑계로 며칠동안 술자리를 떠도는 ‘짝패’가 되었다고 하지요. 
  

김승옥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겨울여자'이 포스터다.
 

“하루 이틀 사흘이 넘어가면서 그는(김승옥) 점점 더 불안해졌고 헤어지거나 귀가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중에 1980년도에 김성동이보다 노골적으로 먼저 달아나려는 내 팔을 붙들고 ‘나를 두고가면 워쪄?’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헹가레를 쳤는데….”

구라꾼답게 황석영은 김성동이 술마시다 도망치기 일쑤였음을 은근히 폭로하며 김승옥에 대해서는 ‘애비없는 새끼류’라면서도 “나도 처지가 홀어미의 자식이었던지라 그의 불안의 근원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씁니다. 황석영은 김승옥보다 2살 아래였지요.

황석영은 이런 기록도 남겼습니다. “니나노집에 떼지어들어가면 그는(김승옥) 청승맞게 흘러간 유행가를 가사 삼절까지 불러젖혔다. 김지하의 탁성은 비장한데가 있고 이동순의 그것은 학구적인데 김승옥의 유행가는 남도식 애조(哀調)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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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이 최인호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어제 내린 비'의 포스터다.
 

문단의 기린아 김승옥은 이렇게 방황하다 1974년부터 아예 영화계에서 삽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70년대 대표작 ‘영자의 전성시대’ ‘어제 내린 비’ ‘겨울여자’ ‘여자들만 사는 거리’ ‘도시로 간 처녀들’의 시나리오 작업 등을 한 것입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배우 염복순이, ‘어제 내린 비’는 안인숙이. ‘겨울여자’는 장미희가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순천만 부근 김승옥 문학관에 가면 지금 50대 이상의 뇌리에 선연한 이들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있는데 꼭 한번 방문하시기를 바랍니다. <下편에 계속>

Photo by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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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