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은 화청지(華淸池)에서 무혜비가 낳은 아들 이모와 동행한 며느리 양옥환(楊玉環)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황제만이 누릴 수 있는 귀한 진상품을 며느리에게 선물로 보냈다. 하늘에 제를 올릴 때만 사용하는 진귀한 몽정차(蒙頂茶)와 공이 가장 큰 신하를 선별해 1년에 한 번만 특별히 하사하던 황실공차를 아낌없이 보내며 사랑의 메신저로 활용했다.
당나라는 차를 생산하는 지역을 크게 8구역으로 나누고 다시 64개 지역으로 세분한 후 가장 뛰어난 16곳에서 생산된 차를 황실공차로 지정했다. 처음에는 민간에서 재배하고 만든 차를 지방관리가 진상하는 민공(民贡) 형태였지만 품질의 균일화와 정해진 날짜에 일정량을 공급하기 위해 중앙정부에서 황차원(皇茶園)을 지정해 직접 재배하고 감독했다. 차를 만드는 생산설비도 나라에서 직접 건설하고 전문 인력을 투입해 황실공차를 만드는 관배(官焙)의 형태로 바뀐다. . 당 현종의 초상화(왼쪽), 현종과 양귀비가 처음 만난 화청지에 있는 양귀비의 석상. /위키피디아·이코노미조선 당나라 쇠락 이끈 양귀비
이모를 변방으로 보내고 양옥환을 도교사원의 도사(道士)로 잠시 출가시킨 현종은 도교 사원인 태진궁(太眞宮)을 황궁 안에 만들어 양옥환을 불러 밀회장소로 사용했다. 현종은 매비의 질투와 만류를 무시하고 745년 양옥환을 귀비로 책봉했다. 양귀비의 등장으로 매비의 짧은 봄날은 사라졌다. 차를 즐겨 날씬한 매비는 가고 술을 좋아하고 통통한 양귀비(楊貴妃)의 시대가 열렸다. 61세의 현종이 맞이한 양귀비는 27세였다. 현종은 양귀비를 말을 이해하는 꽃, 해어화(解語花)로 불렀다. 중국 4대 미녀 중에서 꽃도 마주치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는 수화(羞花)의 주인공이 양귀비다.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한 양귀비는 친족들로 조정을 구성했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원조인 재상 이임보(李林甫)가 죽자 양귀비의 건달 오빠 양교(楊釗)가 재상이 돼 현종으로부터 국충(國忠)이란 시호를 받아 전횡을 일삼았다. 나이 많은 현종의 눈을 피해 양귀비는 거구의 안녹산(安祿山)과 사랑놀이에 빠졌다. 변방의 절도사였지만 당나라 전체 군사력의 40% 이상을 장악한 안녹산은 사사명(史思明)과 함께 안·사의 난을 일으켜 순식간에 장안으로 쳐들어온다. 피난길에 나선 현종은 마외역(馬嵬驛)에서 근위부대와 신하들의 압박을 못 이겨 양귀비에게 자결 명령을 내렸다. 환관 고력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양귀비는 배나무에 비단 천으로 목을 매어 죽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양귀비의 죽음과 더불어 당나라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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