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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실험 날, 백두산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이규연의 미래탐사④]

淸山에 2016. 2. 20. 15:09







[이규연의 미래탐사④]

 “북 핵실험 날, 백두산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J플러스] 입력 2016.02.20 09:24 수정 2016.02.20 13:15

 

이규연 기자 사진




백두산 천지의 겨울 모습. [사진 중앙포토]


.민족의 영지, 백두산. 사화산과 휴화산, 그리고 활화산 중 백두산은 어디에 속할까요?

얼마 전까지는 휴화산이었는데, 지금은 엄연한 활화산입니다. 네다섯 개의 마그마방이 백두산 천지 밑에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학계에서는 백두산은 반드시 터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언제, 어느 정도로 폭발하느냐가 관건입니다.


‘폭발’보다는 꼭 ‘분출’이라고 써야 한다는 학자도 있더군요. 하지만 여기서는 대중적인 표현인 폭발과 분출을 섞어 쓰겠습니다.


|| 현지 취재로 본 백두산의 미래와 북 핵실험

일부 학자는 백두산이 천년(千年) 주기로 대폭발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를 두고 학계는 십년 넘게 논쟁을 벌여왔습니다. 만약, 만약에 이를 지지하면 조만간, 대폭발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논쟁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천년 주기가 아니라, 북한의 핵도발이 대폭발을 촉발할지 모른다는 주장입니다.


과연, 이런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요?

이를 가늠하기 위해 JTBC 탐사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촬영을 위해 직접 백두산을 다녀왔습니다.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네 곳입니다. 중국에서 가는 곳이 두 곳, 북한에서 두 곳입니다. 이중 저는 오르기 제일 쉽다는 ‘북파’로 갔습니다.


날씨는 영하 30도. 4륜 구동차를 타야 합니다. 폭설로 덮인 산길 30분. 가이드는 청명한 백두를 보려면 조상이 음덕을 쌓아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조상 덕을 본 걸까요? 바람은 강해도 청명한 날씨였습니다. 화산이 만들어낸 거대한 호수, 천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칼데라입니다. 대자연이 만들어놓은 ‘초대형 냄비’ 모양입니다.
 

올해 2월 초 직접 촬영한 겨울의 천지. 왼쪽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장군봉. [사진 JTBC 스포트라이트]


.2016년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있던 날, 중국 방송에 연길 일대 도로가 흔들리는 모습이 찍힙니다.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운동장도 갈라졌습니다. 과연, 백두산 천지는 어땠을까요.


천지에서 여러 가이드를 만났습니다. 다행히 천지는 평온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핵 실험이지만 백두산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 듯 했습니다.


|| “핵실험 날, 백두산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 공식 발표보다 훨씬 큰, 5.4 지진 감지돼


하지만 우연히 만난 주민에게서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이 사는 마을은 아니지만, 백두산 자락 한 마을에서 강력한 지진을 느꼈다는 겁니다.


주민이 말한 ‘그 동네’로 찾아가 봤습니다. 산봉우리가 여인의 가슴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내두산촌’이었습니다. ‘백두산 아래 첫마을’로 불리는 조용하고 작은 마을입니다. 한 집을 찾아갔습니다. 중국동포가 아닌, 한족의 집이었습니다. 노부를 모시고 사는 이 집 가장은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핵실험을 하던 그날, 누워있는데 별안간 집안 전체가 흔들렸다고 합니다. 몸이 옆으로 나뒹굴 정도였다고 합니다. 벌떡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아버지 방으로 향합니다. 아버지가 있는 방에는 큰 화분이 있었는데, 이게 크게 흔들렸다고 합니다. 그날 집 밖으로 뛰쳐나온 주민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핵실험 후, 공식 발표된 지진 규모는 분명 4.8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 주민이 느낀 지진은 분명, 4.8보다는 강했습니다. 발표된 4.8과, 백두산 마을에 전달 된 규모는 달랐던 건 아닐까요?
 
우리는 북중 접경지대에서 관측된 중국 현지의, 백두산 주변의 지진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지진 규모 5.4였습니다. 그러니 마을 주민들이 대피할 만큼 규모가 셌던 겁니다.

최근 대만에서는 지진 6.4에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지진 규모가 조금만 올라가도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좀, 수학적 얘기지만, 진도는 지수함수입니다. 4.8과 5.4는 제법 큰 차이입니다. 
 

백두산 천지 기념관에 진열된 나무표본. 고구려 멸망 때 탄생해 백두산 대폭발과 함께 죽었다.

[사진 JTBC 스포트라이트]


.천지의 북파 쪽 기념관에서 아주 흥미로운 나무표본을 발견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나무에는 엄청난 역사가 적혀 있습니다. 나이테로 말입니다.


타 있는 가장자리가 이 나무가죽은 964년이었습니다. 대폭발이 있던 시점입니다. 그리고 중심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무의 탄생 시점, 바로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이었습니다. 
 

백두산 천지 기념관에 진열된 나무 표본. 이 나무는 고구려 멸망 시기에 태어나

백두산 대폭발 때인 964년에 죽었다. [사진 JTBC 스포트라이트]


.2016년 2월 17일, 영국의 권위 있는 과학사이트(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한 논문이 실립니다.  논문이 실리자마자 1분 만에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그마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이유는 북한 핵실험과 백두산 분출의 연관성을 밝힌, 세계 최초의 연구이기 때문입니다.
 
지질전문가인 연세대 홍태경 교수의 논문입니다. 연구 내용은 이렇습니다. 백두산 아래는 마그마방이 있습니다. 여기에 마그마로 차 있을 경우, 핵실험이 마그마에 얼마나 압력을 미칠지 계산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만약 북한이 진도 7의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핵실험을 통한 지진파가 마그마를 훑고 지나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진동이 지나가다가 그 압력이 커지는 지점에 바로 120킬로파스칼, 그러니까 10톤짜리 거대한 물체가 땅바닥에 떨어질 때 받는 충격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마그마를 자극해 기포를 만들고, 그 수위는 점점 올라갑니다. 마그마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화산이 분출한다는 겁니다.
 
땅 속 마그마 사정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화산은 여러 징후로 말합니다.

저는 장백폭포 밑 온천지대를 가 봤습니다. 이곳에서는 온천수로 옥수수와 계란을 쪄서 팝니다. 온천수가 순식간에 계란 노른자까지 익혀버리더군요. 온천수 온도는 83도였습니다.
 

장백폭포 밑 온천지대의 온천수 안내판. [사진 JTBC 스포트라이트]
.중국에서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10년 온천수 온도가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백두산에 분명 변화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과연, 백두산의 미래는 어떨까요.

JTBC 이규연 탐사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