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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읽을 수 없는 名文

淸山에 2015. 5. 18. 05:53







요사이 읽을 수 없는 名文

'詩와 陶瓷'- 金相沃 散文集에서

趙甲濟  


 
  경주박물관에 있는 新羅 聖德大王神鐘은 별명이 奉德寺鐘이고 속칭은 에밀레종이다. 이 종에 새겨진 640여자의 頌詞(송사)가 있다. 그 가운데 '圓空神體'(원공신체)라는 말이 있다. 이 범종이 그냥 종이 아니라 그 형상이 둥글고 그 속이 비어 있으므로 바로 이것이 '神의 몸'이라는 뜻이다.


神의 속성을 圓空, 즉 둥글고 속이 빈 존재로 규정한 것이 참으로 의미 깊다. 원만하면서도 속이 비어 있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런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 에밀레종이고, 神의 모습이다. 神은 둥글둥글해서 누구와 싸우지 않으며 속이 텅 비어 있어 모든 것, 즉 갈등과 淸濁까지도 다 받아들여 하나의 질서로 융합한다. 에밀레종은 바로 그런 神의 소리인 것이다.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서 살다가 보니 사람에 부대껴서 성격이 모가 나고 날이 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융합시킬 수 있는 지도자는 둥글고 속이 빈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들의 얼굴에서 둥글고 속이 빈 인상을 찾을 수 있을 때 국민들의 마음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 나이 40을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殺氣 띤 인상의 소유자들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니 국민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時調 시인 金相沃 선생의 '詩와 陶瓷'라는 산문집에 鐘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名文이 요사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한자를 말살한 언어 환경 때문이다. 


 



'詩와 陶瓷'- 金相沃 散文集에서


소리는 청각(聽覺)이 아니라, 때로는 시각(視覺)으로도 능히 들을 수 있다. 일찌기 동양의 선인(先人)들은 오관(五官)이 맞트이면 빛을 듣고, 소리도 능히 볼 수 있다 했다. 그뿐인가 악성(樂聖) 베토벤은 말년에 귀가 절벽같이 먹었어도, 지휘봉(指揮棒)을 높이 들고 산발한 그 더벅머리를 마구 흔들며 마지막 은퇴(隱退) 연주를 지휘했다 한다. 그리하여, 만좌(滿座)의 청중으로 하여금 스스로 황홀(恍惚)한 경지에 몰리게 하였다니 참 묘한 일이다.


서양 사람의 종(鍾)은, 시간을 알리고 집회를 통고하는 하나의 연모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의 그것은 북과 함께 풍류를 주(奏)하는 중요한 악기다. 더구나, 신라(新羅)의 에밀레종을 보면, 그 명(銘)에 일렀으되 「圓空神體」라 했다. 즉 「둥글고 빈 것은 神의 몸」이라 풀이할지니, 차라리 종을 악기라 하기 보다 신(神)으로 보았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신을 찾고 신을 대하는 마음으로 종을 주조(鑄造)했던지라, 그 보상화문(寶相華文) 속에서 울려 나오는 전설(傳說) 같은 신비한 음색(音色). 에밀레, 에밀레― 어찌 아기의 원혼(怨魂)이 울어 그 어미를 부른다 하리. 오직 예술에 순교(殉敎)하는 신라 정신(新羅精神)을 다시 윤색(潤色)하여 불멸의 말씀으로 새겼음이니, 이 아니 묘(妙)한가.


대개, 천하(天下)를 무찌르는 자 사나이요, 그 사나이를 사로잡는 자 여자라고 하니, 묘(妙)하다. 일찌기, 남자는 총검(銃劍)과 같은 무서운 무기(武器)를 가졌지만, 아예 무기를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는 여자들. 그들은 다만 매력(魅力)이라는 무기로 능히 으악스럽기 그지없는 사나이들을 무참히도 꺾어 버린다니, 묘(妙)하다.


매력(魅力)이란 무엇인가. 그 매력이란 「魅」자의 문자 구성(文字構成)을 살펴보면 「귀신 귀(鬼)」곁에 「못할 미(未)」를 했다. 사람은 사람이되, 채 귀신(鬼神)이 못 되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면, 과연 매력 있는 여자란 귀신은 아니지만, 귀신처럼 사람을 능히 홀릴 수 있는 힘이 있으니 묘하다.


 



사나이다운 사나이는 천하를 정복하려는 장엄하고 웅장한 꿈을 가진다. 이 꿈을 정복하는 자― 여자는 되려 쬐끄만 보석(寶石) 알 하나를 얻기에 오금을 못 편다니, 그 물질과 정신의 질량적(質量的) 조응(照應)이 참으로 묘(妙)한 일이다.


보석(寶石)이란 보석도 가지가지. 비취(翡翠)·호박(琥珀)·마노(瑪瑙)·수정(水晶)과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또 그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광채의 촛점이 옮겨져 범이나 고양이의 눈알처럼 반짝이는 호안석(虎眼石), 묘안석(猫眼石)이라 일컫는 보석이 있으니, 묘(妙)하다. 사람의 눈을 현혹(眩惑)케 하는 그 광채와 색채, 이것을 정밀한 현미경으로 분석하면 그 해당(該當) 물질 속에 함유되어 있는 불순물(不純物)의 작용이라고 하니 묘하다. 포돗빛 자수정(紫水晶), 석류알 같은 루비, 싱그러운 풀잎빛 비취, 현란한 다이아의 광채, 이것이 다 그 광석에 섞인 불순물의 조화일지니, 진실로 이 천연의 조화도 묘(妙)하고 묘하다.


어찌 불순(不純)으로 하여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비단 보석(寶石)뿐이랴. 보석에 홀리는 여자의 마음 또한 보석처럼 불순할 수밖에 없으니, 묘(妙)하다. 그 묘한 불순(不純)의 미(美)로써 그가 스스로 보석에 홀리듯, 사나이의 마음의 눈도 보석(寶石)의 그것처럼 흐리게 하여, 그 생애(生涯)를 망치도록 홀릴 수 있으니, 또한 생각하면 생각사록 묘(妙)하다.


孔子 같은 성인(聖人)도 여자에게 얼마나 데었던지, 「계집과 소인(小人)은 가까이 하면 건방지고, 멀리 하면 원망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孔子를 배출한 한민족(漢民族)이 그 의사 소통(意思疏通)의 문자를 창제(創製)할 때, 계집「女」자를 곁들인 글자들을 보아, 그들의 여성관(女性觀)을 알 수 있으니 묘(妙)하다. 그 중에서 질투할 투(妬), 요망할 요(妖), 음란할 음, 간사할 간(奸) 자가 계집「女」를 끼고 있다. 그러고도 여자가 그들에게 얼마만큼 지독하게 간사(奸邪)했던가, 다시 여자 셋을 포갠 간(姦)자 하나를 더 지어 놓고, 스스로도 어처구니 없었으리니 묘하다. 그뿐인가 이 묘하다는 묘할 묘(妙)자 역시 계집「女」를 잊어버리지 않고 굳이 짝지어 주었으니, 어찌 그 더욱 묘하다 아니 하리.


孔子가 아무리 여자를 매도(罵倒)하였지만, 감히 그의 어머니를 욕하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비록 여자이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여자의 애정과는 사뭇 달라 부처님의 자비(慈悲)처럼 다시 거룩하게 떠올랐으니, 묘(妙)하다. 그러므로, 그 어미 「母」자는 계집 「女」자에 가로지른 일자획(一字劃)의 위아래로 점(點) 둘을 더한 글자다. 그러기에 어느 짓궂은 사나이는, 이 두 점을 일러 매력의 촛점인 여자의 유방(乳房)을 상징했다 하지만, 기실 영혼(靈魂)과 육신(肉身)위에 지울 수 없는 두 개의 표적(標的)이라 보아지니, 그 자형(字形)의 은유(隱喩)하는 바 묘미가 더욱 묘하다.


老子는 우주의 근원, 생명의 본존(本尊), 이름의 비롯됨을 오직 여자인 어머니에게 찾았다. 그것은 골짜기요, 그늘이요, 없는 것이요, 더구나 그것은 이름할 수 없는 것이요, 굳이 그것을 이름하여 부른다면 「어미」라고 하였으니, 묘(妙)하다. 곧, 없는 것이 없지 않고 숨은 것이요, 그 숨은 모양은 그늘이요, 그 그늘진 곳은 골짜기요, 그 골짜기를 이름해 부른다면 어미라는 것이니라 말했으니, 묘하다. 이 어미인 골짜기는, 본시 싱그러워 다시는 죽지 않는다 하여 일찌기 그의 「道經」에 「谷神不死」라 적어 놓았으니, 더더욱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