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혁명 사건 후 권력의지 살아난 박정희…대장으로 전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 [중앙일보] 입력 2015.05.22 01:46 / 수정 2015.05.22 01:49 JP 1차 외유 중 국내 정치
1963년 8월 30일 전역식에서 눈물을 닦는 박정희 의장. 왼쪽 뒤편은 박종규 경호대장. [중앙포토] 민주공화당 창당 이튿날인 1963년 2월 27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정치인, 군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정국 수습을 위한 선서식’이 서울시민회관(현재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열렸다. 박정희 의장은 목메인 목소리로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그의 발언을 대선 불출마로 받아들였다.
박정희 의장의 권력의지가 되살아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월 11일 김동하·박임항 등 혁명주체들이 연루된 쿠데타 음모 사건이 발표됐다. 이어 3월 15일엔 현역 군인 80여 명이 최고회의 앞에서 ‘군정 연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3월 16일 박 의장은 사회혼란을 이유 삼아 “군정 기간 4년 연장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반전(反轉) 스케줄을 내놨다. 민주공화당을 포함해 정치권은 물론 미국까지 거세게 반발하자 박 의장은 4월 8일 군정연장안을 철회한다는 성명을 냈다. 최고권력자의 민정불참→군정연장→취소로 정국이 요동치는 와중에 박 의장은 민간인으로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김종필 없는 민주공화당은 흔들렸다. 해체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왔다. 김정렬 공화당 초대 당의장은 훗날 회고록 『항공의 경종』에 “박정희 의장이 공화당 해체를 지시했으나, 4월 8일 발표 직전에 취소했다”고 썼다. 그 뒤엔 김재춘 중앙정보부장이 지원하는 ‘범국민정당’이 세를 확장했고, 5·16 주체들의 모임인 ‘5월동지회’도 지방 조직을 구축했다. 친여 정치세력들의 경쟁력을 저울질하던 박 의장은 7월 4일 최종적으로 공화당을 선택했다. 박 의장은 8월 30일 강원도 철원의 제5군단 지포리 비행장에서 육군 대장 전역식을 가졌다. 그는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의장 공보실에서 연설문 초안을 작성한 동훈 전 국토통일원 차관은 “군인을 향해 ‘군사혁명을 일으키지 말라’는 훈시이면서, 국민과 정치권에 ‘군인이 나올 상황을 조성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고 설명했다. 박 의장은 그날 오후 공화당에 입당하고 이튿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한다. 정리=전영기·한애란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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