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2월 31일 KBS 남산 스튜디오에서 열린 TV 개국 기념식에 참석한 송요찬 내각수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오재경 공보부 장관, 박종규 경호대장, 임택근 아나운서 (왼쪽부터). [중앙포토]
사형이 집행됐을 때 나는 6대 국회의원(총선 11월 26일)으로 당선돼 공화당 당의장을 맡고 있었다. 대통령 취임식을 사흘 앞둔 박정희 의장이 황태성의 처형 사실을 보고받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박 의장은 표정이 굳은 채 “그렇게 했어…”라며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밖으로 말을 내뱉으면 크든 작든 영향이 올 수 있으니 그 상황에서 많은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황태성은 박 의장이 어려서 친형처럼 따랐던 사람이니 고민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혼자 참았다. 나도 ‘황태성에 대해 뭐 느끼시는 게 없느냐’고 박 의장에게 여쭤보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 자문자답(自問自答)했다.
황태성 처형을 두고 떠드는 이야기 중엔 거짓이 적지 않다. 김형욱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박 의장을 설득해 황태성을 서둘러 처형토록 했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거짓말이다. 황태성은 법적 절차를 거쳐 사형이 집행된 것뿐이다. 정보부장이 거기에 개입할 게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된다.
박 의장이 황태성 사진을 보고 “황태성 선생도 많이 늙으셨구나”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전해들은 적 있는데, 이 역시 누군가 지어낸 말이다. 그 상황에서 박 의장이 그런 소리를 내놓을 수가 없다. 이런 것만 봐도 허튼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어지럽게 꾸며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930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된 황태성의 24세 때 모습. 그의 이명(異名)인 황대용이라고 적혀 있다. [중앙포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황태성은 김일성이 보낸 간첩이라고 본다. 김일성은 박정희 의장을 잘 설득하면 북한에 합작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황태성을 내려 보낸 게 분명하다.
‘황태성 사건’ 하면 61년 KBS TV방송국 개국이 떠오른다. 61년 여름, 나는 오재경(吳在璟, 1919~2012) 공보부 장관을 만나 TV 방송국 설립 계획을 논의했다. 서로 뜻이 통했고 오 장관도 그런 구상을 갖고 있었다. 정부 예비비에서 1억환을 마련해 TV 방송국을 연내에 짓기로 했다. 개국 예정일을 두 달 남짓 남겨놓은 10월 남산 기슭에 TV 방송국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내가 일본 도쿄에 가서 마주친 장면이 있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니 집집마다 TV 안테나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부러웠고 또 속상했다. 우리나라도 집에 TV가 한 대씩 있는, 그런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