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는 내가 쓴 혁명공약 제3항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출범과 동시에 ‘부패·구악 일소’란 혁명과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1961년 5월 28일, 최고회의는 부정축재처리위원회(위원장 이주일 소장) 위원 명단과 함께 부정축재 기업인들을 발표했다.
이날 내로라하는 재계 거물들이 죄다 부정축재자로 잡혀 들어갔다. 최고회의가 결정한 일이라 내가 손 쓸 틈이 없었다. 중앙정보부장인 나는 혁명정부를 뒷받침한다는 뜻에서 최고회의 위원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가난을 추방하고 산업화 기반을 다지기 위해 실업인들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로서 경제인 구속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6월 8일 한국일보사 장기영 사장(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9대 의원)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가 신경 쓰던 바로 그 부분을 긁어 줬다. “경제의 ‘경’자라도 아는 건 실업인들뿐이니 활용을 해야 합니다. 극동해운 사장인 남궁련이라는 분이 있는데 우리 경제의 실상과 경제인의 역할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김 부장이 한번 만나서 조언을 들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한국일보 옆에 있는 그의 집을 밤중에 예고도 없이 찾아갔다. 남궁 사장은 초면인 중앙정보부장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지금 기업인들을 어떻게든 활용해서 경제재건을 하려고 하는데 조언을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실업인들을 잔뜩 잡아넣은 게 중앙정보부에서 한 일이 아니었느냐”고 물었다. “아니, 내가 한 게 아니라 최고회의에서 했다”는 대답에 남궁 사장은 “그럼 정보부장이 영향을 끼칠 수는 없느냐”고 되묻곤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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