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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과 美國은 왜 開戰에 이르게 되었나? (2)

淸山에 2015. 4. 24.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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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과 美國은 왜 開戰에 이르게 되었나? (2)

공격 30분 이전에 미국 정부에게 통보되었어야 할 선전포고에 해당하는 '對美각서'는,

주미 대사관 외교관의 방심으로 공격 개시로부터 55분 경과한 뒤에야 미국측에 통보되었다.

펀드빌더(회원)  
  2015. 4. 23. 산케이(産經)신문



日本시간 1941년 12월8일 未明, 하와이 근해에 위치한

日本 기동부대로부터 발함(發艦)한 171機의 제1波 공격대는
저공으로 하와이에 침입한 오전 2시 52분에, 기습공격
성공을 의미하는 電文 '도라 도라 도라

(トラ・トラ・トラ)를 발신한다.


완전히 허를 찔러 습격한 日本 항공기는 정박중인 미군 전함과 비행장에 큰 타격을 가했다.


그런데,
최대 공격 목표였던 미군의 항공모함은 없었다.

아울러, 공격 30분 전에 공표될 예정이었던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가 늦어진 것을 알게 된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1884~1943) 대장은 화려한 전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 도라 도라 도라

현지시간으로 7일 오전 5시55분(일본시간 8일0시55분) 日本 기동부대는,

美태평양함대가 정박하는 진주만으로부터 약 460킬로미터 거리까지 육박하자,

후치다 미쓰오(淵田美津雄, 1902~1976) 중좌(한국의 중령格)가 이끄는 제1波 공격대를 발진시키고,

한 시간 10분 후인 7시5분에는 제2波 공격대 170機를 발진시킨다.


이날은 평온한 날씨씨였지만, 상공에 퍼진 두꺼운 구름층 때문에 공격대는 초조한 심정이 되었다.

하와이 방송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와이언 송을 방향으로 삼아 정확한 항로로 날아 가고는 있었지만

구름 때문에 바다(海)나 섬(島)이 전혀 안보이는 답답한 상태였다.


후치다(淵田) 중좌가 <이쯤이 하와이 상공일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구름이 뚫린 사이로 눈에 확 들어온 것은,
공격 목표인 하와이 오아후섬(島)이었다.


만(湾) 내에는 2열(列)로 정박 중인 戰艦群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진주만에는 미군 전함 8척을 포함하여

모두 94척의 함정이 정박하고 있었다.


제1波 공격대는 섬(島)의 북단 곶(岬)을 통해 저공으로 섬(島)으로 침입하여 해안선을 따라 진행하며

여섯 갈래로 나누어 제각각 만(湾)과 비행장으로 향했다.


오전 7시49분, 섬(島)의 남단 가까이에 위치한 진주만을 확인한 후치다(淵田)가 탑승한 비행기는

 '全軍돌격 명령'을 내리고 난 후 3분이 지나도록, 진주만 상공에 敵의 전투기 모습도 안보이고,

대공포 진지로부터의 공격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기습성공을 의미하는 '도라 도라 도라' 電文을 쳤다.

 '도라'라는 것은 '돌격'(도쓰게키,突撃)과, 뇌격(라이게키,雷撃)을 조합한 암호로서, 제1항공함대 旗艦인

항공모함 아카기(赤城)로 전송된 전문은, 동시에 히로시마(広島) 앞 바다에 정박중인 연합함대 旗艦
나가토(長門)에게도 수신되었다.





아카기(赤城)의 함교(艦橋)에 있었던 제1항공함대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1887~1944)

중장과, 참모장(参謀長) 구사카 류노스케(草鹿龍之介, 1892~1971) 소장은 서로 손을 잡고 기뻐했지만,

 전함 나가토(長門)의 작전실에 있었던 야마모토(山本) 사령관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측은 공습을 받기 전, 일본으로부터의 공격 징후를 파악했다. 현지 시간으로 12월7일,

오아후섬(島)으로부터 10~20킬로미터 위치로 접근한 日本 잠수함에서 발진한 특수잠항정(特殊潜航艇)

5척 가운데 1척을, 만(湾)의 입구 부근에서 초계중이던 미군 구축함 '워드'가 발견했던 것이다.


특수잠항정은 2인승으로 全長 약 24미터, 배수량은 49톤이다. 두 발의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공격능력을 갖추고 있다.


오전 6시40분, 구축함 '워드'의 함장인 'G・E・데이비스' 대위는 국적불명의 소형잠수함을 향해 포격을 가하여
잠수함의 함교(艦橋)를 파손시켰지만, 잠수함이 물 속으로 잠항했기 때문에 폭뢰(爆雷) 공격을 가했다.


 '데이비스' 대위는 곧 함대사령관에게 보고했으나, 당시,
고래 혹은 어선을 敵으로 오인하여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보고가 최종단계까지 올라가는

것이 느리게 진행되었다.


아울러, 섬(島)의 북단에 설치된 레이더가 日本공격기들을 포착했지만, 이것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기지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던 미군 폭격기 편대로 착각하여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日本에게 있어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미국측의 실책이 이렇게 겹친 것이다.


오전 7시55분, 급강하로 진주만으로 들어선 한 대의 공격기가 폭탄을 떨어뜨리자 '호일러', '휘컴' 

두 군데 미군 비행장을 향하던 일본 폭격기들이 본격적으로 공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아울러 어뢰를 장착한 뇌격 공격기가 해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비행하면서 투하한 어뢰는

정확히 직선 항로를 그리며 정박중인 미군 함정을 향해 돌진해 나갔다.

여기저기서 커다란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고 굉음(轟音)이 울려퍼졌다.





미국측에게는 당시 이러한 어뢰공격이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수심이 얼마 안되는 진주만에서의 어뢰공격은 불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군은 제대로 된 방어책 하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1파 공격에 이은 제2파 공격까지 약 두 시간에 걸친 공격으로 미군은 전함 4척 침몰을 포함해 모든 함정이
손상을 입었으며, 비행장의 경우, 300機 이상의 미군항공기가 파괴되었다.


기대 이상의 전과를 올린 것에 대해, 기동부대와 히로시마 연합함대 사령부는 무척 고무되었지만,

사령관인 야마모토(山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주요 공격 목표인 '엔터프라이즈' '렉싱턴' '새러토가'라는 항공모함 세 척 모두가, 정비 혹은 항공기 수송 등의

임무에 투입되는 바람에 공습시에는 진주만에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것이다.


제공권을 장악하는 쪽이 향후 전세를 유리하게 가져가게 된다고 예상하고 있었던 야마모토(山本)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無力化시킴으로써 결정적 우위에 올라서고, 미국이 생산력을 본격 회복하기 이전에

조기 和平(강화)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원래 공격 30분 이전에 미국 정부에게 통보되었어야 할 선전포고에 해당하는 '對美각서'는,

공격 개시로부터 55분 경과한 7일 오전 8시50분(워싱턴 시간으로 오후 2시20분)에야 비로서 미국측에

통보되었다.


14부로 나누어져 암호전문으로 발송된 對美각서를, 번역과 함께 타이피스트를 쓰지 말고 직접 담당 외교관이

작성하라는 일본 본국의 지시가 원인이었는데, 일본의 공격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하던 주미 대사관 소속

일본 외교관의 방심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야마모토(山本)에게 있어 그 원인은 어떠하든 상관이 없었다. 유학과 무관 자격으로

미국 부임 경험을 갖고 있는 그가 아는 한, 미국인의 국민성을 감안하면, <비겁한 기습 공격>으로밖에

 비쳐질 수 없는 이러한 외교적 실수는 전쟁 수행에 있어 두고두고 큰 짐이 되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미국의 전의를 상실케 하고자 계획했던 작전이,

오히려 잠자는 사자를 깨운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日本軍の空爆で爆発炎上する米
  日本軍の空爆で爆発炎上する米
  하와이 진주만에서 일본군의 공습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美구축함 '쇼'.


昭和16年12月8日のハワイ真珠湾攻撃に参戦した航空母艦「加賀」の元乗組員が公開した「炎上する米軍施設」の写真(共同) 
 
昭和16年12月8日のハワイ真珠湾攻撃に参戦した航空母艦「加賀」の元乗組員が公開した「炎上する米軍施設」の写真(共同)
  진주만 공격 참전 함공모함 '가가'(加賀)의 前승조원이 공개한 진주만 공격 당시
  '폭격받는 미군 시설' 사진.


真珠湾攻撃に加わった特殊潜航艇=広島県江田島市の海上自衛隊
 真珠湾攻撃に加わった特殊潜航艇=広島県江田島市の海上自衛隊
  진주만 공격에 참가한 일본의 특수잠항정(特殊潜航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