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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갑판에서 맞아죽다! -연재/유조선 타고 오일 로드를 가다(4)

淸山에 2015. 4. 1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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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판에서 맞아죽다!

연재/유조선 타고 오일 로드를 가다(4)

趙甲濟   


 


  보일러 버너의 무너진 벽돌을 다시 붙이는 작업은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다시 보일러에 불을 붙여 기관실을 살려내는 문제가 남았다. 보일러를 끈 지 24시간이 지난 이 날 오후부터 이 작업이 시작됐다. 살리는 건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다. 보일러를 살리기 전에 수백 개의 다른 보조장치부터 먼저 작동시켜야 했다. 버너로 통하는 공기 주입관을 열고 보일러 탱크에 물을 집어놓고 드레인 밸브를 두 바퀴 열고… 버너에 불을 붙였다. 5분쯤 벙커C油(유)를 태운 뒤 5분간 껐다가 다시 5분간 연소, 5분간 消火(소화). 이런 식으로 켰다 껐다를 세 시간이나 되풀이했다.
  
   증기온도가 섭씨 150도에 이르렀다. 이번엔 10분 연소, 5분 소화. 이런 단속적인 연소 작업을, 증기온도가 250도 될 때까지 계속했다. 이렇게 서서히 기관 전체를 골고루 달구어 가지 않고 갑자기 가열하면 장치와 계기의 급작스런 팽창으로 금이 가고 찢어지며 터지는 등 엉망이 되어버린다. 약 250개의 계기 작동 상황표지판이 붙은 기관실의 컨트롤 룸은 되살아나기 시작한 조직의 實況(실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와 깜빡이는 표지판으로 방은 어수선했다. 기관장은 워키토키를 들고 상황판을 읽으며 기관실 요소 요소의 현장에 배치된 部員(부원)들에게 작업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갑판에서도 긴박한 분위기가 깔리고 있었다. 갑판장과 상어의 한나절에 걸친 신경전은 이제 절정에 달해 있었다. 왼쪽 뱃전에 늘어뜨린 낚싯줄은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나일론 줄. 그 끝에는 쇠갈고리가 쇠기름 한 뭉텅이를 문 채 달려 있었다. 상어는 먹음직한 고깃덩어리에 미련을 못 버린 듯. 그러나 경계심을 풀지 않고 서너 시간 계속 선회하고 있었다. 선회속도가 빨라지더니 상어는 고깃덩어리를 몇 번 툭툭 들이박았다. 그러다가 기어이 미끼를 덥석 물고 말았다 연탄 집게만한 낚시바늘은 상어의 아가리를 꿰뚫으며 길이 2미터쯤의 육식동물을 단단히 걸어버렸다. '와!'하는 환성이 갑판의 구경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펌프맨 김무 씨가 달려와 익숙한 솜씨로 밧줄을 늘어뜨려 수직으로 매달린 상어의 등지느러미에 올가미를 걸었다. "영차! 영차!" 갑판원들은 버둥대는 상어를 갑판으로 끌어 올렸다. 철판 위에 내동댕이쳐진 상어는 밧줄을 꽉 물고는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갑판원이 큰 망치를 갖고 오더니 이 상어의 골통에 연방 벼락을 내렸다. 머리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우지끈우지끈 했다. 그래도 상어는 요동을 쳤다. 김무 씨가 시퍼런 식칼을 들고 나와 등지느러미의 뿌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힘 빼기' 작전, 그리곤 대가리를 무 자르듯 동강내버렸다. 갑판은 피 밭으로 변했다. 두 동강난 머리와 몸뚱이는 각각으로 버둥댔다. 동강난 대가리에 식칼을 푹 꽂아 두어도 꿈틀꿈틀했다.
  
   어느 漁船(어선)에선 이렇게 잘라놓은 머리를 바다로 던져버리려고 들어올리던 선원이 그 죽은 상어의 아가리에 손가락이 싹둑 잘려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갑판원들이 빙 둘러선 가운데서 김무 씨는 상어의 생체 해부를 계속했다. 배를 가르니 창자가 와르르 흘러나왔다. 구역질나는 냄새가 진동했다. 내장은 비어 있었다. 미끼의 유혹을 끝내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은 이 배고픔이었다. 이제 상어 몸통은 내장이 빠진 반 원통형의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그래도 몸통은 갑판을 뱀처럼 휘젓고 있었다. 대가리가 잘린 뒤 20분쯤은 그렇게 꿈틀댔을 것이다. 갑판원들이 상어고기 회를 치고 있는데 尹 기관장이 뛰어오더니 '야, 오늘 재수 없겠다'고 내뱉었다. 
  
  
 

  상어를 때려 잡는 선원들
  
   "오늘 상어고기 먹은 사람은 기관실로 못 내려온다."
  
   그는 으름장을 놓은 뒤 총총히 사라졌다. 보일러를 되살리는 작업은 밤을 새워 이어졌다. 하루 반이나 꼬박 기관과의 死鬪(사투)에 매달린 기관부원들의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이 완연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관부원들의 안색은 창백한 법이다. 하루의 3분의 2를 기관실과 침실에서 보내니 햇볕을 볼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얼굴색만 보고도 갑판부인지 기관부인지 알 수 있다. 延(연) 이틀간 철야 작업에 시달린 기관원들은 상황실 구석에서 그냥 철판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잠에 떨어지기도 했다. 보일러의 증기 압력이 터빈과 스크류를 돌릴 만큼 높아진 것은 사고가 난 지 서른 여섯 시간이 흐른 6일 새벽 3시40분. 동해 2호는 분당 30회의 스크류 회전으로 6노트 속도를 내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3시간 뒤 이제는 스크류 회전수를 순항 속도인 60 이상으로 올려도 되겠다고 판단한 尹 기관장은 그 준비작업으로 그 동안 비상가동 시켰던 디젤 발전기를 끄고 터빈 발전기로 전환시키도록 지시했다. 이 인계 작업에서 문제가 생겼다. 터빈 발전기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디젤 발전기를 끄면 자동적으로 터빈 발전기가 돌게 돼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우선 디젤 발전기를 계속 돌리면서 고장의 원인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용량이 약한 디젤 발전기 하나로는 보일러를 제대로 돌릴 수 없고 스크류 회전도 빨리 할 수가 없었다. 당분간 동해2호는 6노트의 굼벵이 걸음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대수술 뒤의 부작용과 같은 이 예기치 못한 고장은 尹 기관장을 惡夢(악몽)에서 헤매게 했다. 그는 기관 설계도를 폈다가 접었다 하면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통신장을 불러 자문을 구하는 등 원인 규명에 안간힘을 써야 했다. 
  




   "기자 두 분이 타서 그런지 이번 항차에는 별 일이 다 생긴다"고 李 선장은 농담을 했다. 6노트로 기어가는 배 위에서는 배가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흘러가는 건 배가 아니라 바다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터빈 발전기의 고장 원인이 밝혀진 것은 다음날 오전. '에어 서키트 브레이크'라는 電源(전원)연결 부분이 어긋나 디젤 발전기와 터빈 발전기의 병렬이 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원인만 밝혀지면 수리는 간단한 것. '동해'는 정오부터 12노트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밤에 한 판 벌입시다."
   尹 기관장이 점심 때 환한 얼굴로 식당에 나타나자 船內(선내) 분위기도 한결 가벼워졌다. 나흘간 밤잠을 앗긴 기관장은 '그놈의 상어가 불길했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해가 지면 달이 솟는다. 오른쪽 수평선에 붉은 해가 붙으면 5분도 안 돼 바다 밑으로 침몰해버린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붉은 쟁반을 꾹꾹 눌러대는 것 같이 해는 수평선 밑으로 쑥쑥 들어간다. 그러면 왼쪽이 거무스름해지는 수평선 위로 허연 달이 솟아오른다. 동해 2호를 받침대로 하여 달과 해가 양쪽에서 시소놀이를 하는 것이다. 大洋 (대양)항해 중 경치가 가장 좋을 때는 해가 지기 직전이라고 선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런 때를 택해서 나는 산보를 나가곤 했다. 동해 2호의 갑판을 한 바퀴 돌면 약 1킬로미터. '탱커에선 걸으면 산보, 오르면 등산'이라고 통신장은 말했다. 日沒(일몰) 직전의 絶景(절경)을 감상하는 데 가장 좋은 자리는 船首(선수) 쪽 갑판. 황혼이 태양과 해면을 벌겋게 물들이면 뱃머리의 갑판에 누렇게 녹슨 채 붙어 있는 닻줄 捲揚機(권양기)의 바퀴가 그 빛을 받아 선명한 황토색으로 변한다.
  
   초현실파의 조각품처럼 우람하게, 황량하게, 차갑게, 그러나 애조를 띠고, 폐허처럼 스산하게, 무겁게, 그러나 믿음직스럽게 딱 버틴 쇳덩어리. 쿵쿵 둔중하게 船首(선수)를 때리는 물결, 사이다 거품같이 쏴- 소리를 내며 허옇게 부글부글 뒤집어지는 바다의 속살, 곱게 얼어붙은 맑은 냇물의 얼음처럼 파랗게 돋아나는 새로운 피부. 이런 것들이 어울려 장엄한 落照(낙조)의 절정을 이루고는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 것이었다. 밤바다에서는 23만 톤짜리 탱커도 불빛의 점으로 변한다. 선수등, 선미등, 마스트등, 좌현의 홍등, 우현의 녹등. 이 다섯 개 등불이 어떤 배열로 보이는가에 따라 그 배의 진행방향을 관측자는 알아낼 수가 있다. 선실의 창에는 검은 커튼을 치고 브리지에선 불을 켜지 않는 것도 相對船(상대선)에 의한 이쪽의 항해등 판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야간 항해 중 브리지에 오르면 당직중인 항해사와 조타수가 유달리 사람을 반긴다. 말동무가 나타난 것이다. 오래 붙들어 두려는 듯 조타수는 커피를 끓여 대접을 하고 낮에는 어림도 없는 선장 專用(전용) 걸상을 들고 와 앉으라고 권한다. 달빛에 물들기 시작하는 탱커 주위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브리지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직업상 주로 이야기를 듣는 축이고 조타수들은 하는 쪽이다. 동해 2호의 조타수 세 명은 모두 원양어선 출신들. 그들의 얘기는 자연히 고생담일 수밖에 없었다. 울산 사람 임영덕씨(39세)는 지난 '70년에 라스 팔마스로 나갔다. 라스 팔마스란 이름은 '70년대의 우리나라 어선 선원들에게는 탱커 선원들의 PG처럼 귀에 못이 박힌 地名(지명)이었다.
  
   여기서 그는 300톤짜리 참치잡이 어선의 2항사로 2년 반을 일했다. "북위 40도에서 남위 30도까지의 대서양과 인도양을 헤매고 다녔지요. 한 번 바다에 나가면 보통 석 달, 길 때는 다섯 달을 떠있어야 했습니다. 세수, 목욕, 칫솔질까지 모두 바닷물로 하는 건 물론이고 하루에 잠을 너댓 시간밖에 못 자지요. 파도를 만나면 船內(선내)를 기어다니고 이번에 살아 돌아가면 굶더라도 배를 안 탄다는 맹세를 하지만 그게 쉽게 됩니까? 한 번은 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2기사가 저를 꾀는 거예요. 여기서 죽으면 물에 묻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감옥에서 산다면서 일부러 죄를 짓고 강제 귀국조치를 당하자는 겁니다.
  
   그 친구가 생각해 낸 범죄가 뭐냐 하면 라스에서 현지 처녀를 강간하는 거였어요. 입 틀어막는 일만 해달랍니다. 나는 우스워, 강간을 하다가 들켜야 강제 귀국을 당할 터인데 입을 막아 뭘 하느냐고 했지만 지옥 같은 원양어선에서 탈출할 생각뿐인 그는 귀항하자마자 선원수첩을 훔쳐내어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지요. 나는 그래도 끝까지 참고 한 400만 원 벌어 돌아왔는데 떠나기 전에 약혼해 둔 처녀가 30세가 돼 있더란 말입니다. 한 번만 더 타고 결혼하겠다고 했더니 장모가 펄펄 뛰는 통에 할 수 없이 商船(상선)으로 바꾸고 결혼해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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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포 사람 주문길 씨는 18년 동안 배를 탔는데 10년은 漁船(어선)이었다. 동해 새우잡이에서 시작, 北洋(북양) 명태잡이를 거쳐 ㅅ원양 어선 회사에 들어가 라스 팔마스로 나갔다. 30개월 계약으로 나갔는데 스무 달쯤 고기잡이를 하다가 선장만 버려 두고 선원들이 몽땅 중도 귀국을 해버렸다. 일정량 이상의 어획고를 올리면 선원들의 분배 몫을 올려주겠다는 당초 약속을 회사에서 지키지 않는 데 불만이 폭발한 것이었다. 돌아와선 ㅅ회사와 집단 시비를 벌인 끝에 쥐꼬리만한 돈을 받아내기는 했으나 어선에는 정나미가 떨어져 탱커 선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동해 2호에는 원양어선 출신이 다섯 명 있었다. 이들은 모두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었다. 상선보다도 훨씬 혹독한 조건의 어선에서 단련된 덕분이라고 士官(사관)들은 말했다. '모타리는 작지만 일 하나는 깡다구 있게 한다'는 갑판원 정태석 씨(33세)는 '75∼'77년 사이 고려 원양(주)의 참치잡이 어선 콜비 7호를 타고 라스 팔마스에서 일했다.
  
   "3년 동안 고생해서 받은 돈은 중간 결산 때 20만원, 집에서 가족이 달마다 받는 월 3만원씩의 생계비뿐이었죠. 여덟 항차를 뛰면서 90만 달러어치의 고기를 잡아 주었는데 귀국하니 赤字(적자)라고 그래요. 회사에선 너희들에게 줄 몫은 한 푼도 없다. 우리가 오히려 받아야겠다는 겁니다. 우리 선원들의 계산으로는 계약상의 어획고인 80만 달러는 분명히 넘겼는데 오리발을 내는 거예요. 우리가 뭐 경리를 압니까. 수치로 따져 보았자 판판이 지는 수밖에도. 에라, 더럽다,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살아라 하고 빈손으로 나왔지요. 군대 생활 한 번 더 한 셈치고 이제는 두 번 다시 배를 안 탄다고 맹세를 했는데…"
  
   이 원양어선 출신들은 입을 열면 한결같이 자신들을 착취한 회사와 짓가림제의 모순에 울분을 털어놓곤 했다.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들뿐이 아니었다. 선원들에게 돈을 거두어 가면서 '우리는 세관원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는 서약서까지 쓰도록 하는 관리들, 선장에게 반말을 예사로 하는 새파란 해운 관계 공무원, 폐선 되는 탱커의 선장실 의자를 가리키며 '이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고 선언하는 세관원,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선원들을 외항에 붙들어 두고 속을 태우게 하는 항만 관리, 모처럼의 아까운 휴가기간을 교육으로 때우게 하는 육상직원들…스스로를 '어린아이처럼 어리석다'고 진단하는 선원들은 육지의 무서운 사람들을 원망해 마지않았다.
  
   3일은 정월대보름날이었다. 인도양의 보름달은 하오 6시께 모습을 드러냈다. 기관수 정상률씨(42세)가 가장 먼저 보았다고 '축복의 기득권'을 주장했다. 서쪽 수평선 밑으로 떨어진 夕陽(석양)의 後光(후광)이 아직 남아 있을 때였다. 달은 더욱 환해지며 우리를 향해 덩실덩실 떠오고 있었다. 이 날을 잊지 않고 오곡밥과 콩나물 반찬을 장만한 취사부의 알뜰한 신경 씀에 선원들은 감사하고 있었다. 李 선장도 이 날을 임시 휴무일로 지정, 당직자들을 제외한 주간 근무자들을 쉬게 했다. 식당 옆 휴게실에선 화투판이 한창이었다. 尹 기관장이 오른손을 머리 높이 치켜들고 화투장을 때리려는 찰나였다.
  
   그 순간, 그는 갑자기 '어?'하며 굳어버렸다. 같이 화투를 치던 선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기관장을 쳐다보았다. 기관장은 후다닥 일어나더니 전화기가 놓인 탁자 쪽으로 뛰어갔다. "2기사! 뭐야?" 그는 기관실 당직 사관을 불러내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 빨리 비상 걸어!" '따르릉-' 식당 벽의 비상벨이 벌겋게 번득이며 울기 시작했다. 윤 기관장은 뒤도 안 돌아보고 기관실로 뛰어 내려갔다. 그는 뒤에 말했다.
  
   "갑자기 등 뒤가 썰렁해지는 걸 느꼈지요. 나는 기관실에서 나는 진동이나 기계 소리에 굉장히 신경이 예민해요. 보통사람은 전혀 눈치를 못 채지만 기계 소리가 조금만 이상해도 단박에 알아내지요. 기관이 정상 작동할 때와 고장이 있을 때는 기계소리가 달리 나지요.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악기 소리를 구별해 내듯 기관장은 기계소리로 기관을 진단합니다. 그때는 기관의 소음이 중대한 이상이 생겼음을 저한테 알려주더군요. 여느 때의 소음에서 무슨 소리가 하나 쏙 빠진 상태였죠."
  
   사고는 연료유 공급 밸브에서 일어났다. 다른 기관에 중대한 사고가 났을 때만 자동적으로 닫히게 돼 있는 밸브가 갑자기 닫힌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보일러 버너의 연소는 중단되고 냉각 응축기는 과열됐으며 터빈 발전기는 꺼지고 디젤 비상 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스크류 속도는 격감, 배는 서서히 멈추어지고 있었다. 윤 기관장은 비상 밸브를 닫히게 한 고장을 발견하도록 부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관실을 뒤져도 그런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윤 기관장은 닫힌 밸브를 열도록 했다. 보일러의 가동이 재개되었다. 잠시 원인 모를 심장 마비에 걸렸던 기관실은 되살아나기 시작, 배는 1시간 뒤에 다시 정상 운항에 들어갔다. 그러나 윤 기관장은 끝내 비상밸브가 왜 닫혔는지를 알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또 '그놈의 상어 때문이다'고 했다. 1주일 동안 세 번이나 기관고장이 잇달아 터진 것은 동해 2호 역사상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동해 2호는 인간에 비교하면 황혼기에 접어든 배였다. 이 배를 쉘사(社)는 지난 '65년에 발주 '69년에 진수시켰다. 그 뒤 세 번 주인이 바뀌었고 14년 줄곧 혹사만 당해 왔다. '동해'는 1년에 350일을 항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 동안 이 배는 정기 도킹 기간을 빼고 13년쯤을 내리 항해만 했다는 얘기다. 지구를 70바퀴쯤 도는 거리를 달려온 셈이다. 그 둔중한 몸을 움직이는 부담을 홀로 져 온 기관이 이제 발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일러 파이프의 곳곳에서 증기가 새고 냉각응축기는 고혈압 환자의 혈관처럼 막히고 부속품들이 제 자리를 차고 나오고…기관실뿐이 아니었다. 브리지의 항해 관련 기계 가운데는 수심 측정기, 풍력계를 비롯, 고장난 것이 정상 가동중인 것보다 더 많았다. 갑판은 썩어 문드러지는 살점 같은 누런 녹의 반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VLCC의 이론상 수명은 20년쯤이다. 실제로는 10년만 지나면 대부분 古鐵(고철)로 팔려 해체, 폐선된다. 동해 2호는 아마도 세계현역 탱커들 가운데서 최장로급일 것이다. 이런 배를 모는 선원들은 배와 함께 그 고통을 나눠 가져야 할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