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두 분이 타서 그런지 이번 항차에는 별 일이 다 생긴다"고 李 선장은 농담을 했다. 6노트로 기어가는 배 위에서는 배가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흘러가는 건 배가 아니라 바다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터빈 발전기의 고장 원인이 밝혀진 것은 다음날 오전. '에어 서키트 브레이크'라는 電源(전원)연결 부분이 어긋나 디젤 발전기와 터빈 발전기의 병렬이 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원인만 밝혀지면 수리는 간단한 것. '동해'는 정오부터 12노트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밤에 한 판 벌입시다." 尹 기관장이 점심 때 환한 얼굴로 식당에 나타나자 船內(선내) 분위기도 한결 가벼워졌다. 나흘간 밤잠을 앗긴 기관장은 '그놈의 상어가 불길했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해가 지면 달이 솟는다. 오른쪽 수평선에 붉은 해가 붙으면 5분도 안 돼 바다 밑으로 침몰해버린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붉은 쟁반을 꾹꾹 눌러대는 것 같이 해는 수평선 밑으로 쑥쑥 들어간다. 그러면 왼쪽이 거무스름해지는 수평선 위로 허연 달이 솟아오른다. 동해 2호를 받침대로 하여 달과 해가 양쪽에서 시소놀이를 하는 것이다. 大洋 (대양)항해 중 경치가 가장 좋을 때는 해가 지기 직전이라고 선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런 때를 택해서 나는 산보를 나가곤 했다. 동해 2호의 갑판을 한 바퀴 돌면 약 1킬로미터. '탱커에선 걸으면 산보, 오르면 등산'이라고 통신장은 말했다. 日沒(일몰) 직전의 絶景(절경)을 감상하는 데 가장 좋은 자리는 船首(선수) 쪽 갑판. 황혼이 태양과 해면을 벌겋게 물들이면 뱃머리의 갑판에 누렇게 녹슨 채 붙어 있는 닻줄 捲揚機(권양기)의 바퀴가 그 빛을 받아 선명한 황토색으로 변한다. 초현실파의 조각품처럼 우람하게, 황량하게, 차갑게, 그러나 애조를 띠고, 폐허처럼 스산하게, 무겁게, 그러나 믿음직스럽게 딱 버틴 쇳덩어리. 쿵쿵 둔중하게 船首(선수)를 때리는 물결, 사이다 거품같이 쏴- 소리를 내며 허옇게 부글부글 뒤집어지는 바다의 속살, 곱게 얼어붙은 맑은 냇물의 얼음처럼 파랗게 돋아나는 새로운 피부. 이런 것들이 어울려 장엄한 落照(낙조)의 절정을 이루고는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 것이었다. 밤바다에서는 23만 톤짜리 탱커도 불빛의 점으로 변한다. 선수등, 선미등, 마스트등, 좌현의 홍등, 우현의 녹등. 이 다섯 개 등불이 어떤 배열로 보이는가에 따라 그 배의 진행방향을 관측자는 알아낼 수가 있다. 선실의 창에는 검은 커튼을 치고 브리지에선 불을 켜지 않는 것도 相對船(상대선)에 의한 이쪽의 항해등 판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야간 항해 중 브리지에 오르면 당직중인 항해사와 조타수가 유달리 사람을 반긴다. 말동무가 나타난 것이다. 오래 붙들어 두려는 듯 조타수는 커피를 끓여 대접을 하고 낮에는 어림도 없는 선장 專用(전용) 걸상을 들고 와 앉으라고 권한다. 달빛에 물들기 시작하는 탱커 주위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브리지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직업상 주로 이야기를 듣는 축이고 조타수들은 하는 쪽이다. 동해 2호의 조타수 세 명은 모두 원양어선 출신들. 그들의 얘기는 자연히 고생담일 수밖에 없었다. 울산 사람 임영덕씨(39세)는 지난 '70년에 라스 팔마스로 나갔다. 라스 팔마스란 이름은 '70년대의 우리나라 어선 선원들에게는 탱커 선원들의 PG처럼 귀에 못이 박힌 地名(지명)이었다. 여기서 그는 300톤짜리 참치잡이 어선의 2항사로 2년 반을 일했다. "북위 40도에서 남위 30도까지의 대서양과 인도양을 헤매고 다녔지요. 한 번 바다에 나가면 보통 석 달, 길 때는 다섯 달을 떠있어야 했습니다. 세수, 목욕, 칫솔질까지 모두 바닷물로 하는 건 물론이고 하루에 잠을 너댓 시간밖에 못 자지요. 파도를 만나면 船內(선내)를 기어다니고 이번에 살아 돌아가면 굶더라도 배를 안 탄다는 맹세를 하지만 그게 쉽게 됩니까? 한 번은 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2기사가 저를 꾀는 거예요. 여기서 죽으면 물에 묻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감옥에서 산다면서 일부러 죄를 짓고 강제 귀국조치를 당하자는 겁니다. 그 친구가 생각해 낸 범죄가 뭐냐 하면 라스에서 현지 처녀를 강간하는 거였어요. 입 틀어막는 일만 해달랍니다. 나는 우스워, 강간을 하다가 들켜야 강제 귀국을 당할 터인데 입을 막아 뭘 하느냐고 했지만 지옥 같은 원양어선에서 탈출할 생각뿐인 그는 귀항하자마자 선원수첩을 훔쳐내어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지요. 나는 그래도 끝까지 참고 한 400만 원 벌어 돌아왔는데 떠나기 전에 약혼해 둔 처녀가 30세가 돼 있더란 말입니다. 한 번만 더 타고 결혼하겠다고 했더니 장모가 펄펄 뛰는 통에 할 수 없이 商船(상선)으로 바꾸고 결혼해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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