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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의 배에서 환자가 생기면?-슈퍼탱크 타고 오일 로드를 가다(5)

淸山에 2015. 4. 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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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의 배에서 환자가 생기면?

슈퍼탱크 타고 오일 로드를 가다(5)

趙甲濟

  


  인도 반도의 서쪽 해안과 거의 나란히 달리는 인도양 항로는 기관실의 고장만 빼고는 順風(순풍)에 돛단 것 같은 航進(항진)의 연속이었다. 원래 겨울의 인도양은 조용한 법이다. 겨울은 남지나해와 동지나해가 거칠고 여름은 인도양이 소란스럽다. 두 바다를 골고루 지나는 한국의 유조선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한 번은 풍파를 맞기 마련이다. 동해 2호는 인도 남단의 망갈로어 항구 서쪽 40해리 해상까지 1300해리의 129도 직선 항해를 했다. 이 직선 항해 중에는 항해사나 조타수는 브리지에서 할 일이 별로 없다.
 
  항로는 자동 항해 장치가 알아서 잡아주며 배의 위치는 인공 위성이 수시로 알려 준다. 船橋(브리지) 당직자의 할 일은 계기의 작동 상태나 다른 배의 접근을 지켜보는 것인데 인도양에선 하루에 배가 한두 척 보일락말락하는 형편이다. 배를 자동 항해 장치에 맡겨두고 브리지를 비우는 無人(무인)항해를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도 해안에 가까이 붙자 비로소 VHF 수신기에 사람 소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入出港(입출항) 수속을 위한 선박과 항구와의 교신이었다. 육지가 가까운 탓인지 공기는 부옇게 흐려지고 더욱 무더워졌다. 한낮에는 섭씨 34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 봄베이, 고아 등 인도의 항구는 한국 선원들이 좋아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동해 2호에는, 일반 화물선을 타면서 이들 인도 항구에 상륙해 본 선원들이 많았다. 인도의 항구는 술이나 여자 값이 싸고 사람들이 순해 좋다는 것이었다. 고아 근방 해안에는 공인된 나체촌도 있어 눈요기에 안성밎춤이다. 고아에는 가수 이름을 딴 '남진 바'란 술집이 있다. 한국 선원들을 유혹한다. 술 많이 마시고 팁 많이 주는 한국 선원들이 여기서는 가장 인기가 높다는 것이다.
 
  인도 해안에 가깝게 붙어 동해 2호가 남하하게 되자 나는 '이젠 맹장염에 걸려도 죽지는 않겠구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몸이 편하면 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성격인 나는 PG를 떠난 뒤 大洋(대양) 항해가 1주일이나 계속되자' 이럴 때 만약 급성맹장염에 걸린다면…'하는 방정스러운 걱정을 하곤 했다. 며칠 전 기관부원 황윤원 씨가 작업 중 이마를 부딪혀 피가 터지는 사고를 당한 뒤로는 그런 걱정이 약간의 실감을 갖고 가끔 나를 사로잡기도 했다. 동해 2호에는 병실, 간단한 약품이 비치된 약방, 수술 도구가 있긴 했으나 정작 필요한 의사는 타고 있지 않았다.
 
  해양대학이나 수산대학의 실습선을 제외하고는 의사가 타는 배는 한국엔 없다. 배에서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나면 無線(무선)으로 의사를 태운 배를 찾아 구호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 배가 없을 때는 육상으로 구조를 요청, 헬기를 부르든지 해야 하고 그것도 안될 때는 배를 돌려 가까운 항구로 들어가야 한다. 육지에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을 때는 의사를 부르기도 어렵고 항구로 찾아가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 환자가 목숨을 잃기 쉽다. 아세아 상선의 26만 톤 유조선 코리아 스타호에서 1년 전 추락 사고가 났다.
 
  목포 해양 전문학교를 나온 朴 아무개라는 청년이 실습항해사로 타고 있었다. PG로 갈 때였다. 갑판원들은 탱크 내부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朴 군에게 위험하니 탱크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나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높이 23미터의 빈 탱크 안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탱크 안 벽에는 여러 겹의 철판이 돌출해 있는데 朴군은 그 맨 아래 철판에 올라가 바닥에서 청소를 하는 광경을 내려다보며 서성대다가 발을 헛놓아 떨어지고 말았다. 선원들이 그를 업고 갑판으로 올라와 병실에 눕혀 놓았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서툰 솜씨지만 선원들은 다리에 버팀목을 대고 뒤통수 상처에 응급처리를 했다. 朴군은 그러나 곧 의식을 잃었다. 뇌출혈이 시작된 것이었다.
 
  船長(선장)은 모든 통신시설을 동원, 의사를 태운 배가 있으면 나오라고 호소했다. 이 애달픈 구조요청은 몇 시간이나 계속됐다. 물론 항해를 하면서 구조요청을 계속했다. 6시간쯤 지났을까. 소련 군함이 '의사가 있으니 이리로 데려오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그 군함은 월남 근해에 떠 있다고 했다. 사람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공산국가 선박이라고 주저할 수도 없었다. 선장은 월남 쪽으로 船首(선수)를 돌렸다. 8시간을 항해해야 소련 배와 만날 수 있게 돼 있었다. 그러나 1시간쯤 갔을 때 朴군은 죽고 말았다. 선원들은 朴군의 시체를 곱게 단장하여 식당의 큰 냉장고에 넣어 보관했다. 배는 본사의 지시로 싱가포르에 입항, 屍身(시신)을 한국대사관에 인계, 귀국케 했다.
 
  펌프맨 김무 씨는 이보다는 덜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했다.
 
  "한 10년 전 세브론의 탱커를 탈 때였습니다. 선원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는데 말단 갑판원이 갑자기 급성 맹장염에 걸렸어요. 태평양 한가운데였습니다. 의사 있는 배를 VHF로 부르니 여객선이 응답하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 호화여객선과 랑데뷰, 환자를 인계해주고 갈 길을 가버렸죠. 이 선원은 수술을 받고 완쾌, 한 넉 달 동안 여객선을 타고 세계 일주를 잘 하고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더군요. 살이 디룩디룩 쪄서 말입니다. 공짜 밥 먹기가 미안해서 여객선의 청소부로 일했는데 승객으로부터 팁을 많이 받아 그쪽으로도 재미를 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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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판장 김상달 씨는 외국 탱커를 탈 때 치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탱커가 남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 때 이탈리아 선장이 헬리콥터를 불렀다. '이 비행기를 타고 케이프 타운 병원에 가 치료를 끝내고 곧장 날아오라'는 것이었다. 김씨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동안 탱커는 속도를 줄여 천천히 희망봉을 돌며 헬기로 돌아오는 김씨를 기다렸다. 조타수 임영덕 씨는 원양어선 시절의 목격담을 털어놓았다.
 
  "대서양에서 참치 낚시 바늘을 바다로 던져 넣는 작업을 하다가 한 선원의 목에 그 바늘이 걸리면서 목 동맥을 끊어버렸습니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집디다. 목을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어 놓는 것밖에는 손 쓸 재간이 있어야죠. 환자는 벌써 과다 출혈로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어요. 할 수 없이 우리는 근처에 떠 있는 한국 어선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나타난 것이 군 위생병 출신의 어느 선장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배를 몰고 달려오더니 마취도 안 시키고 수술을 합디다. 수술용 도구는 배마다 있는 것이고 그 선장은 '무조건 참으라!'고 한 뒤 목의 살을 싹둑싹둑 베더니 잘라진 핏줄을 끌어내 매듭으로 묶어 출혈을 정지시키는 거였죠. 그 사람이 위대하게 보이더군요."
 
  육지! 아하마디 항구를 떠난 지 열이틀째 오후. PG, 오만만, 아라비아海, 인도양을 헤쳐온 2400해리 만에 세일론의 南端(남단)이 왼쪽 수평선에 희뿌옇게 드러났다. 李 선장, 崔 선장도 브리지에 올라와 쌍안경으로 야트막한 해안선을 구경했다.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육지지만 선원들은 들뜬 기분에 사로잡힌다. 뭍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원들의 기분 전환이다. 아주 작은 변화, 별것도 아닌 '일상의 파격'이지만 선원들에겐 기념할 만한, 기뻐할 만한 사건이 되는 것이었다. 맨눈으로는 잘 안보이고 쌍안경을 통해도 하얀 돈드라 등대와 힌두교 사원과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 절벽뿐이지만 그 정도로도 선원들은 뭍의 분위기를 가깝게 당겨서 느낀다.
 
  寄港(기항)이 없는 탱커 선원들이 뭍의 냄새, 인간의 냄새를 느끼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이럴 때뿐이다. 까만 돛을 단 어선들이 나타났다. 갑판 승강식 시추선을 끌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예인선도 보였다. '바다의 고속버스' 컨테이너船(선)도 왼편으로 스쳐 지나갔다. '바다의 장갑차' 같은 자동차 전용 운반선도 마주쳐 지나간다. 벵갈만과 인도양을 잇는 길목답게 갑자기 많은 배들이 나타났다. 동해 2호가 세일론 남쪽을 좌회전하여 말래카 해협을 향해 變針(변침)하고 있을 그때 청룡 2호가 왼쪽 11시 방향의 수평선에서 솟아났다.
 
  이 예인선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가져가는 2만 톤짜리 담수화 공장 구조물을 바지에 싣고 끌고 가고 있었다. 1500톤짜리 예인선이 자기 몸의 열 배도 넘는 쇳덩어리를 달고 8노트 속도로 기어가는 모습은 애처롭기만 했다. 동해 2호의 항해사는 '욕봅니다'는 위로의 말을 청룡 2호로 띄웠다. 남향하던 동해 2호가 088도 방향으로 변침, 正東(정동) 쪽으로 나가자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사이클론으로 불리는 열대성 폭풍이 자주 일어나는 벵갈만. 그 밑변을 자르며 동해2호는 이제 말래카 해협으로 一路邁進(일로매진)할 것이다. 바람은 뒷바람에서 옆바람으로 바뀌고 海流(해류)의 進路(진로)를 거슬러 탱커는 바다를 헤쳐갔다.
 
  어둠이 깔리자 뱃머리에서는 파도가 튕겨 올라왔다. 月光(월광)에 물들어 우윳빛 나는 물보라가 얇은 커튼처럼 활짝 펴졌다간 사라져 갔다. 海流(해류)를 정면으로 받은 배는 1.5노트의 減速(감속)을 당해 9.1노트로 東進(동진)했다. 선수가 찢어놓는 海面(해면)에선 가끔 형광처럼 새하얗게 번득이는 파도가 갈라져 나왔다. 야광충이 많은 바다에서는 이런 유령 같은 물결이 자주 보인다. 심할 때는 선원들이 도시 불빛으로 착각할 만큼 해면이 환해진다고 한다. 다음날 바람은 다시 조용해졌다. 파도도 죽었다. 週期(주기)가 긴 너울이 배의 진로와 직각 방향으로 밀려 와 배를 左右로 넘실넘실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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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 때마다 갑판 밑의 기름이 이리저리 쏠리는 소리가 강물 흐르듯 쏴쏴 들려왔다. 海面 위의 요란한 파도보다는 해면 밑으로 힘을 미치는 조용한 너울이 배를 더욱 크게 흔든다. '배가 제법 논다'고 했더니 최 선장은 코웃음을 쳤다.
 
   "날씨가 매일 이렇다면 우리같이 빽 없는 사람들은 배를 못 타지요."
  '이번 항차 같으면 3000만 국민이 전부 배 타려고 하겠다'고 한 선원이 참견하고 나섰다. 동해 2호 선원들은 거의가 한 번쯤은 모진 풍파를 만나 '이번에 육지에 오르면 절대로 배를 안 탄다'는 맹세를 해 본 사람들이다.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보아야 뱃사람의 고생을 실감할 수 있다는 거다.
 
  선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다는 겨울의 北태평양, 곧 北洋(북양). 기관수 민춘기 씨(38)는 이렇게 말했다.
 
   "1만 톤짜리 잡화선을 타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자주 왕래했죠. 여름의 태평양은 이름 그대로 잔잔하기 짝이 없습니다. 겨울에는 문제가 틀리지요. 일본을 넘어서면 미국 서해안까지 13일쯤 곧장 달립니다. 우선 다른 배를 자주 볼 수 없고 중간에 의지할 섬이 없으니 심리적으로 불안해지지요. 北洋은 '저기압의 쓰레기장', 또는 '저기압의 무덤'이라고 불리지 않습니까? 늘 구름이 나지막하게 드리워져 있지요. 갑판을 넘은 바닷물은 얼어붙으니 배 전체가 얼음으로 도배되죠.
 
  마스트의 가느다란 철사가 팔뚝처럼 굵어지고 갑판은 몇십 센티 두께의 氷板(빙판)으로 변하고…배가 파도 사이로 자맥질을 할 때마다 과연 이 배가 다시 치솟을 수 있을까 하고 마음을 졸이게 되지요. 배가 파도 꼭대기에 얹히면 스크류가 공기 중으로 나와 헛돌 때도 있지요. 파도의 골 사이로 곤두박질 치면 다시 부르릉-엔진이 돌아가는데 그때마다 십 년 감수예요. 그럴 땐 엔진이 꺼지면 마지막이죠. 배는 파도를 맞받으면서 파도를 타야 하는데 엔진이 죽으면 파도가 측면으로 밀고 와 배를 엎어버린단 말예요. 북양에선 탈출해도 영하 20도나 되는 바닷물에서 당장 동태가 됩니다. 파도에 너무 시달리다가 보면 차라리 바다로 뛰어내리는 게 더 편할 것 같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화물선으로 가장 위험한 배는 原木(원목) 운반선이다. 침몰해도 原木을 타고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바다를 모르는 뭍 사람들의 순진한 착각일 뿐. 미국-일본 사이의 北태평양 항로에서 原木船을 1년간 탔다는 정상률 씨는 '원목선은 무게중심이 높이 있어 배가 잘 노는 데다가 原木을 묶은 줄이 터져 집채같은 원목덩어리들이 와르르 쏟아지면 끝장이다'고 했다. 원목을 실을 때는 요소 요소에 버팀목을 전봇대처럼 세워 박고 굵은 철사로 원목 무더기를 팽팽하게 동여맨다. 파도가 이 버팀목을 쓰러뜨리면 원목은 산사태가 난 듯 바다로 쏟아진다. 이런 바다로 비상탈출을 하면 원목 사이에 끼여 죽는다고 한다. 원목은 바다에서 모로 빙빙 돌기 때문에 그것을 타고 견딜 장사가 없다. 원목선이 원목을 실은 채 가라앉으면 원목의 부력이 동여맨 철사를 끊고 원목들이 해면 위로 튀어 오른다. 로켓 발사 장면처럼 대포소리를 내면서 원목이 海面 위 공중으로 튄다는 것이다.
 
  슈퍼 탱커를 타면 적어도 파도에 의한 침몰이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탱커 생활을 오래하면 통선을 타도 멀미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주문길 씨는 말했다. 슈퍼 탱커는 물보다 가벼운 기름을 싣고 있으므로 가라앉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실정이다. 그 대신 폭발이나 좌초에 의한 침몰 위험과 지루함이 선원들을 괴롭힌다. 반면 잡화선 선원들은 파도에 혼이 나긴 하지만 자주 외국 항구에 들른다는 위안이 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공평한 것 같기도 하다. 이종권 2항사는 '잡화선을 타고 싶어도 멀미를 어떻게 견딜까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멀미에는 장사가 없다고 한다.
 
  선장도 다른 배의 손님으로 타면 멀미를 한다고 한다. 그만큼 멀미는 심리적인 원인이 강하다. 멀미가 날 때는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멀미에 취해 누워버리든지 식사를 끊든지 하면 멀미에 지는 것이다. 멀미가 날 때는 선실 안에 틀어박히지 말고 바깥으로 나와 시선을 멀리 두고 심호흡을 하라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이 멀미는 뭍 사람과 뱃사람을 갈라 놓는 장벽이 되고 있다. 멀미를 이기지 못하면 뱃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멀미를 계속하는 선원은 일부러 항구에 들러 아예 下船(하선)시켜버리는 선장도 있다. 해양학의 진보가 늦고 뱃사람들에 대한 이해나 동감이 부족한 큰 원인이 멀미라는 견해도 있다.
 
  세일론을 통과, 말래카 해협 쪽을 겨냥, 針路(침로)를 굳히고 벵갈만 남쪽을 가로질러 동해 2호가 나감에 따라 우리는 많은 배들을 만나게 됐다. 11일 오전만 해도 동해 2호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배가 네 척 육안으로 목격되었다. 수평선을 둘러보면 늘 너댓 척의 배가 발견되었다. 말래카 해협-세일론 항로는 세계에서도 가장 선박 통항량이 많은 축에 든다. 동남아시아나 극동에서 중동, 아프리카, 유럽, 인도로 가는 배나 그곳에서 돌아오는 배는 이 항로를 지나야 하므로 붐빌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항로는 선박 전시장 노릇도 한다.
 
  이날 우리 배와 스친 선박만 해도 유조선(空船, 滿船), 컨테이너선, 자동차전용선, 잡화선, 광석선, 원양어선 등 가지각색이었다. 국적별로는 가장 많은 일본을 비롯 중공, 싱가포르, 리베리아, 파나마, 필리핀, 그리스, 아부다비, 영국 등등. 동해 2호 선원 가운데는 이 항로를 십 년 가까이 다닌 사람도 있어 지나치는 배 이름을 읽고는 '저 놈 또 만났다'고 아는 체하는 판이었다. 아부다비 국영 석유 회사의 탱커 사관은 VHF로 우리 쪽과 통화하는 중에 '당신 배는 쉘이 초대 船主(선주)였고 노르웨이 회사에게 넘어갔다가 1979년에 당신 회사에 팔렸지?'라고 배 족보까지 술술 읽기도 하였다.
 
  바다는 넓은 것 같지만 그 바다를 한 동네처럼 오가는 外航(외항) 선원들에겐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다만 북한 선박과 스칠 때는 아득한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동해 2호는 이번 항차에서는 PG로 갈 때 이 벵갈만에서 8000톤급 북한 화물선 백두산호와 마주쳤다. 500미터쯤 떨어져 지나쳤는데 그 흔한 VHF 통화도 없이 냉랭하게 갈라졌다. 상대방의 배를 구경하겠다고 양쪽 선원들이 갑판과 선교로 나와 있는 것은 서로가 보았겠지만 아무도 손을 흔들지 않았다고 한다. 백두산호는 혁명호, 개혁호, 은성호와 함께 한국의 유조선 선원들이 자주 만나는 북한 배들 가운데 하나다.
 
  북한은 요즘 이란에서 기름을 사들이고 있으므로 양쪽의 유조선끼리 만날 날도 멀지 않다. 지금은 북한이 외국 탱커를 용선하여 기름을 운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입량이 늘면 그들도 자체 유조선을 확보할 것이다. 한국의 탱커 선원들과 가장 친근한 것은 아마도 필리핀 선원들일 것이다. 브리지에서 당직중인 사관들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까이에서 항해하는 배를 VHF로 불러내 말을 걸 때가 자주 있다. 먼저 채널 16으로 교신을 한 뒤 다른 채널로 바꾸어(채널 16은 만국 공통이므로 오래 쓸 수가 없다) 雜談(잡담)을 하게 된다. 일본이나 유럽 선원들은 이런 잡담을 싫어한다. 말이 길어지면 냉정하게 통화를 끊고 이쪽을 무안하게 만드는 게 보통이다.
 
  필리핀 등 아시아, 南美(남미) 선원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필리핀 선원들은 상냥하게, 솔직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 한국 선원들이 가장 자주 상대하는 외국 선원이 되고 있다. 3항사 박영간 씨와 통화를 한 필리핀 선원은 자신이 한국 여자와 결혼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내가 임신하여 친정인 포항으로 보내 출산 준비를 시키고 있다는 말도 했다. 다른 필리핀 선원은 부산의 어느 술집에 있는 김소희라는 접대부 이름을 들먹였고 마산으로 가고 있다는 필리핀 선원은 마산 여자들이 예쁘냐고 묻기도 했다. 朴 3항사는 지난해 VHF로 필리핀 국영 석유회사 유조선의 3항사와 친해졌다.
 
  걸프로 갈 때였는데 두 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까이 붙어 PG까지 갔기 때문에 당직 시간만 되면 서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편지까지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이번에 또 만났다. 이번엔 길이 엇갈려 잠시밖에 통화할 수가 없었다. 필리핀 선원들은 VHF 채널 16으로 '빠송, 빠송'이라고 하거나 휘파람을 불어 '손님'을 부르는가 하면 한국 배끼리의 통화를 엿듣고 있다가 끝나자마자 '코리아 쉽!' 이라고 부르며 말을 걸어오는 열심을 보였다. 필리핀 선원들은 지금 세계 해운 시장에 대거 수출되고 있어 이 부문에서 선두그룹을 달리고 있는 한국 선원들을 위협하고 있다